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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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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8월 19일 02시 08분 등록

피곤하면 난다는 혓바늘이 또 났다. 머 대수롭지도 않다. 자고 일어나면 나는 수염처럼 요즘은일상적이고 자연스럽다.

그러니까 문제는 스스로에게 너무나 많은 스트레스를 주고 있다는 것이다. 너무 많은 일들을 한번에 처리하려는 욕심이 날 옭아매고 있다. 욕심의 사전적 정의인 분수에 넘치게 무엇을 탐내거나 누리고자 하는 마음처럼 난 분수에 안 맞게너무도 많은 일들을 탐하고있었다.

회사에서 6년을 준비한 프로젝트가 마무리 단계이다. 완성단계가 아닌 마무리 단계. 마감일은 다가오는데 완성품은 맘에 안드니 임원은 애가 탄다. 이 프로젝트에 몇명의 높은 임원의 목이 걸려 있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였다. 요즘 머리가 빠진다는 임원은 주말에 사무실에 사람이 없으면 마구 소리를 질러댄다. 주말 분위기가 이럴진대 평일 사무실 분위기는 눈에 뻔하다. 회사에서 있는 시간을 제외하고 나만의 시간은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이런 극히 제한된 시간을 가지고 여러가지 계획을 세웠다. 젊을 때 더 고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들었다. 돌이켜 보면 분수에 맞지 않는일이였다. 일주일에 한권의 책을 읽고 감상문을 적는 변경영 과제, 이제 두번의 기회가 남은 기술사 면접시험 준비,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취미겸 밴처 형식으로 하고있는 프로젝트까지 하나만 하기에도 벅찬 일들이였다. 3개월 후에 있을 결혼 준비는 우선순위 밖이다. 인생에 한번 밖에 없을 결혼 준비가 우선순위에 없다니, 여자친구가 들으면 참 서운할 일이다.

내가 너무 어렸다. 아니면 자만심을 가졌나 모양이다. 난 계획했던 일들을 적재적소에 분배하면 충분히 해낼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령 ‘9시부터 10시까지는 독서를 하고, 10시부터 12시까지는 프로젝트 준비를 해야지같은 계획은 십중팔구 실패했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였고, 난 인간이였다. 연속성 없는 일들의 빡빡한 스케쥴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내 집중력을 갉아먹었다. 결국 시간이 갈수록 모든 것들이 뒤죽박죽이 되어 버린 기분이 들었다.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 없었다.

시간을 쪼개 주말에 여자친구와 혼수를 보러 갔던 날이다. 냉장고 색깔중 흰색이 좋을지 메탈색이 좋을지 선택해 달라는 질문에 그냥 아무거나 하자라고 했다가 여자친구를 울려버렸다. 아마 그동안 바쁘다고 결혼 준비에 무신경했던 것이 쌓였던 것 같다. 신경 쓰이던 혓바늘 말고 머리에서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인생의 중요한 가치 순위를 정립해야 한다고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쉽지 않았다. 모든게 중요하고 모든게 절박했다. 그렇게 여행 가기 전날까지 장염으로 고생을 하고, 아무 준비도 하지 않은채 무작정 몽골로 떠났다.

준비하지 않은 몽골은 그야말로 척박했다. 신경쓰이던 일상의 업무가 기억나지 않을만큼 아름다운 풍광이였지만, 몽골의 야생성은 내 상상을 조금 더 앞섰다. 그중 압권은 숙소였던 게르였다.

알랭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에 보면 수용성에 대한 부분이 나온다. 수용성은 모든 것을 겸손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태도이다.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문화를 이해하는 마음이다. 우리에게 수용의 마음이 없다면 여행에서 경외심을 가질 수 없다. 여행을 하는 우리들은 고정관념을 버리고, 새로운 장소와 낯선 이곳의 새로움을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빛과 어둠같이 극명한 차이가 있다. 게르에서의 첫날 밤, 수용성을 그저 알았을 뿐, 실천할 수가 없었다. 언제 빨았을 지 알 수 없는 쾌쾌한 담요를 덮고, 난 뜬 눈으로 게르가 너무 싫다고 몇번이나 되새겼다. 몽골의 척박함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다. 밤새 오만 생각을 하면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두번째 밤 역시 비슷했다. 술기운으로 겨우 잠은 들었지만 지저분한 게르안의 환경이 계속 불쾌했다. 게르에서 계속 자느니 그냥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였다.

어쩌면 지금의 난 그 어떤 것도 수용할 수 없었나 보다. 수 많은 계획들로 내 삶이 채워져 있었고, 그 팍팍함이 나를 압도해 버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한해한해 쌓여가면서 어떤 고집이 생겼고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들에 스트레스가 쌓여갔던 것이다. 여행에서 일상을 버리는 것이 나에겐 너무나 어려운 일이였다.

다행히 게르에서의 마지막 밤은 그야말로 숙면을 취했다. 이곳의 낯선 경험이 드디어 일상처럼 편해진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첫날 보았던 수많은 별들과 드넓은 초원의 풍경 역시 일상처럼 지루해져 버렸다. 낯선 풍경의 경외심은 사라지고, 먹고 자고 말타는 것의 따분함이 조금씩 내 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지막날 아침 일찍, 비행기를 타러 가던 짐차 안에서 따스한 오전 햇쌀의 드넓은 몽골 초원을 무표정하게 바라보았다. 몇일간 너무 자주 봐서 익숙해진 풍경을 보면서 곰곰히 생각했다. 이제 가는구나. 왠지 한국이 그리웠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가면 이전보다는 더 즐겁게 지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라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그런 막연한 기분이 들었다.

힘들기도 했지만 즐거웠던 7 8일의 몽골 여행이 끝나고 한국에 들어와서 버릴 수 있는 건 최대한 버렸다. 복잡한 것들, 욕심부렸던 것들을 정리했다. 몽골 유목민처럼 살고 싶어서라기 보다는, 몽골의 끝없는 초원을 보면서 내가 잡고 있던 작은 것들이 부질없어 보였다.

그리고 가끔씩 몽골의 게르를 생각했다. 그 지저분했던 숙소를 떠올리면서 지금의 일상에 감사함을 느꼈다. 덤으로 물도 아껴쓰게 되었다. 누가 아무말도 안했지만 그냥 물을 아껴쓰고 싶어졌다. 머 이 정도면 충분하다. 몽골여행 참 잘 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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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19 06:14:46 *.35.252.86

준영아... 제목에서 부터 확~꼿힌다.
평소에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살았었던 것들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준 값진 여행이었던 것 같아...비단 내 주변의 사물 뿐아니라 나의 일 또 내 주변의 사람들의 소중함도 말이야. 결혼준비가 우선순위가 아니었던 마음이 여자친구가 우선순위라는 걸 깨닫음으로서 사랑하는 그녀와의 '처음'과 '시작'에 다해 우선순위를 두는 건 더이상 수동적으로 결혼준비에 끌로다니는 느낌은 아닐거야. 그치?!

여행을 통해 준영이를 조금 더 알 수 있어 넘 좋았다.
난 담엔 게르에서 한달도 지낼 수 있을 거 같아..다만 화장실만 남녀 구분하여 최소 toilet이 3개 이상만 된다면 더 이상 바랄게 없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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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19 08:12:00 *.46.178.46

고생 많았다 ^^

그리고, 결혼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하고 남은 기간 보내야 할 듯.

그렇게 하지 않으면, 와이프가 평생 널 \괴롭힐꺼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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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20 00:58:52 *.39.145.21
흡수골은 오지군요. ㅋㅋㅋㅋ
차로 초원을 달려서 숙소가 있는 곳에 갈때까지 양떼를 많이 봤습니다. 처음엔 양떼가 나타날 때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멋져보이고,신기하고... 나중에는 '아, 또 양이구나.' '양떼들 때문에 아, 길을 건너느라 또 차를 세우겠군. 젠장, 빨리 좀 지나가라.'으로 바뀌었습니다.
낯선 것이 익숙해지면 그때는 낯선것이 아니게 되는 건가요? 그렇다면 어떤 것은 익숙해지도록 마음 열고, 어떤 것은 절대 익숙해지면 안되는 것도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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