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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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여행을 하는 것이 언제부턴가 편해졌다. 누군가와 동행한다는 것은 왠지 말을 해야 하는 의무감이 있어 좀 부담스럽다. 마음 내키는 대로 길을 떠나고 배 고프면 먹고, 그리고 잠이 오면 발길 닿는 곳에서 자고, 다음 날 새벽에 다시 여정을 시작하는 그런 자유가 좋다. 어느 정도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지만, 인적이 드문 고즈넉한 길을 걸으며 조용히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막연한 불안과 고통에서 벗어나 마음의 평화를 가져본다. 그 여정을 통해 한 모금의 물, 한 잔의 커피의 소중함을 느낀다.
‘떼지어’ 유람하는 것이 내키지 않아 이번 몽골 여행을 주저했다. 한편으론, 하는 일없이 놀고 있으면서 사치를 부릴 처지가 아닌 것도 망설인 이유였다. 고민 끝에 새로운 것을 배우고 느끼기 위해 몽골 행 비행기에 올랐다. 여행일정이 여유가 있어 몽골의 대초원, 하늘, 바람, 밤하늘의 별, 그리고 맑은 호수 등 자연과 친해질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시골 공항처럼 허름한 칭기스칸 국제 공항, 잿빛 하늘, 도로가 여기 저기 파손되어 울퉁불퉁한 길, 흙먼지를 내며 달리는 차들, 잿빛 하늘, 먼지가 수북이 쌓인 낡고 오래된 건물, 미소가 없는 무표정한 얼굴들, 그리고 회색 도시의 울란바토르. 몽골의 관문인 울란 바토르 첫 인상은 그렇게 우중충하고 칙칙했다. 시계를 거꾸로 돌려 유년 시절을 보낸 1970년대 초반의 어느 도시 변두리로 되돌아 온 느낌이었다. 구 소련이 붕괴하면서 사회주의 체제에서 벗어나려고 하지만 아직은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았다.
이러한 실망은 다음 날, 1시간 반 가량을 날아 무릉에 도착하면서 싹 가셨다. 상쾌하고 시원한 바람, 맑은 공기, 쪽빛 하늘 위를 떠다니는 희디흰 뭉게구름, 눈앞에 펼쳐진 광활한 초원, 특유의 허브향 풀 내음은 몸과 마음에 생기를 불어넣기에 충분했다. 목적지인 흡수골 호수(해발 1645m)까지 지프로 2시간 넘게 드넓은 초원의 한 가운데 길을 달렸다. 포장도로에 오고 가는 차량이 없어 마치 전용도로나 마찬가지였다. 도로 양 옆에는 소, 말, 양, 그리고 낙타들이 방목되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남북한을 합쳐 약 7배가 큰 면적이지만 총인구는 300만 명 남짓 된다고 하는데 사람 수보다 가축수가 더 많다는 현지 가이드의 말에 실감이 갔다. 운전 기사는 우리가 묵을 캠프를 운영하는 주인이었다. 기사가 우리의 들뜬 기분을 아는 지 신나는 음악을 틀어 주었다. 낯익은 댄스 음악이었다. Modern Talking의 “ You are my heart, you are my soul “ 80년대 대학 다닐 때 유행했던 곡이었다. 운전 기사도 나와 비슷한 또래일 거라고 생각해 가이드를 통해 물어보았더니 역시 내 예상이 맞았다. 나와 같은 20대에 이 음악을 들었을 것이다.
흡스골 호수 앞에 유목민의 전통 가옥인 ‘게르’로 이루어진 캠프촌에 여장을 풀었다. 밤이 깊어갔고 오전 1시가 되니 캠프촌의 전기도 끊겼다. 밤 하늘을 수놓은 수많은 별들의 향연이 펼쳐졌다. 별천지였다. 그 별들 주변에 유백색의 우유를 뿌려 놓은 듯한 모양이 보였다. 아, 저것이 말로만 듣던 은하수(milky way) 였구나! 탄성이 저절로 나왔다. 태고 적부터 저 별들은 저렇게 빛났으리라.
이른 아침 흡스골 호수가로 갔다. 여명의 바다처럼 넓은 호수는 조용하고 포근했다. 물은 수정처럼 투명했다. 그 물에 혼탁한 마음과 정신을 씻어내고 싶어 세수를 했다. 호수가 주변에 고목들이 뿌리를 드러낸 채 꺼져가는 생명의 불씨를 살리고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곧 고사할 것 같다. 그 전에는 나무들이 자라던 초지였는데 언제부터인지 모르나 물이 초지까지 밀려 들어와 잠식해 버린 것이다. 어쩌면 문명의 이기를 쫓는 인간의 욕심이 이 곳 호수의 수위에도 영향을 준 것은 아닌 가 생각이 들었다.
흡수골 호수에 머물면서 몽골인들이 어릴 때부터 즐겨 타는 말을 탈 기회가 있었다. 열살 남짓의 햇볕에 검게 그을린 앳된 얼굴, 옷은 꾀죄죄하지만 멋진 카우보이 신발을 신은 한 사내 아이가 안장도 없는 말을 타더니 우리 일행이 탄 말 무리들을 이끌었다. 비스듬한 자세로 뒤를 돌아보는 여유도 갖기도 했다. 그 아이는 말과 한 몸이 된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편해 보일 수가 없었다. 사내아이건 계집아이건 말을 자유자재로 다루었다. 기마민족으로서의 전통이 오늘날까지 계승 유지가 되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 몽골인들은 800여 년 전, 칭기스칸과 그의 후예들이 몽골을 통일하고 중국을 비롯하여 중앙아시아를 넘어 러시아, 동유럽까지 정복하여 몽골 제국을 이뤘던 영광의 시기를 그리워하고 있는 지 모를 일이다. 당시, 몽골 전사들이 지나간 자리는 살인, 방화, 약탈로 점철되고 잿더미로 변해 버렸다고 한다. 사냥과 가축을 방목하며 유목생활을 했던 무지의 유목민족인 몽골인이 어떻게 농경문화로 문명화된 국가들을 정복할 수 있었는지 놀랍기만 하다. 유목민족과 유목제국사에 있어 고전에 해당하는 프랑스 역사학자 르네 그루쎄가 쓴 <유라시아 유목제국사>의 내용을 보면 몽골인들의 전쟁을 묘사하는 부분이 나온다.
“모든 작전에서 몽골 사람들은 그들의 체격, 추한 모습, 악취 등으로 인해 상대방이 갖게 되는 공포심을 백분
활용하였다. (..) 그들은 장엄한 느낌까지 불러일으키는 침묵 속에서 서행하다가 지휘하는 고함소리 없이
기수의 신호에 따라 기동하고 진격하였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갑자기 악마적인 비명과 고함을 내지르며
돌진하였다. 이는 희생물을 제어하기 위하여 그것을 흥분시키고 갈피를 못잡게 하는 사냥꾼의 오래 된 전통적인
계략이었다”
영원할 것 같은 몽골제국도 내부간의 분열, 문명이 주는 편안함에 동화되어 온순함에 길들여지고 문명의 이기인 총포와 대포로 무장한 문명 국가를 더 이상 상대할 수 없었다.
몽골 여기저기서 새로운 건물 공사가 한창이고 도로도 확장 공사가 진행 중이다. 겨울이 길고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추위로 몽골의 도로 정비나 건축공사는 연중 춥지 않은 5개월에 집중된다고 한다. 몇 년 후 몽골은 좀더 발전된 모습으로 변해있을 것이다. 그래도 몽골의 초원과 하늘, 바람, 밤하늘의 별, 그리고 맑은 흡수골 호수는 변하지 않고 지금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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