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땟쑤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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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에 도착했다. 2013년 8월 3일의 일이다.
현지시간 오후 4시 30분
경. 5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이지만 공항문을 벗어나자 차가운 공기가 나를 감쌌다. 한국의 초가을 또는 가을 날씨를 만난 듯 했다. 우리는 칭기즈 칸
공항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차에 짐을 실고 몽골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차를 타고 숙소로 향하는 길, 내가 대면한 풍광은 나를 반기던
시원한 공기와 180도 다른 모습이었다.
몽골 유일의 국제공항에서 수도 울란바토르시내를 잇는 길은 포장인지 비포장인지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울퉁불퉁했다. 교통정체는 꽤 심한 듯 보였고, 길 여기저기는 이런 저런 공사와
새로 들어서는 건물들의 모습으로 가득했다. 도심의 건물들도 초라해 보였다. 집들이나 건물들도 꽤 낡아있었다. 잿빛 도시, 뽀얀 먼지가 쌓여 있는 도시와 같은 황량한 이미지 였다. 도시가 살아 있다기 보다는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듯 했다. 나의 편견인가. 어느 덧
세계 중심의 도시 중 하나로 우뚝 서 버린 서울에서 오랜 시간을 살아온 보통 남자는 몽골의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했다. 적응력 하나는 끝내준다고 생각했던 나는 자괴감과 짧고 굵은 우울함을 맛보았다. '내가
이 정도의 사람은 아닌데.....'
도심을 지나 한국음식점인 '마포갈비'에서
식사를 하고 숙소로 향했다. 시원한 공기를 마시고,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그 느낌은 조금씩 누그러졌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울란바토르를 떠나 무릉시에 도착하고 흡수골
가는 길에 만난 광활한 초원과 푸른 하늘을 보며 나의 그런 기분은 모조리 사라져버렸다. 그렇게 나의
몸과 마음은 몽골의 대자연 속에 흡수되었다. 그 안에서 자연과 하나가 된 이상, 몇몇 불편함과 낙후된 시설은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몽골의 첫 모습과 우울함, 그리고 그와 관련된 의문은 흡수굴에서 울란바토르로
오면서, 그리고 국립공원 테를지를 오가면서 다시금 올라왔다.
관광코스에서는 깜쪽같이 사라졌다가 그 외의 곳에서는 스물스물 올라오는 질문이 하나 있었다. '이
넓은 땅덩어리에 왜 인구가 290만 밖에 되지 않는거지?! 아시아와
유럽대륙을 정복해 대제국을 이루어냈던 칭기즈 칸의 영화는 어디로 간거야?!' 그리고 이 질문은 우리는
여행 막바지에 이으러 더욱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우리는 여행 마지막 날, 몽골에 오는 관광객들이 으레 들리는 칭기즈 칸 기마동상을 보았다.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청동상 이라고 한다. 그리고 우리는 역사박물관에 들렀다. 역사박물관에서 우리를 이끈 가이드는 인류 역사의 시작부터 이야기해 몽골 최전성기인 칭기즈 칸 시대의 이야기로
마무리 하는 듯 했다. 칭기즈 칸 이후의 역사는 살짝 다루어지거나 아예 다루어지지 않았다. 그들에게 칭기즈 칸은 몽골을 대표할 수 있는 인물이었고, 주요 관광상품이었다. 그들은 여전히 칭기즈 칸 시대의 몽골대제국을 그리워하는 듯 보였고, 몽골
또한 칭기즈 칸 시대에 머물러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몽골이 아직 과거의 영광과 영화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느낌이었면 나의 편견인 것일까.
칭기즈 칸은 12세기에 세상에 등장에 13세기 초 몽골내 통일을 이루어내고 나아가 중국과 러시아 동유럽과 중동까지 장악하는 등, 말 그대로 아시아와 유럽대륙을 '싹쓸이'한 대륙의 지배자였다. 몽골이 대륙을 평정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육포와 말린 우유로 보급부대가 필요없었고, 안장으로 말위에서의 움직임이 자연스러웠던 기마부대의 힘이 컸지만 칭기즈 칸이라는 사나이를 빼고는 설명할 수 없다. 그는 군대를
조직하고 이성적이며 총괄적으로 군을 이끈 빼어난 행정가였다. 자신에게 오는 사람은 관대하게 대하고 자신에게
반하는 사람은 철저하게 응징했다. 종교란 것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각 문화권의 종교를 인정하며 세를 넓혀간
사나이였다. 유목민의 기동성과 약탈성을 이용해 넓은 대륙의 다양한 문화의 국가들을 정복하며 그들의 문화를 파괴시켰지만, 동시에 이런 정복 과정과 활로를 통해 이질적인 문화들이 교류될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한 사나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와 그의 군대는 유목민으로서의 기질을 십분 활용하여 대륙을 정복한 동시에, 유목민적 기질로 인해 자신들의 수중에 들어온 문명과 문화를 받아들이는데 실패하였다.
몽골의 대자연은 때묻지 않았다. 그 안의 사람들도 때묻지 않아 보였다. 그렇기에 깨끗하고 아름다웠다. 하지만, 문명이 때묻지 않은 것은 조금 다른 문제이다. 우리가 느낀 불편함은 아마도 그로 부터 기인할 것이다. 같은 아시아 국가로, 편견에서 나오는 것인지 실제로 그런 것인지 모를 같은 동포애로 비포장 도로와 물, 전기 부족이 빈번한 몽골의 현재가 조금은 아련하게 다가왔다. 그들은 현재에 만족할지도 모르겠다. 외부인의 시선으로 그들을 슬프게 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몽골과 몽골의 국민들이 지금보다 더 문명화되고 현대화되길 바란다. 그들이 가진 넓은 땅과 그 안에 있는 자원을 십분 활용하여 훗날 아시아를 이끄는 주요국이 되길 바란다. 세계는 이미 자본주의의 물결에 휩싸였다. 과거에 그들이 그랬듯, 먼저 먹지 않으면 먹힐수 밖에 없는, 자본주의의 땅따먹기는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현대사회에서 그들은 칭기즈 칸과 같은 지배자가 되거나, 피지배자가 되거나 둘 중 하나이다. A 그리고 B 가 아니라, A 아니면 B로 나뉠 수 밖에 없는 슬픈 현실이다.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칭기즈 칸 공항으로 향하는 새벽, 우린
역시 울퉁불퉁한 도로를 지나야 했고, 이런 저런 공사현장을 다시금 보게 되었다. 지난 6월 26일 몽골대통령
선거에서 50세에 불과한 젊은 대통령 엘벡도르지가 재선에 성공했다. 그리고
그의 공약 중 하나는 12월말까지 울란바타르시의 도로를 말끔하게 포장하는 것이란다. 몽골의 비포장도로는 꽤나 불편했다. 그 드넓은 땅의 모든 도로가
포장되려면 과연 얼마의 시간이 걸릴까. 언젠가 다시 한번 가보고 싶은 몽골, 그 때즈음이면 그 땅의 모든 길이 포장되어 있기를 조용히 기대해 본다.
2007년 몽골 공항에서 울란바토르 중심으로 들어가기전에 빈민촌을 보았습니다. 그때도 비포장 도로를 달려갔지요. 사람들이 모여산다는 건, 끔찍합니다. 전 차라리 많이 몰려살지 않게 도로망이 정비되었으면 합니다. 포장 비포장이 아니라 교류, 격차해소를 위한 정비였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도로가 정비된다해도 깨끗함이 지켜질 것 같지는 않아요. 많이 모이게 되면 더 심해질 것 같은 염려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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