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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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3대 풍경
2013-08-19
9기 유형선
2013년 8월, 결혼 8년차 남편이자 두 딸의 가장인 나는 일주일의 여름휴가를 가족과 보내지 않았다. 이런 정신나간 짓이 있나 싶기도 했지만, 가족들은 나를 웃으며 배웅해 주었고 장모님은 용돈까지 주셨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던 광고 문구처럼 그동안 가족을 위해 돈버느라 힘들었던 두 어깨를 잠시 내려 놓고 이번만큼은 가볍게 홀로 떠나 자유를 누리다 돌아오라는 격려를 받았다.
7일간의 몽골여행에서 돌아와 일상으로 돌아온지 일주일 흘렀다. 밀린 회사 업무 덕에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숨이 입으로 쉬어지는 지도 모를 만큼 뛰고 또 뛰고 있다. 그러나 바쁜 일상에 몽골 여행이 매몰되는 참사를 막아보고자 여기 몽골여행 세 장면을 선정하여 기록한다. 지금도 눈을 감던 뜨던 몽골의 밤하늘과 자연이 눈이 선히 펼쳐진다. 여기 적는 몽골의 3대 풍경은 몽골의 자연이 나에게 보여준 세 가지 가르침이기도 하다.
1. 흡수골의 밤하늘
화장실을 가고 싶어 잠을 깼다. 탁자위에 놓아 둔 손목시계 야광 바늘은 새벽 3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온통 어둠뿐인 게르 안에서 탁자위에 놓아 두었던 렌턴을 더듬거리며 찾았지만 손에 잡히지 않았다. 게르 천장의 연통 구멍 틈새로 어슴프레 스며드는 불빛에 의지하며 기억을 더듬어 게르 출구를 찾아 천천히 움직였다. 이내 문을 찾았고 밖으로 나왔다.
깊은 새벽이었지만 게르 바깥 세상은 온통 별빛으로 가득하여 시아를 구별할 수 있었다. 숙소에서 멀리 떨어진 숲에서 용변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온 하늘에 펼쳐진 별과 은하수. 이렇게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을 내 생애 본적이 있었던가? 마치 밤하늘이라는 천정 위 쪽에 강렬한 빛이 있고 천정에 가득 바늘구멍이 나 있어 천정 위쪽의 밝은 빛이 천정 아래쪽으로 바늘구멍을 통해 새어 들어오는 것 같았다. 자정 무렵 잠자리에 들기 전에 보았던 은하수 보다 더욱 성대하고 강렬한 별들의 잔치가 지금 내 머리위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저 멀리 지평선까지 촘촘히 자리 잡은 별, 별, 별. 지금도 눈을 감으나 뜨나 그날의 밤하늘 별들이 보인다.
그날 밤, 나는 별을 배웠다. 별과 나 사이에 벌어지는 일련의 흐름를 몸으로 배웠다. 별빛은 해 뜨기 전 새벽에 가장 찬란하다. 내가 눈을 감고 잠자고 있는 그 때, 별은 가장 밝게 빛난다. 별은 그저 자신의 빛을 뿜어낼 뿐이다. 나에게만 특별한 관심을 쏟지는 않는다. 그러나 내가 눈을 뜨고 별을 볼 때, 별은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빛의 파장에 실고 나에게 달려와 내 영혼에 내려앉는다. 내가 할 일은 그저 눈을 뜨고 별을 보는 일 뿐이다. 내가 눈을 뜰 때, 그때 비로소 별은 내게 찾아온다. 별은 늘 그 자리에 있었다. 다만 내가 눈을 뜨지 못해 별을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다.
2. 꽃과 똥
흡수골에서 트래킹을 나갔다. 출발하자 이내 풀과 꽃으로 뒤덥힌 초원을 만났다. 참으로 장관이었다.영화 사운드오브뮤직 속으로 들어온 것 같았다. 꽃으로 뒤덥힌 초원! 일행은 연신 카메라를 찍고 꽃으로 화관을 만든다.
그런데 꽃밭으로 가까이 다가서면 이내 깜짝 놀란다. 꽃 만큼이나 동물 똥이 지천이다! 꽃과 똥의 오묘한 공생! 꽃과 똥이 함께 하는 거대한 들판의 광경! 대극이 함께하는 이 광경은 내 가슴속에 자리잡고서 앞으로 두고두고 나를 가르칠 것이다. 아름다움도 추함도 함께 존재할 뿐이다! 도덕경의 가르침을 몽골 초원에서 몸으로 배웠다.
3. 호수가에서 낮잠 자다
피로가 쌓였는지 허리 통증이 왔다. 걸음은 걸을 수 있지만 아무래도 말을 타는 것은 무리였다. 딱 이틀만 쉬면 몸이 정상으로 돌아 올 것 같았다. 흡수골에서 이틀 동안 말을 타는 오후 일정을 포기하고 홀로 게르에 남아 낮잠을 잤다. 참으로 잘 잤다. 점심 식사 마치고 돌아와 잠을 자면 저녁 무렵에 눈을 떴다.
잠을 자다 문득 눈을 뜨면, 열린 문 밖으로 흡수골의 청명한 호수와 침엽수 숲이 한눈에 들어 왔다. 고요했다. 온 우주가 침묵을 지켜 주었다. 이름 모를 새들만이 때때로 노래했다. 편안하고 고요했다. 아름답고 청명한 호수가 내 옆에 존재한다는 사실 만으로도 내 영혼은 서서히 젖어들었다. 콘크리트 도시에서 메마르고 쩍쩍 갈라져가던 내 영혼에 흡수골의 호수는 마중물이 되어 주었다. 다시 내 영혼에도 샘이 솟기 시작했다.
작은 소망 하나 생겼다. 호수가 보이는 집에 살고 싶다. 호수가 보이는 창을 하나 가지고 싶다. 이 소원을 아내에게 이야기 했더니 호수보다 바다가 더 좋겠다고 한다. 흡수골은 말이 호수지 실은 바다에 가깝다. 조만간 바다를 보러 가족여행을 떠나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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