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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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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8월 19일 11시 38분 등록

나는 멜버른을 여행 중입니다. 여행을 하며 느끼고 생각한 단상을 정리해 봅니다. 생각을 자주 한 것은 새로운 여행지를 거닐어서가 아니라, 세심한 눈길과 호기심으로 느긋하게 돌아다닌 덕분입니다. 일상에서는 무심한 눈길과 바쁜 걸음걸이로 다녔기에 별 생각없이 산 것이지, 내가 사는 서울이 무상(無想)을 만드는 별볼일 없는 곳은 아니겠지요.

 

222A204352109DF92AC6AA버크 스트리트의 스타벅스

 

1.

하루 일정을 마치고 버크거리에 있는 스타벅스에 들렀다. 와이파이에 접속하여 인터넷을 열었더니 인터넷 포털 화면이 뜬다. LA 다저스 소식과 조혜련 씨가 자신의 남편과 문자를 주고 받을 정도로 친해졌다는 제목의 기사가 눈에 띄었다. 한국에 있었더라면 LA 다저스와 류현진에 관한 기사를 읽었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

 

멜버른에서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머지않아 나는 이곳을 떠나야 한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연예기사나 해외토픽을 들여다볼 시간이 없다. 몰라도 괜찮은 정보들이기도 하다. 인생이라는 여행에서도 시간은 제한되어 있다. 언젠가는 우리 모두가 떠나야 하니까. 한국에 돌아가면, 시간을 아껴야겠다. 멜버른에서도, 한국에서도 시간은 곧 인생이기에.

 

2223414152109A3608DFBC타이완 출신의 길거리 가수, Will

 

2.

밤거리를 거다가 타이완에서 온 Will이라는 '길거리 가수'를 보았다. 그는 우리의 발걸음을 묶어둘 만큼 노래를 곧잘 불렀다. 우리는 공연에 대한 답례로 5달러를 주며 신청곡을 부탁하기도 했다. 급기야 와우팀원 A는 10달러짜리 CD를 구입했다. 그가 직접 만든 것임을 감안해도 CD 자켓은 허술했다. 하지만 그의 노래에 취한 A는 자신의 구매를 흡족해했다.

 

이튿날, 엉성한 자켓을 입고 있는 CD를 앞에 두고서 노래를 부르는 '거리의 가수'를 시내 곳곳에서 만났다. 그들은 얼마간의 수입을 벌어들이는 듯 했다. 모두가 노래 부르는 일을 자신의 천직으로 생각하지는 않겠지만, 대다수는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중일 테고, 그 일을 하며 밥벌이를 시도하는 것이리라. 40~50대도 있다는 점에서 홍대 앞과는 달랐다.

 

노래를 부르고 싶다면, 반드시 가수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가수협회에 등록하지 못해도 실력을 연마하여 카페나 리조트에서 노래를 부를 수도 있고, 거리의 가수가 될 수도 있다. 남들과 똑같은 길이 아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길을 스스로 개척하면 된다. 중요한 것은 용기를 발휘하고 남들과 비교하지 않는 것이다.

 

나도 인터넷 세상 한 구석을 빌어 글을 쓰는 길거리 작가다.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것으로 직접적인 수익이 일어나진 않지만, 나는 글을 쓰며 행복을 만끽한다. 하고 싶은 일을 반드시 직업으로 연결시켜야 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렇기에 '취미'라는 단어가 있는 건 아닐까? 거리의 가수들 중 일부도 낮엔 일을 하고 저녁에만 노래를 부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인상 깊은 점 하나 더. 멜버른 거리에서 만난 뮤지션들은 모두 주변과 적당히 어우러졌다. 큰 소리로 근처의 상가를 방해하지도 않았다. 적당히 떨어져 있는 것은 서로의 영역을 지켜주고 있는 걸까. 지나친 경쟁 의식으로 다른 팀을 의식하여 각자의 소리를 키워대는 홍대 앞 일부의 젊은 뮤지션들에게 보여 주고 싶은 장면이었다.

 

2339B04452109D96391D7ARMB 카페에서 만난 매니저(?)

 

3.

RMB는 플린더스 골목(Lane)과 디그레이브스 골목의 교차로에 있는 카페다. 우리는 여기서 멜버른에서의 첫 식사를 먹었다. 빌 브라이슨은 자신의 책에서 호주 사람들의 친절함을 극찬했는데, 나 역시 호주인들의 친절에 수없이 감동했다. 내게 길을 비켜주는 행인과 내게 먼저 양보해 준 자동차 운전자들은 수없이 많았다. 호주인들의 길 안내는 자상했다.

 

"여기가 유레카 빌딩 맞나요?"라는 나의 물음에, 정장 차림의 사내가 건넨 답변은 잊을 수가 없다. 그는 미소를 품은 얼굴로, 나의 자신감을 복돋워주려고 작정이라도 한 듯이 부드럽고 확신 있는 어조로 "Correct" 라고 말했다. 눈빛은 따뜻하고 하얗게 드러난 이가 친절했다. 그가 라이프 코치라면, 나는 인생의 주요한 문제들을 그와 이야기나누고 싶다.

 

RMB의 직원들도 친절했다. 영어가 서툰 팀원이 사진을 찍으려 할 때, 지나가던 여직원은 "Could I take a picture all of you"라고 말하며 다가와 단체 사진을 찍어주었다. 매니저로 보이는 중년의 사내도 우리를 세심하게 배려해 주었다. 식사후, 그와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는 의자에 올라서더니 내 어깨위로 자신의 팔을 얹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친절이라는 가치가 세상을 아름답게, 상대방을 기쁘게 만드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들의 친절은 거창하지 않기에 받아들인 편에서 부담스럽지 않다. 화려한 호텔식 정찬이 아닌 담백하고 건강한 가정식 백반 같다. 정갈하게 차려내어 정성을 덧입힌 한식처럼, 그들은 일상적인 행위에 친절을 덧입혀 아름다움과 기쁨을 창조했다. 아! 고마운, 일상의 예술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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