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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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몸과 마음을 빨아들이는 흡수골 글: 오미경 사진 : 이동희
몽골의 가을하늘은 드높다. 빽빽한 건물숲대신 초록색의 끝없이 펼쳐지는 초원 위에 하늘과 맞닿아 있다. 그 하늘위에 뭉게뭉게 구름은 사슴과 용, 땅아래의 초원을 닮은 초원위에 하얀 게르와 말들의 형상을 하고 있다.
흡수골, 들어오는 물줄기는 99개며, 나가는 물줄기는 한 개다. 다시 말하면 99개의 크고 작은 강이 흡수골로 흘러 들어왔다가 에끄인 강 하나만이 흘러나와 475km를 흘러 셀렌게 강과 합류한다. 셀렌게 강은 대초원을 우회하여 시베리아의 바이칼 호로 흘러 들어간다. 그래서 몽골 사람들은 흡스굴을 ‘바이칼의 어머니 호수’라 한다. 몽골인들은 흡수골을 바다로 불린다고 한다. 흡수골로 들어오는 물줄기가 100개가 넘으면 바다로 쳐주지만, 99개일지라고 그것은 거의 100개와 같으니 바다라고 불러도 되겠다. 무슨 상관이랴, 몽골인 자국민들이 바다라 부르면 되는 것을. 자기네 호수를 무어라 부르든 그들은 그들의 자긍심으로 부른다.
흡수골 앞에 서 있는 동안 나의 발은 저절로 흡수골 호수에 담그로 있었다. 발만 담갔는데도 차가운 듯 하지만, 내 온몸의 찌꺼기를 씻어주었다. 영혼의 오래 묵었던 먼지들을 구석구석 천천히 흡수골의 물이 정화시켜주었다. 아침 저녁으로 이 흡수골에 몸을 담그면 내 몸과 마음이 흡수골을 닮아 맑아지고 청정한 몸과 영혼을 가지게 될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푸른 진주라 불리는 흡수골을 보지만 말고 호수 한 가운데 유람한 번 해보자는 의견이 나왔었나 보다. 보기에는 초라했지만, 그래도 이 곳에서는 최고급 요트에 속한다는 안내 말을 듣고 웃음만 나왔다. 한 사람씩 줄을 지어서 요트에 탔다. 구명조끼를 입고 자리에 앉은 순간 호수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사람들의 머리카락을 날리면서 스카프며 모자며 옷들이 나부꼈다. 이 시원한 바람은 머릿속에 숨어있던 케케묵은 생각들을 일시에 날려버렸다. 그저 몸을 바람에 맡기면 되었다. 나의 마음이 바람을 타고 이리저리 흩날렸다. 요트에서 바라본 물 빛깔은 훤히 속을 내비치어 주었다. 처음에는 진한 청록색이 5분정도 강물을 가르고 지나다보니, 물빛깔이 또 다른 비취색을 내비쳤다. 어쩌면 이리도 물칼라가 이리도 다를수가 있을까.
어쩌면 좋아. 어쩌면 이리도 맑음 물빛깔이 . 자연이 빚어낸 칼라는 뭐라고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진한 청록색, 비취색, 연한 하늘색, 저 호수끝으로 가면 아마도 하늘과 맞닿은 호수는 하늘색을 닮은 엷은 스카이 블루일 것이다. 왜 몽골인들이 흡수골을 ‘푸른 진주’라 불리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자연만이 빚어낼 수 있는 신비로운 물 칼라가 나의 영혼을 푸른색 스펙트럼으로 물들어 놓았다. 나의 눈빛깔이 호수에서 비쳐주는 물칼라를 그대로 담아내고 있었다.
이튿날, 새벽에 일어나 몽유병에 걸린 환자처럼 호수를 향해 나아갔다. 새벽 호수는 고요하다. 하얗게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호수 동쪽에서 해가 서서히 떠오르면 호숫물이 붉게 물들면서 흡스굴의 아침이 시작된다. 대낮의 햇빛에 빛나는 호수는 다할 나위 없이 짙푸른다. 호숫가에는 각양각색의 야생화들이 흐드러진 향연을 펼친다.
시원한 몽골 가을 아침 바람이 내 가슴을 적셨다. 밤새 뒤척이며 어떻게 잤는지 모를 내 몸이 상쾌해졌다. 피곤한 몸을 바람이 씻겨주었으며 호수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내가 호수요 호수가 나임을 느끼는 몰아일체를 경험했다.
한 30여분을 혼자 있은 후에 , 산책 나온 재용 웨버가 다가오면서 물었다.
“미경아. 나는 네가 인생~~뭐 있어, 하고 신발 벗고 호수로 천천히 들어가서 안보일줄 알았는데...
그래서 조마조마 했는데.... ㅎㅎㅎㅎㅎㅎㅎ ”
‘어찌 그리 내 마음을 잘 아는지!!!’.
그렇지. 인생 뭐~~ 있나? 살아보는데까지 즐겁게 웃으면서 사는 거지.
죽을 때 시도 안해보고 후회하느니 뭐든지 마음 끌리는 대로 해보고 후회도 하고 경험도 하고 성장하면서 깨달음도 얻는 거지.
이 흡수골에 있으면 사람들도 흡수골을 닮아가나 보다.
여행온 사람들이 한결같이 각자의 빛깔을 내면서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흡수골은 사람의 몸과 마음을 정화시켜 하나로 묶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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