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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칸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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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8월 20일 08시 07분 등록

 

#1 여행은 일탈이다

 

여행은 일탈이다.

일탈은 육체의 자유이자, 정신의 자율이다.

일탈을 통해 우리는 기존을 깨고 기꺼이 새로움을 받아 들인다.

여행이 즐거울 수 있는 이유는 이러한 일탈이 여행 중간중간 우리를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의외성의 문으로 끌어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당혹감이 앞서 일어나긴 하지만, 그 조차도 여행에서는 일탈이요, 즐거움의 샘이 된다.

영혼이 자유롭기 때문이요, 한편으로는 정신줄을 놓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2 여행은 아쉬움이다

 

여행은 짧으며 길고, 긴 것 같으면서도 매우 짧은 여정이다.

여행의 시간은 일상의 시간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좋은 여행은 대개 11초가 아쉽기 마련이다.

점점 다가오는 마지막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 강렬히 솟구쳐 올라오는 맛을 보는 것도 여행의 큰 묘미이다.

아쉬움이 큰 상처로 새겨지기 때문에 여행에 대한 기억이 마치 문신처럼 지워지지 않는 것이며, 다시 새로운 여행을 기약할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이다.

 

#3 Carpe Diem!

 

여행은 현재를 충실히, 전력을 다하여 즐기는 것이다.

여행은 현재만 있을 뿐 과거가 없으며, 미래 또한 아직 오지 않은 일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여행은 지금 현재 내 앞에 차려진 밥상과 같다.

최고의 만찬으로 즐길 것인지, 그저 그런 한끼의 식사로 때울 것인지에 대한 선택은 온전히 내게 있다.

초원 위에 핀 이름모를 야생화의 은은함, 눈을 호사시키는 탁 트인 풍경의 광활함, 훅 하고 들이마실 때 온 가슴을 가득메우는 이국적 공기의 포만감, 말은 통하지 않지만 표정, 몸짓으로 전달되는 감정의 뿌듯함.

모든 것은 현재에 있다.

오로지 현재에 충실히, 전력을 다하여 즐기라.

Carpe Diem!

 

 

 

78일의 몽골 여행이 막을 내렸다. 이제 몽골은 꿈이다. 꿈꾸는 골짜기다. 막 잠에서 깨고난 후의 일장춘몽이다. 하지만 본격적인 여행은 지금부터다. 여행 중간중간 적어놓은 메모를 보며, 찍어온 사진들을 보며, 아직 머리 속에 남아있는 풍경과 사람들과의 기억들을 되살리며 시간을 맞추는 퍼즐처럼 여행은 새로이 시작된다.

 

 

1. 좋은 사람과 함께하면 좋은 여행이 된다

 

이번 여행, 2008년 뉴질랜드 여행처럼 아들(당시 초등학교 5학년)과 함께하며 아들에게 몇 번이고 반복해서 해준 말이 있다. 어떤 여행도 이토록 서로 챙기지 못해 안달일 정도로 사람들이 성화(?)인 여행은 없노라고. 실제 그랬었다. 여행 3일째 효빈이가 갑작스럼 몸살로 아팠을 때 사람들은 마치 경쟁하듯 서로 가지고 온 약을 챙겨주겠다며 나섰고, 귀한 반찬까지 내어줌은 물론, 귀찮을(?) 정도로 계속해서 아들이 괜찮은지 물어와 주었다. 덕분에 아들은 하룻밤을 자고난 후 거뜬히 일어났고, 오후에는 그토록 타고 싶어하던 몽골말까지 잘 탈 수 있었다.

 

거듭 느끼는 것이지만 좋은 여행에는 딱 한가지만 있어도 된다. 좋은 사람들. 어찌보면 여행은 관계다. 혼자 떠날 수도 있겠지만, 그 안에서도 원하든 원치않든 관계는 형성된다. 하물며 같이 떠나는 여행에서 관계는 여행의 반 이상을 차지할 수 밖에 없다. 변경연의 여행은 특별하다. 관계가 특별하기 때문이며, 이 특별함은 특별하게도 편안함을 덤으로 가져온다. 평생 한번도 만나본 적 없는 사람들이 불과 일주일여의 시간 안에 마치 평생지기처럼 편해지고 끈끈해진다.

 

누가 여행기간 내내 자신의 사진보다 타인의 사진을 찍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가?

누가 자신보다 일행이 함께 즐거워지고자 온 신경을 다 쓰는가?

누가 일행을 위해 한턱을 쏘겠다고 나서는가?

누가 사회적 지위, 체면을 버리고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가?

누가 기타에 맞춰 목청껏 노래부르며, 그러다 감정에 복받쳐 울 수 있는가?

 

 

2. 말과 나는 하나가 된다

 

인간은 동물이다. 말도 동물이다. 고로 인간과 말은 모두 같은 동물이며, 같은 종류(種類)이다.

 

그러나 인간은 말을 타지만, 말은 인간을 타지 않는다. 왜 그럴까? 인간의 지능이 더 높기 때문에? 인간이 말을 가축화시켰기 때문에? 글쎄... 인간의 입장에서는 많은 이야기를 들어 보았지만, 말의 입장에서는 진솔한 의견을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패스!

 

태어나서 처음 말을 타보았다. 흔들림이 예사롭지 않다. 날렵한 등의 곡선 위에 얹어진 안장을 통해서도 말의 호흡은 그대로 전달된다. 무겁지는 않을까, 솔직히 걱정도 된다. 가볍게 ~’ 소리를 내며 옆구리를 툭 건드리자 한발자욱씩 내딛기 시작한다. 그에 따라 내 엉덩이는 실룩실룩, 내 상체도 흐느적 흐느적 말의 스텝에 따라 움직인다. 편안하다. 오히려 서 있을 때보다도 더욱 편안함이 느껴진다. 세상이 흔들리지만, 마치 잠이 올 것 같은 편안함이 몰려온다. 옆으로 펼쳐진 흡수골 호수의 아늑한 풍광과 가끔씩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몽골의 바람결이 내가 세상의 일부로, 자연의 일부로 녹아들어가고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절로 , 좋다~’란 외마디 소리가 흘러 나온다.

 

조금 욕심을 내어 빠르게 가보자고 말을 부추긴다. 바로 반응이 온다. 터벅터벅의 스텝이 탁탁탁탁으로 바뀐다. 엉덩이가 들썩들썩, 온 몸이 짧은 스프링 반응하듯 빠르게 상하운동을 시작한다. 순식간에 정신이 없다. 안장 고리를 잡은 왼팔에 온 힘이 집중된다. 워워. 일단 천천히. 다시 터벅터벅이 된다. 이 정도일 줄이야. 전력질주는 고사하고, 조금 빨리 걷게 했을 뿐인데.

 

적응이 필요하다. 말의 움직임에 따라 내 몸이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조금씩 빨리 걷다, 천천히 걷다를 반복한다. 온 몸이 뻐근해지기 시작한다. , 이래서 말 타는 것이 전신운동이라 하는구나. 은근 힘들지만 다른 동물과 혼연일체가 된다는 것에 작은 기쁨이 물밀 듯 밀려온다. 다시 빠르게 걷는다. 앞에는 평탄한 초원이 펼쳐져 있다.

 

그래, 지금이다. 한번 달려보자. 제대로. 힘차게 ~!!”를 외치며, 말의 옆구리를 걷어차 본다. 순간 탁탁탁탁!!”에서 다그닥 다그닥!!” 소리로 바뀜과 동시에 내 몸이 하늘에 붕 떠 있다. 그리고 다시 땅으로 착지하지만 이내 다시 하늘로 솟구쳐 오른다. “으아아아~!!” 제대로 소리조차 내기 힘들 정도다. 어쩌지 못하는 환희가 머리 속을 가득 채운다. 또 다른 광경이 펼쳐진다. 거친 속도감이 온 몸을 휘돌아 감싼다. 떨어질 것만 같은 공포에 속도를 줄이고 싶지만, 이와는 반대로 더 빠르게, 더 높이 달리고 날고 싶은 강렬한 욕망 또한 솟구친다.

 

... 말과 나는 하나다. 아니 이순간 나는 말의 일부다. 그리고 자연의 일부가 된다.

 

 

3. 너의 별은 어디에 있니...

 

20088월 뉴질랜드 데카포 호수의 밤. 밤하늘에는 달빛과 함께 수많은 별들이 환희 자신들의 자리를 빛내고 있었다.

 

"재우야. 너의 별은 어디에 있니?"

"글쎄요. 저 달 뒤에 숨어 있지 않을까요?"

"아니야. 저 뒤를 봐. 저 수많은 별 들 어딘가에 이미 너의 별도 환하게 빛나고 있을꺼야."

 

사부님과의 대화. 그렇게 뉴질랜드의 밤은 깊어만 가고 있었다.

 

그리고 20138. 몽골 흡수골 호수의 밤. 밤하늘에는 뉴질랜드 데카포 호수에서 본 별들보다 더 많은 별들이 그야말로 촘촘히 하늘에 아름다운 수를 놓고 있었다.

 

재우야, 너의 별은 어디에 있니?’

사부님, 제 머리 바로 위, 저 위에 홀로 빛을 내고 있는 별이 바로 제 별이에요. 지금은 비록 약한 빛에 머물러 있지만, 머지않아 제 자신 만의 환한 빛으로 빛나게 될거에요.’

 

 

몽골의 흡수골 호수에서 바라본 밤하늘. 별들은 그들만의 향연을 벌이고 있었다. 다시 5년전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대답할 것이다. 사부님 별 옆의 자그만 별이 바로 제 별이라고. 그리고 언제까지 환하게 비춰 드리겠노라고. 꼭 그렇게 하겠노라고. 꼭 그렇게 될 것이라고. 소심남의 처음치는 큰 소리, 꼭 한번 믿어 보셔도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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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23 20:35:25 *.244.220.253

저도 내년에는 꼭 몽골에 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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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24 07:41:11 *.64.231.52

제대로 여행기를 올리는구나.

말이 사람을 타지 않는 이유, 궁금해. 말에게 물어줘. 넌 말과 말이 통하잖어!

그리고 말타는 장면, 너무 실감나는 묘사야. 왜 근데 웃음이 이렇게 나는 거지. 너의 유머는 죽지 않았어.

정말 오랫만에 신나게 웃었다. 2008-2009년 우리들이 현역이던 때의 기분으로 돌아가게 해줘서 고마워. 

여행기 아직 끝 아니지?

그나저나 효빈이가 다음 여행에도 같이 가자 나설지 모르겠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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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26 14:26:25 *.58.97.140

선배님 잔잔하면서 느낌 살아있는 여행기, 잘 보았습니다.

내년에도 효빈이와 함께 여행 오세요...

이번 몽골 여행에서

클래식을 좋아하는 효빈이의 클래식 이야기를 못 들은 것이 못내 아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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