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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이로움, 현대중공업, 2005년 8월
인생을 사는 것이 그저 고만고만하다. 매일 일하고 종종 술 마시고 그러다 심심하면 이 사람 저사람 안주로 씹어보고(특히 직장 상사를 씹는 맛이 구수하다), 2차로 노래하고 가끔 춤도 춘다. 매일 같은 사람들하고 그러다 보면 별 재미가 없다. 그 얘기가 그 얘기고, 나이는 먹고 이룬 일은 없게 마련인 것이 평범한 사람들의 흘러가는 삶이다.
인생이 즐겁고 하는 일이 흥분되면 그렇게 살면 된다. 그러나 가끔 인생이 시시하게 느껴지면 그 때는 책을 읽는 것이 가장 많이 남는 일이다. 나는 독서의 이로움이 적어도 세 가지라고 생각한다.
첫째는 거의 무료로 세계최고의 인물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의 인물들 뿐 아니라 인류의 역사 전체를 통 털어 가장 내 맘에 드는 사람을 찍어 사귈 수 있다는 점이다. 어려운 사람 고를 것 없다. 그저 나하고 배짱이 제일 잘 맞는 사람 하나를 골라 그 삶에 대한 책을 읽던 지 그 사람이 쓴 책을 보면 된다. 예를 들어 사마천이라는 사람이 쓴 ‘사기열전’이라는 책이 있는데, 동양 최고의 역사책 중의 하나다. 이 책 속에는 그 당시 중국대륙최고의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그 엑기스만 추려 싱싱하게 정리되어있다. 그 전개 방식이 딱딱하지 않고, 그 사람의 삶 중 가장 특징적 순간들이 포착되어 우리에게 특별한 감흥과 감동을 주는 휴먼 드라마를 보는 듯하기 때문에 고전이지만 읽는데 아무런 어려운 부담이 없다. 유일한 부담이 있다면 책이 두껍다는 것인데, 두꺼운 책의 장점은 이 책을 읽고 난 후에는 얇은 책들이 우습게 보인다는 점이다. 마치 높은 산을 넘고 나면 갑자기 산에 대한 두려움이 줄고 산과 친해지는 것과 같다. 나는 늘 책상 위에 이 책을 놓아둔다. 그리고 삶이 지루해 지면 아무 곳이나 펴 읽는다.
독서의 두 번째 장점은 배울 게 있다는 점이다. 인생은 살면서 배우는 것이다. 사연이 쌓이면서 사람의 도리를 배우고, 삶의 지혜를 배우고, 그 의미를 터득해 감으로써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이 나이 들어감의 미덕이다. 세월이 지나면서 성격이 괴팍해지고, 욕심 사나워지고, 다른 사람에게 해가되는 이기주의자가 된다면, 인생을 잘 살았다 할 수 없다. 책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그 안타까움이 내 일 같고 그 성취가 나를 들뜨게하는 이야기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삶의 감동을 대신 체험하게 하고,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게 한다. 물론 내가하는 일과 연관된 전문서를 읽게 되면 내가 그 일을 더 많이 알게 되고 몰랐던 것을 터득하게 되어 나도 전문가가 되게 도와준다.
독서의 세 번 째 매력은 날 즐겁게 해준다는 것이다. 조선 시대 완당 김정희라는 분이 있었다. 조선은 물론이고 당시 청나라에서도 그에 필적할 만한 사람이 없을 만한 동양 최고 즉 세계 최고의 서예가였다. 청의 문물에 밝았고 교류하는 인사들도 많았다. 아는 것이 많고 재주가 뛰어난 천재들이 그렇듯이 성격은 좀 거만하여 잘 모르고 우기는 사람들에 대해서 가차 없이 비판을 퍼부었기 때문에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무척 존경하고 따랐지만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무척 꺼려했던 인물이다. 정치적으로 불운하여 오랜 유배생활을 하였지만, 그 긴 어려운 생활을 통해 서예의 달인이 되어 그 묘함을 터득한 분이기도 하다. 그분이 쓴 현판 중에 ‘일독 이호색 삼음주’ (一讀二好色 三飮酒)‘라는 것이 있는데, 직역을 하면 세상사는 맛의 첫째는 책 읽는 맛이고 둘째는 여자와 노는 맛이고 셋째는 술 마시는 즐거움이다 정도 될 것이다. 내 연구원으로 있는 술 좋아하는 인사 하나가 ‘책을 한 권 읽는 동안 두 번 섹스하고 세 번 술 마신다’라고 해석하여 웃은 적이 있었다. 아뭏든 꼭 막힌 선비만은 아니었던 완당 선생도 호색과 음주도 좋지만 그래도 책 읽는 맛이 최고다라고 할 정도니 독서의 즐거움이 또한 큰 것이다.
책을 많이 읽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한 달에 한 권 정도 읽으면 무식하다는 말은 듣지 않는다. 물론 잡지책은 빼고 하는 말이다. 한 달에 두 권정도 읽으면 책을 좋아한다 할만하다. 그 이상 읽으면 독서를 즐기는 사람이다. 이제 여름이 가고 있다. 놀기 좋은 계절이 온다. 놀다 지치면 책을 보자. 책을 보면 계절이 익어가듯 사람도 익어간다. 뭘 좀 아는 사람으로 보이는 것은 살며 터득한 깊이일 것이니 내 삶도 즐기고 다른 사람 삶도 책을 통해 알아보자. 그래야 이것저것 사는 재미가 늘어날 것 아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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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사는 것이 그저 고만고만하다. 매일 일하고 종종 술 마시고 그러다 심심하면 이 사람 저사람 안주로 씹어보고(특히 직장 상사를 씹는 맛이 구수하다), 2차로 노래하고 가끔 춤도 춘다. 매일 같은 사람들하고 그러다 보면 별 재미가 없다. 그 얘기가 그 얘기고, 나이는 먹고 이룬 일은 없게 마련인 것이 평범한 사람들의 흘러가는 삶이다.
인생이 즐겁고 하는 일이 흥분되면 그렇게 살면 된다. 그러나 가끔 인생이 시시하게 느껴지면 그 때는 책을 읽는 것이 가장 많이 남는 일이다. 나는 독서의 이로움이 적어도 세 가지라고 생각한다.
첫째는 거의 무료로 세계최고의 인물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의 인물들 뿐 아니라 인류의 역사 전체를 통 털어 가장 내 맘에 드는 사람을 찍어 사귈 수 있다는 점이다. 어려운 사람 고를 것 없다. 그저 나하고 배짱이 제일 잘 맞는 사람 하나를 골라 그 삶에 대한 책을 읽던 지 그 사람이 쓴 책을 보면 된다. 예를 들어 사마천이라는 사람이 쓴 ‘사기열전’이라는 책이 있는데, 동양 최고의 역사책 중의 하나다. 이 책 속에는 그 당시 중국대륙최고의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그 엑기스만 추려 싱싱하게 정리되어있다. 그 전개 방식이 딱딱하지 않고, 그 사람의 삶 중 가장 특징적 순간들이 포착되어 우리에게 특별한 감흥과 감동을 주는 휴먼 드라마를 보는 듯하기 때문에 고전이지만 읽는데 아무런 어려운 부담이 없다. 유일한 부담이 있다면 책이 두껍다는 것인데, 두꺼운 책의 장점은 이 책을 읽고 난 후에는 얇은 책들이 우습게 보인다는 점이다. 마치 높은 산을 넘고 나면 갑자기 산에 대한 두려움이 줄고 산과 친해지는 것과 같다. 나는 늘 책상 위에 이 책을 놓아둔다. 그리고 삶이 지루해 지면 아무 곳이나 펴 읽는다.
독서의 두 번째 장점은 배울 게 있다는 점이다. 인생은 살면서 배우는 것이다. 사연이 쌓이면서 사람의 도리를 배우고, 삶의 지혜를 배우고, 그 의미를 터득해 감으로써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이 나이 들어감의 미덕이다. 세월이 지나면서 성격이 괴팍해지고, 욕심 사나워지고, 다른 사람에게 해가되는 이기주의자가 된다면, 인생을 잘 살았다 할 수 없다. 책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그 안타까움이 내 일 같고 그 성취가 나를 들뜨게하는 이야기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삶의 감동을 대신 체험하게 하고,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게 한다. 물론 내가하는 일과 연관된 전문서를 읽게 되면 내가 그 일을 더 많이 알게 되고 몰랐던 것을 터득하게 되어 나도 전문가가 되게 도와준다.
독서의 세 번 째 매력은 날 즐겁게 해준다는 것이다. 조선 시대 완당 김정희라는 분이 있었다. 조선은 물론이고 당시 청나라에서도 그에 필적할 만한 사람이 없을 만한 동양 최고 즉 세계 최고의 서예가였다. 청의 문물에 밝았고 교류하는 인사들도 많았다. 아는 것이 많고 재주가 뛰어난 천재들이 그렇듯이 성격은 좀 거만하여 잘 모르고 우기는 사람들에 대해서 가차 없이 비판을 퍼부었기 때문에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무척 존경하고 따랐지만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무척 꺼려했던 인물이다. 정치적으로 불운하여 오랜 유배생활을 하였지만, 그 긴 어려운 생활을 통해 서예의 달인이 되어 그 묘함을 터득한 분이기도 하다. 그분이 쓴 현판 중에 ‘일독 이호색 삼음주’ (一讀二好色 三飮酒)‘라는 것이 있는데, 직역을 하면 세상사는 맛의 첫째는 책 읽는 맛이고 둘째는 여자와 노는 맛이고 셋째는 술 마시는 즐거움이다 정도 될 것이다. 내 연구원으로 있는 술 좋아하는 인사 하나가 ‘책을 한 권 읽는 동안 두 번 섹스하고 세 번 술 마신다’라고 해석하여 웃은 적이 있었다. 아뭏든 꼭 막힌 선비만은 아니었던 완당 선생도 호색과 음주도 좋지만 그래도 책 읽는 맛이 최고다라고 할 정도니 독서의 즐거움이 또한 큰 것이다.
책을 많이 읽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한 달에 한 권 정도 읽으면 무식하다는 말은 듣지 않는다. 물론 잡지책은 빼고 하는 말이다. 한 달에 두 권정도 읽으면 책을 좋아한다 할만하다. 그 이상 읽으면 독서를 즐기는 사람이다. 이제 여름이 가고 있다. 놀기 좋은 계절이 온다. 놀다 지치면 책을 보자. 책을 보면 계절이 익어가듯 사람도 익어간다. 뭘 좀 아는 사람으로 보이는 것은 살며 터득한 깊이일 것이니 내 삶도 즐기고 다른 사람 삶도 책을 통해 알아보자. 그래야 이것저것 사는 재미가 늘어날 것 아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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