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땟쑤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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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벌이.
오늘도 어김없이 눈을 떴다. 눈이 떠진건지, 눈을 뜬건지 명확히 분간할 수 없지만, 아마도 눈을 뜬 것 아닐까.어찌됐던 눈이 떠질려면 충분한 잠을 이루어야 하지만 난 오늘도 잠이 모자라니 말이다.
이게 모두 밥벌이 때문이다. 사람들은 밥벌이를 위해 눈을 떠야 한다. 먹고 살려면 돈이 있어야 하고 돈이 있으려면 일을 해야하니 말이다. 눈을 감고 잠을 자면서 밥벌이를 하는 사람이 있을까....... 많지 않을 것이다. 기껏해야 일정 조건 하에 수면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피실험자로 참여하는 사람들(일명 마루타) 정도 아닐까. 밥벌이를 위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침에 눈을 떠야 한다. 몇몇 사람들은 오후나 저녁에 눈을 뜨기도 한다. 어찌됐던 밥벌이를 위해 우리는 눈을 떠야 한다.
출근 길에 올랐다. 지하철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남자, 여자, 아이, 아저씨, 아줌마, 할아버지 할머니. 그 안에는 나처럼 회사에서 월급을 받으며 살아가는 샐러리맨이 상당할 것이고, 스스로 벌어먹는 자영업자도 꽤 있을 것이다. 그 많은 사람들이, 그 많은 삶들이 밥벌이를 위해 이동하고 있었다.
지하철에서 내려 회사로 향하기 전, 간단한 아침거리를 사기 위해 언제나 들리는 빵집으로 향했다. 빵집으로 향하는 길에 중년의 두 아저씨가 보인다. 한 분은 7시면 문을 여는 구두방의 아저씨이고, 다른 한 분은 구두방에 물품을 대주는 사람으로 보였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분들도 아침부터 부지런하시네...... 참 삶이란게 밥벌이를 중심으로 다양한 모습들을 하고 있네 그려.'
나는 대학에 나와 취업을 해 매월 월급을 받고, 훗날 직원들에게 월급을 나눠주는 그런 사람이 되고싶었다. 그게 정답인 줄 알았다. 하지만, 사회생활 좀 해보고, 주변을 돌아보니 꼭 그렇지도 않더라. 삶의 모습은, 살아가는 모양새는 내 생각처럼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구두를 수선해주는 사람, 구두 수선을 위해 필요한 물품을 공급해주는 사람, 물품 공급에 필요한 오토바이에 기름을 파는 사람, 그 오토바이를 만드는 사람, 오토바이를 만드는 공장을 운영하는 사람. 그들이 일할 수 있도록 밥을 만들어 파는 사람, 밥을 만들 수 있는 식재료를 파는 시장 사람들...... 내가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어찌보면 나에게는 오답과도 같았던 삶을 사는 사람들이 그리도 많았다. 정답도 없었고 오답도 없었다.
얼마 전 몽골을 다녀왔다. 몽골여행은 수년전부터 내가 오랜 시간 꿈꿔왔던 것이었다(물론 여행자체를 꿈꾸었지 그곳이 몽골일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그래서 몽골은 나에게 시작이었고 초심이었고 누군가에 대한 그리움 이었고 꿈이다. 7박 8일동안 나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이리라. 그리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그곳에서도 일상을 보았고 밥벌이를 보았다. 나에게는 꿈이었던 그곳이 그 누군가에게는 치열한 삶의 터전, 밥벌이의 장소였다. 말을 타며 달리는 호숫가는 나에게 꿈이자 낭만이며 잊지못할 순간이지만, 나의 말을 잡아주는 마부에게는 일상의 터전이었다. 그리 다를 것 없는 장소였고, 지루한 노동이었다. 내가 부산스럽게 몽골 이 곳 저 곳을 돌아보고 카메라에 담을 때, 짐게, 다우가 그리고 뭉거(우리 몽골 여행의 가이드 들)는 30여명의 사람들을 이끌며 몽골 이곳 저곳을 설명하고 여행을 도와주기에 분주했다.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그들에게 우리는 고객이자 밥벌이의 상대들이었다. 난 그 곳에서 꿈꾸는 듯 존재하고 싶었지만 이렇게 현실과 마주했다.
우리는 먹지 않고는 살 수 없다. 그리고 먹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수단이 있어야 한다. 최소한의 일거리, 최소한의 경비......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일을 해야하고 돈을 벌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 잠에서 깨어야 한다. 꿈 속에서 나와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반드시 꿈속에 나와야만 할까? 굳이 '현실 아니면 꿈'이라 분리해야 할까? 현실에 살기 위해 꿈을 포기해야 할까? 현실 안에 거하며 꿈을 꿀 수 있는 그런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럴 수 있으리라 본다. 자신이 꾸는 꿈이 현실과 닿아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설사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큰 문제는 되지 않을 것 같다. 다만 현실과 꿈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적절히 밀고 당겨주는 즐거운 힘겨루기를 즐기면 될 뿐......
간단한 아침을 사서 회사로 향했다. 형광색 옷을 입은 환경미화원들이 삼삼오오 모여있다. 그들을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그들에게는 무척이나 달달했을) 담배를 피고 있었다. 밥벌이의 시름을 담배 한 대에, 그 담배연기에 날려보내고 서로를 보고 웃으며 위로하고 있는 듯했다. '그들에게도 꿈이 있겠지?!' 밥벌이를 위해 하루하루 성실하게 일하는 그들이 언젠가는 자신들의 꿈에 도달할 그럴 날이 오기를 바래보았다. 그것이 밥벌이를 하는 삶들의 이유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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