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콩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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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올렸던 칼럼을 자료를 조사해서 보완했습니다. 이번 주는 이렇게 하겠습니다.
제가 연구원 1년차에 사부님과 동기들과 약속한 첫 책, '신화와 여성의 통과의례'의 한 꼭지입니다. 그 주제로는 처음 써 봅니다. 여성의 영웅 여정 중 잃어버린 남편, 또는 사랑을 찾아 떠나는 이야기를 모아보려고 했어요. 통과의례를 아이에서 어른이 되는 '관례'로 삼았다가, '사랑/결혼'으로 바꾼 건 저의 당면과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뒷쪽에 만들어가는 결혼의 에피소드를 하나씩 곁들였습니다. 걸어 들어갈수록 자신이 없어지고, 모르겠습니다만 계속 가보겠습니다.
길 위의 그녀들 - 잃어버린 남편을 찾아서
사랑하는 사람, 또는 남편을 찾거나 되찾기 위해 길을 떠났던 그녀들을 살펴보려 한다. 왜? 이 이야기들이 사랑, 또는 결혼에 대한 어떤 힌트를 줄 것 같아서다. 수수께끼로 주는 힌트. 보물섬을 찾아가는 지도들은 다 이런 암호처럼 된 지도로 되어 있다. 사랑? 그게 뭔지는 잘 모르지만 그것과 관련해서 나에게는 두 가지 소원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거, 그리고 결혼한 사람을 계속 사랑하는 거. 원숭이 식으로 말하자면 결혼 안에서 사랑이 실종되지 않도록 무사안착할 수 있는 비법을 알려줄 정전 또는 외전이 필요하다. 지금이 내겐 무척 계몽적인 시기다. 두려움과 불안에도 불구하고 결혼식은 이미 끝이 났고 가족관계등록부인지 등본인지를 냈더니 가족수당이 나왔다. 그녀들의 이름이다. 프시케, 콩쥐, 세째딸, 막내딸. 뒤의 두 여자는 이름이 없다. 그냥 딸의 서열만 있다. 거처하던 방의 이름을 당호로 삼을 수 있었던 여자는 왕의 부인이거나 그래도 안채와 바깥채를 나눈 집에 살 수 있는 사람이었다. 마구 만날 수 있는 흔한 여자들이다.
프쉬케, 또는 싸이키는 그리스신화, 구렁덩덩 새선비의 아내인 최부잣집 셋째딸과 콩쥐는 한국 민담, 북극곰 남편을 찾으러 달의서쪽 해의 동쪽으로 갔던 막내딸은 스웨덴 민담으로 할머니 무르팍에서 손주들에게로 구전되며 살아가. 프쉬케의 이야기는 로버트 A 존슨과 진 시노다 볼린이 애정하였다. 일 년 중 반년은 인도에서 살아가는 신비스런 거주자 존슨은 여성성과 남성성의 관점에서 신화를 읽는 것에 관심이 있고, 정신과의사이면서 미국에서 여성운동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미즈재단 이사인 진 시노다 볼린은 여성이 삶의 희생자가 아니라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서 이 신화들을 읽는다. 각각의 이야기를 펼치고, 그걸 ‘결혼’과 관련해 읽은 이들의 의견을 모아 볼거다. 그리고 그것들 사이의 공통점이나 시사점을 찾아볼라고 한다.
참가번호 1번, 코리아에서 온 콩쥐
콩쥐는 우리 모두가 아는 바다. 새엄마가 팥쥐를 데리고 들어온 뒤 구박을 받는다. 첫번째는 나무호미로 돌밭 매기, 팥쥐는 쇠호미로 텃밭 매고. 검은 황소가 와서 도와주었다. 두번째는 벼를 찧기. 참새가 와서 도와주었다. 세번째는 밑빠진 독에 물 채우기 이것은 두꺼비가 도와주었다. 그러고 난 뒤 아름다운 옷을 주어서 원님 잔치에 갈 수 있었다. 그런데 꽃신을 한 짝 버리고 왔고 원님이 와서 콩쥐를 데리고 갔다. 이건 좀 신데렐라 이야기와 뒤섞이는 부분이다. 콩쥐를 보러왔던 팥쥐와 의붓어미는 콩쥐를 연못에 빠뜨리고 대신 콩쥐노릇을 한다. 콩쥐는 연꽃이 되어 다시 태어난다. 이건 심청이 이야기와 또 비슷해질라 한다. 그러니까 서양에서는 착하게 살다 죽은 엄마가 보낸 요정이 유리구두를 선물했고, 동양에서는 꽃신을 선물했다. 그리고 그 신발을 주인이 헐레벌떡 가버리느라 한 짝을 공교롭게도 흘린다. 그 신발 주인이 아슬아슬한 경연을 통해 찾아진다는 이야기다.
신화학 박사 고혜경은 한국의 동화를 다시 읽은 책을 썼다. <선녀는 왜 나뭇꾼을 떠났나?>에서는 콩쥐 이야기에 여성성을 계발하기 위한 구제적인 과제들이 제시되어 있다고 본다. 왜 느닷없이 여성성을 계발하냐고? 그녀는 현대의 여성들이 여성성을 희생하여 준남성처럼 살아야 생존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진짜 여성성을 제대로 드러내어 꽃 피우기 위해 신화와 이야기에서 지혜를 찾는다. 그녀의 첫 마디는 못되처먹은 새어머니 재조명이다. 백설공주, 헨젤과 그레텔, 바실리사, 콩쥐의 시련 또는 아동학대는 착한 어머니가 죽고 비정한 계모에게 아버지가 새장가를 감으로써 시작된다. 아버지들은 놀라울만큼 존재감이 흐릿멍텅하다. 속수무책 방관한다. 그녀는 이걸 여성의 삶에서 어머니가 끼치는 영향이 아버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지대하다고 읽는다. 고혜경은 또다른 색다른 시선을 갖춘다. 콩쥐와 팥쥐를 한 사람의 두 가지 면으로 보고, 친엄마와 계모를 어머니의 양면으로 통합해서 본다. 그녀는 좋은 엄마, 나쁜 엄마 모두 엄마의 모습인데 그걸 통합하지 못할 때 ‘이상적인 어머니’상에 집착하게 되고, 그것이 여성의 삶을 얼마나 고단하게 만드는 지를 안타까와한다. 인제 콩쥐 이야기로 들어갈까? 아니아니 조금만 더 놀다가 가야겠다.
나는 콩쥐를 편애한다. 나에게 3분의 스승님이 계신 것처럼 나에게는 3개의 이름이 있다. 그 중 한 개가 콩쥐 겨드랑이에서 나왔다. 생명과 첫 이름을 주신 아버지가 첫번째 스승님이다. 아버지는 어린 소나무 같은 나에게는 탑처럼 굳건한 존재였다. 나의 출발이며 열고 나서야 할 문이다. 나는 그분이 내게 준 여러 가지를 밑알로 살아남았지만 한편 그분을 극복해야 하며 그를 떠나서 나의 세계로 가야 한다. 두번째 스승님은 스물 두 살에 만났다. ‘이 입장과 저 입장을 폭넓게 이해하는 지혜를 갖추라는’ 뜻의 생활화두를 이름에 새겨 주신 법륜스님이다. 두번째 스승은 운명을 바꾸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었고, 내 가치관의 등뼈를 세우게 해 주셨다. 세 번째는 구본형 선생님이다. 그 분은 내가 무슨 꽃씨인지를 알아보아 주셨다. 내가 스스로 지은 이름 ‘콩두’를 가지고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는 마흔 즈음에 만난 스승님이다. 그 이름은 서른 다섯 즈음에 온다는 중년기 전환을 맞이하여 나는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살아갈 건지를 생각하며 자작한 거였다. 콩두는 맨 처음에는 밑 빠진 독에 물을 길어붓고 원님 잔치에 갈 수 있도록 이 여자를 돕던 ‘콩쥐의 두꺼비’에서 출발했다. 그러니까 진짜 나 (그런게 있다면! 그런게 있다치고)에게로 나침반의 목적지를 맞춘 여행의 시작도 밑빠진 독에서, 그리고 두꺼비에서 시작한다. 그러니 내가 콩쥐 이야기를 애정하는 건 일종의 권리이자 필연이다. 이 이야기의 의미를 알고 집착한 건 아니었다. 발길을 잡아 끄는 끌림과 향기가 있었다. 연어의 물맛인지도 모른다. 그건 나의 창세기다. 나는 늘 궁금했다. 어떻게 밑빠진 독에다 물을 길어다 부을 건지, 그리고 이것들이 대체 무슨 뜻인지. 이 쓰잘데기 없는 수수께끼 놀이는 재미있다. 네 개의 위를 가진 소처럼 여물삼아 우물우물 먹고 느릿느릿 오래오래 되새김질을 한다.
인제 고혜경의 콩쥐 해설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 한국 사람이면 모두 알고 있듯이 계모는 콩쥐에게 세 가지 과제를 준다. 첫번째는 나무호미 따위로 황무지 같은 밭을 개간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우는 것이고, 세번째는 산더미 같이 쌓인 볍씨를 까서 정리하는 것이다. 각각 검은소, 두꺼비, 참새떼의 도움을 받아 미션은 클리어된다. 고혜경은 콩쥐 이야기를 여성 영웅 여정으로 읽는다. 조셉 캠벨은 영웅 여정에 대한 해설을 그의 책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에서 잘 설명해 놓았다. 그는 세계가 생겨난 것과 함께 영웅 여정을 도표화 시켜놓았다. 영웅은 모험에의 초대를 받은 사람이며, 분리, 새로운 세계의 여러 도전과 위험을 거쳐 과제를 해 내기, 귀환의 순서를 밟는다. 이 과정을 거치며 그는 성숙하고, 다른 이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것을 얻어온다.
첫번째 과제부터 살펴보자. 이건 팥쥐에게 주어진 과제와 대비된다. 콩쥐는 나무호미를 받아들고 집에서 가장 먼 곳, 돌로 된 황무지로 등을 떠밀린다. 팥쥐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집 뒤뜰의 채소밭을 쇠호미를 들고 사부작댄다. 콩쥐는 집으로 상징되는 부모의 영향력, 곧 기존 세대, 기존 문명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나아갔고, 이것은 수평적으로 영역, 또는 사고가 확장된다는 의미로 고혜경은 읽는다. 그 곳은 나무호미같은 낡은 도구는 먹히지 않는 곳이며 사물을 보는 시각이 광활하게 확대될 수 있는 곳이다. 시야를 넓히기 위해서는 모험이 필수적인 걸 생각하면 콩쥐는 모험으로 내몰렸으며 용기의 창출을 강요당한 것이다. 나무 호미가 부러지자 콩쥐는 울음을 터트린다. 콩쥐의 여정을 ‘여성 영웅의 여정’으로 읽는 고혜경은 남성 영웅들과 달리 ‘통곡’하고 있는 여자에게 주목한다. 눈물은 연약함의 표시가 아니라 가식없이 ‘너무 힘들다’고 고백하고 ‘나는 할 수 없으니 천지신명이여 굽어 살피소서’라고 자기 한계에 대해 진솔하게 토로하는 간절한 구원에의 요청이라고 본다. 이런 모진 시련과 고통으로 울어본 사람만이 자신의 아픔뿐 아니라 이웃과 사회의, 그리고 우주적인 비극에 슬퍼하고 아파할 수 있으며, 여성 영웅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 뿐만 아니라 주변의 고통에 함께 하는 연민과 열린 감성이란다.
그럼 남성 영웅은 어려움에 당하면 땅 바닥에 퍼질러 앉아 대성통곡을 하지 않고 다르게 한단 말인가? 요것도 좀 궁금하네. 이건 다른 때 알아보기로 하자. 묻어두자 묻어두자, 다독다독 묻어두자. 다람쥐가 도토리를 양 볼따구니에 넣어서 경보선수 잰걸음으로 쪼르르 어딘가 나무들에 숨기듯 잉여분을 비축하기로 하자. 까먹으면 어떻하지? 그래도 괜찮다. 다람쥐의 건망증 때문에 여기저기에서 묘목이 나고, 숲이 푸르러 지니까 언젠가는 내 숲에서 싹이 돋으리라.
각설하고, 콩쥐의 울음에 어디선가 검은 소가 어슬렁어슬렁 걸어 나와서 콩쥐를 도와준다. 울음은 콩쥐의 안에서 검은 소라는 자원을 불러낸다. 농경사회에서 소는 다산, 풍요, 부의 상징이었다. 곧 대지의 어머니의 도움을 받는다는 상징이다.
두번째 과제로는 밑 빠진 항아리에 물을 채우는 거다. 항아리는 아홉인데 죄다 밑에 화분처럼 구멍이 뚫렸다. 원님이 잔치를 한다고 방을 붙여서 동네사람들을 초청한 모양이다. 고기를 삶고, 떡을 하고, 잔치국수를 삶았겠다. 부침개를 기름을 넉넉히 둘러 지글지글 부치며 온 동네에 꼬신 내를 풍기고, 풍악을 울렸겠다. 경망스러움의 선두 주자 날라리가 한 톤 높은 공기 속을 쨍쨍쨍 울리고 광대들이 와서 뛰고 솟고 구르며 마당놀음을 놀고 여기저기 신나는 풍경들이 있겠지. 콩쥐의 독은 모두 구녕이 뚫렸다. 이번에도 콩쥐는 통곡을 하고, 두꺼비가 기어나와서 빠진 독을 메워준다. 이 과제를 고혜경은 깊이로의 탐구, 내면 탐구로 해석한다. 그것은 죽음의 세계를 포함하는 깊이를 말한다. 깊은 지혜를 원하는 사람에게 이 세계의 탐험은 필연적이다. 물은 무의식과 관련된다. 또한 세계 여러 신화에서는 두꺼비와 물과 달의 연관성이 관찰된다.
세 번째 과제인 곡식의 알갱이를 가려내 분류하는 것은 여성 영웅의 여정을 다루는 신화에 빈번히 등장하며, 이 분별작업은 애매함을 선호하는 여성들의 기질을 보상하는 기능을 하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고혜경은 말하고 있다.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볍씨를 까는 일에는 참새떼가 와서 도와준다. 아프로디테의 새 참새는 경쾌함과 발랄함을 속성으로 한다. 또한 독야청청하지 않고 떼로 다닌다. 참새떼를 아우른 세번째 과제를 통해 콩쥐의 의식세계가 지상, 지하를 이어 천상의 3계까지, 즉 온 세상에 두루 넓고 깊게 높이 연결되어 우주적으로 열린다. 수평적인 시야의 확장과 수직적인 내면의 탐구는 혼자서 할 일이지만 개인적인 작업이 끝난 후에는 협동적인 노력으로 문제를 푸는 것이 좋겠다는게 그녀의 의견이다. 여성운동에서 많이 하던 소규모 자조집단의 기능을 이런 것으로 보았다. 여성만 그런 게 아니라 취약한 누구에게도 뜻을 같이 하는 자조집단은 매우 의미가 있으리라. 방글라데시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인 그라민은행에서 소액대출을 무담보로 해주면서 5명의 연대 보증을 세워 서로가 서로에게 안전망이 되도록 한 것과 비슷하다.
참가번호 2번, 그리스인 싸이키 여사
프쉬케는 에로스와 결혼했다. 싸이키와 프쉬케가 다른 여자냐고? 아니다. 읽기 나름이다. (원어 이름) 에로스라니 왠지 에로틱하다. 에로틱은 좀 빨갛고 야하고 외설스러운데 이게 맞는 반응인가? 그녀의 시어머니는 아프로디테였다. 에로스는 아프로디테가 나오는 그림마다 사발을 엎어놓은 듯한 젖가슴과 보드라운 살로 벌거벗은 그녀의 옆에 작고 앙징맞은 날개를 달고 화살을 맨 귀여운 아이로 묘사되곤 했다. 에로스는 사랑의 전령사 구실을 했다. 화살을 쏘면 그 화살에 심장을 맞은 이에게 불 같은 사랑이 솟아나 사랑의 포로가 되곤 했다. 그런데 이 화살에도 두 가지 옵션이 있다. 어떤 화살은 그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도록 했다. 아폴론에게는 사랑에 빠지는 은화살을, 다프네에게는 사랑을 싫어하는 납화살을 쏘아 도망치게 했다. 사랑의 방향이 달라 누군가의 등만 보도록 하는 건 얼마나 비참한가? 후딱 키워졌는지 어떤지 암튼 그 남자 에로스는 여자 프쉬케를 선택해서 도둑 장가를 들었다. 그런데 이 남자가 밤에 불이 꺼졌을 때만 자고 나가는 거다. 프쉬케는 아직 자기가 결혼한 남자의 정체를 모른다. 남편의 얼굴을 한 번도 본적이 없으면서도 행복했다. 하지만 엄마와 언니들과 새색시가 브런치를 가지다가 촛불을 켜고 그 남자의 실체를 보라는 그이들의 제안에 홀딱 넘어갔다. 그녀는 솔찮이 귀가 얇았다. 초를 켰을 때 그녀의 눈 앞에 신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나면 안된다. 천년 묵은 구미호가 999명째 정성을 들이다가도 사단이 나고, 이무기가 사람이 되려고 해도 백일기도 딱 하루 전에 부정을 타곤 해야 관전자에게는 조마조마한 즐거움이 있다. 촛농이 남편의 몸에 떨어지고 에로스는 원래 자기가 있던 곳으로 날아가버린다. 프쉬케는 시어머니인 아프로디테를 찾아간다. 아프로디테는 프쉬케에게 네 가지 과제를 준다. 그녀는 남편과의 재회를 위해, 이 과제를 완수해야 한다. 프쉬케는 길을 떠난다.
첫번째 과제는 산더미같이 쌓인 곡식창고에서 종류별로 씨앗을 분류하는 과제였다. 프쉬케는 마연자실한다. 그러자 어디선가 개미들이 나와서 씨앗별로 분류해준다. 두번째 과제는 황금양털을 얻어오는 거였다. 프쉬케는 그 양에게 정면으로 뎀벼서 뿔에 받쳐 전치 12주 이상, 사망에 이르는 무모한 도전을 하는 대신 그 양들이 떨기나무에 가려운 등을 긁어대는 걸 관찰한다. 그리고 그 덤불에 붙은 황금양털을 모아 가져간다. 세번째 과제는 스틱스 강에서 떨어지는 폭포에서 물을 한 병 크리스탈 병에 받아오는 거였다. 독수리의 도움을 받는다. 네번째 과제가 가장 어려운 것이었다. 이건 지옥의 페르세포네에게 가서 화장수를 한 병 리필해 오는 거였다. 대신 지옥에서 그녀에게 탄원하는 불쌍한 이를 모른 척해야 한다는 금기를 지켜야 했다. 그녀는 이 과제를 모두 완수한다. 그리고 에로스와 재회한다.
진시노다 볼린은 <우리 속에 있는 여신들>에서 싸이키의 과제는 여성이 개발해야할 능력을 대표한다고 보았다. 융심리학에 의하면 남성적 요소(아니무스) 아니면 여성 성격의 남성적인 특성과 같은 것이다. 비록 싸이키 같은 여성에게 남성적이라 느껴지고 노력해서 개발해야 할 이 능력들이 아르테미스나 아테나 여성이 지닌 자연스러운 특성들이다.
첫번째 씨앗을 분류하는 과제는 우선순위에 대한 것이다. 여성이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는 서로 갈등을 일으키는 감정과 뒤엉켜 있는 우선순위들을 분류를 할 필요가 있다. 모든 것이 명확해질 때까지 행동하기를 보류하고 혼란된 상황에 그대로 머무는 법을 배우게 되면 그녀는 개미를 신뢰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두번째 황금양털을 얻어오는 과제는 갈대가 와서 일러주었다. 황금양털은 권력을 상징하는데, 이것은 여성이 이를 얻기 위해서 자신을 파괴하지 않고도 쟁취해야할 힘을 뜻한다. 싸이키 같은 여성은 관찰하고 기다리면서 간접적인 방법으로 점차 권력을 획득하는 것이다. 세번째 스틱스 강에서 수직으로 떨어지는 폭포에 가서 생수를 받아오라고 한다. 이것은 탑이 와서 알려주었다. 독수리가 병을 물고 가서 물을 떠 오면 된다고 힌트를 주었다. 스틱스강은 망자가 기억을 씻고 가는 강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거시적인 시야를 가지는 것을 말한다. 여성들은 당면과제, 또는 눈 앞의 돌보아야 할 사람에게 막혀서 장기적 관점을 갖지 못할 때가 많다. (아 이부분 책 보고 다시 해야한다. 명확하지가 않네.)
네번째는 거절을 배우는 거다. 이 과제는 전통적인 영웅이 용기와 결단력을 실험하는 것 이상이었다. 지옥에 있는 페르세포네에게 가서 화장수를 리필 해오는 도중에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는 불쌍한 사람 세 명을 만날 것인데 그때마다 그녀는 그들의 탄원을 무시하고 자비로운 마음을 접어두고 계속 전진해 가야 한다고 명령받았다. 만약 그녀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녀는 영원히 지하세계에 남아 있어야 한다. 세번은 안돼요 라고 말하는 싸이키의 과제는 선택을 연습하는 것이다. 많은 여성들은 딴 사람의 일로 자신을 빼앗기도록 내버려두고 자신의 일보다는 딴 일들로 정신이 팔리기 쉽다. 그녀들은 거절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 그것이 친구를 필요로 하거나 위로를 받고 싶어하는 사람이건 아니면 사랑의 관계에 빠져들도록 하는 유혹이건 간에 그 여성이 자신의 다정다감함에 대하여 단호하게 거절하는 법을 배울 때까지는 그녀는 자신의 인생경로를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 네 개의 과제를 통하여 싸이키는 성장했다. 그녀는 그녀의 용기와 결단력이 시험을 받으면서 자신의 능력과 힘을 길렀다. 그러나 그녀가 얻는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기본적인 성향과 우선순위는 바뀌지 않은 채로 남아있다. 그녀는 사랑의 관계를 중요시하며 자신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이를 쟁취하려는 것이다.
척 봐도 일면식도 없을 코리안 콩쥐와 그리스인 싸이키의 과제 중 공통점이 있다. 바로 씨앗을 분류하는 거다. 그리고 두 학자가 모두 이것은 뭉뚱거려져 있는 덩어리에서 분별, 또는 우선순위의 선택을 다루는 것이라고 한다. 두 개는 개미와 참새의 도움을 받았다. 이건 싸이키와 콩쥐 안에서 나온 자원인 지도 모른다. 예나 지금이나 관계중심적인 여자들이 자신의 욕망이 아니라 남의 우선순위를 돌보느라 자신에게 시간을 쓸 수 없는 상황은 마찬가지이다. 삶의 균형은 여성에게 더 어려운 일이다. 직장을 다니는 사람에게는 거의 투 잡이니까. 또 하나는 두 이야기 모두에서 이걸 여성 영웅 여정으로 읽는 시도다.
참가번호 3번 <해의 서쪽 달의 서쪽> 막내딸
이제 동화를 살펴보려 한다. 나는 이 동화를 아이들과 함께 읽었다. 내가 동화를 읽어주는 아이들은 장애가 있다. 그래서 문장을 매우 짧게 잘라서 읽어야 한다. 한 권을 반복해서 읽어줘야 하고, 또 가만히 앉아서 읽기만 하는 게 아니라 중간중간 행동을 섞어 읽는다. 데굴데굴 구르고, 깨금발도 뛰어보고, 호랑이한테 똥침을 먹이고, 팔에다 입술을 대고 며느리 방구소리를 내어가면서 읽어야 한다. 그러면서 한편 쉬 잊어버리니까 정말 좋고 좋은 책을 골라서 반복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한국의 옛 이야기와 세계의 옛 이야기, 나름 검증이 끝난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읽어주게 되었다. <구렁덩덩 새선비>와 <해의 서쪽, 달의 동쪽>은 그러다 만났다. 상징이 있어서 아이들은 그닥 즐기지는 않았다.
동화작가이면서 평론가, 번역가인 김서정은 동물 신랑이 나오는 동화 <해의 서쪽, 달의 동쪽>을 ‘한눈에 봐도 결혼 이야기’로 읽는다. 이거 바로 나의 관심사다. 그녀는 어린아이들에게 결혼 이야기가 시기상조가 아니라고 본다. 결혼은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들인 엄마아빠에게 현재진행형으로 일어나고 있는 사건이며, 이런 이야기로 결혼관을 무의식적으로 가실 수 있다면 힘이 될 거라고 본다. 그녀가 이 동화를 통해 말해주는 결혼 적응 전략은 무엇일까? 그녀는 일단 신랑이 동물었다가 잠깐만 사람이 되는 동물 신랑 이야기가 많은 이유는 남자들이 야성을 더 많이 가지고 있는데, 결혼을 한다고 야성이 없어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본다. 수렵시대의 전투성이 유전자 속에 배어 있어 결혼 안에서 남자들이 역할할 수 있도록 기다리고 조련하는 역할과 책임이 여자 쪽에 있다고 본다. 이건 <문명이야기>를 쓴 역사철학자 윌 듀란트와 의견을 같이한다. 그는 남자가 여자가 길들인 마지막 가축이라고 했다. 여자들은 그런 야성적인 남자들이 정착해서 가정을 책임지고 아이들을 같이 키우는 안정적이고 부드러운 힘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걸 여자가 신랑을 찾아 긴 길을 가는 걸로 표현했다고 읽는다.
해의 서쪽 달의 동쪽은 북극곰이 와서 막내딸을 신부로 주면 부자가 되게 해주겠다고 했다. 식구가 매우 많았던 가족들은 먹고 살 길이 막연한데 막내딸이 그리로 시집을 가주길 바랬다. 잘 먹고 잘 살고 있으니까 밤마다 북극곰에서 인간으로 변해 자고 나가는 신랑의 얼굴을 보라고 한다. 이 신부도 촛농을 떨어뜨려 북극곰은 의붓어머니에게로 돌아가버린다. 막내딸은 신랑을 찾아 머나먼 길을 떠난다. 해의 서쪽 달의 서쪽을 묻는다. 마녀는 황금빗을 선물로 주면서 바람에게 물어주었다. 또 다른 마녀는 황금 물레를 선물로 주면서 또다른 바람에게 물어주었다. 또 다른 마녀는 마침내 길을 찾아주었다. 막내딸은 그리고 갔다. 거기에는 마녀의 마법에 걸린 남편이 곧 그 마녀와 결혼을 할 거라고 했다. 막내딸은 마녀에게 황금사과를 주고 하룻밤만 이야기를 하도록 해 달라고 한다. 그러나 남편은 마녀가 준 마법의 음료를 마시고 잠들어서 그녀가 하는 이야기를 하나도 듣지를 못한다. 둘째밤에도 선물을 주고 하루밤을 얻어서 이야기를 하지만 듣지를 못한다. 셋째 밤에는 듣는다. 그리고 셔츠를 깨끗이 빨아주는 이와 결혼을 하겠다고 한다. 막내딸은 마녀와 시합을 한다. 그리고 이긴다. 그녀의 눈물과 긴 모험이 마녀를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해의 동쪽, 달의 서쪽>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결혼 초기 신랑과 신부의 어머니가 감초처럼 끼어든다. 아들을 며느리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은 신랑의 어머니는 마법을 걸어두고, 사위가 영 미덥지 않은 신부의 어머니는 금기를 깨뜨리도록 부추긴다. 신혼부부의 갈등과 분갈이 몸살은 식구들 때문에 더 커진다. 여자는 초조해하면서 성급하게 군다. 신랑과의 약속을 어기고 그의 정체를 그만 폭로하고 금기를 깬다. 이 과정에서 신부는 갈등의 결과 생긴 신랑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길을 나선다. 여러 바람에게 길을 물어 먼 곳까지 가고, 그리고 황금 빗, 황금 사과, 황금 물레를 주는 할머니들의 지혜를 얻는다.
참가번호 4번. 구렁덩덩 새선비의 셋째딸
이제 뱀의 신부가 되었던 부잣집 셋째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내 맘대로 이름을 지어준다면 김김삼순쯤 될 것 같다. 만만한 네이버 검색을 했더니 국문학을 전공한 이의 글이 뜬다. 그는 「구렁덩덩 신선비」는 신화가 동화로 변질되면서 신의 세계가 거세된 이야기라고 말했다.
옛날에 혼자 사는 할머니가 임신을 하여 출산을 하고 보니 구렁이었다. 할머니는 구렁이를 삿갓을 덮어서 굴뚝 모퉁이에 두었는데 이웃집에 사는 장자(長者)의 딸 삼자매가 와서 보고 큰 딸과 둘째 딸은 구렁이를 낳았다고 못마땅하게 말하는데 막내딸은 구렁이를 보고 구렁덩덩 신선비를 낳았다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구렁이는 어머니를 보고 장자의 막내딸에게 장가를 가겠으니 청혼을 하라고 졸랐다. 어머니가 어렵다고 주저하자 구렁이는 칼과 불을 들고 어머니 뱃속으로 다시 들어가겠다고 위협한다. 할 수 없이 어머니가 장자에게 청혼을 하자 장자는 세 딸의 의사를 물어본 후 결정하겠다고 한다. 장자의 물음에 첫째 딸과 둘째 딸은 거절하였으나 셋째 딸이 아버지 뜻에 따르겠다고 하여 셋째 딸과의 혼인이 이루어진다. 구렁이는 혼례를 치룬 첫날밤에 신부에게 간장독, 밀가루독, 물독을 준비하라고 한 뒤 이 독들을 통과한 후 구렁이 허물을 벗고 신선 같은 미남자 신선비로 변한다. 신선비는 구렁이 허물을 아내에게 잘 간수하라고 맡기며 만약 이 허물이 불에 탈 경우 자기는 다시 돌아올 수 없어 영원히 이별하게 된다고 말한 후 집을 떠난다. 셋째 딸의 언니 둘은 동생이 신선비에게 먼저 시집간 것에 질투를 느껴 셋째 딸을 찾아와 머리에 이를 잡아주며 잠들게 하고 구렁이의 허물을 찾아내어 불에 태워버린다. 신선비는 볼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 자기 허물이 타는 누린 냄새를 맡고 사라져 버린다. 신선비가 돌아오지 않자 셋째 딸은 신선비를 찾아 집을 나선다. 셋째 딸은 빨래하는 할머니에게 빨래를 대신 해주거나 농부에게 논을 대신 갈아주면서 길 안내를 받아 소댕을 타고 옹달샘 속으로 들어가서 지하세계에 도달한다. 그 곳은 넓은 평원에 곡식이 무르익어 있었으며 새 쫓는 아이가 새를 보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우이여 우이여 웃녁새야
전주, 고부 녹두새야 나락 밭에 앉지 마라
구렁덩덩 신선비님 우리 오빠 장가갈 제
찰떡 찌고 메떡 쪄서
웃논에 한 접시 아랫논에 한 접시
훌떡 훌떡 던져줄게
그러나 신선비는 새로운 아내를 맞이하려고 하는 판이었다. 셋째 딸이 찾아 온 것을 안 신선비는 옛 부인과 새로 맞이할 신부에게 과제를 부여하여 이기는 사람을 아내로 삼겠다고 한다. 셋째 딸은 신선비가 부여한 수십 리 빙판길에 굽 높은 나막신을 신고 물 길어 오기, 새들이 앉아 있는 나뭇가지를 새들을 날려 보내지 않고 꺾어오기, 호랑이 눈썹 빼오기 등 어려운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남편과 다시 결합하게 된다
이 동화는 두 가지로 읽을 수 있나 보다. 하나는 싸이키 신화와 비스무리하게 잃어버린 남편을 되찾아가는 이야기, 또 하나는 그야말로 신을 맞아들인 만신의 이야기다. 나는 결혼에 대해 한 수 배우려는 마음이었는데 갑자기 신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좀 당황했다. 구렁덩덩 새선비를 못알아보고 ‘뱀’이라며 덮어둔 두 언니처럼 나도 며칠을 덮어두었다. 그리고 며칠 후에 살짜쿵 열어서 들여다본다. 남편이 아니라 신으로 보는 관점도 흥미롭다.
할머니가 혼자서 살며 구렁이 아들을 낳았다는 것은 신의 탄생을 의미한다. 구렁이는 흔히 가정의 업신으로도 신앙되고 용과 같이 비를 오게 하거나 물을 지키고 풍년을 들게 하는 생산신으로 숭앙되기도 한다. 신이 출현하면 신을 모셔 받드는 인간이 있어야 하는데 아무도 구렁이를 알아주지 않았다. 그런데 오직 장자집 셋째 딸이 신선비라고 하며 구렁이의 형체 속에 내재되어있는 신성성을 알아주었던 것이다. 셋째 딸은 구렁이가 신임을 알아보았다. 신이 내린 무녀와 같이 신통력을 갖추고 신을 받들어 모실 사제자로서 자질과 의지가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구렁이가 셋째 딸에게 청혼하라고 한 이유다. 구렁이와 셋째 딸의 혼인은 신과 신을 모시는 사제자의 만남이라고 할 수 있다. 무속인 중에는 자기의 몸주신을 부부처럼 모시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무녀의 남편은 아내가 모시는 신의 질투의 대상이 되어 가정불화가 일어나기도 한다.
구렁이는 청혼을 주저하는 어머니에게 만약 청혼을 하지 않으면 칼과 불을 들고 어머니 뱃 속으로 다시 들어가겠다고 한다. 이 말은 신으로서 인간을 위협한 말이다. 어머니 뱃 속은 만물을 생산하는 대지와 같은 상징적 의미를 가진다. 칼은 전쟁이나 기타 질병과 같은 재앙을 말하고 불은 혹심한 가뭄을 말한다. 자기를 섬겨줄 사제자를 찾아주지 않으면 인간이 사는 대지를 재앙과 가뭄으로 생산력을 고갈시키고 황폐하게 하여 불모지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협박이다. 그래서 어머니는 장자에게 청혼을 한 것이다. 장자는 풍요로운 삶을 사는 존재이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신의 가호가 필요했다. 그래서 셋째 딸을 구렁이에게 시집가도록 허락한 것이다. 즉 셋째 딸에게 구렁이 신을 섬기도록 한 것이다. 제주도 당신화(堂神話)중에는 신이 출현하였음에도 인간이 돌보지 않으면 주민에게 병을 주어 괴롭히고 꿈에 현몽하여 제향을 받들도록 협박하여 마을신으로 좌정하는 사례가 많다.
구렁이는 신혼 첫날밤에 밀가루독, 간장독, 물독을 준비하라고 신부에게 지시하고 이 독에 몸을 담궈 통과 한 뒤 허물을 벗고 미남의 신선비로 변한다. 구렁이가 사람으로 변한 것은 동물신 숭배에서 인격신 숭배로 바뀌어진 인류의 신관(神觀)의 변천사를 반영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간장과 밀가루는 농경의 산물이다. 이를 통과하면서 구렁이 허물이 벗겨졌다는 것은 농경시대에 접어들면서 신의 형체가 동물의 모습에서 인간의 모습으로 바뀌어졌음을 말한다.
신선비는 풍요를 관장하는 신이고, 신선비와 장자의 딸이 혼인하는 것은 신과 사제자의 만남으로서 구렁이로 형상화된 생산신(生産神)에 대한 신앙이 정착되는 모습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셋째 딸의 남편을 찾는 노력은 대지의 생산성을 회복하기 위하여 다시 신을 맞이하는 영신의례(迎神儀禮)의 성격을 가진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신화적 내용이 함축된 이야기이기에 할머니들은 「구렁덩덩 신선비」를 즐겨 아이들에게 들려주었고, 아이들은 신에 대한 숭앙이 부부의 사랑으로 바뀌어 표현된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지극한 정성만이 인간세상의 풍요로운 삶을 유지할 수 있다는 교훈을 배웠을 것으로 생각한다.
사랑과 결혼에 주는 힌트들
언뜻 보기에도 공통점이 있다. 이런 질문들이 일어났다.
첫째, 여자들은 아직 완전한 인간이 아닌 남자와 결혼을 한다. 에로스는 낮에는 신이고 밤에는 남자이며, 북극곰이고, 뱀이다. 이건 무슨 뜻인가?
둘째, 여자들은 촛불로 비춰보다가 촛농을 떨어뜨리거나, 금기를 깸으로써 잃어버린다. 그리고 한결 같게도 ‘어머니’에게로 돌아가 버리거나, 마법을 걸 수 있는 다른 여자에게 돌아가 버린다. 이건 무슨 뜻일까?
셋째, 여자들은 길을 떠나고, 여러 가지 모험을 한다. 그 문제와 도전꺼리들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것이 영웅 여정과 관련이 있을까? 만약 관련이 있다면 남성영웅의 여정과 여성 영웅의 여정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넷째, 이 이야기들은 모두 여성의 사랑 또는 결혼과 관련이 있나?
에피소드 2 : 사는 듯이 살고 싶다
- 그, 그녀, 우리의 10대 풍광 -
문제가 생겼다. 사는 듯이 살아보고 싶다, 더 이상 삶을 유예하지 않고 ‘살아보겠다’고 소리쳤다만 그 ‘삶’이란게 뭔지 당최 모르겠다. 황당하고 난감하다. 이건 결혼을 했다고 해서 저절로 해결되는 건 아닌 듯 하다. 원래 주머니 속에 있었는데 오다가 잃어버렸나? 온 길을 다시 훑으며 길을 살펴야 할까? 그래 딴 방법이 없으니 그래 보자.
고등학교 때는 대학에 들어간 뒤에 하자고 생각하면서 유예했다. 대학에 떨어져 재수를 하기 위해 서울에 올라오면서는 일단 대학에 붙은 다음에 하자고 미뤘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동의하는 사안이었다. 대학에 갔지만 생각지도 못한 데에, 그리고 아버지의 기대를 이루지 못해서 황야의 짐승새끼처럼 헤맸다. 일단 졸업이, 생존이 목표가 되었다. 졸업한 뒤에는 임고에 떨어졌으니 먹고 사는 일이 우선이었다. 당장 방세를 내야하고, 대졸자로서 기초생활비를 벌어야했다. 그 다음 목표는 더 안정적인 직장으로 옮기는게 우선 일이 되었다. 서른 살에 좀더 안정적인 직장으로 간 다음에는 나는 무너진 것을 회복하고, 다시 인정을 받기 위해 집으로 들어갔다. 내가 맏이니까 이젠 동생들이 졸업하고 취직하는 것이 목표가 되었다. 나 좀 내버려두라는데 부모님은 내가 결혼하기 전까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한다. 마음의 여유는 생기지 않는다고 했다. 개혼을 하고, 첫 길을 닦아야 할 내가 할 일을 미적거리고 있기 때문에, 정해진 시간표 대로 살고 있지 않아서 그분들이 마감을 치는데 피해를 주고 있는 듯 했다. 이해할 수 없었는데 나는 mbti 성격유형에서 임박착수 만땅이고 그 분들은 선명한 SJ 성향인 걸 알고난 후에는 낫다.
나는 그 때 어떤 삶을 살고 싶었던 걸까? 내가 어릴 때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가족 모두 통일호 기차를 점촌에서 타고 부산까지 여행을 가자. 가족여행을 가자” 나는 열 살 정도의 계집아이였다. 나는 우리 가족이 기차여행을 같이 갈 수 있으리라고 매년 기대했고, 언제나 그 날을 기다렸다. 그러면서 어른이 되었고, 이젠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고 포기하면서, 부모님은 잊어버렸다고 생각한다. 갖고 싶었던 플라스틱 인형처럼 공소시효가 다된 소망들. 살인범도 15년이면 죄에서 자유로와진다 했던가. 엄마는 온 가족이 마당에 숯불을 피워놓고 고기를 구워먹는 게 소원이다. 여지껏 단 한 번도 해 보지 못했다. 우리집은 숯불을 이글이글 피워놓고 통 고기를 굽는 집이 아니라 한 근 끊어서 후라이팬에 달달 볶아서 먹는 집이었다. 통고기를 살 수 있는 형편이 되어도 바비큐 그릴을 사용하는 그림이 우리에겐 쉬 들어오지 않았다. 게다가 자식이 네 명이어서 누군가에게는 일이 있었다. 돌아가며 군대를 가고, 취직을 못해서, 시험에 떨어져서, 고시에 못붙어서 , 결혼을 못해서 명절에 누군가가 내려오지 못하는 해가 해걸이를 하면서 여러 해 지났다. 결혼을 한 다음에는 유산을 해서, 몸이 안 좋아서, 사이에 뭔가 일이 생겨서 그런 일은 만들어지지 못했다. 마음이 분주했다. 마음의 여유는 한 번도 생겨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두고 일하러 간 걸 슬퍼하는 어린아이가 어른인 내 안에 있기도 하다.
사는 듯이 살자고 했던 그 삶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그게 욕망일까? 그의 욕망, 그녀의 욕망, 나의 욕망.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 하겠다고 미뤄두었던 삶의 모습, 내 할 일이 끝나면, 그들의 할 일이 끝나면 하겠다고 미뤄둔 삶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나는 돈 벌기 위해서, 사랑하는 그들이 나에게 원하는 기대에 맞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부재하는 것보다 좀 더 시간을 같이 보내고 싶다. 그동안 나의 동심원들과의 인간관계는 분절적이다. 적어도 나의 가족에게는 더 시간을 같이 보내고 싶다. 그런데 나와 보내는 시간동안 그나 그녀가 마음이 바빠서 그 시간을 아까와 할 때, 그러한 소망을 배부른 소리라고 취급할 때 정말 슬프다. 죽어 없어져서야 그들은 후회할 것이다.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가지 습관>을 읽을 때 가장 부러운 것은 그가 그 많은 자녀들과 그리고 아내와 1:1로 데이트를 하는 거였다. 이런 데이트의 범위는 어디까지 일까? 나는 삶을 책으로 배우려고 한다.
둘째를 꼽다가 문득 알았다. 그래도 나는 하고 싶은 일을 전혀 안하고 산 사람은 아닌 것 같다. 내가 정말로 원했다기 보담 안 할 수 없는 일들은 하면서 살았다. 20대 초반 엄마는 내가 기독교인이 되기를 바랬다. 나는 2년 동안의 여러 교회와 선교단체에서 공부를 한 후 그건 나와 맞지 않다고 결론내고 나와 더 잘 맞다고 판단되는 불교인이 되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늘 용두사미에 삶의 균형을 잡지 못하고 극단에서 극단으로 휩쓸리고 기본적인 생활을 꾸리지 못할 때도 많았지만 하고 싶은 일은 했다. 못 꾸린 건 학점 같은 거였다. 그래서 남보다 졸업이, 취직이, 결혼이 늦었고, 더 많은 학비와 생활비를 썼고 더 긴 길을 걸었다. 소심하고 상처를 잘 받고, 마감관리가 잘 안되는 치명적인 약점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하고 많이 시켰다. 아, 또 있다! 3년 갈 길을 15년에 걸쳐 갔지만 스승님이 가리키는 길을 내 발로 걸었다. 연구원에도 뛰어들었다. 나는 이득을 위해서만은 동기유발이 되지 않는 사람인듯하다. 거북이처럼 딱 엎드려 버린다. 근데 나와 딱 맞는 것이 올 때 말로 설명하지는 못해도 알아채는 감이 전혀 없진 않다. 그러고 보니 여러 사람들에게 나의 장점이 뭐냐고 물었을 때 자신들은 이런저런 상식을 지키기 위해 못하는 걸 시도하는 거라고 말해준 이들이 여럿 있었다.
인제 진짜 둘째! ‘사는 듯이 살고 싶은’ 또 다른 나의 삶은 무엇일까? 10대 풍광을 쓰면서 나는 그런 삶의 모습을 그려본 것 같다. 나의 사명선언서를 쓸 때도 쬐끔 알아보았는데 그건 추상적인 문구라서 좀 모호했다. 혼자서 아티스트 데이트를 할 때도 조금 감이 왔다. 내향적 감정형이 에너지를 받는 활동에 대한 힌트를 MBTI 열등기능을 다룬 책에서 힌트를 받았다. 그런데 그걸 직접 실험을 하기 전에는 그게 정말 나에게 사는 느낌을 주는 지는 알 수 없다.
10대 풍광과 10년 후 미래의 10가지 장면을 사진처럼 그려보았다. 과거형으로 회고하는 형식의 10대 풍광은 무척 흥미롭다. 이건 구본형 사부님이 철학자 스피노자에게서 배운 걸 다시 배운 거다. 나도 이걸 썼다. 야매다. 나의 10대풍광에는 텃밭과 정원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올해 나는 그걸 조금 실행했다. 땅집이 아니라서 베란다에다가 화분을 놓고 길렀다. 나는 혼자 있는 질높은 시간을 원한다. 새벽이 가장 방해받지 않는 시간이고, 또 타고나길 새벽형 인간으로 태어났으므로 나는 그 시간에 나를 아름답게 가꾸는 시간을 배치하고 쓰고 싶다. 그럴 때 내가 가장 행복하고 편안한 웃음을 웃을 수 있고, 몸과 마음이 이완된다. 내가 가장 행복하고 창의적인 시간은 신신신새벽 기도를 하고 있던 서른살 2년과 마흔살 1년이었다. 그걸 다시 살아보고 싶다. 평생 그리 살 수 있다면 좋겠다. 그 시간이 안정적으로 확보되면 나 자신을 잘 데리고 다닐 수 있다. 불안과 내게만 3배로 작용하는 듯한 중력을 견딜 수 있다. 그걸 견디면 최소한 남에게 업히지 않고 갈 수 있을 것 같다. 또 한편 이걸 해 내면 내게 주어지는 여러가지 어려운 일들도 해 낼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그와 10대 풍광을 써서 교환했다. 아직 결혼을 결정하기 전이었다. 아무런 의논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가 살고 싶은 삶과 내가 살고 싶은 삶이 얼마나 비슷하고 다른 지가 궁금했다.
10대 풍광 영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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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표는 이따 퇴근 |
해서 채우도록 하겠 |
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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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경님^^ 댓글을 달다가 잠이 들어서 아침에 다시 왔어요. 노트북이 뜨끈뜨끈하네요 ^^;;
저런 이야기를 재미있어하시다니! 은경님 반가워요 ㅠㅠ
저게 사부님이 해보자 했던 이야기인지, 제가 애초에 하고 싶었던 이야기인지는 확신이 안서요.
<마흔 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를 읽다가요, 그 분이 글을 쓰는 방식이 나침반 하나만 딸랑 들고
남쪽을 향해 가는 거라는 거 듣고요 저처럼 두루뭉수리한 사람은 기냥 꼴리는 대로 막 써제껴도 되지 않겄나
싶어졌어요. 별 수가 없고요 -_-
열공은 9기 여러 님들이 하고 계시지요.
여행 다녀오면 본래 생활로 돌아가는데 시간이 걸리두만요. 맛난 거 마이 드시고요.^^ 은경님도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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