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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8월 22일 18시 17분 등록

관촌수필 - 대복이와 복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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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복이와 복산이

 

관촌수필은 각각의 편들에는 그 편의 중심인물이 있다. 각각의 인물들의 특성을 보면서 내게도 이런 점이 있구나, 내 주변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지하는 면이 있었는데 했었다. 

행운유수의 옹점이와 그녀의 동생 복점이는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다. 

일락서산의 화자의 할아버지와 아버지 또한 다른 길을 걸었다. 

이중에서 특히나 녹수청산의 대복이와 관산추정의 복산이는 어떤 면에서는 판이하게 달라보인다. 가정 형편은 비슷한데, 인생이 어디에서 갈라졌나 궁금했다. 

 

이들의 이야기를 살롱9에 같이있는 친구 승완이게 하니, 둘의 기질이 서로 대극을 이룬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보다는 먼저 기질적으로 판이한 인물인 것 같다고 말한다. 

 

이들 인물에 관심이 간 것은 어려서의 내 욕망이 떠올라서였다. 우리집은 많이 가난하지 않았는데, 그렇다고 풍족한 형편도 아니었다. 밥은 굶지 않았고, 밥 때문에 걱정을 해본 적은 없다. 그러나 어린아이에게 있으면 좋은 돈은 거의 갖지 못했다. 학교에서 이것저것 내라는 것을 수월히 내본 적이 없다. 어머니께 말씀을 드리면 늘 잔소리를 하시며 돈을 내주셨는데, 나는 그것이 몹시 못마땅하였다. 기왕에 줄거라면 그냥 아무 잔소리 없이 주셨으면 했는데, '뭔, 내라는 게 그렇게 많냐? 불우이웃돕기, 우리나 도우라고 해라.'라는 따위는 어느 집에나 있는 말이라고 하지만, 나는 그 소리가 몹시도 싫었다. 그래서 나중에는 그냥 차라리 어디가서 훔쳐왔으면 싶었다. 뻔히 어머니말고는 돈 얻어갈  데가 없는 줄 알텐데도, 매번 잔소리하며, 애걸하게 만드는 것이 몹시 불쾌했다. 돈 때문에 구차스러워졌다. 그런 것들 때문이었나 나는 주전부리는 위해 돈을 타써 써본 적은 없다. 그러니 친구들하고 어울릴 때는 또 한번의 구차함을 겪었다. 요즘은 초등학생도 호주머니에 몇 백원을 가지고 놀러나가지 않는다. 나 어렸을 적에도 차비와 과자 한봉지 값이라도 없으면 어디를 가기가 어려웠다. 

 

그걸 생각하다가 대복이가 떠올랐다. 대복이에게는 도벽이 있었는데, 나는 그의 도벽이 집이 너무 가난해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복의 아버지 조패랭이는 징용갔다가 몸이 삭아서 돌아와서는 힘든 일을 하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그러나 일을 하게되면 힘써 일했고, 너무 힘들다 싶으면 알아서 일을 쉬기도 했다. 워낙에 가난한 살림이라 열무 한포기라도 심어 거두어 먹을 밭 한쪼가리가 없어 그의 아내는 밖으로 일을 다녔다. 그 밖이라는 게 관촌수필의 화자 이문구씨의 집이었는데, 거기서 허드렛일을 봐주고는 먹을 것을 싸가지고 집에 가거나 아예 대복이를 불러 먹이곤 했다. 대복이네는 가진 것은 없어도 밥은 자주 굶지 않는 집이었다. 대복이의 아버지 조패랭이는 없으면 찬밥을 물말아서 먹어도 암시렁도 안한 사람이었고, 대복 어메는 필요한 것이 있으면 이씨 집안 부엌에 드나들며 집어다 먹고, 집어다 썼다. 부엌데기 옹점이는 이를 몹시도 싫어하여 집안 안주인에게 악착같이 일러바쳤다. 손 씀씀이가 크고 바지런한 옹점이는 안채의 상머슴같이 일을 잘하였지만 대복 어메는 일도 요령을 피워가며 해서 옹점이의 눈 밖에 난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옹점이가 일러바쳐도 집안 어른들은 대복 어메를 나무라지 않았다. 대복이네가 워낙에 없이사는 살림이라 가난 구제를 못해주는 미안함에 자신의 집안을 들락거리며 허드렛일을 하며 집어다 먹는 것까지 나무라지는 않았다. 

 

워낙 없이 살아서 그랬을까? 대복에게는 도벽이 있었다. 서리를 하거나 해도 대차게 했던 것 같다. 물론 그가 나서서 게를 잡거나 새를 잡으면 잘 잡았다. 그러나 그에게는 도둑질 말고는 필요한 것을 조달할 능력이 없다고 스스로 생각해서인지 그는 이웃의 물건들을 훔쳐가곤 했다. 동네 사람들은 물건이 없어지면 덮어두고 대복이를 의심했다. 

 

이와는 달리 복산이는 기질이 좀 달랐다. 복산이네도 지독하게 가난했다. 대복이는 화자 이문구 보다는 10살 정도 나이가 많았지만, 복산이는 2살 정도가 많았다. 그 둘다 손속이 밝고 뭔가를 잡거나 채취하는 데 남달랐다. 복산이가 대복이보다 나이가 어려서 그렇지 대복이에게 일이나 마음씀씀이에서 뒤질만한 사람은 아니었다고 말한다. 둘다 동네에서 둘째가라면 서운할 만큼 가난해서 그런가 동네의 친구가 없는 화자와 어울려 노는 사람이었다. 

 

복산의 아버지 유천만은 동네에 아는 사람이 많아 부고를 돌리거나 하는 일을 도맡아했고, 동네에 무슨 일이 나면 험한 일을 도맡아 했다. 그 험한 일이란 것이 짐승을 잡거나 애기 송장을 치운다거나 하는 그런 일이다. 짐승을 잡는 일을 도운 유천만은 그 수고한 값을 제대로 셈하지도 않고, 짐승의 내장을 얻어가거나 하는 것으로 만족해했다. 어느 집이나 큰 일을 치르려 한다면 유천만이 일을 해주었으면 했는데, 그 일은 미리 부탁을 하지 않아도 유천만은 그 장소에 제일 먼저 나타나 그 일을 했다. 짐승을 잡는 일이란 것을 유천만은 본래 좋아했었던 듯 싶다. 유천만은 마음씀을 볼 수 있는 것으로는 그가 국수솥에 불이라도 떼고 있어야 거지라도 뭐라도 얻어먹고 간다는 대목이다. 그러나, 유천만은 허드렛일을 했지만 남의 땅을 얻어 부쳐먹는 일 같은 것은 하지 않았고, 삯을 주는 일다운 일을 하지 않았다. 그에게 셈은 그저 짐승의 일부를 얻어오거나 밥을 한끼 얻어먹는 것으로 족했다. 그래서 유천만의 아내가 힘써 일해서 살림을 꾸려가야 했다. 유천만의 아내는 도토리를 주워다가 묵을 쑤어 팔았다. 산을 타며 팔만한 것들을 거둬들이는 것이 어찌나 악착같은 지 유천만의 아내를 남편 천만이 보다 낫다하여 '만만이'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만만의 어미, 그러니까 유천만에게는 장모되는 사람은 유천만을 원수 대하듯 했다. 그 작자가 자신의 딸을 고생시킨다고 욕을 해댔다. 

 

복산은 그런 어미를 도와 도토리를 주워서 중학교 학비를 댔다. 복산은 부지런했다. 그리고 길에 떨어진 물건이라도 그것이 임자가 따로 있는 것이라고 안 이상 그걸 주워가지 않았다. 화자는 자신은 재미삼아라도 대장간의 못이라도 훔쳐냈었다고 하는데, 복산은 그러지 않았다고 쓰고 있다. 복산은 나중에 학교에서 성실함을 인정받아 학교의 뭔가를 관리하는 일을 맡아서 했는데, 그것으로 장학금을 받아 학교를 졸업하고 농업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또한 복산은 자기보다 어린 아이들에게도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고 화자는 쓰고 있다. 

 

대복은 어찌보면 동네에서 힘께나 쓰는 청년이라고 해야하나, 아니면 동네 건달이라고 해야하나 그런 인물이었다. 갯벌에 게를 잡으로 오는 다른 동네 젊은이들에게는 대복이가 앞장서서 심하게 텃새를 부렸다. 그리고 시대가 시대이다보니 전쟁에 피난을 다니고, 좌익이니 우익이니 하며 뒤집어지는 세상에서 대복이는 앞장서서 뭔가를 독려하고, 그 이후엔 자신의 그 부역을 무마하려고 또 나서서 다른 일을 하곤했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은 대복이를 뒤에서 욕을 했고, 그꼴이 보기 싫어 세상이 다시 뒤집어져야한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대복은 나중에 동네에 순진한 처녀 순심이를 미워하고 그집 식구들을 죽이겠다고 난리를 피워대다가 그집 머슴이 되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순심이는 그집 구들에 몸을 숨겨 살고 있었고, 그것을 안 대복이가 도와주었다. 나중에 대복이가 전쟁에 징병나갈 때에 순심이는 대복이의 아이를 임신했다. 

 

그와는 반대로 복산은 나중에 그의 아비, 어미가 죽고 없는 관촌 그 동네를 지키며 자신의 아버지 천만이 동네 허드렛일을 맡아하던 것처럼  동네에 잡스런 일을 도맡아하고 있었다. 

 

난 처음에 가난이 사람을 얼마나 몹쓰게 만드나 하며 대복이를 보았는데, 복산이를 보면 가난이 사람을 못쓰게 하는 게 아닌 듯 하다. 그 둘의 인생이 어디에서 갈렸는지 궁금했다. 둘의 이야기를 내게 전해 들었던 승완은 둘의 기질이 달랐다라고 말한다. 나는 그 말을 듣기 전에는 먼저 그둘의 어머니가 너무나도 대조적인 성격인 듯 보여서 어머니를 언급했다. 대복어메는 남의 물건에 손을 대는 사람이다. 없는 집 살림이라 그렇다고 하기엔 복산의 집, 복산의 어미 만만도 그럴 법 하지만 복산어미는 산으로 가서 힘써 산에 것을 채취하여 살림에 보탰다. 대복이 남의 물건에 손을 댔다 하더라도 대복어메는 그게 뭐 대수랴 했을 것 같다. 화자는 대복어메가 자신의 집안 명밭에서 대복어메가 대복이를 잡으러 온 사람들에게 악다구니를 쓰면서 얻어 맞고는 나중에 그들이 돌아가자 명을 딴 모습을 보고는 정이 뚝 떨어졌다고 썼다. 

반면에 만만이는 무능하고 집 살림에 뭔가를 보태는 일을 하지 않는 남편을 대신하여 살림을 꾸리는 모습을 보고 동네 사람들이 안됐다고 동정을 했다. 

 

이들 부모의 모습을 보면 대복과 복산의 기질은 판이하게 다른 것 같다.

그래서 그런 걸까? 가난을 대하고, 사람을 대하는 이들의 태도는 판이하다. 나는 이 점을 특이하게 보았는데, 내가 이점을 언급하자 내 이야기를 들은 이는 작가가 이야기를 끌고 가기 위해 대조되는 인물, 성격을 부각시킨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럴까? 작가가 만들어 장치한 것만 있는 것일까? 

 

나는 이들의 삶의 태도와 삶에 대해 마음이 간다. 

이렇게 대복과 복산을 생각하는 중에 테이블 위에 놓인 책이 눈에 띈다. <깊은 인생>. 그 책 속에는 사람들이 잘 살았다고 하는 사람들만 나오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많은 책들이 복산이 같은 인물만을 언급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소설 속에서는 여러 성격의 사람이 다양한 삶을 산다. 그러나 소설 밖으로 나오면 소설 속 인물보다 더 복잡하고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대복과 복산을 비교해보니, 우리 삶에는 이렇게 둘을 부각시켜 보는 것이 많아 보인다. 관촌수필 속 옹점이와 복점이도 그렇다. 옹점이는 어미를 많이 닮은 듯하고, 복점이는 조용하고 차분한 것이 그의 아비를 더 닮은 듯 하다. 옹점이는 시집가기 전부터 사람들이 저걸 누가 데려가나 했는데, 복점이는 '낭중에는 밑엣것이 더 나으리라'하는 평을 들었다. 사람들이 어느 누군가의 기질을 보고, 이렇게 삶 전체를 미리 내다보는 것이 내심 못마땅하다. 대복이와 복산이의 삶이 갈린 것만큼이나 옹점이와 복점이의 삶이 갈리는 것이 못마땅하다. 

 

삶에는 왜 이런 게 있는지 모르겠다. 지 꼴대로 산다는 게 뭔지, 잘사는 요소는 어디에 들어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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