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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8월 25일 09시 12분 등록

소년들은 한창 무언가에 열중이다. 뭐지. 가만히 들여다보니 나름 생사를건 전투를 하고 있다.

“야야, 가만있어봐. 다른 연필 가져올 테니까.”

지고 있던 소년은 또 다른 연필로써 도전을 한다. 지금처럼 전자기기의 게임기가 없던 시절 아이들은 별별 게임들을 만들어낸다. 일명 연필심 부러뜨리기 대회. 상대편 연필심에 자신의 연필심을 대고 누가더 심지가 강한가를 승부 내는 게임. 어른들이 보기엔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당사자들에게는 연필이 자신의 분신처럼 동일시하여 다가온다. 그러기에 무사가 자신의 칼을 애지중지 하듯이 보다 강한 연필을 구하기 위해 애를 쓴다.

 

제대로 된 필기구가 없던 시절 우리에게 연필이란 도구는 최고의 친구였다. 필통을 열면 색색의 연필들이 주인을 반긴다. 키도 다르고 모양도 다르다. 동그란 연필, 육각형의 연필. 코로 냄새를 맡아본다. 태곳적 원시림의 내음. 이 녀석의 고향은 어디일까. 아프리카일까 아니면 인도네시아? 묻는다. 너는 어디서 왔니. 생김새도 다른데 잘생긴 녀석은 곧게 뻗은 소나무를 닮았다. 도루코 까만색 칼을 꺼내어 녀석의 몸뚱이를 슬쩍 쓰다듬는다. 망나니가 사람의 목을 베기 전 칼군무를 추듯 일련의 의식을 취해본다. 그러다 슬며시 칼을 몸통에 들이밀며 녀석의 껍데기를 한 꺼풀 훑어 내린다. 망나니의 칼의 휘두름으로 사람은 목숨이 끊어지게 되지만, 연필은 자신의 살을 내어줌으로 오히려 내부에 숨겨진 진정한 본모습을 드러내 보여준다. 겉과는 다른 검정색의 빛나는 물질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사람의 기질이 다르듯 녀석도 그러하다. 미끈하게 잘깍이는 놈이 있는가하면 묵직하고 투박한 놈도 있다. 원재질이 다르니 어쩔 수 없지만 후자인 경우에는 애를 먹기도 한다. 덕분에 애꿎은 도루코 칼날을 원망하기도 한다. 반대편을 깎아 내린다. 개인의 성향에 따라 연필심을 뾰족하고 길게 깎아 내리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땐 미끈한 8등신 여인의 몸매로써 남심의 어린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침이 꼴깍 넘어간다. 고놈참 잘빠졌다. 하지만 외적 형태에만 신경 쓰다보면 쓰다가 꺾어지거나 부러지기 쉬운 단점이 있다. 세상은 공평한 법. 화려함이 있으면 반대의 그늘이 있다. 그렇기에 나는 연필을 길게 깍지 않는다. 너무 미끈하지도 너무 투박하지도 않다. 적당히 그저 적당히 서투른 조각가의 솜씨로 중간 형태의 모양을 형상화 시킨다. 그래야만이 공책에 글씨를 쓸 때도 안정감이 있어 좋다. 물론 전자에서처럼 연필심 부러뜨리기 대회를 할 때에는 경우가 다르긴 하지만. 새 생명이 탄생했다. 또 다른 속살의 빛남으로 드러난 그 녀석은 그제야 세상에서 본연의 자신 임무를 수행해 나간다. 다듬어지지 않은 어떤 쓰임새로서의 역할을 인식하지 못하다가, 바다에서의 고된 항해로 내면의 숨겨진 본능을 자각하듯 드디어 그는 자신의 길을 간다.

 

연필을 깍고나면 부산물이 생긴다. 겉과 속살 외에 또 다른 분신이다. 기독교 종교에서 삼위일체를 동일한 하나의 모습으로 인식하듯 우리는 이것을 보고 다르다고 얘기하지 않는다. 연필의 실제적인 몸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볼펜의 똥이라고 얘기하지도 않는다. 그놈도 연필이고 그것도 연필의 다른 형태이다. 가로로 줄지어진 공책에 글자를 적어나간다. 철수와 영희, 바둑아 놀자,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한자 한자 적어나간다. 비뚤비뚤. 모난 주인의 성격을 닮은 듯 글자가 춤을 춘다. 연필심에 침을 묻혀본다. 또박또박 써나가지만 그건 나의 생각뿐. 글자가 틀렸다. 이때는 막강한 파트너이자 협력자인 지우개의 요청이 필요하다. 말랑말랑 물 건너온 외국산 고무로 이루어진 이 녀석도 신기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지우는 데는 일가견이 있는 것이다. 가수 전영록의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의 노래가사에서처럼, 사랑을 쓰다가 쓰다가 틀리면 지우개로 깨끗이 지워나간다. 그런데 어쩔거나. 콧물 질질 흘리던 조숙하지 못한 아이였기에 남녀의 사랑은 애시당초 모른 체, 국방의 임무에 충실한 국군장병 아저씨에게만 편지를 보내야 했으니. 쓱싹쓱싹. 잘도 지워 나간다. 연필과 지우개의 오묘한 조화. 이것은 찰떡궁합이요 전문적인 용어로는 음양의 조화라고 한다. 어두움이 있으면 밝음이 있고, 잘난 점이 있으면 못난 점이 있으며, 이수일이 있으면 심순애가 있고, 로미오가 있으면 줄리엣이 있으며, 때려죽일 놈이 있으면 그렇지 않은 놈이 있듯이 세상은 그렇게 흘러간다. 그 흐름에 지우개는 깨끗이 지워나감으로서 질서를 바로잡는다. 깨끗이. 그런데 여기에도 연필 부산물의 경우와 같이 존재의 흔적이 남는다.

 

 

쓴다는 것은 지운다는 것은 무엇일까.

때론 감추고 싶거나 드러내지 않아야 될 때 지우개가 따라간다.

쓰고 지우는 행위는 우리네 인생 같다.

때론 숨기고 싶은 기억이나 행위를 지우개처럼 지워 나가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머리를 깎았다.

마음을 깎았다.

 

잘린 머리카락이 있다.

깎인 마음의 조각이 있다.

흔적이다.

 

 

큰일 났다. 중원에 절대강자가 없듯 연필을 대체하여 샤프라는 놈이 출현했다. 신기하다. 부러웠다. 처음 보는 몸체에 연필을 매번 깎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없었다. 다 쓰고 나면 새로운 심만 리필해 주면 되었다. 용돈을 모아 드디어 구입. 찰칵 찰칵 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밑에서부터 샤프심이란 놈이 절로 올라온다. 희한하다. 친구에게 자랑했다. 뿌듯했다. 필통에 애지중지 넣어 다녔다. 누가 훔쳐가지 않을까 쉬는 시간에도 몸에 지니고 다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후 무얼까. 뭐지. 이 느낌은……. 다시 기억의 저편으로 팽개쳐 마지막 숨을 헐떡이고 있던 몽당연필 한 녀석을 꺼내었다. 모나미 볼펜자루에 끼워 키를 한 뼘이나 키운다. 잊혔던 연인을 다시 만난 듯 녀석을 손에 부둥켜 쥐었다. 샤프와는 다른 느낌. 애틋한 감칠맛이 났다. 첫사랑 경숙이의 손을 잡듯 부르르 떨려오는 느낌. 백지의 종이에 쓴다. 뭉툭한 글씨로 까만색의 글씨가 꽃을 피운다. 그리고 소리. 사각사각.

샤프라는 놈은 기계이다. 플라스틱의 물질로 만들어져 있다. 반면 연필은 살아있다. 나무로 이루어져 있다. 여인네의 뱃속에 새로운 생명의 상징인 아이가 웅크리고 있듯이 녀석을 반으로 쪼개면 흑색의 심지가 드러난다. 나무 안에 살아있음의 싹으로써 꽃과 열매와 거듭남의 탄생이 잉태되듯, 겹겹이 숨겨진 흑색 목탄은 새로운 신화로 씨를 뿌린다. 꼬맹이의 과제물과 시험 답안지로써, 산수 계산 풀이와 일상의 고된 일기로써, 연인 사이의 매개체로 그리고 삼류 작가 원고지에서의 한 땀 한 땀의 눈물로써. 녀석은 다양한 변신을 시도한다.

 

문명의 이기가 나왔다. 샤파 연필 깎기. 은색의 윤기가 짜르르 흐르는 기차모양의 심플한 디자인. 갖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친구가 가지고 있는 것을 보니 더더욱 샘이 난다. 엄마를 조르고 졸라 드디어 구입. 연필을 앞면 기차 구멍에 넣고 손잡이를 돌리니 뽀사시하게 잘도 깎여 나온다. 찬란했다. 연필이 더욱 빛나 보였다. 그런데 샤프가 그러했듯 또다시 무언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문구점에서 연필 한 타스를 샀다. 머리에 하얀 세치가 늘어나는 세월 흔적답게 녀석도 외양이 바뀌었지만 본성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한 자루를 조심스럽게 꺼내 칼로써 옛날 기억을 더듬어 다시금 벗겨 나간다. 서걱서걱. 책을 읽다가 중요한 글귀에 줄을 치고 떠오르는 생각 문구를 귀퉁이에 깨알같이 적어본다. 지우개처럼 종이도 연필과 궁합이 잘 맞다. 바스락거리는 종이에 속삭이듯이 연필은 화답을 한다. 종이라는 연필이라는 궁합은 기억에 새로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세록 솟게도 한다. 녀석들의 내음들. 그것은 삶이며 인생의 냄새이다. 우리가 걸어왔고 걸어가며 앞으로도 걸어갈 울퉁불퉁 조금은 거친 길을 상징하듯 그것은 사람과 함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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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27 17:08:49 *.43.131.14

도루코 까만칼이 정겹네요. 저거 생필품이었는데 말입니다. 연필 깍는 냄새도 좋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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