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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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판 서문 - 자찬 독후감
“신이 우리를 가르칠 때는 채찍을 쓰지 않는다.
신은 우리를 시간으로 가르친다”
- 발타자르 그라시안
10년 전 책을 읽었다. 글 속에서 10년 전의 한 남자를 만났다. 기대와 열망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열에 들 떠 펄펄 뛰는 거친 글들을 보았다. 첫 아이는 젊은 아비의 모든 희망을 담고 있듯 10년 전 그 남자는 혼신의 힘을 첫 책 속에 담아내고 싶어 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문득 그때의 초초와 열정과 감정의 작열함이 그리워졌다. 그 사내는 그때 인생을 다시 시작해 보고 싶었다. 한번 살고 싶은 대로 살아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통쾌한 시작이 되어 주었다.
지금까지 내가 인생을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은 두 가지다. 하나는 아내와 결혼한 것이고, 또 하나는 직장을 그만두고 글을 쓰기 시작한 일이다. 결혼은 행운이었고, 작가가 된 것은 우연히 찾아 온 필연이었다. 인생의 길을 떠나 갈림길에 이를 때 마다 현실의 이름으로 늘 무난한 차선의 길을 선택해 온 평범한 남자가 고심하여 내린 두 번의 선택은 축복 같은 최선이었다. 두 번의 최선이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내 길을 찾게 된 것 그리고 그 길을 힘껏 걸을 수 있게 된 것에 무릎을 꿇고 감사한다. 아내와 나는 두 아이를 선물로 받았다. 그것은 가장 빛나는 신의 선물이었다. 아이들이 자라듯 내 10살짜리 첫 책도 세월과 함께 깊어지기를 바랐다. 그러나 어떤 부분은 시간과 어울리지 못하고 틈이 벌어지기도 했다.
처음에 나는 이 책을 의욕을 가지고 손보기로 했다. 시간과 함께 숙성한 깊은 맛들은 그대로 놓아두고, 시간과의 불화로 금가고 곰팡이 난 곳들은 덜어내거나 틈을 메워 보려 했다. 그러다가 이내 그 일이 매우 따분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미래를 향해 달려 나가려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10년의 세월을 견디지 못하고 썩어 버린 부분만 덜어내는 ‘단 한 방’ 수리로 마무리 짓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이 책으로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책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몰입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스스로에게 선물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내가 가지고 있는 내면적 자산을 끌어다 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행운이었다. 왜냐하면 그 사실을 알게 된 다음부터 나는 가난으로 부터 벗어 날 수 있게 되었다. 가난이 지독히 나쁜 이유는할 수 없이 하기 싫은 일을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내 안에 얼마든지 쓸 수 있는 엄청난 유산이 매장되어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나는 가난이라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내 안에 얼마나 많은 것들이 숨겨져 있는 지 얼른 꺼내보고 싶었다. 선물을 받은 아이가 그 포장을 뜯어보고 싶어 하듯이 이 책은 껍질을 뜯고 나의 내면을 탐구하고 싶은 욕망을 불러 내 주었다.
10년이 지나 10년 젊은 나이의 나를 보니 좋다. 책이란 그때의 나를 정교하게 기술해 두는 것임을 또한 알게 되었다. 젊음은 좋은 것이고, 몰입은 더 좋은 것이다. 이 책은 나를 몰입하게 해 주었다. 이 책을 나를 위해 쓴 첫 번 째 책이었고, 내가 최초의 독자였다. 나는 이 책으로 살고 싶은 인생을 찾았다. 이 책의 최초의 수혜자가 바로 나라는 사실이 내가 이 책을 좋아하는 이유다. 그러나 나는 이 책에 연연하거나 매이지 않는다. 나는 이 책을 지나왔다. 이 책을 고쳐 다시 내는 이유는 혹시 이 책으로 인해 나처럼, 축복처럼, 자기를 다시 살 수 있는 사람이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구본형
2007년 가을 북한산 별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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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우리를 가르칠 때는 채찍을 쓰지 않는다.
신은 우리를 시간으로 가르친다”
- 발타자르 그라시안
10년 전 책을 읽었다. 글 속에서 10년 전의 한 남자를 만났다. 기대와 열망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열에 들 떠 펄펄 뛰는 거친 글들을 보았다. 첫 아이는 젊은 아비의 모든 희망을 담고 있듯 10년 전 그 남자는 혼신의 힘을 첫 책 속에 담아내고 싶어 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문득 그때의 초초와 열정과 감정의 작열함이 그리워졌다. 그 사내는 그때 인생을 다시 시작해 보고 싶었다. 한번 살고 싶은 대로 살아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통쾌한 시작이 되어 주었다.
지금까지 내가 인생을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은 두 가지다. 하나는 아내와 결혼한 것이고, 또 하나는 직장을 그만두고 글을 쓰기 시작한 일이다. 결혼은 행운이었고, 작가가 된 것은 우연히 찾아 온 필연이었다. 인생의 길을 떠나 갈림길에 이를 때 마다 현실의 이름으로 늘 무난한 차선의 길을 선택해 온 평범한 남자가 고심하여 내린 두 번의 선택은 축복 같은 최선이었다. 두 번의 최선이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내 길을 찾게 된 것 그리고 그 길을 힘껏 걸을 수 있게 된 것에 무릎을 꿇고 감사한다. 아내와 나는 두 아이를 선물로 받았다. 그것은 가장 빛나는 신의 선물이었다. 아이들이 자라듯 내 10살짜리 첫 책도 세월과 함께 깊어지기를 바랐다. 그러나 어떤 부분은 시간과 어울리지 못하고 틈이 벌어지기도 했다.
처음에 나는 이 책을 의욕을 가지고 손보기로 했다. 시간과 함께 숙성한 깊은 맛들은 그대로 놓아두고, 시간과의 불화로 금가고 곰팡이 난 곳들은 덜어내거나 틈을 메워 보려 했다. 그러다가 이내 그 일이 매우 따분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미래를 향해 달려 나가려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10년의 세월을 견디지 못하고 썩어 버린 부분만 덜어내는 ‘단 한 방’ 수리로 마무리 짓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이 책으로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책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몰입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스스로에게 선물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내가 가지고 있는 내면적 자산을 끌어다 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행운이었다. 왜냐하면 그 사실을 알게 된 다음부터 나는 가난으로 부터 벗어 날 수 있게 되었다. 가난이 지독히 나쁜 이유는할 수 없이 하기 싫은 일을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내 안에 얼마든지 쓸 수 있는 엄청난 유산이 매장되어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나는 가난이라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내 안에 얼마나 많은 것들이 숨겨져 있는 지 얼른 꺼내보고 싶었다. 선물을 받은 아이가 그 포장을 뜯어보고 싶어 하듯이 이 책은 껍질을 뜯고 나의 내면을 탐구하고 싶은 욕망을 불러 내 주었다.
10년이 지나 10년 젊은 나이의 나를 보니 좋다. 책이란 그때의 나를 정교하게 기술해 두는 것임을 또한 알게 되었다. 젊음은 좋은 것이고, 몰입은 더 좋은 것이다. 이 책은 나를 몰입하게 해 주었다. 이 책을 나를 위해 쓴 첫 번 째 책이었고, 내가 최초의 독자였다. 나는 이 책으로 살고 싶은 인생을 찾았다. 이 책의 최초의 수혜자가 바로 나라는 사실이 내가 이 책을 좋아하는 이유다. 그러나 나는 이 책에 연연하거나 매이지 않는다. 나는 이 책을 지나왔다. 이 책을 고쳐 다시 내는 이유는 혹시 이 책으로 인해 나처럼, 축복처럼, 자기를 다시 살 수 있는 사람이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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