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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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창문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이겠구나.’ 몇 살 때였을까. 한창 방황하던 십대 후반 즈음, 도서관을 향하던 길이었다. 어쩐지 그런 슬픈 예감이 들었다. 실제로 삶을 사는 사람이 아닌 풍경을 바라보는 사람이 바로 나구나, 하는 그 예감은 어느 정도 들어맞았다.
영상을 만들고 싶었으나 적당히 타협하여 광고를 만들겠다 했고, 구체적인 형상을 지닌 무언가를 현실 속에 구현해내고 싶었으나 추상적인 개념을 다루는 기획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흘러왔다. 산다는 건 어차피 예측못할 변수투성이에다 살이 찢기고 피가 튀는 진흙탕 싸움이니 적당히 삶에서 거리를 두고 품위를 유지하고 싶었다. 그렇게 주위에 벽을 쌓아왔다. 창 밖 세상을 구하고 싶었으나 문을 열고 나가지 않는 한, 방 안에는 나 혼자 뿐이었다.
조금씩 가을 냄새가 난다. 영영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여름도 이제 아침 저녁으로 꼬리를 낮췄다. 제법 시원한 바람을 한 모금 들이킨다. 그렇구나. 나를 풍경이 아닌 세상으로 이끌어주는 것은 바로 너구나. 너였구나. 풍문을 듣자하니 고귀한 진리는 그 어디에도 없다더구나. 바로 여기 뿐이더라. 그래, 여기가 로도스 섬이다. 여기서 뛰어라. 여기서 뒹굴어보자.
(부록)
남해의 어느 숙소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 아침을 먹으려고 테이블에 앉으니, 제 발치에서 고양이 한마리가 웃으면서 자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