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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17일 20시 40분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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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딜레마를 즐겨라 - 노자의 무위경영 첫 번 째 이야기

노신은 길에 대해서 희망처럼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것' 이라고 말했다. 없던 길도 사람이 걸어 다니면 생기고, 있던 길도 사람이 다니지 않으면 사라진다. 마찬가지로 도(道)란 '만물의 어미'이면서도 체험한 자에게는 있고 체험하지 못한 자에게는 없다.

재미있는 것은 '노자'라는 책을 썼다는 노자 역시 있기도 한 인물이고 없기도 한 인물이다. 사마천의 '사기' 열전에 '노자는 초나라 고현 여향 곡인리 사람이며, 성은 이(李)씨이며 이름은 이(耳)로서 주나라 장서를 관리하는 사관'이었다고 기록 되어있다. 그러나 사마천 역시 노자가 한참 뒤의 사람인 주나라 태사 담과 동일인인지 아닌지 분명히 알지 못했다. 사마천의 시대에도 혹자는 노자가 태사 담과 동일인이라고 말하고 혹자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떤 사람은 노자의 성이 이씨가 아니라 노(老)씨 였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사기'의 저자 사마천이 이(李)씨를 노(老)씨를 착각했을 것이라는 것이고, 다른 제자백가처럼 사람의 성을 따 썼을 것이기 때문에 노자 역시 노씨였을 것으로 추론하기도 한다.

'노자'라는 책 역시 노자가 쓴 책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사마천의 '사기' 열전에 따르면, 노자는 오래동안 주나라에서 살다 나라가 쇠락하자 그곳을 떠났다고 한다. 그가 함곡관에 이르자 그곳의 관령이었던 윤희라는 사람이 '선생께서 은둔하시려면 저를 위해 좋은 글을 남겨 주십시요'라고 부탁하자 도덕경 상.하권을 지어 도와 덕의 의미를 5000 자로 써 남기고 떠났다 한다. 그러나 다른 설이 분분하다. 어떤 사람은 태사 담이 지은 것이라고 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장자의 제자들이 써 모은 것이라고도 하고, 여불위의 문객이 편찬한 것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대체로 논어가 공자가 죽은 뒤 제자들에 의해 엮어지듯이 '노자'도 그 바탕은 노자의 가르침으로 되어 있으나 그 제자들이 책으로 엮은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무난한 설로 짐작된다.

노자라는 사람, '노자'라는 책, 그리고 노자 사상의 핵심인 '도'(道)는 모두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것이다. 도는 만물의 근원이며 만물보다 먼저 존재하는 천하의 어미지만 그 이름을 알 수 없다. 그래서 억지로 이름을 붙여 도라고 불렀다. 억지이름을 가져다 붙였으니 이름이 있는 것이기도 하고 없는 것이기도 하다. 도는 시공을 초월한 무형의 실재이며,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지만 언제까지나 존재하며 어디서나 작용하는 자연의 작동 원리인 것이다. 자연이라는 실체를 작동시키는 소프트웨어가 바로 도인 것이다. 도는 스스로 존재하기 (自然) 때문에 '자연을 좇는다'라고 표현한다. 노자사상의 핵심인 '무위자연' (無爲自然)은 바로 그런 뜻이다.

경영 역시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억지로 밀어부치면 이룰 것 같지만 억지로 해서 얻는 것은 없다. 자연의 섭리는 간단하다. 땅을 파고 씨를 뿌리고 물을 준다. 이것이 '땀'이다. 그리고 기다린다. 이것이 '인내'다. 그 다음에야 얻을 수 있다. 이것이 '수확'이다. 땀을 흘리고 때를 기다리면 얻는 것이 있다는 것이 자연의 법칙, 바로 도다. 무위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자연의 법칙을 따르라는 것이다. 무위경영이란 심을 때에 맞춰 심고 정성을 다해 보살피고 때가 올 때를 기다리라는 뜻이다. 무위 경영이란 심지 않은 것을 기다리지 말고 익지 않은 것을 따지 말라는 뜻이다. 무위경영이란 씨앗 속에서 그 열매를 보는 것이다. 지금 보이지 않는 미래를 믿는 것이다. 무위 경영이란 그 열매를 따서 먹되 씨과일 까지 다 먹어 치우지 않고 남겨 다음 해에 땅에 심는 것이다. 치열하게 살되 이야기의 끝을 예기하고 지금을 다 쓰지 않고 나누어 미래를 위해 남겨두는 것이다.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것' , 이것이 삶의 패러독스이며 딜레마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것을 품을 수 있어야 한다. 삶은 그 자체로 혼동과 딜레마다. 무위경영은 자연 원칙을 따름으로써 자연이 되고, 딜레마를 풀므로써 다시 딜레마에 빠지는 것이다. 나는 삶의 기쁨과 감탄은 바로 묘하게 풀리고 감기는 여기서 온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삶은 시(詩)인 것이다. 행간을 건너뛰는 텅빈 공간들은 논리와 이성으로 채울 수 없다. 그 심연을 지배하는 것은 우연과 운명이다. 읽고 쓰는 것이 시가 아니다. 살아지는 것, 그것이 시다.

IP *.160.33.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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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처럼
2008.09.18 03:29:11 *.220.176.199
땀, 인내, 수확, 무위자연...

그리고 삶은 시, 찐 시, 볶은 시, 구운 시, 데친 시...^_^

=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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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9.18 09:45:04 *.36.210.237
어려우면서도 말이 되고 간결하면서도 결코 쫓기 슆지 않아 마력 같은 매력을 지니는가 봅니다. 자연적인 삶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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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gie
2008.09.18 14:00:11 *.193.194.22
터기에서의 저의 질문이 떠오릅니다. 이 글을 읽는 순간 참 행복합니다.
창조의 희열..은 생활 예술가인 어머니의 손끝에서 나온다는 것을 주말이면 시댁에서 배우고 옵니다.
창조세계 안에 또 창조하도록 지어진 사람이, 혹은 사람들이 재배열하고 재창조하는 동안
그래서 나는 혼자이면서 함께이구나. 함께 가는 거구나 하며 무릎을 칩니다.
오늘 점심에 어느 대학생이 하늘 천자를 양각으로 파놓았는데 큰 대자 위에 구름을 조각해 넣었습니다.
그 이름은 아르자나 심.
머리속이 개운해지면서 희열이 느껴졌습니다.
B5 크기의 작은 작품 소박한 카다로그인데 얄팍하고 가벼운 한지같은 종이 인쇄되어 있었습니다.
BOOK ART 를 한다고 해서 귀가 번쩍 띄였지요.
한지의 가벼움.. 한지와 어울리는 대중적인 펜이 개발되어 나오기를 기다려 봅니다.
내 무거웠던 책가방의 공책만이라도 한지로 만들었다면 조금 더 가벼워 질 수 있었는데.

가볍고 멋스러운. 한지에 볼펜은 자꾸 한지표면 거칠거칠한 곳에 걸려서 쓰기 힘들고
또 너무 진한 것은 뒷장까지 베이고. 연필은 흐리니까. 요새 연필은 거의 쓰지도 않는 것 같습니다.
연필로 쓴 것을 지우니까 번져버려서 잘 지워지지 않고. 색연필로 쓰면 미세한 표현이 힘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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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4 13:56:30 *.212.217.154

삶의 참 맛을 알아가는 것은

삶이 주는 역설의 의미를 알아가는것 이겠지요.


마치 단것만을 좋아하던 어린 시절에서 자라나,

성인이 되면 음식의 쓴맛까지 음미할 수 있는것 처럼 말이에요.


선생님의 글을 읽는 맛 또한 그렇습니다.

십년전과 오늘이 다릅니다.

그 맛을 음미할 수 있어 참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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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05 22:57:30 *.212.217.154

삶이주는 패러독스.

그 단 맛과 쓴 맛을 즐기면서

살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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