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땟쑤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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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비
비가 많이 왔다. 꽤 많이 왔다. 하지만, 밖을 나서려는 순간 비가 오지 않는다. 잠시잠깐이면 되겠다 싶어
우산을 놓고 갔다. 비염이 심해서 이비인후과와 안과에 가야했다. 진료를 받고 회사로 돌아오기 위해 건물 밖을 나서려는 순간.
꽤 많은 비가 왔다. 우산도 없다. 이걸 어쩌지. 잠시 잠깐 기다렸다. 비가 그치질 않는다. 빗발은 점점 더 굵어지고 거세진다.
10분쯤 지났으려나, 빗발이 잠깐 약해진다. 에이 모르겠다. 이 때다. 내달렸다. 그리고 지하도로 통하는 건물을 통해 잽싸게 슬라이딩~
폭우를 피해 안전지대로 들어섰다. 출근길엔 시원하게 맞아주던 비였는데, 점심시간엔 내 옷을 적셔버린 골치덩이가 되었다. 두얼굴의 비......
2. 비염.
눈이 간지럽다. 아침 기상과 동시에 내 코는 눈물을 주룩주룩 흘린다. 정확히는 콧물이다.
숨쉬기가 힘들다. 퉁퉁 부어오른 점막은 자신의 상처가 얼마나 심한지 피를 흘리듯 콧물을 토해내고 있다.
나의 숨통을 조여온다. 코로 숨쉬기가 버겁게 만들고 있다. 강력한 저항의 표시이다.
아무래도 점심 때 병원에 가야할 것 같다. 한껏 뾰루뚱해 있는 이 녀석을 잠재울 강력한 그 무언가가 필요했다.
문제는 그 강력한 무언가가 너무 강해 졸음을 동반한다는 것이다.
점심을 이용해 병원에 갔다. 이비인후과에 가니 착해보이기도 하고 뚱해보이기도 한 머리희끗희끗한 중년의 의사가 반갑게 맞는다.
한 달만에 오셨네요......네.... 아~ 해보세요...... 아~~~~~
짧은 사이 진료를 끝났다. 호흡기 치료를 받고 회사로 돌아가려하니 비염주사를 맞고 가라한다. 아차...
비염주사..... 지난번 간호사아줌마는 엄청 아팠는데.....
못보시던 분이다. 하지만 연륜이 느껴지는 외모.... 믿어보자...
엉덩이에 힘빼세요.... 탁탁탁탁.... 픽. 끝.
느낌이 없다. 오..... 대단하다. 이 분..... 내공 장난 아니네......
조금 졸릴 수도 있어요. 저도 좀 졸리더라구요.... 헉.... 졸음....
비염으로 안과까지 가서 약을 처방받고 빗길을 뚫고 우여곡절 끝에 회사에 돌아왔다.
비염은 가라앉았다. 이 녀석 아무래도 자고 있는 듯 하다... 휴... 이제는 내가 자야할 때인가..... 약 기운이 도는 듯 몽롱하다......
3. 마틴루터킹 50주년...
서점에 들렀다. 비를 피해 지하통로로 가기 위해 잠시 잠깐 거쳐가는 곳이지만, 이왕 이렇게 된 것 책이나 한번 훑어보고 가잔 심산이었다. 만화잡지 코너 - 소설코너 - 자기계발 코너 - 인문학코너로 이어지는 동선.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영자주간지 이다. 대표 영자 주간지 TIME 의 표지는 그들이 늘 해왔던 것 처럼 누군가의 얼굴을 큼지막하게 박아 놓았다. 검은 피부의 누군가, 비장해 보이는 그의 옆모습.......
표지 귀퉁이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 I HAVE A DREAM' ANNIVERSARY ISSUE] .....
마틴루터킹을 알고 그의 유명한 연설 'I have a dream'도 알지만, 지난 8월 23일이 미국 워싱턴에서 'I have a dream'이란 연설을 한지 50년 되는 날이라는 사실을 알지는 못했다. 현 대통령이 흑인이기도 하지만, 역사적으로 흑인 인권평등에 한걸음 나아가게 한 중요한 연설이기는 하지만, 이 연설의 50주년을 기념한다는 미국 사회도 그렇고, 이를 special issue로 발행하는 타임지도 그렇고 다소 생소했다. 한편으로는 대단해보이기도 했다. 간만에 타임지를 구매했다. 영어로 된 활자를 1/10도 읽지는 않지만 이는 일종의 수집이며, 역사적인 순간에 대한 관심이자 예의였다. 이로서 또 하나의 관심인물이 생겼다. 마틴 루터 킹.
4. 동난 밥.....
회사 꼭대기에 있는 구내식당에 왔다. 1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인데도 길게 줄이 늘어섰다. 흠.. 왜 이러지......아.. 비오는 날.......
밖은 어두컴컴하고 비는 여전히 거세다. 비가 오자 건물에 있는 사람들이 이 곳으로 몰려든 것 같다.
수요를 예측하지 못한 식당의 공급량은 한 없이 모자랐나보다. 정식 메뉴는 이미 끝난지 오래로 보이고 긴급식이 나온 듯했다. 원래의 '치킨까스'온데 간데 없고 언제나 반찬그릇을 차지했었던 '생선까스' 두 덩어리와 밥이 덜렁 나온다.
으....맛없어.... 내가 배고파서 먹는다....... 투덜투덜......
식사를 하고 난 뒤 그 날의 메뉴를 평가하는 기계에 '매우불만족'을 눌렀다. 옆에 서 있던 남자가 그런 나를 보고 웃기다는 듯, 그리고 공감한다는 듯 키득키득 웃는다. 역시 장사에선 수요예측이 매우 중요하다. 쉽지 않지만 장사하는 사람으로서는 어쩔 수 없다.
5. 뫼비우스
맛없는 밥을 먹고 있다. 다 식은 생선가스 두개와 어설픈 소스 그리고 밥이 다인 식사. 느끼하다. 언제나 처럼 그랬듯 스마트폰을 보았다. 어떤 영화가 나오는지를 찾아보니 개봉예정작에 문제적 감독 '김기덕'의 신작 포스터가 걸려 있었다. 언제부턴가 김기덕 감독 영화를 찾아본다. 극장에서 본 영화는 작년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 당시 경쟁작은 폴 토마스 앤더슨의 '더마스터' 였다.) '피에타'가 최초이지만 그 외의 작품에도 꽤나 관심이 많았다. 이번 영화 '뫼비우스'도 김기덕이 늘상 그랬듯, 성적 묘사의 수위와 폭력성 등이 심하다는 평이다. 그리고 역시 영등위로부터 제한상영가(사실상 상영불가)를 받았다. 결국 3번에 걸친 편집과 심의를 통해 청소년 관람불가로 상영된다. 또 언제나 그랬듯 해외에서는 꽤 호평을 받는다고 하니, 김기덕 감독의 영화적 표현은 한국인의 정서와 관습과는 조금 거리가 먼 것 같다.
이번 영화도 보고 싶다. 아마도 혼자 보러 갈 것이다. 어릴 적부터 미스터리 스릴러나 호러물을 좋아했었는데, 처음에는 그 스릴과 신기한 장면(예를 들면 기괴하게 생긴 괴물이나 엄청난 힘을 가진 프랑켄슈타인 등, 그리고 이를 표현하는 특수효과)으로 끌렸던 영화들이 언제부턴가 나의 꿈 속에 나타나며 불쾌한 기분을 주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잔혹한 영화를 안보기 시작한지는 꽤 되었지만, 김기덕 감독의 영화와 같이 어떤 틀, 고정관념을 깨는 영화, 선을 넘어서는 영화들에 대한 갈증은 여전하다. 이같은 성향은 인간의 집단 무의식에 기인한 것일까 그림자일까. 잠시 잠깐 고민해보지만 아직은 답을 할 때가 아닌 것 같다. 패~~스~~
6. 기록.
별달리 의미없는 일상을 기록해 보았다. 1시간 남짓의 시간 동안 참 많은 일을 했고 많은 생각을 했다. 기록하지 않으면 내 기억 저편으로 휙 사라져버리고 말 것들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그로 인해 나의 순간과 생각과 역사가 이 세상 어딘가에 남겨지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기록은 꽤 괜찮은 습관이자 취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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