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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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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8월 30일 07시 36분 등록

천태(天台), 이름에 하늘을 담은 자

(양산 천태산 630.9m)

 

기암, 폭포, 산정 호수 3박자에 오금은 들썩이고

 

 떠나지 못한 모험은 삶에 대한 쓰라린 모독이다. 구름이 옥시크린에 빤 듯한 날, 대지는 뜨겁고 아스팔트는 녹아 흘렀다. 한 걸음을 떼면 굵은 땀이 떨어졌고 마른 땅에는 흙먼지가 풀풀거린다. 길 나서는 이들의 마음을 무너뜨리는 날씨지만 어쩐 일로 내 마음은 길에 대한 인화성 짙은 설렘이 인다. 언젠가 취해보리라 벼르던 (양산) 천태산에 안기기 전, 내 심장이 뛰었다. 지난 날, 천태슬랩을 무거운 등산화로 둔탁하게 스탠스 밟던 소리가 들려온다. 팔을 쫙 뻗어야 하는 핑거홀드를 향한 춤사위가 기억에서 살아난다. 힘들게 바위를 오른 뒤 시커먼 땟물과 피투성이로 떨어대던 손가락, 그 위로 떨어진 묵직했던 땀방울이 아직도 나를 지배하는 곳, 그래 천태로 간다. 그때부터 내 오금은 들썩이기 시작했다.

 

 천태산으로 가는 많은 길 중 천태사를 들머리로 정했다. 천태산은 천태산통천제일문’(天台山通天第一門)을 거쳐야 맛이지 않겠는가. 산으로 들어서는 순간, 매미 울음이 귀청을 때리더니 급기야 산 전체의 매미가 고함치듯 울어댄다. 시끄러운 중에 그 미물의 지극했던 고요의 시간을 상상했다. 지상에서의 몇 일을 위해 수 년 간 땅 속 암흑에서 버텼던 이 미물은 여름이 가면 모두 죽는다. 여름은 제 자신의 운명과 닮아 있는 이 벌레를 위해 기꺼이 울어주고 있는 지도 모른다. 여름은 매미의 죽음을 관통하고 우리는 천태사를 가로 질러 산으로 들어선다.

  

 천태사에서 시작되는 등로는 많이 고쳐졌다. 예전에 계곡을 따라 오르던 길을 폐쇄하고 새로운 데크 길을 내었다. 로프를 잡으며 횡단해야 했던 바위 길이 깔끔하게 정비되었다. 길이 정비된 만큼 산 오르는 재미는 사라졌는데 여전히 그 흔적들은 남아 있어 기억으로 오래된 옛길을 넘나들었다. 천태사를 지나자마자 길은 사납다. 추연폭포 (국토지리정보원에 따르면 추연’(椎淵)으로 표기되어 있고, 양산시 그리고 현장에서는 용연’(龍淵)으로, 일부 사람들은 웅연으로 부르는데 어떤 지명이 정확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상단에 이르면 경사는 잠시 수그러들고 아기자기한 계곡도 이때 만난다.

 

내리 꽂히기 직전의 폭포 위에서 하는 족욕, 이것이 진짜 쉬는 맛

 

 20여 미터 되는 폭포 상단에는 두 개의 작은 소가 있는데 보는 사람이 없다면 알탕?하기 좋은 곳이다. 뭇 선녀들의 이야기가 내려옴 직한데 관련된 설화는 찾을 수 없었다. 폭포를 우측에 두고 가파르게 오르다 보면 폭포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 데크가 나타난다. 거기서는 잠깐 폭포를 바라보기만 하고 곧이어 나오는 폭포 상단에서 한차례 휴식을 취하기를 권한다. 내리 꽂히기 직전의 계곡물로 한가하게 족욕할 수 있는 경험하기 힘든 선물을 선사 받을 수 있다. 이것이 진짜 쉰다는 걸 게다. 양말을 벗고 허연 발을 푸른 물에 담근다. 고개를 돌리는 순간, 조망이 아찔하다. 우측의 큰 기암들과 정면으로 시원하게 뚫린 낙동강변, 김해 무척산 전경이 어우러져 자칫 오르려는 욕망을 접고 뛰어내리고 싶은 마음을 억눌러야 할 지 모른다. 감탄을 마치고 다시 산을 오르려 할 때 빛나는 등반 볼트 한 쌍을 발견했다. 지금이 여름이라 계곡등반을 하는 이들이 있나 보다 생각했다. 그러나 늘어뜨려지는 자일의 방향을 가늠할 때 계곡등반을 위한 것은 아닌 것 같고,그래, 얼음이구나 했다. 이내 청빙이 된 이 폭포에서 아이젠을 얼음짝에 곧추세우는 꾼들의 모습을 상상했다. 악우들아, 이번 겨울도 천태다.

 

용연폭포상단.jpg

추연폭포 직상단

  용연폭포.jpg

 

 올해 여름은 반도를 장마전선이 갈라 놓았다. 폭우와 국지호우로 몸살을 앓았던 중부지방과는 달리 비 같은 비 한번 내리지 않았던 남부지방은 그야말로 마르고 뜨거웠다. 그래선지 생각보다 계곡의 유량이 많지 않았는데 지난 밤 소나기에도 추연의 물줄기가 중년남성 전립선염 앓는 듯 하여 나는 처연하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이 산의 여름 매장량이 다해 갈 때쯤, 이내 깊이 품었던 물을 뿜어내며 맑디 맑은 물을 흘려 보낼 것임을, 찔찔 흐르던 물은 온 산에 철철 넘쳐날 것이고 그때는 천태의 또 다른 모습을 보게 될 것임을.

 

 폭포를 지나 계곡을 우측으로 바라보며 10여분을 걸으면 길은 계곡을 가로지른다. 이어서 천태호의 제방이 보일 때까지 직진하면 등산로를 알리는 붉은 표지판을 만나고 표지판이 알리는 방향대로 5분여를 더 걸으면 곧바로 가는 길과 우측으로 열린 남동쪽 능선에 붙는 길로 갈린다. 두 길 모두 천태산 정상으로 향하는 데 문제가 없으나 천태를 좀더 씹어 삼키려 남동쪽 길을 잡아 둘러가는 길을 택했다. 이 길은 안 그래도 한적한 천태산 등로 중에서도 유난히 한적하다. 이 산은 일요일임에도 길에 만나는 사람이 손에 꼽을 정도니 자연히 보는 사람마다 반가워 어쩔 줄 모르고 건네는 인사마다 , 그대가 그리웠소한다. 사람에 밀려다닌다는 요즈음 명산에서는 좀처럼 발견하기 어려운 인간적인 맛이 있는 산이다.

  

 능선에 붙기 전까지 산의 경사는 거칠다.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은 터라 길까지 희미한데 간간이 만나는 표지기(시그널)를 주시하며 걸어야 한다. 가파른 사면을 40여분 정도 용을 써서 올라서면 당곡 마을과 천태산으로 갈리는 삼거리 안부에 도착한다. 안부에는 당곡마을 갈림길 8부 능선이라 적혀있는 표식대가 있다. ‘천태산 정상방향으로 길을 잡으면 이후의 길은 다음 안내 시까지 직진하라는 네비게이션 환청이 들릴 정도로 평탄하게 뻗어있다. 능선을 따라 걷는 길도 있으나 8부 능선으로 걷는 길이 주 등산로가 되어버렸다. 중간에 비박굴이라 불리는 큰 바위가 있는데 아마 이를 보려, 혹은 여기서 실제 비박을 하려 낸 길이 아닐까 한다. 한 시간여를 기분 좋게 걸어 천태산 정상에 도착한다.

 

큰 물 품은 그대에게 곧장 향하는 인간의 길

 

 팔부 능선이 이리도 발달된 산은 찾기 힘들다. 이 산의 길은 모든 아류의 봉우리를 버리고 오직 천태로 향한다. 심지어 천태보다 높은 봉우리조차 뒤로 한 채 말이다. 실제 천태산(630.9m)은 자신보다 높은 남동쪽 664(664봉의 정상은 삼각점을 지나칠 정도로 평탄하다)을 압도하듯 거느린다. 산군(山群)에서 최고봉을 제쳐두고 중심의 산으로 명명되는 예는 보기 드문데 그 면모가 다분히 쿠데타적이다. , 한편으로 생각하건대 높이에 연연해 하지 않고 큰 물(천태호)까지 아우를 수 있는 리버럴이다. 뿐인가, 낙동강 동쪽에서 신불, 영축, 천성, 금정 등의 큰 산들은 죄다 정맥에 섞여 바다로 돌진하는데 천태는 이를 시기하지 않고 끝까지 낙동의 물을 품는 의리를 지녔다. 이름에 하늘을 담은 자,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느냐며 말이다. 그리하여 길은 큰 물 품은 자로 곧장 향하는 모양이다.

 

 정상에서, 해발 400여 미터쯤 되는 높은 곳에 위치한 천태호의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본다. 호수의 거대함이 정상의 시야를 한껏 틔워 놓아 동으로 양산 에덴벨리와 염수봉을 조망할 수 있고 동남으로 (양산)매봉산, 토곡산을, 남으로는 김해 무척산, 서북방으로 삼랑진 만어산을 볼 수 있다. 쭉 돌아, 시선은 다시 호수에 박힌다. 이 높은 곳에, 거 참 기이하다. 천태호는 삼랑진양수발전소의 상부 댐 저수지라고 한다. 심야의 잉여전력을 이용하여 하부 저수지인 안태호의 물을 이곳으로 퍼 올린 뒤, 낮에 다시 하부저수지로 흘려 보내면서, 그 낙차를 이용해 전력을 생산한다고 한다. 85년도에 첫 상업발전을 개시했다. 하부댐인 안태호와 낙차 높이가 88m라고 하는데 산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라 그 깊이와 속내를 가늠하기 어렵다.

 

 산은 주위 능선들을 모두 동원하여 천태호를 감싸고 있다. 무언가 소중함을 뺏기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무엇일까, 문명의 이기가 달려들기 전의 아름다움일까. 가늠하기 힘든 물의 깊이를 제쳐 두고 내가 그릴 수 있는 이 호수의 옛 모습을 제멋대로 상상했다. 큰 물을 막고 선 거대한 댐의 제방을 머리 속에서 걷어내고 아름드리 나무들이 우거진 작은 소()를 그린다. 머리 박고 물 먹던 여우가 갑자기 고개를 들어 관절에 힘을 쓰며 정지동작으로 서있다. 물고기가 튀어 올랐고 새가 건너편 나무에서 이쪽 나무로 날았다. 물이 생겨났고 하늘이 기지개를 켠다. 천태는 그 소를 온전히 품고 젖먹이를 끌어안은 여인의 팔꿈치다. 물을 그렇게 기르고 하늘을 그렇게 잉태한 것일까. 한자어와 그 뜻은 맞지 않지만 천태(天台)를 천태(天胎)로 상상하고 끼워 맞추는 일은 상상의 자유다.

 

천태산정상.JPG

천태산 정상 (천태호가 바로 내려다 보인다)

  

 정상을 내려선다. 한 시간 정도를 내려가면 천태공원에 다다르고 도로를 만난다. 도로로 인해 끊어진 산길은 200여 미터 정도를 천태호 전망대 방향으로 가야 다시 만날 수 있다. 도로 우측에 표지기(시그널)가 무더기로 붙어있는데 그곳으로 접어들면 길은 이어진다. 10여분을 걷자 삼거리가 나왔고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내려서면 천태사에 닿을 수 있다. 우리는 한 대원의 강력한 요구로 직진하는 길을 택했다. 천태사로 내려설 수 있는 기회는 10분 뒤 다시 찾아온다. (삼랑진 매봉산악회의 이름으로 된 표식이 나무에 붙어있다) 그러나 그 대원은 이 산에 조금이라도 더 안기고 싶어했으므로 결국 직진을 계속하여 산을 내려서니 밀양과 양산을 가르는 시() 경계 지역인 신불암 고개에 닿았다. 1022 지방도를 30분 걸어 처음 출발했던 천태사 일주문에 도착했다. 뜨거운 여름에 도로를 걷는 일은 큰 인내를 요구한다. 권하지 않는다. 천태사로 내려설 수 있는 두 번의 기회를 놓치지 마시라. 이제 다 내려왔다. 다시 인간의 시간에 발을 디딘다. 잠시 천태와 우주적 시간에 놀다 온 것이 아찔한 황홀로 다가오는 순간이다.

  

 

① 산행 길잡이

 

■ 원점회귀 산행 (4시간 30분 소요)

  - 천태사 추연폭포 - 당곡삼거리 안부 비박굴 천태산 정상 천태공원 천태사

 

■ 남→북 방향 종주 (7시간 30분 소요)

  - 당곡마을 비석봉 비박굴 천태산 정상 천태공원 천태사

 

■ 내포리 출발 (4시간 소요)

  - 내포마을 현불암 천태산 정상 현불암 내포마을

 

■ 기타

- 연장 코스 : 천태산에서 금오산 (766m)까지 연장 산행 가능 (1시간 30분 거리)

- 최단 코스 : 삼랑진에서 천태공원까지 자가 차량을 이용하여 천태산 산행 가능 (왕복 2시간)

 

② 교통편 (지역번호 055)

*충북 영동에 같은 이름의 천태산이 있다. 이 산 역시 빼어난 경치와 아름다운 바위로 유명한 곳이다. 양산 천태산 가시는 길에 유의하시기 바란다.

 

■ 대중교통

 부산, 울산 근교에서 출발하는 버스와 도시철도를 번갈아 이용해 접근할 수 있는데 우선 도시철도를 이용하여 양산역으로 가서 138번 버스를 타고 물금에 하차한다. 다시 137번 버스를 타고 천태사 입구(종점)에서 하차 한다.

* 138번 버스는 양산 산막공단과 원동역을 왕복하고 하루 8번 운행하며 05:35을 첫차로 22:10에 원동역에서 마지막으로 출발한다.

* 137번 버스는 물금과 천태사를 왕복하고 하루 6번 운행한다. (물금발 07:25, 10:00, 12:40, 15:10, 17:30, 19:50 / 천태사발 08:15, 10:50, 13:30, 16:00, 18:20, 20:40)

참고) www.sewonbus.com (055-384-6612)

 

 무엇보다 열차를 이용하는 것이 편리한데 원동역까지 열차를 이용한 뒤 137번 버스를 타고 가는 교통편을 추천한다. 창원, 마산역에서 출발하는 열차는 06:30, 08:30, 13:04, 15:33, 19:53에 있고 부산역에서는 수시로 원동 가는 기차가 있는데 06:35, 07:50, 08:42, 09:25에 출발하는 열차를 타시면 되겠다. 부전역에서도 06:25, 10:40에 출발하는 기차가 있다. 원동에서 부산가는 열차는 16:05, 18:29, 20:20() 에 있다

 

■ 자가

 신대구부산고속도로를 타고 삼랑진 IC에서 내려 양산 방향으로 1022 지방도를 따라가면 천태사를 찾을 수 있다.

 

 

③ 잘 데와 먹을 데 (지역번호 055)

천태사 바로 앞에 위치한 천태산가든(055-382-6677)에서 숙식이 가능하다. 요즈음 늘어나는 캠핑 인구를 고려해 숨겨진 보물의 캠핑지를 소개해본다. 천태산 정상 아래 천태공원은 알려지지 않은 최고의 캠핑지다. 해발 400m에 위치해 여름에도 시원하고 넓은 잔디밭과 큰 나무들로 둘러싸인 비경을 자랑한다. 길 아래 안태공원 또한 만만찮게 멋진 캠핑지다. 넓이는 천태공원에 3배에 달하고 안태호 전망이 기가 막히다. 모두 차량진입이 가능하다.

 

(월간지 기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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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02 12:25:03 *.43.131.14

재용, 천태로 간다고 오금을 들썩였어요? 오금, 그거 춤추듯 걷는 거지요?

산이 얼마나 좋으면....

아찔한 폭포를 내려다 보며 발을 담근다니 기똥찹니다!

 

프로필 이미지
2013.09.02 21:35:42 *.108.69.102

옥시크린, 중년남성 전립선염... ㅋㅋ

 

상당히 공들인 글이다 싶더니 월간지에 기고한 것이군요. 

날씨가 좋아서 그런가, 사진도 그림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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