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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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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8월 30일 08시 55분 등록

흥보가 박을 타는데 왜 그 속에서 양귀비가 나왔을까?


흥보네 박 속에서 나온 것들은 쌀, 부워내고 닫아두면 다시 차는 돈궤, 중국의 미인 양귀비, 그리고 많은 하인들이다. 판소리 사설집을 읽다가 나는 놀랬다. 왜 박 속에서 양귀비가 나와서 흥보에게 자신의 몸을 의탁하고자 하니 받아달라고 하는지 기가 막혀 읽었다. 그 말을 듣고 흥보는 좋아라 하고 흥보 마누라는 분통이 터진다. 그리고는 흥보 마누라가 양보하여 양귀비가 흥보의 첩이 된다. 흥보가 첩을 들였다는 이야기는 어려서 본 흥보전에는 없었다. 그동안 들어본 흥보가에도 없었다. 이번에 사설을 읽다가 처음으로 보았다. 이걸 어찌 받아들여야 하나 혼란스러웠다. 판소리 사설은 부르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니 내가 본 김연수 사설집에만 나올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해보았다. 다른 사설은 아직 읽어보지 못했고, 찾아보지 않았으니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판소리에 꼭 있어야 할 대목이라고 이해하였다. 뒷부분에 놀보가 흥보집에 왔다가 흥보 가솔들이 놀보에게 인사할 때, 양귀비가 따라주는 술을 받아먹고 좋아하고, 권주가를 불러달라고 하는 것을 보고서야 양귀비란 미인을 내새워야 했던 이유를 짐작했다.  


판소리 사설집을 읽는 사이에 영화 아마데우스를 보았다. 영화의 장면 중에 모짜르트가 가난해지고 그가 한 오페라가 일찍 무대에서 내려지고 그가 만든 오페라 돈조반니를 패러디하여 싸구려 극장에 올려진 장면이 나온다. 모짜르트의 돈 조반니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이다. 거대한 말이 등장하고, 그 말에 무엇인가를 먹이면 발 궁둥이 쪽에 있는 사람이 뭔가를 밖으로 내어주었다. 그렇게 내 놓는 것은 커다란 빵과 소세지였다. 먹을 것을 조금 넣었는데, 커다란 빵이 나오는 것을 보며, 관객들은 키득거리고, 다시 먹을 것을 넣고 쏘세지가 나올 때, 무대의 배우들은 함께 노래를 했다. 그때 관객들도 같이 일어서서 노래를 불렀다. 그 노래는 그동안에 궁정에서 황제를 위해 만들어진 음악(감상하는 음악)이 아닌 서민들이 부르는 노래(민요)였다. 같이 노래를 부르며 즐거워했다. 말에서 빵과 소세지가 나오는 공연이라니. 처음에는 황당한 설정에 웃었지만, 두번째로 볼 때는 웃을 수 없었다. 그것이 공연을 보는 사람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같이 노래를 부르고 즐거워하는 것. 그 공연은 관객들이 원하는 것을 보여주는 공연이었다. 영화 속의 모짜르트는 다음 오페라로 <마술피리>를 만들었다. <마술피리>에 주인공 만큼이나 중요한 인물인 파파게노는 서민들의 모습을 대표하고, 서민들이 원하는 것을 말하고, 그것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오페라 속에 공주와 왕자가 아닌 다른 주요 인물이 등장한 것이다. 


한석규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사극코믹영화 <음란서생>은 당대의 최고 문장가인 사헌부 장령 김윤수라는 인물이 색담을 쓴다는 이야기다. 불법출판업자들을 덥치기 전에는 그런 세계가 있다는 것도 모르고 살았다가 색담을 접하고는 충격을 받고는 그 생각이 끊이지 않아 이야기를 쓴다. 처음으로 쓴 소설을 들고가서 디밀고는 그 바닥에서 유명한 사람은 왜 유명한지 묻는다. 출판업자 광가는 '꿈에서라도 하고 싶은 것, 아련한 것, 그런 것을 담아야' 한다고 일러준다. 그 말을 들은 한석규는 본격적으로 과감하게 색담을 쓴다. 


음란서생의 주인공 김장령이 색담을 잘 썼던 데는 과감한 묘사에 있었던 듯 싶다. 또한 그가 양반이라는 것을 나는 꼽고 싶다. 판소리 사설집을 읽다보니 묘사가 너무나 자세하여 위에서부터 아래로, 전경부터 세부까지 아예 쫙 훑는구나 싶은 대목들이 많았다. 몸에 걸린 옷가지, 장신구, 그 옷의 옷감, 옷감의 출처까지 세세한 묘사로 인해 그것들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판소리는 소리로 노래로 전달되는 것이라서 당대에 그것을 먼 발치에서라도 본 사람이라면 생생하게 일러줄 때 하나하나를 떠올려 볼 수 있지 않나 싶다. 머리 속에서 호사스러움을 누리게 된다. 상을 제대로 차려 들여왔다라는 말로 끝나는 사설은 하나도 없다. 그 상은 어떻게 생겼고, 어디서 만들어진 것인지, 무엇이 놓여있는지, 세세하게 묘사한다. 구이, 탕, 포, 적, 과일 등을 일일이 묘사한다. 사설을 읽는 동안 나는 상상으로 이미 음식들에 손을 대에 집어먹고 있다. 판소리를 듣는 이들 머리 속에서도 그 음식들이 만들어지고 냄새를 풍길 것이고, 이미 먹고 있을 것이다. 춘향의 맵시를 듣는 중에 자신이 그렇게 차려 입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상상속에서 그런 여자를 만날 것이고, 이도령의 풍채를 듣는 중에 자신이 그런 차림을 한 것을 상상할 것이며, 또 어떤 이는 그런 꿈에 그리던 옥골선풍의 미남자를 만날 것이다. 


음란서생의 김장령이 색담에서 세세하게 묘사하겠다 했으니 그리했을 것이다. 나는 그가 색담가로 유명해진 이유로 그가 양반이라는 것을 꼽았다. 그 이유는 그가 이미 괜찮은 문장가라는 점, 그리고 서민들이 원하는 삶에 대한 것을 누려본 바 있는 사람이라는 점을 들고 싶다. 서민들이 원하는 것이란 배부르고 등 따신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흥보처럼 먹을 것, 입을 것이 해결되니 다음으로 나온 것이 양귀라는 점이다. 자신에게는 닿을 수 없는, 꿈에라도 한번 봤으면 하는 여자인 양귀비를 등장시킬만한 환경이 이미 셋팅되었으니 그 위에 또 하나의 욕망을 자연스레 얹으면 되는 것이다.  


영화 <방자전>의 시점과 기술은 판소리 춘향가와는 판이하다. 이도령은 집안 좋고, 사람 좋고, 글 잘하는 사람으로 싸이의 노래말로 치자면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다. 그런데, 방자는 싸이의 노래말로 하자면, 그는 '뭘 좀 아는 놈'이다. 이도령이 광한루에서 춘향이에게 반해 가서 좀 불러오라고 일렀을 때, 방자가 가서 춘향이를 부르는 태도를 보면 내외하는 것도 없고, 귀한 아가씨를 어려워하는 것도 없이 막보기를 한다. <방자전>의 방자와 비슷한 태도다. 이도령과 방자는 신분이 사또 자제 양반과 관청의 노비로 갈렸을 뿐이지 자신의 삶에서는 하나의 남성일 뿐이다. <방자전>의 결말은 방자 자신이 춘향을 사랑하니, 춘향이 꼭 하고 싶어하던 것을 이야기 속에서 이뤄주리라 하며 이야기를 맺는다. 춘향이 그리도 원하는 것을 얻어 행복한 삶을 사는 것으로 해달라고. 그렇게 함으로써 방자 또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다. 


왜 이야기 속에는 이런 것들이 등장할까? 왜 이런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갈까? 판소리라는 공연예술이기 때문에, 영화이기 때문이기 때문일까? 몇 해전에 읽은 만화, 천재 예인 임춘앵의 일대기를 다룬 것에서 찾아본다. 그녀가 처음 연극을 접했을 때, 무대장치로 나비가 날아와 손에 앉는 장치를 고안한 것을 보며 놀랐을 때, 그 장치를 만든 선배가 들려준 말. 

'연극에서는 환상을 보여주어야 한다.'


꿈속에서라도 보고 싶은 것, 꿈속에서라도 이루고 싶은 것, 그것을 눈 앞에 이루어지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한다. 

지나치다 싶을 만큼 길게 묘사된 판소리 사설, 현실에는 있지도 않은 죽은 사람들 틈에나 섞여 있어야 할 여자, 양귀비의 등장, 앞뒤도 없이 아무런 연결성없이 공연에 등장하는 소세지........ 이런 것들은 그 공연의 자리에 함께하는 사람들이 가진 욕망을 드러내고 그것이 환상 속에서라도 풀어주려 했던 것이 아닐까.




 

IP *.39.14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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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02 12:27:18 *.43.131.14

목침으로 쓰면 딱 좋을 그 책을 읽으셨군요!

그 내용이 저런 거라니 겁이 5%쯤 주는 것 같아요.

'꿈에서라도 하고 싶은 것, 아련한 것, 그리운 것' 이 말이 좋네요. 핵심을 찌르는 듯 해요. 정화님

그리고 정화님, 요즘 한씨 성에 이름을 붙여보는데요

한정화 이름은 이쁜 이름입니다. 우리집 두 사람의 공통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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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02 12:39:01 *.58.42.16
사설집에는 다른 내용이 더 많아요.

아이 이름을 미리서 만들어보시나보네요. ^^* 귀엽고, 재미난 이름은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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