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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2일 10시 48분 등록

No18

2013.09.02

글쓴이: 오미경

 

                                  카를 융 기억 꿈 사상                   카를 융 최후의 자서전

                                                                                                                                      카를 구스타프 융, A 야페 편집/조성기 옮김

 

 

 

융포지.jpg

                       

 

개인은 고통 없이 성장할 수 없으며 성장 없이 발전할 수 없다.

상처받은 자만이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모든 것

자주 겪는 데쟈뷰 현상들

내가 생각하는 것인가

생각이 나를 통해 표현나는 것인가

의식을 통해 나타나지 않는 무의식들

그것은 결국

내 행동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들이다

 

나는 요즘 자주 느낀다

사람들은 의식적으로 행동하고 사는 것 같지만

무의식이라는 거대한 우주안에

수많은 소행성들의 의식이 자리 잡고 있을뿐

무의식과 의식의 통합만이

나를 온전히 찾아가는 길임을.

머리에서 생각하는 의식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무의식

상황에 따른 선택으로

진정한 인간성과 부분적인 신성의 결합이

자신을 낳는 과정임을.

 

 

Ⅰ. 저자에 대하여

 

“나에게는 나이 든 영혼이 있다. 고등학생이던 열다섯 살 대 학교 친구들은 나를 아브라함 총대주교라고 불렀다.

 나이든 영혼을 지니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풍요상태의 존재의 흔적을 간직할 수 있기 때문이다. ”

 

1-1. 융의 사상

 

융은 최초의 뉴에이지 심리학자로 불려 왔다.

그의 저서는 전부 “의식과 무의식의 과정을 통해 완전해지는 인간을 둘러싼 신적인 것을 진보적으로 해석하는 정신-종교적인 진술”로 묘사된다.

융은 자신을 “신비주의자mystic"라고 부르는 모든 시도에 맞섰다. 그는 자신을 ”정상적인 경험에 의거한 과학 영역 내에서 활동하는 경험주의자“라고 반복적으로 정의했다.

 

그의 분석심리학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개성화과정이다. 개성화 과정은 다른 말로 “자아찾기“ 나 ”자아실현“으로 부르기도 한다.

“개성화는 사람이 동물과 구분되는 진정한 인간이 되는 것뿐만 아니라 그의 일부가 신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인간이 신에게 의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신도 그에게 의존하고 있음을 알고 자신의 존재에 책임을 지는 성인이 되는 것을 말한다.”

 

융은 그가 말한 온전함의 완벽이 아니라 완성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완벽을 남성성의 개념, 완성을 여성성의 개념으로 보았다.

 

“사람은 완벽과 거리가 멀지라도 자신과 남을 어느 정도 건전하고 균형 잡힌 사람으로 만들었을때 크게 만족할 것입니다.

우리는 완벽을 추구하기 이전에 자신을 훼손하지 않고 평범한 사람으로서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완성을 겸허히 이루고 나서도 충분히 힘이 남아 있다면 그 후에 성인으로서의 첫걸음을 내디딜 수 있을 겁니다.”

 

인간이 온전하고 완성되는 것은 자아 안에 “진정한 인간성”과 ‘부분적인 신성“이 있는 자신을 ”낳는“ 과정을 의미한다.

 

프로이드는 무의식의 존재와 무의식이 인간의 감정과 행동에 미치는 중대한 영향을 공식화했다. 그러나 그의 시각은 지나치게 환원주의적이었다. 따라서 문화, 무의식, 역사, 원형을 묶는 과업은 융의 몫이었고 그는 그 일을 해냄으로써 우리에게 수많은 수수께끼에 대한 열쇠를 건네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더 나은 사람이 되는 법, 더 정확히는 우리의 진정한 모습을 찾음으로써 달갑지 않은 억압의 출현에 저항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1-2. 성장배경

 

융은 1875년 7월 26일 스위스 케스빌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교구 목사인 파울 융과 그의 아내 에밀리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홉 살에 동생이 태어나기까지 외동으로 자랐다.

융의 자서전은 일반 자서전과는 다르게 본인의 내적 성향에 대해 풀고 있다. 대부분 태어나 상황이 어떻게 흘러감에 따라 이러하게 살았다, 인데 반해 융의 자서전은 그와는 반대로 환경보다는 그 당시 자신의 상태가 어떠했는지가 중심이다.

융은 말한다.

 

“개인은 고통 없이 성장할 수 없으며 성장 없이 발전할 수 없다는 냉철한 현실을

잔인할 정도로 분명하게 깨닫게 된다“.

 

융이 부모로부터 받은 각기 다른 영향은 그가 후에 발견한 자기 내부의 이중성을 형성하는 데 일조하였다. 융은 자신이 ‘제 1의 인격’과 ‘제 2의 인격’이라고 부른 두 가지 특징으로 양분되어 있다고 느꼈다.

제 1의 인격은 외부적인 일상 세계와 관련된 것으로, 이 성격의 융은 야심적이고 분석적(analytical) 이며, 세계를 과학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것을 말한다.

융은 자신이 거의 마흔이 될 때까지 대부분의 성인시절을 야망, 경력, 성공, 가족, 국제적 명성을 추구하는 제1인격으로 살았다고 말했다.

제 2의 인격은 말이 없고 불가사의하며, 사물을 직관(intuitive) 에 의지하여 보았다.

 

간단히 말하면, 외부적으로 보이는 성격인 의식적인 면, ‘페르소나’라고 불리는 것, 살면서 가면을 쓰고 살아야 하는 사회적인 인격으로서의 제 1의 인격이라고 이해한다. 제 2의 인격은 무의식적인 면에서 우리가 상상하는 모든 신화적인 요소나 꿈, 상상등 여러 가지 것을 말하는 것이다.

 

 

1-3. 일상이 영적 훈련의 과정

 

융은 가능성 있는 인간의 많은 측면을 몸소 보여주었다. 그는 신체적으로 충만하게 살았으며 예민한 감각을 지녔고 예술가이자 장인으로서 세상과 소통했으며 뛰어난 기억력과 내면의 환영에 대한 통찰력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객관적인 대상을 분명하게 이해한 만큼 주관적인 현실을 체험했다. 그의 의식은 연속체였으며, 그는 자신의 뜻대로 멀고 넓은 곳을 여행했다. 긴 생애에 걸쳐 그는 정신 속의 많은 문화를 발견하고 내면의 문화가 알려주는 모든 종류의 지식과 지혜를 연구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그에게는 내면과 상상 속 세계의 친구와 동지들이 있었다.

 

그는 환자들에게도 같은 과정을 거치기를 조언하면서 내면에서 원형적 친구와 동반자를 발견하라고 가르쳤다. 그는 자신의 영혼의 원천을 찾기 위해 꾸준히 여행하며 생명과 영혼의 물을 마셨다. 그에게는 일상이 영적 훈련의 과정이었으며 공감능력과 소탈한 성품, 열정은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주었다.

 

이렇게 다양한 일화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그는 자신에 대한 탐구만큼이나 사회와 도덕적 질서의 쇠퇴와 악화에 깊은 관심을 표했다. 또한 몇몇 사람들이 그에 대해 증언한 것과 달리 그는 다른 사람들을 숨어 있는 신으로 대했으며 광범위한 기법과 연구를 통해 사람들에게 자신의 본성으로 돌아가 가능성 있는 인간이 되라고 요구했다.

 

1-4. 신화를 알아야만 하는 이유

 

융이 증명했듯이 신화는 원형을 가득 담고 있기 때문에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 원형은 원초적 형태, 깊은 무의식의 암호, 정신적 에너지의 대열, 관계의 유형 등 여러 가지로 나타날 수 있다.

 우리 조상들은 하늘에서 원형을 보고 “어머니의 대지”, “아버지의 대양”, “누이의 바람”의 모습을 한 원형에 기도를 올렸다. 그것은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한 먼 친척이었으며 존재를 선사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도록 하고 도덕적 질서를 만들었다. 그 후 그것은 형제의 경쟁, 신의 아이, 사랑하는 가족을 찾아나서는 여행, 영웅의 대장정 긍 신비적 인물의 이야기에서 인격화되었다.

 

정신의 주요 기관들인 원형은 우리에게 근본적인 연결고리를 제공한다. 그것이 없다면 영혼과 자연, 몸과 마음, 자신과 우주의 메타체계 간의 거미줄 같은 연결망이 사라질 것이다. 융이 반복해서 보여 주었듯이 원형은 본질의 기관들이며 삼라만상의 원리를 담은 우주의 청사진이다. 이러한 원형은 너무 많은 것을 담고 있어서 그것을 분석하기란 불가능하며 직접적인 체험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

 

 

1-5 융의 <레드 북>

 

그날 밤 나는 내가 죽었음을 알았다.... 나의 내면은 죽음에 접어들었고 나는 외면의 죽음이 내면의 죽음보다 낫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나는 외면에서 죽고 내면에서는 살아있기로 결심했다.... 나는 몸을 돌려 내면의 생명이 있는 곳을 찾기 시작했다.

-C. G. 융의 <레드북>

 

융의 생애에서 중대한 국면을 다룬 <레드 북>은 그의 사후 58년이 지난 오늘날 세상의 빛을 보았다. 붉은색 가죽 양장본으로, 중세 필사본을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서체와 풍부한 색감의 그림을 담고 있다. 이 책은 융이 사망하기 4년 전인 1957년 “모든 것을 담은 신령스러운 시작”이라고 쓴 그이 심리학의 기원이 된 원초적인 에너지가 흘러넘치고 미궁을 여행하는 것 같은 과정을 드러낸다.

 

모든 일은 융이 프로이드와 결별한 1913년에 시작되었다. 융은 내면의 경험을 통해 지성에만 의지하지 않는 방법을 찾았다. 그는 이해할 수 없는 꿈들을 꾸었고 그 꿈들에서 반복적이며 극적인 신호를 받았다. 꿈에서는 대낮에 끔찍한 홍수로 유럽 전체가 휩쓸려가고 피가 강이 되어 흐르는 장면이 펼쳐졌으며 내면의 목소리는 “이것이 현실이 되리라”고 말하고 있었다.

 

융은 “나는 내가 미쳐 버렸다고 생각했다”고 적었다. 그는 자기심리진단을 해보았으나 별다른 답을 얻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내면의 실체에 다가서기 위해 “보링 공법boring method"을 개발했는데 이는 후에 환상에 접근하고 침투하는 수단인 ”적극적 상상active imagination"으로 발전하여 그의 심리학의 핵심기반이 되었다. 1913년 후반부터 1914년 중반까지 그는 “가장 어려운 실험”을 위한 재료가 될 내면의 세계, 이미지, 대화를 끊임없이 기록했다.

 

그런 실험들은 환자 상담이나 가족과의 식사를 마친 밤 시간, 그의 서재에서 벌어지는 일이 많았다. 그는 때때로 요가 형태의 훈련을 하여 감정적 소용돌이를 잠재우고 그의 의식을 비웠다. 그 후 연극을 시작하듯 자연스럽게 환상에 빠져들고 그 속의 인물들과 대화를 나눴다. 하지만 그 경험의 의미와 중요성을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는 정신병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계속해서 느꼈다.

 

“마침내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 한 1914년에 그가 말했다.

초기에 겪은 그이 상징적 예지는 무서운 형태로 나타났다.

자신의 경험을 이해하게 된 융은 용기를 내어 손으로 그이 “새로운 책”의 초안을 쓰기 시작했다. 내면의 전쟁이 일어난다. 예언서와 같은 도입부에서

 “심연의 영혼”이 그 안의 “시간의 영혼”과 싸운다. 시간의 현대적이며 가변적인 개념은 점차 심연이 지니고 있는 태곳적의, 형성 중인 미래에 자리를 내어 준다.

 

여기서 오늘날 우리가 살고 시간에 대해 새로운 길을 제시하는 영적 메시지가 나타난다. 융은 그 메시지를 해석하고 간직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그 내용은 바로 새로운 신의 형상, 즉 크고도 작고 어둡고도 밝은 모든 것 안에 편재하는 신에 대한 것이다.

 

 여기에서 “궁극의 진리와 어리석음은 동일한 하나이다”라는 역설이 드러난다. 그뿐만 아니라 “이성과 비이성이 하나로 녹아들면서 최고의 의미를 만들고” “질서와 혼돈이 결혼을 하면 신성한 아이가 태어난다. 이 임무는 대극들opposites을 함께 묶는 것으로 ”목적은 높은 곳이 아니라 중심“이며 그 중심은 ”우리 안의 신“으로 말할 수 있는 자아self이다.

 

“신의 영혼과 동물인 인간을 함께 결속시켜 자신 안의 온전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융은 “나의 길은 당신의 길이 아니며” “자신의 모습으로 사는 것이 자신의 임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자신의 길을 헤쳐 나간다. 환상은 일정한 형태가 반복되고 진화하면서 더욱 깊어진다. 집단적인 인간 역사의 공포와 긍정적인 면이 그의 앞에 펼쳐진다. 영혼은 그에게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라고 주장한다. "나는 과거에 존재했으며 앞으로 존재할 것들을 느낀다.“ 그는 엄청난 임무가 앞에 놓인 것을 보고 처음에는 깜짝 놀란다. ”미래가 나로부터 자라난다. 나는 그것을 창조하지 않지만 창조한다.

 

1차 세계대전이 무참하게 지속되는 가운데 융은 그의 영혼에게 묻는다.

 

“내가 얼마나 깊은 곳까지 가야 하는가?” 그러자 영혼은 “ 네 자신과 현재를 넘어 영원히”라고 대답한다.

 

1-6 ‘레드 북’은 어떤 기능을 하는가

 

융은 내면의 과정을 다루기 위한 수단으로서 자신만의 “레드 북”을 만들라고 환자들에게 조언했다.

 “책을 들고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그것이 당신의 교회이자 대성당이 될 것이며 당신이 부활할 수 있는 영혼의 조용한 안식처가 될 것입니다. ..

 책 안에 당신의 영혼이 있기 때문입니다

 

1-7 융의 아내 엠마

 

융은 자서전에서 그의 본성에서 가장 강력한 요소는 “이해하고자 하는 강력한 욕구”라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의 기본적인 심리가 주로 직관적이고 지적이라고 정의했다. 일상생활 속에서 관찰할 수 있는 현실을 통해 직관적인 깨달음을 얻는 것은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그의 삶을 특징짓는 삶의 일부분이었다. 그는 스물한 살 때 사교 모임에서 계단에 있는 땋은 머리의 열네 살 소녀를 어렴풋이 보았다. 그 순간 섬광과 같은 생각이 번뜩였다.

 

“나의 아내구나!”

 

그녀를 본 것이 찰나였기에 그런 생각이 들자 크게 떨려왔다. 하지만 그녀가 내 아내가 될 것이라는 절대적인 확신이 순식간에 들었다.

그로부터 6년 후 엠마 라우셴바흐는 이 젊은 의사의 청혼을 거절했지만, 그가 두 번째 청혼했을 때 결혼을 승낙했다. 출간되지 않은 그들이 연애편지를 읽어 본 사람에 따르면 그 편지들에는 “낭만적인 아름다움과 감성적인 매력”이 있었다. 1903년 결혼한 그들은 딸 네명과 아들 한 명을 낳았다.

조용하고 차분하며 명석하다고 묘사된 엠마는 결혼 초기부터 융의 일을 돕기 시작했다. 호감가는 그녀의 태도와 자연스러운 유쾌함은 분명 사교적인 장점이었다. 부유한 제조업 가문 출신인 그녀의 지참금은 융의 경제난을 해졀해주었다. 퀴스나흐트에 지은 그들의 집 임구에는 델포이 신탁의 문구

 “불러내든 불러내지 않든 신이 함께하리라”가 라틴어로 새겨져 있다.

 

1-8. 토니는 융의 제 2연인

 

융의 예전 환자이자 시인이며 후에 심리치료사가 된 토니 볼프는 <기억 꿈 사상>에서 언급되지 않은 융의 “기댈 곳”이었다.

융은 1911년 프로이드에게 그녀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새로운 발견... 종교와 철학을 사랑하는 놀라운 지성입니다. ”

 

융보다 열세 살 연하인 토니 볼프는 그에게 먼저 다가가 개인적인 친분을 쌓았고 동양의 영성을 알려주었다. 융의 직관이 지성의 끈에서 자유로워지도록 도왔고 그가 이성을 잃을 때 그를 일상으로 되돌려 놓았다. 토니 볼프는 융의 여성성과 그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자아의 투영이었으며 그가 위기에 빠져 있을 때 교량적인 역할로 힘이 되어주었다.

 

"그녀는 나를 사랑하지 않고 나의 운명에 무심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분명히 나를 사랑했다. 그것은 아주 용감한 일이었다. 나는 그녀의 그런 행동을 영원히 기억해야하며 그녀에게 평생 감사해야 한다."

 

엠마 융은 만년에 다음과 같이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는 항상 토니에게 감사해야 한다. 그녀는 가장 결정적인 시기에 내 남편을 위해 나 또는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을 해주었다.

융과 토니 볼프의 개인적인 친분과 업무관계는 40년간 융의 결혼생활과 평행선을 달렸다. 그 관계는 공개적이었으며 처음에는 두 여성 모두 이로 인해 고통을 겪었지만 결국 그들은 적절한 삶의 방식을 찾을 수 있었다. 후에 엠마는 친구에게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보다시피 그가 나에게서 무언가를 가져가서 토니에게 준 일은 절대 없었어.

 오히려 그가 그녀에게 더 많은 것을 줄수록 나에게도 많이 줄 수 있었던 것 같아. "

 

 

1-8. 영화 데인저러스 메소드 a dangerous method

 

1904년 8월 어느 날 스위스 취리히 부르크횔츨리 정신병원에 마차 한 대가 도착한다. 문이 열리자 건장한 남자 몇 명이 한 여성을 붙잡아 내린다. 격렬하게 몸을 비틀며 괴성을 질러대는 19살짜리 아가씨가 바로 사비나 슈필라인이다. 극심한 히스테리로 정신병원에 온 것이다.

 

그녀의 담당의사가 바로 29세의 카를 융. 침묵하며 강박적으로 온몸을 비트는 환자를 마주한 그는 다소 냉정하게 ‘대화치료’를 시작한다. 정신분석학을 창시한 오스트리아의 의사 프로이트(1856년 생으로 융보다 19살 연상)의 영향을 받은 융은 그가 고안한 이 방법을 이 아가씨에서 처음 적용하기로 한다. 영화제목 ‘데인저러스 메소드’는 바로 대화치료법을 말한다.

 

대화치료가 왜 위험한 방법일까? 프로이트도 이야기했지만 정신분석학을 적용한 치료는 효과가 좋기는 하지만, 환자가 과거에 중요한 사건을 떠올리면서 분석가인 의사를 관계를 맺었던 예전의 그 사람으로 여기고 그에게 향했던 감정과 반응을 옮기는 전이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의사가 환자 애정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치료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지만 환자는 해당 감정에 대해 정확히 인식을 못하는 것이다(감정전이 단계를 넘어서면 치료자는 강한 증오의 대상이 되기도 하며, 의사가 환자에게 감정을 투영하는 역전이 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슈필라인2.png 

 

융과 슈필라인의 관계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발전했다. 당시 융은 부유한 집안의 엠마 라우셴바흐와 결혼(1903년)한 상태였는데 열정적이면서도 매우 영민한 슈필라인의 매력에 점점 빠져든다.

 

슈필라인.png

 

이듬해 6월 퇴원한 슈필라인은 취리히대 의대에 등록하고 틈틈이 융의 연구를 돕는다. 영화에서는 슈필라인이 자신의 자취방을 알려주며 융을 유혹하는데, 융은 망설임 끝에 그녀의 자취방 문을 두드린다. 이제 연인관계로 발달한 두 사람은 그러나 관계를 끝내라는 정숙한 아내 엠마의 말에 융이 헤어지기로 결심하면서 금이 간다.

 

융에 강하게 집착하는 슈필라인은 이별의 통보에 격분하면서 실제로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칼을 휘둘러 융의 얼굴에 상처를 입히고 급기야는 오스트리아의 프로이트 문하로 갈 수 있게 해달라며 그렇지 않으면 둘의 관계를 폭로하겠다고 협박한다(환자와 치료자간 감정 전이에 대해 프로이트는 극도로 꺼렸다).

 

융 프로이드.png 

 

융과 프로이트의 결별 장면은 '나무 타는 소리'에 대한 융과 프로이트의 팽팽한 접전으로 묘사가 되고 있다. 융은 '공시성'의 개념을 이 당시에 세운것 같다. 인과율이 성립되지 않는 우연의 일치, 무의식의 세계, 기시감 등을 주장하는 융과 모든 정신적 문제는 성과 관련이 있다는, 인과성을 주장한 프로이트의 주장이 대립되는 장면이 있다.

 

결국 융의 추천으로 슈필라인은 1911년 오스트리아 빈으로 떠나고, 이보다 앞선 1909년 병원을 그만둔 융은(그가 병원을 떠난 건 슈필라인과의 스캔들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아내가 마련해 준 저택에 병원을 개업한다. 이때의 상황을 짐작케 하는 융이 프로이트에게 보낸 편지 한 구절이 남아있다.

 

“슈필라인은 제가 예전에 당신께 쓴 편지에서 언급했던 그 여자입니다. 그녀는 물론 계획적으로 절 유혹했지만 전 부적절하다고 생각했죠. 이제 그녀는 복수를 꿈꾸고 있습니다.” (1909년 6월 4일)

 

* 사바나 슈필라인과 관계된 프로이드와 융의 서신교환

1909년 융은 답장이 늦은 이유를 “엄청난 스트레스”로 돌리며 그이 환자였던 사비나 슈필라인과 관련한 문제 등 여러 고민을 털어놓았다.

 

저를 엉망으로 만드는 콤플렉스는 인내의 한계를 넘게 하는 최악의 시련입니다. 몇 년 전 무한의 노력을 기울여 매우 힘겨운 신경증을 치료한 여성 환자는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굴욕적인 방법으로 저의 신뢰와 선의를 해쳤습니다. 그녀는 아이를 갖는 기븜을 제가 거부했다는 이유만으로 비열한 스캔들을 일으켰습니다. 저는 그녀를 늘 신사적으로 대했지만 지나치게 민감할지도 모르는 저의 양심의 기준에서 보면 제 자신이 깨끗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제 의도는 항상 순수했기 때문에 마음이 매우 아픕니다.. 하지만 교수님도 아시다시피 악마는 가장 좋은 것으로도 추악한 것을 만들어냅니다. 그동안 저는 자기분석을 해왔지만 지금까지 일부다처제적인 요소들에 대해 완전히 부적절한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결혼의 지혜에 대해 말도 못할 정도로 배웠습니다. 저는 이제 어디서 어떻게 하면 그 악마를 짓밟을 수 있을지 알게 되었습니다. 고통스러운면서도 매우 유익한 그런 깨달음은 저의 내면을 지독하게 휘저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 앞으로 제 삶에서 가장 큰 강점이 될 도덕적 가치를 배웠다고 생각합니다. 저와 아내의 관계는 확신과 깊이에서 놀라운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처음 몇 년 동안 두 사람은 그 문제 여성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고 “자신의 채울 수 없는 소망을 이루기 위해 아이를 가즌ㄴ 것이 가장 큰 바람인”, “히스테리가 있는 환자”라고 부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것은 환자가 의사에게 감정을 투사하는 전형적인 전이transference 현상으로 이 경웨은 의사도 잘 표출하지 않던 그이 정신적 측면을 내비쳤다는 점에서 관자에 대한 전이가 의사에게도 잠복된 형태로 일어났다. 전이는 다루기 어려운 정신의학적 상호작용이다. 이 두 가지 문제는 치료가 끝날 때까지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으며 융과 슈필라인의 유대담은 아슬아슬한 채로 몇 년간 지속되었다.

 

의도하지 않았던 바퀴가 굴러가기 시작한다는 것을 깨닫고 저는 마침내 그녀에게 결별을 고했습니다. 물론 안타깝게도 그녀는 철저하게 나를 유혹할 계획을 짜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이제 복수를 꾀하고 있습니다.

그 소문을 듣기도 하고 슈필라인에게 직접 편지도 받은 프로이드는 인생의 선배로서 융에게 조언을 했다.

 

친구에게,

고통스럽겠지만 그런 경험은 필요하기도 하고 피할 수도 없는 일이네. 그런 경험 없이는 인생도, 우리가 무엇을 대하고 있는 것인지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지. 나는 이런 일을 심각하게 겪어본 적은 없지만 몇 번이나 그럴 위기가 있었고 겨우 그 위기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네.

당시 암울한 상황이 내 연구를 짓누르고 있었고 나는 자네보다 열 살 더 많을때 정신분석에 입문했기에 그와 비슷한 경험을 무사히 피할 수 있었다네! 하지만 상처가 지속되지는 않을 걸세. 그런 경험은 우리에게 필요한 두꺼운 얼굴가죽이 생기게 해주고 항상 문제가 되는 “역전이countertransference"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네.

그런 여성들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정신적 수단을 이용하여 우리를 유혹하려고 하는 건 자연의 매우 경이로운 일들 가운데 하나라네, 그들이 목적을 달성하든 그 반대의 일이 벌어지든 그와 관련된 생각들은 놀랍게 변화한다네.

프로이드로부터

 

슈필라인은 그 이후에도 프로이드에게 편지를 보냈고 프로이드는 융엑 부성애를 담아 조언을 해주었다. “소모적인 반응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게.” 상황이 최악에 이르고 나서 며칠 후 융은 프로이드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아내가 사준 요트에서 밀회를 나누고, 계속 비이상적인 관계를 유지하다가 스승과 미국에 간다고 하며 떠난다. 결별 통보에 대한 분노로 슈필라인은 프로이트에게 편지를 쓰고, 프로이트는 그녀를 망상병 환자로 취급한다. 이에 대해 미국으로 가는 배 위에서 사실을 고백하는 융. 프로이트는 그녀에게 다시 사과의 편지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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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별의 끝에서 슈필라인은 1912년 같은 유태계 러시아인 의사 파웰 쉐프텔과 충동적으로 결혼했고, 바라던 대로 아동심리학자가 된다. 1913년 임신한 슈필라인이 무력감에 빠져 있는 융을 방문해 잠깐 이야기를 나눈 뒤 떠나는 장면으로 끝난다. 세 아이의 아버지가 된 융, 융의 아이를 임신한 슈필라인, 융은 토니라는 유대인에, 환자인 여성을 애인으로 두고 있다. 슈필라인과 꼭 닮은.. 슈필라인은 돌아가는 마차에서 오열을 하고 융은 그저 호수 너머를 바라보며 앉아있다. 물론 1913년 12월 태어난 딸 레나타의 아버지가 진짜 융인지는 모르겠다.

 

“당신을 향한 내 사랑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었어. 좋든 싫든 내가 누군지 알게 해줬어. 그 사랑은 내 것이 되어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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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사비나 슈필라인 재조명

 

영화에서는 융이 이 공시성의 이론을 전개하게 된 배경에 사비나 슈필라인이라는 환자와의 교류를 통해서 얻은 깨달음으로 전개시킨다. 슈필라인은 예감, 직감 혹은 직관으로 사람의 심리와 관계를 알아내는데 기묘한 재능을 가진 여자였다.

슈필라인은 최초의 여성 정신분석학자이자 러시아에 정신분석학을 소개한(그녀는 1923년 러시아로 돌아갔다) 인물로 소개돼 있다. 그런데 왜 융 전기에서는 그녀의 이름이 보이지 않는가.

 

슈필라인은 오랫동안 잊힌 사람이었던 것이다. 1977년 예전에 심리학연구소 본부가 있었던 스위스 제네바의 한 건물 지하창고에서 그녀의 일기(1909~1912년)와 프로이트와 융과 주고받은 편지(1906~1923년)가 발견되면서 슈필라인의 삶이 재조명된 것이다.

 

1980년 그녀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 이탈리아어로 출간됐고, 1982년 영어판이 나왔다. 영어판 제목을 직역하면 ‘은밀한 대칭: 융과 프로이트 사이의 사비나 슈필라인’이다. 2002년 헝가리 태생의 스웨덴 감독 엘리자베스 마톤은 슈필라인의 다큐멘터리 ‘내 이름은 사비나 슈필라인’ 만들었고 전기영화도 제작됐다. 또 영국에서는 연극 ‘사비나’(1998년)와 ‘대화치료’(2003)가 무대에 올랐다. 영화 ‘데이저러스 메소드’는 연극 ‘대화치료’를 토대로 만들어졌다.

 

슈필라인의 삶이 재조명되면서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즉 우리가 프로이트나 융의 업적이라고 알고 있었던 죽음의 충동(타나토스)와 집단무의식의 기본 개념이 사실은 슈필라인에게서 비롯됐다는 것. 결국 영화는 융이나 프로이트에게 미친 그녀의 영향을 과대평가한 게 아니라 애증 관계에만 초점을 맞춰 과소평가한 셈이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근거로 슈필라인이 이런 중요한 개념의 원조라고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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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필라인은 1911년 박사학위 논문 ‘정신분열증 사례의 심리학적 내용에 관하여’를 출간했고 이듬해인 1912년 논문 ‘탄생의 원인으로서의 파괴’를 발표했다. 이 두 논문 속에 이들 혁신적인 개념이 소개돼 있다는 것이다. 슈필라인이 재조명되면서 분석심리학자들이 그녀를 연구하기 시작했고 1994년 ‘분석심리학저널’에 ‘탄생의 원인으로서의 파괴’가 영어로 번역돼(원서는 독일어) 실렸다. 2006년 같은 저널에는 미국의 융 연구가인 브리언 스키어 박사의 논문 ‘사비나 슈필라인: 융과 프로이트의 그늘을 벗어나며’가 실리기도 했다.

아래는 1912년 논문의 한 구절이다.

 

자기보존은 정적인 욕구다. 존재하는 개인을 외부 영향으로부터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다. 종의 보존은 동적인 욕구로 새로운 형태 안에서 개인의 부활인 변화를 추구한다. 이전 상태의 파괴 없이는 어떤 변화도 일어날 수 없다.”

 

20대 중반인 슈필라인이 이런 놀라운 논문을 쓰게 된 건 그녀의 환자 M부인(Frau M)의 덕이 컸다. 거기에 그녀 자신이 정신병자였던 경험도 큰 몫을 했다. 중증의 정신분열증 환자였던 M부인은 슈필라인이 퇴원하고 수 개월 뒤인 1905년 11월 18일 부르크횔츨리에 들어왔는데 증세가 슈필라인과 비슷했다고 한다. 슈필라인은 융과의 관계가 끝난 1909년부터 M부인을 연구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녀의 정신분석을 통해 집단무의식과 죽음의 본능에 대한 개념을 생각해 낸 것이다.

 

결혼 13년차로 아이가 둘인 M부인은 발병하기 전 어머니를 암으로 잃고 세 번째 아이를 임신했으나 7개월만에 자연유산했다. 이때 3주 동안 입원하면서 마취 상태에서 악몽에 시달렸고 몇 달 뒤 정신이 붕괴됐다. 환자의 망상을 면밀히 관찰하던 슈필라인은 그 속에서 자신의 과거를 재발견했고(폭력적인 아버지에 대한 마조히즘적인 고통스런 애정을 융에게 투사했던) 성욕 속에서 생성의 본능 뿐 아니라 파괴의 본능도 존재함을 발견한다. 스키어 박사는 그의 논문에서 슈필라인의 학설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성욕은 내부에 두 리비도적 흐름을 갖고 있는데 외향적인 한 방향은 사랑하는 대상을 향한 쾌락이고 다른 하나는 자아가 느끼는 자기 내부를 향한 두려움, 역겨움, 심지어 죽음 같은 부정성이다. 이것은 두 사람이 합쳐져 하나가 된다는 이미지를 지닌 성애적인 끌림이 자아의 경계를 초월한다는 행복감과 함께 정체성과 독립성에 위협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자아는 집단무의식의 심층(영적 행복감과 과대망상 또는 그 반대인 우울과 소멸 또는 해체의 느낌이 명멸하는)으로 끌려들어갈 위험에 직면한다.”

 

다음은 1920년 프로이트가 자신의 책 ‘쾌락 원리의 저편’에 쓴 각주다.

“이 성찰의 상당 부분은 사비나 슈필라인의 흥미로우면서도 유익한 논문(1912)에서 예상된 것이다(아쉽게도 나는 이 논문을 명쾌히 이해하지는 못한다). 그녀는 논문에서 성욕의 가학적인 요소를 ‘파괴적’이라고 기술했다.”

 

빈에서 활동하던 슈필라인은 1923년 가족 모두와 함께 당시 소련으로 돌아간다. 그곳에서 그녀는 아동정신병원을 운영했고 대학에서 정신분석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러나 스탈린의 대숙청이 시작되면서 남자 형제 3명이 사라졌고 1938년 남편도 숙청됐다.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소련을 침략한 독일 나치는 당시 로스토피에 머물던 슈필라인과 그녀의 두 딸을 체포해 유태인 수용소에 보냈고 이들은 1942년 8월 처형됐다.

 

 

참고문헌

영화 Dangerous Method : 칼 융과 환자 사비나 슈필라인의 사랑 이야기

http://seeunsida.blog.me/110147541117

http://id6914864.blog.me/40194012632

카를 융 영혼의 치유자

‘융의 숨겨진 연인’ 사비나 슈필라인을 아십니까?/[강석기의 과학카페 85]

영화 ‘데인저러스 메소드’에 대한 소고, 2012년 06월 26일

 

 

Ⅱ. 마음을 무찔르는 글귀

 

인간은 원숭이도, 암소도, 나무도 아니다

나는 하나의 인간이다

그런데 인간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9]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 실현의 역사다.’

자기실현selfstverwirklichung은 ‘자아’가 무의식 밑바닥 중심 부분에 있는 ‘자기’를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그 소리를 듣고 그 지시를 받아 나가는 과정을 가리킨다. 그러나 그림자, 아니마, 아니무스, 원형 등 무수한 무의식 층이 겹겹이 가로막고 있어 ‘자기’이 소리가 ‘자아’에게 잘 전달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자기’는 ‘자아’에게 꿈의 상징과 종교의 상징들을 통하여 그 소리를 전하려고 한다.

 

===> 인간을 어디서부터 사람이라 칭하는가. 난자와 정자가 만나 몸이 만들어지면서 한 인간이 시작된다. 영혼이 언제 들어가는지 정확한 시기는 알수 없지만, 정신과 몸이 하나인 몸이 만들어진다. 한 인간의 DNA 속에 수백 수천년동안 쌓아온 인류의 무의식이 쌓여있다고 한다. 내 생각이 단독의 생각이 아니라 보고 듣고 읽고 주위 환경에서 영향을 받고 그 동안 쌓아온 인류의 무의식까지 합해서 나의 마음이 만들어진다. 그러므로 나만의 온전한 마음이나 생각은 없는 것이다. 생각은 머리에서 나오고 마음은 오래된 습관, 무의식, 까르마이다.

 

[10]

그는 신을 가리켜 ‘위대한 위험’이라고 규정했다. 섣불리 신에게 접근했다가는 어떤 위험스런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는 법이다. 그렇게 위험스럽긴 하지만 신은 탐구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위대한 위험’인 것이다.

카를 융은 죽기 2년 전 BBC 방송과 인터뷰를 했다. 그때 기자가 융에게 신을 믿느냐고 물었다. 수백만의 시청자들은 융이 어떤 대답을 할 것인가 긴장하며 기다렸다. 융이 천천히 대답했다.

나는 신을 압니다.

 

===> 신을 믿느냐는 질문에 “나는 신을 압니다”라고 대답한 것에 가슴에 와 닿았다. 믿고 안믿고 너머 신이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안다는 것을 대답한다는 것은 그 신의 본질을 안다는 의미인가.

 

신화는 과학보다 정확하다

 

[11]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selbst: 인격의 가장 깊은 구심점) 실현의 역사다. 무의식에 있는 모든 것은 외부로 나타나 사건이 되려 하고, 인격 역시 무의식의 조건에 따라 발달하며 스스로를 전체로서 체험하려고 한다.

===> 요즘 자주 하는 생각은 이렇다. 사람은 이성적으로 행동하기보다 감성과 감정으로 행동하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내 경우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내 행동의 패턴이라든가 표현방법 이면에 나의 무의식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을 본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알고 이해하는 깊이와 넓이만큼 상대방에 대한 이해도 또한 결정된다’. 어쩌면 나의 삶은 ‘나를 깊이 알아가고 나를 이해하는 과정’이다.

 

[12-13]

인간은 자신이 제어하지 않거나 부분적으로만 지배하는 일종의 심적 과정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기 자신과 자기 생애에 대하여 최종적인 판단을 내릴 수 없다. ... 사실 인간은 모든 것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결코 알지 못한다. 한 생애의 이야기는 어떤 지점, 즉 그 사람이 기억해내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하는데, 이미 너무나 복잡하게 얽혀 있다.

 

===>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를 모른다. 어떻게 이러한 일들이 일어날까? 알수가 없다. 좁게 보면은 모든 일은 우연의 연속이지만, 넓게 우주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필연의 연속이라 한다. 나도 그렇다. 나에게 일어나는 일이 왜? 어떻게 ? 일어나는지 알 수 없다.

언제나 나에게 인생은 뿌리를 통하여 살아가는 식물처럼 생각되었다. 식물의 고유한 삶은 뿌리 속에 감추어져 보이지 않는다. 지상에 드러나 보이는 부분은 단지 여름 동안만 버틴다. 그러다가 시들고 마는데 하루살이같이 덧없는 현상이다. 생명과 문화의 끝없는 생성과 소멸을 생각하면 전적으로 허무한 느낌을 받게 된다. 하지만 나는 영원한 변화 속에서도 살아서 존속하는 그 무언가에 대한 감각을 결코 잃어버린 적이 없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사라져갈 꽃이다. 그러나 땅속 뿌리는 여전히 남아 있다.

 

[15]

나는 나 자신을 내적 사건들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다. 그것들이 내 생애의 특이성을 이루며, 나의 ‘자서전’은 그러한 내적 사건들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 일생을 사로잡은 꿈 유년시절

 

그러나 낮이 되면 새로운 위험이 숨어서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내가 나 자신과 불화를 느끼고 그것을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 그는 어렸을 때부터 동물, 식물, 흙, 바위, 산, 강, 호수와 함께하며 살았기 때문에 자연에 대한 깊은 사랑을 평생 간직했다. 하지만 그가 살았던 시골의 소박한 생활방식은 고독한 삶을 의미하기도 했다.

 

# 검은 옷을 입은 남자

[34]

남근상의 추상적 의미는, 그것이 스스로 남근이 발기되듯 수직으로 (남근 발기는 어원적으로 보면 수직이라는 말과 통함)보좌에 서 있다는 사실을 통해 나타나고 있다. 초원의 구멍은 아마도 무덤을 의미할 것이다. 무덤 그 자체는 일종의 지하사원이고, 그곳의 녹색 커튼은 초원을 연상하게 한다. 그러므로 그 커튼은 녹색식물로 뒤덮인 지구의 신비를 나타내는 셈이다. 그 양탄자는 붉은 피였다. ... 남근상phallus 에 해당하는 헬러어와 비슷한 ‘팔로스’는 빛나는, 찬란한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 남근 발기는 erection이다. “이름도 없는” 지하의 신... 남근상

& 제의적인 남근상

& 이 땅의 비밀에 입분

& 어린 시절 꿈속의 무시무시한 나무

& “생명의 숨결”이자 창조적인 충동으로 드러났다.

그가 말하는 남근상은 켈트, 독일, 그리스, 이집트, 중동과 극동 사람들이 숭배하던 강력한 남근신, 삶을 선사하는 창조적인 힘을 상징하는 신과 일맥상통한다. 융이 평생 연구한 것 중 많은 내용은 이런 원초적인 지하신에 뿌리를 두며 부성주의보다는 모성주의를 더 강조했다.

 

# 불화와 불확실성 속에서

 

[46]

‘돌 위에 앉아 있는 것이 나인가. 아니면 내가 돌이고 어떤 자가 내 위에 앉아 있단 말인가?’

===> 장자의 나비가 된 꿈을 연상하게 한다.

 

[51-52]

1920년 영국에 있을 때, 나는 유년시절의 경험을 조금도 회상하지 않은 가운데, 가느다란 나뭇가지를 가지고 서로 비슷한 두 개의 형상을 깍아냈다. 그 중 하나를 더 큰 규모로 돌에다 다시 조각한 것이 지금 퀴스나프트 우리집 정원에 서 있다. 그때 비로소 무의식이 그 작품에 이름을 부여해주었다. 그것은 ‘아트마빅투’ 즉 ‘생명의 숨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다. 그것은 유년시절의 저 유사 성적인 대상(꿈에서 본 남근상)이 한층 발전한 것으로, 이제는 ‘생명의 숨결’, 창조적인 충동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그 모든 것은 사실 외투에 싸여 ‘키스타’ 속에 감추어져 있는 일종의 카비르(kabir: 위대한 신들이라고 하는데 소인, 거인으로 묘사되며 창조적인 것, 생명의 발생과 관계가 있음)로 여겨진다. 키스타에는 생명력을 저장해두는 물품, 즉 길쭉하고 검은 돌이 갖추어져 있다. 하지만 이런 연관성은 훨씬 후에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내가 어린아이였을 때 그 일이 나중에 아프리카 원주민에게서 발견한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행해진 것이었다. 사람들은 우선 행동을 하지만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지는 전혀 알지 못한다.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거기에 대해 숙고해보는 것이다.

 

===> 그는 남몰래 나무를 깎아 5센티미터 정도의 인형을 만들어 검은색으로 칠하고 모직 코트를 입힌 후 필통을 침대 삼아 그 인형을 눕혔다. 또한 아무도 모르게 매끈하고 길쭉하며 거무스레한 돌멩이의 윗부분과 아랫부분에 색을 입혀 “영혼의 돌”을 만들었다. 그는 매우 만족스러워하며 그것을 숨겼다.

누구도 나의 비밀을 찾아서 파괴할 수 없었다. 내 마음은 편해졌고 내가 자신과 충돌한다는 고통스러운 느낌이 사라졌다.... 비밀을 간직하는 것이 내 성격을 형성하는 데 매우 강력한 영향을 끼쳤다... 작은 나무 인형과 돌은 의식적이지 않았으며, 유치하긴 하지만 나의 비밀을 형상화한 첫 번째 시도였다. 나는 늘 그것에 빠져 있었으며 그것을 파고들어야 한다고 느꼈다. 하지만 내가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는지즌 알지 못했다.

후에 융은 영혼의 돌에 대한 그의 추억이 호주 원주민이나 아프리카 토착민과 같은 고대 종족의 전통과 유사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에 따르면 그가 “영원히” 간직하고 있는 그 순간은 유년 시절의 ‘정점이며 끝“이었다.

 

* 이제 반항아가 가까이 오도다 학창시절

# 신경증 발작을 일으키다

 

[64-65]

무엇보다 나는 신비로운 세계에 몰두할 수 있었다. 그 세계에는 나무들, 물, 늪, 돌, 짐승들, 그리고 아버지의 서재 등이 속해 있었다. 모든 것이 경이로웠다. 하지만 나는 점점 더 세계로부터 멀어져가면서 어렴풋이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나는 방랑, 독서, 수집, 놀이 등으로 시간을 빈둥빈둥 보냈다. 그러면서도 나는 거기에서 행복감을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나 자신으로부터 도망치고 있음을 막연하게 의식하고 있었다.

 

===> 186년 융은 열 한 살이 되어 바벨의 중등학교에 입학했다. 비교적 자유롭고 부유한 환경을 접한 그는 자신의 경제적 빈곤을 깨닫고 “괴롭고 은밀한 부러움”을 느꼈다.

융의 마음속에 자신은 “외톨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학교생활의 따분함과 어는 날 우연히 쓰러질 일 때문에 신경증을 앓게 되어 집에 머물며 홀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쓰러지는 순간, “이제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순식간에 그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이 경험을 통해 그는 처음으로 신경증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는 반년 동안 신경증을 앓았다. 하지만 그는 아들이 간질에 걸려 자기 앞가림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아버지가 걱정하는 것을 엿듣고 나서는 “아, 그렇다면 공부를 해야겠구나”라는 가책과 깨달음으로 성실하게 공부를 하게 되었다.

 

[66-67]

모든 속임수는 끝이 났다! 여기서 나는 신경증Neurose이 무엇인지 배우게 되었다.

모든 일이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는지 차츰 기억이 어렴풋이 되살아났다. 그 수치스러운 사건 전체를 조정해온 것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그러했기 때문에 나를 밀쳐 넘어뜨린 친구에게 나는 한 번도 심하게 화를 내지 않은 것이었다. 그 친구는 이를테면 그 사건에 ‘끼워진’ 것에 불과하며 내편에서 그 사건을 간교하게 조정했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이런 일이 두 번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나는 나 자신에게 분노했고 동시에 자신을 부끄럽게 여겼다. 왜냐하면 내가 나 자신에게 옳지 않은 일을 했으며 나 자신에게 웃음거리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다른 누구 탓도 아니다. 나 자신이 가증스러운 탈영병이었다!’ 그후로 부모님이 나를 염려한다거나 동정하는 어조로 나에게 말하는 것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신경증은 나의 또 다른 비밀이 되었다. 그런데 그것은 부끄러운 비밀, 일종의 패배였다. 그럼에도 신경증은 나를 결국 아주 꼼꼼한 사람으로 만들었고 특히 부지런한 사람이 되게 했다. 그럴 무렵 나는 성실해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내가 무언가 덕을 보려고 하는 외관상의 성실성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을 위한 성실성이었다. 나는 공부를 하기 위해 규칙적으로 아침 5시에 일어났다. 때로는 학교에 가기 전에 새벽 3시부터 아침 7시까지 공부한 적도 있었다.

 

나는 다른 길로 유혹한 것은 혼자이고 싶은 열망, 고독이 주는 황홀감이었다. 자연은 내게 경이로 가득 찬 대상으로 보였고 나는 거기에 깊이 빠져들고 싶었다. 돌 하나, 식물 하나, 그 모든 것이 생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고 형용할 수 없는 듯이 여겨졌다. 그 무렵 나는 자연으로 빠져들면서, 말하자면 자연의 본질 속으로 숨어들면서 모든 인간세계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다.

 

*너는 누구냐?

[68]

한순간 갑자기, 지금 여기에 ‘내’가 있다는 의식과 함께, 내가 짙은 구름 속에서 막 빠져나온 듯한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안개의 벽 같은 것이 나의 등 뒤에 있었고, 그 벽 너머에는 아직 ‘나’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순간 ‘나에게 내가’ 생겨났다. 이전에도 내가 존재하고는 있었으나 모든 일이 단지 우연히 일어났을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이제 여기 있고, 내가 이제는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전에는 무슨 일을 할 때 내가 옆으로 밀려나 있었으나 지금은 ‘내’가 스스로 하고자 한다.

 

[72]

나는 뒤 시대에 살고 있고 서로 다른 두 개의 인격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이 결과에 혼란을 느끼고 깊이 숙고하게 되었다.

 

[85]

돌은 불확실한 것도 없고 자기를 알려서 전하려는 욕구도 없다. 돌은 영원하며 수천 년 동안 살아 있다.‘ 나는 생각을 이어갔다. ’이에 반해 나 자신은 단지 지나가는 일시적 현상에 불과하다. 급히 타올랐다가 꺼지는 불꽃처럼 가능한 온갖 종류의 감정에 불살라지고 있을 뿐이다.‘ 나는 내 감정들의 집합이었으며, 내 안의 다른 존재는 시간을 초월한 돌이었다.

 

# 자연과 사원

[90-91]

나는 나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이며, 참다운 인간이라는 것을 인식했다. 그리하여 나는 또 다른 존재, 즉 제2의 인격의 방해받지 않는 평온과 고독을 추구했다.

나의 전생애에 걸친 제1의 인격과 제2의 인격 간의 대립은 일반적으로 의학에서 말하는 그런 ‘분열’과는 아무런 여관이 없다. 그와 반대로 그것은 누구에게나 일어나고 있다. 무엇보다 종교는 오래전부터 인간의 제2의 인격, 즉 ‘내적인간’에 대해 말해왔다. 제2의 인격은 내 생애에서 주역을 맡았으며, 내부에서 나에게로 다가오려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항상 길을 열어주려고 노력했다. 제2의 인격은 전형적인 형상인데도 대개 의식이 가진 이해력으로는 사람이 제2의 인격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알아가기에는 역부족이다.

 

===> 자신의 “비밀”을 터놓고 말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십 대의 융은 내적으로는 그의 제2인격인 “신의 세계”와 “영원”을 외로운 고립상태에 빠뜨리고 외적으로는 제1인격을 드러냈다. 학구적으로 변한 융은 철학 서적을 왕성하게 읽었고 아버지와 자주 대립했으며 더 이상 교회에 다니지 않았다. 1895년에는 바젤 대학교에 장학금을 받고 입학했다.

 

# 두 인격의 어머니

[95]

나는 내가 책임을 져야 하며 내 운명을 어떻게 만들어가느냐 하는 것은 나에게 달렸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96]

내가 바라는 것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바라는 것을 내가 행하도록 정해져 있다는 확신을 그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모든 결정적인 일에서 인간들과 함께 있는 것이 아니라 홀로 하느님과 함께 있다는 느낌을 자주 갖게 되었다. 내가 더 이상 혼자가 아닌, ‘그곳’에 있을 때면 언제나 나는 시간을 초월해 있었다. 나는 수백 년의 세월 속에 있었으며, 그때 답을 준 자는 이미 항상 있었고 지금도 항상 있는 존재였다. 그 ‘다른 인물’과의 대화는 나의 가장 심오한 체험이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피흘리는 전투면서 또 한편으로는 극도의 황홀경이었다.

 

[101]

‘진정한 인식’은 본능에서 비롯되거나 타인과의 신비로운 교제에 기인한다. 그것은 비개인적인 관조행위를 통해 보는 ‘배후의 눈들’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102]

내가 전혀 알 수 없는 어떤 일을 갑자기 알게 되는 일이 내 생애에서 자주 일어났다. 그 인식은 마치 나 자신의 착상인 것처럼 나에게 다가왔다.

 

# 악의 기원

[113]

나에게는 자아라는 요소에 서로 모순되는 두 개의 측면, 즉 제1의 인격과 제2의 인격이 있었다. 그리고 이런 형태든 저런 형태든 자아는 뭔가 극히 한정되어 있었다. 자아는 또한 온갖 자기기만과 오해, 기분, 감정, 열정 그리고 죄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자아는 성공보다는 실패를 훨씬 많이 겪었다. 자아는 유치하고 허영심이 강하며, 이기적이고 고집이 세며, 애정결핍이며, 탐욕스럽고 공정하지 못하며, 민감하고 게으르며, 무책임하며 그어ㅚ 나쁜 것들 투성이었다. 유감스럽게도 자아는 덕과 재능이 많이 결여되어 있었다. 나는 덕과 재능을 다른 사람들에게서 보게 되면 시샘하면서도 경탄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하느님의 본질을 이런 자아와 유사하게 상상할 수 있단 말인가?

 

# 칸트와 쇼펜하우어를 읽다

[128] 인간은 이해하지 못하면 흥분하기 마련이다.

 

[128]

제1의 인격과 제2의 인격 사이의차이점을 잘 보지 못하고, 제2의 인격의 세계를 나 자신의 개인적 세계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나 자신 이외에 다른 무언가가 거기 있다는 의미심장한 느낌이 늘 있었다. 그것은 마치 별들과 끝없는 우주의 장엄한 세계의 숨결이 나에게 닿는 것 같았으며, 또한 오래전에 죽었으나 아직도 영겁의 시간 속에서 존재하는 사람의 영혼이 보이지 않게 몰래 방 안으로 들어와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이런 종류의 급전은 누멘(Numen; 신성한 힘)의 후광에 둘러싸여 있었다.

 

[129]

내 마음 깊은 곳을 암시하는 모든 것은 나에게 고통이 되었다.

 

[131]

식물계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한 장소에 묶여 있었다. 식물들은 무엇을 의도하는 일도 없고 이탈하지도 않으면서 신의 세계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생각까지 표현했다. 나무들은 특히 신비로웠으며 나에게는 생명의 불가해한 의미를 직접적으로 구현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므로 숲은 사람들이 생명의 심오한 의미와 그 경이로운 작용을 가장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장소였다.

 

이와 같은 인상은 내가 고딕양식의 대성당들을 알게 됐을 때 더욱 심화되었다. 그런데 거기서는 우주의 무한함, 의미와 무의미의 혼돈, 주관없는 의도성과 기계적인 법칙의 혼란 들이 돌속에 감추어져 있었다. 돌은 존재의 끝없는 신비, 영혼의 진수를 내포하고 있었으며 동시에 그 자체이기도 했다. 그 점에서 나는 돌과 나 자신이 서로 유사하다고 어렴풋이 느끼게 되었다. 다시 말해 죽은 것과 살아 있는 것 그 양쪽에 다 신성이 깃들어 있는 것이었다. 그 당시에는, 이미 말한 바와 같이, 나 자신의 감정과 예감을 눈에 보일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나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일이었다.

 

[136]

나는 가난이라는 것이 불리한 점도 아니며 고통의 주된 원인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행복과 불행은 용돈의 액수보다 더 깊은 원인에 의해 좌우되었다.

 

[138]

‘신의 세계‘라는 표현이 어떤 사람에게는 감상적으로 들리겠지만 나에게는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모든 ’초인간적‘인 것들, 눈부신 빛, 심연의 어두움, 시공의 무한성이 지닌 차가운 무감정, 비합리적인 우연세계의 으스스한 괴기성 등이 ’신의 세계‘에 속했다. ’신‘은 나에게는 모든 것이었지, 단지 ’교화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 자연과학 vs. 신의 세계

[144]

습관에 따라 정기적으로 교회에 가는 사람들은 ‘세속적인 사람들’보다 서로 교제하는 ‘유대관계’가 약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세속적인 사람들은 물론 그다지 고결하지는 못했으나 그 대신 훨씬 호감가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자연스러운 감정을 지녔고 신자들보다 더 사교적이고 명랑하고 따뜻하면서 진실했다.

제2의 인격 안에서 나는 지금이라는 시간과 여기라는 공간을 초월해 있었다. 그리고 나 자신은 천개의 눈을 가진 우주에서 하나의 눈으로 여겨졌으나 지상에서는 조약돌 하나도 움직일 수 없었다.

 

# 여행과 환상, 매력적인 모험의 세계로!

[147]

그러나 이제 반항아가 가까이 오도다.

그 음료는 술이므로...

 

[159]

식물은 뽑아서 말라버리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물은 살아 있는 존재로서 오직 성장하여 꽃을 피우는 데 의미가 있었다. 그것은 숨겨진 비밀스러운 의미, 일종의 신의 뜻이었다. 식물은 외경심을 가지고 대해야 하며 철학적인 경탄을 가지고 바라보아야만 했다. ... 식물은 분명히 순진무구한 신성한 상태에 속해 있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식물을 방해하지 않는 것이 더 나을 것이었다.

 

* 아름다운 시간들 대학시절

# 파우스트와 요한복음

 

[170-171]

내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 나는 그 형체가 ‘브로겐의 유령(높은 산에서 비쳐오는 햇빛으로 관찰자의 그림자가 짙은 안개 속에 비쳐보이는 현상)’임을 즉각 알아차렸다. 그것은 소용돌이치는 안개에 내가 들고 가는 불빛으로 비친 나 자신의 그림자였다. 나는 또한 그 작은 등불이 나의 의식이라는 것과 그것이 내가 지닌 유일한 빛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 자신의 인식은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위대하고 유일한 보물이었다. 그것은 어둠의 힘에 비하면 한없이 작고 약했으나 그래도 하나의 빛이었고 나의 유일한 빛이었다.

이 꿈은 나에게 심오한 계시와도 같았다. 그때 나는 제1의 인격이 빛을 운반하는 자이며 제2의 인격은 그림자처럼 제1의 인격을 따라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과제는 그 빛을 지키고 그 ‘투철한 생명력(제2인격)’을 뒤돌아보지 않는 것이었다. 그쪽은 다른 종류의 금지된 빛의 영역임이 틀림없었다. 나는 폭풍을 거슬러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으며, 폭풍은 끝없는 어둠의 세계로 나를 떠밀어 넣으려고 기를 썼다. 그 어둠의 세계에서는 사람들이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의미심장한 비밀의 표피만을 지각할 뿐이었다.

 

나는 제1의 인격으로서 공부, 돈벌기, 책임, 분규, 혼란, 과실, 복종, 패배 들을 헤쳐나가며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다. 나를 향해 밀려오는 폭풍은 시간이었으며, 그것은 끊임없이 과거로 흘러가면서도 동시에 쉼없이 나를 바짝 따라붙었다. 그것은 강력한 흡인력으로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자기 속으로 탐욕스럽게 끌어들인다. 우리는 단지 앞으로 돌진함으로써 그것으로부터 잠깐 동안 벗어날 수 있을 뿐이다. 과거는 무서울 정도로 바로 여기에 실재하며, 충분한 해답으로써 몸값을 치르고 자유로워지지 못하는 자들을 모두 잡아서 끌고 가버린다.

 

===> 1895년 바젤 대학에 장학금을 받고 입학한 융. 그 해는 점차 우울증이 심해진 아버지 파울 융이 암 진단을 받고 융의 곁에서 숨을 거둔 해이기도 하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가장으로서 책임을 떠안게 된 그는 열아홉 살의 자신과는 다른 어떤 모습을 외부로 발산했다. 후에 융은 그 것을 페르소나persona라고 불렀으며 시인 예이츠는 이를 “가면”이라고 명명했다. 동료 학생들은 그의 변화에 놀라워했다. 촌스러운 책벌레였던 그가 북적이는 대학생활에 적응했고 알베르트 외리에 따르면 그는 “술통”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175]

우리 인간은 자기 자신만의 개인적인 삶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다른 면에서는 세기에 걸친 집단정신의 고도로 수준 높은 대변자요 희생물이요 후원자인 셈이다. 우리는 평생 동안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가고 있다고 여기지만, 사실은 세계라고 하는 극장 무대에서 주로 대사 없는 단역배우 역할만을 해왔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음에도 우리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사실들이 있다. 그것이 무의식적인 것일수록 그 영향력은 더욱 더 크다.

이와 같이, 적어도 우리 존재의 일부는 수세기에 걸쳐서 살아온 것이다. 그 부분을 나의 개인적인 용어로 ‘제2의 인격’이라고 일컬었다.

밖으로 나가지 말라. 진리는 내적 인간에 깃들어 있다!”

 

# 차라투스라는 니체의 파우스트

 

[193]

나는 철학강의를 통해 마음이라는 것이 그 모든 것의 기초를 이루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마음 없이는 지식도 통찰도 있을 수 없었다.

===> 융은 자신의 대학 시절을 “지거으로 살아 있는”나날이며 “우정을 쌓은 시절”이라고 표현했다. 자신이 꿈꾸는 삶을 위해 의학을 전공하기로 결심하고 이와 함께 과학, 철학, 고고학, 역사를 공부했다. 그는 플라콘, 피타고라스, 헤라클레이토스, 엠페도클레스의 철학에는 찬성했으나 토마스 아퀴나스와 스콜라 철학자들이 따른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지주의intellectualism에는 반대했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사상에서는 “생명의 숨결”을 느꼈으며 쇼펜하우어와 칸트에서도 그보다 희미하긴 했지만 그런 느낌을 받았다. 괴테의 <파우스트>는 대극들의 문제를 일깨움으로써 그에게 뚜렷한 영향을 주었다. 춸너, 크룩스와 같은 권위있는 사상가들의 저서와 스베덴보리의 “7권 전빕”을 읽은 융은 초자연적 현상이 평생 관심을 가져도 좋을 만한 새로운 연구 분야라고 확신했다.

 

수많은 책을 읽은 그는 어렸을 때 시골에서 당연하게 생각한 이야기들과 동일한 초자연적인 사건들이 전 세계의 여러 문화에서 보고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죽음을 예견하는 꿈, 죽음이 찾아올 때 시계가 멈추는 현상, 폭풍과 지진을 예지하는 동물들, 귀신에 대한 경험 등이 그것이었다. 융의 가족사를 보면 신통력이 있는 사람들이 여러 세대에 걸쳐 있었다. 그이 사촌 헬레네 프라이스 베르크 역시 그러했는데 융은 그녀를 영매로 삼아 강령회를 열고 연구했다. 집에서는 멀쩡했던 식탁이 아무 이유 없이 돌로 쪼개졌고 서랍 속의 칼은 네 조각으로 부서졌다. 이 일들을 계기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이상하고 의심스러워 보였던 심령론자들을 관찰하면서 객관적인 심리현상을 처음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 나는 그것이 매우 흥미롭고 매력적인 가능성이라고 생각했다. 이를 통해 나의 삶에는 새로운 차원이 추가되었으며, 세상에는 깊이와 배경이 생겼다.

 

[195]

아무튼 시간과 공간 그리고 인과관계의 한정된 범주를 넘어서는 사건이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은 전대미문의 일도 아니요 세상을 뒤흔들 만한 것도 아니었다. 날씨나 지진을 미리 알아차리는 동물들도 있고, 어떤 사람의 죽음을 일러주는 꿈, 임종시에 멈춰버린 시계, 결정적인 순간에 부서진 컵 들도 있었다. 그것들은 그때까지의 나의 세계에서는 당연하다고 여겨지던 일들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그러한 일들에 관해 들은 유일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 정신의학에서 길을 찾다

[210]

정신의학에서만,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두 흐름이 합류하여 그 합해진 물의 힘으로 스스로 물길을 내어 흘러갈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내가 사방으로 찾아 헤매었으나 발견하지 못했던, 생물학적 사실과 정신적 사실에 관한 공동경험의 장이 있었다. 정신의학은 자연과 정신의 충돌이 실제 사건이 되는 결정적인 분야인 셈이었다.

 

[211]

미치 두 개의 강물이 합류하여 세차게 흘러가면서 먼 목적지로 나를 가차 없이 실어가는 것과도 같았다. ‘통합된 이중성’이라는 고양된 감정에 힘입어 나는 마법의 파도를 탄 것처럼 시험을 치러냈고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다.

 

상처입은 자만이 다른 사람을 치유할 수 있다!

# 환자들

[223]

나는 무의식으로부터 이른바 직접 정보를 얻었다.

===> 25살이 된 융은 취리히의 부르크휠즐리 병원에서 원장의 조교로 “몇 년간의 수습 기간”에 들어갔다. 그는 빠르게 진급을 거듭하여 병원의 부원장이 되었으며 취리히 대학의 강사로 임명되기도 했다. 조발성 치매(정신분열증)와 콤플렉스에 대한 그이 혁신적인 논문은 미국을 중심으로 큰 관심을 끌었으며 이를 계기로 개인 환자들이 생겼다.

부르크휠츨리 병원의 조교로 일한 스물다섯 살의 융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환자들과 그들이 정신질환을 가까이에서 관찰했다. 당시 다른 의사들과 달리 그는 환자들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직접 듣고 그들의 환상의 배경에 집중했음 그들의 꿈에 관해 논의했고, 그 과정에서 단어연상검사를 개발했다.

 

[225]

정신의학 사례 중 많은 경우 환자는 말하지 않은 사연을 가지고 있으며 대개 그것에 대해 아무도 모른다. 내가 보기에는 개인적인 사연을 조사한 다음 비로소 진정한 치료가 시작된다고 여겨진다. 그것은 환자의 비밀이며 바로 거기서 좌절되고 만 것이다. 동시에 그것은 치료의 열쇠를 지니고 있다. 의사는 단지 그 비밀스러운 사연을 어떻게 알아내는가를 터득해야만 한다. 의사는 증상만이 아니라 그 사람 전체를 꿰뚫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 환자들을 연구하면서 나는 망상과 화각에 의미의 싹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신병의 이면에는 그 사람의 인격, 살아온 역사, 일정한 형태의 희망과 소망이 있었다.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잘못은 우리에게 있다... 우리는 사실상 정신병 환자들에게서 새롭거나 전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본성 저변을 만나는 것이다.

모든 치료에서 문제는 증상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전체에 있다. 우리는 인격 전체를 다룰 수 있는 질문들을 던져야 한다.“

 

[241]

환자를 연구함으로써 나는 피해망상과 완각이 일종의 의미의 핵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나의 인격, 하나의 인생사, 하나의 희망과 욕망이 그 배후에 있었다. 우리가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건 단지 우리의 문제일 뿐이다. 나는 정신병에 보편적인 인격심리학이 감추어져 있다는 사실과, 여기서도 오랜 인류의 갈등이 재발견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다. 우둔하고 감정없이 멍청하게 행동하는 듯한 환자들의 마음속에도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는 훨씬 많은 일, 훨씬 의미있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사실 우리는 정신병에서 새로운 것이나 미지의 것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자신의 존재의 바탕과 마주치게 된다.

 

# 꿈의 분석

[250-251]

마음은 정말 신체보다도 더욱 복잡하고 접근하기 어렵다. 마음은 이를테면 세계의 절반으로, 우리가 그것을 의식할 때에만 존재하게 된다. 그러므로 마음은 단순히 개인적일 뿐만 아니라 세계의 문제이며, 정신과의사는 전체 세계에 관여해야 한다.

모든 것은 우리의 마음이 제대로 기능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달려있다.

 

그런데 정신치료자는 단지 환자만을 이해해서는 안된다. 그와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은 의사 자신이 자기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련의 필수조건은 이른바 교육분석이라고 일컬어지는 자기분석이다. 환자의 치료는 말하자면 의사로부터 시작된다. 의사가 자기 자신과 자신의 문제를 다룰 줄 알고 있을 경우에만 환자에게도 그것을 가르칠 수 있다. 반드시 그래야만 된다. 교육분석에서 의사는 자기 자신의 마음을 인식하고 진지하게 다루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의사가 그 일을 할 수 없다면 환자도 이를 배우지 못한다. 의사가 배워 알지 못한 마음의 한 부분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이, 환자 역시 마음의 한 부분을 잃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교육분석에서 의사가 개념체계를 습득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의사는 피분석자로서 분석이 바로 자기 자신과 관계된 것임을 알아야 한다. ... 의사가 자기 자신을 바치지 않고는 치료할 수 없는 사례들이 많이 있다. 치료에서 중요한 고비를 맞았을 때, 결정적인 것은 의사가 자기 자신을 드라마의 한 부분으로 보느냐 아니면 스스로를 자기 권위로 씌워버리느냐 하는 것이다. 인생의 심각한 위기에서는, 다시 말해 죽느냐 사느냐가 문제인 중대한 순간에는, 암시의 잔꾀 따위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때 의사는 그 전존재가 도전을 받게 된다.

 

[252]

우리는 의식으로만 반응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무의식이 이 상황을 어떻게 체험하고 있는가?” 하고 항상 자문해보아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꿈을 이해하도록 노력하고 세심한 데까지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자기 자신을 환자와 마찬가지로 관찰해야 한다.

 

[253]

의사는 그 자신이 고통을 당할 경우에만 효과를 얻는 법이다. ‘상처 입은 자만이 치유할 수 있다.’ 그러나 의사가 체면persona을 갑옷처럼 두르고 있으면 그는 아무런 효과도 얻지 못하게 된다.

 

[253-254]

“고해신부 역할을 해줄 아버지 같은 사람이나 어머니 같은 사람을 가지도록 하시오!” 여성들은 그런 일에 대단한 재능이 있다. 여성들은 대개 뛰어난 직관과 정확한 비판력을 지니고 있으며, 남자의 비밀스러운 의향을 간파할 줄 알고, 경우에 따라서는 남자의 아니마Anima가 꾸미는 음모까지 꿰뚫어볼 줄도 안다. 여자들은 남자가 보지 못하는 측면을 본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남편이 초인이라고 확신하는 부인은 한 사람도 없는 것이다!

 

[254-255]

“당신은 분석자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습니까? 그것은 당신ㅇ이 우선 당신 자신을 알아가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당신 자신이 치료의 도구입니다. 당신이 올바르지 않다면, 어떻게 환자가 올바르게 되겠습니까? 당신이 확신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어떻게 환자를 확신시킬 수 있겠습니까? 당신 자신이 진정한 재료가 되어야만 합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큰일입니다.! 환자를 잘못 인도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먼저 당신 자신을 분석하는 일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 집단무의식의 원형에 대하여

[259-260]

남편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는 부인들이 질투심이 많아 남편의 교우관계를 깨뜨리는 일은 흔히 일어나는 법이다. 모든 질투의 핵심은 사랑의 결여에 있다.

 

[260-261]

다음날 그 환자가 자살했다는 전보를 받았다. 그는 총으로 자살을 했다. 나중에 나는 탄환이 그의 뒷머리에 박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러한 경험에서 중요한 점은 원형적인 상황(이 사례에서는 죽음이라는 상황이지만)과 관련하여 종종 관찰되는 전형적인 동시성 현상이다. 무의식에서 시간과 공간을 상대화함으로써 나는 전혀 다른 곳에서 실제로 일어난 어떤 일을 지각할 수 있었다. 집단 무의식은 모든 사람에게 공통된 것으로, 고대에서 ‘만물의 공감’이라고 불렀던 것의 기초다. 이 사례에서는 나의 무으식이 내 환자의 상채를 알고 있었던 셈이다.

 

[270]

문제는, 신화의 상실을 견디지 못하고, 외적인 것에 불과한 세계, 즉 자연과학의 세계상으로 향한 길을 찾을 수 없고, 지혜와는 조금도 상관없는 언어의 지적인 즉흥연주로 만족할 수도 없는 사람들이다.

우리 시대에 이와 같이 마음의 분열로 희생된 자들은 단지 ‘스스로 택한 신경증 환자들’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의 표면적인 증상은 자아와 무의식 사이에 벌여져 있는 틈이 메워지는 순간 사라진다. 이러한 분열을 자신에게서 깊이 느끼고 있는 의사는 무의식의 심적 과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며, 심리학자가 빠지기 쉬운 자아팽창의 전형적인 위급상황을 피할 수도 있을 것이다.

 

[271]

영혼은 개념들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행위와 사실들 가운데 깃들어 있다. ... 그러므로 내가 경험한 바로는, 습관적인 거짓말쟁이들 외에 가장 어렵고 배은망덕한 환자는 소위 지식인들이다. 그들이야말로 한쪽 손이 하는 일을 다른 손이 전혀 모른다. 그들은 일종의 구획심리학을 계발한다. 감정에 의해 조절되지 않는 지성으로 모든 일을 처리하려고 한다. 그런데도 그들은 신경증을 앓고 있다.

나의 피분석자들과의 만남에서, 그리고 그들과 나의 환자들이 나에게 끝없는 이미지의 연속으로 펼쳐보였던 정신현상과의 대면에서 나는 엄청나게 많은 것을 배웠다. 단지 어떤 학문적인 지식이 아니라, 무엇보다 나 자신의 본성에 대한 통찰을 얻게 되었다. ... 나의 생애에서 가장 아름답고 큰 성과가 있었던 대화들은 이름없는 사람들과의 대화였다.

 

* 프로이트와의 만

# 이론적인 불화

 

[278]

사람은 인생을 거짓 위에 세울 수 없다...

“프로이드가 말하는 것이 진리라면 나는 그와 함께 할 것입니다. 연구를 제한하고 진리를 숨기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나는 경력 따위는 중요하게 생각하게 여기지 않겠습니다.”

 

===> 융은 자신의 삶에서 “진정 중요하다고 생각한 최초의 사람” 지그문트 프로이드와 함게 미국에서 돌아오고 있었다. 잘츠부르크에서 국제정신분석확회가 열린 다음 해인 1909년이었다. 둘은 매사추세츠 클라크 대학의 초청을 받아 강연을 했고 그곳에서 명예 법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융은 아내에게 편지를 썼다.

이제 내 이름이 새겨진 법학박사학위가 있소. 매우 뜻깊은 일이오... 프로이드도 매우기뻐하고 있는데 기뻐하는 그를 보니 진심으로 흐뭇하오.

스위스에서 성공을 거둔 중견 의사이자 작가이며 강연자인 융은 프로이드를 지지하는 것이 자신의 학문적 명성에 타격이 있음에도 시대를 앞서 가는 그를 수년간 공개적으로 옹호했다. “화려한 고독”속에 있던 프로이드는 20세기를 갓 넘어선 기기에 빈에서 정신분석학회를 창설했다. 프로이드의 이름을 “최대의 증오”대상으로 만든 유년기 성적 본능에 대한 연구결과가 발표된 1905년의 일이다.

1900년대 초반 융은 프로이드의 획기적인 저서 <꿈의 해석>을 읽고 “이 모든 것이 그의 생각과 연결되는 원리를 발견했다.” 그는 자신의 연구에서 프로이드의 글을 인용하기 시작했다. 융이 프로이드에게 자신의 저서를 보낸 후 1906년부터 두 사람은 서신을 왕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융이 보낸 첫 번째 편지에서부터 융과 프로이드 간의 큰 의견 차는 이미 예견되어 있었다.

 

[284]

자기가 자신의 가장 나쁜 적이 되어 있는 경우, 그 사람의 신랄함보다 더 지독한 신랄함은 없을 것이다. ... 프로이드는 왜 자신이 성에 관한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해야만 하는지, 왜 그러한 생각이 자신을 그토록 사로잡고 있는지 한 번도 자문해보지 않았다. ‘해석의 단조로움’이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도피, 혹은 아마도 ‘신비주의적’이라고 불릴 수도 있는 자신의 또 다른 면으로부터의 도피를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는 전혀 깨닫지 못했다. 그가 그러한 측면을 인정하지 않는 한, 그는 결코 자신과의 일치에 이를 수 없었다.

 

[285]

프로이드의 심리학이 니체의 권력우상화를 보상하는 정신사의 교묘한 책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287-288]

동양에서는 ‘니르드반드바(Nirdvandva: 양쪽으로부터의 자유)’를 말한다. 나는 이것을 명심하고 있다. 마음의 진동추는 바른 것과 그른 것 사이가 아니라 의미와 무의미 사이를 왔다갔다 한다. 신성한 힘은 사람을 극단으로 잘못 인도하는데 그 위험성이 있다. 그것은 작은 진리를 진리의 전부인 양 여기도록 하고 작은 잘못을 치명적인 잘못으로 여기도록 한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어제의 진리가 오늘의 허위가 되며, 그저께 잘못된 결론으로 간주되던 것이 내일은 하나의 계시가 될수도 있다. 이럴진대 우리가 실제로 아는 것이 너무도 적은 심리학적인 사실들에서는 더욱 그러하지 않겠는가. 덧없을 정도로 작은 의식이 어떤 것을 인식해주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무엇을 뜻하는지 우리는 아직도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288]

나는 프로이드의 예지precognition와 초심리학parapsychology 전반에 대한 의견을 흥미 있게 들었다. 1909년 빈으로 그를 찾아갔을 때 그 두 가지에 대한 그이 ㅣ의견을 무렁ㅆ다. 유물론적 편견이 있는 그는 그 질문들이 모두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며 답을 하지 않았다. 나의 실증주의는 너무 얄팍해서 그의 날카로운 반을에 반박하기가 어려웠다. 그가 초심리학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주술적” 현상이 실재함을 인정하기 몇 년 전 일이다.

 

프로이드가 그런 식으로 반응할 때 나의 몸에서 흥미로운 반응이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나의 횡경막이 마치 철로 되어 있기라도 하듯 붉게 달아올라 새빨간 하늘이 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 순간 우리 옆에 있던 책장에서 아주 큰 폭발음이 들렸다 .깜짝 놀란 우리는 책장이 우리 쪽으로 쓰러질 것 같은 두려움을 느꼈다. 나는 프로이드에게 말했다. “보십시오. 이것이 소위 촉매에 의한 구체화 현상의 예입니다.

“그런 허튼소리 그만하게”라고 그가 소리쳤다.

“제가 곧 한 번 굉음이 날 거라고 말씀드리면 제 주장이 증명되겠지요.” 그 말을 내뱉자마자 아까와 같은 폭발음이 책장에서 발생했다. 오늘날까지도 그렇게 확신한 까닭을 나도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나는 소리가 다시 나리라는 점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알고 있었다.... 프로이드는 겁에 질려 나를 바라보았다. .. 그 후 그는 나를 불신하게 되었고 나도 그를 거역하는 어떤 일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리비도의 변환과 상징

 

[295]

“하지만 나의 권위를 위태롭게 할 수는 없어” 그 순간 그는 권위를 상실하고 말았다.

프로이드는 개인적 권위를 진리보다 더 내세웠다.

[307]

자연(본성)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물론 신경증적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310]

나의 주요한 관심은 성의 개인적인 의미와 생물학적인 기능을 넘어서서 그것의 정신적인 측면과 신성체험적인 의미를 탐구하고 설명하는데 있었다. ...

성은 지하세계의 영의 표현으로서 아주 중요하다. 그 영은 ‘신의 또 다른 얼굴’, 즉 신의 이미지의 어두운 면이다. 지하세계의 영의 문제는 연금술의 사고세계를 탐구한 이후로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 내 안의 여인 아니마

# 신화와 환상

 

[316]

그무렵 나는 이상하게도 명료한 정신상태 속에서 내가 걸어온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았다. 나는 생각했다. ‘너는 이제 신화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를 가졌다. 그리고 무의식으로 들어갈 수 있는 모든 문을 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때 내 안에서 속삭이는 소리가 있었다. “무엇 때문에 모든 문을 열려고 하는가?”

 

[318]

내가 할 수 있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나 자신의 환상에 주의를 기울이며 기다리는 것밖에 없었다.

===> “프로이드와 각자의 길을 걷게 된 후 나에게 불확실한 내면의 시기가 시작되었다. 이를 방황의 시기라 해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발을 디딜 것이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완전히 공중에 떠다니는 것 같았다....”

 

[324]

8월 1일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이제 나의 과제는 분명해졌다.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났으며 나 자신의 체험이 집단의 체험과 어느 정도까지 연관이 있는지 이해하기 위해 힘써야만 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먼저 나 자신을 성찰해야 했다.

===> 환상, 꿈 내면의 목소리와 그 의미의 깨달음이 융의 의식을 강하게 내리쳤다.

어두운 동둘, 가죽 같은 피부;를 한 난쟁이, 이글거리는 붉은 수정, 흐르는 물, 떠다니는 시체... 거대하고 검은 풍뎅이,,, 갓 태어난 붉은 태양,,, 피, 그리고 굵은 핏줄기.

 

[326]

감정을 이미지로 바꾸는 그만큼, 다시 말해 감정 속에 숨어있는 이미지들을 발견하는 그만큼 내적인 안정이 생겼다. 만일 내가 감정에 나 자신을 내맡겼더라면 무의식의 내용에 의해 산산이 부서졌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는 그 무의식의 내용을 막아버릴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랬다면 어쩔 수 없이 신경증에 걸렸을 것이고, 결국 무의식의 내용이 나를 파괴했을 것이다. 나의 실험을 통해 나는 감정 배후에 숨은 이미지를 의식화시키는 것이 치료의 관점에서 얼마나 크게 도움이 되었는지 알았다.

 

#필레몬과의 대화

[335]

필레몬과 또 다른 환상의 형상들을 통해 나는 인간의 마음속에는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지는, 자신만의 고유한 삶을 지닌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필레몬은 내가 아닌 다른 힘을 나타내고 있었다. 나는 환상속에서 그와 대화를 나누었고, 그는 내가 의식에서 생각하지 않은 것들을 말했다. 나는 말하고 있는 것이 내가 아니라 그라는 것을 정확히 지각했다.

그는 내게 설명하기를, 내가 나의 생각을 만들어내는 것같이 보이지만 그의 견해로는 그 생각들이 숲속의 짐승이나 방 안에 있는 사람, 공중의 새처럼 자기만의 고유한 삶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그는 나에게 이렇게 가르쳤다. “당신이 방 안에서 사람들을 본다면 당신은 당신 자신이 그 사람들을 만들었다거나 당신이 그 사람들에게 만든 책임이 있다는 등의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차츰 나에게 정신적인 객관성, ‘마음의 진실’을 깨우쳐 주었다.

 

[338] 영혼의 치유자에서 나온 글과 함께 옮김

환상 속에서 본 팔레몬과 다른 인물들은 내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나타나 자신들만의 인생을 사는 내 정신 속의 존재들이라는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팔레몬은 내가 아닌 어떤 힘을 의미했다. .. 그는 나에게 정신의 객체성, 정신의 진리를 가르쳐주었다. .. 나는 내가 알지 못하고 내가 의도하지 않은 말을 하는 무언가가 내 안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심리학적으로 팔레몬은 우월한 통찰을 상징했다.... 그는 나에게 인도인들의 구루guru와 같은 존재였다. 사실 그는 나에게 수많은 혜안을 알려주었다.

 

마지막 환상은 융이 “카ka"라고 부른 땅속 깊은 곳에서 나온 인물이었다. 고대 이집트에서 카는 왕의 이승에서의 형체, 즉 그이 ”육체화된 영혼embodied soul"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나는 현세에 있는 그의 모습을 그리면서 하체는 돌로, 상체는 청동으로 표현했다... 카의 모습에는 악마적인 무언가가 있었다... 그는 “내가 바로 신들을 금과 보석 속에 묻는 존재”라고 말하고 있다.

필레몬은 한쪽 다리를 절었지만 날개 달린 영혼이었다. 반면 카는 지상에 있는 악마의 일종이었다... 필레몬은 영혼의 측면, 즉 “의미”를 상징했다. 카는 ... 자연의 영혼이었다... 카는 모든 것을 실재하도록 만들었지만 ‘의미“, 즉 물총새의 영혼을 희미하게 만들거나 그것을 아름다움으로 바꾸어 버렸다....

이윽고 나는 연금술 연구를 통해 두 존재를 통합할 수 있었다.

 

[341]

우리가 어떤 것을 이야기하려고 마음만 먹는 것과 그것을 실제로 적어놓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나는 편지를 쓰면서 될 수 있는 한 정직하려고 노력했다. 옛 그리스 격언을 따른 것이었다.

“네가 가지고 있는 것을 버려라. 그러면 받으리라.”

 

# 죽은 자를 향한 일곱 가지 설법

[345]

삶을 대체할 만한 완전한 언어는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언어가 삶을 대체하려고 시도한다면 언어뿐 아니라 삶도 망가지고 말 것이다. 무의식의 전제의 횡포에서 자유를 얻으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지적인 작업을 완수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윤리적 의무를 갖는 일이다.

 

“외람되게도 저 문을 열어젖혀라.

사람마다 통과하기를 주저하는 저 문을.....“

<파우스트>

 

[34-347]

니체는 내면의 사상세계 외에는 어무것도 소유하지 않았기 때문에 현실의 발판을 잃어버렸다. 사실 그가 자신의 내면세계를 소유했다기보다 오히려 내면세계가 그를 소유한 셈이었다. 그는 뿌리가 뽑혀 땅 위를 떠돌아다녔다. 그리하여 그는 과장하는 습성이 생기고 비현실성에 빠졌다.

그런 비현실성은 내가 가장 혐오하는 것이었다. 나는 저 세상이 아닌 이 세계의 삶을 살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토록 방황하고 침체되어 있던 때이긴 하지만, 내가 체험한 모든 것은 나의 실제적인 삶과 연결됨을 나는 항상 알고 있었고 삶의 의미를 폭넓게 채우고자 노력했다. 나의 좌우명은 ‘도전에 맞서 싸워라!’였다.

 

[356-357]

만다라가 참으로 무슨 의미인지 나는 차츰 깨달아갔다. 그것은 ‘형성, 변환, 영원한 마으의 영원한 재창조’였다. 그리고 그것은 ‘자기’, 즉 인격의 전체성이었다. 모든 것이 잘돼가면 조화로우나 자기기만은 결코 용남하지 않는 것이었다.

나의 만다라그림들은 날마다 새롭게 나타나는 ‘자기’상태와 연관되는 암호와 같은 것이었다. 그 속에서 나는 자기, 즉 나의 전체성이 활동하는 것을 보았다.

 

만다라는 이 단자를 표시하며 정신의 소우주적 성질에 해당했다.

“이 과정은 나를 어디로 인도하는 것인가? 어디에 그 목표가 있는가?”

만다라를 그리기 시작하면서 나는 그 모든 것, 내가 걸어온 모든 길, 나의 모든 발걸음이 하나의 점, 즉 중심점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만다라가 중심이라는 사실이 더욱 분명해졌다. 그것은 모든 길의 표현이다. 그것은 중심을 향한 길, 즉 개성화의 길이다.

 

[357-358]

내가 중심과 자기에 대한 생각을 확증하게 된 것은 몇 년 후(1927) 한 꿈을 통해서였다. 그 핵심을 나는 하나의 만다라로 표현했는데, 이것을 ‘영원에 이르는 창’이라 불렀다. 이 그림은 <황금꽃의 비밀>에 재연되었다.

이러한 우연의 일치, 즉 동시성을 기념하기 위해 나는 그 만다라 밑에 다음과 같은 문구를 적었다. “1928년 내가 난공불락의 황금성이 있는 이 그림을 그렸을 때, 프랑크푸르트에서 리하르트빌헬름이 황금빛 성, 죽지 않는 몸의 맹아에 관한 천 년 묵은 오래된 중국 경전을 보내오다.”

 

* 연금술을 발견하다

연금술을 배워서 알게 되고 나서야 비로서 무의식이 하나의 과정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그리고 무의식 내용에 대한 자아의 관계에 의해 정신의 변환과 발달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의식과 무의식의 관계

 

[367]

연금술에서 가장 중요한 여성상징의 하나는 물질의 변환이 완성되는 그릇이었다. 나의 심리학적 발견의 핵심도 이와 같은 내면의 변환과정, 즉 개성화였다.

 

[368]

내가 잘 모르는 그 부속건물은 내 인격의 일부, 즉 나자신의 한 측면이었다.

 

[372-373]

나는 곧 분석심리학이 연금술과 기묘하게 일치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역사 없이는 심리학, 특히 무의식의 심리학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람들은 그이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이 생덩하는 실체로서 초개인적인 과정이며 원형세계의 위대한 꿈이라는 것을 인상깊게 지각하게 된다.

나의 생애는 하나의 과제, 하나의 목표로 가득 채워져 있었고 그것으로 통합되어 있었다. 즉 인격의 비밀을 밝히고자 하는 과제요 목표였다.

 

[375]

유형에 관한 책은 한 인간의 모든 판단은 그의 유형에 의해 제약되며 모든 관점은 상대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주었다.

 

[377]

예컨대 나는 인간의 본능을 에너지 과정의 여러 표현으로 여기며, 열이나 빛 들과 유사한 힘으로 본다.

 

[380]

녹색 금은 연금술사들이 인간뿐 아니라 무기물에도 존재한다고 여긴 생동하는 본성이다. 그것은 생명의 혼, 즉 ‘세계혼’ 또는 ‘대우주의 아들’, 전세계에 살아 있는 ‘안트로포스Antropos'를 표현하고 있다. 이 혼은 무기물에게까지 부어진다. 그것은 금속에도 돌에도 존재한다. 그러므로 나의 환상은 그리스도 형상이 물질 속에 있는 그의 유사물, 즉 대우주의 아들과 합일한다는 사실을 보여준 셈이었다.

[396] <아이온.에서 다루어진 그리스도 문제는 결국 안트로포스, 즉 위대한 인물의 출현현상, 심리학 용어로 말하면 ‘자기’ 현상이 각 개인의 체험 속에서는 어떻게 나타나는가 하는 문제로 귀착되었다.

 

# 성배전설과 동물 상징

 

[388]

동물들은 말하자면 신들의 그림자의며 그 성질 자체가 밝은 이미지와 연결되어 있다. ‘그리스도의 작은 물고기’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 자신이 물고기임을 보여주고 있다. 즉, 영혼의 치유가 필요한 무의식적인 본성을 지닌 심령들이다.

또한 물고기 실험실은 교회의 영혼 구제와 동일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상처입은 자가 자기 자신에게 상처를 입히듯이 치료자는 자신을 치유한다. 특기할 일은 꿈에서 결정적인 활동이 죽은 자에 의해 죽은 자에게 행해진다는 사실이다. 즉, 의식 너머의 세계, 무의식에서 그런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398]

오늘날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일찍이 내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이토록 성공을 거둔 것이 무척 놀라운 일입니다.” 그런데 나에게 늘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내가 말해야만 했던 것이 말해졌다는 사실이다. 나는 가능한 것이면 무엇이든 했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다. 물론 더 많이 더 훌륭하게 해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내 능력의 범위를 벗어나는 일이다.

 

* 아, 내 가슴에 두 영혼이 살고 있다

#죽은 자들과 소통하는 곳

 

[403]

1955년 아내가 죽은 후에 나는 나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내 의무를 느꼈다. 볼링겐 집 식으로 말하면, 나는 양쪽 탑 사이에 아주 낮게 기어들어가 있는 가운데 건물부분이 이를테면 나 자신이나 나의 자아를 표시한다는 것을 문든 발견했다.

 

[404]

처음부터 탑은 나에게 성숙의 장소였다. 즉, 그 안에서 내가 현재의 나, 과거의 나, 미래의 나로 다시 존재할 수 있는 자궁, 모성적 이미지의 장소였다. 탑은 내가 돌 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것은 미리 예감했던 것의 실현, 즉 개성화의 표현으로 여겨졌다. 청동보다도 오래갈 기억의 징표였다. 그것은 나의 존재에 대한 긍정처럼 느껴져 나에게 유익한 영향을 끼쳤다. 건축작업을 하는 동안에는 단펀적으로 그때그때 구체적으로 필요한 것들만 좇아서 일을 했다. 그래서 내적인 연관성을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 말하자면 일종의 꿈속에서 탑을 지은 셈이었다. 나중에야 비로소 나는 그것들이 결과적으로 의미있는 형태, 즉 정신적 전체성의 상징을 이루에 된 것을 알았다. 마치 오래전에 뿌린 씨가 싹이 트는 것처럼 그 일이 전개되었다.

 

[405]

나는 전기를 쓰지 않고 벽난로와 화덕에 손수 불을 지핀다. 저녁에는 옛날 등잔에 불을 붙인다. 수도도 없이 나는 펌프로 직접 물을 긷는다. 장작을 패고 음식을 요리한다. 이런 단순한 일은 사람을 단순하게 만든다. 그런데 단순해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볼링겐에서는 고요함이 나를 에워싸고 사람은 ‘겸허하기 그지 없는 자연과의 조화 속에서’ 산다. 수세기를 거슬러 올라가는 생각들, 그에 따라 먼 미래를 내다보는 생각들이 머리에 떠오른다. 여기서는 창조의 고통이 완화되며 창조성과 유희성이 거의 하나로 어울린다.

 

[406]

여기 돌이 있네, 보잘 것 없는 것.

값도 아주 싸고.....

바보들로부터 무시당할수록

현자들로부터는 더욱 사랑을 받는다네.

-연금술사 아르날두스 드 빌라노바, (1313년 죽음) 의 가틴어 시구절-

 

이것은 내가 돌에 새겨넣은 최초의 글이다. 이 글은 무지한 자들로부터 경멸당하고 배척되는 연금술사의 돌을 묘사하고 있다.

시간은 어린이다. 어린이처럼 놀며 장기를 둔다. 어린이의 왕국, 이것은 우주의 캄캄한 곳을 두루 다니며 별처럼 깊은 곳에서 빛나는 텔레스포로스다. 그는 태양의 무에 이르는 길. 꿈의 나라에 이르는 길을 인도한다.

 

나는 고아, 혼자다. 그런데도 어디서나 발견된다. 나는 하나의 존재, 그러나 나 자신과 대립하는 존재다. 나는 젊은이인 동시에 노인이다. 나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모른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나를 물고기처럼 깊은 곳에서 끄집어올려야만 하므로, 아니면 하얀 돌처럼 하늘에서 떨어지므로, 숲과 산에서 나는 두루 쏘다니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인간의 가장 깊은 곳에 숨어 있다. 나는 누구를 위해서도 죽지만 시간의 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마침내 나는 아르날두스 드 빌라노바의 시구절 아래에 라틴어로 ‘1950년 C.G. 융의 75회 생일을 기념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것을 만들고 여기에 세우다’라고 새겼다.

 

[410]

자연은 조화로울 뿐만 아니라 무섭도록 모순되고 혼돈스럽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 음악 역시 그러했다. 물과 바람 소리 같은 음률의 흐름이었고 도저히 말로 펴현할 수 없을 정도로 신비로웠다.

 

[411]

깬다는 것은 현실을 자각한다는 뜻이다. 그 꿈은 현실과 같은 상황을 연출하여 일종의 깨어있는 상태를 만들어놓는다.

[412]

나의 체럼을 이렇게 설명할 수도 있겠다. 그것은 고독현상으로, 외적인 공허와 정적을 사람들 무리의 이미지로 보상하려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것은 똑같이 보상적인 현상인 은자의 환각에 해당할 것이다.

 

# 카르마

[415]

융가는 본래 불사조를 문장으로 삼았다. 불사조는 ‘젊음’ ‘청년’ ‘회춘’ 들과 연관이 있음이 분명하다.

 

[420-422]

어리석고 앞을 내다볼 줄 모르는 철학자 파우스트는 자신의 어두운 측면, 자신의 음흉한 그림자 메피스토텔레스와 맞닥뜨렸다.

우리의 마음은 신체와 마찬가지로 조상 대대로 이미 존재해온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다. 개별적인 인간의 마음에서 ‘새로운 것’이란 아득한 옛날의 구성요소들이 끝없이 변화하여 재결합된 것이다. 그러므로 신체나 마음은 현저하게 역사적 성격을 띠고 있으며 새로운 것, 즉 방금 생겨난 것 속에서는 알맞은 자리를 찾지 못한다. 다시 말해서 조상의 특징들은 그 속에 단지 부분적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우리의 정신이 필요로 하는 바도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중세와 고대, 원시시대가 아직도 끝난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와 반대로 우리는 발전의 분류로 휘말려들어가 거친 폭력으로 미래를 향해 밀려가고 있으며, 그럴수록 우리는 더욱 우리의 뿌리로부터 떨어져나가게 된다.

옛것이 한번 피괴되면 그것은 대부분 아예 없어지고 만다. 그리고 파괴적인 전진은 결코 그칠 줄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바로 이러한 관계성의 상실이며 근원과의 단절로서 ‘분화 속의 짜증’과 성급함을 야기한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발전의 역사가 아직 전체적으로 완성되지 않은 현재에 사는 대신 미래에 살며, 황금시대가 오리라는 터무니없는 약속에 의지한다. 사람들은 점점 깊어지는 결핍감과 불만, 초조감에 사로잡힌 채, 새로운 것을 향해 아무 제지도 받지 않고 돌진하고 있다.

 

사람들은 현재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살지 않고 미래의 약속에 의지하여 살고 있으며, 현재의 빛 속에서 살지 않고 미래의 어둠속에서 살고 있다. 사람들은 그 어둠속에서 적절한 때에 해가 솟아오르기를 기대하고 있다.

사람들은 모든 좋은 것이 나쁜 것들의 대가로 얻어진다는 사실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보다 큰 자유에 대한 희망은 국가에 대한 예속의 증대로 사그라들고 만다. 가장 눈부신 과학의 발견이 우리에게 끔찍한 재앙을 가져온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버지들이 찿던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면 못할수록 우리도 그만큼 더욱 우리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온힘을 다하여 개인의 근원과의 단절이 심화되도록 부추긴다.

 

그러면 각 개인은 집단의 한부분으로 단지 ‘중력의 혼(니체가 말한 집단정신)’을 따라 가게 된다.

앞을 향한 개현, 즉 새로운 방법 또는 ‘묘안’을 통한 개혁은 지금 당장은 확실하겠디만 길게 볼 때는 의심스러우며 어떤 경우에도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된다. 그것들은 전체적으로 인간의 즐거움, 만족 또는 행복을 증가시키지 못한다. 그것들은 대부분 실재의 허울좋은 사탕발림에 불과하다. 예를 들면 시간을 단축하는 조치들은 아주 불쾌한 방식으로 속도만 빠르게 하여 이전보다 더 시간이 부족하도록 만들고 있다. 그래서 옛스승들은 항상 이렇게 말하곤 했다. “모든 성급함은 마귀에게서 나온다.”

 

그에 반해 역행을 통한 개혁은 일반적으로 비용이 덜 들고 더 오래가는 법이다. 왜냐하면 그 개혁은 보다 단순하고 확실한 과거의 길로 돌아가며 신문, 라이오, 텔레비전, 그 외 겉으로 보기에 시간을 아낄 만한 온갖 신기술을 최대한 적게 이용하기 때문이다.

 

[423]

우리의 내적인 평안과 만족은, 개체를 통하여 인격화된 역사적 가족이 우리 현재의 덧없는 상황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따라 거의 대부분 좌우된다.

 

* 여행

# 북아프리카, 순진한 인류의 청소년기로!

 

[431]

시계라는 것은 소위 중세 이래로 시간과 그 동의어인 진보가 유럽인에게 슬며시 들어와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그 무엇을 그들로부터 빼앗아갔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그들은 짐을 가볍게 하고 불확실한 목표를 향해 점점 더 속력을 올리며 여행을 재촉하고 있다. 그들은 중량의 상실과 이에 따른 공허를 열차, 기선, 항공기, 로켓과 같은 성과물의 환상으로 보상하고 있다. 이런 것들은 빠른 속력으로 인해 유럽인으로부터 존재의 지속성을 더욱더 빼앗아가고, 더 나아가 유럽인을 속도와 폭발적인 가속도로 이루어진 또 하나의 다른 현실로 옮겨놓는다.

 

[439]

살아있는 정신구조에서는 단순히 기계적인 방식으로 일어나는 일은 없다. 모든 것은 전체적으로 관리되며 전체와의 관계성속에서 일어난다. 그것은 특정한 목적과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의식은 전체에 대한 조망이 없으므로 대개 이러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선 사실확인으로 그쳐야 하며, ‘자기의 그림자’와의 충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관한 회답은 앞으로 진전되는 미래의 연구에 맡겨두어야 할 것이다.

# 푸에블로 인디언, 자기 자리에 있는 사람들

[441]

다른 사람으로 인하여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모든 것은 나 자신에 대한 인식할 수 있도록 해준다.

 

[443]

나는 그(옥비에 비아노-산의 호수라는 뜻)에게 왜 백인이 모두 넋이 나간 사람들이냐고 물었다. 그가 대답했다. “그들은 머리로 생각한 것을 말하오.”

나는 놀라서 물었다. “그건 당연한 거 아닌가요? 당신은 어디서 생각하오?”

우리는 여기서 생각하오.” 그는 자신의 심장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444]

우리의 문장 방패를 장식하는 온갖 독수리와 그 밖의 맹수들은 우리의 실제 본성에 잘 어울리는 심리학적인 표본들이다.

 

[451]

지식은 우리를 성숙하게 해주지 않고 오히려 우리가 이전에 살던 신화적인 세계에서 더욱 멀리 떨어지게 한다.

 

[452]

인간의 제의적 행위는 신이 인간에게 끼치는 영향에 대한 응답이며 반응이다. 그것은 아마도 그 이상의 것, 즉 적극적인 ‘실현’. 주술적 강요이기도 할 것이다. 인간이 신의 압도적인 작용에 충분히 응답할 수 있으며 반재로 신에게조차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느끼는 것은 인간 개인을 형이상학적 요소로 지닌 위엄에까지 이르도록 고양하는 자부심이 아닐 수 없다. 비록 무의식적인 암시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신과 우리’라는 이러한 동등한 관계가 인디언들의 저 부러워할 만한 의젓함의 근거가 되고 있음이 확실하다. 그러한 인간은 문자 그대로, 참으로 자기 자리에 있는 사람인 것이다.

 

# 케냐와 우간다, 아프리카의 고독을 겪다

[457]

연금술에서는 “자연이 불완전하게 둔 것을 예술이 완전하게 만든다”라고 말한다. 인간이 내가 보이지 않게 창조행위를 하고 있는 그 세계를 비로소 객관적 실재로 완성되도록 해주었다. 사람들은 이러한 행위를 창조주의 몫으로만 돌려왔다....

인간은 창조의 완성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서 세계를 비로소 객관적 실재가 되게 하는 두 번째 세계창조자인 것이다.

 

[463]

그들의 직관적인 인식방법 가운데 하나는 상대방의 말씨, 몸짓, 걸음걸이를 기가 막히게 흉내내면서, 이런 방식으로 상대방이 되어 보는 것이었다. 나는 그들이 다른 사람의 감정의 특성을 꿰뚫고 있는 데 놀랐다.

 

[475]

엘곤의 의식에서는 일출 순간 신성시되는 태양에의 봉헌이 분명 중요한 것이다. 봉헌하는 것이 침이면 그것은 원시적 관념으로는 자기 자신의 ‘마나’, 즉 치유력과 매력과 생명의 힘을 포함하고 있는 물질이다. 봉헌하는 것이 입김이면 그것은 로호. 즉 아랍어로는 루흐, 히브리어로는 루아흐, 그리스어로는 프뉴마라고 하는 바람과 혼을 뜻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행위는 “나는 신에게 나의 살아 있는 혼을 드립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된다. 그것은 행위로 표현하는 말없는 기도로, 이렇게 말하는 것과도 같을 것이다. “주여, 당신의 손에 나의 영혼을 맡기나이다.”

 

[477]

아디스타는 호루스와 같이 떠오르는 태양이며 빛인 반면, 아이크는 어둠이며 불안을 만드는 존재인 것이다.

그 두 대상은 동일한 힘과 중요성을 지닌다. 왜냐하면 낮이든 밤이든 그것이 지배하는 시간은 분명히 각각 열두 시간씩 지속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가장 의미있는 것은 적도의 어둠속에서 돌발적으로 첫 햇살이 섬광처럼 분출하는 순간이다. 그 생명력 넘치는 빛 속에서 밤은 사라지고 만다.

 

[478-479]

그 무렵 나는 마음속에 태초로부터 빛에 대한 동경이 깃들어 있다는 것과 태초의 어둠에서 빠져나오고자 하는 절실한 갈망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거대한 밤이 오면, 모든 것은 빛에 대한 말할 수 없는 그리움과 깊은 우수의 음조를 띠게 된다. 이것은 원시인의 눈빛에 들어 있고 또한 짐승의 눈에서도 볼 수 있다. 짐승의 눈에는 슬픔이 배어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이 짐승의 혼인지 혹은 저 태초의 존재가 표현하는 간절한 마음인지 알지 못한다.

 

이것이 아프리카의 분위기이며 그곳의 고독에 대한 체험이다. 그것은 태초의 어둠이며 모성적인 비밀이다. 그러므로 아침마다 태양의 탄생은 흑인들을 압도하는 경험이 된다. 빛이 되는 순간, 그것은 신이다. 그 순간이 구원을 가져다준다. 그것은 순간의 원초적 체험이다. 우리가 태양이 신이라고 생각할 때 이미 그 체험은 상실되고 망각되는 것이다. “우리는 유령들이 돌아다니는 밤이 이제 지나간 것이 기쁩니다!”라고 하면 그것은 단지 합리화에 불과하다. 사실은 자연의 밤보다도 그와는 전혀 다른 어둠이 그 땅을 짓누리고 있다. 그것은 헤아릴 수 없는 수백만 년 동안 언제나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존재했던 정신적인 원초적 밤이다. 빛에 대한 동경은 의식에의 동경인 셈이다.

 

# 인도, 이방의 문화에서 유럽의 뿌리로!

 

[489]

오직 나 자신으로 살아야 하고, 나의 내면이 말하는 것이거나 본성이 내게 가져다 주는 것으로 살아야 한다.

 

[490]

기독교인은 선을 추구하면서도 악에 빠진다. 이에 반하여 인도인은 선과 악의 바깥에서 자신을 느끼거나, 명상이나 요가로써 이러한 상태에 이르려고 한다.

 

[491]

나에게는 해방이란 것이 없다. 내가 소유하지 않고 내가 행하거나 체험하지 않은 그 어떤 것들로부터도 나를 해방시킬 수 없다. 진정한 해방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행했을 때, 내가 온전히 나 자신을 헌신하여 철저히 참여했을 때 비로소 가능한 법이다. 내가 참여하지 않고 물러서면 거기에 해당하는 영혼의 부분을 그만큼 절단하는 셈이 된다. ...

자신의 열정의 지옥을 통과하지 않은 사람은 결코 그것을 극복하지 못한다.

 

[492]

탑은 바닥에서 꼭대기까지 아주 음란한 조각들로 덮여 있었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들이 자신들의 카르마를 먼저 갚지 않고 어떻게 스스로를 정화할 수 있겠습니까?”

다르마를 의식하고 실행하지 않고는 어떠한 정신적 정화에도 참여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앎의 단계에 이르러 그 위에 서 있기 때문이지요.

 

[495]

나는 부처의 삶을 개인의 인생 전체를 통해 스스로를 주장한 ‘자기’의 실현으로 이해했다. 부처에게 ‘자기’는 모든 산을 넘어서, 특히 인간실존과 세계의 정수를 나타내고 있다. 그것은 하나의 세계로서 존재 자체의 측면뿐 아니라 세계에 의미를 부여하는 그이 인식도 함께 포괄하고 있다. 부처는 인간의식의 우주진화론적인 위엄을 파악하고 이해했음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그는 만약 누군가가 의식의 빛을 꺼버린다면 세계는 ‘무(無)’로 빠져들고 말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리스도 역시 부처와 마찬가지로 ‘자기’의 구현자다. 하지만 전혀 다른 뜻에서 그러하다. 둘 다 세상을 극복한 자들이다. 부처는 이를테면 이성적 통찰로써, 그리스도는 숙명적인 희생으로써 그 일을 이루었다. 기독교에서는 더 많이 고통을 겪는데 주안점을 두고, 불교에서는 더 많이 깨닫

고 행하는 방향으로 나간다. ...

 

부처는 통찰에 따라 행동했다. 부처는 자신의 삶을 살다가 나이 들어 죽었다. 각 사람이 니다나(Nidana: 인연)의 사슬에서 벗어나면 각자(覺者), 즉 부처가 될 수 있다고 부처 자신도 밝혔는데 말이다.

소위 ‘기독교적’ 서구는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대신 세계파괴의 가능성으로 내닫고 있다.

 

[502]

젊은 청년과 소녀 들이 산더미 같은 자스민꽃잎을 제단 앞에 뿌리며 낮은 소리고 기도문, 즉 만트라를 읊조리고 있었다. 이 꽃의 아름다움처럼 인생도 그렇게 지나가버리고 말도다. 신이시여, 나와 함께 이 제물의 은덕을 누리소서“ ...

복부나 명치는 ‘기도하지’ 않고 ‘은덕으로 가득한’ 만트라나 명상적인 ‘발성’을 만들어낸다. 그러므로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부처에 대한 경배가 아니라 깨달은 사람의 자기구원의 여러 행위 중 하나다.

 

# 라벤나와 로마, 보이는 환상과 보이지 않는 실재

 

[507]

아니마는 무의식의 인격화로 역사와 선사에 깊이 물들어 있다. 아니마는 과거의 것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남성이 그의선사에 관해 알아야 할 것들을 남성 속에서 대신 보충해주고 있다. 남성 속에 아직도 살아 있는, 이미 있었던 모든 삶이 아니마다. 아니마의 관계에서 나는 늘 나 자신이 원래 어떤 역사도 가지고 있지 않은 야만인처럼 여겨진다. 마치 이전도 이후도 없이 그야말로 무(無)에서 생겨난 자같이 생각된다.

 

* 환상들

# 생의 한계점에 이르러

 

[516]

나에게 남아 있는 그것이 바로 ‘나’라고 말이다. ‘나’는 이를테면 남아 있는 그것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나’는 나의 역사로 이루어졌으며, 그것이 참으로 나라는 절실한 느낌을 지니고 있었다. ‘나(자아)는 성취된 것과 지금까지 있었던 것의 그와 같은 묶음이다.

 

#융합의 신비

[524]

그때 나는 왜 사람들이 공간을 채우는 신성한 영의 ‘향기’에 관해 말하는지 그 까닭을 알게 되었다. 바로 이것이었다! 말할 수 없이 신성한 영이 그 방에 있었다. 그 현상을 설명한 것이 <융합의 신비>였다.

 

[525]

사람들은 ‘영원’이라는 표현을 꺼려한다. 하지만 나는 그 체험을 현재와 과거와 미래가 하나인 무시간적 상태의 지복이라고밖에 달리 일컬을 말이 없다. 시간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은 거기서 하나의 객관적 전체성으로 통합된다. 아무것도 더 이상 시간으로 쪼개질 수도 없고 시간개념에 따라 측정될 수도 없었다. 그 체험은 우선 하나의 상태, 즉 사람들이 결코 상상할 수 없는 감정상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어제와 동시에 오늘과 내일 존재한다고 어떻게 상상할 수 있겠는가? 어떤 것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고, 다른 것은 너무도 분명한 현재이며, 그리고 또 다른 것은 이미 끝난 일이었으나 그 모든 것이 그래도 하나였다. 감정이 파악할 수 잇는 유일한 것은, 시작하는 일에 대한 기대와 방금 일어난 일에 대한 놀라움, 그리고 지나간 일의 결과에 대한 만족이나 실망이 모두 포함된 하나의 총체, 다채로운 전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빠져들어 있으면서도 완전한 객관성을 가지고 지각하게 되는 형언할 수 없는 하나의 전체였다.

 

[526-528]

감정적인 유대는 대체로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한 법입니다. 감정적인 관계는 강요와 예속으로 부담을 주는 열망의 관계다. ... 이제는 나 자신의 견해를 관철하려고 애쓰지 않고 생각의 흐름에 나를 맡겼다.

나는 병을 통하여 또 다른 것을 얻었다. 그것은 존재에 대한 긍정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존재하는 것에 대한 무조건적인 ‘긍정’이었다. 주관적인 반론 없이 말이다. 현존재의 조건을 내가 보는 그대로, 내가 이해하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 자신의 본질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사람이 개성화의 길을 가는 중에, 즉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는 과오도 감수해야만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인생은 원만해지지 않을 것이다. 어떤 순간에도 우리가 과오나 치명적인 위험에 빠지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사람들은 아마도 안전한 길이 있을 거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길은 죽은 자의 길일 것이다. 그러면 더 이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겠지만, 어떻든 그건 바른 길이 아니다. 안전한 길을 가는 자는 죽은 것과 다름없다.

 

병을 앓은 후에 비로소 나는 자신의 숙명을 긍정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달았다. 그럼으로써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날 때도 자아는 굴복하지 않게 되는 법이다. 참아내며 진리를 견디며 세계와 숙명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자아가 형성되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은 패배에서도 승리를 체험하게 된다. 밖에서든 안에서든 아무것에도 방해를 받지 않는다. 자신의 고유한 연속성이 인생과 시간의 흐름을 이겨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람이 숙명의 의도를 주제넘게 간섭하지 않을 경우에만 이루어질 수 있는 법이다.

나는 또한 사람이 자기 자신 속에서 일어나는 생각들을 온갖 평가를 뛰어넘어 실제로 존재하는 어떤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했다. 옳으냐 그르냐 하는 범주는 항시 존재하지만 그것은 구속력이 없다. 왜냐하면 생각이라는 존재가 주관적인 평가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평가 또한 존재하는 생각으로서 억압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들도 전체성의 현상에 함께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후의 삶에 관하여

#꿈과 예감

 

[532]

요즈음의 비판적 이성은 다른 많은 신화적 관념뿐만 아니라 사후의 삶에 관한 관념도 없애버린 듯하다. 이런 일이 가능해진 이유는 오늘날 인간이 대부분 오로지 그들의 의식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자신들에 관해 알고 있는 지식만이 전부인 양 착각하고 잇기 때문이다. 심리학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그러한 지식이 얼마나 한정되어 있는가를 밝히는 데 어려움이 별로 없을 것이다. 합리주의 와 교조주의는 우리가 앓고 있는 시대병이다. 그것들은 모든 것을 아는 체한다. ...

공간과 시간에 관한 우리의 개념은 단지 근사치를 지니고 있을 뿐이며, 그런 까닭에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편차의 넓은 장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것들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가치가 있고 치유를 가져오는 법이다.

 

[534]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인생이 현존을 넘어서 무한정한 연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그렇게 하면 사람들은 훨씬 더 이성적으로 잘 살며 더욱 편안해질 것이다 사람은 수백 년을, 상상할 수 없는 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런데 왜 이와 같이 헛되이 분주하기만 하는가?

 

[536]

이성은 우리로 하여금 매우 좁은 한계에 매여 있도록 하며, 오직 이미 알고 있는 범위 안에서 이미 알고 있는 삶을 살도록 요구한다. 마치 사람들이 삶의 진정한 범위를 알고 있기나 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우리가 매일매일 우리 의식의 한계를 훌쩍 넘어서 살아가고 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무의식이 함께 살고 있는 것이다. 비판적 이성이 우세할수록 인생은 그만큼 통합을 이루게 된다. 과대평가된 이성은, 그것이 지배하면 개인이 궁핍해진다는 면에서 독재국가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무의식은 우리에게 뭔가를 알려주거나 영상으로 암시하면서 하나의 기회를 준다. 무의식은 어떤 논리로도 이해되지 않는 것들을 우리에게 때때로 전해줄 수 있다. 동시성현상과 예언적인 꿈, 예감 들을 생각해보라.

 

[541-542]

이성은 그가 들어갈 어두운 구덩이 외에는 아무것도 그에게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나 그 신화는 그의 눈앞에 다른 이미지를 자져다줄 수 있다. 그것은 유익을 주며 정신을 풍성하게 하는 사후세계 삶의 이미지들이다. 그가 이 이미지들을 믿거나 약간만 신뢰하더라고 그것들을 믿지 않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옳을 수도 있고 그를 수도 있다. 어쨌든 부인하즌 자는 ‘무(無)’를 향해 가는 반면에 원형의 도움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죽음에 이르기까지 생명의 발자국을 따라간다. 두 사람 다 불확실성 속에 있다. 그런데 전자는 자신의 본능을 거스르고 있고, 후자는 본능을 따르고 있다. 이것은 현저한 차이이며 후자에게 이로운 점이 있음을 의미한다.

 

# 신화, 의식과 무의식의 사이

죽은 자의 혼령들도 그들이 죽는 순간에 이르기까지 알고 있던 것만 ‘알고’ 그 외에는 모르는 것 같다. 그러므로 그들은 사람들의 앎에 참여하기 위해 인생 속으로 밀고들어오려고 애쓴다.

나는 그들이 바로 우리 뒤에 서서 우리가 어떤 회답을 자신들에게 주는지, 어떤 회답을 숙며을 향해 주는지 듣고자 하는 것같은 느낌을 자주 받는다. 내가 보기에는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살아 있는 자들, 다시 말해 그들 뒤에 살아남아서 계속 변화하는 세계 속에 존재하는 사람들로부터 자신들의 물음에 대한 희답을 얻는 것이 아닌가 싶다. 죽은 자들은 전지하나 모든 지식을 임의로 활용할 수 없고 단지 육체에 갇힌 살아 있는 사람들의 혼으로 흘러들어가는 일만 가능하다는 듯이 우리에게 묻고 있다. 그러므로 살아 있는 사람의 혼은 적어도 한 가지 면에서는 죽은 자에 비해 유리하다. 즉, 명쾌하고 결정적인 인식에 이를 수 있는 능력이 바로 그것이다.

 

[551]

어딘가에서 이미 도달하게 된 의식성의 수준은, 내가 보기에는 죽은 자가 도달할 수 있는 인식의 상한을 이룬다고 여겨진다. 아마도 그런 이유로 지상의 삶이 그토록 큰 의미를 지니며, 사람이 죽을 때 ‘저편으로 가져가는 것’이 그리도 중요한 모양이다. 오직 이곳, 대극이 서로 부딪치는 지상의 삶에서만 일반적인 의식은 고양될 수 있다. 이것은 인간의 형이상학적 과제로 여겨지는데 ‘신화화’가 없이는 단지 부분적으로만 채워질 수 있을 뿐이다.

 

[558]

시공간의 상대성 때문에 무의식은 지각만을 처리하는 의식에 비해 더 나은 정보원을 가지고 있다.

 

# 단일성과 무한성

[560-561]

서양인이 세계의 의미를 완성하고자 하는 반면, 동양인은 인간 속에서 의미의 실현을 위해 노력하며 자신으로부터 세계나 존재를 벗어버린다. 이것이 바로 부처다.

결정적인 문제는 한 인간의 카르마가 개인적인 것이냐 아니냐 하는 점이다.

내가 살아가면서 감당하고 있는 카르마가 내 전생의 결과인지, 혹은 내 속에 유산을 모아 남겨준 조상의 소산인지, 이 물음에 대해서는 나도 답을 잘 모르겠다.

 

===> 융이 자신을 “자연인”이라고 말했을 때 그는 예순여섯 살이었다. 이 시기 그는 인간의 정신에 “본성적으로 신앙심이 있음”을 인식하고 이를 심도 있게 연구한 최초의 정신의학자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논란의 대상이기도 했다. 자신을 “경험주의자”, “영혼의 치유자”로 표현한 그는 자신과 환자들의 내면을 꿰뚫어보고 그 경험을 고전과 세계문화와 연결했으며 그가 발견한 내용을 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세상에 전파했다.

편지에 그는 이렇게 적었다.

나의 주 관심사는 신경증의 치료가 아니라 신의 존재를 느끼게 하는 Numinus... 길이다. 그것이 진정한 치료이다.

융의 저작들은 다음의 사항을 가르친다.

@! 인간은 완전한 삶을 살기 위해 온전한 자아가 되어야 한다.

@! 신은 그의 창조물인 인간이 자신을 모방하고 진화하기를 바란다.

@! 온전한 인간은 공동 창조자로서 신과 소통한다.

 

[562]

나의 존재의미는 인생이 나에게 물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나 자신이 세계를 향해 던지는 하나의 물음이며, 나는 거기에 대한 나의 대답을 제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단지 세계가 주는 대답에 의지할 뿐이다. 그것은 내가 오로지 고심 끝에 인식하게 된 초개인적인 인생과제다. 아마도 그것은 나의 조상이 이미 골똘히 생각해보았지만 대답할 수 없었던 어떤 것일지도 모른다.

 

[570]

나는 깊은 충격을 받고 잠에서 깨어나 생각했다. ‘아 그렇구나. 그 사람이 나를 명상하고 있었구나.’ 그가 하나의 꿈을 꾸었는데 그것이 나다. 그가 깨어난다면 나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나는 알았다.

 

[571]

우리의 무의식적 존재가 참다운 것이며 우리의 의식세계는 일종의 환각이거나 일정한 목적을 위해 세워진 하나의 가상적 현실임을 가리키고 있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그 속에 있는 동안만 현실로 여겨지는 꿈과 같은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분명히 동양의 세계관과 무척 닮은 점이 많은데, 특히 마야(오직 정신만이 영원하고 물질세계는 환영이며 착각이라고 하는 힌두교의 오래된 신앙)를 믿는점에서 그러하다.

 

[572-574]

무의식의 통합성은 나에게는 모든 생물학적, 정신적 현상의 고유한 영적 인도자로 여겨진다. 그것은 총체적인 실현, 즉 인간의 경우 전적인 의식화를 추구한다. 의식화는 넓은 이미에서 문화이며, 그리하여 자기 인식은 이러한 과정의 정수이며 핵심이다. 동양은 의심할 나위 없이 ‘자기’에 신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고대 기독교의 관점에 따르면 자기인식은 신인식神人識에 이르는 길이다.

인류에게 결정적인 물음은 “당신이 무한한 것에 관련되어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 이것이 인생의 시금석이다. 무한한 것이 본질적이라는 사실을 내가 알 때에야 비로소 나는 결정적인 의미가 없는 하찮은 일에 관심을 쏟지 않을 것이다. 내가 그것을 모를 때는 개인적인 소유로 생각하고 있는 이런저런 지위들 때문에 무엇인가 이 세상에서 인정받기를 고집할 것이다. 아마도 ‘나의’ 재능이나 ‘나의’ 미모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

 

인간이 그릇된 소유를 고집할수록 그리고 본질적인 것을 덜 느끼게 될수록 그의 삶은 더욱더 만족스럽지 못하게 된다. 그는 한정된 견해를 가지고 있으므로 제약을 받는 듯이 느낀다. 그리고 이것은 질투와 시기를 낳는다. 우리가 이생에서 무한한 것에 이미 접속되어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느낄 때 우리의 욕구와 자세가 달라진다. 결국 인간이 가치있는 것은 오직 본질적인 것 때문에 그러하다. 우리가 그것을 갖지 않는다면 인생은 헛된 것이다. 또한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무한한 것이 그 관계 속에 나타나느냐 그렇지 않으냐가 결정적인 것이다.

 

내가 극단적으로 제약을 당할 때 비로소 무한한 것을 느끼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인간에게 가장 큰 제약은 자기 자신이다. 그것은 “나는 다만 그것에 불과하다!”는 체험 가운데 나타난다. 내가 자기 자신 안에서 아주 좁게 제약되어 있다는 의식만이 무의식의 무한성에 접속될 수 있다. 이러한 의식성에서 나는 나를 유한한면서도 영원하며 이것이면서도 저것으로서 경험한다. 내가 나를 개인적인 결합 속에서 궁극적으로 제약되어 있는 유일무이한 존재로 알게 되면서 또한 무한한 것을 의식할 수 있는 가능성도 지닌다. 오직 그러할 때에만 가능하다는 말이다.

 

* 만년의 사상

# 대극의 통합을 위하여

 

[594]

인간은 성찰하는 정신 덕분에 동물의 세계에서 빠져나오게 되며, 그는 인간 본성이 특히 의식의 발달을 높이 평가하고 있음을 그의 정신을 통하여 증명한다. 의식의 발달을 통하여 그는 자연을 소유하고 그 안에서 세계의 현존을 인식하며 이를테면 창조주를 입증한다. 이로써 세계는 현상이 된다. 의식적인 성찰 없이는 그렇게 될 수 없는 법이다.

===> 융의 지인들은 그가 자신의 심리학을 삶을 통해 몸소 보여주었다고 증언한다. 오류를 범하기 쉬운 인간인 동시에 위대한 인간이었던 그는 세속과 영성의 두 세계에서 살았다. 외적 삶과 내적 삶에서 그는 인간 본성의 자연 상태를 보았다.

융의 업적은 그의 삶에서 나왔다. 그는 자신에 대해 “나는 대극들의 충돌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오랜 생애를 살면서 양극성을 경험하고 이를 화해시켜 하나의 통합된 전체로 만드는 법을 배웠다.

그는 여든 네 살 때 그 긴 여정에 대해 말했다.

 

구름 속의 뻐꾸기 나라에서 현실로 오는 여행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가 걸은 순례자의 길에서 “나”라는 작은 흙덩어리에 손을 뻗을 수 있을 때까지 내려가려면 사다리를 천 개나 거쳐야 했다.

 

# 그런데 사랑이 없으면

[620]

사랑은 그의 빛이며 그의 어둠이며 그 끝을 예측할 수 없다. 그가 “천사의 혀로 말할지라도” 또는 과학적인 정밀성으로 세포의 생명을 가장 깊은 바탕까지 주의깊게 관찰한다고 하더라고, “사랑은 결코 그치지 않는다.” 그는 사랑에다 온갖 이름을 마음대로 갖다붙일 수 있겠지만 그는 단지 끝없는 자기기만에 빠질 뿐이다. 그가 한줌의 지헤라도 가지고 있다면 그는 무기를 내려놓고 항복하며 미지(未知)를 미지라고, 즉 신의 이름으로 명명할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열등함, 불완전성, 그리고 의존성을 시인하는 것이며 동시에 진실과 오류 사이에서 선택의 자유를 증언하는 것이다.

 

회고

[621]

나는 내 인생이 그렇게 지나간 것에 만족한다. 내 인생은 풍성했으며 내게 많은 것을 가져다주었다. 어떻게 내가 그토록 많은 것을 기대할 수 있었겠는가. 나 자신이 달라졌더라면 아마도 많은 일이 다르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되어야 하는 대로 되었다.

 

[624-625] 비밀로 가득 찬 세계

다른 대부분의 사람과 나의 차이점은, 내게는 ‘칸막이벽’들이 투명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나의 고유한 특성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 벽들이 너무 두꺼워서 그 뒤를 보지 못하므로 거기에는 전혀 아무것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어느 정도 그 배후의 과정을 인지하는 편이어서 내적 확신을 가지고 있다. 아무것도 보지 못하면 또한 아무런 확신도 갖지 못하며, 아무런 결론도 끌어낼 수 없거나 자신이 결론을 믿을 수도 없다. 나로 하여금 삶의 흐름을 인지할 수 있도록 해준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것은 아마도 무의식 그 자체일 것이다. 어쩌면 어릴 적 꿈들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것들은 내 삶의 방향을 처음부터 결정해버렸다.

 

고독이란 주변에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을 전할 수 없거나 자기는 가치 있다고 여기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황당무계한 것으로 간주될 때 생기는 법이다.

 

우리가 비밀을 가지고 알 수 없는 어떤 것에 대한 예감을 지니는 것은 중요하다. 그것은 인생을 어떤 비개인적인 신성한 힘으로 가득 채운다. 이

것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중요한 것을 놓친 셈이다. 사람은 자신이 어떤 면에서는 비밀로 가득 찬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을 감지해야 한다. 그리고 그 세계 안에서는 마음 속으로 예상되는 일뿐만 아니라 그 외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고 경험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한다. 예기치 못한 일들과 일찍이 들어보지 못한 일들이 바로 이 세계에 속하는 것들이다. 오직 그럴 때에만 삶은 온전해지는 것이다. 나에게 세계는 처음부터 무한히 크고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630] 모든 사람이 명석한데 나만이 흐리멍덩하구나 -노자

인생은 의미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또는 인생은 의미를 가지기도 하고 가지고 있지 않기도 하다.

 

[631] 편집자의 말/ A. 야페

 

그는 망원경으로 자신의 영혼을 바라보았다.

온통 어지러웠지만 그것은 아름다운 별자리처럼 보였다.

그는 세계 속에서 감추어진 세계를 그의 의식에 보태었다.

-콜리지(Coleridge)의 <노트>에서

 

Ⅲ 내가 저자라면

 

3-1. 특히, 감동적이었던 장절,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 실현의 역사다.’(9p)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selbst: 인격의 가장 깊은 구심점) 실현의 역사다. 무의식에 있는 모든 것은 외부로 나타나 사건이 되려 하고, 인격 역시 무의식의 조건에 따라 발달하며 스스로를 전체로서 체험하려고 한다.(11p)

 

인생은 의미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또는 인생은 의미를 가지기도 하고 가지고 있지 않기도 하다. (630p)

 

3-2. 인상적이고 탁월한 착안점과 보완점

 

대 제목으로 들어가기전 그 장에서 가장 의미깊은 구절을 앞에 미리 써놓음으로써 독자가 그 글귀를 다시 되새기게 했다. 자서전이 외적인 사건에 의미를 두기 보다는 내면적인 것- 꿈과 기억등을 통해 융의 생각을 집대성해서 자신의 사상으로 전개했다. 어렸을 때 꿈을 어찌 그리도 생생하게 기억하는지 융의 기억력에 감탄했다. 내적인 사건들과 꿈을 전개해 나감으로써 의미를 하나씩 해석했다. 꿈에 대한 상징들을 해석해가는 과정이 독자들에게 새로운 장을 열어주었다. 독자들이 느끼는 감정이나 설명할 수 없는 느낌들과 꿈에 대한 상징들을 독자들 스스로도 해석할 수 있는 암시를 주고 있다.

 

융에게 가장 오래동안 영향을 주었던 부인 엠마와 연인 토니와 관한 것이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개인적인 사생활을 이해함으로써 융의 이론전개 과정을 이해할 수 있었는데, 그런 부분이 왜 전혀 언급되지 않았는지? 또 다른 책 <융 영혼의 치료자>를 읽으면서 또 한번 알았다. 똑같은 내용인데도 눈에 딱 들어오게 내용이 들어오는 내용들이 있는가 하면, 편집의 미비로 같은 내용도 설렁설렁 넘어가게 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3-. 내가 저자면

 

자신의 내면 세계를 들여다보고 기억을 어떻게 그리 꿈을 그리 잘 기억할 수 있는지가 의문이다. 자신의 생애 전부를 되돌아보면서 내면세계를 자세하게 기술하고 상징들을 묘사함으로써, 눈 앞에 그림이 그려지듯했다. 나도 융을 따라서 레드북을 한번 만들어야 되겠다. 나의 세계에 일어난 일들을, 남에게 말할 수 없는 일들을 기록하고 그리고 묘사하다보면, 그 상징들을 이해할 수 있는 아리아드네의 실을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차례

옮긴이 서문/ 자서전 문학의 백미

프롤로그/ 신화는 과학보다 정확하다

 

일생을 사로잡은 꿈 유년시절

검은 옷을 입은 남자

불화와 불확실성 속에서

 

이제 반항아가 가까이 오도다 학창시절

신경증 발작을 일으키다

너는 누구냐?

자연과 사원

두 인격의 어머니

악의 기원

칸트와 쇼펜하우어를 읽다

자연과학 vs. 신의 세계

여행과 환상, 매력적인 모험의 세계로!

 

아름다운 시간들 대학시절

파우스트와 요한복음

아버지의 죽음과 궁핍한 시절

차라투스라는 니체의 파우스트

정신의학에서 길을 찾다

 

상처입은 자만이 다른 사람을 치유할 수 있다!

환자들

꿈의 분석

집단무의식의 원형에 대하여

 

프로이트와의 만

이론적인 불화

리비도의 변환과 상징

 

내 안의 여인 아니마

신화와 환상

필레몬과의 대화

죽은 자를 향한 일곱 가지 설법

 

연금술을 발견하다

의식과 무의식의 관계

성배전설과 동물 상징

 

아, 내 가슴에 두 영혼이 살고 있다

죽은 자들과 소통하는 곳

카르마

 

여행

북아프리카, 순진한 인류의 청소년기로!

푸에블로 인디언, 자기 자리에 있는 사람들

케냐와 우간다, 아프리카의 고독을 겪다

인도, 이방의 문화에서 유럽의 뿌리로!

라벤나와 로마, 보이는 환상과 보이지 않는 실재

 

환상들

생의 한계점에 이르러

융합의 신비

 

사후의 삶에 관하여

꿈과 예감

신화, 의식과 무의식의 사이

단일성과 무한성

 

만년의 사상

대극의 통합을 위하여

원형, 그 역동적인 에너지

그런데 사랑이 없으면

 

회고

비밀로 가득 찬 세계

모든 사람이 명석한데 나만이 흐리멍덩하구나

 

편집자의 말/ A. 야페

카를 구스타프 융 분석심리학 개념 및 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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