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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2일 03시 27분 등록

<북리뷰 5-1> 

                                                                                                                              2013.08.31.

                                                                                                                              : 서 은 경

 

 

 

 

(No. 16) 

 

카를 구스타프 융 지음

                 [기억, , 사상] 김영사 (2013)

 

 

 

 

                                     책표지.jpg

 

                                                                      @ 2007년 한국판 11@

 

 

 

 

                                                                                      * * *

 

카를 융.....^^ *

 

당신이 언짢게 여겼던 조부, 괴테와의 인연.

그리고 당신 어머니의 제2인격이 말해주었던 책, 파우스트!

그들의 연결 퍼즐조각들을 멋지게 풀어낸 당신처럼

 

나도 나의 가족사와 함께

나만의 숙명적 과제를 발견하고 풀어내고 싶습니다.

 

 

 *  *  *

 

 

 

 

 

 

 

 

1. 작가 소개

 

 

 

안경 걸친 융.jpg 

 

카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 1885-1952

 

 

 

융의 자서전은 그 누구의 자서전보다 친근하게 다가온다.

이 사람이 언제 태어났으며 몇 남 몇 녀의 몇 째고 무엇을 했고 누구와 몇 살에 결혼했고 무슨 일일 했고 등등 보통 말하는 이력을 말하거나 굳이 조사하지 않아도 그가 느껴진다. 이런 방식의 글쓰기가 더 그 사람 자체이고 보다 자신이 묻어나는 자서전이 아닐까 싶다.

 

깨알 같은 이력, 연대기 별로 엮은 삶의 여정들이 없어도 그가 읽어진다. ‘열정의 지옥에 빠져서 인간 내면의 세계를 고민하고 자신을 탐색한 이야기는 나에게 다가오는 또 하나의 신화 같은 이야기다. 어린 시절, 그의 열등감에서 나의 어린 시절 움츠렸던 내 몸 세포 하나하나가 느꼈던 열등감과 외로움이 위로를 받는다. 그의 환상은 나의 환상과 연결이 되어 우리가 따로 있지 않음을 느끼게 해준다.

 

그리고 현실의 삶에 뿌리를 두고 무의식 여행하고 돌아와서 모든 것을 외로이 혼자 기록하며 정리하고자 했던 그의 진념은 참으로 감동적이고 존경스러웠다. 그의 글쓰기를 보며 나도 그냥 편하게 나를 표현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를 구스타프 융이 나보다 먼저 태어나서 이 책을 남겨 주어서 참으로 고맙다.

 

그런데 나는 그를 소개해야 할 것인가?

 

그를 소개한다는 게 왜 인지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늘 저자를 소개할 때 연대기적으로 그의 인적사항과 업적을 소개했기 때문일 게다. 융인데... 의식의 껍질을 벗겨 무의식의 존재를 보여준 융인데... 평소와 똑같은 방식으로 그를 소개하고 싶지가 않다. 그냥 내게 다가온 융의 느낌을 내 마음대로 말하고 싶다.

 

 

내게 느껴지는 융

 

융은 참으로 깊고 따뜻한 눈을 가졌다.

마음을 끄는 애정 어린 눈빛. 나는 그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그의 눈은 그렇게 이야기를 한다. 그의 눈은 마음과 연결되어 있고 그 마음이 사람들의 듣는다. 융은 서둘러 결론 내리거나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는 사람마다 각각의 자기 세계가 있음을 말하고 그것에 눈높이를 맞추어 그들의 무의식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융은 예술적이다.

누구나 자기 안의 아티스트를 불러와 대화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미 그 방법을 잃어버렸거나 잊어버리곤 한다. 그는 정원을 가꾸고, 장작을 패고 돌 조각을 하고, 집을 지으며 늘 자기 손으로 뭔가를 하는 것을 즐겼다. 그는 자기 안의 아티스트와 놀 수 있는 예술가다.

 

융은 마음을 어루만지는 의사다.

존재의 암흑 속에서 헤매는 사람들에게 등불을 밝혀준 진짜 의사이다.

 

융은 과학자다.

혼란스러운 무의식 세계, 환상의 체험을 모두 해 내면서도 니체처럼 돌아버리지 않고 자기를 지켜내고 이겨내며 자신이 경험한 것을 추상적인 개념화, 법칙화, 이론화 해 낸 과학자다. 곤혹스럽고 복잡한 미친 마음을 한 올 한 올 풀어내어 정리한 과학자다.

 

융은 경험주의자다.

의식이 들어오고 의식이 나가고 무의식에 빠지고 무의식에 들어가고 이 모든 것은 경험에서 느낄 수 있다. 경험과 통찰. 자신의 경험과 타인의 경험을 잘 정리해 내고 그것에서 무언가 연관성을 찾아내며 이론화해 낸 경험주의자다.

 

융은 고마운 사람이다.

내가 나를 발견하고 찾아갈 수 있도록 안내자가 되어 준 사람이다. 그는 심리학적 유형들을 이론으로 제시하였고 그것을 바탕으로 ‘MBTI 성격유형이라는 성격분류 도구가 탄생하였다. 나는 그 도구를 만났으며 내가 사람들과 겪었던 갈등들을 심리학적 이론으로 보다 확연히 정리할 수 있었다.

 

융은 내 안에 살아있는 멘토다.

나는 꿈을 꾼다. 내 안에 흘러드는 영상들은 퍼즐처럼 의문을 남긴다. 책을 읽는다. 역사적 맥락 속에 내가 자꾸 걸린다. 자꾸 걸려든다. 목에 걸린 사과조각처럼 무언가 불편하다. 알고 싶다. 내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무엇일까? 내가 통찰해야 할 언덕은 어느 언저리쯤일까? 과거 현재 미래....그리고 나의 과거인지 조상의 과거인지 무엇인지 모를 뒤범벅된 나를 들여다본다. 울컥 무언가 올라온다. 이럴 때면 늘 심리학책을 펴 들었다. 심리학책에는 늘 융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루터기에 앉아 상담을 해준다.

 

 

 

 

대학 1학년 교양국어 시간에 융이라는 사람이 있음을 처음 알았다.

나는 그가 의사인지 심리학자인지 정신 분석가인지 아무것도 몰랐다. 다만, 신화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에게는 집단 무의식이라는 것이 있고 그것은 원형이라고 말하며 이라는 학자가 말했다는 말을 처음 들었다. 문학에도 사회학에도 여성학에도 심리학에도..... 모든 분야에 융은 스며들어 있었다. 나는 그의 이론을 접하고 공부를 했지만 그의 자서전은 이번에 처음 읽는다.

 

나는 융을 닮고 싶다.

 

 

 

 

 

 

 

2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5]

인간은 원숭이도, 암소도, 나무도 아니다.

나는 하나의 인간이다.

그런데 인간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옮긴이 서문

 

@ 자서전 문학의 백미

 

융의 제자요 여비서인 아니엘라 야페가 융의 나이 82세가 된 1957년부터 5년 가까이 그와 줄기차게 대담을 한 결과 엮어진 자서전이다.

 

[9]

86년 나이로 죽은 다음해인 1962년에 자서전이 출간되기에 이르렀다.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 실현의 역사다.’

 

자기의 소리가 자아에게 잘 전달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자기자아에게 꿈의 상징과 종교의 상징들을 통하여 그 소리를 전하려고 한다.

 

자기자아에게 보내주는 신호들을 포착해나가는 과정이 융 자서전의 중심 내용을 이루는 셈이다.

 

신의 존재를 심리학적으로 증명하려고 노력한 저서라고 할만하다.

 

[10]

BBC 인터뷰 기자왈

신을 믿습니까?

융 왈나는 신을 압니다.”

 

 

프롤로그

 

@ 신화는 과학보다 정확하다.

 

[11]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실현의 역사다. 무의식에 있는 모든 것은 외부로 나타나 사건이 되려 하고, 인격 역시 무의식의 조건에 따라 발달하며 스스로를 전체로서 체험하려고 한다.

 

 

일생을 사로잡은 꿈 -유년시절-

 

 

@ 검은 옷을 입은 남자

[26]

나중에 어머니에게 들은 얘기지만 나는 그 당시 흔한 습진으로 고생을 했다. 모의 결혼생활의 어려움을 암시하는 어두운 전조가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1878년의 나의 병은 아마 부모의 일시적인 별거와 연관이 있었을 것이다. 그 무렵 어머니는 여러 달 동안 바젤의 병원에서 지냈는데 추측컨대 그녀의 병은 결혼생활에 대한 실망에서 비롯되었던 것 같다. 당시 어머니보다 스무 살이나 많은 친척 아주머니가 나를 돌봐주었다. 어머니의 오랜 부재로 나는 무척 힘들었다

 

그 후로 사랑이라는 말을 들을 적마다 나는 항상 미심쩍은 느낌을 갖게 되었다. ‘여성이라는 말도 오랫동안 생래적인 불신감으로 다가 왔다. 아버지라는 말은 신뢰감을 주면서도 무력감을 뜻하기도 했다. 이것이 내가 인생을 출발하면서 함께 가져가야 하는 불리한 조건이었다.

 

[31]

내가 기억하는 한에서는 최초의 꿈을 우연히 꾸었다. 그 꿈은 이를 테면 일생 동안 나를 사로잡았다. 그때 나는 서너 살이었다.

 

목사관은 라우펜성 근처에 홀로 외롭게 서 있었다. 교회 관리인의 농가 뒤쪽으로는 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었다.

 

[32]

꿈에서 나는 그 초원에 서 있었다. 한순간 나는 거기서 테두리가 쳐져 있는 컴컴한 직사각형 구멍이 땅바닥에 나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전에는 그런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나는 호기심이 생겨 그 구멍으로 다가가서 그 아래를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돌계단이 저 밑으로 이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무서운 마음으로 머뭇거리면서 나는 아래로 내려갔다. 밑바닥에는 녹색 커튼으로 가려진 둥근 아치형 문이 하나 있었다. 그 커튼은 방직된 직물이나 수놓은 비단으로 만든 듯 크고 묵직하여 무척 호화로워 보였다. 그 뒤에 무엇이 숨겨져 있을까 궁금한 마음에 나는 커튼을 옆으로 밀어젖혔다.

희미한 빛 가운데 길이 10미터 가량 되는 장방형 방이 눈에 들어왔다. 둥근 천장은 돌들로 꾸며져 있었고 바닥 역시 포석들로 덮여 있었다. 중앙에는 붉은 양탄자가 입구에서 낮은 단까지 걸려 있었다. 단 위에는 말할 수 없이 화려한 황금보좌가 놓여있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붉은 방석이 보좌에 놓여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은 웅장한 보좌로 동화 속 임금의 보좌 그대로였다!

 

그 위에 무언가가 서 있었다. 그것은 천장에 거의 닿을 정도로 거대한 형상이었다. 처음에 나는 그것이 나무기둥인 줄 알았다. 그 직경은 50~60센티미터 가량 되고 높이는 4~5미터쯤 되었다.

그 형상은 기묘하게 조립되어 있었다. 피부와 살아있는 살로 만들어졌으며, 꼭대기에는 얼굴도 머리칼도 없는 둥근 공 모양의 머리 비슷한 것이 붙어 있었다. 다만 정수리에 눈이 하나 있었는데 그 눈은 미동도 하지 않고 위쪽만 응시하고 있었다.

 

창문도 없고 빛도 들어오지 않는데 방은 비교적 밝은 편이었다. 그 형상의 머리 위에는 어떤 밝은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그 형상이 움직이지 않고 있는데도 어느 순간 벌레처럼 꿈틀거리며 보좌에서 내려와 나에게 기어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두려움에 온몸이 마비되는 것 같았다. 그 견딜 수 없는 순간에 어머니의 목소리가 갑자기 바깥에서인 듯 위에서인듯 들려왔다. 어머니가 외쳤다. “자 그를 좀 보라구. 저것이 사람을 잡아먹는 것이야.”

 ---> 나의 첫 꿈은? 엷은 샤이렌 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약간 공포스런 느낌의.....? 장의차 버스와 삼베 상복.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듯 의식의 그 중간 즈음에 서 있던 나. 어린 시절에는 참으로 모든 것이 공포스럽고 두려웠다. 하지만 내 시선 너머에 있는 세상에 대해 무한한 호기심이 생겼고 늘 그것을 좇아 모험을 떠나곤 했던 기억이 난다.

 

[35]

그것은 내가 구하지도 않았는데 나에게 주어진 무시무시한 계시였다.

 

 

@ 불화와 불확실성 속에서

[42]

이런 어린이답지 않은 행동은 한편으로는 예민한 감수성과 상처받기 쉬운 성격과 연관이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특히 유년시절의 깊은 고독감과도 연관이 있었다. 누이동생은 나와 아홉살 차이가 났다.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혼자서 놀았다.

---> 민감한 감수성, 상처받기 쉬운 성격.... 특히 부모와 형제들로부터 민감한 감수성을 인정받지 못하면 상처가 크다. 나의 어린시절을 떠올리면 나를 괴롭히는 언니와 감정교감이 적었던 엄마가 떠오른다. 하지만 할머니가 계셨기 때문에 내 마음은 어루만져졌고 절에 갈 수 있었고 사찰의 자연이 있고 스님들의 따뜻한 미소가 있었기에 어린 마음을 위로 받았던 것 같다.

 

[43]

내 부모는 각각 따로 잤고, 나는 아버지 방에서 잠을 잤다. 어머니방 문에서 으스스한 기운이 뻗어나왔다. 밤이면 어머니는 심상치 않은 모습으로 신비로웠다. 어느날 밤 나는 어머니방 문에서 흐릿하게 빛을 내는 모호한 형상 하나가 나오는 것을 보았다.

---> 이런 느낌 좋아.... 일자로 늘어선 할머니의 방, 부모님의 방, 그리고 언니와 자는 내 방. 낮의 북적거림이 자자들면 어느새 집은 잠에 든다. 나는 하루하루 기도하며 밤을 이겨내고 분주하게 시작하는 집의 하루를 맞이한다.

.

[44]

그 무렵 나는 질식발작이 수반되는 가성후두염을 앓고 있었다.심인성 동기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여겨진다. 정신적인 분위기가 질식할 지경이 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 초등학교를 입학했다. 나는 남들 앞에 일어서서 책을 읽을 수가 없었다. 온 몸은 사시나무 떨리듯 떨리고 나는 아무 것도 읽어내릴 수 없었다. 만일 내가 어린시절 나의 엄마였다면 나는 나를 꼭 안아주었을 것이다. 내가 어린시절을 잘 살아낸 것은 세상을 탐색하는 모험심과 우리 할머니의 기도, 그리고 매주 찾아갔던 산골짜기 곳곳에 있던 사찰들, 그리고 가난하지만 늘 마음이 넉넉했던 친적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따뜻한 손길 때문이 아닐까?

 

 

[45]

나의 밤기도는 낮을 잘 마감해주고 편안히 밤과 잠으로 인도해주는 종교의식적인 피난처인 셈이다. 그러나 낮이 되면 새로운 위험이 숨어서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내가 나 자신과의 불화를 느끼고 그것을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나의 내적 안정이 위협을 받았다.

---> 밤의 기도. 모든 어린이가 하는 것이었을까? 나 역시 매일같이 기도를 올렸는데. 한번 물어보아야 겠다. 모두의 어린시절의 느낌이 다 그러했는지.... 남편은 어린시절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다고 말한다. 어느 책에선가 보았는데... 기억이 없음은 ??한 이유가 있다고......기억이 안 난다.

 

[48]

온갖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 다시 말해 내가 무슨 일을 저질렀거나 나의 예민한 감정이 상했을 때, 혹은 아버지의 흥분하기 쉬운 성격이나 어머니의 병약함으로 내가 침울해졌을 때, 나는 조심스럽게 싸서 침대에 뉘어놓은 남자 인형과 곱게 칠해진 미끄러운 그의 돌을 생각했다. 나는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다는 확신이 들 때만 보통 일주일 간격으로 종종 몰래 꼭대기 다락방으로 올라갔다.

 

아무도 모르고 누구의 손도 미칠 수 없는 무언가를 소유했다는 데서 오는 새로운 자신감과 만족감으로 충분했다.  

 

[50]

남자 인형의 에피소드는 내 유년시절의 정점이었으며 종결이기도 했다 그것은 1년 정도 계속되었다. 그 후 나는 서른다섯 살이 되기까지는 그 사건을 까마득히 잊고 지냈다.

 

[51]

남자 인형은 외투를 입은 고대의 작은 신으로 많은 옛날그림 속에서 아스클레피오스(의술의 신, 그의 의술로 모든 인간이 불멸의 존재가 될까 두려워 제우스가 그를 벼락으로 죽여버림) 옆에 서서 그에게 두루마리 하나를 읽어주고 있는 텔레스포로스였다.

 

이러한 회상을 함으로써 전통을 거치지 않고도 개인의 마음속으로 침투해 들어올 수 있는 영혼의 고태적 구성요소가 있다는 확신이 처음으로 나에게 생겼다. 훨씬 나중에 낱낱이 살펴본 아버지의 장서에는 그러한 정보를 담은 책이 한 권도 없었다. 아버지는 이러한 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음이 입증된 셈이었다.

 

 

이제 반항아가 가까이 오도다 -학창시절-

 

 

@ 신경증 발작을 일으키다

[66]

, 그래. 그렇다면 나는 공부를 해야만한다!’

그후 나는 진지한 아이가 되었다.

 

그 수치스러운 사건 전체를 조정해온 것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67]

신경증은 나의 또 다른 비밀이 되었다. 그런데 그것은 부끄려운 비밀, 일종의 패배였다. 그럼에도 신경증은 나를 결굴 아주 꼼꼼한 사람으로 만들었고 특히 부지런한 사람이 되게 했다. 그럴 무렵 나는 성실해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내가 무언가 덕을 보려고 하는 외관상의 성실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을 위한 성실성이었다. 나는 공부를 하기 위해 규칙적으로 아침 5시에 일어났다. 때로는 학교에 가기 전에 새벽 3시부터 아침 7시까지 공부한 적도 있었다.

 

나를 다른 길로 유혹한 것은 혼자 있고 싶은 열망, 고독이 주는 황홀감이었다.

 

 

@ 너는 누구냐

 

[72]

나는 두 시대에 살고 있고 나는 서로 다른 두 개의 인격이라는 것이었다.

 

[73]

내가 나를 조부와 동일시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소위 조부가 괴테의 서자였다는 불쾌한 전설이 전해내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 융과 조부, 엄마가 읽어보라고 권한 괴테의 파우스트....

연속성 있는 무의식적 연결됨. 집안의 역사와 까르마. 나는 특히 융의 이 대목이 와닿았다. 나의 이야기의 풀어내기 위해서 가족사를 풀어보고 싶은, 궁금한 열망들. 여자들, 여자들, 여자들.......

산소들, 산소들, 산소들..... 아버지의 죽음. 할머니.... 가슴 저려오는 기운들.

 

[78]

그러므로 그들이 죄를 지어야만 하는 것이 하느님의 의도였다. 이와 같은 생각이 나를 지독한 괴로움으로부터 해방시켜주었다. 하느님이 자신이 나를 이런 상황에 처하게 했다는 것을 이제는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하느님이 나로 하여금 죄를 범하도록 의도했는지 아닌지 잘 몰랐다. 나는 계시를 구하기 위해 기도할 생각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하느님은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를 이러한 곤경으로 밀어 넣고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은 채 방치했다. 나는 하느님이 의도한 대로, 스스로 혼자서 출구를 찾아야만 한다고 확신했다.

 

나는 이제 하느님이야말로 이런 절망적인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이라는 사실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79]

내가 안개 속에서 빠져나와 를 의식하게 된 대챡 그 순간부터 하느님의 통일성과 위대함, 그리고 초인성이 나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81]

내 아버지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을 나는 체험했다. 그것은 하느님의 의지로, 아버지는 아주 그럴 듯 이유를 대며 깊은 신앙심을 내세워 그 의지에 대항했다. 그리하여 모든 것을 치유하고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하느님의 은총의 기적을 아버지는 한 번도 체험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성서의 계명을 자신의 규범으로 삼았다. 아버지는 성서에 씌어있고, 조상들이 가르치는 대로 하느님을 믿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살아서 직접 임하시는 하느님, 성서와 교회를 넘어서 전능하고 자유로운 하느님, 당신의 자유를 인간이 누리도록 촉구하고, 당신의 요청을 무조건 실현하기 위해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견해와 신념들을 버리도록 강요할 수도 있는 하느님을 알지 못했다.

 

인간의 용기를 시험할 때 하느님은 비록 아무리 신성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전통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것을 거부한다. 하느님은 용기에 대한 그런 시험에서 악한 어떤 것이 실제로 발생하지 않도록 당신의 전능함으로 이미 보살피고 있을 것이다. 사람이 하느님의 의지를 실현한다면 그는 바른 길을 가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하느님은 또한 아담과 이브를 그러한 방법으로 창조했기 때문에 그들은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하느님은 그들이 복종하는가를 알기 위해 그렇게 했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종교적 전통으로는 내가 거부하고 싶은 것도 나에게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내게 은총을 가져다 준 것은 복종이었다.

 

[82]

내가 체험한 것은 어둡고 무서운 비밀이었다. 그것이 내 생활을 그늘지게 하고 나는 자주 멍하게 생각에 잠기곤 했다.

 

나는 또한 그 체험으로 나의 열등성을 느꼈다. 나는 나 자신을 일종의 악마 또는 돼지, 어떤 타락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열등감이 커짐에 따라 하느님의 은총은 나에게 점점 더 불가시의한 것이 되었다. 나에 대해 어떤 자신감도 가질 수 없었다........

---> 열등감에 대한 기억. 절대 나는 열등하고 싶지 않아. 타락하지 않았어 하는 외침을 하면서 안으로만 자자들었던 기억들. 그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을 듯한 마음의 무거움. 나 자신에 대한 생각들. 그것은 집안의 분위기에서 온다. 목사 아들 융의 집안 분위기도, 의사집안이고 경북 양반이었던 우리 집안의 분위기도 무언가 도덕적이고 체면이 중하고 또 당연히 공부를 잘 해야 하고 모범적으로 살아야 했던....더구나 최고의 덕목은 ’... 아들 낳기 위해 5명의 여아를 내리 생산하며 미쳐버릴듯한 삶을 일에 대한 몰두로 감정코드 끄고 살았던 우리 엄마. 나의 불안은 감정코드 꺼버린 엄마에게서 오는 것이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그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열심히 버티며 삶을 꾸려왔는지 눈물 나게 안쓰럽고 존경한다.

 

[83]

남근상에 꿈에 관해서는 내가 예순다섯 살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이야기했다. 다른 체험들은 아마 아내에게 말했을 것이나, 그것도 세월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입을 열었다. 어린시절부터 수십 년 동안 이것들에 관한 엄격한 금기가 있었다.

 

나의 청년시절 전체는 그 비밀의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 비밀로 인하여 나는 거의 참을 수 없는 고독에 빠졌다. 오늘날 생각해보니 누군가에게 그 비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유혹을 이겨낸 것이 하나의 위대한 업적이라고 여겨진다. 이와 같이 세계에 대한 나의 관계는 이미 그 당시에 오늘날과 같은 형태로 형성되었다. 오늘날에도 나는 외롭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것들, 대부분 도통 알려고도 하지 않는 것들을 내가 알고 있고 그것을 암시만 해야 하기 때문이다.

 ---> 왜 암시해야 하나? 존재의 이유를 알리고 공감받고 싶은 욕구 때문이다. 나도 외롭다. 도통 알려고 하지 않는 것들을 내가 그들에게 암시하되 감동적으로 공감받고 싶기 때문이다. 할 수 있을까? 우선 내가 내리 적는 것이 중요하다. 깡들이 적어야 한다. 적지 않으면 사라진다. 적지 않으면 내 안에만 존재한다. 표현되는 것만이 남는다!?? 왜 나는 남으려고 하는가?

 

 

@ 자연과 사원

 

[87]

나는 모든 경쟁을 싫어했다.

---> 나도 모든 경쟁을 싫어했다. 이것이 제일 힘들었다. 왜 경쟁을 해야 하나? 달리기에서도 이겨서 자만한 미소짓는 나의 3째 언니가 싫었다. 늘 이기기만을 원하는 언니가 정말 싫었다. 내가 그녀의 쌍코피를 터뜨린 사건은 정말이지 내 어린 시절의 통쾌 & 약간 두려움 느껴지는 대 사건.

 

[91]

나의 전 생애에 걸친 제1인격과 제2인격 간의 대립은 일반적으로 의학에서 말하는 그런 분열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그와 반대로 그것은 누구에게나 일어나고 있다. 무엇보다 종교는 오래전부터 인간의 제2의 인격, 즉 내적 인간에 대해 말해왔다. 2의 인격은 내 인생에서 주역을 맡았으며 내부에서 나에게로 다가오려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항상 길을 열어주려고 노력했다. 2의 인격은 전형적인 형상인데도 대개 의식이 가진 이해력으로는 사람이 제2의 인격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알아내기에는 역부족이다.

 

 

@ 두 인격의 어머니 

[100]

어머니의 두 인격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그래서 유년시절에 어머니에 대해 불안한 꿈들을 꾸는 일이 자주 있었다. 그녀는 낮에는 사랑스러운 어머니였으나 밤에는 으스스한 분위기를 풍기는 듯 했다. 그 시간 어머니는 이상한 동물이기도 한 예언자처럼 곰의 동굴에 사는 여사제처럼 보였다. 고태적이고 잔인했다. 진리와 자연과도 같이 잔인했다. 그때 어머니는 내가 자연의 마음(인간 본성에서 솟아나는 것으로, 본성 고유의 지혜를 의미하여 사물을 거침없이 말하는  특징이 있다.)’라고 불러왔던 그것의 화신이었다

---> 나도 내 딸에게 이러하다. 야누스 두 개가 말을 하여 아이가 내 눈치보며 헷갈리곤 한다. 그러면 내가 말한다. 본디 인간이 야누스적인 것이라고........엄마에게는 두 마음이 있다. 내면의 마음에 더 귀를 기울이려고 하지만 가끔 내면의 마음이 패하기도 한단다..

 

@ 악의 기원

[116]

그 무렵 어머니, 즉 어머니의 제2의 인격이 갑자기 밑도 끝도 없이 너는 괴테의 파우스트를 한 번 읽어야 된다고 말했다.

 

그 책은 내 마음에 기적의 향유처럼 흘러 들어왔다. 나는 생각했다. 드디어 여기에 악마를 진지하게 다루고 완전한 세계를 창조하려는 하느님의 의도를 방해하는 힘을 가진 적대자와 피로 계약을 맺기까지 한 자가 있구나.‘

 

[118]

나는 그 책을 읽고 파우스트가 일종의 철학자였으며, 철학에서 돌아섰음에도 불구하고 철학으로부터 진리를 위한 개방성을 분명히 배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칸드와 쇼펜하우어를 읽다

 

[131]

나무들은 특히 신비로웠으며 나에게는 생명의 불가해한 의미를 직접적으로 구현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므로 숲은 사람들이 생명의 심오한 의미와 그 경이로운 작용을 가장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장소였다.

 

돌은 존재의 끝없는 신비, 영혼의 진수를 내포하고 있었으며 동시에 그 자체이기도 했다. 그 점에서 나는 돌과 나 자신이 서로 유사하다고 어렴풋이 느끼게 되었다. 다시 말해 죽은 것과 살아 있는 것 그 양쪽에 다 신성이 깃들어 있는 것이었다.

 

[133]

헤겔은 난해하고 거만한 문체로 나를 겁먹게 해서 나는 노골적인 불신감으로 그를 대했다. 그는 마치 자신의 언어구조 속에 갇혀 그 감옥에서 거드름을 피우는 몸짓으로 돌아다니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나의 탐구가 가져다 준 큰 소득은 쇼펜하우어였다. 그는 눈에 보이도록 여실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의 고통, 그리고 혼란과 고난과 악에 대해 처음으로 이야기한 사람이었다.

 

[134]

나는 쇼펜하우어의 음울한 세계상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했으나 그의 문제해결 방법까지는 찬성하지 않았다. 그가 사용하는 의지라는 말이 사실은 신과 창조주를 뜻한다는 것과, 그가 이를 맹목적이라고 일컫는다는 것을 나는 확실히 알게 되었다.

 

[135]

이런 이유로 나는 쇼펜하우어를 더욱 철저하게 연구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그와 칸트의 관계에선 차츰 깊은 인상을 받게 되었다.

 

[137]

내가 사람들이 알 리가 없는 것들에 관해 자주 발언하거나 넌지시 의견을 말하기 때문에 그들이 나를 꺼려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그래서 허풍쟁이가 되고 구라쟁이라고 불리고 사람들을 꺼리게 되고 마음에는 상처가 생긴다. 남들이 알 수 있도록 이야기 하거나, 말은 하되 상처 받지 말고 또 말하여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찾아 나서야 한다. 그리고 비록 그들이 없어도 나는 내 생각을 잘 정리하여야 한다.

[138]

무엇보다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내 안에서 두 세계로 나누어진 분리를 지양하려는 나의 노력이 저지되고 마비되는 것이었다. 나를 보통의 일상적인 존재로부터 무한한 신의 세계로 밀어 넣는 사건들이 반복해서 일어났다.

---> 아무에게도 섣불리 말하지마. 뻗을 때를 보고 누워야 해. 이해 못하는 그들에게 눕지 마. 세상의 사람들은 다들 제각각의 우주야. 어찌 다 같을 수 있으리.

 

신의 세계라는 표현이 어떤 사람에게는 감상적으로 들리겠지만 나에게는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모든 초인간적인 것들, 눈부신 빛, 심연의 어두움, 시공의 무한성이 지닌 차가운 무감정, 비합리적인 우연세계의 으스스한 괴기성 등이 신의 세계에 속했다. 신은 나에게는 모든 것이었지 단지 교화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며 위로를 받았다. 나는 언니의 말처럼 구라쟁이도 아니었고 엉뚱하지도 않았으며 나는 늘 나의 무의식 세계, 가운데의 밝은 빛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 자연과학 VS. 신의 세계

[139]

나의 관심은 다양한 분야로 끌렸다.

 

전자에서는 동물학, 고생물학, 지리학이었고, 후자에서는 그리스 로마, 이집트, 선사시대 고고학이었다. 물론 그 무렵에는 이러한 다양한 과목의 선택이 나 자신의 이중성격과 얼마나 잘 부합하는지를 알지 못했다.

---> 생물학, 지리학, 역사, 고고학..... 늘 나를 설레게 했던 이름들. 잡다하고 넓게 퍼져있는 관심, 그리고 모든 것의 연결성. 신과 조인하는, 무의식에 들어가고자 하는 이중성격에 부합하는....ㅋㅋㅋ

 

@ 여행과 환상, 매력적인 모험의 세계로!

 

[151]

그의 아내와 자식들은 성자인 남편과 아버지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아버지가 나에게 특히 사랑스럽게 여겨진 것은 바로 그의 결점과 부족함 때문이었는데 말이다. 나는 생각했다. ‘그렇다. 어떻게 성자와 함께 살수 있단 말인가.’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기 때문에 성자는 은둔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렇지만 그의 은둔처는 집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나는 이런 생각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고 여겼다. 가족들은 한 집에 살고 나는 다른 곳, 집에서 약간 떨어진 막사에 사는 것 말이다. 나는 그 오두막에 수많은 책과 책상을 갖다 놓고, 불을 피워 밤을 굽기도 하고 불 위의 삼각받침에 수프통을 걸어놓을 것이다. 성스러운 은둔자로서 나는 더 이상 교회에 나가지 않아도 될 것이고, 그 대신 나 자신만의 개인 예배처를 갖게 될 것이다

---> 내가 실현하고 싶은 집. 나만의 집을 짓고 싶은.... 나만의 세상.

 

[152]

말을 하는 동안 나도 모르게 운명적인 이상한 감정에 싸이게 되었다. 나는 생각했다. 그녀는 이제 막 내 앞에 나타났는데도 마치 우리가 하나가 된 것처럼 자연스럽게 나와 함께 걷고 있구나. 나는 그녀를 곁눈질로 훔쳐보았다.

 

[153]

그 누가 성 클라우스로부터 어여쁜 소녀에게로 이어지는 운명의 실을 발견할 수 있단 말인가?

 

[154]

그 당시는 생각들의 갈등으로 가득 차 있었다.

 

1의 인격이 제 2의 인격이 주는 부담과 우울로부터 벗어나려고 했다. 침울해하고 있는 쪽은 제 2의 인격이 아니라, 2의 인격을 상기할 때의 제1의 인격이었다.

 

대극의 충돌로부터 내 생애 처음으로 체계적인 환상이 나타난 것이 바로 이 무렵이었다.

 

 

아름다운 시간들 -대학시절-

 

@ 파우스트와 요한복음

[164]

나는 두 개의 꿈을 꾸었다. 첫번째 꿈에서 나는 라인강변을 따라 펼쳐진 울창한 숲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나는 작은 언덕처럼 생긴 봉분으로 올라가 그 무덤을 파기 시작했다. 얼마 뒤 놀랍게도 나는 선사시대 동물의 뼈와 맞닥뜨렸다. 이것이 나의 흥미를 강하게 불러일으켰다. 그 순간 나는 자연을,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그리고 우리 주변의 사물들을 알아야만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고 나서 두번째 꿈을 꾸었는데 이번에도 나는 숲 속에 있었다. 숲 속에 수로가 뻗어 있었고 가장 음침한 곳에 빽빽한 덤불 숲으로 둘러싸인 둥근 연못이 보였다. 그것은 둥글게 생긴 동물이었는데 다채로운 색깔로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고 무수한 세포 혹은 촉수처럼 생긴 기관들로 형체가 이루어져 있었다. 직경이 약 1미터나 되는 거대한 방사선충이었다. 이 장엄한 생물이 맑고 깊은 물 속 은밀한 장소에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누워 있다는 사실은 나에게 말할 수 없이 놀랍게 여겨졌다. 그것이 나의 지식욕을 강하게 불러일으켰고,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깨어났다. 이 두 개의 꿈이 나로 하여금 자연과학 쪽으로 결정을 내리도록 밀어붙이는 바람에 그 점에서는 나의 회의가 사라졌다.     

---> 꿈을 잘 들여다보면 자신의 삶의 방향을 제시한다. 나의 꿈. 밤마다 휴전선을 건너가는 꿈. 모험을 떠나는 꿈. 여자들, 여자들, 여자들...... 꿈을 엮으면 내가 어렴풋이 보인다. 나머지 퍼즐들을 맞추고 모두 기록해야만 한다. 나도 모두 기록해야만 해.

 

[167]

이를테면 모든 사람, 즉 유력한 분들이 나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아마도 착하고 단순소박한 아버지에 대한 좋은 평판 덕을 본 것이 틀림없었다.

---> 융은 장학금 받은 것에 대한 부끄럽고 불편한 감정들, 자기를 이해 못하는 평범한(?) 어른들, 사람들에 대한 그러할 것이라는상념들.... 강한 상처. 나 역시 내 스스로 이러하리라는 상념이 강했던 적이 있다. 내 마음의 생각들....

 

(융이 묘사하는 자기)-주목 대목

나는 나 자신이 아버지와는 전적으로 다르다고 느꼈다.

 

1의 인격의 눈으로 바라본 나라는 인간은 별로 호감이 가지 않는 보통수준의 재능을 갖춘 청년으로, 허황된 야심과 세련되지 못한 거친 기질, 모호한 태도들을 지니고 있었다. 즉시 천진난만할 정도로 흥분하는가 하면, 또 금방 변덕스럽게 유치한 실망에 빠지기도 했다. 깊은 내적인 본질로는 세상에 등을 돌린 반계몽주의자였다.

 

2의 인격은 제1의 인격을 까다롭고 배은망덕한 도덕적 과제, 종결되어야 할 일종의 숙제로 여겼다. 이런 과제는 일련의 결점으로 인하여 부담이 가중되었다. 그 결점이란 때때로 부리는 게으름 의기소침, 침울, 아무도 가치를 두지 않는 이념이나 사물들에 대한 어리석은 열광, 혼자 착각하는 우정, 좁은 마음, 편견, 우리둠(수학!), 타인에 대한 이래부족, 세계관에 대한 호성과 혼란, 기독교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기독교인이 아닌 것도 아닌 이중성 등이었다.

 

[168]

2의 인격은 도저히 정의를 내릴 수 없는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투철한 생명력으로, 태어나고 살고 죽고, 하나이면서 온갖 것이요 인간성의 전체상이었다. 2의 인격은 자기 자신으로서는 냉혹할 정도로 분명했으나 무능하고 의욕이 별로 없었다 제1의 인격의 두텁고 어두운 매개물을 통하여 자신을 나타내기를 간절히 바라기는 했지만 말이다.

 

2의 인격이 우세할 때는 제 1의 인격은 제2의 인격에 묻혀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 반대로 제1의 인격은 제2의 인격을 어두운 내적 영역으로 보았다. 2의 인격이 자신을 나타낼 수 있는 표현으로 여기는 것은, 자신이 마치 세계의 언저리에서 던져져 깜깜한 무한 속으로 소리없이 가라앉는 돌멩이 같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2의 인격)의 안에는 빛이 가득 퍼져 있었다. 햇살이 쏟아지는 풍경을 향해 높은 창문들을 열어놓은 궁전의 넓은 홀과도 같았다. 거기는 의미와 역사적인 연속성이 지배하고 있었다.

그것은 인접한 환경과 실제적으로는 접촉점을 갖지 않는 제1의 인격 인생의 서로 연관없는 우연성과는 큰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2의 인격은 파우스트 속에 인격화된 바와 같이 중세와 은밀한 일체감을 느꼈고, 아마도 괴테의 심금을 깊이 울렸을 흘러간 시대의 유산과도 그러한 일체감을 느꼈다. 그러므로 괴테에게도 제2의 인격은 하나의 실재였다. 이 사실은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 융의 제1, 2인격에 대한 묘사는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그 누구에게도 보통은 말할 수 없었던, 말하면 불편해할 것 같은 내 안의 무엇을 융이 대신 쏟아내어 설명해주었다. 나는 그와 일체감을 느끼며 그에게 위로를 받는다. 2의 인격은 하나의 실재다. 아니, 2의 인격 속에 하루종일 살고 가끔 제1의 인격으로 의무를 다한다. 특히 요즘들어서 나는 제 2의 인격에 살며 사람들을 별로 만나고 싶지 않고 나만의 집, 자연이 있는 공간에서 머물고 싶다. 2의 인격에 귀 기울이며... 내가 나인가? 꿈 속의 내가 나의 실재인가, 현실의 내가 나인가? 꿈 속에 살고 가끔 현실에 돌아다니는 게 나인데....

 

 

그 무렵 다소 충격적으로 깨달은 바지만 <파우스트>는 내가 좋아하는 <요한복음> 그 이상의 으미를 지나고 있었다. <파우스트> 속에는 내가 직접 공감할 수 있는 뭔가가 생동하고 있었다. <요한복음>의 그리스도는 나에게 낯설었는데, 그보다 더 낯선 것은 공관복음서에 나타난 구원자였다. 이에 반해 파우스트는 제2의 인격의 살아있는 등가물이었으며 나는 괴테가 그 시대에 제공한 해답이 바로 파우스트라는 사실을 확신했다. 이러한 통찰은 나에게 위안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내적 안정감과 인류 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확신을 더욱 강하게 해주었다.

 ---> 통찰..... 나는 통찰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아픈 가슴에 양 손을 교차하여 올리고 깊은 통찰에 들어간다. 나의 슬픔은 어디서 오는 걸까? 통찰 속에서 오는 깨달음. 깨달음은 무지에 대한 자각. 낳고 슬픔의 원인은 드러난다. 그리고 그 슬픔은 한계 지워지며 나에게서 떨어져 객관화되고 그것은 멀리 멀리 소멸한다. 모든 인류가 제 2의 인격이 있고 집단 무의식이 있고 이중적 갈등을 앓고 있고 불안하며 긴장하고 강박적으로 힘들 때가 있다는 것. 그것이 실상이고 그것의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융, 괴테....그리고 석가모니...... 통찰의 힘.... 내적안정감을 주는 고마운 자들이다. 그들이 있기에 세상은 살 맛이 있다.

 

[169]

이 무렵 나를 놀라게 하면서도 용기를 북돋워준 잊을 수 없는 꿈을 꾸었다. 어떤 낯선 거리에서 밤중에 나는 거센 폭풍을 맞받으며 힘들게 앞으로 나가고 있었다. 게다기 짙은 안개가 가득 끼어 있었다. 나는 당장이라도 꺼질 듯한 작은 등불을 들고 양손으로 감싸고 있었다. 그런데 모든 것은 내가 이 작은 등불을 살리느냐 살리지 못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갑자기 내 뒤에서 뭔가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뒤돌아보니 검은 형체가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나는 무서웠지만 어떤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나의 작은 등불을 밤과 바람을 뚫고 지켜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170]

이 꿈은 나에게 심오한 계시와도 같았다. 그때 나는 1의 인격이 빛을 운반하는 자이며 제2의 인격은 그 빛을 지키고 그 투철한 생명력(2의 인격-옮긴이)을 뒤돌아보지 않은 것이었다. 그쪽은 다른 종류의 금지된 빛의 영역임이 틀림없었다. 나는 폭풍을 거슬러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으면 폭풍은 끝없는 어둠의 세계를 나를 밀어놓으려고 기를 썼다.

 

나는 제1의 인격으로서 공부, 돈벌기, 책임, 분규, 혼란, 과실, 복종, 패배 들을 헤쳐나가며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다. 나를 향해 밀려오는 폭풍은 시간이었으며, 그것은 끊임없이 과거로 흘러가면서도 동시에 쉼 없이 나를 바짝 따라붙었다. 그것은 강력한 흡인력으로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자기 속으로 탐욕스럽게 끌어들인다. 우리는 단지 앞으로 돌진함으로써 그것으로부터 잠깐 동안 벗어날 수 있을 뿐이다. 과거는 무서울 정도로 바로 여기에 실재하며, 충분한 해답으로써 몸값을 치르고 자유로워지지 못하는 자들을 모두 잡아서 끌고 가 버린다.

---> 꿈을 꾼다. 파도치는 꿈. 늘 바닷가 옆에 집이 있다. 파도가 밀려오고 집을 덮치려고 한다. 하지만 단 한번도 덮쳐지거나 파도에 부서진 적은 없다. 아슬아슬할 뿐이다. “나를 향해 밀려오는 폭풍의 시간이었으며이 문구가 내게 와서 박힌다.

 

[172]

2의 인격은 사실 일종의 유령이었다. 세계의 어둠에 맞설 만큼 힘이 커진 혼이었다.

 

[174]

어린아이는 어른들의 말보다는 주위 분위기의 헤아릴 수 없는 미묘한 것들에 대해 훨씬 더 잘 반응한다. 어린아이는 그 분위기에 무의식적으로 적응한다. 즉 어린아이 마음 가운데 보상(補償)적인 성격의 상호작용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의식이 필사적으로 그 힘에 저항하면 할수록 그 그림자는 더욱 길어졌다. 미리 내다보는 아버지의 예감이 그를 불안한 상태로 몰아갔고 그 불안이 당연히 나에게까지 미쳤다는 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다.

 

나는 이러한 영향이 어머니로부터 발단되었다는 느낌은 전혀 받지 않았다. 어머니는 어쨌든 눈에 보이지 않는 깊은 기반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 나는 융과 반대다. 어머니의 불안. 아버지, 할머니의 뿌리.

[175]

어머니의 제2의 인격은 내 무의식이 자극을 받아 만들어내고 있던 기이한 보상적 산물들과 아버지의 전통 사이에서 갈등하기 시작한 나에게 가장 강력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176]

서양종교는 분명히 말해 이러한 내적 인간에 초점을 맞추어, 2천 년 전부터 내적 인간을 의식의 표층으로 끌어올려 그 인격의 특성을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진지하게 노력해왔다.

 

밖으로 나가지 마라. 진리는 내적 인간에 깃들어 있다.!”

---> 그래서 이제 안 나가고 싶다. 젊었을 때는 많은 경험이 그리고 스스로의 통찰이 필요하다. 한가지 더 있으면 좋은 것은 나를 쓸어 어루만져주는 따뜻한 자. 상처 들지 않게. 세상이 본디 그렇다는 것을, 누구나 그렇다는 것을 알려주는 자.

 

@ 아버지의 죽음과 궁핍한 시절

[177]

그는 결혼생활에 대해 실망하고 있었다. 그는 너무나 많은 선행을 베풀고는 그 결과 대개 기분이 언짢았고, 곧잘 부아를 내곤 했다. 부모는 두 사람 다 경건한 삶을 살려고 무척 노력했으나 그 때문에 오히려 자주 다툼이 일어났다. 이러한 어려움들이 나중에 아버지의 신앙을 무너뜨리고 말았다는 것은 이해할만한 일이었다.

 

[179]

아버지는 누군가와 말다툼을 해야만 했으며 가족과 자기 자신을 그 대상으로 삼았다. 왜 그는 그런 싸움을 모든 피조물의 비밀스러운 창조자이며 세계의 고통에 대해 실제로 책임이 있는 단 한 분인 하느님과 하지 않았을까? 하느님은 불가사의하고 의미심장하기 그지없는 저 꿈들 중 하나로 아버지에게 대답했을 것이 틀림없다. 하느님은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나에게조차 그런 꿈을 보여주었으며 나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그 이유는 모르지만 그 일은 그렇게 일어났다.

 

[180]

나는 아버지가 자신의 운명에 꼼짝없이 매여 있음을 어렴풋이 예감하고 있었다. 버지는 외로왔고 함께 대화를 나눌 친구도 없었다. 적어도 우리 주변에는 구원의 말을 해줄 만큼 신뢰가 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 이런 자, 구원의 말을 건내는 자. 따뜻한 자가 있으면.......산다.

 

한번은 아버지가 기도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자신의 신앙을 지키려고 필사적으로 몸부림치고 있었다. 나는 충격을 받고 화까지 치밀었다. 아버지가 얼마나 절망적으로 교회와 그 신학적 사고방식에 붙들려 있는가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것들은 아버지가 하느님에게 직접 도달할 수 있는 모든 길을 막아버리고는 의리없이 아버지를 버리고 말았다.  

 

[182]

아버지는 더 자주 더 심하게 침울해지고 건강염려증도 깊어졌다.

---.> 나의 아버지도 그러했다. 융의 아버지에게는 신학적 사고방식이 걸림돌이었다면 우리 아버지에게  ‘.

 

[185]

한번은 어머니가 나를 향해서인지 주변 공기를 향해서인지 제2의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는 너를 위해서 지금 돌아가셨구나그 말은 나에게 이렇게 들렸다. 두 사람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고 아버지는 너에게 방해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

--->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6개월 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했다. 어머니를 괴롭히던 라는 괴물이 죽었다고 생각했다. 다른 시대가 온 것이다.

 

 

[185]

그 무렵 남자다움과 해방감이 조금씩 내 안에서 싹텄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나는 아버지방으로 옮기고 집안에서 그의 자리를 차지했다. 예를 들면 내가 어머니방에게 생활비를 일주일마다 나눠주어야만 했다. 어머니는 절약할 줄을 몰라 금전을 관리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 모든 아들들의 욕망. 아버지를 죽이고(?) 집안의 어른으로 서는 순간일까?

 

[187]

친구, 알버트 외리

 

[190]

그는 영리한 친구였고, 나에 관해서도 자기 방식대로 이해하고 있었다.

 

[186]

나는 궁핍한 시절을 굳이 그리워하지 않는다. 그러한 시절에는 하찮은 물건까지도 아끼는 법을 배우게 된다. 나는 언젠가 여송연 한 통을 선물로 받은 일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나는 왕자가 된 기분이었다. 그 여송연은 일요일에만 한 대씩 피웠기 때문에 1년이나 피웠다. 회고하건대 대학시절은 나에게 아름다운 시절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모든 것은 정신적으로 활기를 띠었고 또한 우정을 나누는 시기였다.

 

 

@ 차라투스트라는 니체의 파우스트

[198]

아주 강한 동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나 자신이 니체를 닮을 지도 모른다는 은밀한 불안을 느끼며 주춤했던 것이다. 적어도 그를 주위로부터 고립시킨 그 비밀에 있어 비슷한 데가 있을 지도 몰랐다

 

[199]

차라투스트라는 니체의 파우스트였다. 이제 나의 제2 인격은 차라투스트라였다. 물론 이것은 두더지의 흙두둑을 몽불랑산에 비교하는 격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차라투스트라는 의심의 여지 없이 병적이었다. 그렇다면 나의 제2인격도 병적이란 말인가?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은 나를 공포감에 젖게 했다.

 

[199]

니체는 인생 후반, 그러니까 중년을 넘기고서야 제2인격을 비로소 발견했으나 거기에 반해 나는 제2인격을 이미 소년시절부터 알고 있었다.

 

 

@ 정신의학에서 길을 찾다

[204]

그 방은 후두나무로 만든 둥근 식탁이 놓인 우리집 식당이었다. 그 식탁은 친할머니가 혼수로 가져온 것인데 그 당시 이미 70년이나 되어 낡아 있었다...갈라진 데는 접합한 부분도 아니고 완전 통나무판이었다.

 

[205]

빵바구니가 들어있는 서랍에서 한 덩어리의 빵과 그 옆에 놓인 빵 자르는 칼을 발견했다. 그런데 그 칼날이 온통 부러져 있었다.

 

 

상처입은 자만이 다른 사람을 치유할 수 있다.

 

문제는, 신화의 상실을 견디지 못하고

외적인 것에 불과한 세계,

즉 자연과학의 세계상으로 향한 길을 찾을 수도 없고,

지혜와는 조금도 상관없는

언어의 지적인 즉흥연주로 만족할 수도 없는 사람들이다.

 

[221]

취리히대학 정신병원인 부르크휠츨리에서의 수년간은 나의 수련기간이었다. 내가 관심을 기울이고 연구의 중심주제로 삼은 것은 무엇이 정신병자의 내면에서 일어나고 있는가?’하는 화급한 의문이었다. 그 의문은 그 당시 내가 이해하지 못하고 있던 문제였으며, 나의 동료들 중 그 누구도 이러한 문제에 신경을 쓰고 있지 않았다.

 

정신의학 강의가 목표로 하는 것은 병든 인격에 관해 소위 추상화를 하고 진단과 증상의 기록, 통계로 만족하는 정도였다.

 

환자들에게 꼬리표를 붙이고 진단하여 도장을 찍으면 그것으로 일은 대충 끝나는 것이었다.

 

[225]

정신의학 사례 중 많은 경우 환자는 말하지 않은 사연을 가지고 있으며 대개 그것에 대해 아무도 모른다. 내가 보기에는 개인적인 사연을 조사한 다음 비로소 진정한 치료가 시작된다고 여겨진다. 그것은 환자의 비밀이며 바로 거기서 좌절하고 만 것이다. 동시에 그것은 치료의 열쇠를 지니고 있다. 의사는 단지 그 비밀스러운 사연을 어떻게 알아내는가를 터득해야만 한다. 의사는 증상만이 아니라 그 사람 전체를 꿰뚫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대부분의 경우 의식적인 재료의 탐색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때로는 연상검사가 길을 열어줄 때도 있다. 또한 꿈의 해석을 통해서나 환자와 오랫동안 끈기있게 인간적으로 접촉함으로써 그 일이 가능할 수도 있다.

 

[234]

그녀는 살인범이었으나 거기에 더하여 그녀 자신을 또한 살해했다. 그런 죄를 범한 자는 자신의 영혼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236]

임상적 진단은 어떤 방향 설정을 해주기 때문에 중요하다. 하지만 환자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결정적인 점은 환자 사연의 문제다. 그것이 인간적인 배경과 인간적이 고통을 드러내고 바로 그 지점에서 의사의 치료는 시작되기 때문이다.

 

 [241]

환자를 연구함으로써 나는 피해망상과 환각이 일종의 의미의 핵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나의 인격, 하나의 인생사, 하나의 희망과 욕망이 그 배후에 있었다. 우리가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건 단지 우리의 문제일 뿐이다. 나는 정신병에 보편적인 인격심리학이 감추어져 있다는 사실과 여기서도 오랜 인류의 갈등이 재발견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다.

 

[246] 감동 임상사례

당신이 치료에 실패했다면 내가 이 권총으로 당신을 쏘아 죽였을 거예요!

 

소녀시절에 당했던 근친상간으로 인해 그녀, 세상의 관점에서는 굴욕을 느꼈지만 환상의 세계에서는 고양된 기분이 될 수 있었다. 그녀는 소위 신화의 영역으로 옮겨진 것이었다. 근친상간은 전통적으로 왕과 신들의 특권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아주 멀리 우주공간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날개 달린 악마를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치료를 받는 동안 악마의 모습을 나에게 뒤집어씌웠다........그녀를 정상적인 인간적 존재가 되도록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위험에 처했을 것이다......악마를 나에게 누설하고 지상의 인간과 맺어지게 된 셈이다. 그리하여 그녀는 실생활로 돌아 갈수 있었으며 결혼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후 나는 정신병 환자들을 다른 관점에서 보개 되었다. 왜냐하면 나는 이제 그들의 내적 체험의 의미있는 현상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 꿈의 분석

[248]

나는 환자들을 될 수 있는 한 모두 개별적으로 다루는 편이다. 문제의 해결은 항상 개별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보편적인 원칙은 다만 최소한으로 설정되어야 한다. 심리적인 진리는 사람들이 그것을 반대로 뒤집을 수도 있을 때에만 타당한 것이 된다.

 

[249]

결정적인 것은 내가 인간으로서 또 다른 한 인간과 대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분석은 일종의 대화이며 여기에 당사자 두 사람이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분석가와 환자는 서로 마주보고 앉게 된다. 의사도 무언가 할 말이 있고 환자도 마찬가지다.

 

정신치료에서는 어떤 방법의 적용이 중요한 것이 아니므로 정신의학 연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나 자신은 정신치료에 필요한 것들을 갖추기까지 오랫동안 일해야 했다. 1909년에 나는 이미 잠재적 정신병의 상징적 표현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 병을 치료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무렵 나는 신화학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250]

정신치료자는 단지 환자만을 이해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와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은 의사 자신이 자기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련의 필수조건은 이른바 교육분석이라고 일컬어지는 자기분석이다. 환자의 치료는 말하자면 의사로부터 시작된다. 사가 자기 자신과 자신의 문제를 다룰 줄 알고 있을 경우에만 환자에게도 그것을 가르칠 수 있다. 반드시 그래야만 된다. 교육분석에서 의사는 자기 자신의 마음을 인식하고 진지하게 다루는 법을 배워야 한다.

 

[251]

또한 교육분석은 실제적인 삶의 한 부분이지 무조건 암기하여(문자 그대로) 배울 수 있는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자신의 교육분석에서 이러한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의사나 치료사는 나중에 그에 대한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물론 이른바 작은 정신치료라는 것도 있긴 하지만, 본래의 분석에서는 환자와 의사 모두 그 전인격이 대상이 된다. 의사가 자기 자신을 바치지 않고는 치료할 수 없는 사례들이 많이 있다. 치료에서 중요한 고비를 맞았을 때 결정적인 것은 의사가 자기 자신을 드라마의 한 부분으로 보느냐 아니면 스스로를 자기 권위로 씌워버리느냐 하는 것이다. 인생의 심각한 위기에서는 다시 말해 죽느냐 사느냐가 문제인 중대한 순간에는 암시의 잔꾀 따위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 때 의사는 그 전존재가 도전을 받게 된다

 

[253]

나는 의사로서 환자가 나에게 어떤 소식을 가져오는지 항상 자문해야 한다. 환자가 나에게 무엇을 예시하는가? 환자가 나에게 아무것도 예시하지 않는다면 나는 공격목표가 없는 셈이다. 의사는 그 자신이 고통을 당할 경우에만 효과를 얻는 법이다. ‘상처입은 자만이 치유할 수 있다.

 그러나 의사가 체면을 갑옷처럼 두르고 있으면 그는 아무런 효과도 얻지 못하게 된다.

 

[253]

모든 치료자는 제3자의 점검을 받아야 한다. 그럼으로써 다른 관점도 가지게 된다. 교황 자신도 고해신부를 두고 있다. 나는 분석가들에게 늘 이렇게 충고한다. 고해신부 역할을 해줄 아버지 같은 사람이나 어머니 같은 사람을 가지도록 하시오여성들은 그런 일에 대단한 재능이 있다. 여성들은 대개 뛰어난 직관과 정확한 비평력을 지니고 있으며 남자의 비밀스러운 의향을 간파할 줄 알고 경우에 따라서는 남자의 아니마가 꾸미는 음모까지 꿰뚫어볼 수 있다. 여자들은 남자가 보지 못하는 측면을 본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남편이 초인이라고 확신하는 부인은 한 사람도 없는 것이다.

 

 [257]

여기서 우리는 비전문가의 분석이라는 문제와 마주치게 된다. 나는 의사가 아닌 사람들이 정신치료를 배워서 시행하는 것에 대해 찬성하는 편이다. 그러나 잠재성 정신병의 경우에는 그들이 잘못 짚기가 쉽다. 그러므로 나는 비전문가가 분석가로 일하더라도 전문적인 의사의 점검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전문 분석가가 일을 하다가 조금이라도 의문점이 생기면 즉시 전문의에게 문의해야 한다.

 

그러나 여러 해 동안 정신치료를 시행하고 스스로 분석을 받은 비전문가들은 그래도 뭔가를 알고 어느 정도 치료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나는 거듭 확인했다. 게다가 정신치료를 활용하는 의사들도 그 수가 결코 충분치 않다는 것이 문제다. 이런 직무는 아주 긴 기간의 철저한 수련이 필요한 법이다. 그리고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교양이 요구된다.

 

@ 집단무의식의 원형에 대하여

[259]

의사와 환자의 관계에서는 특히 환자 편에서 전이가 일어난다든지 의사와 환자 간에 다소 무의식적인 동일시가 일어날 때에는 때때로 심령심리학적 성질을 지닌 현상이 야기될 수도 있다.

 

[259]

남편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는 부인들이 질투심이 많아 남편의 교우관계를 깨뜨리는 일은 흔히 일어나는 법이다. 그러한 부인들은 자신들이 남편에게 속해있지 않기 때문에 남편이 자신에게 전적으로 속해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모든 질투의 핵심은 사랑의 결여에 있다.

 

[263]

그녀는 신화적인 관념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므로 그녀 안에 있는 본질적인 것을 표현할 길이 없었다. 그녀의 관심은 모두 연애행각과 의복 성적인 것으로 쏠리고 있었다. 그녀는 이러한 것들 외에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녀는 단지 지적인 것만 인지하고 있었으며, 의미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 앞의 성폭력 당한 여자, 자신을 신화 속으로 집어넣었던 여자랑 대조되는 사례다. 이 여자는 신경증에 걸렸다. 좁은 정신세계.

 

[268]

그 환자에게 필요한 것은 남성적인 반응이었다. 이 사례에서는 환자와 함께 가야한다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녀는 스스로를 도덕적으로 제약할 수 없었기 때문에 강박신경증에 걸린 것이었다.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본성에 의해, 바로 강박신경증을 통해 제약을 받게 되는 것이다.

 

[270]

오늘날 소위 신경증 환자들 가운데는 이전 시대라면 신경증 즉 자기 자신과의 분열을 겪지 않았을 사람이 적지 않다. 그들이 신화에 의해 조상들의 세계와 여전히 관련을 맺고 있고, 그리하여 단지 바깥에서 보는 자연이 아닌 실제로 체험하는 자연과 연결되어 있는 그러한 시대와 환경에서 살았다면, 그들은 자기 자신과의 불일치를 면했을 것이다.

 

[271]

개념적인 것으로 옮기는 것은 체험으로부터 실체를 빼앗고 그 대신 단지 이름들만 붙이는 셈이다.

영혼은 개념들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행위와 사실들 가운데 깃들어 있다.  

 

 

프로이트와의 만남

 

@ 이론적인 불화

[276]

특히 나에게 흥미를 일으켰던 것은 신경증심리학에서 유래된 억압기제라는 개념을 꿈의 분야에 적용한 점이었다. 나는 단어 연상실험에서 억압현상과 자주 마주쳤기 때문에 이것은 나에게 중요한 문제였다. 환자는 어떤 자극어에 대해서는 연상어를 전혀 떠올리지 못하거나 반응시간이 무척 길어지곤 했다. 나중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그러한 연상장애는 자극어가 정신적 상처나 갈등을 건드릴 적마다 일어났다.

 

[279]

19072월 빈에서 우리의 첫 만남이 이루어졌다. 우리는 오후 1시에 만나 열세 시간 동안이나 그야말로 쉬지 않고 대화를 나누었다. 프로이트는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그 당시의 내 경험으로는 어떤 사람도 프로이트에 견줄 수 없었다. 그의 태도에는 진부함이 전혀 없었다.

 

[282]

한 가지 사실은 분명했다. 항상 비종교성을 강조해온 프로이트가 일종의 교리를 준비했다는 것이었다. 또는 그가 잃어버린 질투하는 신 대신에 성욕이라고 하는 또 다른 강압적인 형상을 슬쩍 바꿔 넣는다고 하는 편이 나을 것이었다.

 

[287]

프로이트가 성욕이 신성한 힘이며 그것은 일종의 신이면서 악마라는 심리학적인 진리를 좀 더 고려했으면 생물학 개념의 한계에 갇히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니체도 인간존재의 바탕을 좀 더 단단히 붙들고 있었다면, 아마도 감정의 과잉으로 세계의 가장자리 밖으로 나가 떨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리비도의 변환과 상징

[294]

나는 파당의 지도자가 되어 실제로 짐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니 결코 달갑지 않았다. 그런 종류의 일은 나의 관심사가 아니었으며 나의 지적 독립성을 희생할 수도 없었다.

 

나는 진리탐구에 관심이 있는 거지 개인적인 명성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295]

그가 사생활에 관해 좀 더 상세한 정보를 나에게 제공해준다면 꿈의 해석이 더욱 풍성해지겠다고 말했다. 나의 말에 프로이트는 꿈의 해석이 더욱 풍성해지겠다고 말했다. 나의 말에 프로이트는 기묘한 시선, 의심이 가득 담긴 그런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나의 권위를 위태롭게 할 수는 없어.” 그 순간 그는 권위를 상실하고 말았다

.....프로이트는 개인적인 권위를 진리보다 더 내세웠다.

 

[311]

프로이트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아마도 신경증 환자를 진지하게 다루고 그들의 독특한 개인적인 심리를 파고 들어간 데 있을 것이다. 그는 환자의 사례가 스스로 말하도록 하는 용기를 가지고 있었다.

 

 

내 안의 여인 아니마

 

@ 신화와 환상

[320]

처음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열 살이나 열한 살쯤 되었을 어린 시절의 추억이었다. 그 무렵 나는 벽돌로 집짓는 놀이에 열중했다. 놀랍게도 이런 기억들이 일종의 감격과 함께 떠올랐다. 나는 속으로 말했다. “아하, 여기에 삶이 있구나. 그 작은 아이는 여전히 여기에 있고, 내게 결여되어 있는 창조적인 삶을 누리고 있다. 그런데 나는 어떻게 거기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인가?” 현재 성인이 된 남자와 열한 살 소년을 서로 이어준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내가 그 시절과 다시 이어지기 위해서는 그곳으로 돌아가 아이의 놀이를 하면서 아이의 삶을 한 번 더 살아보는 수밖에 없다.

 

[326]

감정을 이미지로 바꾸는 그만큼 다시 말해 감정 속에 숨어 있는 이미지들을 발견하는 그만큼 내적인 안정이 생겼다. 만일 내가 감정에 나 자신을 맡겼더라면 무의식의 내용에 의해 산산이 부서졌을지도 모른다.

 

나는 최선을 다해 환상을 기록해 나갔다.

 

[328]

내가 나 개인뿐만 아니라 나의 환자를 위해서 이러한 모험을 자청해서 한다는 생각은 나로 하여금 위험한 고비를 여러 차례 넘기게 했다.

 

 

@ 필레몬과의 대화

[332]

환상을 붙들기 위해서 나는 자주 하강을 상상했다. 한번 깊은 곳에 이르기 위해서 심지어 몇 번이나 시도할 필요가 있을 때도 있었다.

 

[334]

그러한 꿈속의 방황에서 사람들은 흔히 젊은 처녀와 동행하는 노인을 보게 된다. 많은 신화적인 이야기에서 그런 짝의 예들이 발견된다.

 

[334]

나의 환상 속에는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엘리야와 살로메 외에 제 3의 형상, 즉 크고 검은 뱀이 있었다. 신화에서 뱀은 영웅의 대역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335]

나는 그를 필레몬이라 불렀다. 필레몬은 이교도로 그노시스파의 색조를 띤 이집트적 헬레니즘의 분위기를 띠고 있었다. 그의 형상은 한 꿈속에 처음 나타났다.

 

[339]

이 내 때 안의 소리가 있었다. 이것은 예술이에요.” 나는 매우 놀랐다. 나의 환상이 예술과 관계가 있다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341]

나는 매일 저녁 글 쓰는 일에 매달렸다. 내가 아니마에게 편지를 쓰지 않으면 그녀는 나의 환상을 파악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의 성실한 글쓰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이미 적어놓은 것을 아니마가 왜곡할 수는 없을 것이고, 그걸 가지고 책략을 쓰지도 못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보면 우리가 어떤 것을 이야기하려고 마음만 먹는 것과 그것을 실제로 적어놓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나는 편지를 쓰면서 될 수 있는 한 정직하려고 노력했다.

 ---> 기록만이 길을 열어준다. 기록만이 공감을 만들어낼 수 있다. 외로운 자기 발견의 길에는 오직 기록만이 이해 받음과 불멸의 길이다.

 

 

@ 죽은 자를 향한 일곱가지 설법

[346]

환상에 관한 작업을 하던 바로 그 무렵, 물론 나는 이승에 발판이 필요했다. 그것은 가족이며 직업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그 낯선 내면세계에 치우치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주는 대극으로,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것이 가장 절실히 요구되었다. 가족과 직업은 내가 언제나 돌아올 수 있는 기반으로 남아 있었고, 그것은 내가 실제로 현실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인간임을 증명했다.

---> 니체는 미쳐버렸지만 융은 의지력으로 이승의 발판을 굳건히 딛고 있었기에 환상에 뛰어들었다가 다시 이승에 나오는 대단한 의지를 보인 것 같다. 왔다갔다 할 수 있는 정신력. 대단하다.

 

무의식 내용은 나를 정상에서 벗어나게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가족과 내가 알고 있는 몇 가지 사실이 나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 그 사실들이란 내가 의사면허를 가지고 있고 환자를 도와주어야 하며, 내게는 처와 다섯 아이가 있고 퀴스나흐트 제슈트라세 228번지에 살고 있다는 등이었다.

 

[349]

영혼, 즉 아니마는 무의식과의 관계를 설정한다. 어떤 의미로는 그것은 사자 집단과의 관계라고도 볼 수 있다. 무의식은 신화적인 죽음의 나라즉 조상의 나라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351]

그 무렵 나는 영혼을 돌보는 일에 헌신하기로 했다. 나는 그것을 사랑하면서 미워했다.

 

[356]

만다라가 참으로 무슨 의미인지 나는 차츰 깨달아갔다. ‘형성, 변환, 영원한 마음의 영원한 재창조였다. 그리고 그것은 자기 즉 인격의 전체성이었다. 모든 것이 잘 돼가면 조화로우나 자기기만은 결코 용납하지 않는 것이었다.

 

나의 만다라 그림들은 날마다 새롭게 나타나는 자기 상태와 연관되는 암호 같은 것이었다. 그 속에서 나는 자기, 즉 나의 전체성이 활동하는 것을 보았다. 물론 처음에는 만다라 이미지들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매우 중요한 표지로 여겨졌고, 나는 그것을 값비싼 진지 다루듯 했다. 나는 그것이 어떤 핵심적인 것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느꼈고, 그 기간에 자기에 관한 생생한 개념을 얻게 되었다.

 

[357]

대략 1918~1920년에 나는 정신적 발달의 목표가 자기임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직선적 발달은 없고 다만 자기를 중심으로 한 순환이 있을 뿐이다. 단일형의 발달도 있지만 그것은 기껏해야 시작단계에서나 있는 일이고, 그 뒤에는 모든 것이 중심을 향한다.

 

[361]

내가 그 무렵 체험하여 기록한 것을 과학적 작업의 그릇 속에서 추출해내기까지 따지고 보면 45년이나 걸렸다. 젊은이로서 나의 목표는 학문에서 뭔가를 성취하는 것이었다.

 

나의 내적 이미지를 추적하던 그 몇 년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 그 기간에 온갖 본질적인 것이 정해졌다. 그 무렵에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나중에 세부적인 것은 단지 보충하거나 명료하게 하기만 하면 되었다. 내 후기의 작업은 모두 그 기간에 무의식에서 솟아나와 나를 휩쓸었던 자료들을 보다 정교하게 다듬는 데 있었다. 그것은 필생의 작업을 위한 원재료였다.

 

 

 

연금술을 발견하다.

 

@ 의식과 무의식의 관계

[376]

그후에 비로소 나는 세계로 돌아오는 길을 발견했다.

 

리비도물리적 에너지의 정신적인 유사물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말해 나는 이제 더 이상 허기본능, 공격본능, 성적 본능 따위로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 대신 이 모든 현상을 정신적 에너지의 다양한 표현으로 보고자 했다.

 

물리학에서도 에너지와 그것의 여러 가지 표현, 즉 전기, , 열 등에 관해 말한다. 심리학에서도 마찬가지다. 심리학도 일차적으로 에너지를 취급한다. 말하자면 강도의 측정, 양의 많고 적음을 다룬다. 그런데 나타나는 형태는 무척 다양할 수 있다.  

 

[390]

신학자들은 자연과학적 사고, 특히 심리학적 사고를 알지 못한다. 분석심리학의 자료에서 중요한 사실은 사람들의 진실, 즉 다른 장소와 다른 시간에서도 흔히 서로 일치하는 진술이다.

 

@성배전설과 동물상징 

[397]

내가 여기서 나의 저술에 관해 개략적으로 살펴본 것은 물론 요약에 불과하다. 사실 더 많이 이야기하든가 아니면 더 적게 이야기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이 장은 내가 하는 다른 모든 이야기와 같이 즉석에서 말한 것이며 순식간에 생겨난 것이다.

 

나의 저술들은 내 생애의 정류장들이라 여겨질 만하다. 그것들은 나의 내적 발달의 표현이다. 무의식 내용을 탐구하는 일은 사람을 만들고 그에게 변환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나의 생애는 내 가 행한 것, 내 정신의 작업이다. 이것들은 하나하나 떼어놓을 수가 없다.

 

나의 모든 저술은 말하자면 내부로부터 부과된 과제인 셈이다. 그것은 숙명적인 강요로 이루어졌다 .내가 쓴 것은 내부로부터 나에게 엄습해 온 것들이다. 나는 나를 충동질하는 영혼으로 하여금 말을 하도록 허용했다. 그 글들은 내가 살아온 동시대 세계에 대한 보상을 나타내고 있다. 나는 누구도 들으려고 하지 않는 것을 말해야만 한다. 그리하여 특히 연구 초기에는 완전히 외톨이가 된 느낌을 자주 받았다. 나는 사람들이 싫어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의식세계에 대한 보상을 받아들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 융이 연구를 하면서 얼마나 외롭고 이해받지 못한다는 마음 때문에 괴로웠을 지 내 마음이 먹먹하다. 숙명적인 강요, 의식세계에 대한 보상..... 그가 기록하고 풀어낸 인간 내면 세계에 대한 이야기는 참으로 나에게 많은 위로를 준다.

 

 

아 내 가슴에 두 영혼이 살고 있다.

 

@ 죽은 자들과 소통하는 곳

[403]

외딴 방에 나 혼자 있다그곳은 사색하고 환상에 몰두하는 은신처였는데 대개 환상은 매우 불쾌한 것들이고, 사색은 고통스러웠다. 그것은 영적 집중의 장소였다.

--> 취리히 호숫가, 볼링겐에 지은 그만의 아지트... 나도 이런 곳을 갖고 싶다. 한번 가보고 싶다.

 

[413]

최우선적으로 동시성 현상을 생각해볼 수 있다. 우리가 내적감각으로 지각하거나 예감하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일들이 외부의 현실과 자주 상응하게 되는 것을 동시성 현상이라고 한다. 실제로 나의 체험에 구체적으로 상응하는 사건이 있었다.

 

 

@ 카르마

[419]

부모로부터 아이들에게 넘겨진 비개인적인 카르마가 가족에게 존재한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나는 조상들에게 숙명적으로 던져졌으나 아직 해답을 얻지 못한 물음에 내가 대답해야 하며, 지나간 세대가 완성하지 못한  채 남긴 것을 내가 완성하거나 계승해야만 할 것 같이 늘 여겨진다.

 ---> 늘 나도 이런 숙명을 느낀다. 내가 정리해야 할 가족사...... 풀고 싶은 숙제.

융이 괴테의 서자였던 조부와 연결되어 있는 것들....그는 파우스트가 간과한 것들을 연결 시켰다. 영원한 인간권리에 대한 존경, 옛것에 대한 인정, 그리고 문화와 지성사의 연속성.....

 

 

여행

 

@ 북 아프리카, 순진한 인류의 청소년기로

[433]

드디어 태양의 동살이 퍼지고 그때 무에진(회교 기도사)의 아침기도 시간 알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는데 그 소리가 내 마음을 깊이 흔들어놓았다.

 

이 사람들은 자신들의 격정으로 살고 있다. 다시 말해 그 격정에 의해 그들의 생이 영위되고 있다. 그들의 의식은 한편으로는 공간에서의 방향설정과 외부에서 받는 인상을 전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내적인 충동과 격정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푸에블로 인디언, 자기 자리에 있는 사람들

[443]

우리는 여기로 생각하오. 그는 자신의 심장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나는 오래 생각에 잠겼다. 생전 처음으로 누군가가 진정한 백인의 모습을 나에게 묘사해준 셈이다.

 

[450]

그는 태양의 아들로 그의 생명은 우주론적으로 깊은 의미가 있다. 그는 모든 생명의 아버지요 보존자인 태양이 날마다 떠오르고 지도록 돕고 있다. 우리가 이것을 우리 자신의 삶의 근거, 즉 우리의 이성이 짜내는 인생의 의미와 비교한다면 우리의 것이 얼마나 빈약한 지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451]

모든 생명은 산에서 온다.

가장 빨리 저 먼 태양에 닿는다.

 

 

@ 케냐와 우간다, 아프리카의 고독을 겪다

[453]

내가 런던에서 웸블리 전람회를 찾았을 때 영국 통치하에 있는 민족들의 빼어난 전시물은 나에게 큰 자극을 주었다. 나는 가까운 장래에 적도아프리카를 여행하리라 마음먹었다.

 

[458]

그럼 내가 당신에게 충고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선생도 아시다시피 이곳은 인간의 나라가 아니고 신의 나라입니다. 그러니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아무 걱정 말고 마음을 편안히 가지십시오. 그러고는 인사도 없이 일어나더니 이쪽으로 몰려오는 흑인들의 무리 속으로 사라졌다.

 

그 말은 체험의 진수임이 분명했다. 이곳은 인간이 아니라 신이 맨 위에 있고, 그리하여 의지와 의도가 아니라 신비한 섭리가 맨 위에 있는 것이었다.

 

[467] 관심구절

여자는 샴바(단감자, 아프리가수수, 옥수수 등의 경작지)’와 소위 동일화되었다. 여자는 아이, 염소, 닭들을 데리고 있었는데 모두가 바로 그 둥근 오두막에 함께 살고 있었다. 그것이 여자에게 품위와 자기확신감을 주었다. 여자는 강력한 동업자인 셈이었다. ‘여성의 평등권이라고 하는 것은 그러한 동반관계가 의미를 잃어버린 시대의 산물이다. 하지만 원시사회는 이기주의와 이타주의가 여자가 바라는 대로 무의식적으로 충분히 잘 조절되고 있다.

---> 여자가 집안도 지키고 여자가 사회에 나가 경제생활도 하고 여자가 슈퍼우먼이 되면서 여자는 길을 잃었다. 사회에서 잘 나가도 여자는 자신의 품위와 확신감을 가질 수 없었고 또 다른사람을 고용해서 아이를 키우고 살림을 시켜도 그녀는 원망을 들었다. 엄마의 길은 엄마가 가야 한다. 그것이 자신이 몫이다. 자기가 만든. 그리고 여자는 단단하게 자기를 잡고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분열이 온다.

 

[469]

여주인은 공공연히 아무 문제없이 지금 여기 존재하는 자, 남편의 진정한 임시 처소였다. 문제는 그가 여기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오히려 그녀가 자신의 전체성 속에 존재하면서 짐승 떼와 함께 돌아다니는 남편의 자기장의 중심이 되고 있느냐 하는데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백인여성의 남성화가 그녀들의 천연적인 전체성(샴바, 아이, 작은 가축, 자기 집, 그리고 부엌의 불)의 상실과 연관된 것이 아닌가, 다시 말해 여성의 결핍에 대한 보상이 아닌가, 그리고 백인 남성의 여성화는 여성의 남성화에서 야기된 후속 결과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자문해 보았다. 가장 합리적이라는 국가들이 성의 차이를 가장 많이 소멸시키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동성애가 맡는 역할은 대단하다. 그것은 부분적으로는 모성콤플렉스의 결과이며 일부는 자연의 합목적적 현상(번식의 저지!)이다.

---> 나 역시 이 부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나의 정체성은 도대체 무엇이고 엄마라는 것은 여성이라는 것은 나라는 것은 무엇인가 사이에서 분열이 왔다. 여자의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 여자아이는 어떻게 키워야 하는가 여자의 삶과 남자의 삶은 어떻게 다른가? 여자가 느끼는 행복, 만족감, 자존감은 남자와 다른 것이었다. 그런데 세상의 교육은 동등하게 받고 세상은 다르다. 지혜가 필요하다. 남자와 여자는 다르다. 그리고 여자는 여자다울 때 가장 자존감을 세울 수 있다. 여자다움이란 여자의 권리와 남자와 다른 차별성에서 나온다.  

 

[475]

많은 종족들이 아디스타를 숭배하고 있다고 했다. 아디스타는 처음 떠오른 순간의 태양의 가리키는 말이다. 오직 그 순간에만 태양은 뭉구신이 된다. 붉고 푸른 서쪽 하늘에 처음 나타난 가느다란 황금빛 초승달도 신이다. 그런데 오직 그 순간에만 신이고 다른 때는 아니다.

 

[476] 꼭 써 먹어야 할 대목

창조주는 선과 악 그 너머에 있다.

 

일몰 후부터는 다시 다른 세계, 즉 어둠의 세계, 아이크의 세계가 지배한다. 그것은 악이요 위험이며 불안을 일으키는 것이다. 낙관적인 철학은 중지되고, 유령에 대한 공포의 철학과 재앙을 막으려는 마술적 풍습의 철학이 시작된다. 그러다가 일출과 함께 아무런 내적 모순 없이 낙관주의가 다시 돌아온다.

 

[484]

싸움터의 병사들은 전쟁에 관한 꿈보다는 고향 꿈을 훨씬 많이 꾸었다. 정신과 군의관들은 어떤 병사가 전쟁장면 꿈을 너무 많이 꾸면 그를 전선에서 떠나도록 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왜냐하면 그는 외부의 인상들에 대한 정신적 저항력을 더 이상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 인도, 이방의 문화에서 유럽의 뿌리로!

[491]

나에게는 해방이란 것이 없다. 내가 소유하지 않고 내가 행하거나 체험하지 않은 그 어떤 것들로부터도 나를 해방시킬 수 없다. 진정한 해방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행했을 때, 내가 온전히 나 자신을 헌신하여 철저히 참여했을 때 비로소 가능한 법이다.

 

내가 참여하지 않고 물러서면 거기에 해당하는 영혼의 부분을 그만큼 절단하는 셈이다.

 

나는 무능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내가 아마도 본질적인 어떤 것을 단념하고 과제를 완수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통찰하게 된다. 나의 부적격성에 대한 이러한 깊은 인식은 적극적인 행위의 결여를 대체한다.

 

자신의 열정의 지옥을 통과하지 않은 사람 결코 그것을 극복하지 못한다. 그러면 열정은 집 가까이 있게 되고 그가 미처 대비하기도 전에 불길을 일으켜 그의 집을 덮칠 것이다.

 

[495]

그리스도 역시 부처와 마찬가지로 자기의 구현자다. 하지만 전혀 다른 뜻에서 그러하다. 둘 다 세상을 극복한 자들이다.

 

@ 라벤나와 로마, 보이는 환상과 보이지 않는 실재 

[509]

나는 내 인생에서 많은 여행을 했고 로마에도 가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그 도시의 인상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고 느꼈다. 이미 폼페이만 해도 벅찼는데, 그 인상들은 나의 수용능력을 거의 넘어섰다.

 

환상들

 

@ 생의 한계점에 이르러

 

@융합의 신비

[521]

그 여러 주 동안 나는 기묘한 생체리듬 속에서 살았다. 낮에는 대부분 우울했다. 나는 수척하고 여위어 거의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저녁 무렵이 되면 나는 잠이 들었고 잠은 대략 자정까지 이어졌다. 그러고는 잠에서 깨어나 한 시간 가량 깨어 있었는데 이 때는 전혀 다른 상태가 되었다. 나는 황홀경이나 엄청난 축복의 상태에 있는 듯 했다.

 

[524]

그 환상과 체험들은 완전한 실재였다.

 

[525]

나는 그 체험을 현재와 과거와 미래가 하나인 무시간적 상태의 지복이라고 밖에 달리 일컬을 말이 없다. 시간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은 거기서 하나의 객관적 전체성으로 통합된다. 아무것도 더 이상 시간으로 쪼개질 수도 없고 시간 개념에 따라 측정될 수도 없다.

 

[526]

병을 앓은 후 나에게는 왕성한 연구시기가 시작되었다. 나의 많은 주요저작이 그 후에 비로소 출간되었다.

 

[527]

그런데 나는 병을 통해서 또 다른 것을 얻었다. 그것은 존재에 대한 긍정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존재하는 것에 대한 무조건적인 긍정이었다. 주관적인 반론 없이 말이다.

 

병을 앓은 후에 비로소 나는 자신의 숙명을 긍정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달았다. 그럼으로써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날 때도 자아는 굴복하지 않게 되는 법이다.

 

 

사후의 삶에 관하여

 

@ 꿈과 예감

[532]

합리주의와 교조주의는 우리가 앓고 있는 시대병이다.

 

[533]

신화적인 인간은 그 너머로 나가기를 갈망하지만 학문적인 책임을 고려하는 인간은 그것을 허락할 수 없다.

 

[536]

무의식은 우리에게 뭔가를 알려주거나 영상으로 암시하면서 하나의 기회를 준다. 무의식은 어떤 논리로도 이해되지 않는 것들을 우리에게 때때로 전해 줄 수도 있다. 동시성 현상과 예언적인 꿈, 예감들을 생각해보라.

 

 

[539]

내가 인생경험에서 그 사례들을 말한 바 있는 자연발생적인 예지, 초공간적인 지각 같은 수많은 경우 외에도 정신이 때때로 시공간적인 인과율을 넘어서 작용하고 있다는 증거들이 있다. 그리하여 시간과 공간에 관한 우리의 관념과 인과론이 다함께 불완전하다는 점이 판명된다.

 

 

@ 신화, 의식과 무의식의 사이

[547]

많은 사람이 죽음의 순간에 자기 자신의 가능성에 미치지 못한 채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특히 생존 시에 다른 사람들이 그들에 대해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특히 생존 시에 다른 사람들이 그들에 대해 알고 있는 것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하여 그들이 생전에 습득하지 못한 의식성 부분을 죽음에서 얻으려고 요구하게 된다.

 

[549]

나의 아니마가 그녀에게 부과된 일을 아직 끝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 단일성과 무한성

 

 

 

만년의 사상

 

@ 대극의 통합을 위하여 .

 

[588]

만다라는 원형상이며 그 존재는 수 천 년에 걸쳐 확인되었다. 그것은 자기의 통합성을 나타내거나 심적 토대의 통합성을 분명히 보여준다. 신화적으로 표현하면 인간 안에 육화된 신성의 출현이다.

 

[590]

나는 여기서 만다라의 가장 단순한 기본형인 원 모양과 가장 단순한 (생각으로) 원의 분할, 즉 사각 또는 십자가를 생각한다.

 

 

@ 그런데 사랑이 없으면

[619]

의사로서의 경험뿐 아니라 나 자신의 생활이 끊임없이 나에게 사랑의 문제를 제기해 왔다. 그런데 나는 한 번도 거기에 대해 가치 있는 답변을 할 수 없었다.

 

 

 

회고

 

[623]

다른 사람들도 강에 있지만 그들은 대개 스스로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느끼고 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벚나무 줄기가 자라도록 돌봐야 할 사람이 나라고 생각해본 적 없다. 나는 거기 서서 자연이 해낼 수 있는 것을 보고 경탄할 뿐이다.

 

[625]

고독은 반드시 공동체에 대립하는 것만은 아니다. 고독한 사람보다 공동체에 대해 더 호감을 느끼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공동체는 모든 개체가 자신의 개성을 기억하고 다른 사람과 동일시되지 않는 곳에서만 만개하게 된다.

 

 

@ 모든 사람이 명석한데 나만이 흐리멍덩하구나

[628]

나는 내 인생이 그렇게 지나간 것에 만족한다. 내 인생은 풍성했으며 내게 많은 것을 가져다주었다. 어떻게 내가 그토록 많은 것을 기대할 수 있었겠는가. 그동안 일어난 것들이야 말로 그대 밖의 일들이었다. 나 자신이 달라졌더라면 많은 일이 다르게 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되어야 하는 대로 그렇게 되었다. 그것은 내가 생긴 그대로 있었기 때문이다.

 ---> 나도 죽을 때, 내 인생을 회고하며 내 생긴 대로 되었다는 말을 남기고 싶다.

 

[629]

나는 인간에게 경이로운 것들을 경험했고 스스로 기대했던 것보다 더 많은 일을 해냈다. 그러나 나는 최종적인 판단을 내릴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인생이라는 현상과 인간이라는 현상은 너무도 큰 것이기 때문이다.

---> 열정의 지옥 속에서 끝까지 자신을 놓지 않고 종횡무진의 의식 무의식의 경험 속에 자기를 빠뜨리고 다시 돌아와 꼭 기록으로 남기며 통찰했기 때문에 융은 이런 말을 할 수 있다. 김연아의 환상적이고 완전한 죽음의 무도를 보는 것 같아.

 

 

 

편집자의 말

 

[633]

나에 관한 책은 항상 일종의 숙명적인 사건이었다. 거기에는 무언가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있는데, 나 자신으로 하여금 미리 어떻게 쓰도록 한다든지 미리 계획을 세우도록 할 수가 없다. 따라서 이 자서전도 지금 벌써 내가 처음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길로 접어들고 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기록한다는 것은 하나의 필수적인 일이 되고 말았다. 이 일을 하루라도 중단하면 그와 동시에 불쾌한 신체적 증상이 따라온다. 그러나 내가 그 작업을 하면 금방 그 증상은 사라지고 머리가 아주 맑아진다.

 

[638]

내게 어떤 의미가 있고 먼 추억처럼 다가온 관계에 대해서는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나의 가장 깊은 내적인 삶일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항상 닫혀 있는 문을 세상의 눈앞에 열어젖힌다는 것은 나로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  *  *

 

 

 

 

3. 책 소개와 평가

 

 

(1) 목차와 전체적인 뼈대

 

 

옮긴이 서문 - 자서전 문학의 백미

프롤로그 신화는 과학보다 정확하다.

 

 

 

일생을 사로잡은 꿈 (유년시절)

검은 옷을 입은 남자 / 불화와 불확실성 속에서

 

이제 반항아가 가까이 오도다 (학창시절)

신경증 발작을 일으키다 / 너는 누구냐 / 자연과 사원 / 두 인격의 어머니 /

악의 기원 / 칸트와 쇼펜하우어를 읽다. / 자연과학 vs 신의 세계

 

아름다운 시간들 (대학시절)

파우스트와 요한복음 / 아버지의 죽음과 궁핍한 생활 /

차라투스트라는 니체의 파우스트 / 정신의학에서 길을 찾다

 

상처 입은 자만이 다른 사람을 치유할 수 있다.

환자들 / 꿈의 분석 / 집단무의식의 원형에 대하여

 

프로이트와의 만남

이론적인 불화 / 리비도의 변환과 상징

 

내 안의 여인 아니마

신화와 환상 / 필레몬과의 대화 / 죽은 자를 향한 일곱 가지 설법

 

연금술을 발견하다

의식과 무의식의 관계 / 성배전설과 동물 상징

 

, 내 가슴에 두 영혼이 살고 있다.

죽은 자들과 소통하는 곳 / 카르마

 

여행

북아프리카, 순진한 인류의 청소년기로 /

푸에블로 인디언, 자기 자리에 있는 사람들 /

케냐와 우간다, 아프리카의 고독을 겪다 /

인도, 이방의 문화에서 유럽의 뿌리로 /

라벤나와 로마, 보이는 환상과 보이지 않는 실재

 

환상들

생의 한계점에 이르러 / 융합의 신비

 

사후의 삶에 관하여

꿈과 예감 / 신화, 의식과 무의식의 사이 / 단일성과 무한성

 

만년의 사상

대극의 통합을 위하여 / 원형, 그 역동적인 에너지 / 그런데 사랑이 없으면

 

회고

비밀로 가득 찬 세계 / 모든 사람이 명석한데 나만이 흐리멍덩하구나

 

 

 

 

 

편집자의 말 - A 야페

 

카를 구스타프 융 분석심리학의 개념 및 용어

 

찾아보기

 

 

 

 칼 융이 개인 비서인 아니엘라 야페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전기를 쓰기 시작한 것은 1957, 그의 나이 82살 때다.

1961년 융이 사망하던 해에 추억, , 사상이라는 제목의 그의 자서전이 나왔다. 그는 자신의 삶을 주관적이고 내면적인 분석과 묘사로 풀어간다. 융의 이론을 보면, 어린 시절은 사람의 성격적 특성, 태도, 흥미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래서 목차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유년시절의 경험을 자세히 풀어놓는다. 그리고 그 때의 내적 경험과 의문들을 학창시절, 대학시절로 연결시켜 자기 삶의 퍼즐을 풀어나간다.

 

유년시절, 학창시절, 대학시절의 내용은 융이 직접 썼다고 한다. 그리고 뒤쪽의 말년의 사상도 그가 직접 썼다. 나머지는 편집자인 야페가 그와의 대담을 정리한 후, 융이게 확인받는 절차를 거쳤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삶에 대해 객관적인 설명을 따로 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에 대한 전기적인 사실도 면면히 드러난다.

 

 

 

 

 

 

(2) 감동적인 장과 절

 

 

 

나는 그가 <1> ‘일생을 사로잡은 꿈’ 1-검은 옷을 입은 남자에 묘사한 꿈 내용을 읽고 숨이 멎는 줄 알았다.

그의 꿈은 나의 꿈과는 다르지만, 나의 어린 시절을 사로잡았던 꿈과 그 느낌들이 고스란히 내 몸에 스멀스멀 올라왔기 때문이다. 그의 어린 시절 꿈과 경험, 그리고 그가 풀어가는 내면 분석을 통해서 나는 그의 심리 분석 기법의 배우고 책을 읽는 내내 나도 따라 나의 내면을 탐색해 보았다.

 

<1>2-불화와 불확실성에 이런 대목이 있다.

[42]

이런 어린이답지 않은 행동은 한편으로는 예민한 감수성과 상처받기 쉬운 성격과 연관이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특히 유년시절의 깊은 고독감과도 연관이 있었다. 누이동생은 나와 아홉살 차이가 났다.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혼자서 놀았다.

 

[45]

나의 밤기도는 낮을 잘 마감해주고 편안히 밤과 잠으로 인도해주는 종교의식적인 피난처인 셈이다.

 

 

민감한 감수성과 상처받기 쉬운 성격과의 연관성.

나는 어린 시절이 참으로 외롭고 괴롭고 힘들었다. 생생하게 기억되는 어린 시절의 내 경험들은 이 대목에 와서 다시 한번 따뜻하게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융도 그랬구나. 그런데 그 이유가 예민한 감수성 때문이었구나....” 내 인생에 있어 그 누구도 그 연관성을 말해주는 이가 없었다. 어른이 되어 혼자 길을 잃고 헤맬 때, 융의 사상을 기반으로 한 심리학책이, 그리고 이 자서전의 융이 또 한 번 위안을 준다.

 

어린 시절 밤의 기도를 올렸던 융.

나는 일몰 후의 다른 세계, 어둠의 아이크 세계가 지배하는 밤이 되면 두려움에 떨며 생존을 위해밤의 기도를 올렸다. 밤 시간은 위협적이었고 늘 불안했다. 나는 엄마에게 그 사실을 말할 수가 없었다. 나의 어린 시절 엄마는 늘 폭발 직전의 생존 상태였다. 내가 엄마가 된 이후 엄마를 이해하고 사랑했지만, 나의 엄마는 엄마가 아니었다. 엄마일 수가 없었다. 나의 어린 시절에는 엄마가 없다. 할머니만이 나의 휴식처였다..

 

 

 

 

 

<2> 이제 반항아가 가까이 오도다-학창시절에 담긴 열등성이야기와 자기만의 암시에 대한 대목

사춘기 시절 자기 생각에 갇혀 자기를 느끼며 표정이 어두워지거나 고민에 빠지게 되는 그 시절의 심리를 잘 보여준다.

 

[82]

내가 체험한 것은 어둡고 무서운 비밀이었다. 그것이 내 생활을 그늘지게 하고 나는 자주 멍하게 생각에 잠기곤 했다.

 

나는 또한 그 체험으로 나의 열등성을 느꼈다. 나는 나 자신을 일종의 악마 또는 돼지, 어떤 타락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열등감이 커짐에 따라 하느님의 은총은 나에게 점점 더 불가시의한 것이 되었다. 나에 대해 어떤 자신감도 가질 수 없었다........

 

[83]

오늘날에도 나는 외롭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것들, 대부분 도통 알려고도 하지 않는 것들을 내가 알고 있고 그것을 암시만 해야 하기 때문이다.

 

 

 

 

 

 

 

융이 묘사하는 자기가 나오는 대목 <3> 아름다운 시간들-대학시절은 최고의 묘사이고 참으로 재미있는 자기 표현 문장이다. 1인격과 제2인격으로 나눠서 자신을 이야기 한다. 두 인격은 서로 대화를 나누고 갈등한다. 나도 나의 제 1,2인격을 들여다보며 묘사해 볼 생각이다.

 

[167]

1의 인격의 눈으로 바라본 나라는 인간은 별로 호감이 가지 않는 보통수준의 재능을 갖춘 청년으로, 허황된 야심과 세련되지 못한 거친 기질, 모호한 태도들을 지니고 있었다. 즉시 천진난만할 정도로 흥분하는가 하면, 또 금방 변덕스럽게 유치한 실망에 빠지기도 했다. 깊은 내적인 본질로는 세상에 등을 돌린 반계몽주의자였다.

 

2의 인격은 제1의 인격을 까다롭고 배은망덕한 도덕적 과제, 종결되어야 할 일종의 숙제로 여겼다. 이런 과제는 일련의 결점으로 인하여 부담이 가중되었다. 그 결점이란 때때로 부리는 게으름 의기소침, 침울, 아무도 가치를 두지 않는 이념이나 사물들에 대한 어리석은 열광, 혼자 착각하는 우정, 좁은 마음, 편견, 우둔함(수학!), 타인에 대한 이해부족, 세계관에 대한 모호성과 혼란, 기독교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기독교인이 아닌 것도 아닌 이중성 등이었다......

 

(묘사는 계속 된다)

 

 

 

 

 

 

 <4> 상처입은 자만이 다른 사람을 치유할 수 있다는 심리상담에서 내담자를 대하는 태도와 상담자의 자세, 그리고 상담자 자신이 바로 치료의 도구임을 이야기 한다. 의사 자신이 고통을 당할 경우에만 상담의 효과를 얻는 법이라고 그는 말한다. 상담심리의 인간적 상담의 체계를 세운 융의 업적이자 핵심 이론이 왜 만들어지고 정리되었는지 잘 보여주는 장이다. 특히, 나는 이 대목에서 그를 인간적인 면모를 참으로 존경한다.

 

그리고 임상사례 중에서, 근친상간을 당한 내담자의 사연이 눈길을 끌었다. 세상의 관점에서 굴욕을 느꼈지만 환상의 세계에서는 고양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던 그녀를 통해 융은 신화의 영역을 말한다.

 

 

[246] 감동 임상사례

당신이 치료에 실패했다면 내가 이 권총으로 당신을 쏘아 죽였을 거예요!

 

소녀시절에 당했던 근친상간으로 인해 그녀, 세상의 관점에서는 굴욕을 느꼈지만 환상의 세계에서는 고양된 기분이 될 수 있었다. 그녀는 소위 신화의 영역으로 옮겨진 것이었다. 근친상간은 전통적으로 왕과 신들의 특권이기 때문이다.

 

 

 

 

 

***

융의 자서전은 일석삼조.

자서전을 통해 그를 볼 수 있음과 동시에 그의 심리학적 이론들이 어떻게 생겨나고 정리되었는지를 공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루한 자서전이 아니라 재미있고 색다른 방법으로 자서전을 쓰는 기법도 알려 준다.

 

의식과 무의식, 영원의 세계로 종횡무진 살아있는 자신의 펼치는 내는 카를 융, 그는 참으로 멋진 의사이자 작가이다.

 

 

 

 

 

 (3) 내가 저자라면

 

나는 이 책의 구성이 좋다.

누군가는 자서전을 통해, 그가 언제 결혼했고 아내는 누구이고 결혼 생활은 어떠했으며 보다 구체적인 전기적 일대기가 엿보기를 바란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이야 말로 자신이 쓸 수 있는 자서전이 아닐까 생각한다. 자기 내면 깊숙이 들어가서 이야기 할 수 있는 통찰과 용기, 그리고 그러한 통찰과 용기로 살아왔기에 자신이 이룬 업적을 정리해 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저자라면

나도 융과 같은 내면적 성찰을 담은 자서전을 쓰고 싶다. 어린 시절의 고민의 퍼즐들이 청년, 성인시절로 오며 어떤 식으로 해결되거나 좌절되었는지를 생생하게 그려보고 싶다. 그리고 내 무의식 속에 자리 잡은 것이 집단 무의식인지 집단 무의식 속에 내 무의식이 자리 잡은 것인지 역사 속에, 그리고 나의 어머니 그 어머니, 나의 아버지 그 아버지로 연결되어 내려온 내 가족의 카르마, 나의 카르마를 풀어헤쳐 정리해보고 싶다.

 

남이 보는 나는 나일수도 있지만 내가 아니다. 내가 느끼는 내가 아니다. 내가 보는 나는 나일수도 있지만 진짜 내가 아닌 착각일 수 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나는 그려지기도 하고 지워지기도 하고 그러하기도 하고 그러하지도 않는, 존재다.

나는 융을 통해 위로를 받는다. 내 무의식 속에서 내 의식 속에서 내가 생각하는 모든 것들을 타인에게 이해 받지 못할 지라도 그것은 존중되어야 하고 또 소중한 나의 형상들이다. 또 나는 융에게서 배운다. 나의 기억들, 경험들, 의문들, 감정들.... 이 모든 것을 기록해야 나 자신을 제대로 통찰하고 나의 이야기를 들여 줄 수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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