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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5일 09시 18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성복(1952.6.4~   ) 시인

 

경북 상주 출생. 5남매중 넷째로 태어남. 초등학교 시절부터 글쓰기 재능을 보이다가 1968년 경기고교입학 당시 국어교사였던 시인 김원호를 통해 글을 쓰기 시작. <창작과 비평>에 실린 김수영의 시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음. 1971년 서울대 불문학과 입학 문리대 문학회에 가입. 황지우, 김석희, 정세용, 진영준과 친분을 쌓음. 1976황지우 등과 교내 시화전을 열었음. 1982김수영 문학상수상. 1977(25) [정든 유곽에서] <문학과 지성>에 발표하며 등단.

2013 7번째 시집 [래여애반다라]발표. 제목은 '오다 서럽더라'란 뜻을 지닌 향가 풍요의 한 구절이다. <> 어미의 탯줄을 끊고 세상에 나와 <> 같아지려 애쓰다가 <>슬픔을 겪고 <> 맞서 대들다가 <> 무수한 일을 겪어보니 <> 인생은 결국 비단결처럼 펼쳐지더라. 라고 설명한다. 이 시집을 발표하며 갖은 인터뷰중에서 가져와본다.

 

나에게 시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 시는 써봐야 안다. 삶과 닮아있다. 써봐야 안다. 마지막에 놓을 때 아! 그렇구나. 이런 느낌이다. 경상도말로 "가가 가 가?" 그 순간이 올 때가 시이고 가보지 않으면 모른다.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은 메세지는...

 

말할 수 없음, 전달할 수 없음, 어떻게도 해 볼 수 없음, 속수무책, 속절없음 이런 것들이 기본저류이다. 시로서 각인시키고 싶은 것들이다.

 

시의 소재는 어디서 찾는가...

 

눈앞, 발 밑에 있는 것, 그것 그대로 즉물적이고 즉각적인 것이 시의 모든 대상이 된다. 그것이 내 눈앞, 내 발 밑에 있기 때문에 나라는 존재와 분리할 수 없고 그것이 나이고 나 자신의 삶이기도 한 것.

 

저서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남해금산] [그 여름의 끝] [호랑가시나무의 기억] [, 입이 없는 것들] [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자국] [래여애반다라]

 

산문집/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 [나는 왜 비에 젖은 석류 꽃잎에 대해 아무 말도 못 했는가] [프루스트와 지드에서의 사랑이라는 환상] [타오르는 물]

 

(고남수에 대하여)

 

1969년 제주출생, 경일대학교 사진영상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 개인전 <오름 오르다> 2001 <오름에서> 20008년 개최. 벨기에 네덜란드 일본 등에서 '오름'을 주제로 사진전을 열었다.

 

(나에게 이 책은)

 

다음은 2013 2월 숙명여대 권성우교수의 "문학이란 무엇인가"란 강좌의 알림글입니다.

 

"문학은 배고픈 거지를 구하지는 못하지만 배고픈 거지가 있음을 보여줌으로 세상의 진실에 빛을 비춥니다. 문학의 빛 앞에서는 세상의 본질뿐만 아니라 인간의 실체도 분명해집니다."

 

1년간 진행하는 인문학강좌의 첫 번째 주제가 문학이다. 강의를 들으며 시인에 대하여 새로운 관점을 가지게 되었다. 나에게 시는 사랑이었다. 내가 시를 즐겨 읽는 것도 연시(戀詩)를 읽기 위함이다. 몇 년에 걸쳐 시를 소재로 편지글을 썼지만 시인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한 것은 아니었다. 읽기 편하고 마음에 한 점을 찍는 시들을 읽는 재미였다. 유행가 가사가 마음에 쏙 들어오듯이 그런 시들을 읽었다. 작가는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이 있으니 글을 쓸 것이다. 그 중 시인이 좀 특별하다는 생각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어떤 구별점이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하지 못한 상황에서 들었던 문학강의는 어렴풋하게 저마다의 다름을 알게 되는 계기는 되었다.

 

기억에 남는 한 토막을 적자면 강의를 진행하던 성우교수는 대학시절 시집 한 권과 점심한끼를 맞바꾸면서 시집을 샀었노라고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시집은 한끼밥값을 지불하면 살 수 있는 정도의 가격이다. 160쪽짜리 시집 한 권이 현재 8천원이다. 밥도 먹고 시집도 살 수 있으면 좋았겠지만 넉넉치 못한 살림에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고 했다. 읽고 싶은 시집을 포기하고 점심을 먹느냐? 점심을 굶고 시집을 살 것이냐? 갈림길에서 권교수는 시집을 택한 기억이 많았다고 했다. 이 말을 들으면서 작정했다. 시집을 좀더 열심히 사서 봐야겠다. 왠만하면 시집은 꼭 사봐야겠다라고.

 

방법이 있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이성복 시인의 말이다. 연애시를 좋아하는 내게 이 말은 제대로 정곡을 찔렀다. 그렇지. 적어도 사랑을 했다고 하면 이 정도의 통찰은 있어야 제대로 사랑을 한 거지. 사랑을 잘 할 수 있는 방법, 또는 비법이 있다면 대박 상품이 될 일이다. 그런 시인의 시집을 몇 권 보다가 시인의 다른 책들을 찾아보았다. [오름 오르다]는 사진에세이이다. 시인은 제주에서 태어나 오름을 주제로 사진을 찍는 고남수작가의 전시회포스터에 붙들린다. 사무실 한쪽에 포스터를 붙여놓고 들며 나며 눈길을 주면서 오름의 선과 면을 분해하고 재구성해 보게 된다. 사진작가가 렌즈로 오름을 포착했다면 시인은 언어로 오름을 재구성한 글이다.

 

 

검은색과 흰색 그리고 검은 삼나무 검은 돌로 만든 무덤들 회색 빛 구름 모든 것이 무채색인 오름에서 시인은 자신의 렌즈로 분해하고 자신의 프레임으로 이야기를 구성해간다. 절묘하고 감동적이며 언어는 이렇게 사용하는 것이다 란 말을 내게 하고 있다. 지난여름 나는 에트나를 담아왔다. 화산재로 뒤덮인 검은 산과 파란하늘 유황냄새가 진동하는 연기. 하늘로 올라가는 유황냄새를 품은 연기들은 미친년 머리카락을 연상케 했다.  미쳤지만 미치지 않은 미치지 않은 우리들이 오히려 미쳤을지 모르는 지상과 지하세계의 통로가 어딘가에 있을 법한 살아있는 화산을 밟고 온 나는 제주의 오름에서 다른 에트나를 본다.

 

한 장의 사진에 이렇게 많은 사유가 가능하구나. 이렇게 깊은 생각들이 건져 올려지는구나. 흑백사진에 어울리는 흑백의 기억들이 글 곳곳에 박혀있다. 사진을 한 번보고 글을 두어줄 읽고 다시 사진을 보고 글을 읽고 아...! 바보 도()트는 소리를 내면서 읽다가 멀리 가지도 못하고 책을 덮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무의식정화를 체험하고 나면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눈이 생길 거라고 하던 말이 효험이 있는 걸까? [오름 오르다]는 내게 지난 여름의 공부가 보내준 준비된 한 권의 책 같은 느낌이다.

 

1980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이후 2013 [래여애반다라]를 발표하기까지 꾸준히 시를 써오고 있는 시인의 한 두 작품을 적는다. 저자의 출판물이 꾸준히 나오기를 기대한다.

 

선생2   이성복

 

종강하던 날 영문과 여학생이 준

사탕봉지에는 카드가 들어 있었다

 

선생님께서 그토록 열심히

가르쳐 주셨건만, 형편없는

시만 쓰고 졸업하게 되었군요

 

그래, 그건 정말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좋은 선생님들 밑에서

남부러울 것 없이 공부했지만,

되도 않은 시나 쓰면서

그게 바로 시라고 가르쳐 왔으니

 

제사 때마다 나 글 잘 쓰게 해달라고

빌던 어머니 보시기에도

지 애비 신문 났다고 무슨 경사

난 줄 아는 자식 놈들 보기에도

 

나는 부끄러운 시만 써왔으니,

오래도록 영문과 여학생의 말은

귓가를 떠나지 않는다.

 

2013.3.12에 이 시를 스승(고 구본형)과 친구에게 보냈다. 왠지 저 여학생이 건네는 사탕봉지와 카드를 나의 스승에게도 보내드려야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투병 중이신 스승생각이 나서 눈물이 핑 돌았던 날이다. 스승은 말이 없고 친구는 엉뚱하다. “누가 갱년기 아니랄까 봐 이 아줌마가 뭐가 슬프다고 눈물이 난다고 하나?”

 

 

남해 금산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 주었네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

 

앞날

 

당신이 내 곁에 계시면

나는 늘 불안합니다

나로 인해 당신 앞날이

어두워지는 까닭입니다

내 곁에서 당신이 멀어져 가면

나의 앞날은 어두워집니다

나는 당신을 잡을 수도 없습니다

언제나 당신이 떠나갈까

안절부절입니다

한껏 내가 힘들어하면 당신은

또 이렇게 말하지요

당신은 팔도 다리도 없으니

내가 당신을 붙잡지요

나는 당신이 떠나야 할 줄 알면서도

보내드릴 수가 없습니다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5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 것만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12 지나가는 발길에 여러 번 밟힌 팻트병처럼 쭈그러진 어떤 느낌이 있어,

 

14. 무심코 바다에 들어가 물이 턱밑까지 찰랑거릴 때, 혹은 재래식 변소에서 분뇨가 거의 발판까지 닿을락 말락 할 때의 느낌이 그러할까.

 

15 저 혼자 밝거나 저 혼자 어두울 수는 없는 것이며, 저 혼자만으로는 선도 면도 부피도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사물은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17 그 소리들은 코팅으로 처리된 책의 표지처럼 번쩍이는 것들이 아니라 무 광택의 밋밋하고 맨드러운 태깔을 얻는 것이다. 그 태깔은 책의 페이지 사이사이 끼워놓은 질경이풀이 오래 다듬잇돌에 눌려 얻게 되는 것과 같은 것이리라.

 

22 우리의 어리석음은 깊고 깊어서 진실이 바로 곁에 있어도 쉽게 지나치고 만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들은 대개 사방 십 리 안에 다 있다는 어느 영화감독의 말처럼, 진실은 결코 멀리 있지 않아서 우리가 약간의 열정만을 가진다면 금세 눈앞에 드러나기도 한다.

 

26 그토록 우리의 관심과 연상은 신의가 없다. 한참 재미있던 소꿉놀이를 뒤로 한 채 문득 날아온 나비를 쫓아가는 아이처럼

 

실제의 풀꽃들은 화면으로 들어오는 바로 그 순간 비의 얼룩과 별들의 은하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어찌 알겠는가. 우리 또한 저 검은 등성이처럼 어두운 세상에 한 덩이 운석으로 왔는지, 하여 세상의 풀꽃들이 시들 때면 아득한 겨울 하늘 실 끊어진 방패연으로 떠나갈는지.

...! 높은 하늘의 뭉게구름이 보고 싶다. 몽골의 은하수가 그립다. 끊어진 방패연으로 떠나가는 모습...아득하고 아련한 그리움이 남는 그런 모습으로 떠남. 좋다.

 

27 창유리의 와이퍼에 겁먹기라도 한 듯 숱한 비의 얼룩은 은하의 별들처럼 가녀린 파닥거림을 시작하고, 한숨처럼 낮은 오름의 꼭지점 바로 아래 수천 수만 눈송이로 치떠 오르는 것이다. 거기 아니면 숨을 곳이 없다는 듯, 거기밖에 몸져누울 곳이 없다는 듯.

 

28 그리하여 오래 바람에 시달리다 기진한 오름의 풀꽃들은 겨울 저녁 개울가에 매어놓은 흑염소의 등때기에 점점이 달라붙는 싸락눈이라고 할까. 이제는 혼자 남아 쓸모 없는 뿔로 제 옆구리를 쥐어박기도 하는 흑염소의 눈곱 낀 눈을 오름은 숨은 그림 속 다시 숨은 그림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36 소리와 모습은 상호 전염적이며 상호 동화적이다. 가령 '잿빛'이라는 소리는 '잿빛'이라는 빛깔을 물들이며, '봉분'이라는 소리는 '봉분'의 모습을 지니게 된다. 우리는 겨로 있는 기대로의 '잿빛'이라는 빛깔을 볼 수 없으며, 있는 그대로의 '봉분'이라는 소리를 듣지도 못한다. 요컨대 우리는 은유의 잿빛 봉분 속에서 한 발자국도 걸어나올 수 없는 것이다.

 

43 검은 오름 뒤로 솟은 먼 곳의 오름은 가족사진을 찍기 위해 어른들 사이로 한껏 발꿈치를 들고 얼굴을 내미는 아이의 모습을 닮았다고 할까.

 

45 항용(恒用) 인생을 두고 긁어 부스럼이며 평지풍파라 하지만, 보다 적극적이고 의도적인 착시현상인 예술은 공연한 부스럼을 다시 긁어 없애고, 공연한 풍파를 다시 흔들어 잠재우려는, 어쩌면 헛된 노력이 아닐까. 왜냐하면 부정의 부정이 긍정이 된다 할지라도, 그때의 긍정이 부정 이전의 상태와 같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부정의 부정이 부정 이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는 어떤 보장도 없는 것이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한번 생긴 부스럼과 풍파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보다 더 비극적인 것은, 우리가 몸담고 있는 세계는 일찍이 우리가 만들었다고 믿는 부스럼이나 우리가 일으켰다고 믿는 풍파를 받아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실상 그와 같은 믿음까지도 우리가 만드는 또 다른 부스럼이며 또 다른 풍파일 따름이다. 요컨대 세계 안에서 우리는 '작년엔 송곳 꽂을 자리가 없더니, 올해는 꽂을 송곳도 없다'는 방식으로 존재한다.

바닥은 그대로이다. 한번도 상처 난 적이 없다.

 

55 스핑크스의 귀는 결코 슈퍼맨의 귀처럼 날카롭게 세워져 있지 않다. 밤낮으로 바람이 핥고 간 모래언덕의 완만한 곡선을 닮은 귀는 이제는 세상 어느 곳으로도 굴러갈 수 없는 부서진 수레바퀴처럼 허공에 묻혀 있다.

 

57 오름의 수태는 불안하고 불길한 조짐을 띠기까지 한다. 그것은 젊은 시절의 어떤 꿈, 가령 마음엔 들지 않지만 어쩌다 하룻밤을 같이 보낸 여인의 배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기 시작해, 한참 식은땀 흘리다 깨어나 고개를 흔들곤 하던 젊은 시절의 어떤 꿈을 상기시킨다.

속수무책의 극치를 보여주는 풍광이다. 배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 여자와 식은땀을 흘리는 남자의 모습. 이성복시인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은 욕망이 생기는 구절이다.

 

66 목이 터져라 울어 쌓던 우리 집 아이한테처럼, '시끄럽다 임마, 좀 조용히 해라'중얼거리면 녀석은 너하고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듯 멀뚱히 앞만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또 내가 딴생각을 하고 있으면 녀석은 흐으으 으으, 너무 슬프지도 않은 울음을 길게 울었다. 붉고 푸른 노을이 두터운 머풀러처럼 모래언덕을 감고 있었다.

 

74 떨어지는 공을 몸을 밀어 넣어 잡아내는 야구선수처럼, 높은 데서 떨어지는 아이를 온몸으로 받아 안아 뼈가 으스러지는 엄마처럼, 희생은 넘어지는 것과 함께 넘어지는 것이며 무너지는 것과 함께 무너지는 것이다.

 

88 애초에 동공이 없는 그 눈의 텅 빈 중심은 깨진 계란의 흰자와 노른자처럼 뒤섞여 다시는 부화할 수 없는 운명을 예고하는 것처럼 보인다.

 

93 그러니까 분리가 먼저 있고 변화가 생기는 것이다. 어느 때부턴가 침실을 달리 쓰기 시작한 부부처럼, 분리가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이며 분리 자체가 이미 변화인 것이다.

 

97 아름다운 말이 말과 침묵의 대화이듯이, 아름다운 길은 길과 보이지 않음의 대화이다. 말이 침묵을 통해 깊어지듯이, 길은 보이지 않음을 통해 아늑함과 아득함을 얻는다. 그런 점에서 길의 중간에 돋아나 느닷없이 길의 진행을 가로막는 나무들의 검은 둥치는 풍경을 난자하고 유린하는 길의 전횡을 제지하는 쐐기와 같다.

 

104 아름다움이란 본래 자연 속에 숨어 있는 것이 우연히 드러나는 것에 불과하며, 본질적으로 자연에 뿌리 두지 않은 아름다움이란 없다고 할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아름다움은 자연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다. 허물어져 가는 봉분이나 습기 먹어 곰팡이 핀 벽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그것들이 이미 자연의 경계 안으로 들어섰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결코 아름다움을 만들어낼 수 없지만, 그러나 그러나게 할 수는 잇다. 그것은 무엇보다 아름다움이 자연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자연에서 뿐만 아니라, 인간 안에서도 아름다움을 드러낼 수 있다. 그것은 물론 인간 자신이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아름다움은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며, 궁극적인 발견은 이 세상 어느 것도 자기 손으로는 만들어낼 수 없다는 발견이다.

 

116 선인들이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라고 이른 것도 ''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나라고 말할 누더기가 없다. 즉 있기는 있되 헛 껍데기로 있다는 뜻이리라. 그런 점에서 유독 인간만이 스스로 만든 환상의 뱀에 물리는 존재이며, 자기가 만든 호랑이에게 잡아 먹히는 환술사이다. 문제는 환상의 뱀이나 호랑이에게 환상으로 물리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물려 울고 피 흘리며 죽어간다는 점이다.

 

117 결핍이라는 환상 없이 어찌 꿈꿀 수 있으며, 꿈꿀 수 없어 아름다움까지 없는 천국에서 누가 살려 하겠는가. 누가 시체와 공동묘지의 평화를 바라겠는가. 비록 고통이 아름다움을 만드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분명한 것은 아름다움은 언제나 고통과 함께 있다는 점이다. 환상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뿐 아니라 환상이 깨지는 순간의 고통 또한 아름다울 수 있으니, 고통과 아름다움은 환상의 배를 찢고 나온 일란성 쌍둥이라 할 만하다. 환상에게서 태어난 그것들은 다시 제 배로 환상을 낳기도 해서, 고통이 낳은 환상과 아름다움이 낳은 환상이 결합하여 또 다른 고통과 아름다움을 낳는 것이다. 그러니 지상의 짧은 삶에서 아름다움을 포기하지 않는 자는 결코 고통과 헤어질 수 없다.

 

118 마침내 자포자기한 눈길은 오름의 검은 대지 위에 피어난 들꽃들로 돌아온다. 그 하얀 꽃들이 가벼운 눈송이나 은하의 물결처럼 반짝이는 것은 끝끝내 지상의 고통과 헤어지지 않은 자의 눈 속에서이다.

 

127 이른바 기도란 소멸하는 것들이 아직 소멸하지 않은 채로 불멸과 교통하는 방법이며, 죽은 이들에게 올리는 제사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소멸하는 것들의 어느 몸짓인들 기도와 제사 아닌 것이 있겠는가. 지상에서 소멸하는 모든 것들은 기도와 제사를 알기 전부터 불멸을 먹고, 입고, 싸고, 누는 정성을 바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와 제사가 다른 어느 행위보다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소멸하는 몸이 자신의 소멸을 알고 있으며, 그로 인해 불멸이 들어설 수 있는 틈새를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멸하는 것 속에 들어온 불멸의 항구적인 것이 아니어서 소멸하는 몸과 함께 간헐적 불멸로 나타나는 것이다.

 

134 미주알고주알 다 말한다고 바로 말하는 것이 아니며, 쫀쫀하게 다 보고 듣는 것이 제대로 보고 듣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귀밝음()과 눈밝음()은 흑백의 화면에서처럼 사물의 소리와 빛을 단순하게 듣고 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가령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고 나서야 얼마나 그를 사랑했는지 알게 되는 것도, 그가 있을 때는 그의 자리가 가려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대상의 진실을 알게 되는 것은 가난과 이별을 통해서이며,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고통과 상처는 진실과의 맞대면을 위해 바쳐야 하는 희생이다.

 

마치 저를 닮은 허물을 남겨두고 퍼드덕거리며 날아올라 첫 울음을 터뜨리는 매미처럼, 대상이 제 모습과 소리를 보여주는 것은 그때이다.

 

135 속되게 말하자면 언어로 대상을 파악하겠다는 것은 부엌칼로 박테리아를 해부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기껏해야 언어는 풀잎이 풀잎답다거나 갈대가 갈대답다는 동어반복으로써 대상 앞에서의 무력감을 표현할 뿐이다.

 

156 완벽은 인간의 꿈이지 자연의 몫이 아니다. 자연은 완벽을 꿈꿀 만큼 어리석지 않다. 자연이 어리석게 보이는 순간조차, 어리석음은 자연을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의 몫이다. 인간의 지혜는 자연이 가장 어리석어 보이는 수난에도 더할 나위 없이 지혜롭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있다.

 

157 완만한 태극 능선 위로 불쑥 솟아오른 뒤편의 오름은 뚜껑을 열고 틀어 올린 립스틱의 뭉개진 끄트머리 같기도 하지만, 차라리 발기하기 시작하는 음경이나 음핵의 모습에 가깝다고 할 것이다.

 

163 우리가 흔히 '왠지 모르게'라고 말하는 것들 안에는 한두 차례 조사를 거치기만 하면 선연히 모습을 드러내는 이유들이 있다. 흔히 우연이라고 말해지는 것들은 아직 이해되지 않은 필연이다.

 

164 몇 번의 조작을 거치기만 하면 우리는 도무지 본래의 것을 알아보지 못한다. 가령 동전 하나를 손에 쥐고 몇 번만 손을 바꾸면 대개의 사람들은 그것이 어느 손에 가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이 바로 아는 것인가에 대해 질문하지 않으며, 그리하여 공연히 남의 다리를 긁거나 자기 다리를 부러뜨리는 희극적(비극적)배극(희극)을 계속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또한 우리에게 낯선 것들이 반드시 우리와 이질적인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가져볼 필요도 있다. 본래 기이하고 섬뜩한 것들이 우리에게 행사하는 불편한 힘은 그것들을 밀어내려는 우리 자신의 본능적 충동에서 나온 것이며, 그것은 마주 오는 차들의 불빛으로 빛나는 도로 표지판과 같은 원리라 하겠다. 손톱으로 스텐 대야를 긁을 때 나는 소리가 그토록 소름 끼치게 들리는 것은 그 소리가, 혹은 적어도 그 소리를 닮은 소리가 이미 우리 안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안에 있는 무엇이 대야 긁는 소리를 인지한다면 그 우리가 느끼는 많은 것들 중에 동일하게 느끼는 것들은 같한 흔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동질적인 부분이 공유된 적이 있다는 말이기도 할 터.

 

177 두말할 나위 없이, 확인하고 수용하기 이전에 이미 가난은 아름다움이다. 마치 해의 빛으로 달이 밝은 것과 같이, 확인하고 수용하는 모습의 아름다움은 가난이 본래 가진 진실의 반사광일 분이다. 가난을 확인하고 수용하는 것은 아직, 여전히 덜 가난하다. 가난은 확인보다 앞서 수난이며, 수용보다 먼저 희생이다. 그것은 의지와 선택의 문제라기보다는 재난과 운명의 몫이라 할 수 있다. 가령 죽은 다들을 무릎에 안은 어머니의 전형인 피에타상을 생각해보라. 조동이만 달싹하면 뻥이라는 '조달뽕'이라는 말과 같이, 가난의 진실 혹은 가난의 아름다움이라는 말까지도 가난을 수식하는 미사여구에 불과하다. '작년에는 송곳 꽂을 자리가 없더니 올해는 꽂을 송곳도 없다.'는 선가의 공안과 마찬가지로, 철저히 헐벗은 가난에는 진실과 아름다움이라는 말이 들어설 자리가 없을 뿐더러, 그 말조차 성립하지 않는 것이다. 가령 소시쁘 만젤쉬땀의 생애가 그렇지 않은가.

 

<>

 

쭈체프

 

산 아래로 떨어져

골짜기에 드러누운 돌

어떻게 떨어졌을까? 아무도 모르게...

정상에서 혼자 떨쳐 달아난 돌일까?

누군가 아래로 던진 걸까?

 

183 좁은 문틈으로 들어온 벌이 다시 그 문틈으로 나갈 생각을 못하는 것은 들어올 때의 고통스러운 기억이 너무도 선명해서라고 하지만, 아무래도 그건 아닌 것 같다. 어떻든 자신이 왔던 길을 빠져나갈 출구로 생각해보지 못한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185 죽음은 목걸이 중간의 귀금속 장식처럼 지상의 어느 행로에서나 빠뜨릴 수 없는 보석이라 할 것이다.

 

186 남자 속에 여자가 있고 여자 속에 남자가 있듯이, 삶 속에 죽음이 있다면 죽음 속에도 삶이 있다. 남자에게서 다시 남자가 나올 수 없는 것은 여자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며, 삶이 곧장 삶으로 이어질 수 없는 것은 죽음이 삶을 껴안고 있기 때문이다.

 

187 양쪽 경사면의 경계에 따라 이어지는 능선의 길처럼 어떤 존재도 삶과 죽음의 비탈 어느 한쪽만을 고집할 수 없다. 삶의 저쪽이 죽음이듯이 죽음의 이쪽이 삶이기 때문이다.

 

195 사물은 의식이 자기를 비춰보는 거울에 불과하며, 이를 사물 쪽에서 이야기하면 사물은 의식을 비춰낼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질 때만 사물일 수 있다.

 

196 모든 대상의 의식과 모든 의식의 대상은 대립구조 안에 있다. 양자는 공중에 날아가는 새와 지상에 내려앉는 새 그림자처럼 동시에 움직이지만 결코 포개지지 않는다. 하늘을 나는 새 그림자가 풀숲에 앉든 나뭇가지에 앉든 지붕 위에 앉든 한번 지나가면 흔적이 남지 않듯이, 의식을 비추는 사물과 사물을 비추는 의식도 그러할 것이다. 마치 우리가 거울을 들여다볼 때 거울이 우리 눈을 들여다보듯이, 사물의 거울 속에 의식이 자기를 비춰보는 순간, 사물은 의식의 거울 속에서 자기를 비춰본다.

 

202 간난(艱難)은 가난의 원액과도 같아서 그냥 한번 맛볼 수는 있어도 두고두고 마실 수는 없는 것이다. 그에 반해 가난은 아주 견딜 수 없는 것은 아니어서, 조금 나았다거나 또 도졌다가 하는 병처럼 그럭저럭 지낼 만은 하고, 그러는 사이 밥도 먹고 친구도 만나고, 때로는 말도 안 되는 꿈, 깨고 나면 씁쓸하기만 한 꿈을 꾸는 그런 날들을 생각나게 한다.

 

205 달리 바라보면 불룩 속은 아랫배 주위로 퍼져 있는 피부병의 흔적은 건포도가 박힌 초코 머핀 같다. 하지만 그 세련된 양과자의 이름이 헐벗은 가난의 능선과는 어울리지 않는 다는 것을 눈치챈 상상력은 재빨리 그것을 팥고물이 떨어져 나간 시루떡으로 대체한다. 가난의 느낌과 심상은 빈번히 음식과 결부된다. 그것은 집이나 옷 이상으로 음식이 가난의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지표가 되기 때문이다. 재밌다. 나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초코 머핀과 팥고물이 덜어져 나간 시루떡.

 

216 의미는 끝없이 지연될 뿐 최종적인 의미는 따로 없다. 우리가 신비라고 생각하는 것은 숨김과 보여줌, 혹은 숨겨짐과 보여짐의 구조를 통한 의미의 지연 현상일 뿐이다. 그것은 선택된 공간이나 특정한 사물들 속에 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들 각자가 숨겨짐과 보여짐의 구조에 따라 배열될 때 생겨나는 특별한 효과이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신비란 숨겨짐과 보여짐의 구조 속에 배열되는 사물들이 우리에게 일으키는 신비로운 효과이다. 즉 우리는 사물들이 숨겨짐과 보여줌의 구조로 나타날 때 신비를 체험하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우리 안에 이미 신비가 있지 않다면 어떻게 우리 밖의 신비를 느낄 수 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예술이란 마치 거울을 들여다보듯이 우리 안의 신비가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 자신이 바라보는 사물들을 숨겨짐과 보여줌의 구조 속에 배열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에게는 사물들의 위치를 우리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힘이 없다. 하지만 사물들을 바라보는 시점을 선택함으로써 그것들이 신비의 효과를 띠게 할 수는 있다.

 

222 신비에 대해 우리가 잘 말할 수 없는 것은 그것이 말을 넘어선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말이 없어서는 신비도 없다. 신비가 말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우선 넘어설 말이 있어야 한다. 이를테면 그것은 아이들이 구부린 등을 타고 뛰어넘는 놀이와 같다. 타고 넘어야 할 등이 많을수록 놀이가 재미있듯이 넘어서야 할 말이 많을수록 신비는 더 풍부해진다. 인간에게 말이 중요한 것은 말 자체의 쓰임새 때문만이 아니라, 말을 통해 말로써는 닿지 않는, 말 너머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말은 보이는 세계와 함께 있다. 말이 없다면 보이지 않는 세계를 생각할 수도 없다. 보이지 않는 세계란 말로 지칭되는 보이는 세계 바로 너머에 있기 때문이다. 보이는 세계 없이 보이지 않는 세계란 있을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신비란 말을 넘어선 자리에 있다기보다는, '말의 세계' '말 너머의 세계'사이에 존재한다고 해야 정확한 표현이 될 것이다. 아이들이 구부린 등을 타고 뛰어넘는 놀이의 이름이 말타기 놀이이고 인간에게 말은 말타기 놀이를 위한 구부린 등, 타고 넘을 등이란 연결이 신기하다. 신비와 말의 연관성 그리고 말타기놀이 저자는 말의 신비가 마음에 깊숙이 새겨진다.

 

235 좋은 의미에서 사이비(似而非)는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의 존재조건이다.

 

238 대상의 아름다움이 절실할수록 대상과 은유의 길항작용은 가열하며, 이를 거꾸로 말해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치열한 마찰이 모든 정념과 성적 쾌락의 기본 원리라는 것을 우리는 아름답다는 말까지 군더더기에 지나지 않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오름의 영상들에게서 깨닫게 된다.

 

248 별똥별을 뚜렷하게 보려면 첫째, 불빛이 닿지 않는 어두운 곳에서 바라보아야 하고 둘째, 높은 곳에 올라가 보아야 하고 셋째, 매직 아이를 볼 때처럼 시야를 흐릿하고 널게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검은 오름의 내부에서 '음중양'의 비의를 읽어낸 사진의 작가는 이미 그 충고를 체득하고 있었으리라.

 

3. 목차

 

사물 혹은 비밀이라는 빌미

숨은 그림 속 숨은 그림

은유의 잿빛 봉분

긁어 부스럼 다시 긁기

오름 혹은 지독한 임신의 꿈

어찌 눈뜨지 않을 수 있으랴?

내재와 즉물의 신비

사랑이라는 미친 유혹

외줄기 흰 줄의 은유

끊어진 길들의 하얀 만남

쏟아져 내리며, 아득히 흘러가는

키 작은 꽃들의 간헐적 불면

섬세하고 유순한 오름의 내부

섬뜩하고 불길한 눈알의 기억

아시아적 평화의 성애적 이면

검은 삼나무 장벽과 사각 무덤들

어두운 영혼의 밤

물 묻은 글자처럼 번지는 존재의 슬픔

숨 막히는 검은 꿈틀거림

한심하고 어설픈 가난의 곡선

꽃핀 복숭아나무 가지의 능선

반투명 큰 산의 피라밋

넓고 깊은 오름의 자궁에서

검은 오름 속음중양의 비의(悲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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