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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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아집니다. 움직이고
싶지 않지만 밀폐된 공간에 있는 것은 위험합니다. 생각이 생각을 물고 오니까요. 피하고 싶어 집니다. 방망이 한번에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 도깨비의
위력을 맛보고 싶은 날입니다.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사라지고 싶다는 말이지요. '내게 또 이런 일이...왜? 무슨
의미일까. 이제는 더 이상 일을 하지 말라는 뜻인가?' 사태가
최악의 시나리오로 간다면 그렇게 될 겁니다. 누가 그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견뎌낼 자신이 없으니까요. 해결방법은 보이지 않고 앞은 캄캄하고 압박감이 밀려옵니다. 견뎌야
합니다. 충분히 견뎌서 살아갈 에너지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럴
때 제 방식은 걷기입니다. 이왕이면 아무도 없는 곳이 좋겠지요. 산으로
온 이유입니다.
땅을 기는 미물이 된 기분입니다. 아래로
아래로 몸이 붙어갑니다. 마음도 몸을 따라 가라앉고 있습니다. 우울모드로의
전환입니다. 왜 우울하냐구요? 또 사고가 났습니다. 돈 만지는 일을 하는 사람이 무슨 사고겠습니까. 돈 사고지요. 고객의 투자자산으로 회사채를 매수했는데 채권 발행회사가 주거래은행으로부터
"부실징후기업"판정을 받았습니다. 누가
권유 했냐구요? 제가 그랬지요. 나름 면밀히 분석해서 결정
한 일이지만 면목없음을 피할 길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 판정을 받으면 기업이 발행했던 채권의 만기가
소멸됩니다. 만기와 상관없이 채권자가 채무자(발행회사)에게 지급청구를 할 수 있다는 의미합니다. 채권자(투자자)의 청구에 응해야 하는 발행회사(채무자)는 자금여력이 없어 지급불능상태가 되고 부도가 날 수 밖에
없습니다. 당장 지급청구를 하는 움직임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미래에 어떻게 될지 알 지 못합니다.
여러 가지 시나리오가 있습니다. 사람이
백인백색의 성격을 가지고 있듯이 기업도 저마다 처한 상황이 달라 단정적으로 말하지 못합니다. 발생 가능한
모든 경우를 헤아려 봅니다. 여러 상황 중 최악의 시나리오를 먼저 고객에게 설명합니다. 그리고 조금 덜 나쁜 경우를 설명하지요. 어떻게 해결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당장의 곤란함을 피하기 위해 희망적인 말을 할 수는 없으니까요. 제 마음은 누구보다 잘 해결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바램과 현실의 괴리가 발생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기업이란
변수가 많아서 섣불리 희망을 말하지 못합니다. 이런 일이 생기면 투자한 고객들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스칩니다. 쿵! 하고 가슴이 내려앉습니다. 심장이
떨려옵니다. 터질 것 같습니다. 내공이 발휘되지 못합니다. 차라리 내 몸이 아픈 것이 낫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원인제공을 했으니
몸으로 때우기를 바라는 심정이 되기도 합니다. 몇 대 맞는다고 죽기야 하겠어? 하는 마음이지요.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섭니다. 지하철과 마을버스를
타면 산으로 갈수 있습니다. 한번의 경험은 두 번째를 편하게 만드는 힘이 있지요. 갔던 길로 그냥 가면 되니. 마을버스 종점에 다다랐습니다. 종점은 마지막이자 다른 시작을 의미합니다. 버스에서 내리니 바로
산길이 시작됩니다. 꽃이 한창이던 산 벚나무는 잎이 무성해 졌습니다.
앙상한 가지에 꽃만 달고 있던 진달래도 잎을 달았네요. 연분홍 철쭉은 제 때를 만난 모양입니다. 꽃과 잎이 어우러져 미소년 같이 곱습니다. 나뭇잎들 사이로 하늘을
올려다 봅니다. 떼쓰다 야단맞은 아이처럼 잔뜩 찌푸리고 있습니다. 내
마음과 하늘색이 닮았습니다. 장마통이라 그런가 봅니다.
위로를 한답시고 말합니다. “삼십 년 내공에
그만한 일이 처음입니까? 몇 번은 겪었을 일인데 뭘 그래?”친구에게
화를 냈습니다. 어안이 벙벙했겠지요. '모르면 가만히나 있지…'속이 시끄럽습니다. 왜 이런 심통을 부리고 있을까요.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으니 괜시리 곁에 있는 사람을 괴롭힙니다. 말없음. 따지지 않음. 의도하지 않음. 설득하지
않음. 기대하는 바 없음. 친구보다 산이 좋은 이유입니다. 오늘은 칼바위 코스입니다. 바위가 버티고 길을 내어주지 않습니다. 고개를 젖혀 하늘과 맞닿은 끝자락을 봅니다. 깍아 지른 바위는 직립보행을
허락치 않을 기세입니다. 기어 오르라는 말이지요. 바위틈에
살고 있는 소나무와 싸리나무가 인사를
건넵니다. “그래. 잘 왔어. 어서 와…”
오르막을 걸어야 하는 산은 몸에서 머리를 떼어내 줍니다. 걷기에만 집중이 됩니다. 가슴은 벌렁거리고 땀이 흐릅니다. 심장이 열려 풍욕을 하고 땀구멍은 삶의 찌꺼기를 쏟아냅니다. 더
이상 사고(思考)를 하지 않게 해 줍니다. 오늘은 한적한 길을 택했습니다. 시간이 되는 만큼, 체력이 허락 되는 동안 걸어볼 작정입니다. 아무런 계획 없이 그냥
걷는다는 말이지요. 투자는 소소한 손실이 늘 함께합니다. 이번은
좀 심각합니다. “당신은 그 자리에 있을 때 제일 아름다워요. 그러니
잘 이겨내길 바랍니다”이 말도 듣기 싫습니다. "나도 알아!
안다고! 그걸 왜 모르겠어. 몰라서 이러는 게
아니라고." 또 심통을 냅니다. '잘못은 지가 해놓고
왜 나한테 화풀이야'궁시렁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능선에 올라서니 사방이 눈에 들어옵니다. 툭
터진 시야가 내게 말을 겁니다. '잘 될거야.' 나는 생각합니다. 무엇이 잘된 해결일까. 벌어진 일은 없었던 것이 되지는 않습니다. 상처는 흔적을 남기지요. 돈과 마음 모두에게 말입니다. 아물지 않는 상처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잘 되겠지요? 못된 성질 받아주는 친구와 말없이 위로가 되는 산이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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