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땟쑤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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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9기 연구원 14주차(김대수)
“나의 인생, 시와 진실(동서문화사) “
1. 저자소개
요한 볼프강 폰 괴테(독일어: 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년 8월 28일 ~ 1832년 3월 22일)는 독일의 작가이자 철학자, 과학자이다. 바이마르 대공국에서 재상직을 지내기도 하였다.
왕실고문관인 아버지 요한 카스파르 괴테와 , 프랑크푸르트암마인 시장의
딸인 어머니 카타리네 엘리자베트 텍스토르 사이에서 태어났다. 북독일계 아버지로부터는 '체격과 근면한 생활 태도'를, 남독일계의 어머니로부터는 예술을 사랑하는 '이야기를 짓는 흥미'를 이어받았다.
어려서 천재교육을 받았으며, 7년 전쟁 중 그의 고향이 프랑스군에게
점령되었을 때 프랑스 극과 회화에 관심을 기울였으며, 그레트헨과의 사랑(1763년-1764년)이
깨어진 후 16세 때 입학한 라이프치히 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재학중(1765년-1768년), 안나카타리나 쇤코프와 연애를 하였고, 이 체험을 통해 로코코풍의
시나 희곡을 발표하였는데 목가조의 희극 <애인의 변덕>,
<공범자>가 그것이다. 분방한 생활로
병을 얻어 고향으로 돌아왔다.
귀향하여 요양 중(1768년-1770년), 수산네 폰 클레텐베르크(1723-1774)와의 교제를 통하여, 경건한 종교감정을 키웠으며, 또한 신비과학이나 연금술에 흥미를 기울였다. 회복 후, 1770년 스트라스부르 대학교에서 법률박사 학위를 얻었다. 그러던 중에 헤르더와 상봉해, 문학의 본질에 눈뜨고
성서, 민요, 호메로스, 셰익스피어
등에 친숙해졌다. 그의 영향으로 셰익스피어의 위대함을 알게 되고 당시 지배적이었던 프랑스 고전주의
미학에의 반발이 심해졌다.
제쎈하임의 목사의 딸인 프리데리케 브리온을 사랑하여 민요풍의 청신소박한 서정시를 지었고, 대승원의 건물을 보고 고딕 건축의 진가를 터득하기도 하였다. 귀향후
변호사를 개업(1771년)하였으나, 관심은 오히려 문학에 쏠려 《괴츠 폰 베를린힝겐》(1773년)의 초고를 정리하고 다름슈타트의 요한 메르크(1741-1791)와
친교를 맺었다. 1772년 법률실습을 위해 베츨라어 고등법원으로 가게 되고 그곳에서 샤를로테 부프(1753-1828)를 알게 되었다. 프랑크푸르트로 돌아와, 슈투름 운트 드랑기의 대표작인 희곡 《괴츠 폰 베를린힝겐》 및 비극 《클라비고, 비극 《슈텔라》와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발표하여 작가적 지위를 확립했다.
독일 문학의 최고봉을 상징하는 괴테의 생애를 돌아보면 ‘거인’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린다. 80년이 넘는 긴 생애 동안 활동하며,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같은 베스트셀러에서 [파우스트] 같은 대작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도 폭넓은 작품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그래서였을까. 나폴레옹은 1808년에 괴테를 만나고 다음과 같은 묘한 말을 남겼다. “여기도
사람이 있군.” 일각에서는 당대 최고의 영웅이며 천재로 칭송되던 나폴레옹이 괴테를 자신에 버금가는 인물로
인정한 것이야말로 최상의 찬사라고도 여긴다.
* 7년 전쟁
슐레지엔 영유를 둘러싸고 유럽대국들이 둘로 갈라져 싸운 전쟁(1756~1763).
제3차 슐레지엔 전쟁이라고도 한다.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 때에 프로이센에게 슐레지엔을 빼앗긴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테레지아는 탈환을 기도하여 군비증강에 주력함과 동시에 200년 동안 적대관계에 있던 프랑스와 제휴하고 다시 러시아 ·스웨덴 ·작센 기타 독일의 제국과도 동맹을 맺고 프로이센을 포위할 체제를 정비하였다.
한편 영국과 결탁한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는 1756년 8월 기선을 제압하여 작센에 침입함으로써 전쟁이 터졌다. 이 전격전으로
프로이센은 서전의 승리를 거두었으나 얼마 후 우세한 적군의 반격을 받아 점차 병력이 소모되어 수세에 몰렸다. 특히 1759년 8월 오스트리아 ·러시아
연합군에게 쿠네르스도르프 회전에서 대패한 후로는 일시 베를린도 점령당했고 게다가 영국의 대(大)피트가 실각하여 군자금의 원조도 끊어져서 고립무원의 상태에 빠져 프리드리히는 절망 끝에 자살을 결의한 때도
있었다.
그런데 1762년 러시아의 엘리자베타 여제(女帝)가 급사하고 프리드리히를
숭배하는 표트르 3세가 즉위하고부터는 형세가 일변하여, 1763년 2월 후베르투스부르크 화약이 성립되고 프로이센은 슐레지엔의 영유를 확인받게 되었다. 그 결과 프로이센은 유럽 열강의 지위에 올라 독일에서의 패권의 기초를 확고히 하였다. 또 세계적으로 보면 7년전쟁은 해외 식민지를 둘러싼 영국 ·프랑스 양국의 오랜 싸움의 일환이며 이로 인하여 영국은 대식민제국으로서의 지위를 확립하기에 이르렀다.
출처 : 위키피디아 / 네이버
캐스트
2. 마음에 무찔러 드는 글귀
머리글
그런데, 저자가 작가로서의 생애를 시작했을 무렵의 화려함과, 그뒤 오랜 세월의 흐름을 생각하면, 12권으로는 너무나 적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작품들 하나하나를 살펴보면 그것들이 특별한 동기에 의해 쓰여졌고, 일정한
외적 대상이나 내적인 결정적 교양의 단계를 거기서 엿볼 수 있으며, 그때그때의 도덕적, 미적 기준이나 확신이 작품들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나이가 지긋해졌을 때 뜻하지 않은 감명 깊은 작품을 써서 새롭게 등장한다는 것은 누구나 다 할수 있는 일은 아닐
것입니다.
이와 같은 매우 간곡한 편지를 읽고 나는 곧 이 친구의 요청을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왜냐하면 젊었을 때에는 열정적으로 자기만의 길을 걷고, 또 길을
벗어나지 않으려는 마음에서 타인의 요구를 성급하게 뿌리치는 법이지만, 나이가 들면, 남들이 보이는 관심은 우리들을 분발하게 하고, 호의를 자기고 새로운
활동으로 나아가도록 격려하여 주기 때문이다.
전기를 쓰려고 하는 사람은 자기와 자기가 살아온 시대를 알아야 한다는, 도저히
힘이 미치지 않는 일이 요구되는 것이다. 즉 자기가 어떤 처지에 놓여 있어도 어느 정도 변치 않고 있을
수 있었을까를 알아야 한다.
제 1장
나의 고향 프랑크푸르트
1749년 8월 28일, 정오를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나는 프랑크푸르트암마인에서 태어났다.(15)
사람들이 아주 어렸을 때 있었던 일을 떠올릴 때,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사실과 자신이 직접 보고 경험해서 얻은 사실을 혼동하는 것은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15)
내 기억에 의하면 우리 가족들은 두 채의
집 벽을 헐어 만든 낡은 집에서 살고 있었다. 탑 속과 같은 가파른 층계가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은
여러 방으로 통해 있었고, 각 층의 고르지 못한 높이의 차이는 층계를 만들어 조정하고 있었다. 아이들, 즉 누이동생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아래층에 있는
널따란 현관이었다. 거기에는 출입문 옆에 커다란 목제 격자창이 있었고,
이 창문을 통해 바로 거리를 내다 볼 수가 있었다.(16)
나는 점차 성장함에 따라 이 방을 가장 좋아하게 되었고, 슬프다고까지
말할 수는 없지만, 여하튼 동경을 유발하는 장소가 되었다.(18)
구시자가의 경계선을 나타내는 문과 탑, 거기서 다시 더 가면 신시가지를
둘러싼 문,탑,벽,다리,제방,호수 등, 이 모든
시설들은 불안했던 시대에 시민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과, 광장이나 거리, 그것도 넓고 아름답고 새로 만들어진 것들까지도 모두가 우연하게, 혹은
자의적으로 생긴 것이지 결코 계획적 정신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말해 주고 있었다.
(23)
한 사람의 의견은 / 그 누구의 의견도 아니다. / 둘의 의견을 공평히 들어야 한다.(24)
인파로 인한 혼잡과 소음, 그리고 상품을 하역하고 풀고 하는 모습들은
철이 들고부터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왕성해진 호기심과, 어린아이 같은 소유욕으로 인한 끝없는 욕망을
부채질했다.(27)
언젠가는 거친 세상을 자신의 힘으로 극복해 나가야 하는 고아들을 비참한 상태로 가두어 두기보다는 일찍부터 세상과
접하게 하고, 일을 하면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단련시킬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나는 나중에서야 깨닫게
되었다.(31)
검은 공포의 손길이 이처럼 신속하고 강력하게 세상을 전율시킨 적은 한 번도 없었을 것이다.(34)
아버지는 교육과 수업의 게획표 같은 것을 만들어 놓았던 모양으로…… 이
과업을 소화하는 것은 나에게는 그다지 힘든 일은 아니었지만, 이미 결정적인 방향으로 접어들기 시작한
나의 내적 발전을 방해했고, 경우에 따라서는 후퇴하게도 했던 만큼 고통스럽게 여겨졌다.(42)
요컨대 나는 이 세상의 아름다움과,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많은
선한 일을 위해, 이 전의 신의 노여움은 이미 깡그리 잊었지만, 자연의
위대한 신, 하늘과 땅의 창조자이자 수호자인 신에게 직접 다가가고 싶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47)
제2장 유년의 기억
나의 타고난 기질에는, 항상 다른 사람을 존경하는 데가 있어서, 어지간한 충격이 아니면 존경할 가치가 있는 것에 대한 나의 신념은 흔들리는 일은 없었다. (51)
나는 세상 사람들은 옳은 사람들임이 틀림없으며, 또 모든 일을 정당하게
평가해 주리라고 믿었다. 그랬던 내가 그와는 반대의 일을 체험했던 것이다. 매우 위대한 누가 보더라도 명백한 공적이 폄하되고 혹평을 받으며, 가장
숭고한 행위가, 부정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왜곡되고 경시당했다. 더욱이
그렇게 한 것은, 내가 훌륭한 사람이라고 믿었던 나의 외할아버지나 외삼촌 들이었던 것이다. 지금 그런 일들을 생각해 보면, 나의 대중 경시, 아니 대중 멸시의 삭은 여기에 있었던 것 같다. 이것은 일생 동안
줄곧 나를 따라다녔고, 세월이 한참 흘러서야 겨우 식견과 교양에 의해 극복할 수가 있었다. (52)
이 말을 듣고 나는 기분이 약간 나빠졌다. 그 문지기의 기묘한 옷과
인기척 없는 적막한 주변 분위기, 게다가 왠지는 모르겠지만 뭔가가 허공에 감도는 것 같아서 나는 가슴이
옥죄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57)
그러나 창끝이 완전히 바닥으로 내려오고, 둥근 모양으로 흐르는 물줄기를
뒤덮은,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멋진 다리가 눈 앞에 나타났을 때는,
그저 더욱 놀라기만 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61)
작은 문의 흔적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이리하여 나는 어릴적부터
그들이 보인 실질적인 예에 의해, 인간은 매우 간단하고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도 지극히 다양한
의견을 가지고 주장할 수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69)
나는 앞으로 조금이라도 나를 모욕하는 일이 있으면 어떤 녀석이든, 목을
졸라 죽이지는 않더라도 눈알을 뽑고 귀를 찢어 주겠다고 선언했다.(71)
그래서 나는 어떤 종류의 공격도 도저히 참을 수 없을 경우에는 완력으로 써서 물리쳤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그것은 내 마음 속에 어떤 기묘한 고찰을 불러일으키고, 그것은
그것대로 길게 꼬리를 끌지 않을 수 없었다.(73)
그러고 보면 인간 안에 있는 자기 도취를 강화하고 드러나지 않는 허영심에 아첨하는 것을 모두 그 사람에게는 매우
바람직한 일이며, 그것이 언젠가는 그 사람에게 어떤 형태로든 명예가 되든 치욕이 되든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인 것이다.(75)
어린아이란, 그들끼리의 사이에서 그 아이의 능력에 어울리는 관계 속에
놓고 그 아이만을 바라보면 비할 데 없을 만큼 영리하고 분별이 있으며, 동시에 사랑스럽고 쾌활하고 눈치
빨라서 그 아이를 위해 더 이상의 교육은 바라고 싶지 않을 정도이다. 누구나 어린 시절에 보였던바
그대로 성장한다면 이 세상은 천재들만 우글대리라.(76)
오히려 남이 알아채지 못한 채로 이미 나의 유년 시절을 관통하고 있는 몇가닥의 실을 나중에 다시 집어 들고 계속해서
더듬어 갈 생각이다.(76)
나의 아버지는 자주 여행을 다녀 넓은 세상을 보았기 때문에, 시의
사람들 사이에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것보다도 세련되고 자유로운 삶의 방식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던 것 같다.(78)
오오, 어째서 나는 이렇게 으깨지고 망가졌단 말인가!(86)
(이런 식으로) 아이들이나민중은
위대한 것, 숭고한 것을 놀이로, 더 나아가서는 한 바탕의
희극으로 바꾸곤 한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그것을 지탱하고 그것에 견딜 수가 없기 때문이다.(86)
제3장
군정 장군 트랑 백작
그즈음에는 정월 초하루가 되면 누구나 신년 인사를 하러 일일이 돌아다니는 관습이 있었기 때문에 시내는 매우 활기가
넘쳤다.(87)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분위기가 어두워졌는데, 안방을 차지하고 있는
기분이 썩 좋지 않은 주인과, 호의적이기는 하지만 매우 엄격하고 빈틈이 없는 군인 손님 사이의 중개자로
다행스럽게도 태평한 통역이 있었다.(89)
나는 어떻게 그녀의 마음에 들어볼까 애를 썼지만 그녀의 주위를 끌지는 못했다.
젊은 아가씨란 자기보다 어린 소녀에 대해서는 자기를 한참 큰 어른이라고 여겨 청년에게만 눈을 돌리고,
그녀들에게 최초의 애정을 갖는 소년에게는 아주머니 같은 태도를 취하기 마련이다. (97)
때를 가지지 않고 더구나 무례한, 말에 의한 이런 예언은 이미 고대인들도
중요시했었지만, 신앙이나 미신의 형식이 민족과 시대를 막론하고 늘 똑같다는 것은 매우 주목할 만한 일이다.(101)
“ 그 대가는 반드시 치르게 해 드리지요. 정의와 나에게 이런 모욕을 가한 이상 그냥은 넘어가지 않을 겁니다.”(105)
“적의 집이지만 그 집의 오랜 옛 친구로 행동하는 군인은 존경할 가치가
있습니다. 여기에 적은 없습니다. 착각을 한 사람이 있을
따름입니다.”(109)
“난 죽은 뒤의 명에는 생각하지 않아. 지금 현재 올바르게 행동하고, 의무를 뒤흔들지 않으며, 명예를 더럽히지 않는 것, 그것에 나는 관심이 있네.”(109)
인간은 늘 그렇듯 누구나 남이 하는 것을 보면, 그렇게 할 만한 능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도 똑 같은 것을 해 보고 싶게 마련이다.(111)
제4장
성서와 나
그들이 가 버리자 오히려 쓸쓸해서 집 안에 생기가 완전히 사라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어린 시절에 꽃이 꽃받침에 어떻게 붙어 있는지 보고 싶어서 꽃을 잡아뜯어 보았고, 깃털이 날개에 어떻게 나 있는지 관찰하려고 새의 깃털을 뽑았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아이들이 이런 행동을 했다고 해서 나쁘게 보아서는 안 된다. 자연과학자까지도 긁어모으거나
결합하거나 하기보다는 분해나 분리에 의해, 또는 살리기보다는 죽임으로써 보다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123)
나로서는 의문에 답을 얻는 것보다도 의문을 내놓는 일이 더욱 중요했으므로……(132)
인간이란 무엇에 뜻을 두고 무엇을 기도하든 결국 자연이 이미 그 사람을 위해 정해 놓은 길로 다시 데려가기 마련이다. 이 경우도 또한 나에게는 그대로 되었다.(133)
역사라는 것은 주로 자연 법칙에 따른 인류의 증식에 입각하고 있다.(136)
자연적인 종교가 애당초 인간의 마음 속에서생겨난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자연적인
종교의 발생을 위해서는 이미 마음의 지극한 섬세함이 요구된다. 자연적 종교는 세계 질서 전체를 이끄는
보편적 섭리의 확신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137)
그러나 신의 마음에 든 이 사람들에게 하나의 주요 특질만은 절대로 결여되는 것이 허용하지 않는다. 그것은 신이 그들과 그들의 가족에게 특별한 은총을 내려준다는 흔들림없는 신념이다.(141)
불결하고 휑뎅그렁하고, 질퍽거리지 않으면 먼지가 끓고, 춥고 곰팡이 냄새가 났다. 모든 것이 나에겐 불쾌했다.(151)
내 안에는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고까지는 말할 수 없어도, 모든 인간의
상태는 다 비슷비슷하고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이 차츰 커지고 강해졌다. 나는 맨몸의 존재야말로 가장 중요한
조건이고, 그 밖의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는 우연적인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154)
언젠가 그가 이 세상의 추악한 면을 상당히 혹독하게 묘사했을 때, 그가
더할 나위 없이 결정적인 말로 이 이야기를 매듭지으려 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신에게서도 결점을
발견한다.”)(164)
(그러나) 인간이란 자기가
획득하는 공적보다는 자기가 받고자 하는 대가를 생각하게 마련인데, 나도 바람직한 행복을 생각할 때, 가장 매력적인 것은 시인의 머리를 장식하기 위해 월계관을 짠 모습이었다.(165)
제 5장
첫사랑 그레트헨
남을 기만하는 것은, 한가하고 조금이라도 재치가 있는 인가에게는 언제나
변함없는 하나의 위안이다. 악의 없는 장난이나 독선적인 심술은 자신에게 신경을 쓸만한 문제도 없고 외부적으로
유익한 일을 하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즐거움이다. (168)
때묻지 않은 청년의 첫사랑은 어디까지나 정신적인 방향을 취하기 마련이다. 자연은
남녀 모두 이성에게서 선과 아름다움을 인정할 것을 바라는 것처럼 보인다. 이리하여 이 소녀를 보고, 그녀에게 사랑을 불태움으로써, 나에게도 아름답고 훌륭한 세계가 펼쳐졌다.(174)
그레트헨은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매우 주의 깊게 듣고 있었다. 그녀는
들을 때도 말할 때와 마찬가지로 그녀에게 매우 잘 어울리는 자세로, 팔짱을 끼고 팔을 테이블 가장 자리에
올려 놓고 있었다. 그녀는 그 자세 그대로, 머리 외에는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고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 또 그 머리도 어떤 계기나 이유가 있지 않으면 결코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우리의 계획이 막히면, 이따금 끼어들어 어떤
조언을 해주었다. 그 다음엔 다시 잠자코, 여느 때처럼 조용히
앉아 있었다.(177)
젊은 두 남녀가 천성적으로 어느 정도 조화를 이루도록 태어났고, 더구나
소녀는 지식욕이 넘치고, 청년이 가르치는 것을 좋아하는 것만큼 잘 융화되는 것은 없다. 거기서는 흔들림 없는 유쾌한 관계가 생겨난다.(190)
전반적으로 나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무한히 다양한 세계로부터는 지극히 단순한 인상밖에는 받지 않았다. 나는 사물의 겉모습을 세세히 관찰하는 것 외엔 아무런 관심도 없었고, 아버지와 폰 쾨니히스탈 씨가 나에게 의뢰한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199)
눈은 이제 스스로에게 만족하지 못했다. 할 수만 있다면 주문을 걸어서
이 현상을 한 순간이나마 정지시켜 놓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201)
나는 그레트헨 옆에서 진정으로 그 낙원의 행복한 들판에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209)
나의 고통은 차츰 더해 갔다. 그래서 나는 시간만 나면 슬픈 사건과
피하기 힘든 비극적 파국의, 참으로 기묘한 이야기를 가슴 속에 그리며 스스로를 괴롭혔다.
제6장 누이동생 코르넬리아
나는 나 자신이 분별심이 있고 빈틈없는, 어엿한 한 사람의 청년이라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기껏해야 한두 살 더 먹은 여자가 나를 어린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은 나로서는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제까지 내게 매우 매력적이었던 그녀의 냉담한 듯하면서도 톡 쏘는 거동이 지금은
오히려 불쾌하게 느껴졌다. (223)
젊은 사람은 하는 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 좋은 것이다. 그들은 그다지
오랫동안 그릇된 주장을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인생이 결국 그들을 거기에서 떼어 놓거나 유인해서 제자리에
오게 해주는 것이다.(226)
내 마음은 사랑을 알았다. 그러나 사랑의 대상은 빼앗겼다. 내 마음은 생활을 맛보았다. 그러나 그 생활은 괴로운 것이 되었다.(228)
그녀의 눈은 내가 이제까지 보았던 것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눈은 아니었다 해도,
그 안에 숨어 있는 풍요로움을 짐작케 하는 가장 깊이 있는 눈이었다.(233)
그레트헨에 대한 나의 관계가 깨어졌을 때, 내 누이동생은 경쟁 상대가
없어진 것에 남모른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한층 더 진지하게 나를 위로했다.(234)
‘연설의 가장 좋은 것은 설득이며,
설득하려고 하는 마음이 없는 자는 결코 연설 같은 걸 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사람을 설득시키는 일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240)
시를 쓴다는 것은 나의 본능에 따른 행위로 그 어떤 비평에도 현혹됨이 없었기 때문에, 내게는 그것이 차차 손쉬운 것이 되었다.(245)
(동시에)나는 쓰는 것처럼
말하고, 말하는 것처럼 써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이야기하는 것과 쓰는 것은 전혀 다른 일로, 그 어느 것이나 자기의 권리를 주장해도 좋은 것처럼
여겨졌다.(256)
내가 구하고 있던 것은 판단의 척도였다. 그리고 나는 누구 하나 그와
같은 것은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261)
이와 같이 취미나 판단의 튼튼한 기준을 찾을 수 없다고 하는 것은 나날이 나를 불안하게 하고, 마침내는 절망으로 빠뜨렸다. 그리하여 얼마동안의 시간이 지나고 갖가지
싸움을 시도해 본 끝에, 나는 쓰기 시작한 것도 완성한 것도 모두 한데 뭉쳐, 내 작품에 마음 속으로부터의 멸시를 던지고, 어느 날 시도 산문도
복안도 초안도 모두 벽난로에 불태우고 말았다.(262)
제7장 독일 문학과 나
할러와 람러는 천성적으로 간결한 것을 좋아했고, 레싱과 빌트는 성찰을
거쳐 간결을 지향하였다. 레싱은 그의 시작에서 차차 경구풍이 되었다가,
<민나>에서는 간소하게, <에밀리아
갈로티>에서는 간결하게, 후년에 이르러 마침내 <현인 나탄>에서 실로 그에게 어울리는 밝은 소박성으로
되돌아갔다. <아가톤> <돈 실비오> <우스개 이야기>에서는 아직도 때로는 지루한 면이
있었던 빌란트는 <무자리온>과 <이도리스>에서는 놀랄 정도로 냉정하고 정확해져 매우 우아한
맛을 띠었다.(275)
즉 여러 가지 대상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이것을 어떻게든 처리하여, 자타의 이익으 될 수 있도록 조작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필요한 적절한 감각은 태어나면서 갖추어져 있다…… 이와 같은 생각에 의하면, 누구나 철학적으로 사색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차차 자기를 철학자라고
생각할 자격이 있었다. 그래서 철학이라는 것은 다소나마 건전하고 수련을 쌓은 상식 바로 그것이었다.(279)
나는 겉보다는 그 속에서 그 어떤 뜻을 발견하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그
뜻은, 직관이 우세한가 그렇지 않으면 감정과 성찰이 우세한가에 따라 어느 때는 상징적인 것이 되고 어느
때는 비유적인 것으로 기울었다.(284)
숭배라는 것은 받는 쪽보다도 주는 쪽이 때때로 훨씬 즐거운 것이다.(289)
어린아이는 인생에서 세상의 사물에 부딪치면서 스스로 경험을 쌓아 가지만, 천상의
일에 대해서는 배움을 받아야 한다.(295)
“참다운
경험이란, 원래 경험 있는 자가 어떻게 해서 그 경험을 경험하면서 경험하지 않으면 안되는가를 남이 경험하는
경우를 말한다.”(311)
경험이란, 경험하고 싶은 않은 것을 경험하는 것’ 바로 그것입니다.(312)
제8장
병마로 인한 귀향
정신은 두 가지 길에 의해서, 즉 직관과 개념에 의해서 고도의 기쁨을
느낀다. 그러나 직관은, 반드시 가까이 있다고는 말할 수
없는 가치 있는 대상과, 바로는 달성할 수 없는 상당한 교양을 요구한다. 그와는 반대로 개념은 다만 수용력만 있으면 되고, 내용을 동반하는
것이며, 또 그 자신이 교양의 수단이다.(320)
새로운 친구와 주고 받는 신뢰는 한 발 한 발 발전해 가는 것이 보통이다. 일이나
기호가 서로 공통되는 것이 상호 일치가 나타나는 원점이다. 그러나 우정관계가 완전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더욱 깊은 것이 열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종교적 신념이며, 불멸의
것에 관심을 갖는 심정의 문제로, 우정의기반을 단단하게 함과 동시에 그 정상을 장식하는 것이다.(337)
일반적으로 젊은 시대에는 일종의 유아독존 같은 자만심을 쉽사리 버릴 수가 없는데, 이것은 특히 자신이 최근에 겪은 일을 멸시하는 데에서 나타난다. 왜냐하면
자기에게나 남에게 좋다고 생각하는 일이 오래 계속되지 못하는 것이라고, 당연한 일이지만 차차 알게 됨에
따라, 도저히 구제할 수 없는 일은 스스로 버리는 것이 이러한 곤혹을 벗어나는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도 바로 그러한 경우였다.(348)
시간이란, 무한히 길고 하루하루가 충만된 생활이 되기를 바란다면, 실은 많은 것을 쏟아넣을 수 있는 그릇과 같은 것이다.(350)
인간의 본성은 일종의 독특한 강인성과 다면성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기에게 접근하고 안으로 섭취하는 모든 것을 정복하고, 그것을 동화시키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무해하게 하기 때문이다.(352)
우리들이 현재 놓여 있는 상태는 그것이 우리들을 끌어내리고 압박하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우리들을 보다 더 높이고 신의 의도를 실현할 기회를 주려는 것이며,
더 나아가서 그것을 의무로서 부과한다는 것이 승인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357)
제9장
두 번째 고향 슈트라스부르크
청년들이 대학에서 일반적인 지식을 얻더 가지고 돌아오는 것은 분명히 바람직하고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매우 현명해졌다고 여기고 있으므로, 눈앞에
나타나는 대상에 그와 같은 지식과 개념을 잣대로서 들이대기 때문에, 대부분의 대상과 마찰이 일어난다. (360)
수업 시간 외에도 활발하게 이야기를 주고 받는 것은 대학생 중에서 의과 학생 뿐이다. 이것은 의과의 성질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그들의 연구 대상은 가장
감각적이고 가장 고상한 동시에, 가장 단순하면서 가장 복잡한 것이다.
(365)
목소리는 온건했으나, 너무 부드럽거나 약하지 않았으며, 열중하기 쉬운 성질이었으므로, 그럴 때에는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
쩡쩡 울렸다.(373) : 융, 즉 슈틸링을 말한다.
나는 무슨 일이든지 세밀한 주의를 기울여 열심히 적어 놓았다. 그래서
지금 얼마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도 이들 정보는, 비록 그것들이 만들어낸 이야기나 믿을 수 없는
세상의 소문을 바탕으로 하여 속단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 해도, 앞으로 영원히 그 어떤 가치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이 기록들은 결국 세상에 폭로된 비밀과 그 당시 이미 폭로되어 공공연한 것이
되었던 일을, 혹은 또 그 당시 사람들의 시비가 섞인 판단을 후게 사람들의 소신과 비교, 대조해 보는 데에 유리하기 때문이다.(378)
(이와 같은 수간에 의해서, 이
견고한 벽, 하늘 높이 솟아 있는 두 개의 탑의 바탕 역할을 느끼게 하는 이 관통할 수 없는 벽은, 보는 사람 눈에는 확실히 당당하게 그 자신 위에 서 있고 자신 안에 존속하는 감을 주지만, 동시에 경쾌하고 우아하게 보여야 하며, 많은 창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흔들림없는 견고성을 느끼게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387)
제 10장
나의 친구 헤르더
즉, 나에게 매우 중대한 결과를 초래했던 특기할 만한 사건은 헤르더와
알게 된 것이며, 계속해서 그와 친밀하게 교제했던 일이다. (405)
⇒ 독일의 철학자 ·문학자. 직관주의적 ·신비주의적인 신앙을 앞세우는 입장에서 칸트의 계몽주의적
이성주의 철학에 반대하였다. 주요 저서로 《인류역사철학고》(1784∼1791)
《언어의 기원에 대한 논고》(1772)가 있다.
동프로이센 모른겐 출생. 쾨니히스베르크대학에서 공부하였고 그곳에서
젊은 I.칸트와 J.G.하만의 감화를 받았다. 1771년에 뷔케부르크의 목사로, 또 1776년에는 문학상의 제자인 J.W.괴테의 추천으로 바이마르궁정의
목사로 초빙되었다. 철학자로서는 G.브루노, B.스피노자, G.W.F.라이프니츠 등의 영향을 받았으며, 같은 시대의 하만, 야코비 등과 함께 직관주의적 ·신비주의적인 신앙을 앞세우는 입장에서 칸트의 계몽주의적 이성주의 철학에 반대하였다. 역사를 제력(諸力)의 경합에서 조화에
이르는 진보의 과정이라고 보는 《인류역사철학고(人類歷史哲學考)》(1784∼1791)의 역사철학은 레싱을 계승하여 나중에 헤겔의 역사철학 구성에 이어지며, 또 《언어의 기원에 대한 논고》(1772)는 나중에 K.W.훔볼트의 언어철학에 영향을 주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헤르더 [Johann Gottfried von Herder] (두산백과)
둥근 얼굴, 넓은 이마, 약간
뭉툭한 코, 다소 젖혀졌으나 몹시 개성적이고 보기에 좋고 애교 있는 입을 가지고 있다. 검은 눈썹 아래 석탄처럼 검은 두 눈은 한쪽이 늘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지만,
사람들에게 주는 인상의 힘을 잃고 있지는 않았다.(406) : 헤르더에 대한 묘사
신이 인간을 인간으로서 만들었다면, 똑바로 서서 걷는 것과 마찬가지로
언어도 인간에게는타고난 것이다.(409)
시간이라는 것은 선용하려면 언제나 충분히 있는 것이므로……(412)
자기의 결점이든 남의 결점이든 그것에 의해 무엇인가 유익한 결과가 예상되지 않는 한 결코 공공연하게 입 밖에
내서는 안 된다.(414)
호화스럽고, 아담하고, 사치하고, 우아한……(422)
이렇게 깊은 산 속에서, 여름밤의 밝은 지평선에 비해서 한층 어둡게
보이는 숲에 묻힌 암흑의 대지를 내려다보며, 별이 반짝이는 창공 아래서 나는 호젓하게 인적 하나 없는
이 곳에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426)
사랑과 필요는 확실히 최상의 스승이다.(443)
즉, 듣는
사람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주의를 끌며,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를 풀었다고 속단하게 하고, 기대에 어긋나게 하고, 기묘한 일 다음에 더욱 기묘한 일을 끌어내어
혼란시키고, 동정과 공포를 느끼게 하고, 애타게 하고 감동시키고, 마지막에는 겉보기에 중대하게 보이는 일을 기지가 넘친 명랑한 농담으로 바꾸고,
상상력에는 새로운 영상을 남기고, 지성에는 더 깊이 성찰할 소재를 남겨두는 데에……
⇒ 언젠간 이런 글을 써보리라.
제11장
셰익스피어에의 심취
소설의 해악에 대해서 얼마나 불평이 있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가련한
소녀나 아름다운 청년이 자기 자신보다 행복한, 또는 불운한 인물의 입장에 처해보는 것이 도대체 왜 불행이란
말인가 애당초 인간이 모든 아름다운 요구를 물리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시민 생활은 가치가 있는 것일 것? 그렇지
않으면 그 정도의 일상사가 인간을 삼켜 버리는 것일까? 469)
우리 인생은 우리를 감싸고 있는 전체와 마찬가지로, 자유와 필연으로
불가분하게 합성되어 있다. 우리의 의욕은 그 어떤 사정에 있든지 간에 우리가 행할 예정인 것의 전조다. (483)
우리는 절망한 끝에, 프랑스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모든 일이 일어날
수 있을 경우의 외적 조건에 너무나 얽매이기 때문에 그들을 사물 그 자체를 가지고 만족시키려 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다. (486)
(우리는) 철학적인 방법으로
계발되고 조성되고 싶다는 충동이나 경향은 우리에게는 전혀 없었고, 종교의 여러 문제에 대해서는 스스로
계몽을 다했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프랑스 철학자들의 사제 계급에 대한 격렬한 투쟁에 대해서 우리는
상당히 무관심했다.(494)
자유라고 하는 말은 비록 그것이 어떤 착오를 나타내는 말일지라도, 그것
없이는 지낼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어감을 가지고 있다.(495)
청년의 혈기로 막연하게 품은 이와 가은 애정은 밤하늘에 쏘아올린 폭탄과도 같다.(502)
하지만 산발적인 비판을 억제하고 오직 향수하면서 자신 안에 수용하는 이들 인상이 남몰래 조용한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것이다. 결코 비판적이지 않고 뛰어난 것이나 훌륭한 것을 따지거나
분석하지 않고 그 영향을 받는 대로 내맡긴다면, 청년은 이와 같은 다시 없는 행복을 맛볼 수가 있다. (507)
제12장
프리데리케로부터의 해방
우리가 특히 마음에 들어 하는 책이나 특성을 규명한다는 것은 우리 하나하나가 해야 할 의무인 것이다. 이 경우 특히 중요한 것은 그 책이 우리 자신의 내면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그 책이 갖는 생명력이 어느 정도 우리 자신의 생명력을 자극하고 풍료롭게 해 주는가를 우선 고려해야 한다.(515)
하만의 모든 견해가 귀결되는 원리란 다음과 같은 것이다.
‘무릇
인간이 성취하려고 하는 것은 비록 그것이 행위에 의해서 생기건, 말 또는 그 밖의 것에 의해 생기건, 모든 힘이 통일된 곳에서 생기지 않으면 안 된다. 분산된 것은 모두
배척되어야 한다.’(520)
자연과 정신이 남몰래 만나는 매우 심오하고 신비로운 관조, 이와 같은
만남에서 생기는 빛나는 깨달음의 번득임, 주위에 떠도는 뜻 깊은 형상,
성과 속을 막론한 저작가들이 기록한 날카로운 잠언들, 이들 모두가 그의 문체, 놀라울만한 그의 사상의 전체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521)
자유로우면 자유로울수록 사람들은 더욱 자유로워지고 싶어한다.(542)
어떤 문제에 대해 고찰하기 위해서는 먼저 고찰의 대상이 매우 풍부하게 우리 눈 앞에 펼쳐져 있어야하고, 자기재능과 남의 재능을 알기 위해서는 우선 무엇인가를 달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아니, 먼저 실패를 해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549)
제 13장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이루어지다.
자연을 예술 속에서 본다는 것은 나아가 있어서 하나의 정열이 되었다. 이
정열이 최고조에 이른 순간, 다른 열광적인 예술 애호가의 입장에서 보자면 거의 미친 짓으로 여겨졌을
것이다.(573)
불만스러운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은 자기의 마음에 들지 않는 일체의 것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한다.(587)
인생의 모든 쾌적함은 외부세계의 사물이 규칙적으로 회귀하는 데에 바탕을 두고 있다. 낮과 밤의 교대, 계절의 변화, 개화와
결실의 순환, 그 박에 우리가 즐길 수 있도록 시절마다 우리 앞에 나타나는 것, 이러한 것들이 지상의 생활을 움직이고 있는 본래의 원동력이다.(588)
몽테스키외는 자작 안의 영웅이나 위인들에 자기 마음대로 죽음을 고를 수 있는 권리는 주고 있다.(로마성쇠원인론 제12장) 인생이라고
하는 비극의 제5막을 원할 때 닫는다는 것은 각자의 자유여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593)
친구의 아내에 대한불행한 애정이 원인이 되었던 예르자렘의 죽음은 나를 꿈에서 깨어나게 하였다.(597)
작가와 독자 사이에는 거대한 심연이 가로놓여 있다는 것, 그리고 다행히도
양자는 그것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뼈져리게 알았다. 작자가 목적을 분명히 하려고 하면
할수록 그만큼 많은 혼란이 생길 뿐이었다.(604)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하고 숭배하는 것을 될 수 있는 대로 내 것으로 만들 뿐만 아니라, 그러한 것을 나 스스로 만들어내어 표현하기를 원한다는 것은 우리가 갖는 가장 아름답고 감미로운 환상으로, 비록 그것이 우리 인생에 많은 고통을 가져온다 해도 그것을 단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609)
제14장
‘슈투름 운트 드랑’ 문학 서클의 형성
그(렌츠)의 작품 중에는
엄격한 깨달음, 성실한 심정, 활발한 상상력, 인간성의 복잡성을 궤뚫는 교묘한 관찰, 종족의 차이에 따른 특색
있는 모사가 나타나 있다. (617)
크링거는 자기 자신을, 그리고 자기 심성과 깨달음성을 길러 보편적인
교양을 만들어낸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다.(617)
신앙이란 현재와 미래에 대한 커다란 안도감이고, 이와 같은 안도감은
매우 강하고 규명할 수 없는 존재에 대한 신뢰에서 생긴다. (626)
나는 이제까지 종교적인 담화는 점잖게 거절해 왔고, 그럴 듯한 질문에
대해서도 소극적인 대답조차도 좀처럼 함 일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담화는 내가 구하고 있던 것에
비하면 너무나 시야가 좁은 것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636)
‘신을 참으로 사랑하는 자는 신도 자기를 사랑해 주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스피노자)(639)
천재가 평범한 사람을 제치고 성격과 정신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그리고
천재가 어떻게 승리를 거두고 또는 패배를 하게 되는가를 그려보려고 한 것이다.(645)
제15장
신교의 죄악론
유다는 표면상 주를 배반한 것이 되어 절망하면서, 작업장으로 들어와
한탄하면서 실패로 끝난 자기 행위를 이야기 한다.(651)
중요한 것이 창조되는 것은 고독한 경지에 처한 때라는 것을 나는 확실히 느끼고 있었다. 사람들로부터 그토록 칭찬을 받은 나의 작품은 고독이 낳은 것이었다.
(653)
그녀는 인생이라는 미로를 위에서 바라보고, 자신은 그 속에 사로잡혀
있지 않았으므로 대개의 경우 올바른 길을 지시할 수가 있었다.(663)
태어나면서 비범한 재능이 주어졌으면서도 답답하고, 적어도 그 재능에
어울리지 않는 활동 범위에 갇힌 사람은 대개의 경우, 이상한 버릇에 빠지게 되고, 이러한 인간은 귀한 재능을 직접 활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것을 터무니 없는 색다른 방법으로 살리려고 한다는
것이다.(669)
제 4부 신이 아니면 그 누구도 신을 거스를 수 없다
즉, 여기에 계속되는 이야기가 반드시 앞의 끝부분과 직접 연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주요 논지는 펜이 나아감에 따라 다시 남김 없이 이를둘추어, 인물도 지향도 행동도 엄밀하게 순서를 따라 적어갈 계획이라는 점이다.
제 16장
릴리와의 처음 만남
자연은 영원한, 필연적인 신 자신까지도 변경할 수 없는 신적인 법칙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687)
시를 돈으로 바꾼다는 것은 나에게는 혐오스런 일로 여겨졌다. (689)
행복한 소년이나 청년은 일종의 도취 상태에서 그들의 길을 따라 앞으로 나아간다.
선량한 자, 순진한 자는 그때그때의 주위 상황을 의식하는 일은 거의 없고, 하물며 그것을 승인한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으므로 그 도취 상태는 더욱 사람의 눈을 끌게 된다.(691)
자기의 도덕적 수양을 추구하여 노력한다는 것은 인간이 계획할 수 있는 일 중에서 가장 간단하고 가장 행하기 쉬운
일이다.(697)
이렇게 우리는 그와 헤어졌다. 그러나 우리 쪽에서 말하자면 꼭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슈틸링)의 유능한 자질은 초자연적인 조력에 대한 신념이 뒷받침되어 조용하고 겸손한 신로의정을 친구들에게 불어넣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701)
제 17장
릴리와의 약혼
그녀에 대한 나의 관계는 인간 대 인간의 것이었고, 아름답고, 사랑스럽고, 교양이 있는 한 아가씨에 대한 것이었다. 그것은 내가 경험한 예전의 여러 관계와 비슷했으나, 그보다는 한층
높은 성격의 것이었다.(703)
‘나, 잠이 들어도 나의
마음은 깨어 있도다’(716)
기묘한 나의 인생 항로에서 신랑이란 어떤 기분인가 하는 감정을 맛보게 된 것은,
천상에서 우리는 바라보고 있는 분의 불가사의한 배려였다.(718)
날카로운 통찰력을 가진 사람이 장차 이 작품을 본다면 이들 작품의 바닥에는 다같이 성실한 노력이 있었음을 기꺼이
인정해 줄 것이다. 거기에는 솔직한 욕망이 우쭐함과, 자연이
인습과, 재능이 형식과, 천재가 자기 자신과, 힘이 유약함과, 미발달의 유능함이 기성의 평범과 싸우고 있는 것이다.(731)
포도나무(포도주)야말로
최악의 폭군이며 동시에 위선자, 아첨꾼, 압제자다. 그 피의 한 모금 두모금은 여러분의 입에 맞는다. 그러나 한 방울, 또 한 방울 끊임없이 뒤를 잇는다. 끊어지기를 두려워하는 엮은 진주처럼
그것은 계속되는 것이다.”(735)
사람은 자연 상태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생긴 당시의 우행 중의 하나로 노천 목욕이 있었다.(737)
수 많은 별들이 / 물결에 반짝이고 떠돈다. / 부드러운 안개의 바다가 / 솟아 있는 산들을 감싼다 / 아침 바람은 상쾌하게 / 그늘을 이루는 후미를 돌고 / 익어가는 나무 열매는 / 호수에 그 그림자를던진다.(748)
제 19장
라마터의 <관상학>
나에게는 인간이란 이런 순간에는 아무런 확고한 것을 자기 내부에 느끼지 않고,
오히려 이전부터의 인상의 지배를 받아 좌우되는 것처럼 보인다.(757) : 인상 또는 직관
매우 명확한 종합력을 자신의 마음 속에 느끼는 사람은 확실히 분석하는 권리는 가지고 있다. 그는 마음 속으로 느껴 파악한 전체 모습을 밖으로 나타난 개별적인 것에 의해 확인하고, 그 정당성을 증명하려고 하기 때문이다.(763)
나는 릴리를 만나는 것을 피하지도 않았고, 또 피할 수도 없었다. 우리 두 사람은 위태롭고 미묘한 상태에 있었다. …… 지나간 나날이
다시 되살아나는 것 같은 순간도 있었으나, 그것은 번갯불에 비친 환상처럼 이내 사라지고 없었다.(774)
진정으로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이제까지 느낀 모든 것을 그들의 현재의행복을 위한 준비물로, 또는 처음으로 생애의 건물이 그 위에 서게 될 기초로서만 바라본다.(775)
시들어가는가 달콤한 장미여, / 나의 사랑의 모자람으로 말미암아, / 피어다오, 희망을 잃은자를 위하여 / 슬픔으로 마음이 산산조각이 난 사람을 위하여.(777)
제 20장
잃어버린 사랑 – 릴리
마신적인 것은 모든 유형, 무형의 것의 속에 나타날 뿐만 아니라, 동물에게서도 매우 현저하게 나타나는 것이지만, 특히 인간과 가장
놀라울만한 관련을 가지고 있으며, 도덕적 세계 질서에 대항하여 그것과 대립하는 것은 아니라 해도 그것을
세로로 관통하는 하나의 힘을 형성한다.(786)
“이제 됐어. 그만 둬. 눈에 보이지 않는 정령의 매를 맞은 것처럼, 세월의 말은 우리 운명의
가벼운 수례를 끌고 쏜살같이 달려간다. 우리는 용기를 내어 고삐를 꽉 잡고, 이 바위, 저 벼랑을 피하여 좌로,
우로, 수례를 몰고 갈 수밖에 없다. 그것이
어디로 가는지 누가 알랴. 어디서 왔는지 조차도 모르고 있는데……”(796)
괴테의 생애 <시와 진실>
자서전을 쓰려고 결심한 것은 1809년 자신의 인생을 역사화 하기
위해 홀가분한 마음으로 집필을 시작한다. (800)
괴테는 젊었을 때의 일기나 편지를 모두 긁어모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1797년에 많은 고서류, 특히 편지들을 불태워 버린
적이 있었다(800)
그러한 시간은 비밀 법칙에 따라, 어떤 청춘의 체험에 대응하는 것
같은 일들이 노년의 그에게 닥쳐왔다. 괴테는 이것을 ‘상호의
투영’이라고 이름지었다. 그의 삶은 말하자면 나선을 그리며
상승했다. 그는 같은 고리를 그리며 나아가지면, 그 고리는
각기 다른 평면에 그려지는 것이다.(802)
1824년 레베초와의 체험(74세의
괴테가 마리엔바더에서 17세의 소녀 레베초를 사랑했다)이
여운을 남기고 있을 때, 그는 갑자기 릴리 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대목을 쓰기 시작한다(802)
⇒ 과거의 경험이 미래에 영향을 주고, 오늘의 경험은 과거를 회상하게 만든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이렇게
연결되어 있다. 어제 없는 오늘은 없으며, 오늘 없는 내일도
없다.
19세기의 발전 소설은 <빌헬름
마이스터> 못지 않게 이 <시와 진실>에 의해 촉진된 것이다.(803)
18세기의
‘메모아르 문학’즉 ‘회고록
문학’과는 대조적으로 괴테는 ‘삶은 ‘연관’된 관련 속에서 묘사한다.
(804)
그의 자서전에서 읽을 수 있는 인생관, 따라서 노년에만 가능한 것으로 괴테는 그것을 시(Dichtung)’라고 부르고, 한편 연대적으로 그려지고 있는 개별적
사항을 그는 ‘진실(Wahrehit)’라고 불렀다…… 다시 말해 개벽적인 사실들과 그것들의 유기적인 연관성을 유지하는 것으로,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이 겹쳐서 소재와 체험의 에너지로의 청춘, 종합적인 관점과 해석의 힘으로서의 노년이 하나가
되어 성숙을 자아내는 것이다.(804)
이와 같이 훌륭하게 결부된 방법이 성공한 이유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노년에서 보면 청춘은 실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지만, 괴테의
경우, 그 청춘 시대를 훨씬 뛰어넘어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노년이
되어서도 여전히 그 청춘이 무엇이었던가를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804)
괴테는 청춘시절을 한편으로는 지나간 한 시기로서 거리를 두고 보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극히 가까운 것으로 느끼고 있다. 단
한번 사는 인간은 체험에 의해 몇 번이고 비슷한 일을 경험한다.(804)
‘과거와 현재가 하나로
정리된 감각, 이것은 나의 여러 작품에 표현되었고, 시편
속에서는 한층 좋은 효과를 올리고 있다.(804)
그는 긴 발전 경과 속에서 시작을 한편으로는 자아의 해방으로 보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대중 독자에 대한 책임 있는 대답이라고 생각했다.(806)
괴테는 청춘을 동경하는 눈으로 되돌아보고 있지는 않다. 흘러간 것에 비애를 느끼지도 않는다. 작품을 통해서 괴테는 인간으로서는 할 수 있는 한, 지나간 일에
불변의 형태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806)
‘삶’은 자유와 필연, 고독과 공동체 사이에 전개된다. ‘삶’은 세계와 자아의 상호 작용으로 묘사괴도 되고 있다.(807)
<시와 진실>은 자기가 살아온 시대의 인간을 그리고 있다.(810)
“모든 새로운 대상은
자세히 보면 우리 내부에 새로운 기관을 열어 보이는 것이다.”(810)
주인공은 맑은 눈으로 보고, 무엇이든지
받아들인다.(811)
(이상과 같은) 커다란 테마는 몇 가닥의 실에 비유할 수도 있을 것이다. 몇몇 곳에서는
분명히 색을 띠고 나타나지만, 이윽고 없어져서 눈에는 보이지 않고, 장소에
따라서는 첨가된 천으로 짜여진다. 다른 테마, 이야기의 다른
실이 본래의 테마와 교차함으로써 서술의 직물이 완성되어 간다. 구성은 독자의 눈을 인도하는 안내이자
내용을 만들어내는 작업이기도 하다.(812)
괴테의 자서전적 작품은 전체로 보자면 일대 서사시의 규모를 갖는다. 자기의 생애를 이토록 자세하게 그린다는 것은 인간의 한계를 넘는 행위라고도 할 수 있다. (816)
괴테가 <이탈리아
기행>에서 말하고 있는 바와 같이 ‘한 사람의 삶이란
그 인간의 성격’ 그 자체이므로 삶을 서술하는 일에 성공했을 경우에는 그 성격 또한 느껴지도록 묘사되어야
한다.(817)
“우리가 신과 자연으로부터
받은 최고의 것은 생명이며, 휴식도 멈춤도 모르는 모나드의 자전 운동이다.”(817)
한편으로는 외부 세계의 무엇이 주인공에게 영향을 주는가, 다른 한편으로는 주인공은 외부 세계의 어떤 것에 대해서 기관을 가지고 있는가,
그는 무엇을 자기쪽으로 끌어당기고 있는가, 그것을 가능한 것으로 하기 위해서 그는 어떤
상황에 있는가를 묻지 않으면 안 된다. (818)
참다운 자서전에는 개성의 강력한 핵이 필수적이다.(819)
괴테는 스스로 자기가 위대한 모나드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819)
인간은 자유와 필연 사이에 위치하고, ‘우리의 삶은 우리는 포함하고 있는 전체와 마찬가지로 자유와 필연에 의해 불가해하게 합성되어 있다.’(820)
‘변해가는 것을 상징으로
볼 것, 세계의 유의미성의 신앙, 세계 안에서가 아니라 세계를
통해서 뜻에 이르는 길. 이것과 결부되는 것이 발전 이미지를 안으로 간직하는 괴테의 유기체 개념’(821)
괴테가 자기의 상을 시대상으로 만드는 방법은 그가 활동한 시기에는
전적으로 새로운 것이었다. 여기에는 자기는 시대와 장소에 따라 규정되어 있다고 하는 일정한 관점이 전제가 된다. 이런 식으로 인간을 본 것은 메이저나 헤르더 이후의 일이지만, 이러한 관점을 자서전의 장르에 이식한
것은 괴테가 처음이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에서 하만에 이르기까지의 ‘신과 영혼’의 책은, 자서전이라고는
하지만 환경 전체를 그리는 것을 목적으로 한 일은 한 번도 없었다.(822)
‘나무는 생장하여
하늘까지 이르지 못하도록 정해져 있다.’라고 되어 있다. 괴테
이전에 이와 같은 사상에 이른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여기서 자연은 역사로 이행한다. 식물이나 동물에게는 자연적인 환경인 것이 인간에게는
역사적 상황이 된다.(823)
모든 역사적인 것 중에서 괴테를 무엇보다도 매료시킨 것은 도덕적 가치를 수반하는 삶의 구조로서의 문화와, 위대한 업적으로서의 예술로, 이 양자 사이에 그의 눈으로 보자면 그때마다 다르지만 항상 동일한 목표, 즉
최고의 인간성, 휴머니티가 실현되어 있다. (825)
괴테는 역사를 기술한다는 것은 일종의 선택으로 인식하고 있었다.(826)
역사는 인간의 마음에 투영된 영상이다.(826)
(이와 같은) 세계의 역사적 회상 안에 자아의 역사가 녹아들어 생성, 발전의 역사가
제시되는 것이다.(827)
오직 하나뿐인 나와 한번뿐인 시간이 생의 역사적 상호 활동의
결과로서 만들어 낸 이러한 사상성을 이 책만큼 시종일관 그려내고 있는 자서전은 달리 그 예를 볼 수가 없다.(827)
몽테뉴는 ‘에세이’(수상록) 속에서 아우렐리우스와 마찬가지로 개인적인 많은 추억을 수놓고
있는데, 그도 또한 근대 세속 문화의 틀 속에 머물러 자기의 삶 그 자체에서 인식을 꺼내려 하고 있다.(829)
아우구스티누스의 경우, 항상
기도와 성찰에 있어서의 ‘Du(신)’에의 호소형식이 취해진다. 괴테의 경우에는 모두가 구체적으로 거리를 두고 겪은 사건을 이야기해 가는 서사시의 양식을 띠고 있다.(830)
‘인간은 세계를 아는
한에서만이 자기 자신을 안다’(830)
이상과 같이 괴테의 자서전에는 두 개의 커다란 흐름이 합류하고 있다. 괴테는 메모아르 문학의 르네상스형 자서전에서 사물에 입각하는 대상성과 현실성을 계승하여 여기에 결여되었던 종교적인
것을 종교적 자기 묘사의 전통으로 이어받았다. 여기에 헤르더 이래의 제 3의것, 즉 역사적 사고를 덧붙였다.(831)
즉즉, 자서전 안에서는
소재가 사람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으로 그려진 것 속에 삶이 전체적으로 나타나 이루어진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832)
자화상이 그 성격과 운명의 통일을 그려낸 렘브란트에서 정점에 도달한
것처럼 자서전은 괴테가 가장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832)
3.
내가 저자라면
* 내가 저자라면
괴테의 자서전 ‘나의
인생, 시와 진실’은 만년에 그가 쓴 그의 젊은 시절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놀랐던 점은 한 사람이 자신의 일생을 전체도 아닌 일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이토록 방대하고 자세하게 풀어쓸 수 있었다는 점이다. 괴테는 자신의 이런 시절 집의 구조부터 그가 살던
프랑크푸르트 시가지의 정경, 축제와도 같은 대관식의 풍경,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의 외모와 성격과 가족사, 사회적 위치 등 실로 사소하다면 사소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풀어쓰고
있다. 이런 그의 자서전은, 위대한 개인의 삶의 차원에서도
그 개인이 살던 시대를 조망하는 차원에서도 꽤나 높은 위치에 차지할 자료임에 틀림없다.
나는 괴테의 자서전에서, ‘한
사람의 삶을 이런식으로 바라볼 수도 있구나’란 깨달음을 얻었다. 나
또한 내가 지금 있는 이곳, 나를 둘러싼 정치적, 사회적
배경과 나를 둘러싼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기록을 통해 다시금 나 자신을 더 세세하고 깊게 바라볼 수 있을 거란 조금의 통찰을 얻었다.
하지만, 괴테의 자서전은, 이렇다보니 내용의 흐름이 일관적이지 않았던 것처럼 보인다. 각 장의제목과는
달리 내용이 그 주제를 중심으로 내용이 전개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주제(또는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내용은 일부분에 불과하고 기타 상당부분의
내용이 그 시기에 있었던 시기적인 이야기나 그 시기에 존재했던 인물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들의 에피소드로
마음내키는대로 나열하듯 풀어쓴 내용들은 집중력을 분산시키는데 한 몫한 것 같다. ( 예를 들면, 괴테는, ‘….. 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한편, ….. 때문에 이 점을 여기서 이야기 해보는 것도 좋을 거란
생각을 한다’ 등의 문장으로 사이사이 새로운 이야기, 곁다리와
같은 이야기를 풀어쓴다). 뿐만 아니라, 이 방대한 자서전의
내용이 자신의 인생 전체를 돌아본 것이 아니라, 20대 중후반까지의 이야기로 끝맺음 한다는 것도 독자로써
아쉬운 부분이었다. 괴테와 같은 역사적 대문호가 자신의 이야기를 젊은 시절로 한정한다는 것도 아쉬웠고, 그 뒤로도 사회적 문학적(만년에 파우스트 집필)으로도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던 그의 이력을 보면, 그의 목소리로
조금 더 진솔한 그의 이야기를 풀어쓰면 어땠을까 생각된다.
내가 저자라면, 물론
괴테와 같은 대작가가 될 가능성은 없겠지만, 인생 전체에 대한 조망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생각되며, 시기적 나열식으로 이야기를 분산하는 것이 아니라, 시기적 그리고
주제(사건 또는 인물)별 분류를 조금 더 세분화해서 풀어쓰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이렇게 되면 적어도 제목으로 인한 기대치와 실제 내용간의 괴리를 없애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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