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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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19
2013.09.09
글쓴이: 오미경
나의 인생 『시와 진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최은희 옮김/ 동서문화사
Ⅰ. 저자에 대하여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년 8월 28일 ~ 1832년 3월 22일)는 독일의 작가이자 철학자, 과학자이다.
‘1749년 8월 28일 정오, 12시를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프랑크프루트 암마인에서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났다.’ ‘별자리의 혜택을 받았다. 태양은 처녀궁 자리에 취치하여 그날 정점에 이르렀다. 때마침 만월이었던 달만은 동시에 행성시(달이 모든 생물에 대하여 특별한 지배력을 미치는 시간, 목요일 낮 11시~12시)에 들어가 있었으므로 한층 충위(지상에 사는 것의 운명에 작용하는 빛)의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때문에 달이 방해하여, 이 시각이 지날 때까지 나의 탄생은 끝나지 않았다.’ 라고 괴테 자신이 태어난 날을 태양과 달과 별 위성을 들어서 운명의 강한 힘을 예시하고 있다.
산파 기술 부족으로 사산아였던 괴테로 인해, 프랑크푸르트 시장이자 외조부인 요한 볼프가 텍스토르는 이 일을 계기로 산부인과 의사를 임명하여 산파들에게 교육실시와 제도개혁을 했다. 이러한 일은 그 뒤에 태어난 많은 아기들에게 도움이 되었던 것은 당연하다. 자신의 탄생으로 제도 개혁이 되었으니, 자신이 이 세상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사람인지를 암시하고 있다.
왕실고문관인 아버지 요한 카스파르 괴테와 , 프랑크푸르트암마인 시장의 딸인 어머니 카타리네 엘리자베트 텍스토르 사이에서 태어났다. 북독일계 아버지로부터는 '체격과 근면한 생활 태도'를, 남독일계의 어머니로부터는 예술을 사랑하는 '이야기를 짓는 흥미'를 이어받았다.
어려서 천재교육을 받았으며, 7년 전쟁 중 그의 고향이 프랑스군에게 점령되었을 때 프랑스 극과 회화에 관심을 기울였으며, 그레트헨과의 사랑(1763년-1764년)이 깨어진 후 16세 때 입학한 1765년에 법률학을 배우기 위해 라이프치히 대학에 입학했다. 이때 처음으로 자유롭게 레싱, 빙켈만 등을 읽었다. 재학중(1765년-1768년), 안나카타리나 쇤코프와 연애를 하였고, 이 체험을 통해 로코코풍의 시나 희곡을 발표하였는데 목가조의 희극 <애인의 변덕>, <공범자>가 그것이다. 분방한 생활로 병을 얻어 고향으로 돌아왔다.
1770년 슈트라스부르 대학에 입학하여 다시 법률 공부를 하는 동시에 의학 강의도 들었다.
수산네 폰 클레텐베르크(1723-1774)와의 교제를 통하여, 경건한 종교감정을 키웠으며, 또한 신비과학이나 연금술에 흥미를 기울였다. 회복 후, 1770년 스트라스부르 대학교에서 법률박사 학위를 얻었다. 그러던 중에 헤르더와 교제하면서 호메로스, 성서, 오시안, 민요, 셰익스피어 등을 알게 되는데, 이로써 질풍노도 문학 운동이 준비되기 시작했다. 법률 학위를 받은 괴테는 고향 프랑크푸르트로 돌아와 변호사 활동을 시작하는 한편, 문학에도 열성을 다하여 『괴츠 폰 베를리힝엔』의 초고를 완성했다. 이 희곡은 출간되자 대중과 지식인들의 열광적인 갈채를 받았고, 괴테는 독일의 작가로 명성을 떨쳤다문학의 본질에 눈뜨고 성서, 민요, 호메로스, 셰익스피어 등에 친숙해졌다. 그의 영향으로 셰익스피어의 위대함을 알게 되고 당시 지배적이었던 프랑스 고전주의 미학에의 반발이 심해졌다.
1772년 법률실습을 위해 베츨라어 고등법원으로 가게 되고 그곳에서 샤를로테 부프(1753-1828)를 알게 되었다. 프랑크푸르트로 돌아와, 슈투름 운트 드랑기의 대표작인 희곡 《괴츠 폰 베를린힝겐》 및 비극 《클라비고, 비극 《슈텔라》와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발표하여 작가적 지위를 확립했다.
1775년에 바이마르 공국의 젊은 대공(大公) 카를 아우구스트의 초청을 받고 바이마르로 가서 여러 공직에 앉게 되고 재상이 되어 10년 남짓 국정(國政)에 참여하였다. 이 동안 그는 정치적으로 치적(治積)을 쌓는 한편, 지질학 ·광물학을 비롯하여 자연과학 연구에도 몰두하였다. 1784년, 동물에만 있고 인간에게는 없는 것으로 되어 있던 간악골(間顎骨)을 발견하여(죽기 1년 전에 학회에서 인정되었음) 비교해부학의 선구자가 되었다. 이 무렵 괴테는 샤를로테 폰 슈타인 부인과 12년에 걸친 연애를 하여, 부인으로부터 인간적 및 예술적 완성에 큰 영향을 받았으나, 1786년에 이탈리아 여행을 떠남으로써 부인과의 애정관계는 끝을 맺었다.
이탈리아에서는 수업하는 화가로서의 생활을 보내어, l,000매에 이르는 스케치를 그렸으며, 희곡 《타우리스섬의 이피게니 Iphigenie auf Tauris》(1787) 《에그몬트 Egmont》(1787) 등을 써서 슈타인 부인에게 바쳤다. 이 여행은 예술가로서의 괴테의 생애에서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으며, 고전주의에의 지향(志向)을 결정한 시기로서 중요하다. 1788년에 바이마르에 돌아온 괴테는 조화업(造花業)을 하는 가난한 집안의 딸 크리스티아네 불피우스를 만나 동거하면서(정식 결혼은 l806년), 비로소 가정적인 행복을 누리게 되었다. 이 무렵에 그는 시인과 궁정인의 갈등을 그린 희곡 《타소 Torquato Tasso》(1789)와, 관능의 기쁨을 노래한 《로마 애가(哀歌)》(1790)를 발표하였다. 과학논문 《식물변태론(植物變態論)》도 이 시기의 산물이다. 1791년에는 궁정극장의 감독이 되었으며, 그 때부터 고전주의 연극활동이 시작되었다.
한편, 1789년 이후의 프랑스 혁명의 격동은 바이마르 공국도 휩쓸게 되어, 1792년에 괴테는 아우구스트 대공을 따라 프랑스로 종군하였다. 1794년부터 그는 J.C.F.von 실러가 기획한 잡지 《호렌 Horen》에 협력하여 굳은 우정을 맺었다. 이념의 사람 실러와 실재(實在:자연)의 사람 괴테와의 이 우정은 l805년에 실러가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는데, 그 10년 남짓한 시기에 괴테는 실러의 깊은 이해에 용기를 얻어 많은 작품을 완성하였다. 오랫동안 중단되었던 《파우스트 Faust》의 재착수, 《빌헬름 마이스터의 도제(徒弟) 시절 Wilhelm Meisters Lehrjahre》(1796)의 완성, 서사시 《헤르만과 도로테아 Hermann und Dorothea》(1797)의 발표 등, ‘현재에서의 완성을 지향하는’ 독일 고전주의는 여기서 확립되었다.
1797년에는 실러의 《시신연감(詩神年鑑)》에 공동작의 단시(短詩) 《쿠세니엔(손님에게 드리는 선물)》 414편을 발표하여 문단을 풍자하였다. 또한 문단의 물의(物議)를 외면한 채 이야기체로 쓴 시(詩)를 경작(競作)하여, 1797년은 ‘발라드의 해’라고 일컬어진다. 1805년 실러의 죽음과 더불어 괴테는 만년기(晩年期)를 맞이하였다. 만년의 괴테의 문학활동 중 가장 특징적인 것은 ‘세계문학’의 제창(提唱)과 그 실천이었다. 괴테는 그 무렵에 이미 유럽 문학의 최고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고, 그 위치에서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나아가서 신대륙인 미국의 문학을 조망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각 국민문학의 교류를 꾀하고, 젊은 세대를 위한 세계문학적 시야를 넓혔던 것이다.
만년의 문학작품으로서는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 Wilhelm Meisters Wanderjahre》(1829)와 《파우스트》의 완성이 최고봉을 이룬다. 전자(前者)는 당시의 시대와 사회를 묘사한 걸작이라 할 수 있으며, 후자(後者)는 한 인간의 생애가 전인류의 역사에 뒤지지 않는 깊이와 넓이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엄한 드라마이다. 《파우스트》는 23세 때부터 쓰기 시작하여 83세로 죽기 1년 전인 1831년에야 완성된 생애의 대작이며, 세계문학 최대걸작의 하나이다. 인생과 우주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정열가였던 괴테는 만년에도 세 차례의 연애를 체험하였다.
그 하나는 미나 헤르츨리프와의 사랑으로서, 이 소녀를 모델로 하여 소설 《친화력 Die Wahlverwandtschaften》(1809)을 썼다. 또 하나는 아내 불피우스가 죽은 뒤에 알게 된 빌레머 부인과의 사랑으로, 그녀를 사모하여 읊은 《서동시집(西東詩集) West熙stlicher Divan》(19)이 간행되었다. 마지막으로, 괴테는 마리엔바더로 피서여행을 갔다가 74세의 노령으로 19세의 처녀 우를리케 폰 레베초를 사랑하게 되었다. 이 사랑은 거절되었으나, 그 연모의 정이 시집 《마리엔바더의 비가》(1823)에 잘 나타나 있다. 그 밖에 만년의 작품으로 《이탈리아 기행 Italienische Reise》(1829)과 자서전인 《시와 진실 Dichtung und Wahrheit》(1833) 등이 있다.
또한 그의 광학(光學) 연구의 결정인 《색채론 Zur Farbenlehre》이 1810년에 발표되었는데, 여기에는 뉴턴의 이론에 대한 잘못된 비판이 들어 있어 순학문적인 견지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으나, 탁월한 관찰과 견해가 많이 보이고 있다. 괴테는 문학작품이나 자연연구에 있어서, 신(神)과 세계를 하나로 보는 범신론적(汎神論的) 세계관을 전개하였으며, 그의 종교관은 범신론적 경향이 뚜렷하지만, 복음서의 윤리에는 깊은 존경을 표시하였다. 그의 유해는 바이마르 대공가(大公家)의 묘지에 대공 및 실러와 나란히 안치되어 있다
Ⅱ. 마음을 무찔르는 글귀
머리글
젊었을 때에는 열정적으로 자기만의 길을 걷고, 또 길을 벗어나지 않으려는 마음에서 타인의 요구를 성급하게 뿌리치는 법이지만, 나이가 들면, 남들이 보이는 관심은 우리들을 분발하게 하고, 호의를 가지고 새로운 활동으로 나아가도록 격려하여 주기 때문이다.
제1부 고통을 맛보게 하지 않는 교육은 없다
(메난드로스 (BC 342~BC291 : 그리스작가)의 희극에 나오는 말)
● 제1장 나의 고향 프랑크프루트
[24]
한 사람의 의견은
그 누구의 의견도 아니다
둘의 의견을 공평히 들어야 한다.
[32]
아버지는 그림은 라인산 포도주와 같다고 생각했다. 훌륭한 포도주는 대개가 오래 묵은 것이긴 하나, 해마다 지난해 못지않은 훌륭한 포도주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었다. 또한 세월이 흘러ㅓ 새 포도주도 오래되고 가치를 지니게 되며, 경우에 따라서는 보다 훌륭한 포도주가 되는 경우도 있다는 논리였다.
[34]
신앙 제1조의 설명에 따르면, 현명하고 자비로운 존재로 소개되었던 천지의 창조자이자 수호자이신 신이, 선량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를 똑같이 파멸의 구렁텅이로 속에 빠뜨림으로써ㅓ 만물의 아버지로서의 모습을 보여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 나도 어렸을 때, TV를 보면서 같은 생각을 했었다. 지진이나 해일, 전쟁등으로 인해 선과 악의 구분이 없고 모두 떼죽음을 당하는 것을 보면서 하늘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가 라는 야속한 생각을 하곤 했었으며 의문이 들었다.
[41]
인간이란 매우 자주, 우리들이 그들에게 준 기쁨에 대해 뼈아픈 보상을 받는다는 것을 배웠다.
이런 모든 일들이 나의 명상적인 경향을 더욱 강하게 했다. 나는 초조한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미 너무 자주 인내의 훈련을 했기 때문에, 스토아 학파의 장점으로 칭송을 받은 덕목은 매우 본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스도교의 인내와 복종의 가르침도 같은 것을 적극 권했으므로 더더욱 나에게 그렇게 생각되는 것이었다.
===> 괴테가 명상적으로 된 원인
[45]
이제까지 예감의 능력 같은 것은 전혀 보인 적이 없던 사람들이 외할아버지와 교제함으로써, 일시적으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어난 병이나 죽음 간은 사건을, 감각적인 징후에 의해 동시에 예감하는 능력을 얻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신의 아들이나 손자들에게는 이런 능력을 물려주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 대부분은 활동적인 사람들로 삶을 즐기고, 현실적인 일에만 눈을 돌리고 있었다.
===> 꿈을 통한 예지력을 보여주는 사례다.
● 제2장 유년의 기억
[53]
나는 차츰 이들 가공 인물과 엉터리로 지어낸 이야기를 예술적인 표현으로 완성해 가는 방법을 익혔는데, 그러지 않았더라면 나의 창작을 이처럼 황당무계한 이야기로 시작한 것은 어쩌면 나을 위해 나쁜 결과를 남겼을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충동을 자세하게 고찰해 보면, 시인이 사실로 생각할 수 없는 것을 매우 그럴듯한 것처럼 이야기하고, 창작자 자신에게만 어떤 의미에서 진실로 여겨지는 것을, 모든 사람이 현실로 간주해 주도록 요구하는 그 불손함을 이 충동 속에서 인정할 수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시인, 소설가의 기질이 나옴.
[66]
나는 소녀에게 따귀를 맞았을 때는 거칠게 키스를 해 주는 것이 좋다고 종종 들었기 때문에, 그녀의 귀를 붙잡고 몇 번이나 키스를 해 주었다.
===> 무지한 교육의 결과
[69]
인간은 매우 간단하고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도 지극히 다양한 의견을 가지고 주장할 수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72]
인간이, 타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또 자신이 인생에서 무엇을 기대해야 하는지를 알고,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것은 인간으로서 경험하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각별히 행복한 사람도 아니지만 각별히 불행한 이간도 이니라고 생각해 보는 것, 이것이야말로 이러한 도덕적인 화제의 교훈적인 부분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지식은 재난을 피하는 데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더라고, 그러나 우리가 처한 경우에 순응하고, 그것에 견디고, 나아가서는 그것을 극복하는 것을 배우는 데는 크게 도움이 된다.
[86]
아이들이나 민중은 위대한 것, 숭고한 것을 놀이로, 더 나아가서는 한 바탕의 희극으로 바꾸곤 한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그것을 지탱하고 그것에 견딜 수가 없기 때문이다.
● 제3장 군정장관 트랑 백작
[101]
오늘의 홍안(紅顔)은 내일의 백골(白骨)입니다.
[111]
인간이 늘 그렇듯 누구나 남이 하는 것을 보면, 그렇게 할 만한 능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도 똑같은 것을 해 보고 싶게 마련이다.
● 제4장 성서와 나
[112]
나는 뭔가를 배울 기회가 주어졌으며로, 나 자신도 자진해서 열심히 배우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한가한 때면 갖가지 기묘한 일에 푹 빠지곤 했다. 이미 아주 어렸을 적부터 나는 자연의 사물에 대한 탐구심을 느끼고 있었다. 어린아이가 그런 것을 한동안 가지고 놀고, 이리저리 만지작거리다가 끝내는 망가뜨리거나 붜숴 버려 산산조각이 나게 하는 것은 잔인성 때문인 것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내부는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하는 호기심과 지적 탐구심이 늘 이런 형태로 나타나기 마련인 것이다.
나는 어린 시절에 꽃이 꽃받침에 어떻게 붙어 있는지 보고 싶어서 꽃을 잡아뜯어 보았고, 깃털이 날개에 어떻게 나 있는지 관찰하려고 새의 깃털을 뽑았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아이들이 이런 행동을 했다고 해서 나쁘게 보아서는 안된다. 자연과학자까지도 긁어모으거나 결합하거나 하기보다는 분해나 분리에 의해, 또한 살리기보다는 죽임으로써 보다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133]
인간이란 무엇에 뜻을 두고 무엇을 기도하든 결국은 자연이 이미 그 사람을 위해 정해 놓은 길로 다시 데려가기 마련이다.
[136]
역사라는 것은 주로 자연 법칙에 따른 인류의 증식에 입각하고 있다. 세계의 가장 중요한 사건을 알려면 우리는 가족의 비밀까지 파고 들어가지 않으면 안된다.
[139]
생각없는 미신에 의해, 단호하게 또는 막연하게, 이와 같은 희생이 신들에게 약속된다. 그리하여 죽이고 싶지 않은 사람들, 때로는 가까운 사람, 또는 자기 자식들조차도 이러한 광기의 제물로 피를 흘리는 처지가 되는 것이다.
[141]
보편적이고 자연적인 종교는 본래 신앙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창조하고 질서를 부여하고 이끄는 위대한 자기 존재를 우리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자연의 뒤에 숨어 있다는 확신을 주고 이와 같은 확신은 각자의 가슴에 저절로 솟아난는 것이기 때문이다.
[145]
나도 청년의 도움을 받아 내 머릿속을 떠다니는 것들을 남김없이 종이 위에 옮겼다. 그것은 무척 편리한 일이었다. 나의 창작과 모방의 재주는 글로 써서 보존하기가 쉬워지면서 더욱 증대해 갔다.
[154]
나의 아버지는 자질구레한 용건을 당신을 대신해서 일찍부터 나에게 시켰다. 특히 아버지가 일을 시킨 사람을 독촉하는 일을 내게 맡겼다. 아버지는 무슨 일이건 면밀한 일처리를 요구하고, 일이 끝남과 동시에 현금으로 지불햇는데, 이때 값을 깎는 일이 종종 있었다. 이는 직공들이 부당하게 일을 지연시켰기 때문이다.
이 일을 하며 나는 거의 모든 작업장에 발을 들여놓았다. 나에게는 타인이 차한 입장에 서서 인간 생활의 각가지 특수한 양상에 공감하고, 기꺼이 그것에 관심을 갖는 면이 있었다. 아는 아버지의 이런 부탁 덕분에 여러 차례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각인각색의 일하는 모습을 보았으며, 다양한 삶의 불가결한 조건이 어떠한 기쁨과 슬픔, 고생과 편의를 수반하는지를 알았다. 나는 이 기회에 사회의 상층부와 하층부를 결합시키는 이 부지런한 계층에 다가설 수 있었다.
♥ 제5장 첫사랑 그레트헨
[166]
“우리는 시를 쓰고 즐거워할 뿐,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뭐라 하는지는 아무래도 상관없어.”
제2부 젊은 날의 소망은 나이들수록 풍요로워진다
♥ 제6장 누이동생 코르넬리아
[228]
눈으로 보는 모든 것에서 나는 그림을 보았다. 나는 주의를 끌고,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을 나는 그려두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매우 미숙한 솜씨이기는 했지만, 자연을 모사하기 시작하였다.
[233]
사람은 누구나 자기 모습을 불쾌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장 보기 흉한 사람도 가장 아름다운 사람과 마찬가지로, 자기에게 주어진 모습에 기쁨을 느낄 권리가 있다. 호의적인 눈으로 바라보면 아름답게 보인다. 누구나 호의적인 눈을 가지고 거울에 비치는 자기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므로, 그렇게 하지 않으려 해도 누구나가 자기의 모습을 보고 만족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240]
‘연설의 가장 좋은 것은 설득이며, 설득하려고 하는 마음이 없는 자는 결코 연설 같은 걸 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사람을 설득시키는 일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243]
끊임없이 나의 내부에서 환기된 주된 확신은 고대어의 중요성이었다. 수사학의 모든 모범과, 세계가 이제까지 소유해 온 그 밖의 모든 귀중한 것이 고대어 안에 남김없이 보존되어 있다는 확신이, 이 문학적 혼란 속에서도 더욱더 내 마음속에 다가왔기 때문이다.
[244]
나는 라틴어를 독일어, 프랑스어, 영어와 마찬가지로 규칙도 예비 지식도 없이, 다만 그것을 실제로 사용함으로써 그것을 내것으로 만들었다. ... 나는 말과 그 구성, 변화를 귀와 마음에 새기고, 쓰거나 말하는 데에 이 언어를 손쉽게 이용하였다.
그렌트헨을 잃음으로써 청춘의 나무는 송두리째 꺾이고 말았다. 곁가지에서 다시 싹이 터서, 처음 상처가 새로운 생장으로 치유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다.
[245]
나 자신이나 다른 사람 안에서 또는 장면 속에서 인정한 것을 시로서 재현해 본다는 것은 항상 나에게 최대의 기쁨을 주었다. 시를 쓴다는 것은 나의 본능에 따른 행위로 그 어떤 비평에도 현혹됨이 없었기 때문에, 내게는 그것이 차차 손쉬운 것이 되었다. ...
언젠가는 내 이름도 하게도른이나 켈러트, 그 박R에 유명한 사람들과 나란히, 경의를 가지고 불릴지도 모른다고 하는 나의 남모른 확신을 흔들리지 않았다.
===> 자기확신에 이르는 길.
[253]
젊은 교수는 실제로는 자기가 배우기 위해서 가르치고, 우수한 두뇌를 가지고 있을 경우에는 시대에 선행하는 것이므로, 그들은 어디까지나 청강생을 희생양으로 하여 자신들의 교양을 쌓는다. 왜냐하면 교수는 청강생들이 본래 필요로 하는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교수 자신을 위해 연구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것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나이든 교수들 가운데 어떤 이는 이미 오랫동안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 없이, 전체적으로 말하자면, 고정화된 견해만을 전하고, 개개의 것에 관해서는 이미 시대가 지나고 쓸모 없는, 잘못된 것이라고 단정한 많은 것을 가르친다.
이 양자에 의해 슬퍼할만한 갈등이 생겨 젊은이들은 그 사이를 우왕좌왕 하게 된다. 그래서 학식도 교양도 충분히 갖추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지식과 사색을 위해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중년의 교수들에 의해 간신히 그 보상이 이루어지게 된다.
♥제7장 독일 문학과 나
[263]
작가도 무엇인가를 즐겨 쓰고, 자기 일을 세상에 알리고, 그 보수는 얻을 수 없다고 해도, 세상의 칭찬을 바랄 것이다. 그것은 자기가 무엇인가 좋은 일, 유익한 일을 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러한 평온한 생활을, 시민은 풍자가에 의해서, 작가는 비평가에 의해서 교란되어, 평화로운 사회에 불쾌한 파란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279]
여러 가지 대상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이것을 어떻게든 처리하여, 자타의 이익이 될 수 있도록 조작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필요한 적절한 감각은 태어나면서 갖추어져 있다. 따라서 고생해서 보편적인 것을 입수하려고 하거나, 우리들과 특히 관련이 없는 사항과의 관계를 탐색해 볼 필요가 없다고 보았다. 그들은 실험을 하고, 눈을 뜨고 똑바로 정면을 보고, 주의 깊게 열심히 활동하였다. 그리고 자기 영역에서 올바르게 판단하고 행동한다면, 멀리 떨어진 일에 대해서도 대답하게 참견해도 좋다고 믿었다.
이와 같은 생각에 의하면, 누구나 철학적으로 사색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차차 자기를 철학자하고 생각할 자격이 있었다. 그래서 철학이라는 것은 다소나마 건전하고 수련을 쌓은 상식 바로 그것이었다. 그것은 감히 보편적인 영역으로 파고들어가, 개개의 경험에 판단을 내리게 되었다. 모든 의견에 중용과 공정한 입장을 취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옳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명석한 통찰과 특별한 관용이 나타나 있다면 이러한 저작이나 구두 발언은 성망과 신뢰를 얻었다. 이리하여 마침내 대학의 모든 학과뿐만 아리나, 모든 계급과 직업에 철학자가 나타난 것이다.
[282]
인간 본성의 상반하는 두 개의 특성, 즉 심정과 영지(날카롭고 민첩한 지혜)를 동시에 작용한다.
[288]
나는 시짓기를 위해 참다운 바탕이 되는 감정이나 성찰을 필요로 할 때, 그것을 내 마음속에서 찾아낼 수밖에 없었고, 나의 시적 표현을 위해서 사물이나 사건의 직접적인 관찰이 요구될 때에도, 내 마음을 감동시키고 나에게 관심을 불어넣는 알맞은 외부의 환경에 발을 내디딜 수가 없었다.
나에게 평생 동안 떨어질 수 없었던 경향이 시작되었다. 즉 나를 기쁘게 하거나 괴롭히고, 그 밖에 내 마음을 움직이게 한 것을 하나의 형상, 하나의 작품으로 바꾸어 이로써 나 자신에게 결말을 내고, 외부의 사물에 대한 나의 관념을 바로잡음과 동시에 나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경향이 시작된 것이다 태어나면서 끊임없이 극과 극을 향했던 나인 만큼, 이러한 타고난 재질이 필요한 사람은 달리 또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에 대해서 세상에 알려진 것들은 모두 큰 고백의 한 단편에 지나지 않는다.
[294]
인간은 사랑하는 일과 해야 하는 일을 따로 분리해서 생각할 수가 없다. 무슨 일을 즐겨 반복하려면 그것이 자기와 인연이 없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308]
“ 이 두 자루 속에는 도덕과 미의 모래가 들어 있다. 배우들이 때때로 그것을 관객의 눈에 뿌릴 것이다. 한쪽 자루에는 비용이 들지 않는 자선이 가득 차 있고, 또 하나의 자루에는 훌륭한 말로 표현되어 있으나 그 속에는 아무런 뜻이 없는 생각이 가득 차 있다.”
[310]
“참다운 경험이란, 원래 경험 있는 자가 어떻게 해서 그 경험을 경험하면서 경험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를 남이 경험하는 경우를 말한다,”
[311]
“결국 우리들이 최상의 사상이나 소원이나 계획은 도저히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을 경험으로써 우리들은 확신할 수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망상을 가슴에 품고, 그것을 자주 떠들어 대는 사람은 특히 경험이 없는 사람으로 여겨지지가 쉽다”
♥ 제8장 병마로 인한 고향
[320]
정신은 두 가지 길에 의해서, 즉 직관과 개념에 의해서 고도의 기쁨을 느낀다. 그러나 직관은, 반드시 가까이에 있다고는 말할 수 없는 가치 있는 대상과, 바로는 달성할 수 없는 상당한 교양을 요구한다. 그와는 반대로 개념은 다만 수용력만 있으면 되고, 내용을 동반하는 것이며, 또 그 자신이 교양의 수단이다. 그래서 가장 뛰어난 사상가가 어두운 구름 사이로 우리들 머리위에 비쳐준 저 광명은 우리들에게 둘도 없이 고마운 것이었다.
[349]
나는 잘 기억하고 있지만, 그는 우리들이 논문을 제출하면 마음에서 우러나는 목소리로, 필적을 연습할 것, 문장을 다듬는 것보다도 더 많이 그런 연습을 하는 것이 신성한 의무라고 말했다. 그는 졸렬하고 난폭한 글자를 볼때마다 이 말을 되풀이하였다. 학생의 필적을 아름답게 하는 것이 자신의 주요 교육 목표라고 여러 차례 이야기하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은 좋은 필적에 좋은 문장이 따르는 것을 자주 보아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354]
어떤 사람이라도 결국은 자기 자신의 종교를 갖는 법이다.
이상하게도 그다음 글이 올라가지 않아서 파일첨부합니다. 오늘 컴퓨터가 이상하네요... 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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