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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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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9일 11시 52분 등록

나의 인생 <시와 진실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최은희 옮김

 

 

1.     저자에 대하여

 

요한 볼프강 폰 괴테 ( Johann Wolfgang von Goethe) !  그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30여 년 전인 고등학교 국어시간이었다. 국어 선생님은 대학을 갓 졸업하고 우리 학교에 부임한 20 대 초반의 여자 선생님 이었다. 당시 교과서에는 괴테의 작품이 실리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헤어진 연인을 그리며 쓴 어느 작가의 한편의 시를 공부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선생님은 갑자기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어 본 적이 있는 지를 학생들에게 물어 보았다. 당시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대입고사 위주로 수업이 진행되어 교과 과정 밖의 책을 읽기란 웬만한 문학도가 아니면 힘든 시기였다. 선생님은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 얘기에 애잔한 감명을 받았다면서 언제 시간이 되면 읽어 볼 것을 권했다. 물론 또 다른 괴테의 대표작 < 파우스트>도 언급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30년이 지난 지금 까지도 그 책을 읽지 못했다. 단지 그 소설의 줄거리만 어렴풋이 알뿐이다. 아마도 괴테처럼 수 많은 여성들과 사랑과 연애를 나누지 못해 그의 작품을 접할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변명 아닌 변명을 해본다. 20대를 거쳐오면서 특히 감성이 풍부한 여자들한테 괴테는 만인의 연인이었다. 괴테는 생전에 9명의 여성과 사랑을 나누었다. 욕정이라고 얘기하면 그의 사랑을 천박한 것으로 폄하하는 별볼일 없는 남자들의 치기 어린 질투의 발로인 지 모른다. 욕정인지 연정인지 그것이 중요하지는 않다. 74세의 괴테가 젊고 매력적인 18세의 소녀를 보고

첫눈에 반해 그녀를 중매해 달라고 했다고 하니 그의 무모할 정도의 배짱과 열정이 부럽기만 하다. 여성은 그의 창작의 원동력임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생애, 그리고 사랑

 

독일 문학의 거대한 산맥, 괴테는 1749 8 28일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에서 왕실 고문관인 아버지와 프랑크 푸르트 시장의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부유한 집안의 장남으로 출생한다. 다음 해에 여동생 코르넬리아 태어나고 이후 네 명의 동생이 태어나지만 모두 어린 나이에 사망한다. 괴테가 자서전에도 밝혔듯이 아버지는 별다른 재능이 없지만 성실하고 근면한 사람이었고, 어머니는 쾌활하고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으로 자신의 문학적 재능은 어머니로부터 물려 받았다고 한다.  유년시절 아버지로부터 개인교습을 받았으며 책과 그림으로 둘러싸인 환경에서 성장한다. 할머니 덕택에 어린 시절 즐겨 했던 인형극 놀이는 그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며 오랫동안 그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15세 때, 연상의 소녀 그레트핸을 만나 첫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강렬한 첫사랑은 그레트핸이 자신을 동생처럼 대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짧게 끝나고 만다. 실의의 나날을 보내던 괴테는 1765년 아버지의 권유로 라이프니츠 대학과 슈트라스부르크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한다. 하지만 폐결핵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1771년에는 슈트라스부르크로 옮겨 법학 공부를 계속하며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한다. 21세인 괴테는 슈트라스부르크의 한 교외에 피크닉을 갔다 18세의 목사의 딸, 프리데리케를 보고 그녀와 사랑에 빠진다. 그녀를 위한 사랑의 속삭임을 <프리데리케의 노래>로 표현한다. 둘은 서로 영원한 사랑 맹세하지만 괴테는 그녀를 버리고 만다. 괴테는 일생 동안 그 죄악감으로 벗어날 수 없었으며 그 죄악감이 <파우스트>를 쓰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한다..

 

1772 23세의 괴테는 법학공부를 끝내고 변호사 자격증을 획득한다. 베츨라르라는 도시의 법원에서 법원 수습생활을 시작한다. 그때 법관이었던 부프의 집을 자주 방문하면서 그의 딸, 16세의 소녀인 샤를 로테를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이미 외교관인 케스트너와 약혼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그녀를 향한 열정을 주체할 수 없어 그녀에게 구애를 하고 키스도 하지만 거절을 당한다. 상심한 괴테는 한 장의 편지를 남기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상심의 나날을 보내던 괴테는 어느 날 친구가 자신의 다른 친구의 부인과 이룰 수 없는 사랑 때문에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으며 갑자기 샤를로테의 사랑의 상흔이 되살아 난다. 이 체험을 바탕으로 그 유명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쓴다. 이 소설은 문체와 형식면에서 독일 현대소설의 효시라고 불리며 큰 반향을 일으키며 괴테가 작가로서 명성을 날리게 된다. 불가능한 사랑에 대한 절망으로 베르테르가 자살을 선택하게 함으로써 괴테는 로테와의 사랑에 실연을 당한 자신의 심정을 대변한다.

 

1775 26세때 괴테는 상인이자 은행가의 집에서 개최하는 한 음악회에 참석하여 그곳에서 그의 딸인 16세 여성, 릴리를 만난다. 애교와 사교성 있는 그녀와 사랑에 빠져 3개월 만에 약혼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활달한 여성이 괴테의 보수적인 집안 분위기에 맞지 않는다는 여동생의 판단과 성급한 결정으로 괴테가 약혼을 후회하면서 파혼을 한다. 이런 아픔을 달래기 위해 괴테는 친구와 함께 스위스로 여행을 떠난다.

 

같은 해인 1775년 괴테는 바이마르 공화국의 영주 칼 아우스트 공작의 초대로 바이마르로 떠난다. 1776년 추밀 고문관으로 임명되고 그 후 10년 가까이 국가의 재무 행정을 이끈 내각 장관으로 임명되어 공화국의 저명인사가 된다. 이 시기에 괴테와 정신적 사랑, 즉 플라토닉 사랑을 하면서 괴테의 내적 성장을 가져온 이가 있었는데 샤를 로테 폰 슈타인 부인이었다. 그녀는 괴테보다 7살 연상의 여인으로 아우스트 공작의 어머니를 모시던 궁녀였다. 그녀는 지성과 교양을 갖춘 여성이었다. 정신적 유대를 가졌던 괴테는 그녀에게 약 1800 여통의 편지를 보냈으며 거의 파기되고 없고 괴테가 죽은 15년 후에 <폰 슈타인 부인에게 보낸 괴테의 서한>이라는 3 권의 책이 출간되었다.  두 사람의 친밀한 관계는 바이마르 공화국 사교계에서 알려졌지만 샤를 로테의 남편폰 슈타인은 아내의 행동에 분노하지 않았다고 한다. 샤를 로테는 괴테와의 교제를 통해 새로운 생명의 불꽃을 태우게 되었다. 괴테가 그녀에게 보낸 한 편의 시를 보면 둘이 얼마나 가까운 벗인 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나라는 존재의 모든 특징을 당신은 꿰뚫고 있고

신경의 극히 미세한 음향마저 감지하고 있고

인간의 눈이 좀처럼 발견할 수 없는

나를 한눈에 읽어낼 수 있다. “

 

10여년 동안 서로 가까이 지나면서 둘 사이에는 육체적인 관계는 없었던 것으로 되어 있다.

여성 편력을 가진 괴테가 그렇게 오랫동안 정신적인 사랑만을 유지한 것은 괴테의 또 다른 면을보여주는 특이한 점이다.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10여년의 행정업무로 인해 괴테는 권태와 고단함을 느낀다. 1786 9월 괴테는 새로운 삶의 전기를 갖기 위해 이탈리아 여행을 떠난다. 가까웠던 슈타인 부인도 모르게 갑자기 결정한 여행으로 둘 사이의 유대감에 금이 가게 된다. 1 9개월 동안 여행을 한 후, 1788 6월 다시 바이마르로 돌아온 괴테는 조화 공장에서 일하는 여공, 23세의 크리스티아네 불피우스를 만난다. 괴테는 그녀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고 그 날 이후로 바로 사실혼 상태인 동거에 들어간다. 집안의 배경은 차치하고 괴테의 지적 .정신적 수준에 맞지 않은 그녀와의 관계를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했으며 수많은 여성들의 질투를 받았다. 특히, 그녀와의 육체적인 사랑에 10년넘게 유지한 정신적 사랑의 동반자인 슈타인 부인은 크게 분노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괴테로부터 고상한 정신적 사랑을 원했던 슈타인 부인이 괴테가 자신보다 모든 면에서 수준 떨어지는 크리스티아네와 동거는 믿기 힘든 것이었고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여자 특유의 질투의 화신이 그녀를 감쌌을 것임은 쉽게 짐작이 간다.  괴테와 크리스티아네 사이에는 5명의 자식들이 태어났지만 장남이 아우구스트만이 살아남는다. 둘은 18년간 동거끝에 1806년 정식으로 결혼하여 법적인 부부가 된다.

 

크리스티아네는 남편인 괴테를 충실히 내조하고 가사일에 전념했던 것으로 보인다. 괴테를 따뜻하게 보살피고 살면서 편안하게 해주었던 같다. 28년간 괴테와 함께 산 후, 1816 6월 신부전증으로 추정되는 병으로 사망한다. 괴테는 그녀의 죽자 그녀를 위한 시 한편을 지어 슬픈 마음을 표현한다.

 

오 태양이여, 암울한 구름으로부터 얼굴을 내밀려 해도

너의 애씀이 헛되구나 !

내 평생 이른 모든 공적을 다 허문다 해도

어찌 너를 잃은 상실감에 비하랴. “

 

남자에게는 집안에 들어가면 자신을 편안하게 내조해주는 그런 여성을 아내로서 맞이하고 싶은 것은 동서양, 시대를 막론한 공통된 마음인 것 같다.

 

결혼 후에도 괴테는 예나의 서점주인의 양녀 민나, 마리안네등과 사랑의 열정을 불사르며, 182374세 때,18세의 소녀 울리케를 끝으로 마지막 사랑에 종지부를 찍는다. 당시 그의 심정을 담은 시를 보자.

 

그러니 그대 유쾌한 노인이여,

상심하지 말라.

그대의 머리는 비록 세어도

여전히 사랑을 하게 되리라  

<서동시집> <가인의 서> 중에서

 

 

사랑에 대한 끝없는 괴테의 욕망은 천박한 성욕과 다른 것인가?  70이 넘은 노년에도 10대의 젊고 매력적인 여성을 보면 넘쳐나는 욕정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괴테에 있어 사랑은 살아있음의 징표요 작품 창작의 원동력이 된 것은 분명하다.

 

앞서 언급했지만 샤를 로테 부프와의 사랑과 실연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쓴 계기가 되었고, 58세 때 만나 < 친화력>을 쓰도록 열정을 준 18세의 미나 헤르츨리프, <서동시집>을 만들게 한 마리안네 폰 빌레머, 그리고 70세 넘은 노년에 만난 18세 올리케는 <정열의 3부곡>을 낳게 했다.

 

괴테는 시, 희곡, 소설 등의 문학 창작 활동 외에도 색채론, 식물학, 광물학, 기상학 등 자연과학 분야에도 폭넓은 관심을 갖고 연구했다. 그는 1832 3 22일 바이마르에서 83세의 나이로 나에게 빛을 다오 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생을 마감한다. 사물에 대한 호기심과 관찰, 끝없는 지식욕, 작가로서의 중요한 재능인 상상력으로 매 순간 인생을 체험하고 즐기고  살아있음을 느낀 진실한 인간이었다.

 

주요 작품

 

시집 소곡, 서동시집, 로마의 비가, 금언과 성찰, 크세니언, 경구적, 격언적 등.

희곡 연인의 변덕, 공범자들, 프로메테우스, 어부의 아네, 에그몬트, 파우스트 등. 이중 <파우스트>는 괴테가 20대에 시작하여 60년간 쓴 일생의 역작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스위스에서 온 편지,친화력,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등

자연과학 논문 색채론, 식물 변태에 대한 서론, 형태론, 기상학 시론, 자연에 대한 단편

 

2.     마음의 문구 유첨 참조

 

3.     저자라면

 

이 책은 저자가 60세를 맞이한 1809년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자 집필을 시작했다. 저자가 생전에 쓴 것은 제 3부까지로 20대 중반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쓰기 전후까지이고 나머지 4부는 죽은 뒤인 1833년 유작으로 출판되었다.  자세한 이 책의 구성은 책의 말미에  괴테의 생애 <시와 진실>에 상세히 나와 있어 그것으로 가름하고자 한다.

 

영향

 

단언할 순 없지만 괴테는 문학사에 명성을 날린 작가 중에 부유한 집안환경을 타고 난 몇 안 되는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인 듯 하다.  대가들의 면면을 보면 가난한 출생, 불우한 어린 시절을 경험하는 데 괴테는 그런 면에서 행복한 작가였다.

 

유년시절 할머니와 함께 한 인형극 놀이, 근면하고 성실하고 아버지, 그 아버지의 자식을 향한 교육열, 항상 자상하고 쾌활하며 풍부한 상상력을 가진 어머니, 한 살 아래의 여동생과의 우애 등 , 부유하고 화목한 가정한 분위기는 괴테의 작품에  밝고 긍정적인 면을 보여주는데 영향을 주지 않았나 한다. 자서전을 읽으면 어떻게 한 인물이 이렇게 다방면에서 뛰어난 재능과 소질을 갖고 있을까 감탄하게 만든다. 특히, 작가로서 상상력은 어머니로부터 물려 받은 선천적인 재능인데 이것은 괴테가 즉흥적으로 시뿐만 아니라 소설을 쓰는 데 귀중한 자산이 되었다. 상상력은 후천적인 노력으로 얻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의 뛰어난 관찰력은 작가로서 가져야 할 자질 중의 하나로 부럽기만 하다.  관찰력이 얼마나 뛰어난 가는 방금 지나쳐간 사람들과 사물들을 정확히 묘사하는데 달려 있다고 한다. 이런 면에서 괴테는 인물과 상황을 생생히 묘사한다. 250여년 전의 인물들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다시 책 밖인 현재의 시간으로 불러온다. 

 

아울러 무엇이든 호기심을 갖고 새로운 것을 배우려는 지식과 배움에 대한 열정 또한 괴테한테 본받고 싶은 면이다. 그의 지식과 경험은 다방면으로 확대되고 이것은 자신의 글을 쓰는데 도움이 된다. 작가한테 매일 글쓰기가 중요하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책을 부단히 읽고 새로운 것을 체험하고 경험하는 수 밖에 없다.  그래야만 글쓰기의 소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사랑이다. 괴테가 뛰어난 말솜씨와 시적 재능으로 뭇 여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재주가 있었기에 수많은 여성과 친밀한 관계를 가졌다. 여성은 남성보다 머리보다 가슴과 마음으로 느끼기에 여성의 감성을 자극하는 괴테의 아름다운 글과 시는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 것이다.  사랑을 하면서 삶과 창작의 원동력을 찾은 괴테는 자신이 마음에 드는 여자를 만나면 나이와 결혼여부 상관없이 구애의 손길을 뻗쳤다. 사랑이 없는 삶은 그에게는 너무 공허한 삶이었다. 사랑에 대한 그의 말 한마디는 나를 다시 깨어나게끔 한다.

 

최상

더 이상 사랑하지도 않고 고민도 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무덤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격언적) 중에서

 

느낀점

 

서문에서도 저자는 명백히 밝힌 바 있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주변의 사람들한테 고마움과 영향을 받은 사람들을 일일이 열거할 수 밖에 없음을. 하지만, 실제로 자서전을 써나가면서 너무나 주변의 인물들을 너무 많이 다루고 묘사한다. 그 사람들이, 그 상황들이 ,그리고 그 사건들이 어떻게 일어났으며 그것이 일어난 사회적 역사적 배경을 상세히 설명한다. 

독자는 저자의 인생사를 듣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친밀하지도 않은 수많은 사람들을 등장시킨다. 당대 또는 역사적으로 유명한 작가, 철학가, 정치가, 그리고 그 사람들이 쓴 책의 서평까지 빼놓지 않고 상세히 다룬다. 자서전이 아니라 잡학 개론을 보는 것과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독자의 인내가 한계에 다른다.

 

저자 자신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지적 유희, 지적 허영을 즐기는 것 같다. 독자의 입장에서 보면 문학, 역사, 철학, 미술 , 음악, 건축, 자연과학 등 다양한 분야를 다루는 데 독자들은 저자가 지식을 자랑하는 것처럼 보인다.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갖지 못한 재능에 대한 질투는 아닐까 염려스럽다.

 

자신의 인생사와 가족사를 담대하게 그려 나갔으면 더 좋지 않았을 까 한다. 그래야 집중적인 독서가 가능하지 않을 까 한다.  그리고 글의 전개 가 바뀔 경우, 시기를 나타내는 것을 포함했다면 읽기가 수월하지 않았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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