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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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5. 그들이 스스로 본 그들 --- "나는 어떻게 생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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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첫 인연 –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아니야...
5-2. 엄마보다 세상 – 호기심과 모험심
5-3.
5-4.
어린 시절, 몇 장의 기억 중에는 나를 ‘떠나라고 지시하는’ 한 장면이 눈에 선 하다.
5살 어린 아이가 그네를 탄다. 그네가 아래로 위로 움직일 때마다 펼쳐지는 각기 다른 높이에서 보는 경이로운 세상. 아이의 눈은 엄마를 찾기보다는, 집과 집을 사이에 두고 끝없는 미로처럼 연결된 골목길을 향한다. 일제히 로터리를 빙빙 돌아 어디론가 숭숭 달리는 자동차 찻길에 마음이 꽂힌다. ‘아...궁금하다. 가보고 싶다...’ 아이는 6층 계단을 조르르 타고 내려가 집을 떠나 동네 탐험에 나선다.
어린 시절 나의 별명은 ‘아침에 출근 저녁에 퇴근’ 그리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이다.
음력 설날 다음 날 태어난 나는, 다른 또래 아이들보다 생일이 빨라서인지 일찍 여물었다. 게다가 위로 언니들이 3명이나 있는 덕에 또래들에 비해 세상에 관한 많은 것(?)들을 습득할 수 있었다.
당신 일과 6명이나 되는 아이 육아에 숨 쉴 틈 없었던 어머니는 일찌감치 나를 내 바로 위 언니 손에 맡겨서 유치원을 보냈다. 나는 5살에 유치원을 들어갔고 70년대 시절에는 드물게 5, 6살 2년간 유치원을 다니는 고통(?)을 맛보아야 했다.
나는 유치원 가기가 싫었다. 내 나이 또래 친구도 없고 힘 센 언니 오빠들이 인형을 비롯한 대부분의 놀잇감을 독차지 하였다. 유치원에서 나는 한쪽 구석에서 외톨이로 혼자 놀아야 했다. 함께 유치원에 다닌 셋째 언니가 나의 보호막이 되어 놀아주기를 바랐지만 셋째 언니에게나는 늘 영원한 밥(?)이자 자신의 분풀이의 대상이었다.
수업시간에 딱딱한 유치원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도 고역이었다. 좀이 쑤셨다. 이리저리 몸 흔들기를 좋아하고 돌아다니기를 좋아했던 나는 시간에 맞추어 수업하는 활동이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왜 유치원을 다녀야 할까? 그냥 놀고 싶은데.....’ 나는 우리 동네 이곳저곳 궁금한 곳 가보는 게 꿈이었다.
유치원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는 내 관심을 끄는 풍경들이 여기저기서 툭툭 튀어나왔다. 언니는 내 손에 꼭 붙잡고 한쪽 길로 집으로 향하기를 바랐지만, 나는 거지 아저씨가 깡통을 차고 한 푼 두 푼 챙기는 것도 구경해야 했고 대양어선 선장의 딸인 친구, 미영이가 손을 흔들며 쑥 사라져가는 꼬불꼬불 좁게 이어지는 골목길도 따라 가 보고 싶었다. 나는 친구의 집이 늘 궁금했다. 미영이네에는 세계 각 국에서 가져온 신기한 물건을 많다고 했다. 할머니와 함께 장보러 다녔던 시장 길, 시장 입구에는 연탄불 앞에서 뽑기를 만들어내는 뽑기 아줌마가 늘 앉아있었다. 아줌마의 등에는 얼굴이 발갛게 튼, 한 살 배기 아이가 엎혀 있었다. 아줌마는 연탄불 두 개를 나란히 놓고 하나는 뽑기 전용, 또 하나는 커다란 오뎅 냄비 전용으로 나의 군침을 자극하였다. 시장 길은 늘 내 마음을 설레게 하였다.
내 나이 6살, 나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언니가 학교에 입학하고 나는 혼자 유치원을 다니게 된 것이다. 5살 때 배운 내용이 그대로 반복되는 유치원은 재미가 하나도 없었다. 나는 유치원 프로그램을 봐 가며 술렁술렁 유치원에 갔다. 간식 주는 날, 코카콜라 공장가는 날, 인형극 보여주는 날 등등 특별한 재미거리가 있는 날은 꼭 참석을 하고 그렇지 않은 날에는 가방 매고 나가서 곧장 시장 골목으로 향했다. 어머니는 내가 유치원을 제대로 가는지 안 가는지 잘 모르는 눈치였다. 너무 바빴기 때문일 거다. 그다지 큰 제재(?)가 들어오지 않는 걸 보면 말이다.
나는 우리 집 반경 버스로 1~3정거장까지 내 행동구역으로 접수했다. 시장 통에 가면 유치원을 다니지 않는 친구들이 있다. 나는 아이들과 하루 종일 뛰어놀며 ‘길이 있는 곳은 곳 내가 가는 곳, 오늘 못 가면 내일 다시 해 뜨면 간다’는 정신으로 자유를 만끽하며 놀았다. 물론 뛰어놀다가 멀리 떨어진 동네로 갔을 때는 두려움이 밀려왔지만 낯선 동네로 모험을 즐기는 것은 신나고 재미있는 일이었다.
나는 호기심이 많았고 모험을 좋아했다.
집이나 학교, 정해진 틀 속에 있을 때 보다 미지의 세상을 탐험할 때 점점 신이 나고 힘이 솟았다. 시장에서 철공소에서 자동차 세차장에서, 여러 일을 하는 어른들을 만나 구경하고 또 골목에서 만난 새 친구와 금방 친해져서 각가지 일을 모의 하는 것은 참으로 신나는 놀이였다. 어린 시절 세상탐험은 부족했던 엄마의 품을 대신해 넉넉히 나를 품어주었다. 세상 속 놀이에서 나는 내가 살아있음을 느꼈고 나만의 자신감 자가발전기를 가동할 수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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