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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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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9일 17시 01분 등록

* 사설집을 보는 중에 강의를 들었는데, 강연을 하신 이만방 선생님께서... '그리스로마신화의 신들의 이름과 이야기는 줄줄 외우면서도 우리 소리는 들어도 (그 내용을) 모른다'고 한 하셨다. 

 

나는 이 사설을 우리 고전의 내용(줄거리)를 자세히 알고 싶어서 읽기 시작했는데, 줄거리를 보려한다면 어린이를 위해서 나온  다이제스트 본이 나을 듯하다. 물론 어린이용에는 삭제된 내용이 많겠지만, 줄거리를 만을 위해서라면 그게 좋을 듯 싶다. 처음에 줄거리 때문에 보기 시작한 것인데, 읽다보니 다른 것들이 많이 보인다. 

 

러시아 출신 철학자, 사회학자 박노자의 이야기를 얼핏 어디서 보았다. 그는 우리나라 말을 외국인 답지 않게, 꼭 우리나라 사람처럼 말을 한다고 들었다. 그는 그 나라 언어를 익히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고 한다. 그가 우리 말을 익힐 때, 판소리 춘향가를 줄줄 외었다라는 말을 어디선가 보았다. 그래서 나는 박노자가 본 춘향가가 어던 내용들을 담고 있길래, 그가 우리 말과 정서를 그대로 흡수 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춘향가부터 시작했다.

 

그러다가 심청가, 흥보가 사설을 읽었다. 소리로 들어야할 말을 읽으니 맛이 없었다. 그러나 내용은 엄청나게 풍성했다. 내용이 한문투의 말이 너무 많아서 읽기에 불편한 부분이 많았다. 또한 왜 이러한 부분이 계속해서 반복되어서 인용이될까하는 부분이 많았다. 그리스로마신화의 인용처럼 충효, 부모공양, 한 지아비 섬기기는 수없이 인용되었다. 지금은 옛날처럼 천자문과 소학과 효경, 논어,사략을 공부하는 한문세대가 아니니 옛날처럼 인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에 어떤 정서인지는 알고 싶다. 판소리 사설에서 그것을 조금 맛본다.

 

기억하고 싶은 부분이 많다. 노래로 기억하면 좋을 텐데... 그러지 못해 안타깝다.

글로 봐서 재미난 부분도 많다.

 

읽으면서 느낀 판소리 사설의 특징.

 

1) 재미있다 싶은 부분은 과장이 있다.

과장이 유머의 한 요소인 듯 하다. 사설이 열거식이라는 것은 알았는데, 이건 좀 지나치다 싶다. 그런데, 그게 매력이다. 

개그맨들에게 잘 묻는 말로, 어떻게 사람들을 그렇게 웃기느냐라는 질문에, 어떤 개그맨이 그랬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는 웃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라고 했다. 그리고 웃을 때까지 들이댄다고 한다. 나는 그것이 긴장을 만들어내는 요소라고 본다. 그 긴장의 끝에 유머가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은 긴장을 해소하기 위해,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이성으로 분별이 되지 않는 지점에서 이성을 포기하고 웃음으로 그 상황을 넘기려한다는 이론을 본 적 있다. 

내가 사설을 읽는 중에 이건 좀 지나치다라고 느끼는 지점들은 그런 것들과 닿아있다. 긴장을 고조시킨다. 여기까지 하면 될 것 같다 싶은 부분을 넘어서 몇 발짝을 더 간다. 그러면 더이상 판단하려는 그 이성의 한계를 넘어선 부분인데, 이성이란 게 포기되면 그때에 웃음이 찾아든다. 어사출두장면에서 그런 희화는 극대화된다. 춘향 매맞아 앓고 있는 중에 춘향을 설득하러 온 기생중에 하나는 춤을 추며 노래를 하는 것도 이성의 끈이 놓여서 그런게 아닌가 한다. 

개그맨들이나, 이 판소리 사설에서의 과정들은 그 끝으로 몰고갈만한 것을 갖고 있다.

 

2) 거울을 보는 것은 늘 두렵다. - 나는 왜 고전을 읽는가?

나는 고전을 읽는 것이 두렵다. 아니, 책을 읽는 것 자체가 두렵다. 책을 읽는 행위는 자신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라고 한다. 시대가 다르다고 인간이 다르지는 않다고 한다. 타인의 삶을 읽으며 자신을 읽어나가는 작업이라고 한다. 

나는 이 속에 있는 월매의 심정이되고, 사랑을 나누는 이도령의 심정이 되고, 월매를 놀리는 거지 이몽룡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내 안에 춘향은 없다. 나는 왜 내 안에서 춘향을 찾아내지 못하는가? 그건 좀 파볼만한 것 같다. 지금은 답을 잘 모르겠다. 다른 것에서라도 답을 구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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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02- 판소리 사설 
김연수 완창 판소리 다섯바탕 사설 

일러두기 : 
1) 1-1, 2-1,3-4 등의 형식으로 씌여진 숫자는 책에 나오는 숫자로, 판소리 완창을 CD에 담은 트랙번호인다. 
2) 글 앞의 숫자는 페이지 넘버이다. 
3) [ ] 안의 아니리, 진양조, 중중모리 등은 장단이름이다. 
4) 정확한 명칭이 아닌 경우가 많다. 
한자어를 조금씩 바꿔서 사설을 한 경우가 있어 정확한 명칭이 아닌 경우도 있고, 사투리로 사설을 해서 인 경우도 있다. 책의 내용을 그대로 옮겼으며 바른 명칭으로 바꾸지 않았다. 
5) 이 사설집은 비교적 사투리를 거의 표기하지 않은 사설이다. 
6) 사설집에는 줄바꿈이 없이 계속 이어진다. 읽기 편하기 하기위해 의미 단위를 염두해두고 문장을 몇개로 줄바꿈으로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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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춘향가 
1-1. 
43. [아니리] 영웅 열사 절대가인 삼겨날 제, 강산 정기를 타서 나는디, 

군산만학부형문에 왕소군이 용출허고, 금강활이아미수에 설도문군 환생이라. 

우리나라 호남 좌도 남원부는 동으로 지리산, 서으로 적성강, 산수정기 어리어서 춘향이가 삼겼는디, 

춘향모 퇴기로서, 춘향 처음 밸 제, 

[중모리] 꿈 가운데 어떤 선녀 이화 도화 두 가지를 양 손으 갈라 쥐고, 

하늘로 내려와 도화를 내어주며, 

"이 꽃을 잘 가꾸어 이화 접을 붙였으면, 오는 행락 좋으리라" 하더니, ..... 
* 춘향가 시작 대목. 태몽부터 시작하는 연유를 잘 모르겠다. 심청이에게도 태몽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태몽을 몹시 중시 여기는 듯 하다. 

44. 
[아니리] 그 때여 서울 삼청동에 이한림님이 계시되, 명문 거족이요, 

누대풍효대가로서 남원부사 제수허시니, 

도임헌지 수삭만에 배성에게 선치허사, 거리거리 선정비요, 곳곳마다 칭송가라. 

사또 자제 한 분을 만득으로 두었으되, 용꿈을 얻어 낳었기로 이름을 꿈 몽 자, 용 룡 자 몽룡이라 지었든 것이었다. 
* 이몽룡의 태몽. 

1-3. 
48. 방자 분부 듣고 나귀 안장을 짓는다. 

홍영 자공 산호편, 옥안 금천 황금륵, 청홍사 고운 굴레 상모 물려 덥벅 달아, 

앞뒤 걸쳐 질끈 매야, 층징 다래 은엽등자 호피 도듬이 좋다. 

도련님 호사 헐 제, 

옥골선풍 고운 얼굴 분세수 정히 허고, 긴 머리 곱게 따 감사댕기 디렸네. 

썬천세목에 보신 지어, 남수갑사로 다님 매, 진안 모수 통행전, 쌍문초 겹동옷, 청중치막으 도복 받쳐 당분합 때 매고, 

갑사복건 만석당혜, 나귀 등에 선뜻 올라 뒤를 싸고 앉은 후, 

채금당선 자르르 펼쳐 일광을 가리우니 하릴없는 선동이라. 
* 외무 꾸밈이 자세히 묘사한다. 왜 이러할까? 하나하나 세세하게 묘사해야 눈에 보이듯이 그 모습이 머리 속에 그려질 듯 하다. 여기에 나오는 옷이나 장신구 명칭을 나는 잘 알지 못한다. 현대에는 잘 쓰지 않는 물건이고 실생활에서 보지 못하는 물건들이다. 하물며 어디에서 나는 것은 좋은 물건인지 더욱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 시대 사람들은 대충이라도 꿰었을 것이다. 어느 지역의 특산물을 잘 알았을 듯. 공납이란 것이 있었을 테니까. 

1-4. 
55. [진양조] ...."네 말 듣고 경치 보니, 예가 어디 인간처냐? 

내 몸이 우화허여 천상으로 올라왔지. 

저게 만일 오작교면 견우 직녀 상봉헐 데, 견우성은 내가 되려니와, 직녀성은 뉘라될꼬? 

오날 이곳 화림중의 삼생연분을 만났으면." 

53. [중모리] 무슨 쪽지를 내어주며, "네가 이 글 뜻을 알겠느냐?" 

춘향이 황공허여, 공손히 받어 떼어보니 허였으되, 

'인간지오월오일은 천상지칠월칠석이라'허였거늘, 깜짝 놀라 깨달으니, 황홀한 일몽이라. 

55. [아니리] 방자를 불러 말을 해야 할 터인디, 떨려 부를 수가 있나. 

눈 정신은 춘양이 있는 곳에다 쏘아두고, 입만 딸싹거려 건성으로 부르것다. 

"얘, 방자야. 얘, 방자야! 저 건너 화림중에 울긋불긋, 오락가락, 언뜻번뜻 허는 게, 무엇이냐?" 

눈치 빠른 방자놈은 벌써 도련님이 춘향을 보고 정신 잃은 줄을 알았겄다. 

"도련님은 무얼 보고 그러시는지, 소인 눈에는 아무 것도 안 보입니다." 

56. [아니리] .... "아, 이 고을서 천상계화라고 부르는 춘향이옵니다." 

"거 천상계화라고 할만한 걸. 얘 방자야. 네 지금 건너가서 잠깐 좀 불러오너라." 

"아이고, 도련님도! 그렇게 임으로 부르지 못합니다." 

"얘, 제가 퇴기의 딸이라면, 내 저 한 번 못 불러 볼 게 무엇이란 말이냐? 불러오너라." 

57. [자진모리] "춘향의 설화부용 남방으 유명허여 

감사 병사 목부사 군수 현감 관장님네 무수히 보랴허되, 

장강의 색과 설도의 문장이며, 입의 정절행을 흉중으로 품었으니, 

만고여중의 군자옵고, 어미는 기생이나근본은 양반이라, 

임으로 호래치 못하나이다." 
* 신분제가 어찌 작동하는지 궁금하다. 계급이 없다하는 지금도 여전히 계급이 존재하며, 계급유지의 욕구와 신분상승의 욕구는 여전하며 충돌하고 있다. 

58. [자진모리] 방자 하릴없어 춘향 부르러 간다. 

맵수 있는 저 방자, 태도 좋은 저 방자, 

광풍에 나비 날듯 충충거리고 건너가, 

춘향 추천허는 앞에 바드드드득 들어서며, "얘, 춘향아!" 
* 방자는 춘향과 말을 수이 섞는다. 
방자전에도 그러하던데, 방자의 앞에 춘향이 근본이 양반이라 함부러 호래치 못한다더니 자신은 막 부르고 그런다. 

58."사또 자제 도련님이 광한루 구경 나오셨다가,

너를 보고 불러오라 허시기에 하릴없이 여 왔으니, 어서 바빠 같이 가자." 

"인제 오신 도련님이 나를 어찌 알고 부르신단 말이냐? 

네가 도련님 턱 밑에서 춘향이가 어떠니, 춘향모가 어떻다느니, 종알종알 조 까바쳤지?" 

"허허! 요게 제 행실 그른 지는 모르고, 날다려 까바쳤대?" 

"내가 행실 그른 게 무엇이란 말이냐?" 

"그르기사 그르제! 네 그른 내력을 내가 으를 게 들어 봐라." 

60. [자진모리] "경상도 산세는 산이 웅장 허기로 사람이 나면 정직허고, 

전라도 산세는 산이 촉허기로 사람이 나면 재주 있고, 

충청도 산세는 산이 순순허기로 사람이 나면 인정 있고, 

경기도를 올라 한양 터 보면, 자른목이 높고, 백운대가 섰다. 

수락산 떨어져 북주가 되고, 종남산이 안산이요, 관악산이 청룡, 만리재 백호라. 

동작이 수구 막혀 천부금탕 되었으니, 만호장인이 아 아니냐? 

사람이 나면 선헐 때 선하고, 악하기로 들면 별악지상이라. 

양반 근본을 이를진대, 부원군 대감이 당신 외삼춘이요, 이조판서가 동성 조부님이요, 시즉 남원부사 당신 어르신네. 

만일 네가 아니 가면, 내일 아침 조사 끝에 너의 노모를 잡어다, 

난장형문에 주릿대 방맹이 마줏대 망태거리 학춤을 추며, 굵은 뼈 뿌러지고 잔뼈 어실러져, 

얼게미 쳇궁기 진가루 새듯 그저 솰솰 새리니, 

무남독녀 네 마음이 그 소견이 어떻겠나? 

내가 이리 권하기는 위초요, 비위조라. 

너 위허여서 헌 말인디 끝끝내 고십허니, 갈 테면 가고, 말 테면 마러라. 

나는 간다. 나는 가. 떨떠럭리고 내가 돌아간다." 
* 방자놈이 처음에는 회유터니, 나중에는 위협이다. 

63. [아니리] ..... "저고 뭣이고, 춘향아! 네 호강, 네 팔자는 말헐 것도 없거니와, 

미륵님 살찌기는 석수 솜씨에 매였다고, 중매쟁이 방자 이놈 네 덕으로 소년 수로나 한번 해 먹자꾸나." 
* 표현이 재미있어서 옮겼다. '미륵님 살찌기는 석수 솜씨에 달렸다.' 

1-9. 
67. [아니리] 방자 밖에서 듣다가, "아니, 도련님, 이게 웬 야단이오? 

도련님이 지금 글 난리를 꾸미시오? 글 싸개를 만났소? 글 전을 보시오?" 

"니놈아, 딴 소리 듣기 싫다. 

건은 원코, 형코, 이 코, 저 코, 춘향 코, 내 코 한테 대면 좋고, 그리고 저리고 허면 또 새 코 나면 좋고." 

방자 듣다가, "도련님, 그게 무슨 책이오?" 

"이게 주역이다." "그 어디 주역이오? 코책이제. 저는 노는 학 코, 소인 코도 그 밑에다 넣어주시오." 

"이놈아, 네 코는 상한의 코라 여기 범치 못한다." 

"맹자견양혜왕허신대 왕왈 쉬불원천리이래허시니, 춘향 보러 오시니까?" 

방자 기가 맥혀, "허허, 글귀마다 춘향이가 주렁주렁 열렸소그려." "이놈아, 잔소리 마라. 

사략을 얽어보자. 태고라 천황씨는 이 쑥덕으로 왕허시다." 

방자 어이 없어, "도련님, 사략도 서울 사략과 시골 사략이 달소그려. 

우리 남원 사략에는 천황씨가 목덕으로 왕 했는디, 서울 사략에는 쑥덕으로 왕 했소?" 

"네 모르는 말이로다. 태고라 천황씨가 일만판펀 세 나이 우죽 많으시냐? 

말년에 낙치허사 목떡은 못 자시고 물씬물씬헌 쑥떡을 원하시기로. 

관학에서 공론하고 사략 판을 고쳤기로 각도 각읍 향교에 통문이 났느니라. 

아서라 이 글도 정신 없어 못 읽겄다. 굵직굵직한 천자를 읽어보자......." 
* 춘향에게 빠져 글이 눈에 안들어오는 구나. 

* 글 내용을 모르는 말은 농으로 하는 이 말을 알아듣지 못하리라. 재미난 부분인데, 주석이 없으면 재미를 알 수가 없다.
* '아서라'라는 말을 오랫만에 본다. 어른들이 아이인 날보고 걱정하여 매번 이러하니, 외사촌이 내 이름대신 불렀다. 그러나 지금은 이 말도 사라졌지. 시골에 외할머니곁에 가야 들을 수 있는 말이다. 

69. [아니리] ..... "무식헌 네가 깊은 뜻을 알겠느냐? 

천자라 허는 것이 칠서의 조상이라, 천자뒤풀이 허는 것을 뜻을 알고 들으면, 별별 맛이 다 있느니라. 내 읽을 게 들어봐라." 

[중중모리] "자시에 생천허니 불언행사시 유유차앙의 하늘 천. 
축시의 생지허여 오행을 맡았으니 양생만물의 따지. 
유현미묘흑정색 북방현무 검을 현. 
궁상각치우 동서남북 중앙토색의 누루 황. 
천지 사방 몇 만 리 하루광활 집 우. 
연대 국조 흥망성쇠의 집 주. 
우치홍수 기자추연 홍범구조의 넓을 홍. 
제제군생 수역중의 화급팔활의 거칠 황. 
요지성덕 장헐시고, 취지여일으 날 일. 
억조창생 격양가 강구연원릐 달 월. 
오거시서 백가어를 적안영상의 찰 영. 
세상만사 생각허니 달빛과 같은지라. 십오야 둥근 달이 기망부터 기울 측. 
이십발수 하도낙서 중성공지 별 진. 
가련금야숙창가 원앙금침의 잘 숙. 
절대가인 좋은 풍류 만반진수 벌 렬. 
사창월색삼색경야 경경정회 베풀장, 남원 와서 침 보았네, 광한루의 찰 한. 
배개가 높거든 내 팔을 베고 이만큼 오너라, 올 래. 
삼복성염 구슬땀에 소서 대서 대울 서. 
언제 만날 기약 없이 춘향 혼자만 갈 왕. 
어서 다시 보고 싶어 일각삼추 가을 추. 
백발이 장차 오게 되면 소년 풍도는 거둘 수. 
낙목한천 찬 바람, 백설강산의 겨울 동. 
오매불망의 우리 춘향을 규중심처에 감출 장. 
해는 어이 이리 지루헌고? 윤일인가, 부를 윤. 
이러한 고운 태도 일생 보아도 남을 여. 
이 몸이 훨훨 날어가 천사만사 이룰 성. 
우리가 이러지리 노리다 부지세월의 한 세. 
조강지처는 박대 마소, 대전통편의 법측 률. 
분벽사창 좋은 방, 춘향과 나와 둘이 마주 앉어 입을 대고 정담을 허면, 법칙 려 자가 되겠구나." 

이리 한참 읽더니마는 춘향이가 또 눈에 어리어, 
* 이 천자문 풀이 참 재미있다. 한 사람이 눈에 들어오면 만물이 그 사람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이 글귀를 보고 천자문을 읽고 외고 싶어졌다. 우주와 사람사는 것의 이치를 담았다고 하니 외워도 좋을 듯 싶다. 

1-10. 
73. [아니리] 통인이 책방으로 충충 나와, 

"쉬 도련님은 무엇을 그리 보고지고 소리를지르셨간디 사또께서 놀래시어 탕건을 다 벗어지고, 아뢰어 들이라고 야단났소." 

도련님이 이 말 듣고 한 번 짜증을 부리는디, "야속헌 일이로다. 백성의 원망 소리는 못 들어도, 그런 소리는 일쑤 잘 들으신다더냐? 다른 집 노인네는 이롱증도 계시드만, 우리집 노인네는 읅으실수록 귀가 점점 더 밝아지신단 말이야." 이리 했다고 허나, 

이는 성악가의 잠시 웃자는 재담이지, 그랬을 리가 있으리오? 

도련님 깜짝 놀래, "큰일 났구나. 얘, 급할 때는 거짓말이 당재니라. 거짓말로 여쭈어라. 

내가 논어의 '차호라, 오쇠야. 몽불견주공'이라는 대문을 읽다가, 나도 주공을 보고지이다 흥취로 소리가 높았다고 여쭈어라." 
* 관중과 이야기를 하며 부르는 소리라는 점을 알게 하는 사설이 들어 있다. 

74.[아니리] .... 사또 가만히 들어보시니, 글 읽은 데 자미를 꼭 붙인 모양이라. 

자랑을 하시려고 책방의 목낭청을 청하였지. 

목낭청이 들어오는디, 먹적골 흙다리 골생원 채림으로 들어와 사또 턱 밑에 가 바짝 꿇어앉으니, 

사또 기쁜 마음에 도련님을 추는디, 듣는 사람이 뉘 말인지 모르게 두미없이 말을 내것다. 

"자네듣게." "들으라니 듲지요." 

"기특하거든." 낭청이 무슨 속인지 몰라 사또를 한참 바라보더니, 코가 벌렁해지며 그냥 따라서 건성으로 대답을 허는디, "기특허지요." 

"거 묘허단 말이야." "거 묘허지요." 

"뜻이 벌써 높거든." "뜻이 발써 높지요." 

"재조가 절등이야." "재조가 절등허지요." 

"자네 뉘 말인지 알고 대답을 이리 부지런히 허나?" "사또께서는 뉘 말을 이리 부지런히 허시오?" 

"아, 이 사람아. 우리 몽룡이 말이야." "사또가 몽룡이 말씀이면, 나도 몽룡이 대답이지요." 
* 골생원 사람 사는 법을 좀 아는 모양이라. 

75. 책방의 도련님은 답장을 기다리든 차에, 

향단이를 보더니 벌떡 일어나 두 손으로 받어 꿇고 앉어 떼어 보니, 그 글에 허였으되, 

'풍류이팔랑은 명월삼오야오, 소가의 유춘정은 쌍송영롱하를!' 

도련님이 좋아라고 소리 없이 웃으시며, "너희 집에 솔 두주 선 데 있느냐?" 

"예, 연당 앞에 솔 두 주 섰사온데, 그리로 오시라고 하셨어오." "영락없다. 글도 문장이로구나. 보름날 밤에 보겠다. 잘 가거라." ...... 
* 연애편지는 이렇게 쓰는 것인가? 

88. [아니리] "얘, 우리 이러고 있다가 남에게 우세하기 쉽겠다. 오늘 밤에 일찍 오마." 

재삼 부탁허고, 도련님은 책방으로 돌아가 자는 듯이 누워있고, 춘향은 제 방으로 들어 한정없이 자든 것이었다. 

촌향모 고이히 여겨 춘향 방문 가만히 열고 자는 얼굴 바라보니, 반치나 여윈 듯허여, 새로 핀 꽃봉이가 봄 찬바람 분 듯허며, 적은 바람에 가는 물결같이 입은 옷이 잔살구겨 꼬기작꼬지가 전일과 다른지라. 
* 꽃 봉이가 봄 찬바람을 맞은 듯.... 이런 표현 기막히다. 

2-3. 
91. .... 도련님 잡술 주안상을 채리는디, 
92. [자진모리] 안성 유기, 통영 필판, 천은 수저, 구리저 집리 서리 수 벌이듯 주루루 벌여놓고, 

꽃 그렸다 오죽판, 대모 양각 당화기, 얼기설기 송편, 네 귀 번듯 정절편이며, 

주루루 엮어 산피떡과 평과, 진청, 생청 놓고, 조란산적 웃짐쳐 양회, 간, 처녑, 콩팥 양편에다가 벌여 놓고, 

청단, 수단에 잣배기며, 안삼채, 도라지채, 낙지, 연포, 콩기름에다 시금채로 웃짐을 쳐 갖은 양념 모아놓고, 

편적, 거적으 도적이며, 

절창볶기, 매물 탕수, 어포, 육포 갈라놓고, 

천엽쌈, 벙거지골, 갈비찜, 양지머리, 차돌백이를 딜여 놓고, 

생률, 황률, 은행, 대초, 고산 참배, 임실 준시, 호도, 백자 젓들이고, 

끌끌 우는 생치 다리, 오도독 포도독 메초리탕, 꼬기오 영계찜, 

어전, 육전, 지지개며, 수란탕, 청포채에다 개자, 고초, 생강, 마늘, 문어, 전복 봉을 오려 나는 듯이 괴아놓고,

전골을 딜이난디, 청동 화로 백탄 숯불 부채질 활활 고초같이 일워놓고, 

살찐 소 반짝고기 반환도 드는 칼로 점점편편 외려내어, 깨소금에다 참기름 쳐 부수수 불려 내와내야, 대양판 소양판에도 담고, 저도 담고 

산채, 고사리, 수근, 미나리, 녹두채, 맛난 장국 주루루루 딜여 붓고, 계란을 똑똑 깨어 웃딱지를 떼고 길게 늘이워라. 

손 뜨건디 쇠저 말고 나무저를 드려라. 

고기 한 점을 덥벅 집어서, 맛난 기름의 간장물에다 풍덩 들이쳐 덥벅, 피. 

* 음식상 묘사가 자세하다. 이런 열거식의 묘사는 판소리에서는 많이 볼 수 있는 것이다. 흥보가에도 음식상을 이렇게 자세하게 묘사했다. 
이는 소리로 그 내용을 앞에 보이듯이 하게 하려 한게 아닌가 하고 짐작해본다. 잘 먹고, 잘 입고, 아들 딸 낳아 걱정없이 사는 것 그시대 대부분이 바라는 것이고 보면 음식의 자세한 묘사는 빠질 수 없는 것이었으리라는 짐작이다.

97. [중모리] "천장지구의 해고석란이요, 천지신명은 공증차맹이라" 씌여있고, 

"정묘 오월 십오야 표주자필 이몽룡"이라 허였거늘, 고이 받어 품에 넣고, 

알심 있는 춘향 모친, "밤이 매우 깊었으니, 어서 편안히 주무시오." 
* 5월 단오에 첫만남이오, 보름밤에 다시 만나 일치르고, 다음날 밤에 공증서쓰고 일 참 빠르다. 
* 춘향모. 늙은 어머니는 뭔가 좀 아는 여자다. 이야기는 현실과 비슷하여가 그럴 듯 하다. 현실 속의 인물이 이야기속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감이 마땅하다. 

98.[진양조] "..... 사랑, 사랑, 내 사랑이지. 어어 어허 어허 어어 둥둥, 내 사랑이야. 

너 죽어도 내 못 살고, 내가 먼저 죽거들랑 너도 부디 못 살어라. 

생전 사랑이 이럴진대 사후 기약이 없을쏘냐? 너 죽어서 될 것 있다. 

너는 죽어 글이 되되, 따 지, 따 곤, 달 월, 그늘 음, 아내 처 자와 계집 여 자 변이 되고, 

나는 죽어 글이 될 적, 하늘 천, 하늘 건, 날 일, 볕 양, 지애비 부 자와 아들 자 몸이 되어, 

계집 여 자변에다가 아들 자 자를 떡 붙이어, 좋을 호 자로 만나거들랑 날인 줄을 알려무나." 

"나는 그것 되기 싫소." 

"그러면 너 죽어 될 것 있다. 너는 죽어 꽃이 되되, 

이백도홍삼춘화가 되고, 나는 죽어서 나비 될 적, 화간 쌍쌍 범나비 되어, 

네 꽃봉이를 내가 덥벅 물고, 바람 불어 꽃봉이 노는 대로 두 날개를 쩍 벌리고 너울너울 놀거드면, 나는 줄로 알려무나." 

"나는 그것도 되기 싫소." 

"그러면 죽어서 될 것 있다. 너는 죽어 종로 인경이 되고, 나는 죽어 인경 마치가 되어, 

새벽이면 삼십삼천, 너녁이면 이십팔수로, '뎅 뎅'. 

다른 사람이 듣기에는 인경 소리로 들리어도, 우리 둘이 듣기에는, 

'내 사랑 춘향 뎅, 이도령 서방 뎅.' 그저 '뎅뎅' 치거들랑, 날일 줄을 알려무나." 
* 남녀 서로 짝이 되는 소리. 


100. [중중모리] "둥 둥, 내 사랑. 어허 둥둥, 내 사랑. 
사랑이로구나, 내 사랑이로다. 
아마도 내사랑이야. 
천하일색의 내 사랑. 
만고절색의 내 사랑. 
사랑이로구나, 내 사랑이로다. 
섬마 둥둥 내 사랑이야. 
이 이 이 이, 내 사랑이로다. 
아마도 내 사랑이야. 내 사랑이지. 
사랑 애 자로 놀아보자. 
일년명월금소다 천하만국 사랑 애. 
초당 연상 만권시서는 문장재사가 사랑 애. 
세사는 금삼척이라, 고금 율객이 사사랑 애. 
생애는 주일배라 허니, 호걸 주객이 사랑 애. 
사창월색 삼경야 우리 두 몸이 사랑 애. 
이리 보아도 내 사랑, 저리 보아도 내 사랑. 
내 사랑이지. 내 간간이지. 
두둥 두둥 둥 어허 둥둥, 내 사랑. 
네가 무엇을 먹으냐느냐? 네가 무엇을 먹으랴느냐? 
둥굴둥굴 수박 웃봉지 떼뜨리고, 
강릉 백청을 따르르 딸아, 
씰랑 발라버리고 붉은 점만 가려, 그것을 네가 먹으랴느냐?" 
"아니 그것도 나는 싫어." 
"어허 둥둥, 내 사랑이야. 그러면 무엇을 먹으랴느냐? 
능금을 주랴, 포도를 주랴. 
뒷동산에 올라 올라가 시금털털 개살구 작은 이도령 서는 데 네 먹으랴느냐?" 
"아니, 그것도 나는 싫소." 
"그러면 무엇을 먹으랴느냐? 소 잡어 주랴? 돝 잡어 주랴? 
양을 잡어주랴? 닭을 잡어주랴? 나를 통채 삶아 주랴?" 
"용천배기가 아니거든 사람을 어이 먹소리까?" 
"이애, 춘향아, 말 들어라. 사랑에 지쳐서 허는 말이로다. 둥둥 두두웅둥, 어 둥 둥둥, 내 사랑." 
* 사랑가. 사랑이 철철 넘친다. 좋아하는 이에게 무엇이든 먹이고 싶은 심정에 웃음이 난다. '나를 통채 삶아 주랴?'는 말에 감동이다. 

3-2. 
125. [중모리] ..... "옛소, 도련님, 약주 삽수시오. 금일송군수진취니, 술이나 한 잔 잡수시오." 
도련님 기가 맥혀, "천하의 못 목을 술이로다. 합환주는 먹으려니와 이별허자 주는 술은 내가 먹고 살어서 무엇허랴?" 
"이 술이 이별주가 아니라 후일 상봉 언약주니, 술이나 한 잔 잡수시오." 
삼배를 자신 후에 대모 색경을 내우주며, 
"아나, 춘향아, 신표 받어라. 장부의 맑은 마음 거울빛과 같은지라, 
천만 년이 지나간들 변헐 리가 있겠느냐?" 
춘향이 지환 한 짝 벗어, "옛소, 도련님, 지환 받으오. 
옥환 일매는 유시소롱이라, 소첩의 굳은 마음 지환빛과 같사오니, 
이토에다 묻어둔들 변할리가 있으리까? 
깊이깊이 갊아두고 날 본 듯이 두고 보오." 
서로 받어 품에 넣고, 둘이 서로 꼭 붙들고 떨어지지를 못허는구나. 

126. [아니리] 방자 보다 답답허여, "여보시오, 도련님. 점잖어신 도련님이 이별을 허실라면, 
'춘향아 잘 있거라, 도련님 잘 가시오.' 그 두 두마디만 헝도, 그 속이 천지위랑장만물 속인디, 
어쩐 이별을 어제 저녁때부터 어제 밤, 오늘 낮까지, 밤낮 사흘을 허신단 말씀이오? 
바로 명춘에 떠나신대도, 떠나는 날은 평생 이럴 터이니, 뚝 잡어 떼어버리고 어서 좀 가옵시다." 
* 사흘을 이별하며 슬퍼하였단 이 대목이 난 왜 이리도 좋냐. 소리로 들으면 어떠할꼬? 이별은 '잘 있거라, 가시오'라는 단 두마디 말로 안되는 것이 맞다. 

3-5. 
128.[아니리] 춘향은 절행만 장헌 게 아니라, 효성이 또한 지극헌 사람이라, 
모친 말씀을 거역치 못하여 모친 따라 집으로 돌아갈 제, 
* 한 인물에 한 가지 속성을 부여했다. 우리 옛소설의 특징이라고 한다. 주인공은 착하고, 충성스럽고, 절행하고, 효성있는. 옛소설에서는 보여주기 보다는 규정지어 설명하는 화법을 쓰는 것을 보여주는 부분이 많다. 

4-2. 
147. [중중모리] 군로 사령이 나간다. 사령 군로가 나간다. 
산수털 벙거지 남일광단 안 올려, 날랠 용 자를 떡 붙이고 충충거리고 나간다. 
"이 애, 김번수야!" 
"왜야?" 
"걸리었다. 걸리어." 
"거 뉘가 걸리어?" 
"춘향이가 걸리었다." 
"옳다. 그 제기를 붙고 발기를 갈 년이 양반 서방을 허였다고, 
우리를 보면 초리로 보고, 
당혜만 잘잘 끌며 교만이 너머 과하더니, 
사나운 강자지 범이 물어가고, 
물도 가뜩 차면 지느니라. 
너나 내나 일분 사정을 두는 놈 제 어미를 모르리라." 
떠들며 나갈 적으, 
장방청 아랫목에 늙은 사령 누웠다가, 
"이 애들아, 말 들어라. 사또님 분부 내어 춘향을 잡어 오랫으나, 
춘향의 화용월태 사또 수청 들거드면 뭇주검이 날 것이니, 
조심허여 모셔오너라." 
사령들이 듣지 않고 설렁거리고 나가는디, ....... 
*젊은 사령, 늙은 사령이 보는 태도가 각각 다르다. 젊은 사령은 춘향을 아니꼽게 보고, 늙은 사령은 춘향이 이제 사또의 수청을 들게되면 실세가 될 터라 고이 모셔오라 이르니, 사람보는 시각, 세상 보는 시각이 제각각이다. 

4-4. 
156. [중모리] "충신은 불사이군이요, 열녀불경이부절을 사또는 어이 모르시오? 
사또님 대부인 수절이나, 소녀 춘향 수절이나 수절은 일반인디, 수절에도 상하가 있소? 
사또도 국운이 불행허여 도적이 강성허면, 
부귀영달 탐을 내어 인군을 배반허고, 
적하에 무릎을 꿇어 두 인군을 섬기려오? 
마오. 마오. 그리 마오. 위력지사를 그리 마오." 
[아니리] "수또의 충성 유무 일로 보아 아옵나니, 
역심 품은 사또에게 무슨 말을 허오리까마는, 
수절 부녀 억탈함이 위민부모 도리 절차 적당허다 하오리까? 
훼절하라는 부정 남녀 절치부심 허옵니다." 
* 춘향이 뜻은 가상하나, 그 뜻을 제대로 전하지 못하고 사또의 심기를 아주 건드리는구나. 

4-5. 
158. [아니리] 
형리가 다집을 쓴 연후에, "춘향 다짐내사연 분부 뫼아라." 
"분부 뫼어라!" 
"여의 신이 창가 소부로 부종관장지엄령하고, 발악거역허였으며, 신위천기로 자칭 정절이 죄당만사라, 
즉위타살허여 이일징백하리니, 네 죽노라 한을 마라!" 
다짐 끝에 흰 백 자 써 급창 불러 던져 주며, 
"다짐 받아 올려라!" 
급창이 받아 춘향 주니, 춘향이 붓대를 들고 벌벌 떠는디, 
죽기가 무서워 써는 것도 아니요, 
사또가 겁이 나 떠는 마도 아니요, 
한양 삼청동 이몽룡씨 못 보고 죽을 일과, ..... 
* 만일 양반이 상것에게 이리 말하였으면 상것이 알아들었을까? 드라마 <추노>에서 양반이 하인이게 지시할 때, 한자어를 어찌나 썩어 말하든지 나는 하나도 알아듣지 못하였다. 드라마여서 자막으로 그 풀이를 써주어서 읽어서 알았다. 드라마는 그렇게 양반과 노비가 서로 하는 말을 못알아 듣는 것을 보여주려고 그 부분을 삽입하였다. 양반은 지금 흉악한 놈이 억하심을 품고 양반네들 집에 들어 양반을 해하니 문단속 잘하여라하는 지시였다. 그런데, 그말을 어찌나 어렵게 한자로 말하든지 노비는 알아듣지 못하는 중에 '예'라는 말로 계속 대답하였다. 드라마에서도 노비가 둘 다 못 알아들었지만, 다만 하나는 눈치로 밤이니 문단속 잘하라라는 말이었을 거라고 하고, 다른 노비는 당최 먼 말인지 모르겠다 했다. 
양반은 체면치례로 계속 어려운 말만 골라 쓰는 것이 계속되다가 그 양반들 잡아죽이는 놈이 출몰하여 목에 칼이 놓이고 목이 간당간당 위험에 처하니 쉬운 말로 살려달라고 빌었다. 

이 사설집 읽다보면, 이런 말로 소리하면 몇이나 알아 먹을까하는 것과, 이것이 통속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소리임을 감안하면, 그 소설은 어찌 읽었을까 ..... 의심이다. 이를 읽은 사람들은 이미 한자 문화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이었던 것일까? 

이구절은..... 이문구의 관촌수필의 '일락서산'의 주인공 이문구의 조부만큼이나 옛스럽다. 그리고 양반과 상것을 나누는 그 경계가 눈에 보이지는 않는 것이지만 너무도 뚜렷하여 서로 말을 섞지 못하고, 어울리지 못하니 안타깝다. 

4-5. 
163-164. [중모리] 열을 치고 두남둘까? 스물을 치고 그만둘까? 
삼심도를 맹장허니, 
옥같은 다리으 살 한 점이 없어지고, 부스러진 뼈뿐이라. 
엎졌던 형리도 눈물짓고, 
매질허던 집장사령도 제쳤던 벙치를 숙여 쓰고, 
군복 자락 끌어다 눈물 씻고 발 구르며, 
"못 허겄구나. 못 허겄네. 사람의 자식은 못 허것네. 
집장사령 구실을 이십여 년 허였어도, 이런 광경은 첨 보았네. 
내가 이 길로 나가서 문전걸식을 허다라도, 이놈의 노릇은 안 헐란다." 
남원 읍내 여러 부인네들, 노숙헌 부인들과 수절과부들이 춘향 매 맞는단 소문을 듣고, 
동헌 담 밖으로 늘어서 춘향 몸에 매 내려지는 대로 질색허여 놀래면서, 
"아이고, 저것 또 맞는다. 
약한 몸에 저 매 맞고, 저년 어이 살겄느냐? 
불쌍허고 아까워라." 
그 중의 어떤 부인 하나는, "아이고, 불상허여 못 보것네. 
나같으면 썩 허락허고 살지. 
아깡누 목숨 저 매 맞고 왜 죽어?" 
주절하는 부인들은, "어라, 이년아, 듣기 싫다. 절행있는 사람에게 그런 누추헌 말 허지 마라." 
남원 읍내 오입쟁이들도 삼문 밖에서 구경을 허다가, 
"모지도다. 모지도다. 우리 사또가 모지도다. 어린 것이 조끔 잘못허였다고, 저런 매질이 또 있으리? 
집장 자령 놈을 눈여겨 두었다, 삼문 밖 나오면 급살을 주리라. 
저런 매질이 또 있느냐? 
내가 돌아간다. 떨떠리고 나는 간다." 
*춘향가에 춘향을 매질했다는 사령놈을 눈여겨보고 기억해 두었다가 그놈을 내 가만두지 않으리라 하는 대목이 있다고 한다. 지금 이 대목인 듯 하다. 지금 내가 읽고 있는 김연수 완창 판소리 사설집에는 그 대목이 별로 재미없다. 소리로 들으면 재미있을려나, 그러한 감정이 살아나려나? 동학농민들이 이 대목을 같이 부르며 전주관아로 지쳐들어갔다하니 내 이웃을 보는 마음이 내 가족을 보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것이 '우리'라는 감정을 만드는 것인가 보다. 
소리라는 것이 사람을 한데 묶는데는 큰 힘이 있다. 같은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그 순간에 마음이 함께 움직인다. 

5-2. 
178. [중모리] 춘향 형상 살펴보니 
쑥대머리 귀신형용, 
적막옥방의 찬 자리의 생각난 것이 임뿐이라. 
"보고지고, 보고지고, 한양 낭군 보고지고. 
오리정 정별 후로 일장 수서를 내가 못 봤으니, 
부모 봉양 글공부으 겨를이 없어 이러는가? 
여인신혼 금슬우지 나를 잊고 이러는가? 
계궁 항아 추월같이 번뜻이 솟아서 비치곳저. 
막왕막래 맥혔으니 앵무서를 내가 어이 보며, 
전전반칙으 잠 못 이루니 호접몽을 어이 꿀 수 있나? 
손가락 피를 내어 사정으로 편지허고, 
간장의 썩은 눈물로 임의 화상을 그려볼까? 
이화일지춘대우으 내 눈물을 뿌렸으면, 
야우문령단장서의 임도 나를 생각헐까? 
추우오동엽락시으 잎만 떨어져도 임의 생각. 
녹수부용채련녀와 제릉망채엽의 뽕 따는 정부들도 
낭군 생각은 일반이나, 날보담은 좋은 팔자. 
옥문 밖을 나가니 뽕을 타고 연 캐겄나? 
내가 만일으 임을 못 보고 옥중원혼이 되거드면, 
무덤 근처 있는 나무는 상사목이 될 것이오, 
무덤 앞의 섰는 돌은 망부석이 될 것이니, 
생전사후 이 원한을 알아줄 이가 뉘 있드란 말이냐?" 
퍼버리고 앉어 설리 운다. 
* 왜 이대목이 그리 유명한지 모르겠다. 임방울 명창의 '쑥대머리...'가 제일 유명하다 한다. 내 상상안에는 쑥대머리가 남아있지 않으니 텍스트안에는 맛갈진 데를 모르겠다. 

5-4. 
185. [자진모리] 
남대문 밖 섞 내달아 
청파 역마 잡어타고, 
칠패 팔패 배다리 지내 
애오개를 넘었구나. 
동작강 월강헉여, 
남태령을 지낸 후으, 
과천 들어서 중화허고, 
밧마 역마 갈아타고 
지지대 미륵댕이 괴구정을 지낸 후으, 
수원들어서 숙수허고, 
상하 유천을 지내어, 
중미도미 지나, 
칠원 소사 지냈ㄱ나. 
가양 역마 갈아타고 
안성 나드리 지나, 
성환 들어서 중화허고, 
천안 삼거리 지내야, 
도리치 증기 역말 원터고개를 넘었구나. 
팔풍정을 당도허여 
화란 모로원 광주 공주 금강을 월강, 
장기대 높은 행길 소새 무네미 얼른 넘어, 
경천 들어서 숙수허고, 
노성 앞술막을 지내야, 
평천 역마 갈아타고 풋개 사다리 지낸 후으, 
은진읍을 지냈구나. 
까지말 닭더리 황화정을 당도허니, 
예서부터는 전라도라. 
양재 역마 갈아타고 여산읍으로 들어갈 제, 
서리 역졸 모아 섰다 어사또전으 문안커늘, 
* 한양에서 남원가는 길, 지명들이 궁금하여 옮겨 적었다. 나중에 이런 곳을 한번 돌아봤으면 싶다. 

187. [자진모리] "....., 너희는 급히 떠나 낱낱이 염문허되,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남의 말을 믿지 말고, 
탐관학민 불법지사 불충불효헌 놈, 
남을 음해헌 놈, 
술 먹고 우악허여 노인 존장 모른는 놈, 
살인허고 엄치헌 놈, 
국곡투식헌 놈, 
유부녀 통간허는 놈과 
어진 아내 무함허고, 
가장 두고 서방허고, 
제 것 두고 빌어먹고, 
주색잡기로 판나는 놈, 
남의 집 충화헌 놈, 
남의 분묘 사굴한 놈, 
낱낱이 적어 쥐고 
남원읍으로 대령하라." 
*이런 것이 죄구나. 

199. [아니리] 점치라는 문수를 외치고 가는디, 
웨는 소리가 서울 봉사와 시골 봉사가 다르것다. 
서울 봉사 같으면, 
"에리수어 어으어 문수아!" 이렇듯 웨련마는, 
이 봉사는 웨는 소리가 죽 쥐어지른 듯이 독성으로 외고 가는 것이었것다. 
"문수합쇼! 문수합소!" 
춘향이 소리를 받겨 듣고, 
사정이를 불러 봉사를 청하였것다. 
봉사 들어와 앉으며, 
"여, 춘향 각시. 진직 못 와본 일 인사가 빠졌구만. 그간 장처와 고생이 어떠헌가? 
어디, 장처를 좀 만져 보세. 내가 보든 못하여도, 내 손이 약손이라, 
내 손으로 만지기만 허면, 장독이 천병만마 진풀리듯 훨쩍 풀려 없어지지. 
어디, 음." 
춘향이가 매맞은 다리를 내어 맽기니, 봉사 더듬더듬 만져 차차 손이 무릎 위로 올라오는 것이, 
미구에 정통을 범할 모양이라. 
춘향이가 봉사 뺨을 호랑이 개 빰 치듯 치고 싶으나, 
점칠 일을 생각허여 자기 손을 자기 밑 근처에 딱 세워 놓고, 
꾀로써 허는 말이, 

200. [중모리] "봉사님, 들어보십시오. 어머님이 항상 말씀허시기를, 
서문 밖 허봉사는 안맹은 하였으나 근본은 양반인데, 
행신이 정대허여 사람마다 칭찬이요, 제가 채 어렸을 때, 매양 보면 덥석 안고 한없이 사랑허며, 
'내 딸이야, 내 딸이야.' 입 맞추며 등 치더라 허시더니, 
제가 차차 장성하야 자주 뵙지 못하여도 어제인 듯허옵니다." 
* 하아~춘향이 사람 좋네. 

200-201. [아니리] 봉사 가만히 듣다가 손을 얼른 떼며, 열없어 허는 말이, 
"그는 참 정말이구만. 원, 그녀르 자식 정신도 좋다. 그러나 이 매질을 그 어느 놈이 허였나? 네 설부은 내가 허여 주마. 
어느 놈이 했어, 응?" 
"왕방울쇠가 허였소." 
"그놈이 독허고 아조 모진 놈이란 말이야. 
이놈 정초에 독경날을 받으러 오면, 
화해일을 받어주어 부른 배가 툭 터지게 헐 것이요, 
보름 독경날을 받으러 오면, 
절명일을 받어주어 생급살탕을 먹게 허리라, 이녀석같으니라고." 
* 이런 식으로 쑥스러움도 피하고, 공감도 하고 하는구나. 분풀이를 하는 것이 우습기도 하다. 이렇게라도 역성을 들어주니 말 듣는 중에라도 시원허것다. 이런 게 정서라는 걸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렇게 누가 누구에게 화나고 억울한 것을 잘 들어주지 않아서 주변에 사람이 없는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말로 편들어주는 것은, 그냥 말로 한번 편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때의 순간에 앞에 있는 사람이 겪은 일이 제 일같이 여겨져서 감정이 앞서서 나서는 것이다. 

6-2. 
207. [아니리] 어사또 춘향 생각에 더욱 가슴 답답허여, 
지체 없이 길을 걸어 남원 지경에 이를 적에, 
때마침 사오월 이종시라, 
짓궂은 머슴들이 모주 맥반을 취차 포식허고, 
풍장을 치고, 소리를 하면서 이종을 허든 것이었다. 
[중모리] "두리둥 둥 쾌갱캥 얼럴럴 상사뒤. 
두리둥 두리둥 둥둥 캐갱캥 마 캥캥 어얼럴얼 상사뒤." 
"어 여어 여어 여어루우 상사뒤요." 
"여보시오, 농부님네! 여보시시오 농부네들, 이 내말을 들어 보오. 
여보, 농부들 말 들어 보오. 
장부 세상으 나서 사업이 많건마는, 
우리 농부들은 일만 허고, 
밥만 먹고, 술만 검고, 잠만 자는가?" 
"어 여 여어 여어루 상사뒤요." 
"여보소, 농부님네! 
부귀와 공명을 탐치 말고, 
고대광실을 부러 마소. 
오막살이 단간 집이라도 
태평성대가 들었다네." 
"어 여어 여어 여어루 상사뒤요." 
"인정전 달 밝은디 세종대왕의 놀음이요, 
학창의 푸른 솔은 신선님의 놀음이요, 
오뉴월이 당도허면 우리 농부시절이로다. 
패랭이 우에다 장화를 꼽고서 마구잽이춤이나 추어보세." 
"여 여 여어 ㅇ여어루 상사뒤요." 
"여보시오, 농부님네! 이내 말을 들어보소. 
여보 농부들, 말 들어보오.\돋는 달 지는 해를 벗님의 등에 실코, 
향기로운 이 내 땅으 우리 보재를 가꾸어 보세." 
"여 여어 여어 여어루 상사뒤요." 
"여보소, 농부들. 이 내 말을 들어보오, 여보 농부들 말 들어 보오. 
천하대본 이 농사를 신농씨 마련 후으, 
함포고복 격양가는 요인군의 시절이요, 
오현금 남풍시는 순인군의 시절이로세." 
"어 여어 여어 여어루 상사뒤요." 
*메기고 받고 하는 소리가 그대로 들었구나. 

209. [중중모리] "어화 어화 여어루 상사뒤요." 
"어화 어으 여어루 상사뒤요." 
"돌아왔네, 돌아와. 
돌아왔네 돌아왔네. 
풍년 시절이 돌아와. 
금년 정월 망월 때 
태을성이 높이 떠 태극봉에 가 비쳤드라." 
"어화 어으 여어루 상사뒤요." 
"여보, 농부들! 여보소, 농부들, 말 들어. 
내렸단다. 내렸단다. 전라 어사가 내렸단다." 
"어화 어으 여어루 상사뒤요." 
"여보소, 농부들, 말 들어, 어화 농부들 말 듣소. 
여보, 농부들, 이 농사를 어서 지어 올기쌀 드물에다가 풋호박국 끓여라. 
우리 농부들 배 충복허세." 
"어화 어으 여어루 상사뒤요. 자 쉬세!" 
* 앞에 중모리 소리에서 뒤에 중중모리로 이어지는 이 흥겨움이 더해가는 소리로 제대로 듣고 싶다. 
* 배 부르게 먹는다는게 뭔지.... 참. 난 이런 말 나올 때, 이제는 슬프다. 
가을, 한 낮의 거리를 걷다보면, 
상점은 손님이 없어 한산하고, 
아이들은 학교를 파하여 입에 뭐라도 하나 물어야 집에간다. 
나이 지긋한 노인이 놀이터 그늘에 앉아 하염없이 어딘가를 보고 있고, 
또 다른 노인은 종이박스를 한짐 작은 손수레에 실었다. 
먹고 사는 게 애닯다. 

210. [중중모리] 
"주색이라면 아귀 같고, 
정사에는 뚱단지요, 
욕심이 있는지 없는지 내 몰라도, 
굶지 않은 백성들은 낱낱이 불러들여 돈을 뀌라 청허다가, 
선뜻 허락 아니허면 엄형치죄 앗어가고, 
송사는 덮어놓고 돔난 주면 이겨주고, 
감영에서 환상 한섬 말 가웃씩 작전 오면, 
골레서는 매석당에 칠팔 두씩 풀어 받고, 
세곡 한 섬 열 냥허면 관수 값은 열두석 냥, 
돈이라고 생긴 것은 어린애 고름에 채인 것도 씨없이 끌러가니, 
이후에 낳은 아이들은 돈 얼굴도 모를 게요. 
미전, 포목전, 비단전까지도 모두 다 고무래질로 긁어들이고, 
심지어 내일 생일 잔치에도 남원 사십팔방 가가호호에 
백미 서되, 돈 칠 푼, 계란 세 개씩을 갈퀴질허였으니, 
거룩하고 무던한 데다, 
또한 열녀 춘향을 농창허려다, 
제게 수청 안 듣는다 내일 잔치 후 때려 죽인다오." 
또 한 농부 썩 나서며, "춘향을 만일에 죽이기만 죽여 보아라. 짚둥우리 하나면 호강허리라." 
* 탐관오리의 전형을 보여주네. 
* 짚둥우리 - 주석에는 '탐학한 고을 원을 백성이 지경 밖으로 몰아 낼 때 태우는 짚으로 만든 둥우리'라고 씌여있다. 이런 풍습이 있었나? 

6-3. 
214.[진양조] .... "집 형상을 살펴보니, 
옛 모양이 전혀 없네. 
안채는 다 쓸리어 앞벽에는 외만 남고, 
행랑채는 허물어지고, 
중문간은 흐너지고, 
화초밭은 자보 나고, 
연못은 메워지고, 
부용당은 기울어졌네. 
문 우에 부벽서는 '춘도문전증부귀'라 내 글귀로 붙였더니, 
풍마우습 다 떨어지고 봄 춘 자만 남었구나. 
저 춘 자는 있다마는, 
주인 춘 자는 없네그려. 
대문 안을 들어서서 
춘향 방을 바라보니, 
상산사호 붙은 그림 
네 노인은 어데가고 
바둑판만 희미헌디, 
창전의 옛 절개는 
녹죽 창송뿐이로다." 
* 춘향의 마음이 '춘'만 남았구나. 

216. [아니리] "어, 내가 어사헌 것은 우리 선영 덕인 줄만 알었더니, 여기 와서 보니 부처님 덕이 반절이요, 우리 장모의 덕이 반절이로구나." 
* 절에서 이몽룡이 장원급제하라고 축수하는 것을 보고, 또한 장모가 지극정성으로 비는 모습을 보고 ... 

217. [중중모리] 춘향 모친이 나온다. 
춘향 어머니 나온다. 
춘향 자친이 나온다. 
춘향 자당님이 나온다. 
춘향 대부인이 나와. 
싸나운 늙은이 나온다. 
춘향 껍더기 나온다. 
어사또 장모가 나온다. 
백수 민머리 파뿌리 된 머리 가달가달이 집어얹고, 
구부러진 허리 손 뒤로 얹고, 
모양이 없이 나온다. 
* 춘향모 월매 나오는 모양을 이리 바꿔 부르니 재미지다. 

219. [중중모리] ...... "장모라니 뉘기여? 
남원 읍내 오입쟁이놈들 
아니꼽고 드럽더라. 
내 딸 어린 춘향이가 외인 상대를 아니허고, 
양반 서방을 허였다고 공연히 미워허여, 
명재경각이 되었으니 너희 마음들이 시원허여, 
수인사 한 마디는 아니허고, 
내 문전으로 지내면서 빙글빙글 비웃으며, 
'여보게, 장모!' 
이 가라면 환장헐 줄로? 
장모라면 이 갈린다! 
듣기 싫네. 어서 가소." 
* 춘향 모친은 속이 타는구만. 
오입쟁이놈들은 꼬셔하고, 남일이라고 비웃고... 참 속 마음들이 다 비치네. 

222. [아니리] 어사또 시미치 뚝 떼고 앉어, 우는 춘향모 속만 더 답답허게 뀌미고 앉었것다. 
"장모! 내 얼굴이 많이 말렀제? 
내가 춘향에게 장가올 때에는 얼굴 좋았지. 
얼굴뿐 아니라 형세로 말하드라도 서울서 둘째 가라면 섧게 알던 형세요, 
또 내 아버지가 남원 오셔서도 돈 많이 벌어 가셨건마는, 
그 돈이 나발소리 들은 돈이라 그런지 허망허게 달아나버리데. 
아, 집안이 그렇게 딱 망하고 보니 내 꼴도 이렇게 되데그려. 
헐 수 있나? 아버지께서는 일가댁 사랑에 가 학장질 허시고, 
어머니는 외가로 가시고, 
나는 친구 사랑으로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진양조] "풍편에 듣자허니, 춘향ㅇ 본관 수청을 들어 아주 잘 되었다기으, 
돈 백이나 얻어 쓰랴고 불원천리 내려오다, 
......." 
*내가 돈 이야기에 왜 이리 민감한지 모르것다. 지금 우리나라는 돈이 계급을 짓는다는 것을 알아버려서 그런가. 
우리의 옛 이야기 속에는 잘난놈은 입성도 좋고, 
잘 입은 놈 치고 못난놈 없고, 
못난 놈 치고 잘 입는 놈 없다더라. 
돈이, 입은 게, 눈에 보이는 게 사람의 격이되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 

* 이몽룡 장모 속이려고 꾀제제하게 나타나서 춘향집에서 빌어처먹을려고 한다. 장모야 사정을 모르니 속이 탈 일이나, 이 대목을 소리로 듣는 이들은 웃는다고 한다. 춘향전을 아는 이들, 춘향가를 들어본 이들은 이 대목을 웃으면서 듣고, 모르는 이들은 장모처럼 애가 탄다는 말을 들었다. 놀려먹고 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그게 문화이고 정서인가 보다. 남들이 웃을 때 같이 웃을 수 있는 것, 울 때 같이 울 수 있는 것. ...... 

미국의 독립선언서 이야기를 할 때의 심각함이나 노래를 부를 때의 자부심이나 그런건 나는 모른다. 미국영화를 볼 때 그러했다.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이 춘향가 소리와 함께 아름다운 영상으로 그 이야기가 이어질 때, 나는 소리와 영상을 재미나게 보는데, 외국인들은 아닐 것이다. 내게 미국의 성조기가 올라갈 때 부르는 그 노래가 내 노래가 아니듯이, 외국인에게 춘향가의 구절구절은 노래가 아닐 것이다. 

230. [아니리] 어사또 들어서며, "춘향아, 고생이 어떠허냐? 
이것이 네 죄가 아니라, 모두가 내의 불찰이다." 
"서방님, 문틈으로 손을 넣어 나를 좀 붙잡아 주시오." 
어사또 급헌 마음 문틈으로 손을 넣어 춘향 손을 잡으러 하나, 
서로 손이 닿지 않어 잡을 수가 없는지라. 
"장모, 여기 엎디소. 자네 밟고 서서 춘향 손 좀 잡을라네." 
"아이고, 저런 잡것. 속담에 미운 것이 우쭐거려가며 똥 싼다더니, 영낙없네그려." 
춘향이 겨우 운신허여 간신히 손을 잡고, 발발발발 떨여 서방님을 바라보는디, 두 눈에 눈물이 듣거니 맺거니. 
* 이몽룡의 미운짓(장모의 눈밖에 났으니 모든 일이 밉다......)을 왜 이리 삽입했는지 모르겠다. 좀 우습게 만들려 했을까? 
* 속담이 재미있어 옮겨본다. 

244. [시창] "영준미주는 천인혈이요, 
만반가효는 만성고라. 
촉루낙시에 민루락이요, 
가성고처에 원성고라." 
* 영준미주 <-- 보통은 '금준미주'로 하는데 김연수가 약간 변화를 주었다. 
* 술동이 가득한 향기로운 술은 천 사람의 피요, 
쟁반 가득 담딘 좋은 안주들은 만백성의 기름 짠 것이라. 
촛농이 떨어질 때 백성의 눈물이 떨어지고, 
노래 소리 높은 곳에 백성의 원망 소리 높아라. 

247-250. 뜰 아래 내려서며 좌우를 살펴보니, 
청파 역졸 수십 명이 장사꾼으로 채림새를 허고, 
패랭이를 숙여 쓰고, 
구경꾼 한 테 섞여 드문 듬성 늘어서 
어사또를 바라볼 제, 
그 때여 어사또님은 삼문 밖으로 나가면서, 
눈 한 번 끔쩍, 부채질 까딱, 
발 한 번 구르니, 
청파 역졸이 눈치를 채고 순식간에 변장을 허는디, 
청상적을 입고, 홍견대를 띠고, 패랭이를 벗고 홍전립을 쓰고, 
사면에서 우루루루루루루루루. 
삼문을 후닥딱! 
"암행어사 출도야! 출도하옵신다! 출도야!" 
두세 번 외는 소리 하날이 답싹 무너지고, 땅이 툭 꺼지는 듯. 
배일벽력 진동하고, 여름날이 불이 붙어 가삼이 다 타는구나! 
각읍 수령이 넋을 잃고, 
탕건 바람 버선발로 대숲으로 달아나며, 
"통인아! 공사궤 급창아, 탕건 줏어라!" 
대도 집어 내던지고, 병부 입으로 물고 헐근실근 달아날 제, 
운봉 영장 뚱이 잃고 수박 들고 달아나고, 
담양 부사 갓을 잃고 방석 쓰고 달아나고, 
순창 군수는 탕건 잃고 화관쓰고 달어날 제, 
임실 현감은 창의 잃고 몽도리 입고 달아나고, 
순천부사는 겁도 나고 술도 취하여, 
다락으로 도망쳐 올라가 갓모자에다 오줌을 누니, 
밑에 있던 하인들이 오좀벼락을 맞으면서, 
"어푸! 어푸!" 겁결에 허는 말이, 
"요사이는 하느님이 비를 끓여서 내리나부다!" 
본관은 넋을 잃고 골방으로 들어가다가 쥐구명에다가 상투를 박고, 
"갓 내어라, 신고 가자. 신발 내라. 쓰고 가자. 
말 내어라. 입고가자. 창의 잡아라. 타고 가자. 
문들어온다. 바람 닫혀라. 요강 매렵다. 오줌 들여라. 
물 마르니 목 좀 다오!" 
다시 벌떡 일어나, 통인의 목을 부여잡고 벌벌벌벌 떨며, 
"통인아, 날 살려라! 역졸이 날 찾거든 모른다고 허여라!" 
역졸이 장난할 제, 
"이방!" 후닥딱!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공방!" 후닥딱! 공방이 맞어 꺼꾸러지며, "아이고, 아이고, 아니고! 내가 삼대독신이요, 살려주오! 야, 이 몹쓸 아전들아! 좋은 구실은 너희가 허고, 
천하 무지한 공방 시켜 이 형벌이 웬 일이냐?" 
공형, 아전 갓 철대가 부러지고, 
직령 동의 떠나갈 제, 
발목 삐고 발 상헌 채 전동전동 달아나고, 
불쌍하다 관로 사령 눈 빠지고, 
박 터지고, 코 떨어지고, 귀 떨어지고, 
덜미 치어 엎더진 놈, 상투 쥐고 달아나며, "난리났다!" 
수령 모인 잔치 좌중을 망치로 바수는디, 금병 수병 산수병과 수십 자 교자상과 양치대야, 토기, 쟁반, 접시, 대합, 술병 
후다딱 지끈, 왱그런 쨍그러어 깨어지고, 
거문고, 가야금, 양금, 해금, 샹황, 단소, 피리, 젓대, 북, 장고 산산히 깨어질 적, 춤 추던 기생들은 팔 벌린 채 달아나고, 
관비는 밥상 잃고 물통 이고 들어오며, 
"사또님, 세수 잡수시오!" 
공방은 넋을 잃고, 멍석을 말아 옆에 끼고 명석인 줄을 모르고, 
"아이고 이놈의 자리가 어찌 이리 무거우냐?" 
사령은 나발 잃고,주먹쥐고, 
"흥앵 흥앵 흥앵." 
운봉을 넋을 잃고 말을 거꾸로 집어타고, 
"엇다, 급창아! 이 말 좀 보아라! 
이 말이 운봉으로는 아니 가고, 
남원 어사또 계신 데로만 뿌드등뿌드등 가니, 암행 사또가 축천축지법도 허나부다!" 
급창이 넋을 잃고 들숨 날숨 꼼짝 달싹을 못허고, 
"이이고, 사또님. 아이고 사또님. 말을 거꾸로 탔사오니, 속히 내려 옳게 타십시오!" 
"어따, 이눔아! 이 난리 통에 언제 말을 옳게 탄단 말이냐? 
말 모가지를 선뜻 빼어 멍구똥에다 둘러박어라! 둘러박어라!" 
풍진이 일어나서 장판교가 되었을 제, 
짖던 개도 목이 쉬고, 날든 새도 아니 날며, 
산천초목도 덜덜 떨니 무섭고도 두려워라. 
* 재미나다 싶으면 지나치다 싶게 과장해서 들려준다. 일부러 과장해서 만든 이게 재미있다. 

8-1. 
252. 갈매기는 어디 가고 물 드는 줄을 모르며, 
사공은 어디가고 배 떠난 줄을 몰라 있고, 
우리 서방님은 어데 가시고 나 죽는 줄을 모르신가? 
* 이런 식으로 서로 댓구를 이루는 것이 자주 눈에 띈다. 이 시절에는 이렇게 말을 하나? 자연의 이치를 보면 사람 사는 게 보이나 보다. 지금 우리가 쓰는 말은 급하고 직접적인 말들이다. 이 시절에는 이렇게 말하고 살았는지, ... 궁금하다. 

252. "내 한몸 죽어지면, 불쌍허신 우리 모친은 뉘게다가 의탁을 허며, 
다정하신 우리 낭군 옛 언야글 아니 잊고 나를 찾어 오셨다가, 
회향하여 올라가며 날 생각고 우는 설움, 그 설움이 오직허리." 
* 춘향은 제 걱정보다 어머니, 낭군 걱정이 먼저다. 낭군의 설움은 낭군의 설움이 아니라 춘향의 설움인 듯. 
* 물드느는 지 모르는 갈매기 탓하는 것이, 춘향 죽는지 모르는 낭군 탓하는 것일 듯 하다. 

262-263. 본관 사또 아니시면 춘향 절행을 어찌 알리? 
얼씨구나, 절씨구. 얼씨구나, 절씨구. 
선풍도골 저 모양이 어제 저녁에 걸인 되야 날 속이기가 웬 일? 
오늘 아침 진시 말으 패랭이를 제쳐 쓰고 
발감개, 발맵수으 내 문전을 끼웃끼웃, 
나를 보고 돌아가며 손가락질 허든 것이 이제 생각으 역졸일세. 
얼씨구나, 졸씨구. 얼씨구나, 장관이요. 
얼씨구, 절씨구. 
궁둥이춤이 절로 나니 장관이요. 
어제 저녁에 죽을 춘향 살어나니 장관. 
어제 저녁에 걸인 사위 어사 되기도 장관이요, 남원 읍내 월매 씨가 어사 장모 장관. 
남원부종의 과부등이 등장함도 장관이요, 
전장관, 후장관, 만고 없는 장관이로다. 
얼씨구나, 좋을시고. 
어사 사우를 둔 사람이 이런 경사에 춤 못 줄까? 
막걸리 잔이나 먹었더니마는 엉둥이춤이 절로 나고, 
주먹춤도 절로 난다. 
얼씨구나, 좋을시고. 
이 궁둥이를 두었다 논을 살까? 밭을 살까? 
흔들 대로만 흔들어보자! 
늙은 손길을 펼쳐 들고 허정거리고 논다. 
얼씨고 절씨고 칠씨고 팔씨고, 얼씨구나, 좋을시고! 

8-2. 263.[아니리] 
그 때여 어사또님은 사인교를 불러 춘향을 태워 제 집으로 보내니, 춘향모 춘향이 나오는 것을 보더니 더욱 더 흥을 내어, 

268. [아니리] 또한 행중기록 중에 춘향의 전후 내력 낱낱이 보신 다음 크게 칭찬허옵시되, "예로부터 충효열은 일반이라 일러온 바, 이런 인재 얻게 됨은 국가에 다행이요, 그런 열녀 만난 것은 대사헌의 복이로다." 
* 현대의 춘향전인 '방자전'에서는 방자의 일대기를 춘향의 미담으로 만들었는데, 그 결말이 춘향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것으로 나온다. 여기에 '대사헌'이라는 것도 그런 것 중에 하나일까 생각해본다. 벼슬이 높아지는 것도 그 당시에 남자들이 원하는 것 아닌가. 

268. [엇중모리] 별반 통촉 허옵시사, 
춘향에게 교지를 내려 정렬부인 봉허시니, 
대사헌이 좋아라고 즉시 대연을 배설허고, 
왼 종족을 다 모시어 남원집 사연을 아뢴 후으 부인으로 승좌허고, 보국까지 허시면서, 
팔남이녀 거느리고 해로백년어올 적으, 
정렬부인 영귀함이 일세에 진동허더니라. 
그 뒤야 뉘 알리오? 
언재무궁이나, 고수 팔도 아플 것이요, 김연수 목도 아플 지경이니, 어질더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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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10 07:05:03 *.153.23.18

판소리 사설은 소리내어 읽으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저도 한 번 읽어보고 싶어요. 정화님

정화님의 춘향이를 발견하는 길이 '춘향이가 없다'는 데서 이미 출발한 듯도 합니다만

판소리 사설에서 필사한 것보다 더 소중한 읽기로 생각해요.

잘 읽었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2013.09.10 22:44:20 *.131.205.52

소리내어 읽으면 정말 재미 있습니다. 아이들과 한대목 입에 짝짝 붙는 데를 골라읽으셔도 좋을 듯 합니다. 

흥보가나 수궁가에서....내용이 재미난 부분을요.

읽으면서 자신을 찾고 자신이 속한 사회를 들여다보는 거죠. 그게 두렵고 싫어서 읽고 싶지 않을 때도 있을때가 있지만 읽는 한은 계속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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