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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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9월 말, 스티브 잡스는 애플 내에서 엄선한 인재들을 따로 모아 애플 본사가 있는 캘리포니아 큐퍼티노에서 남쪽으로 100 마일 쯤 떨어진 파야로 던스에서 합숙을 했다. 27세의 스티브 잡스는 화이트 보드에 이렇게 썼다. 유난히 그는 화이트 보드를 좋아했다.
'해적이 되자. 일주일에 90시간, 진탕 일해보자'
합숙기간동안 매킨토시 개발팀은 해적이 되고 그는 해적 두목이 되었다. 건물에는 해적기를 내걸었고, 멤버들은 '일주일에 90시간, 진탕 일하자'라고 쓴 T 셔츠를 입었다. 그리고 상식을 뛰어 넘는 속도와 몰입으로 해적선은 치달렸다. 종종 해적선은 표류하기도 했다. 전력을 다했지만 매킨토시는 이듬해 5 월 출시되지 못했다. 더 이상 밀릴 수 없는 데드라인이 다가왔다. 1984년 1월 미국 최대의 스포츠 이벤트인 수퍼볼 광고 시간에 바로 그 유명한 '1984년' 의 광고가 나갔다. 광고는 소설가 조지 오웰의 '1984'년을 모티브로 했다. 1분 동안의 CF는 폭발적이었다. 소설 속의 독재자 빅브러더가 연설을 하자 청중은 무기력하게 듣기만 할 뿐이다. 그때 매력적인 금발 여성이 뛰어들고 그 뒤를 그녀를 잡으려는 권력의 앞잡이들이 추격한다. 거대한 스크린에 비친 금발의 여인은 빅브라더에게 커다란 쇠망치를 던진다. 그 순간 스크린이 폭발하듯 거대한 섬광이 품어져 나온다,. 그리고 "애플은 1월에 매킨토시'를 출시합니다" 라는 자막이 내레이션과 함께 흐른다. 빅브라더는 대형 컴퓨터로 세계를 제패하고 이제 개인용 컴퓨터로 진출하려는 IBM을 상징한 것이었다. 여기에 애플이 도전한 것이다. 사람들이 이 광고에 열광했고 100일 동안 7만대의 매킨토시가 팔려 나갔다. 시작은 아주 훌륭했다.
스티브 잡스를 잘 모르고 그의 무용담에 흠뻑 빠진 사람들은 그를 매력적인 비즈니스계의 영웅으로 착각한다. 그러나 그를 가까이서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를 악마라고 부른다. 오만하고 제멋대로이고, 사람을 쉽게 버리고, 모욕을 주고, 공을 가로채고, 뻔뻔하고, 변덕이 죽끓듯하는, 함께하기 어려운 사람이라고 말한다. 애플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다케우치 가즈마사라는 컨설턴트가 쓴 '스티브 잡스의 신의 교섭력' 이라는 책 속에는 스티브 잡스가 함께 일한 동료 스티브 워즈니악의 몫을 가로채는 장면부터 '토이 스토리'의 탄생과 성공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존 래스터의 공을 통째로 삼키는 장면, 자신을 애플로 다시 불러들인 길 아멜리오를 제거하는 장면, 함께 일한 직원들에게 스톡옵션을 나누어 주는 대신 일부의 직원들하고만 나누어 챙기는 장면, 직원들로 부터 수시로 아이디어를 훔쳐 자신의 아이디어로 둔갑시킨 사례들이 비일비재하게 소개되어있다. 이것이 모두 사실이라면 매우 혐오스럽고 지켜야할 인격이라는 것이 없는 집념 덩어리의 한 사내를 보게 된다. 함께 일하다 그에게 배신당하고 버려진 사람들은 '두 번 다시 그와 일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재능이 뛰어나고 충성심이 있는 사람들로, 그가 인정하고 받아들여 그의 세계로 발을 들여 놓은 사람들은 '스티브 잡스가 아니면 함께 일하고 싶지 않다'라고 말한다. 그는 함께 일하기 고통스러운 인물임에는 분명하지만 세상을 바꿀만한 걸작을 만들고 싶은 야망을 가진 사람들은 그와 일하는 것을 선택했다. 분명한 것은 그가 악마와 같이 사람의 영혼을 사로 잡을 줄 안다는 것이다. 그는 될 만한 일이라고 믿으면 최고의 인물들을 찾아 투입하고, 실적이 저조한 다른 부서의 예산을 빼앗아 끌어 대 그 일을 이루게 해준다. 그리고 모든 사람의 열정으로 이루어진 그 일의 영광과 대가는 모두 홀로 차지한다. 그의 주위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을 뿐이다. 그에게 열광하는 사람, 그리고 그에게 치를 떠는 사람.
그는 인간의 상식을 믿지 않는 사람이며, 인간이기를 넘어서려는 악마류의 인물에 가까울 것이다. 파우스트처럼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성공과 명예를 위해 영혼을 판 인물일 것이다. 그러나 그의 뛰어난 점은 뛰어난 사람을 발굴해서 뛰어난 일에 미치게 할 줄 안다는 점이다. 교묘한 악마와 같이 그는 사람이 무엇에 열광하고 무엇에 걸려들어 빠져 나오지 못하는지 잘 알고 있다. 그는 '세상을 바꾸는 작품이라는 환상을 심어주고 그 일이 여기서 최고의 인물들과 함께 이루어 질 것이라는 야망'을 끊임없이 건드리고 자극한다. 그의 방법은 문제가 있지만 그 결과는 찬란했다. 자신이 세운 회사에서 쫒겨나 다시 그 회사로 들어가 그 회사를 살린다는 전환은 소설처럼 극적이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영화나 드라마처럼 만들어 냈다. 그리고 2005년 스탠포드 대학의 연설문처럼 감동적인 스토리로 극화했다.
우리는 이 괴팍한 인물로부터 핵심적인 한 가지 사실을 배울 필요가 있다. 리더는 직원들이 중요한 일에 미친 듯 열정을 바칠 수 있도록 만들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조직을 책임과 의무로 가득 채우는 경영자는 삼류다. 그들은 지시하고 통제하는 법 외에는 사람을 다루는 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관리자들을 풀어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것을 목표로 삼게 될 때, 그 조직은 열정과 창의성을 잃게 된다. 이것이 시시한 조직으로 가는 지름길이지만 여전히 수많은 조직들이 합리성과 규칙을 앞세워 중요한 일을 재미없게 해나가고 있다. 재미는 일을 놀이로 변용시켜준다. 그리고 놀이는 몰입의 가장 전형적인 조건이다. 몰입의 순간, 우리는 우리의 모든 것을 쓰게된다. 재미 없는 일터에서는 매일 하루가 어제처럼 돌아가긴하겠지만 최고의 것은 나오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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