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경(旦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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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리 홀트 Molly Holt
입양’ 하면 떠오르는 이름 ‘홀트’. 말리는 홀트 가(家)의 여섯 자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16살에 거듭남을 체험하고 하나님을 위해 일할 기회를 사모하던 중 한국 전쟁 고아를 돌보던 아버지의 부름을 받았다. 56년, 20살의 나이로 한국 땅을 밟은 이후 76세가 된 지금까지 평생 독신으로 부모님을 이어 한국의 고아들을 돌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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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y Children Deserves a Home of His Own
말리의 아버지 해리 홀트
‘세계는 신이 자신에게 완전히 헌신한 한 사람을 통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게 될 것이다’.
한 때 구두판매원이었지만 신에게 자신을 온전히 드린 후 미국의 유명한 부흥사로 거듭났던 드와잇 엘 무디의 말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날이 어둑해질 무렵 사회복지사 이창신씨의 안내로 홀트 기념관을 둘러보았다. 은은한 조명이 해리 홀트라는 한 인간의 족적을 말 없이 비춰주고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평범한 한 인간이 어떻게 스스로를 위대하게 세워 갔는지를 감동으로 지켜보았다. 어느 순간, 내 발걸음이 기념관 한 코너에 멈춰졌다. 그곳에는 커다란 성경이 펼쳐져 있었다.
‘두려워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니 (전략) 내 아들들을 원방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끝에서 오게 하라(중략)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들을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
그곳에는 이사야서 43장의 말씀이 있었다.
이 말씀은 55년 말리의 아버지 해리가 한국 혼혈 고아 8명을 입양하기로 결정하고 태평양을 건너 한국으로 가는 길에 만난 말씀이다. 동경의 한 호텔에서 두려움에 떨며 확신을 구하던 그에게 하나님은 그 말씀을 주셨다.
말리를 이야기하려면 그녀의 부모님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녀가 지금까지 그 많은 입양아와 장애인의 어머니로 존재한 것은 그의 부모가 다리가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입양 사업은 선명회(world vision) 창시자인 밥 피어스 목사님께서 보여주신 한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비롯되었어요.”
1954년 12월 14일 말리 가족은 근처 고등학교에서 열리는 피어스 목사의 강연을 들으러 갔다가 한국 동란으로 인한 전쟁 고아들의 참상을 알게 되었다. 피어스 목사는 사람들에게 구호금과 자원봉사를 요청했다.
“아무도 자원봉사를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없었지요. 우리 부모님 역시 몇 명의 아동을 후원하는 결정만 내렸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마음이 편하지 않았던 거예요. 당시 심장마비로 죽을 고비를 넘긴 아버지는 남은 생을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며 살겠다고 다짐하셨지요.”
“아버지는 결국 한국 고아 8명을 입양하기로 결정하고 한국을 향해 떠난 거죠. 그러나 아직 아버지의 마음 속에는 두려움이 있었던 거예요. 저명한 소아과 의사도 아니고, 부유한 자선사업가도 아니고, 현명한 법률가나 목사도 아니고, 더군다나 심장 수술 자국을 지닌, 쇠약하고 나이든 50세 농부가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수행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던 겁니다.’
그 말씀을 받던 날 밤 해리는 완전히 다른 존재로 거듭났다. 그 이후 숨을 거두기까지 9년 동안 그가 이룬 공적은 위의 무디의 말을 온전히 증명하게 된다. 올해 홀트 아동복지회는 50주년을 맞았다. 그 동안 홀트아동복지회가 이룬 놀라운 업적은 ‘모든 아이들은 가정을 가질 권리가 있다’고 믿은 한 인간이 자신의 삶을 온전히 밀알로 드린 헌신의 결과다. 미국의 작가 펄벅은 해리 홀트를 이 세상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아버지는 숨을 거두는 날에도 아기 두 명을 안고와 담요를 끌어당겨 덮어주고는 지칠대로 지친 몸으로 최후를 맞이했지요.”
험난하고 의로운 사업을 시작하여 한국의 홀트아동복지회와 미국의 국제홀트아동복지회의 모든 토대를 마련한 해리는 아무런 영예도 못누리고 너무 빨리 하늘의 부름을 받았다. 그러나 그에게 진정한 영예는 지금까지 새로운 가정을 찾아간 9 만명 어린이들의 마음에 간직된 사랑이리라.
말리의 집
말리가 거주하는 빨간 양옥 집 문패에는 <Molly’s Home>이라고 적혀있다. 50년 전에 아버지가 지은 집 그대로다. 집 뒤쪽으로는 59계단 언덕이 있고, 그 언덕을 오르면 아버지 해리와 어머니 버다가 나란히 누워있는 무덤이 있다.
말리의 집 1층에는 말리와 3 명의 장애인이 살고 있고, 2층은 게스트 하우스로 입양간 아이 중에 성장해서 자원 봉사를 오거나 이곳을 방문하는 외국인들 숙소로 사용된다. 말리의 공간은 참으로 소박하다. 물건들은 낡았어도 여전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거실 중앙에 한국 고가구가 하나 있고, 그 왼편으로는 50년 전 모습 그대로 벽난로가 있다. 거실 천정에는 세계 각지에서 보내온 크리스마스 카드들이 빨래 줄처럼 긴 줄에 걸려 있다. 어느새 사라진, 그리운 풍경 중의 하나가 아직 이곳에는 있다. 카드에 가장 많이 적힌 입양아들의 기도는 ‘말리가 오래 살게 해주세요’하는 것이다. 며칠 날을 잡아 카드에 일일이 답장을 써주는 것이 말리의 중요한 연말 행사 중의 하나다. 거실 오른 편에는 주방과 식탁을 잇는 해치가 있다. 우리가 이야기를 하기 위해 마주 앉은 식탁은 50년 전 미국에서 아버지 해리가 직접 가져온 것이다. 홀트의 역사와 함께 해온 둥근 탁자에 둘러 앉아 말리에게서 그녀의 한국 인생 반 세기를 듣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특별한 감동을 준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우리를 에스코트하려고 온, 제법 나이가 있어보이는 이창신씨가 말했다.
“이 테이블에서 저도 성경공부를 하면서 컸습니다.”
그러고 보니 테이블에 둘러 앉은 조병욱 원장님이나, 말리, 이창신씨 모두 홀트와 젊음을 함께 한사람들이다. 조원장은 홀트아동복지회 부속병원에서 평생 일하고, 은퇴한 지금도 여전히 이곳의 장애인들을 돌보고 있다. 그런 그녀의 행적은 <할머니 의사 청진기를 놓다>란 책에 잘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이창신 씨는 홀트의 신앙적 지주이자 오래도록 홀트 이사장을 지낸 이필성 목사의 아들이다. 아버지 무릎에서부터 홀트의 모든 것을 보고 자랐고, 그 영향으로 지금껏 홀트에서 일하고 있다. 이 집과, 같이 자리한 사람들을 보며 ‘한결같음’이란 단어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말리의 집 1층에서 지낼 수 있는 행운은 어떤 이들에게 주어지나요?’
“말썽을 많이 펴서 일시적으로 교정이나 훈련이 필요한 장애아들이지요. 잘해서 오는 게 아니라, 잘 못하면 오는 거지요(모두 웃음). 누구도 돌보기 힘든 중증 장애를 가졌거나, 입양을 곧 가게 될 아이들도 옵니다.”
말리는 마술사로 통한다. 말리에게 오면 누구나 달라진다. 그녀는 단호하다. 그녀의 사랑은 단호함과 부드러움, 두 얼굴을 가졌다 ‘
나와 말리의 인연
홀트일산복지타운의 장애인들로 구성된 합창단 <영혼의소리로>는 2009년 오스트리아 린츠에서 열린 안톤브루크너 국제합창대회에 참가하여 두 개의 특별상을 받았다. 당시 나는 운 좋게도 그 여행을 기획하고 안내했다. 그 인연으로 합창단과 동행한 말리를 처음으로 만났다. 여행하는 10일 동안 그녀를 가까이서 경험할 기회를 가졌다.
처음 그녀를 보았을 때는 ‘외모가 다른 저 분이 왜 저 아이들 속에 있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우리가 우리 몫을 하고 있다면 그녀는 이곳에 있지 않아도 될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곧 알게 되었다. 그녀는 서양인 이전에 사랑이 많은 한 인간이란 것을. 이미 뼛속까지 한국인인 그녀를 통해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톡톡히 깼다. 말리는 그때나 지금이나 사랑에 대해 명쾌하다.
“어른은 아이를 돌봐야 하고 힘있는 사람은 힘없는 사람을 돌봐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건강한 사람은 건강하지 못한 사람을 돌봐야하지요."
불쌍하다고 돕는 것이 자립을 막는다
말리의 눈에는 신의 긍휼이 가득하다. 그런 그녀도 예민하게 화를 내며 흥분할 때가 있다. 사람들이 장애인에 대해 잘못된 태도를 보일 때다. 혜영씨(37세) 같은 경우 뇌병변 1급 장애인이다. 몸의 뒤틀린 정도가 심하고 말을 해도 알아들을 수 없을 만큼 중증 뇌성마비를 앓고 있다. 그러나 혜영씨는 직접 자신이 식사를 하고 옷을 입는다. 말리는 기능적이고 낮은 식탁을 특수 제작해서 그녀 스스로 밥을 먹을 수 있도록 훈련시켰다. 그런 일상생활 훈련은 홀트 타운에 기거하는 장애인이라면 누구나 받아야 한다.
“불쌍하다고 애기처럼 다 해주는 게 돕는 게 아니죠. 그게 자립을 막는 거예요. 그들도 할 수 있습니다. 잘할 때까지 믿고 기다려야 해요. 답답해도 참아야지요."
이런 말리의 믿음은 부모에게서 배운 것이다. 그녀의 오빠 스튜어드는 어릴 적 머리를 다쳐서 지적 장애를 앓았다. 그러나 그는 여느 자식들처럼 제재소에서 아버지를 도왔고 나무를 심고 빵 굽는 일을 배웠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하도록 부모님은 언제나 그를 가르쳤고 잘 할 때까지 기다리셨다.
“그렇지만 잘하면 확실히 칭찬해줍니다. 부모님 칭찬에 우리 오빠도 계산하는 것에 탁월함을 보였습니다.”
그 때 한 친구가 말리의 집에 왔다. 오늘 이마트에 다녀왔다고 했다.
“월요일은 숙소별로 돌아가면서 이마트에 가는 날입니다. 돈을 나눠주고, 자신이 사고 싶은 물건을 직접 고르도록 훈련합니다. 식당에서 밥을 먹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돈을 흘리고 잃어버리는 일도 생깁니다. 그렇다고 그게 훈련을 그만두어야할 이유는 되지 못합니다. 오늘 영희씨가 맘에 드는 털신을 샀는데, 와서 신어보니 불편해서 바꾸려고 합니다.”
말리는 어떤 사람?
말리 옆에 앉은 조원장님께 물어보았다.
“성경대로 사는 분이죠. 고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세포 하나 하나까지 깊이 스민 분입니다. 나를 오늘 여기까지 오게 한 건 말리의 아버지 해리예요. 그 분이나 고아들의 어머니로 살다 가신 말리의 어머니 버다, 그리고 여기 부모의 삶을 그대로 이어가는 말리, 이들은 모두 성경의 모델들 같아요. 고아들에게도 자신들이 가졌던 것처럼 따뜻한 가정을 주려고 일생을 헌신한 사람들입니다.”
아무리 좋은 시설이라도 일반 가정이 아니라 시설에서 자란 아이들은 정신 발달 지체를 경험한다고 한다.
“이곳에 오는 아이들에게 모두 가정을 연결해주면 좋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지요. 특히 장애를 가진 아이들은 입양 기회가 훨씬 적습니다. 이곳에는 입양되지 못한 장애인들 300명이 살고 있어요. 이곳이 시설이긴 하지만, 그래도 최대한 가정의 구조를 갖추게 하려고 애를 씁니다. 처음부터 소규모 단위로 숙소를 지었고 숙소 내에 주방을 마련하여 자체 숙식이 가능하도록 했습니다. 100여명의 생활재활교사들이 그들과 함께 생활합니다. 치료와 재활뿐 아니라 정서적으로 돌보는 일을 감당하고 있지요.”
“말리, 살면서 하나님을 원망해본 적은 없나요”
“힘든 적은 많았지만 원망한 적은 없습니다. 정말 힘들 땐 원망하지 않고 그냥 웁니다. (이때 옆에 앉은 조원장님이 한 마디 거드신다. ‘말리는 정말 눈물이 많습니다’라고.) 한 차례 울고 나면 감사한 마음이 속 안에 다시 차오릅니다.”
그녀의 그런 신앙은 어머니를 꼭 닮았다. 언니 완다가 멕시코에서 선교하다 어처구니 없는 사고로 26살 꽃 같은 나이로 죽었을 때나, 아버지 해리가 한국에서 고아들을 돌보다 혼자 죽었을 때도 어머니는 단 한 마디의 원망도 없이 참으로 의연했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말리는 50년 동안의 일들을 줄줄이 풀어놓았다. 그녀의 기억력은 놀라웠다. 내가 내 자식의 일들을 기억하는 것보다 더 명료하게 그녀는 자신을 거쳐간 아이들의 이름과 일들을 세세히 기억하고 있었다. 말리의 나이 지금 일흔 여섯, 아직은 건강하지만 그녀도 언젠가는 하늘의 부름을 받을 것이다. 그녀 없는 이곳을 생각하는 건 쉽지 않다
“이곳 300명의 대모인 말리가 안 계시면 이후 이곳 일은 어떻게 될까요?”
“1948년, 2천년 만에 이스라엘 민족들이 자신들의 땅을 되찾았습니다. 구약에서 말한대로 이루어진 거죠. 하나님의 시계는 이 시간에도 돌아가고 있어요. 그분의 일은 그 분의 시간에 이루어집니다. 우리 생각으로는 그분의 뜻을 알 길이 없어요. 우리 아버지가 이 일을 시작할 때 사업에 성공해서 재산이 좀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새 돈을 다 쓰게 되었지요. 이제 어떻게 할 거냐고 사람들이 걱정할 때 아버지는 ‘주님의 일은 주님이 하신다’고 대답했습니다. 저도 같은 대답을 해드리고 싶네요. 우리는 못하지만 주님은 하십니다.’’
어머니는 언제나 내 삶의 모델
2000년에 이사장이 되고부터는 대외적인 일이 많아졌다. 그러나 그녀가 거르지 않는 일과가 있다.
“아침 두 시간, 일어나자마자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일기를 쓴 다음 산책을 다녀옵니다. 운동기구까지 산에 설치되어 있어서 좋아요. 운동하고 오면 샤워하고 아침밥을 먹습니다.”
그녀는 말하다 말고 방으로 들어가더니 일기장을 몇 권 들고 나왔다. 일기장을 여니, 하루 한 페이지씩 정갈한 영어로 빼곡하게 쓴 일기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지난 4년 주변 사람들에게 아침일기(모닝페이지)를 열심히 권해온 나로서는 동지를 만난 듯 반가웠다. 그녀의 일기쓰는 습관도 어머니에게서 배운 것이다.
"많은 자녀를 기르시고 나중에는 홀트 입양 사업에 매진하느라 누구보다 바쁜 어머니였지만 어머니는 하루도 일기를 거르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의 일기들은 입양 역사의 다큐멘터리나 다름없어요. 그것들을 기반으로 어머니는 실제로 세 권의 책을 내셨습니다."
말리가 건넨 어머니의 책(어머니의 일기를 바탕으로 출간된 책이다)들을 다음날 하루 종일 읽었다. 말리의 형제 자매들은 모두 자발적으로 아버지 입양 사업의 일원이 되었다. 그들은 마치 아버지의 수족인 냥 일을 분담했다. 헌신이라는 고결한 단어가 함께 하는 이 가족의 동역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팀워크가 아닐까, 그리고 그것은 무엇보다 부모의 훌륭한 양육의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네 자녀를 둔 나로서는 정말이지 부러운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좋은 어머니를 두어 행복한 사람입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어도 내게는 좋은 기억들이 함께 합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 나이에 어머니는 이랬지, 혹은 이렇게 하셨지’ 하면서 어머니를 더 자주 떠올리고, 그것을 내 행동의 지침으로 삼습니다. 그런데 이곳 아이들은 그런 어머니가 없어요. 태어나면서부터 당연히 누려야할 권리를 잃어버린 것이죠. 여린 잇몸에서 이가 나오는 순간이나, 처음 기기 시작했을 때, 걷기 시작했을 때, 첫 돌이 되었을 때 함께 기쁨을 나눌 가족이 없고, 혼자 젓가락질을 할 수 있는 순간에도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리며 잘했다고 안아줄 엄마가 없는 겁니다. 이런 아이들에게 가정을 찾아주는 것, 그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우리들의 사명입니다."
나는 당신을 위해 여기 있습니다
홀트의 오늘이 있기까지 말리 뿐 아니라 정말로 많은 사람들의 수고와 땀이 있었다. 그들의 사랑 때문에 부모에게 버려진 수많은 아이들이 ‘가정’의 따뜻함을 되찾았다. 우리도 지금 있는 자리에서 우리의 역할을 할 수 있다. 그 길은 먼 것이 아니다. 먼저는 내 앞에 존재하는 구체적인 한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에서 내 아이에게 좋은 부모가 되는 것, 입양되지 못한 아동을 후원하는 것, 나아가 직접 그들의 부모가 되는 것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빅 이슈> 2012년 1월 첫째주에 실린 저의 인터뷰 기사입니다.
이 글은 재능 기부로 쓰여졌습니다.
어제 홀트 장애인 합창단 <영혼의 소리로>정기 연례 연주회에 다녀왔습니다.
그곳에서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관객석에 앉아 있는 말리 여사를 보았습니다.
여러 사람이 부축하며 공연장으로 들어오는 그녀는 건강이 이 글을 썼던 때보다 나빠보였습니다.
그곳에는 린츠대회에 갈 때 큰 돈을 희사했고,
지속적으로 합창단을 후원하는 중외제약 이종호 회장님도 계셨습니다.
장애를 가지고도 즐겁게 노래하는 합창단 단원들이나,
그들을 돌보기 위해 없는 시간을 쪼개 봉사하는 사람들의 모습이나,
연주를 심사위원의 눈이 아니라 영혼의 눈으로 지켜보며 따뜻한 박수를 아낌없이 보내주는 관객들이나,
모든 게 변함없어 보이는 연주회였습니다.
나는 그곳에서 또 한 번 창조적 수분을 유감없이 빨아들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매년 이 연주회 참석하여 영혼으로 부르는 장애인들의 노래를 듣습니다.
그들의 노래를 듣고 있는 동안 나도 모르게 힐링 샤워를 받습니다.
그들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좀 더 잘 살아야겠다는 다짐이 절로 생겨납니다.
어제의 감동이 아직 내 안에 남아있어
이 아침 이전의 인터뷰 기사를 다시 꺼내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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