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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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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13일 11시 20분 등록

심청가

 

1) 사랑은 연민에서 오는 것인가 보다. 자기도 힘든데, 자기 남편 생각하는 곽씨부인, 자기 아버지 생각하는 심청을 보면 연민(측은지심)이 바로 사람을 살리는 힘인 것 같다.


2) 효녀 심청의 이야기가 '효'를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눈을 뜬다는 것, '마음의 눈을 뜬다는 것(깨달음을 얻는다)'을 눈을 뜬다는 것으로 비유적으로 한 이야기라고 하여 궁금하여 봤다. 여러가지 재미난 이야기 속에 뭍혀 있다보니 '깨달음'에 대한 것인지, 효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려고 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심청가란 이름답게 주인공이 심청이인것이 분명허다면, 그녀가 겪은 일을 중심으로 보자면 '깨달음'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겠다. 아버지의 바램때문에 우연한 기회에 집을 나서서는 인당수로 가고 깊은 심연으로 들어갔다가 결국은 모든 사람을 구하는 약을 갖고와서 도와주니 영웅의 이야기가 맞다. 심청의 인생에 지극한 연민의 대상인 심청의 아버지 심학규가 있다.

심청이 세상과 맺은 인연의 모든 시작이자 중심이고 마지막인 될 법한 존재, 그 존재에 대한 깊은 연민이 이야기 곳곳에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없으면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고하는 말을 빌어온다면, 심봉사는 그 세상을 바꾸게 하는 이유인 듯 하다.


3) 평범하고, 평범하고, 평범한 일상 속의 남자 심학규

나는 이 사설을 읽으면서 심봉사에게 화가 났다. 심봉사는 사람이 살다가 자기가 맞딱뜨린 현실 앞에서 힘없이 좌절하고, 일저지르고 뻔뻔하고, 후회하고, 다시 그런 삶을 사는 그런 인간이으로 보인다. '나는 쓰레기야.' 혹은 '우리는 다 보잘껏 없는 그렇고 그런 인간이야.'라고 말하는 그런 전형적인 인물이다. 


그런 심봉사가 눈을 떴다. 평범한 사람이 넘치는 위대한 인물 곁에서 나같은 사람도 위로와 평안을 누리듯이, 심봉사가 눈을 떳다. 

그런 면으로 보면 심청가는 '복음'이다.


1-1

270.[아니리] 송나라 원풍 말년에 황주 도화동 사는 한 소경이 있으되, 성은 심이요, 이름은 학규라.

누대 잠영지족으로 문명이 자자터니, 기운이 영체허여 이십에 안맹허나,

낙수청운에 발자최 끊어지고, 금장장수에 공명이 비었으니,

향곡에 곤헌 신세 강근한 친천 없고, 겸하여 안맹하니 뉘가 대접하랴마는,

양반의 후예로 행신이 청렴허고, 지개가 고상허여 일동일정을 경솔이 아니허니,

사람마다 군자라 칭하것다.

그 안해 관씨부인 또한 현철하여,

임사의 덕과 장강의 고움과 목란의 절행이며,

예기 가례 내칙편과 주남 소남 관저사를 모를 것이 바이없고,

본제사 접빈객과 가장 공경, 치산범절, 백집사가감이나,

이제의 청렴이요, 안연의 가난이라.

* 왜 우리나라 연호를 안쓰고 송나라 연호를 사용하나? 우리나라 연호를 사용하지 못할 때 만들어진 이야기인가 궁금하다. 수궁가에도 조선의 연호가 아니라 원나라 연호를 사용하고 있다.

* 양반이고, 무능력한 남편에, 그 남편을 대신하는 아내라.

목란. 아버지를 대신하여 집안의 병역의무를 했다하는 여자의 절행을 여기에 끌어다가 말하는 것을 보니, 심봉사 아내 곽씨부인 고생이 말이 아니구나. 남의 짐을 대신 진 것인가, 질만한 짐을 나눠진 것인가. 당시에는 ‘군자’면 되었나, 사회에서 바라는 상대로 사는 인간은 참으로 별로 매력없다. 다시 읽으니 욕이 절로난다. 심봉사 이 나쁜 새끼.

278. 갑자 사월 초팔일밤 한 꿈을 얻은지라.

천기 명랑하고, 서기 반공터니,

선인 옥녀 학을 타고 공중으로 내려온다,

몸에는 채단이요, 머리에는 화관이라.

월패를 느짓차고, 옥팻리가 쟁쟁헌대,

계화가지를 손에 들고 부인전 배례허며,

곁에 와 앉는 거동 뚜렷한 잘정신이 품안으로 떨어진 듯,

남해 관음이 해중으 다시 온 듯,

심신이 활용허여 진정키 어렵더니,

선녀의 고운 태고, 호치를 반개허여, 쇄옥성을 맑은소리로 알현히 허는 말이,

“서왕모의 양녀로서 문창성과 정혼허여, 미처 행례 못 하여서,

문창이 천명 받아 천하 창생 건지기로 인간하강 허옵기로,

따라 내려오옵더니,

몽은사 부처님이 댁으로 지시허여 바래고 왔사오니,

어여삐 여기소서.”

품안으로 안겨들어 깜짝 놀래 깨달으니, 남가일몽이 분명쿠나.

 

279. [아니리] 양주 몽사 의논허니 둘이 꿈이 같은지라.

* 괜찮은 인물이 날 때는 꿈으로 먼저 하늘의 사람임을 드러내나 보다. 춘향은 도화가지가 이화가지에 접붙인다는 태몽으로 얻었고, 몽룡은 꿈에 용을 봤다며 얻었고, 심청은 서왕모의 수양딸이다.

* 꿈에는 집단 무의식과 연결되는 뭔가가 있을 것 같다.

꿈이란..... 인간 집단의 정신과 무의식의 거대한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하여 그 자료를 받아다 상영하는 영화같은 것?

 

282. [자진모리] 곽씨부인 설워하며,

“만득으로 낳은 자식 딸이라니 원통하오.”

심봉사 이르는 말이, “마누라, 그 말 마오. 첫째, 순산허였으니 천천만만 다행이요, 딸자식이 아들만은 못허다 허였으나,

아들도 잘못 두면 욕급선영허는 것이요,

딸이라도 잘 두면 못된 아들 바꾸졌소?

우리 딸 고이 길러 예절 몬저 가르치고,

침선 방적 다 시켜서, 요조숙녀 좋은 배필 군자호구 잘 가려,

금슬우지 즐거움과 종사위 진진허면 외손봉사 못 허리까?

그런 말을 허지 마오.“

* 자식 막 낳은 후에 낳은 놈이 딸이라서 울었다는 설움을 어찌 알까?

어미가 자기 낳고 울었다는 그 설움을 남자들은 어찌 알까?

그 시대에는 통용되던 사상이 지금에는 통용되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다는 데, 이것은 계속 되는 것일까 그친 것일까?

내 어머니는 날 낳으시고 그날 밤에 어느 집 아들과 바꿔왔으면 싶었다고 말씀하셨다. 남자로 나고, 여자로 나는 게 무엇인가. 여자에게 채워진 족쇄는 왜 이리도 단단한 것인가?

* 그러고 보니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왜 효자가 아니고 효녀일까? 하고 많은 이야기중에 효자 이야기가 아닌 효녀 이야기가 판소리가 되었을까?

나름대로 답은....

1) 그 시대에 여자쪽이 더 낮은자쪽이어서.

2) 여자(딸)과 남자(아비)의 조화를 맞추려고, 내 보기에는 심청은 곽씨부인을 대신하는 아내와 엄마 노릇을 다 하는 역할놀이의 중심인물

3) 관객을 울리는 데 여자(효녀)가 남자(효자)보다 감성쪽 방면에서 더 애잔하여

 

1-3.

286. [아니리] 이렇닷이 즐길 적에,

그때여 곽씨부인은 해복한 초칠일을 다 못 되어,

찬물에 빨래허기, 조석 취반 허느라고 외풍을 과히 쇠아 산후별증이 나는디,

만신이 다리 붓고 호흡 천촉허여,

식음을 전폐허고 정신없이 앓는구나.

* 곽씨부인이 일찍 죽을 수밖에 없는 여건이 마련되어 있다.

힘든 살림에 돌봐주는 사람없고, 해산한지 얼마 되지 않아 몸이 기울었는데, 거기에 일상의 힘겨움까지 더해진다. 사람 목숨 참...

* 어쩌면 팔자에 없는 자식을 오랫동안 치성들여 얻어서 다른 목숨으로 대신할지로 모르겠다. 생명을 생명으로 대신할 수 있을지?

 

289.[중모리] “아차, 내가 잊었내다.

이 자식 이름일랑 청이라고 허여주오. 청 자는 눈망물 청 자오니, 이 자식이 자러나서 앞길을 인도허면 눈망울이 아니리까? 심청이라 불러주고, ........”

* 인문학 강좌 ‘불교’를 수업하신 김홍근 박사님께서는 심청전이 효녀 심청이 이야기라는 것보다는 마음의 눈을 뜨는 사람과 그 영향력에 관한 이야기라고 하셨다.

청 자는 없고, 눈망울 ‘정’라고 하셨다.

심청이 인당수로 들어간다는 이야기는 마음속 깊은 심연을 들어가는 것이라고,

그 무의식의 세계에서 얼굴도 모르는 곽씨부인과 심청이 만나는 것은 시공간이 모두 사라진 곳이니 이승에서는 절대 만날 수 없는 그 둘이 만나고,

심봉사 눈 뜨는 것은 의식 에너지가 높은 어느 사람을 만나면 그 주변의 사람들까지 마음이 열려서 감화되는 것이라고 하셨다. 심봉사 눈뜰 때, 조선 팔도 모든 맹인이 함께 눈을 뜬다. 그래서 마음의 눈을 뜬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한 이야기라고 일러주셨다.

 

302. [아니리] 아해 안고 돌아와 포단 덮어 뉘어놓고, 아해 자는 틈을 타 동냥차로 나가는디,

[중중모리] 삼배 전대 두 동 지어 왼 어깨 드러메고 동냥차로 나간다.

한편에는 쌀을 받고, 한 편에는 나락 동냥.

어린 아해 맘죽차로 감을 사고,

홍합 사 왼 어깨 드러메고 허유허유 돌아온다.

그때의 심청이는 도움이라 잔병없이 자나날 적,

세월이 여루허여 육칠 세가 되어가니,

부친의 지팽이 잡고 앞길을 인도허기,

모친의 기제사와 부친의 봉양사를 의법이 허여가니 무정세월이 이 아니냐.

 

303. [아니리] 하루는 심청이 부친전 여짜오되,

“아부지, 오늘부터 아무데도 가시지 말고 집에 가만히 계옵시면,

제가 나가 밥을 빌어 조석공양허겠나이다.”

심봉사 깜짝 놀래,

“악아, 네 이것이 웬 말이냐?

내 아무리 궁곤헌들 예절조차 모를쏘냐?

네 나이 칠세이기로 인제는 너를 들어앉히고 나 혼자 밥을 빌랴는디,

나는 들어앉고 너 혼자 밥을 빌다니?

아서라. 그런 말 두 번 다시 허지 마라.”

* 처음으로 청이 6,7세가 되가 동냥을 나가겠다고 하는 대목.

 

304. [중모리] “아버지, 듣주시오.

자로는 현인으로 백 리의 부미허고,

순우의 딸 제영이는 낙양 옥의 갇힌 아비 몸을 팔어 속죄허고,

말 못하는 가마귀도 공림 저문 날의 반포를 헐줄 아니,

허물며 사람 치고 미물만 못허오며,

칠세 여식 내외허자 앞 못 보신 아버지가 밥을 빌로 다시시면, 남도 욕을 헐 것이요,

바람 불고, 날 치운디 천방지축 다니시다 병환이 나실까 염려오니,

그런 말씸을 마옵소서.”

 

305. [중모리] 심청이 거동 보아라.

밥을 빌로 나갈 적으, 헌 베 중우 다님 매고,

청목 휘양 눌러 쓰고, 말만 남은 헌 초마으 깃 없는 헌 저고리,

바가지를 옆에 끼고 서러 아침 치운 날의 바람 맞인 병신처럼 옆걸음쳐 건너가서,

부엌문전 당도허여 애근히 비는 말이,

“여보시오, 부인님네. 불쌍허신 우리 부친 구원 할 길 바이 없어 밥을 빌러 왔사오니,

한 술씩 덜 잡숫고 십시일반 주옵시면 부친 공양을 허겄내다.”

듣고 보는 부인들이 뉘 아니 슬퍼허리.

그릇밤, 김치, 장을 애끼잖고 후히 주며,

혹은 먹고 가라허니,

심청이 여짜오되,

기허허신 우리 부친 나 오기만 기다리시니, 저혼자 어이 먹사리까?

어서 집으로 돌아가서 부친 모시고 먹겠내다.”

 

2-3.

312. [진양조] 그 때여 심봉사는, 적적헌 빈 방안으 더진 듯이 홀로 앉어 딸 오기를 기다릴 적,

배는 고파 등에 붙고, 방은 치워 한기 드는디,

먼 데 절 쇠북을 치니, 날 저문 줄 짐작허고 혼잣말로 탄식헌다.

“우리 딸 청이는 응당 수이 오련마는,

어이 이리 옷 오는그나?

아이고, 이것이 웬 일인가? 부인으게 붙들렸나?

길에 오다 욕을 보느냐?

풍설이 자자허니 몸이 치워 못 오는가?”

새만 푸르르르르르 날아가도 심청인가 불러보고, 낙엽만 퍼썩 흐날려도,

“악아! 청이 오느냐? 악아! 청아!” 아무리 불러봐도 적막공산으 인적이 없어지니,

“허허, 내가 속았구나! 아이고 이 일을 어찌를 헐끄나?

내가 분명히 속았네그려.”

* 진중하지 못하고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사람같다. 심봉사를 긴장을 못 견디는 사람으로 보인다. 걱정이 엎뒤착뒤치락하는 중에 보이는 행동이 자신과 타인에 대한 믿음이 적은 사람으로 보인다.

 

314. [아니리] 그 때의 몽은사 화주승이 절을 중창허랴 허고,

권선문 드러메고 시주집 다니다가, 그렁그렁 날 저물어 절을 찾어 올라 갈 제,

올라가다 심봉사 물에 빠져 죽게 된 것을 보고 건져 살렸다고 해야 이면에 적당헐 터인디,

.......

 

317. [중모리] “봉사님이 내 말을 들으시면 어두신 눈을 뜨오리다.”

“아니, 어둔 눈을 뜨다니, 거 어쩐 말이여?”

“우리 절 부처님이 영검이 많으시와 빌면 아니 된 일 없고, 고하면 응하오니,

공양미 삼백 석만 불전에 시주허면 삼 년 내로 눈을 꼭 뜨시리다.”

심봉사 이 말을 듣고 어찌 마음이 기쁘던지, 후사는 생각잖고 대번 일을 저지는디,

“여보소, 대사 말이 정녕코 그럴진댄 공양미 삼백 석을 시주책으 적어 가소.”

저 중이 어이없어,

“봉사님 가세를 생각허면 삼백 석은 고사허고, 서 홉 곡식 없는 이가 그 어찌 허실라고 적어가라 허시니까?”

심봉사 홰를 벌컥 내며, “무엇이 어쩌? 이저석? 사람을 업수이여겨도 분수가 있지.

네가 내 속을 어찌 알고 허는 말이냐, 이저석!

그 어쩐 시러베아들놈이 부처님전 빈 말을 헐까? 두 말 말고 적어 가소.”

 

318. [아니리] “아니, 안 적어?”

“예, 예. 적겠습니다. 그러면 내월 십오일 내로 그 삼백 석을 올리겄소?”

“그러헐 터이니 염려 말소!”

“여보시오, 봉사님! 박절한 말씀이오나, 부처님전 허언하면 도리어 앉은뱅이가 되는 법이니, 거 부대 명심하십시오.”

“여보게! 불가 오계 중에 거짓말이 제일 큰 죄인 줄 번연히 아는디, 내가 일구이언 헐까?

염려말고 불공이나 착실히 허여 주게.”

중은 권선책에 기재허고 올라갔것다.

심봉사는 중 보내놓고 혼자 앉어 곰곰 생각터니, “이놈이 환장헌놈이 아닌가. 여?”

* 심봉사 자존심에 정신없이 일 하나를 저질렀구나.

심봉사는 아주 평범한 사람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 같다. 이야기 속의 영웅들과 같은면은 없고, 일상에 화내고, 울고, 기뻐하는 모습이다.

 

2-4.

322. [중모리] 심청이 겁을 내어,

“아버지, 잠깐 듣주시오. 왕상은 고빙허여 얼음 궁기 잉어 덛고,

맹종은 읍죽허여 눈 속의 죽순 얻어 사친성효 허였삽고,

곽거라는 옛 사람도 부모 반찬 허여노면 제 자식이 먹는다고, 산 자식을 묻으랴고 땅을 파다 금을 얻어 부모 봉양을 허였으니,

사친지효도가 옛 사람만 못하여도,

지성이면 감천이오니 너무 근심을 마옵소서.”

* 효자 이야기를 여기에 다 허는구나.

시대가 바뀌어서 ‘효’나 ‘충’이 시대전체가 강요하는 것에서 물어났다고 한다. 농사짓고 사는 때에는 자식낳아 그 아이가 커서 일꾼이 되는 것이 밥 안 굶고 사는 첫째 길이기에 효가 중요한 사상이었다고 한다. 그러니 남자아이가 선호되었던 것이고.

그런데, 이제는 이런 이야기를 여러사람에게 아이들에게 계속 전달해나가기에는 매력이 없어졌다. 지금은 자신을 찾고, 자신이 행복하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325. [중모리] “우리들이 사가기는 십분 합당허거니와, 낭자는 무슨 일로 몸을 팔랴 허시니까?”

심청이 대답허되, “안맹 부친 해원키로 이 몸을 팔랴허옵니다.”

“효성있는 말씀이오. 그러면 값을 얼마나 드리니까?”

“더 주셔도 과허옵고, 덜 주시면 낭패오니, 백미 삼백 석만 주옵소서.”

선인들이 허럭허니 심청이 허는 말이, “쌀일랑은 몽은사로 보내시고, 대사님이 표를 받아 저를 갖다 주옵소서.”

“그는 염려 없거니와, 오는 삼월십오일이 우리 행선날이오니, 그날 꼭 떠나주시겠소?”

“중값 받고 팔린 몸이 일시를 가리오며, 내 뜻대로 허오리까? 그런 염려는 마옵소서.”

* 드라마 ‘굿닥터’에서 ‘공양이 삼백 석이 뭐라고 그깟 것에 자신을 파냐?’라는 것을 듣고, 그 가치가 얼마나 큰지 주인공이 계산을 한 것이 나온다. 그걸 쌓아 놓으려해도 어마어마한 양이라고 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1결은 30~40말의 볍씨를 뿌리고, 세금으로 30말, 20말, 점점 줄어 4말의 세금을 냈다고 한다. 1가마란 남자 성인이 1년 먹을 양이라고 한다.

300명의 장정이 먹을 1년간 먹는 양? 그 당시에 잘 먹는 것은 못 했을 것이고, 이것저것으로 배를 채웠을 것이니 쌀 1가마는 1년먹는 양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은 것일 수도 있다. 여자는 시집가기 전까지 집에서 쌀 3말 먹으면 잘 먹고 자란 것이라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우리 고향동네는 100집이 넘게 사는 큰 동네였었다. 지금은 그렇게 살지는 않지만, 우리 고향동네 사람들이 한해 농사지어서 쌀로 가마니로 한 해 거둬들인다면 300석을 거둘 수 있을까? 외삼촌이 쌀 농사로 거둬들이는 것도 몇십가마니인데... 그렇게 농사지를 수 있는 집들이 100집 중에 몇 집이나 될 것인가. 우리 집도 몇 마지기 땅을 부쳐 거둬들였을 때, 마당에 쌓은 양이 몇 십 가마니정도였다. 옛날 소출 적고 못 먹고 사는 형편을 생각하면, 300석은 인근 고을 2~3개의 사람들 전체가 1년을 먹고도 남을 것 같다.

엄청나게 어머어마한 양이기에 시주승도 심봉사에게 3백석이란 양을 제시한 게 아닐까 싶다. 몽은사를 증축하는 데 드는 비용 전체가 3배석 정도이기 때문 일수도 있고.

 

329. [자진모리] 사당문을 가만히 닫고 방으로 들어와서,

부친의 잠을 깰까 크게 울 수 바이없어 속으로 느껴 울며,

“아이고, 아부지! 저 볼 밤이 몇 밤이며,

절 볼 날이 몇 날이나 되시오?

제가 철을 안 연후의 밥 빌기를 놓았더니,

내일부터 하릴없이 동네 걸인이 될 것이니,

눈친들 오직허며, 멸시인들 오직허리?

아이고, 이을 어쩔끄나! 몸쓸년의 팔자로다.”

 

331. [중모리] “그런디 간밤에 꿈을 꾸니,

네가 큰 수레를 타고, 한없이 어디로 가는 구나.

그래 내 손수 해몽했지.

수레라 허는 것은 귀인이 타는 것이라, 아마도 승상댁에서 너를 가마 태워 갈 꿈이로구나.

꿈 참 영특허지.”

심청이 들은 후에 저 죽을 꿈인 줄 짐작허고, “아부지, 그 꿈 맞습니다. 진지나 잡수세요.”

“이애, 오늘 아침 밥은 반찬이 별로 좋구나. 뉘 댁에 제사 모셨더나?”

“제가 바느질 품 판 돈으로 고기를 좀 샀습니다.”

심봉사 목이 메어 “아, 너의 모친 생존시는 너의 어머니 바느질 품 판 돈으로 항상 고기반찬을 먹었더니,

이제는 네 바느질 품 판 돈으로 번번이 고기를 먹는구나.”

* 심봉사 박복하다 해야 하나, 다복하나 해야 하나.

사람 사는 게 참 이상하다.

 

334. [중중모리]

“허허, 이게 뭰 말이냐? 아이고 이것이 웬 말이여!

여봐라, 청아! 네 이것이 참말이냐?

아비더러 묻도 않고, 네가 이것이 웬 일이냐?

자식이 죽으면 보든 눈도 먼다는디, 먼 눈을 뜬단 말이냐?

나는 눈 안뜰란다!

철모른 이 자식아, 애비 설음을 네 들어라.

너희 모친 너 낳고 칠일 안으 죽은 후에,

눈 어두운 늙은 애비가 품안에다 너를 안고 이 집 저 집을 다니면서 동냥젖 얻어 멕여 이만큼이나 장성키로,

너의 모치 죽은 설음 널로 하여 잊었더니, 네가 이거 웬말이냐?

못허지야! 눈을 팔아 너를 살디, 너를 팔아서 눈을 뜬들 무얼 보랴 눈을 떠야?

나 눈 안뜰란다!”

드때여 선인들은 물때가 늦어간다 성화같이 재촉허니, 심봉사 그 말 듣고 밖으로 우루루루루루, 엎저지며 자빠지며 것둥거려 나가면서,

“너 이 무지한 선인놈들아! 장사도 좋거니와 사람 사다 제하는 것 어디서 보았느냐?

하나님의 어지심과 귀신의 밝은 마음 앙화가 없겠느냐?

눈먼 놈의 무남독녀 철모르는 어린 것을, 날 모르게 유인하야 값을 주고 샀단 말이냐?

돈도 내사 싫고, 쌀도 내 다 싫고, 눈뜨기도 내 다 싫다.

너 이놈, 상놈들아! 옛 글을 모르더냐?

칠년대한 가물 적으 사람 죽여 빌라허니,

탕임군 어지신 말씀 ‘내가 지금 비는 배는 사람을 위험이라. 사람 죽여서 빌 양이면 내 몸으로 대신허리라.’

몸으로 희생되어 전조단발 신영백모 상림뜰 빌었더니, 대우방수천리가 풍년이 들었단다.

차라리 내가 대신 가마! 동리 방장 사람들, 저런 놈들을 그저 둬?”

내리둥절 치둥굴며, 가삼을 쾅쾅 치고, 발 동동 구르며, 머리도 탕탕 부듲치고, 목제비질을 덜컥덜컥, 죽기로 작정허니,

심청이 기가 맥혀 우는 부친을 부여안고,

“아이고, 아버지! 지중헌 부녀천륜 끊고 싶어 끊사오며, 죽고 싶어 죽사리까?

저는 이무 죽거니와 아버지는 눈을 떠 대명천지 다 보시고, 착실한 계모님 구하여 아들 낳고, 딸을 낳어 후사를 전케 허옵소서.”

* 이 부분은 크게 내지는 것이 많은 부분인 듯하다.

옮겨적다보니 에미대신 딸이 부인역할도 하고 딸 역할도 한 듯 하다. 심봉사 고생하여 딸을 키웠고, 심청이 고생하며 아버지를 봉양한다. 이 둘의 세상은 서로가 모든 관계의 시작점이자 종말점이 된 듯 하다. 세상의 모든 것이 되어버린 사람이 되는 관계.

 

3-3.

347. [진양조] 그곳을 점점 지나 멱라수를 당도허니,

또 한 사람이 나오는디, 안색이 초췌허고, 형용이 고고허며 글을 읋고 나오면서,

“슬프다, 심소저야! 어복충혼 굴삼려는 자네 응당 알 터이이나,

낭자는 효성으로 죽으러 가고, 나는 충성으로 죽었으니, 충효는 일반이라 호소코저 예 왔노라.

후일 귀히 되시는 날, 황제께 잘 간허여 충신박대 말게 허면 만세유업을 누리리라.”

심청이 기가 맥혀 혼잣말로 탄식헌다.

“이것이 웬 일인가? 죽으러 가는 나를 보고 귀한 몸 된다 허며, 조심하여 다녀오라니 정녕코 내가 죽을 징조로다.”

* 귀신들이 나타나서 심청에게 충과 효를 말한다. 여기에 나타난 귀신은 오나라 충신 ‘오자서’란다.

 

348. [엇소리] 한 곳을 당도허니, 이난 곳 인당수라.

광풍이 대작허여, 어룡이 싸우는 듯, 벽력이 나리는 듯,

대양바다 한가운데 바람 불어, 물결 쳐, 안개 뒤섞어 저저진 날,

갈 길은 천 리, 만 리나 남고, 사면이 검어 어둑 점그러져 천지 적막헌디,

까치 뉘 떠들어와 뱃전머리 탕, 물결이 우르르르르르르 출렁 출렁.

도사공 영좌 이하 황황급급하여 돛 짓고,

단 놓고 고사기계를 채린다.

섬쌀로 밥 짓고, 온 소 잡고, 동이술 오색 탕수 삼색 실과를 방위 찾어 갈라놓고,

산 돝 잡아 큰 칼 꽂아 기는 듯이 받쳐 놓고,

심청을 목욕시켜, 의복을 정히 입혀 뱃머리 앉힌 후,

도사공 거동 보소.

의관을 정제허고, 북채를 양손으 쥐고,

* 인당수와 제사를 지내기전의 상황 묘사

 

353. [중모리] 사공들도 목이 메어 눈물이 듣거니 맺거니 말 못허고 서 있는디,

영좌가 울음을 내어,

“못 보겄구나, 못 보겄네. 사람의 인정으로는 못 보겄네.

우리가 연년이 사람을 사다가 이 물으다 제수허니, 우리 후사 잘 될쏘냐?

여보소, 동무네들. 명년부터는 아사지경을 덩허드라도 이놈의 노릇을 그만두세. .......”

* 이게 진짜 사람의 정서 같다. 사람의 인정으로는 못 보것지만, 그 일을 해야만 하기도 하고, 그것에 가슴아파하는 것.

 

4-1.

361. [중중모리] 옥진부인이 이 말 듣고,

“기특허구나, 내 딸이야. 이슬같은 네 목숨이 동냥젖 얻어먹고 이만큼 자랄 적으,

앞 못 보신 너의 부친 고생 오직 허셨으랴.

세상으서 못 먹은 젖 오늘 많이 먹고 가거라.”

“어머님이 가신 길은 머나먼 황천이요, 소녀가 죽어 온 곳은 깊고 깊은 수궁이오라,

황천 수궁이 달랐삽기 모친도 못 뵐 줄로 주야장천 한이옵더니,

어머님의 덕택으로 예 와서 모셨으니, 부친 이별은 허였사오나 모친 따라 가겄나이다.”

“애정은 그러허나, 내 딸은 지극 효성 명천이 감동허사 환송인간 헐 것이니,

세상으를 나가거든, 너희 부친 뵈옵는 날 날 본 말을 헌 연후으,

전생의 미진한을 후생으나 만나자고 세세히 아뢰어라.

유명이 다른 고로 사세가 부득이라 나는 올라간다마는, 내 딸도 너도 부디 잘 가거라.”

눈물지며 이별헐 적, 문득 해운이 두르더니 공중으로 행허신다.

* 만날 수 업는 모친과 심청의 만남을 실제 공간에서의 만남이 아닌, 시공간의 개념이 무너진 무의식적이고 무공간적인 곳에서의 만남이라고 한다. 이렇게 되면 세계가 더 이상 제약이 아닌 세계와 자신이 하나이면서 둘이라고 하더라.

 

인문학은 ‘아픔’이 느껴지는 그곳까지, 그 사람까지가 세계라고 말한다.

‘연민’

낳기만 하고 제대로 키우지 못한 딸에 대한 애정이 절절하다. 연민. 이승에 남아서 고생했을 남편과 딸에 대한 연민.

 

4-2.

362. [아니리] 심청이 기가 맥혀 그 자리에 엎드러지더니,

“아이고, 어머니! 무슨 험한 팔자로서 부모복도 이리 없는거냐?”

이렇닷이 탄식허니 시녀 등이 위로헐 제,

그 때여 심청이 수정궁에 머무른 지 어언간 삼 년이라.

하루는 옥황상제께옵서 남해용왕을 불러 하교 허시되, “심청의 방년이 가까오니 인당수로 환송허여 어진 때를 잃지 말게 하라!”

남해용왕 명을 받고 심청을 치송헐 제,

연봉옥분에 고이 모시고 두 선녀로 시위허여, 조석 공대 찬수등물 금주보배를 많이 넣고 인당수로 나오는디,

* 방년, 꽃다운 나이, 혼인할 나이.

 

4-3.

365.[중중모리] 화초도 많고 많다.

팔월부용으군자용 만당추수홍련화.

암향부동월황혼의 소식 전튼 한매화.

진시유랑거후재라 붉언 있는 홍도화.

월중천향단계자 향문십리의 계화꽃.

요염섬섬옥지갑의 금분야도 봉선화.

구월구일용산음소축신 국화꽃.

공자왕손방수하의 부귀할손 모란화.

이화만지불개문의 장신궁중의 배꽃이요,

칠십 제자 강론허니 향단춘풍의 살구꽃.

천태산 들어가니 양변개작약이며, 촉국한을 못 이기어 제혈허던 두견화.

원정부지이별허니 옥창옥련이 앵도화.

요화 노화 계간화 이화 계화 서경화 흥국 백국 시월 국화 교화 난화 동백 해당화 장미화 목련화 설토화 수선화 능소화 백일홍 등매 춘매 영산홍 자산홍 왜철쭉 진달화 난초 지초 파초 유자 석류 비파 향매 은행 자도 오미자 치자 감자 대초 머루 다래 어름넌출

왼갖 화초 갖인 과목 층층이 심었넌디,

향풍이 건 듯 불면,

벌, 나비, 새짐생들이 춤을 추며 넘논다.

* 이렇게 열거하다니. 한문화에서는 꽃에 의미가 있다. 꽃은 그냥 꽃이 아니고, 거기에 유교적 의미가 있고, 이야기가 있고, 향이 있어서 어느 상징으로 쓰인다.

 

4-5.

375. [진양조] 추월은 만정허여 산호 주렴으 비치어 들고,

실솔은 슬피 울어 나유원에 흘러들 적,

청천의 외기러기는 월하의 높이 떠서,

‘두루루루루루루루 낄룩’ 울음을 울고 오니,

심황후 기가 맥혀 기러기 불러 말을 헌다.

“울고 오는 저 기럭아! 너 무삼 설음 있어 저리 슬피 울고 오느냐?

짝을 잃고 너 우느냐?

도화동 우리 부친 슬픈 소식 전허자고 나를 불러 너 우느냐?

이 몸은 불효막심이라 일장 음심 못 올리나, 부처님의 영검으로 감을 눈을 뜨셨으며,

도화동 백성들이 옛 언약을 아니 잊고 시량이나 이우더냐?

눈 못 뜨고, 배가 고파 문전걸식 눈치를 받고,

나를 부르고 다니면서 이사지경이 되셨드냐?

고생이 그러셔도 살어나 계시오면 천행만행 되면 마는,

만일 불행 병환 들어 적막공방 누워 계시면, 약 한 첩, 물 한 모금을 어느 뉘가 줄 것이며,

혼자 기진 굿기신들 뉘가 염습 안장헐까?

이렇닷이 울음을 울다 창공을 바라보니, 기러기는 간 곳 없고, 별과 달만 밝았구나.

심황후 기가 맥혀,

“야, 이 무심한 저 기럭아! 내의 헌 말을 들었거든. 불쌍허신 부친전으 세세히 아뢰어 다오.”

* 사랑한다는 것은 안보이는 중에서 생각하는 것인가보다.

그리고 무엇인가 옆에서 해주고 싶은 것.

그러니 해주지 못하니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 기러기가 심청의 마음은가? 자연을 보면 그 사람을 생각한다는 것이 옛글에는 많이 나온다. 지금은 이런 표현을 잘 안한다.

 

380. [아니리] 낮이면 강두에 가 울고, 밤이면 집에 들어오고,

울음으로 세월을 보내는디,

그때 마침 그 근촌 사는 아주 흉악한 홀어미 하나가 있으되,

이름은 뺑덕이네요, 별호는 뺑파라.

얼굴이 천고일색일는지 만고박색일는지 몰라도,

꼭 생긴 모냥이 이렇게 생겼던 것이었다.

 

381. [자진모리] 생긴 모냥 볼작시면

말총 같은 머리털은 하늘을 가르키고,

됫박이마에 홰눈썹과 우멍눈 주먹코요,

메주볼 송곳턱에, 입은 크고, 입술 둩 큰 궤문을 열어논 듯.

세레이 드문드문, 서는 늘어진 짚신짝이요, 두 어깨는 떡 벌어져 치를 꺼구로 세와논 듯.

손길 생긴 뽄은 솥뚜껑을 엎어논 듯, 허리는 짚통 같고,

배는 폐문 북통 같고, 엉뎅이는 부자집에 떡치는 안반 같고,

속옷을 입었기로 다른 곳은 못 보아도 입을 보면 짐작이요,

수퉁다리에 흑각발톱, 발맵시는 어찌 됐던, 신발은 침척으로 자 가옷 넉넉해야 계우 신게 되는 구나.

* 못생긴 사람은 이리 묘사하는구나. 이 시대에는 이런 모습이 못생긴 모양이었나보다.

이 때도 외모로 사람을 판단한다. 심청은 곱게 선녀같이 묘사하고, 뺑파는 우억스럽게 묘사한다.

 

4-7.

386. [아니리] 심봉사 좋아하고 달여들려서 뺑덕이네를 질끈 안더니마는,

“아이고, 내 반찬 단지, 내 꿀단지야.

말소리만 들어도 이렇게 어여쁠제, 말허는 입모습과 태도를 보았으면, 안 미칠 놈 뉘 있겠느냐?”

아조 깜빡 대혹허여 저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더니,

뺑덕이네 이 몹쓸 년은 심봉사 그 불쌍한 전곡, 심청이가 마지막 죽으러 갈 때 앞 못 보신 늙은 부친 노래에 굶지 말고, 벗지 말라고 끼쳐주고간 불쌍한 전곡을 꼭 먹성질로 조져대는디,

뺑덕이네 행동거지와 먹성 속은 김연수 말과 조끔도 틀림이 없는 것이었다.

 

386. [자진모리] 밤이면은 마을 돌고, 낮이면은 낮잠 자고,

쌀 퍼주고 떡 사 먹고,

벼 퍼주고 엿 사먹고,

의복 잽혀 술 먹기와

빈 담뱃대 손에 들고 오고가는 행인들게 담배달라 힐난허기,

머슴 잡고 어린양에 젊은 중놈 유인허기.

동인 걸어서 욕설하고, 초군들과 싸움하고,

여자 보면 내외허고, 남자 보면은 쌍긋 웃고, 코 큰 총각 술 사주기.

기제사 때 메 올려도 담뱃대는 뺄 수 없고,

몸볼 적에 찼던 서답 조왕 앞에 끌러놓기,

밥 푸다가 이 훔쳐서 밥주먹에다가 꾹 죽이기,

잠자면서 이 갈기와 배 끓고, 발목 떨고, 한밤중에 울음 울고, 이불 속에서 방구 뀌기.

삐죽허면 빼쭉허고, 빼쭉허면 삐쭉허고, 힐끗허면 핼끗하고, 핼끗허면 힐끗허고,

술 퍼먹고 활딱 벗고 정자 밑에서 낮잠 자기.

남의 내외 잠자는 디 가만가만 가만가만 가만가만 찾어가서 봉창문에다 입을 대고, “불이야!”

이년 행사가 이러허여, 심봉사 불상한 전곡을 모두 다 빨아먹은 연후에는,

이삼일 먹을 양식만 남겨두고 도망을 헐 작정으로,

오뉴월 가마귀 곤 수박 파먹듯 밤낮없이 파먹는디,

* 놀보 못된 짓 하는 것처럼 뺑파 못된 짓도 세세하게 묘사한다. 이런 것들이 이 시대에 하지 말라고 하는 것들인가 보다.

 

5-6.

422.[자진모리] 심황후 거동 보아라.

산호 주렴을 걷혀버리고 우루루루 달려나와, 부친의 목을 안고,

“아이고, 아부지!” 한 번을 부르더니 다시는 말 못 허는구나.

심봉사 부지불각 이 말을 들어보니, 황후인지, 궁녀인지, 굿 보는 사람인지 누군 줄 모른지라.

먼눈을 희번쩍 희번쩍 번쩍거리며,

“아이고, 아버지라니? 날다려 누가 아버지여, 에?

나는 아들도 없고, 딸도 없소. 무남독녀 외딸 하나 물에 빠져 죽은 지가 우금 수삼 년이 되었는디, 누가 날다려 아부지여?”

황후 옥루 만면허여,

“아이고, 아버지! 여태 눈을 못 뜨셨소? 인당수 빠져 죽은 불효여식 청이가 살어서 여기 왔소.”

* 이 부분은 소리로 들을 때 너무나 감동이다.

.......

“아이구, 아버지! 제 효성이 부족허여, 제 몸은 살어나고, 이부의 눈을 못 떴으니,

이 몸이 또 죽어서 옥황님전 호소허여 부친 눈을 띄우리다.”

심봉사 질색허여, “또 죽다니 소름끼친 죽는단 말 애비 있는디 또 허느냐?

내 딸이 살었다니, 눈 못 떠도 한이 없다. 죽지 마라. 죽지 마라! 제발 덕분으 죽지 마라.”

이 때의 용궁 시녀 용왕의 분부인지, 심봉사 어둔 눈에다 무슨 약을 뿌렸구나.

* 김연수 판소리는 재미가 없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하려고 한다.

감동은 이성으로 따져서 오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심봉사 눈뜨는 장면은 그럴 듯하게 설명해서 될 것이 아니다. 김연수는 판소리에는 그럴듯해 보이게 하는 것들이 좀 있다. 그래서 감동이 덜하다. 예전에 들었을 때는 그냥 고조되는 그 감정에 나를 맡겨두고 그 소리를 따라가다가 눈을 뜨는게 당연한데... 김연수는 아니다.

 

5-7.

423. [아니리] “아니, 여기가 어디여?” 심봉사 눈 뜬 바람에 만좌 맹인과 각처에 있는 천하 맹인들이 모두 일시에 눈을 뜨는디, 심봉사는 약이나 뿌려 눈을 떴지마는,

다른 맹인들은 어떻게 눈을 떴는고 허니,

이 약은 약 냄새만 맡어도 눈을 뜨는 약이라, 약 냄새에 모다 눈을 떠버렸것다.

또 그 당시에 있는 맹인들은 약 냄새나 맡고 눈을 떳지마는,

각처에 있는 맹인들은 어떻게 눈을 떳느냐 허면,

이 약은 용궁 조화가 붙은 약이라,

약 기운이 별전 앞에서 쫙 펴져논 것이, 이 약 냄새가 꼭 맹인 있는 곳만 찾아다니면서 눈을 모다 띄이는디,

* 이 부분은 정말 재미없다. 설명이 필요 없는 부분에 설명이 길게 들어가서 고조되는 기운을 감해 놓았다.

 

424. [자진모리] 만좌 맹인이 눈을 뜬다. 만좌 맹인이 눈을 뜰 제,

전라도 순창 담양 새 갈모 띄는 소리라.

‘쫙 쫙 쫙쫙’허더니마는 모다 눈을 떠버리는디,

석달열흘 큰 잔치으 먼저 와서 참례허고 내려간 맹인들은 저의 집에서 눈을 뜨고,

병들어 사경되야 부득이 못 온 맹인들도 집에서 눈을 뜨고,

미처 당도 못헌 맹인도 노중에 오다 눈을 뜨고, 천하맹인이 일시에 눈을 뜨는디,

 

424. [휘모리] 가다뜨고, 오다 뜨고, 서서 뜨고, 앉어 뜨고, 실없이 뜨고, 어이없이 뜨고,

홰내다가 뜨고, 성내다가 뜨고, 울다 뜨고, 웃다 뜨고, 힘써 뜨고, 애써 뜨고, 떠보느라고 뜨고,

시원히 뜨고, 얼허다가 뜨고, 앉어 놀다 뜨고, 자다 깨다 뜨고, 졸다 번뜻 뜨고,

눈을 끔적거려보다가도 뜨고, 눈을 부벼보다가도 뜨고,

지어비금주소라도 눈먼 김생은 일시에 눈을 떠서 광명 천지가 되었는디,

그 뒤부터는 심청전 이 대문 소리허는 것만 들어도 명씨 백여 백태 끼고,

다래끼 석 서는디, 핏대 서고, 눈꼽 끼고, 원시 근시 궂인 눈도 모도 다 시원허게 낫는다고 허드라.

 

428. [아니리] “죄상을 생각허면 죽여 마땅허기니와,

제 죄를 지가 아는 고로 개과천선할 싹이 있는지라,

특히 약을 주는 것이니 눈을 한번 떠보랴!”

용광 시녀 약 갖다가 황봉사 눈에 발라주니,

황봉사가 한참 눈을 끔적끔적 야단을 허더니마는, 한눈만 계우 딱 뜨는 것이 총 놓기 좋게 되었것다.

이런 일을 보더라도, 적선지가에 필유여경이요,

적악지가에 필유여앙이아라.

어이 천도가 없다 헐 것이뇨?

* 왜 황봉사를 눈을 다 뜨게 안 해준 것이냐? 그깟 죄가 뭐라고. 이 판소리를 하는 김연수만 그럴까, 아니면 다른 소리꾼도 그러할까? 다른 봉사들은 죄가 없나? 그만한 게 뭔 죄라고, 성스런 기적을 훼손하는지 모르겠다. 눈을 뜨는 기적을 훼손하는 것이 이 사람만 그럴까 다른 사람도 그럴까? 이런 가치를 전달한다면, 예술은 아닌 것 같다.

 


3. 흥보가

 

1) 신명을 담은 가락, 휘모리

뭔가 고조된다 싶은 부분은 장단이 점점 빨라지며 극점에 달하면 휘모리로 정신없이 쏟아낸다.

그 대목이 휘모리일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신이나서 어찌할 수 없다. 그 내용을 듣기만 해도 신이나는데, 내 심장이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 흥보가에서 돈궤짝에서 돈이 계속 나오는 부분과 밥을 먹다가 먹다가 더이상 지쳐서 못 먹겠다 하는 장면이 휘모리이다. 

못 먹고 사는 흥보가 가장 원하는 것이 나오서 밥과 돈 속에서 정신이 없는 장면이 휘모리다.


2) 돈타령

'못난 사람에 잘난 돈, 잘난 사람에 더 잘난돈.

생살지권을 가진 돈.'


공감하면서도 가슴아픈 내용이다. 


3) 이야기로의 흥보가

이야기 흥보가는 별로 재미가 없다. 단순하다. 가난과 형제간의 도리에 대한 것을 새로 해석해서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져야할 것이다. 지금은 자본주의 사회. 

홍보가를 새로 해석해서 만들면 어떤 특징들을 살릴까?

이 이야기 속에는 지니치다 싶은 유머가 많이 들어있다. 그렇게 낄낄거리게 만드는 요소를 넣지 않고는 가난을 이야기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르겠다. 웃다보면 눈물난다. 웃을 수 없는 이야기를 웃게 만들었다. 

홍보가에서 따올 것으로 꼽아 본다면....

- 홍보가 자식을 많이 나은 것

- 놀보와 놀보 마누라 내외의 짝짝 달 들어맞는 생각과 행동

- 제비가 우연중에 고난을 당한 사건

- 흥보 새끼가 송편 3개 해달라고 한 것

- 홍보가 밥 먹다가 배불러 죽겠다고 한 것


나는 흥보가 중에 흥보 마누라가 흥보의 뜻에 반대하여 쫒아낸 시아주머니 편드는 것을 싫어라 하는 것과 홍보 첩드리는 것을 부각시키고 싶다. 내가 하면 흥보를 비난하려고 작정하고 달려드는 것일 테지만, 이야기꾼이 잘 다듬으면 흥보와 놀보 사이에 길을 가르는 데 현실적인 가이드를 제시해 줄 것 같아서다.




1-1.

431. [아니리] 아동방이 군자지국이요, 예의지방이라.

십실지촌에도 충신이 있고,

칠세지하도 효제를 일삼으니,

어찌 불량한 사램이 있으리오마는,

요순시절에도 사흉이 있었고,

공자님 당년에도 도척이가 있었으니,

아마도 일종 여기를 어쩔 수 없는 법이었다.

우리나라에 경상도에는 함양이 있고, 전라도에는 운봉이 있는디,

운봉 함양 두 얼품에 중년에 박 가 형제가 있었으되,

놀보는 형이요, 흥보는 아운디, 동부동모소생이나 성품은 각각이라.

* 흥보가의 시작대목.

 

432. [자진모리] 대장군방 벌목허고, 오귀방에다 이사 권키, 삼살방 집 짓기와 불 붙난 데 부채질, 아 밴 부인은 배통이 차고, 오대독자 불알 까고, 수절과부는 겁탈허기.

다 큰 큰애기 무함잡고, 초라니 보면 딴 낯 짓고, 의원 보면은 침 도적질, 거사보면은 소고 도적, 지관 보면은 쇠 감추기.

똥 누는 놈 주잕히고, 꼽사됭이는 되집아놓고, 앉은뱅이 택견허기, 엎디진 놈 꼭지치고, 닫는 놈 앞장 치고, 뇌점 든 놈 장갱이 훑고, 삼거름길에다 허방 파기.

삼신 든 데 개 잡기와 다 된 혼인 바람 넣고, 혼대사에 싸개치기, 상여 멘 놈 몽둥이질과 기생 보면은 코 물어뜯고, 제주 병에다 가래침 밭고, 옹기전 팔매치기, 비단전에 물총 놓고, 고추밭에서 말 달리기.

가문 논에 물귀 파고, 장마 논에 물귀 마고, 애호박에다 말뚝 박고, 다 팬 곡식 모 뽑기.

존장 보면 벗질하기, 궁반 보면 관 찢고, 소리허는디 잔소리허기, 풍류허는 데 나발 불기.

된장그릇에 똥 싸기와, 간장그릇에 오좀 싸기, 우는 애기는 집어 뜯고, 자는 애기는 눈 걸어 벌시고, 남의 제사 닭 울리기, 면례하는 데 뼈 감추기.

일년 머슴 외상 새경 농사지어서 추수하면 옷을 벳겨 쫒아내기.

봉사 보면 인도하야 개천물에다 집어넣고, 질가는 과객 양반 재일듯기 붙들었다 해 다 지면은 쫒아내기.

이 놈 심술이 이러허니 삼강을 아느냐, 오륜을 알겠느냐?

삼강도 모르고, 오륜도 모르는 그 지경되는 놈이, 형제 윤긴들 알겠느냐?

* 못된 행동의 묘사. 이런 일이 잘못인가 보다.

 

1-2.

442. [중모리] ..... 멍석자리, 거적문으 부검지로 이불 삼아, 춘하추동 사시절을 품을 팔아 연명헐 제,

상하전답 기음매고, 전세 대동 방애찧기.

상고무역 삯짐 지고, 초상난 집 부고 전키, 묵은 집에 토담 쌓고, 새집에 앙토허고, 대장간 불무 불기, 십 리 대돈 승교 메고, 오푼 받고 마철 걸기,

두 푼 받고 똥제 치고, 백 냥 받고 송장 치기, 생전 못해본 일로 이렇듯 벌건마는,

하로를 품을 팔면 사오일씩 앓고 나니 생계 부지되겠느냐?

홍보 아내 품을 팔 제,

오뉴월 밭매기와 구시월 김장허기, 한 말 받고 벼 훑기와 물레질,

베 짜기며, 빨래질, 헌 옷 집기, 혼장대사 진일 허기, 채소밭에 오줌 주기, 갖은 길쌈 베매기와 소주 곱고, 장 댈이기, 물방아 쌀 까불기, 보리 갈 제 거름 넣기, 못자리 때 망풀 뜯기,

아기 낳고 첫국밥을 손수 지어 먹은 후의 몸조리를 할 때에는 절구질로 땀을 내며, 한시 반 때 놀지 않고, 이렇듯 품을 팔어 생불여사로 지내는구나.

* 흥보, 하루 일하면 4, 5일을 아프니 제대로 된 사람 아니다. 흥보와 흥보 아내가 모두 고생하는데..... 참 뭐라 할 말 없게 만드는 애 새끼들......

 

443. [아니리] 흥보가 이리 고생을 허고, 가난허게는 지내도 자식은 부자였다.

내외간에 금슬이 좋아 자식을 풀풀이 낳는디, 일 년에 꼭꼭 한 배씩, 한 배에 둘씩, 셋씩, 내외간에 서로 보고 웃음만 웃어도 그냥 입태를 허여, 그럭저럭 보내 낳은 자식들이, 깜부기 없이 꼭 아들만 스물아홉을 조롯이 낳았것다. 이놈들을 제대로 작명헐 수도 없고, 그냥 아무커나 불러보는디, 갑실이, 을실이, 병실이, 정실이, 무실이, 기실이, 경실이, 신실이, 임실이, 계실이, 자실이, 축실이, 인실이, 묘실이, 진실이, 사실이, 오실이, 미실이, 신실이, 유실이, 술실이, 해실이, 아롱이, 다롱이, 껌둥이, 노랭이, 발발이, 살살이, 떨렁이.

이렇듯 불러노니 처음에는 천간, 지간으로 나가 그럴 듯허더니, 나종에 보니 말큼 강아지 할열이 되었던 것이었다.

수다헌 자식들은 의복 지어 입힐 수 없어, 흥보가 꾀 하나를 생각해 가지고 부잣집을 다니며 신짚을 얻어다가 멍석을 절어 가되, 목으 들고 날 만허게 절어가다 궁글 내고, 절어다가 궁글 내고, 이십 팔수로 궁글 내어, 자식들을 앉혀놓고 환상죄인 칼 씌우듯 멍석을 딱 쒸워노니, 몽뚱이는 안 보이고 대글빡만 멍석 위에 혹태 메주 널어논 뽄이 되었것다. 이놈들이 울어도 앉어 울고, 잠을 자도 앉어 자고, 이러고 앉었다가,

 

[자진모리] 그중 한 명 똥 마려면 저만 빠져가련만,

이놈들 미련하야 뭇놈이 다 나갈 적,

그중의 키 적은 놈 미처 목을 못 빼노면 발이 땅에 안 닿으니,

육성으로 목 매달려,

“아이고, 나 죽는다! 밥을 며칠썩 굶은 놈들이 뭘 처먹고 똥 눈다고 날 못살게 허느냐?”

죽는다고 소리차며, 개 자식 놈, 쇠 자식 놈, 똥 누는 놈이 욕을 머고,

그중에 짓궂인 놈 옆에 놈을 집어뜯고 정색허고 앉았으면, 누가 헌 줄 몰라 쓸어잡고 욕설을 허는구나.

* 29명이 남자아이. 이름붙이기가 갈수록 개이름으로 짓고, 똥누로 간다고 희화한 것은...... 재미있다 싶으면 지나치게 하는 면이 있다.

 

1-4.

449. [아니리] 가다가 별안간 걱정이 생겼것다.

“내가 아무리 궁소남아가 되었을망정, 나는 반남 박 씨인디,

아전을 보고 ‘허시오’를 헐 수는 없고, ‘허게’를 했다가는 저 사람들이 듣기 싫어 환자를 안 줄 터이니,

이 일을 어찌하면 좋드라?”

한탐 생각다가, “옳다! 좋은 수가 있다. 아전들을 보고 인사를 헐 때, 말끝을 ‘고’자, ‘제’자로 달아가지고 웃음으로 따질밖에 수가 없구나.”

* 양반이란 게 도대체 뭔가 궁금하다. 관촌수필에서는 양반으로 사는 것은 엄청난 습관이라고 했다.

 

450. [아니리] “....... 그도 그걸 것이오. 백씨장 속을 누가 모르겠소. 그런디 참, 박생원 그, 매 더러 맞아 봤소?”

“뭐? 아니, 매 맞는 말은 왜 해?”

“그렇게 그, 갚기 어려운 환자를 자실 게 아니라, 내려온 짐에 매를 좀 맞으시오.”

“아니, 환자 대신 매를 맞어? 왜? 내가 밥을 굶었다니까 매를 굶은 사람인 줄로 아나?”

“그런 게 아니라, 우리 골 좌수가 병영영문에 상사범을 당했는디, 좌수 대신으로 곤장 열 개만 맞고 오시면,

한 개에 석 냥씩, 열 개면 서른 냥은 굳은 돈이요,

무론 뉘가 거던지 말 타고 가라고 마삯 닷 냥까지, 서른닷 냥을 주기로 했으니 주기로 했으니 거, 다녀오시랴오?”

흥부가 돈 말을 듣더니 대번에 ‘허시오’로 올라가는디 “여 여, 여보시오. 가고말고요. 내가 가기는 가겠소마는 아, 거 양반도 곤장을 때리오?”

“아, 병영 영문은 무상소하문이오.”

“이 대한하오그려.”

“무섭지요.”

“내 아니꼽게 말 타고 갈 것이 아니라, 정강이말로 노자나 풍족히 쓰고 가겠소. 그 돈 닷 냥 날 내주오.”

“아, 글랑 그리 허시오.”

* 매품파는.... 흥보

 

452. “대장부 한 번 걸음에 공돈같이 생긴 돈이로세.

돈, 돈, 돈 봐라. 못난 사람도 잘난 돈. 잘난 사람은 더 잘난 돈.

생살지권을 가진 돈. 부귀공명이 붙은 돈.

맹상군의 술래바퀴같이 동글동글 도는 돈.

얼씨구 좋구나. 기화자 좋네. 얼씨구나, 돈 봐라.”

* 돈에 대한 내용이 심오하다. 생살지권을 가진 돈, 잘난 사람에 잘난 돈. 부귀공명 붙은 돈. 동글동글 도는 돈.

 

1-5.

453. [중중모리] “이 내 몸이 정승 되야 평고자에 앉어 볼까?

육조판서를 허였으니 초헌 우에 가 앉어 봐?

위국대장이 되어서 대장단으 앉어 봐?

팔도 감사를 못허였으니 선화당으나 앉어 보며,

팔도 병사를 허였으니 관덕장에나 앉어 봐?

오영 당상 허였으니 좌마 우에 앉어 볼까?

각읍 수령을 못허였으니 남녀 우에나 앉어 보며,

이방 호장 못했으니 질청 우에나 앉어 봐?

쓸데없는이 내 볼기 매품이나 팔어 먹지 놀려두어서 무엇허리?”

* 각각의 자리가 있네. 재밌네. 자리가 뭐냐?

 

457. “여보게. 그뇜이 어떻게 생겼든가?”

“키는 조그만허고, 모기눈, 주걱택에 쥐털수염 거사리고, 곤장 열 개를 맞는디, 그놈 담차게 맞습디다.”

“아이고, 이 일을 어쩔그나! 우리 마누라 우는 통에, 뒷집 꾀수애비란 놈이 알고 발등거리를 허였구나.”

* 매품도 못파는 흥보.

 

1-6.

[아니리] ...... “아이고, 말도 마십시오. 작은 서방님 쫒아낸 후로는 약음이 더 바짝 나서,

제향도 지금은 대전으로 바친답니다.”

“아니, 이눔아! 제향을 어떻게 대전으로 바친단 말이냐?”

* 추석이 가깝다. 대전으로 바치면 안되는 이유는 뭔가? 하하하.

 

461. [자진모리] “제향날이면 접시에다 엽전을 한 주먹씩 가득가득히 담아놓고,

술이라, 과실이라, 어포, 육포, 인절미라,

어전, 육전, 편적, 산적, 생선이라, 오색탕이라, 채소라, 수정계라,

말큼 찌를 붙여 어동육서, 홍동백서, 동두서미, 내탕외과, 좌포우혜, 분향재배로,

파제날이면 쏵 닦어버리고 퀘에다가 도로 넣습니다. 들어가지 마옵시오.

만일 들어갔가다는 부러진 몽됭이 거말장하오리다.”

 

1-7.

464. [진양조] .....“단단 맹세 허였더니마는 어지 그리 무복한지,

밤낮으로 버스려도 돈 한 푼을 못 모으고, 원치 않는 자식들만 아들이 스물아홉.“

놀보가 뒤로 물러 앉으며 군소리로 허는 말이,

‘박살할 놈! 그러니 다른 일 할 틈이 있어야 돈을 벌지?’

“식구가 이러허니 어이 연명허오리까?

그게 저녁을 굶은 처자 어제 아침을 그저 있고,

어제 저녁도 굶은 처자가 오늘 아침도 못 먹었으니,

만석꾼 형님 두고 굶어 죽기가 억울허오.

쌀이 되거든 한 말만 주옵시고, 벼가 되거든 두 말만 주옵시고,

돈이 되거든 한 냥만 주옵시고, 그도 정 못허시면, 식은 밥이나 싸래기나 찌갱이나 몽근 져나 한 가지만 주시어도,

여러 날 굶은 처자들을 구환허여 살리것나이이다.

형님 덕택으 살려주오.”

 

[아니리] 놀보 듣고 생각허기를,

‘저놈 조격된 품이 빌어먹기 투가 나서,

달래서는 안 갈 테요, 주어서는 또 올 테니,

죽으면 굶어 죽어 맞어 죽을 생각은 없것제 허는 수가 옳다.’허고,

“불쌍허다. 여봐라, 마당쇠야! 네 그,

동편 곳간 문 열고, 지리산에서 도끼자루 헐러고 건묵 쳐 내온 박달몽둥이 이리 가져오고, 대문 걸어라. 오늘 한 놈 식훌 놈 있다.”

* 놀보가 보는 흥보를 볼 수 있는 대목. 이 대목을 읽다보면 흥보가 그리 좋은 놈이 아니다.

 

465. [자진모리] “...... 쌀말이나 주자헌들,

남대청 큰 두지에가 가득가득이 들었으니, 네 놈 주자고 두지 헐며,

볈말을 주자헌들 천록방 가리노적 태산같이 쌓였으니, 네 놈 주자고 노적 헐며,

돈냥을 주자헌들 옥당방 용목궤에가 가득가득이 들었으니, 네 놈 주자고 환돈 헐며,

싸래기나 주자헌들 황계, 백계 수백 마리가 오락가락으 꾀끼오 우니, 네 놈 주자고 닭 굶기며,

찌갱이나 몽근 져나 양단간 주자헌들, 구진방 우리 안에 떼돼야지가 들었으니, 네 놈 주자고 돝 굶기며,

식은 밥이나 주자헌들 새끼 난 암캐들이 컹컹 짖고 내달으니, 네 놈 주자고 개 굶기랴?”

* 짐승은 먹이는데, 흥보는 못 먹이겠다는 놀보의 마음

 

465. [자진모리] 몽둥이를 드러메더니, 강짜 싸움에 계집 치듯, 좁은 골에 배락 치듯,

‘후다닥 뚝딱!’

“아이고, 아이고, 아이구!”

“이 급살 맞어 죽을 놈아! 어째 나를 못살게 이리 와쌓느냐?”

 

2-1.

468. [아니리] “허허 참! 저런 놈의 말 따위 좀 봐. 동생 내보내고 집가심하라? 송장 냅냈나? 집가심 하게?

우리가 예의동방 군자지국이라는디, 어데서 저따위 못된 놈이 생겼을까?

하나님도 무심허시지. 신벼락을 탁 쳐서 죽이지를 않으시고.

원, 그 흔한 놈의 염병도 이놈이 집구석에는 안 덤비니, 염병 귀신도 겁이 나서 못 덤비나?

지옥 사자들이 낮잠을 자나? 에라, 이놈이 것! 다른 집에는 귀신 쫒는 축귀경을 읽는다드라마는,

이놈의 집에는 내가 청귀경을 읽어 왼갖 잡신을 다 불러들여, 저놈 죽는 꼴을 좀 보리라.”

마당쇠가 두 무릎을 단정히 꿇고 앉어 청귀경을 읽는디, 이런 가관이 없든 것이었다.

* 사람 죽으라고 진심으로 빌겠다는 이 심정을.....

 

469. [중중모리] “천상 팔방 삼십삼천 천강 지살 제신이며,

일월성신 이십팔수 각항저방의 신장님네!

지상 오행 오방신장 여래 보살 오백나한 살불 제석 금강 신장 성황당 토신이며,

성조 조왕으 터주대감 우두나찰 마두나찰 염라국사자,

북망산 원귀 고혼, 시두 혼님 홍역 마마 학질 괴질 황달 흑달 이질 등창 가슴앓이 뇌점 아구창 연주창 주마담 나력 발치 치질 산증 임질 당창 장감 쥐통 역신 님네,

시급히 발동허여 놀보 좀 잡어가시오!”

* 죽을 병.

 

2-2.

479. [중중모리] “불쌍타, 내 제비야. 가긍헌 너의 목숨 매명에게 안 죽기으 완명인 줄 알았더니,

이 지경이 웬 일이냐?

내 집이 가난허여 사람은 아니 찾어오나, 너는 매양 찾아오니,

가난 박대 한 허기는 아무리 미물이나 제비 너희 뿐이로다.

좋은 집을 다 버리고, 궁벽산촌 박흥보 집 험한 곳에 와 삼겼다가, 절각지환이 웬 일이냐?”

 

487. 경상도는 함양이요, 전라도는 운봉이라. 운봉 함양 두 얼픔으 흥보가 사는지라.

 

2-4.

493. [아니리] 이렇듯 울고 있을 적에,

흥보 열일곱째 아들뇜이 밖에 놀러갔다가 유혈이 낭자해 가지고 울고 들어오며,

“어머니! 나 송편 세 개만 허여주시오.”

“아니, 이 자식아! 떡은 왜 하필 세 개만 해달라느냐?”

“동리로 놀러갔다가 애들이 송편을 먹기에 내가 좀 달랬더니,

황토에다 오줌을 누어 황토 송편을 만들어주며, 이 떡을 다 먹으면 참 떡을 주마기에,

참 떡 먹을 욕심으로 황토 송편을 다 먹어도 참 송편은 아니 주고,

뭇놈이 늘어서며 가래 속으로 기어나오면 송편을 주마기로,

송편 얻어먹을 욕심에,”

[중모리] “엎져 기어 나갈 적으, 뒤엣 놈 떨어져 앞에 와 서고,

그 뒤엣 놈 떨어져 앞에 와 서고, 담 담 놈 떨어져 앞에 와 서서,

한정없이 기어가자 허니, 무릎이 모다 헤어지고 유혈이 낭자허엿기로

내가 욕설을 좀 허였더니,

송편일랑 고사허고 뺨만 죽게 때려주니,

송편 세 개만 허여주면, 한 개는 입에 물고, 두 개는 양손으 갈라 들고 조롱허여 가면서 막을라요.”

* 세 개. 목적대로 하는 것 하나, 양손을 쥐고 자랑질 할 것까지 다 채운 상태.

 

2-5.

494. [진양조] “시르렁 실근. 톱질이야. 에여루, 톱질이로고나.

몹쓸년의 팔자로구나. 원수놈의 가난이로구나.

어떤 사람 팔자 좋아 일대영화 부귀헌디, 이놈이 팔자는 어이허여 박을 타서 먹고 사느냐?

에여루, 당거 주소. 이 박을 타거들랑 아무 것도 나오지를 말고, 밥 한 통만 나오너라. 평생의 포한이로구나.”

 

500.[아니리] 궤 두 짝을 열고 보니, 한 궤에는 쌀이 하나 수북히 들었는디,

궤 뚜껑 속에 가 이 쌀은 백년을 두고 퍼내도 굴지 않는 ‘취지무궁지미’라 써 있으며,

또 한 줄지 않는 ‘용지불갈지전’이라 하였거늘,

흥보가 좋아라고 궤 두짝을 떨어 붓기를 시작을 허는디

 

2-6. [휘모리] 흥보가 좋아라고, 흥보가 좋아라고,

궤 두짝을 떨어 붓고 닫쳐놨다 열고보면, 도로 하나 그득허고,

돈과 쌀을 떨어 붓고 닫쳐놨다 열고 보면, 도로하나 그뜩,

툭툭 떨고 돌아섰다, 돌아보면 도로 하나 그뜩하고, 떨어 붓고 나면 도로 수북,

떨어 붓고 나면 도로 그뜩.

“아이고, 좋아 죽겄다! 일년 삼백육십일을 그저 꾸역꾸역 나오너라!”

홍보가 좋아라고, 흥보가 좋아라고, 돈 궤짝을 떨어 붓고 돌아섰다 돌아보면, 도로 하나 그뜩허고,

쌀 궤짝을 떨어 붓고 돌아섰다 돌아보면, 도로 하나 수북, 툭툭 떨고 돌아섰다, 돌아보면 도로 하나 그뜩하고, 떨어 붓고 나면 도로 수북, 떨어 붓고 나면 도로 그뜩.

* 이런 장면은 휘모리더라.

심봉사 눈뜨고, 다른 장님도 눈 뜨는 장면은 휘모리였는데.....

가장 바라는 장면은 흥이나는..... 심장박동이 빠른 장단에서 쏟아낸다.

 

501. [아니리] “자, 우리가 쌀 본 김에 밥 좀 해 먹고 궤짝을 떨어 붓든지, 박을 또 타든지 하자.

우리 권속이 몇이냐? 우리 내외, 자식놈들 스물아홉, 도통 서른하나로구나. 우리가 그렇게 굶주리다가 한앞에 한 섬씩덜 먹어? 쌀 서른한 섬만 밥을 지어라.”

동네 가마솥 있는 집만 쫒아다니며, 꼬두밥 찌듯 쪄서 삯꾼을 사가지고, 밥을 져다 붓고, 져다 붓고 헌 것이,

거짓말 좀 보태면, 밥 더미가 남산 더미만허든 것이었다.

......... 자식들 찾느라고 야단이 났는디, 조꼼 있다가 보니, 이놈들이 밥 속에서 튕기쳐 나오는디, 어찌허여 밥 속에서 나오게 되았는고 허니,

이놈들이 어떻게 밥에 환장이 되었던지,

‘밥 먹어라!’ 소리에 ‘우’ 밥 속에 가 총 철환 백이듯 콱 백여가지고, 당창 벌거지 콧속 파먹듯 속에서 먹어 나오는 것이었다.

 

502.[자진모리] “세상 인심 간사허여 추세를 헌다헌들, 너같이 심할쏘냐?

세도집 부자집만 기어코 찾어가서 먹다먹다 못 다 먹으면, 되야지, 개를 주고 떼거위, 학두루미와 심지어 오리테를 모두 다 멕이고 사흔 나흘 예사 굶어,

뱃가죽이 등에 붙고, 갈빗대가 따로 나서, 누 눈이 컴컴허고, 두 귀가 멍멍허여,

누웠다 일어나면 정신이 아찔아찔, 앉었다 얼어서면 두 다리가 벌렁벌렁,

말라 죽게 되었으되 찾는 일 전혀 없고, 냄새도 안 맡이니, 그럴 수가 있단 말이냐?”

에라, 이 괘씸한 손, 그런 법이 없으니라!”

* 있는 집과 없는 집 묘사

 

503. [휘모리] 홍보가 좋아라고, 홍보가 좋아라고, 밥을 먹는다.

밥을 뭉쳐 공중에다 던져 놓고 받어 먹고, 던져 놓고 받어 먹고, 던져 놓고 받어 먹고, 던져 놓고 받어 먹고, 던져 놓고 받어 먹고, 던져 놓고 받어 먹고, 던져 놓고 받어 먹고.

배가 점점 불러오니, 손이 차아 틀어진다.

밥을 뭉쳐 궁중에다 던져 놓고 받어 먹고, 밥을 뭉쳐 공중에다 던져 놓고 받어 먹고, 던져 놓고 받어 먹고, 던져 놓고 받어 먹고, 홍보가 밥을 먹다 죽는구나.

어찌 먹었던지, 눈언덕이 푹 꺼지고, 코가 뽀쪽허여지고, 아래턱이 축 늘어지고, 배꼽이 요강 꼭지 나오듯 쑥 솟아나와, 배꼽에서는 호초가루같은 때가 두굴두굴 굴러 내리고,

고개가 발딱 자드라져,

“아이고, 아제는 하릴없이 나 죽는다. 배 고픈 것보다 더 못 살것다.

아이고, 부자들이 배 불러서 어떻게 사는고?”

흥보 마누라 달려들어,

“아이고, 이게 웬 일이냐? 언제는 굶어죽게 생겼더니마는, 이제는 밥에 치어서 과부가 아아 아아 되네. 아이고, 이 자식들아! 너희 아버지 돌아가신다. 어서 와서 발상들 허여라!”

* 이 부분도 휘모리다.

 

504. [아니리] 이럴 지음에 흥보가 설사를 허는디, 궁둥이를 뿌비적 뿌비적 홱 틀어노니,

누런 똥줄기가 무지갯살같이 운봉 팔영재 너메까지 어떻게 뻗쳐놨던지,

지내가는 행인들이 보고는 황룡 올라간다고 모다 늘어서서 절을 꾸벅꾸벅 허든 것이었다.

* 지나치다. 그런데 이게 재미일 것 같다.

 

3-1.

507. [중모리] “........ 이 박을 타거들랑 은금보화만 나오너라.

이 박에서 나오는 보화는 우리 형님 갖다가 드릴란다.

시르렁 실근 시르렁 실근, 에어여루 당거 주소.”

* 흥보는 형님 생각을 한다.

 

[아니리] 흥보 마누래 기가 맥혀, 톱소리도 아니 맞고, 그 자리 퍽썩 주저앉더니마는 두 분에 눈물이 빙빙 돌며, “무엇이 어째요?”

[진양조] “나는 이 박 안 탈라요. 여보 영감, 행제간이라 다 잊었소?

동지섣달 설한풍의 자식들을 앞세우고 구박 당허여 나오든 일과

처자들을 굶겨놓고 찾아간 동생 피가 솟도록 쳐 보낸 일을 곽 속에 들어도 나는 못 잊겄네.

나는 이 박 안 탈라요. 나는, 나는 안 탈라요.”

흥보가 홰를 내어, “타지 마라, 이 계집아! 너 아니라도 내 혼자 탈란다. 답답허구나, 이 계집아, 형제는 불장노, 불숙원을 어이 그리 모르는가?

계집은 오늘 죽드라도 다시 구허면 계집이요, 형제는 일신이라,

우리 형님은 아차 한번 돌아가시면 얼굴인들 다시 볼 수가 있것는가?

타지밀어! 내 몰랐네, 내 몰랐어. 우리 마누라 속이 저리 답답헌 줄 정녕 나는 몰랐었네. 아이고, 형님!”

*나는 흥보 마누라가 좋다. 흥보보다 흥보 마누라가 훨씬 솔직하다.

 

3-5.

536. [아니리] “너 형제 윤기 알지? 형제는 일신이 아니냐?” 흥보가 이 말을 들으니, 형님에게 이런 말씀 듣기 평생의 처음이라, 하도 마음에 감격허여 눈물이 빙 돌며, 목이 메어 대답허되,

“형님 이를 말씀이오리까?”

“음 그렇다면 네 세간이 내 세간이요.”

“예.”

“내 세간이 내 세간이 아니냐?”

“예.”

“이놈아, 대답을 똑똑히 해라.”

“예, 예.”

* 흥보는 정말 세상사는 일을 모르는 사람이다. 어렸을 적에 어린이 프로그램에서 흥보전의 흥보과 놀보를 비판하는 일을 본 적이 있었는데, 흥보는 놀보에 비해 엄청 비판을 받았었다. 여기까지 나오는 흥보의 모습은 실제적인 면에서, 현실생활에서 무능하고, 무책임하고, 생각없고 남의 말 주워 섬기는 인간이다. 그 말에 갇혀 옆에 있는 현실 속의 여자인 마누라 속을 타게 만들고, 의견 충돌할 때, 가장이다 윤리다 뭐다 내세워 화를 내는 인간.

 

3-6.

539. [아니리] “아니, 그래, 제비다리를 부지르면 박시를 물어와?”

“부지른 것이 아니오라, 그놈이 날기 공부허다가 떨어져 다리가 부러진 것을 동여줬어요.

그래서 그 제비가 박씨를 심어가지고, 그 박통 속에서 세간과 전곡이 나와서 부자가 된 것이옵지,

무슨 도적질을 했사오리까?”

놀보가 가만히 듣다가 허는 말이, “거 안 떨어지면 어쩔 것이냐? 다리를 부질러야지. ..........”

 

4-1.

547. [자진모리] “어, 이놈의 구렝이 기다리기가 제비 기다리기보담 훨씬 더 힘이 드는 걸.”

구렝이는 오지 않고, 제비는 날게 되니,

‘저것 날러가 버리면 십년공부 허사로다. 에라, 내가 구렝이 노릇을 할밖에 수가 없다.’

혀를 널름널름하면서 구렝이 형용을 허고,

엉금 엉금 엉금 엉금 엉금 기어들어가, 제비새끼 집어내 두 다리 직끈 부지르더니,

마루에 선뜻 던져놓고, 모르는 체 돌아서 뒷짐지고 거닐면서, 목소리 크게 내어 풍월 한 수를 읊는구나.

 

4-4.

559.[아니리] 조그만한 주머니 하나를 내어주며,

“너야 무얼로 채우던지, 이 주머니만 채워 오너라.”

놀보 놈 생각에,

‘저 냥반 저 억지에 많이 달라 허거드면 이 일을 어찌 할꼬?’

잔뜩 염려허였다가, 주머니만 채와 오라니 마음에 하도 기뻐,

“예. 그리 허오리다.”

주머니를 받어 들고 제 방으로 들어가, 엽전 가뜩 담긴 주머니를 그 주머니에다 대고 조르르르르르르 부어노니, 놀보 돈주머니는 홀쪽하니 없어졌는디,

샌님이 준 주머니는 여전히 아무시랑토 않고 가뿐헌지라.

* 놀보는 넣으면 없어지는 주머니를 받았다. 화수분과는 반대다.

흥보는 이전이 생활이 넣으면 없어지는 입을 가졌는데, 이제는 계속 쏟아내도 다시 채워지는 궤짝을 받았다. 이제는 반대로 되어 놀보는 없어지고, 흥보는 불어난다.

 

4-6.

572. [자진모리] 그중에도 두목 있어 영좌라 허는 영감 나이 오십 남짓허고, 헌 것에 벌잇줄이요.

헌 중치막에 방울띠며, 한 발 된 담뱃대를 한 중둥 불끈 쥐고 점잖하게 나오는디,

다년간 과객질에 공것 먹는 수가 터져 힘도 별로 안 딜이고 예상으로 허는 수작,

사람 죽일 말이로다.

“왜 이리들 요란허냐? 한 달이나 두 달 내에 끌날 일이 아닌 것을, 어이 그리 성급헌고?

아무 말도 다시 말고 내 영대로 시행하라.”

* 빌어먹는 것도 하루이틀도 아니고, 한두달내로 끝낼 것도 아니라는 저 말이 귀신같다.

 

584. “네 이놈, 졸보 놈아! 네가 나를 모르리라.

천하가 말세 되어 심국시절이 분분헐 제,

유관장 세영웅이 도원에 결의허고,

한실을 바로잡자 천하에 횡행허든 삼형제 중에 말째 되고,

오호대장에 둘째 되던 탁군 따 장익덕을 아느냐? 모르느냐? 목을 늘여 창 받어라!”

이렇듯 호통하니 벼럭이 떨어진 듯, 박타든 삯꾼들은 창자 터져 죽은 놈이 여러 명이 되는 판이요,

놀보는 혼비백산 기절하야 장군 앞에 가 뒤처지는구나.

* 왜 이 이야기에 장비가 나올까? 재미의 요소와 함께, 무서운 사람의 전형으로 잘 알려진 장비가 등장한 게 아닐까한다.

그리스 로마신화를 보면 어떤 순간에 어느 신이 개입하는가하는 것도 이와 비슷해 보인다. 그 인물이 그 특징을 모두 부여 받아서 등장하는 게 아닐까한다.

 

597. [엇중모리] 놀부고 그날부터 쾌히 개과천선허여 언충신, 행독경으로 대인 접물 진실허고,

흥보의 착헌 마음 극진히 형을 위로허며, 저의 세간 반분허여 형우제공 지내는 양

뉘아니 부러허며, 뉘 아니 칭찬허리?

도원의 남은 의기 천고에 유전 빛났더라.

그 뒤야 뉘 알리요?

언재무궁이나, 고수팔도 아플 것이요, 김연수 목도 아플 지경이니, 어질더질.

* 판소리는 노래로 하는 이야기

현대에는 극의 요소가 많이 가미되어 새로운 이야기를 구성허여 1인극, 2인극이 공연을 만든다. 창작극단의 <방디기텬>, 이자람의 <사천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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