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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15일 15시 14분 등록

러셀 자서전 ()

버트런드 러셀 지음/송은경 옮김, 사회평론

 

 

1.     저자에 대하여

 

 

1950년 말 러셀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되자 미국인들은 분노했다. 한 신학자는 "어떻게 이런 인간한테 노벨상을 줄 수 있단 말인가" 하며 탄식을 했다고 한다.  영광스런 상을 그에게 안겨준 것은 1929년에 출간된 < 결혼과 도덕>이란 책이었다. 러셀은 이 책에서 성과 결혼관련   자신의 생각을 소신껏 얘기한다. 혼전 성관계는 잘못된 것이 아니며, 성인 남녀간의 성관계는 자유의사에 결정되는 사적인 것으로 여론이나 법률이 관여할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또한, 불가피한 상황에서 성매매의 필요성과 성매매 여성들의 불공정한 대우, 성을 죄악시 하는 대신 먹는 것에 탐닉하는 청교도들의 그릇된 성에 대한 인식을 지적했다. 당시 청교도적 사고방식이 미국인들의 삶에 뿌리깊게 박혀 있는 것을 감안하면 당시로서는 러셀의 생각이 상당히 파격적인 것이었다.

 

러셀은 성과 결혼에 대한 이러한 자신의 생각을 그의 삶에 그대로 실천했다. 네 번의 결혼도 그렇고, 두 번째 부인인 도라 와는 서로 각자의 연애 파트너와 한집에서 함께 사는 막장 부부까지 갔을 정도였다.(결국 러셀도 실제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도라와 결별하게 되지만) 각자의 애인과 한 집에서 함께 지낸 것은 정상적이라고 볼 순 없지만 러셀의 성에 대한 생각은 점잔 빼는 다수의 일반 대중을 대변하는 측면도 있었다. 일부 사람은 그의 결혼과 여성편력 때문에 그를 호색가이고 외설가라고 폄하하지만 그것은 사실을 왜곡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낡은 인습으로부터 자유로운 성과 결혼을 주장했고 이에는 엄격한 자기 통제와 사회적 책임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버트런드 아서 윌리암 러셀(Bertrand Arthur William Russell 1872~1970)을 한 단어로 표현하기에는 불가하다. 거의 1 세기를 살다간 사람으로 앞서 언급한 개인사외에, 러셀 백작 3세로서 영국 상원의원 역임, 징집 반대운동과 반핵 시민 불복종 운동으로 투옥, 영국과 미국에서 교수직에서 해임 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20세기 최대의 사상가로 불리며 철학자, 수학자, 논리학자, 과학자, 그리고 사회사상가로서 명성을 날렸다. <런던 타임지>“ 500년 만에 나올까 말까 한 위대한 인물이라고 극찬할 정도였다. 저자는 명성 못지않게 악명도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기 언급한 사회적, 정치적 분쟁에 참여한 까닭이다. 거의 60년 동안 삶에 대한 사색과 성찰을 에세이로 쓰며 대중에게 친숙한 인물이 되었으며 때로는 성문란이유로 추문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러셀은 철학, 수학, 사회학, 교육, 여성, 정치, 예술, 종교를 망라한 분야에 100권이 넘는 저서와 수 백 편이 넘는 논문과 에세이를 남겼다. 스스로를 무정부주의자, 좌파, 무신론자라 불렀으며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운동을 전개했다.

 

1)    생애

 

유년시절

 

저자는 1872 5 18일 영국 몬마우스셔에서 엠벌리 러셀 백작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조부는 존 러셀(John Russell) 1846~ 1852, 1865~ 1866년 두 번의 수상을 역임했고, 빅토리아 여왕에 의해 백작으로 봉해졌다. 외조부는 엘덜리 스텐리(Stanley of Alderley)경으로 조부의 정치적 동지였다. 러셀의 부모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이고 진보적인 인물이었다. 아버지는 자유 진보적 지식인인 존 스튜어트 밀과 가까이 지냈는데 그의 영향으로 피임, 여성 참정권 등 여성의 권리를   주장 하기도 했다. 버티(Bertie)라는 애칭으로 불린 러셀의 유년시절은 너무 외로웠다. 2세 때, 어머니와 누이가 디프테리아로 사망하며, 부친 마저 4세 때, 기관지염으로 세상을 떠난다.

 

청교도적 신앙심과 도덕을 겸비한 조모 밑에서 양육되었는데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해 늘 외로움을 타는 아이였다. 그가 평생 동안 사랑을 갈망했고 그의 수많은 여성 편력은 그의 유년기. 청소년기의 외로움에서 기인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러셀은 공교육 대신 11세부터 16세까지 가정교사로부터 사교육을 받았으며 11살때는 형으로부터 유클리드 기하학을 받을 정도로 수학적 재능이 뛰어났다.

 

대학시절, 결혼

 

1890년 수학을 공부하기 위해 케임브리지 대학에 입학한 후, 다양한 친구들과 사귀기 시작하며 비밀 결사조직인 사도들에 가입한다. 이 시기에 수학 외에 철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1893년 학부를 졸업하고 철학을 심도 있게 공부한다. 철학과에서 최우등상을 받으며 6년간 펠로우쉽을 받는다. 이 시기에 아버지로 물려받은 2만 파운드의 재산으로 할머니로부터 재정적인 독립을 하게 된다.

 

성인이 된 러셀은 여성에 관심을 갖게 된다. 다섯 살 연상의 미국인 퀘이커교도인 엘리스(Alys Pearshall Smith)를 만나 할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1894년 결혼을 한다. 결혼 후 베를린에 머물면서 독일 사회 민주주의를 연구하고 사회주의자임을 표방한다. 영국 귀족사회에서는 수용하기 힘든 사고였다.  1896년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하고 자신의 첫 저작 <독일 사회민주주의>를 바탕으로 브린모어 대학과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 강연을 한다

 

1902년 러셀은 엘리스에 대한 사랑이 갑자기 식으면서 8년간 형식상의 결혼을 유지한다. 이 시기에 러셀은 화이트 헤드와 공동으로 <프린키피아>를 저술하는데 매진한다. 1906년 여성 참정권협회에 가입한 후 1907년 윔블던에서 여성 참정권 협회의 입장을 알리고자 하원 보궐 선거에 자유당 후보로 출마하기도 한다. 1909 <프린키피아>저술이 완성 되고, 1910년 가을부터 5년간 케임브리지 강사직을 제의 받아 트리니티 칼리지에 숙소가 제공되면서 엘리스 곁을 떠난다. 엘리스는 죽는 날까지 러셀에 대한 사랑을 간직한 채 살았다고 한다. (자서전 그녀의 편지에 러셀을 향한 그녀의 애틋한 사랑이 담겨져 있다)

 

러셀의 여인들

 

<프린키피아> 원고가 완성 될 무렵, 러셀은 귀족 출신의 오토라인 모렐( Ottoline Morrell)을 알게되고 1년 뒤인 1910 년 연인관계로 발전한다. 러셀은 모렐에게 결혼을 제의했으나 그녀는 정치인인 남편과 이혼을 원치 않는다. 모렐은 러셀과 연인관계를 유지하면서 다른 정부들과 만나는데  러셀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한다. 모렐에게 러셀은 많은 정부 중의 한 사람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1912년이 되면서 모렐과의 관계가 소원해 지기 시작한다. 그럴수록 모렐을 향한 러셀의 집착은 커져만 갔다. 이 시기에 러셀의 출중한 제자인 비트겐 슈타인이 러셀 이론에 대한 혹독한 비판으로 마음의 상처까지 겹치면서 그는 더욱 혼란스러운 상태가 된다.

 

1914 3월 러셀은 하버드 대학 방문교수로 미국으로 가게 된다. 미국체류 중에 28세의 작가 지망생 헬렌 더들리를 만나 가까워 진다. 러셀과의 연인관계를 끊을려고 했던 모렐은 헬렌과의 관계를 알자 다시금 러셀의 마음을 돌리려 한다. 러셀은 모렐의 시도에 어이없이 무너져 그들의 관계는 다시 회복된다. 러셀과 영국에서 새로운 삶을 꿈꿨던 헬렌은 러셀의 변심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헬렌은 이 충격 때문인지 미국으로 돌아간 후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며 불행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라이벌이 사라진 모렐은 다시 러셀과의 관계가 식어진다.

 

외로움을 느낀 러셀은 미국방문 때 하버드 대학에서 철학과 대학원생으로 자신의 수업을 들은 TS 엘리엇의 부인 비비엔과 깊은 연애를 한 것으로 여겨진다. 동시에 외로움을 달래줄 연인으로 여배우 콘스탄스 몰레슨과 사랑에 빠진다.

 

징집 반대 운동

 

1916년 제정된 영국 병역법에 따르면 18~41세의 모든 영국 남성은 군복무 의무가 있었다. 당시 43세의 러셀은 병역 거부자 들의 징집 반대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이로 인해, 하버드 대학의 방문 교수 기회를 박탈당하고 동시에 영국 정부는 국가 방위법 위반자인 러셀의 여권 발급을 거절한다.  또한 트리니티 대학으로부터 강사직을 박탈당한다.

 

1919년 러셀은 25세의 케임브리지 펠로우였던 도라 불랙이라는 새 애인을 만난다.  그 다음해 러셀은 중국의 북경 대학으로부터 1년간 방문교수직을 제의 받고 도라와 함께 중국에 간다. 중국을 문명사회라고 극찬하며 철학과 논리학을 강의한다. 그 학생 중에 20 대 중반의 마오쩌둥도 있었다. 중국 체류 중에 도라는 임신을 하게 되고 1921년 영국으로 돌아와 러셀은 엘리스와의 합법적으로 이혼를 하고 도라와 결혼한다. 그해 11월에 아들을, 2년 후에 캐서린이 태어난다.

 

계속되는 이혼과 재혼

 

50이 다 되어 아버지가 된 러셀은 보다 나은 교육환경을 자식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교수직을 그만두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프리랜서 작가로 전환한다. 이미 대학에서는 비트겐 슈타인이 논리학과 수리철학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이고 있어 그 분야에서 그를 능가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인 이유도 있었다.

이 시기, 1920년대 이후 러셀은 집필과 강연, 반전 평화 운동으로 저명인사가 되었지만 학계에서는 수준 높은 철학자로서 글을 쓰지 못하게 된다. 상업적으로 성공하여 부는 성취 했지만   철학자로의 학문적 깊이는 없게 된 것이다.

 

영국의 기존 교육방식에 만족을 못해 그는 1927년 자녀 교육을 위해 비컨 힐 스쿨이란 학교를 설립한다. 자연을 느끼면 배우는 학교로 실험적인 대안학교를 시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성공을 하지 못했다. 

러셀과 도라 부부는 러셀의 부모가 그랬던 것처럼 자유 분방한 진보주의자였다. 성의 자유를 주장하고 부부는 서로간의 외도를 묵인하기로 합의한다. 하지만 실제의 외도 상황은 부부 사이의 위기를 가져왔다. 아내의 외도가 공개되자 러셀도 아들의 불어교사와 관계를 갖는다. 심지어 각각 외도 파트너를 불러들여 같이 살게 된다. ‘ 콩가루 집안이다. 상식을 초월한 이들 결혼 관계는 막장으로 치닫는다. 러셀은 이런 상황을 견디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라와의 결혼관계를 유지한다. 왜냐하면, 러셀은 두 자녀를 위해 도라와의 결별을 원하지 않았고 더 나아가 자신이 늘 강연해서 주장했던 간통이 이혼의 이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대중에게 행동으로 입증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두 아이들은 대안 교육에 제대로 적응을 하지 못해 자신이 겪었던 것처럼 소외와 사랑을 받지 못하게 된다.

도라는 미국여행 중에 한 좌파 저널리스트와 사랑에 빠지면서 급기야 그의 아이를 임신하며 러셀은 아기 낳는 것을 동의한다.  러셀 또한 가정교사였던 옥스포드 학생이던 20세의 파트리시아(피터) 스펜스와 관계를 맺으며, 결국에는 두 사람 모두 정부와 아이들과 같이 함께 사는 비정상적인 가정을 이루게 된다.

 

파트리시아가 임신하자 러셀은 1932년 도라와 이혼소송을 제기하며 긴 시간이 걸려 1935년에  두 사람 다 자식에 대한 양육권을 가질 수 없는 판결이 나면서 파국으로 끝이 난다.  1936년 러셀은 파트리시아와 세 번째 결혼을 한다. 그들 사이에 아들이 태어나며 훗날 작위를 계승해 러셀 백작 5세가 된다.

 

미국, 다시 영국으로

 

시카고 대학에서 1년 계약 제의 받은 것을 계기로 그는 시카고 대, UCLA에서 교수를 지낸다. 그리고 뉴욕 시립대학의 교수직을 받아 수락 했는데 러셀이 무신론자이고 그의 문란한 성 도덕에 반대하는 기독교계, 학부모의 반대로 무산된다. 그 후 철학자 듀이 도움을 받아 1940년부터 반스 재단에서 강의를 하는 기회를 갖는다. 이 기간에 <서양 철학사>를 저술하여 미국에서 베스트 셀러가 되며 경제적 부담에서 자유롭게 된다. 1944 6년간의 미국 생활을 끝내고 모교인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펠오우십을 제의 받아 영국으로 돌아간다.

 

1949년 러셀과의 결혼에 만족을 하지 못한 파트리시아는 11세된 아들을 데리고 나가면서 별거에 들어간다. 1949년 메리트 훈장을 받고 아들 존의 가족과 함께 산다. 존은 무명 작가로 경제력이 없자 결국 아내가 다른 남자를 만나 그를 떠나자 존은 정신병에 걸린다. 후에 존은 러셀 백작 4세가 되고 그가 아들이 없이 죽자 파트리시아가 낳은 콘래드가 작위를 계승하게 된다.

 

러셀은 1950년 노벨문학상을 받으면서 명성과 함께 막대한 상금을 받게 되어 여생을 편안히 보낼 수 있게 되었고 강연도 하게 된다. 미국에서 강연을 하면서 29세 연하인 에디스 핀치와 사랑에 빠져 1952 80세의 나이에 네 번째 결혼을 하게 된다.

 

반핵 운동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러셀은 핵 전쟁 가능성을 우려해 반핵운동에 매진한다. 강대국들의 핵무장을 저지하기위해 시민불복종 운동을 전개하였으며 이로 인해 1961년 투옥되기도 한다.

 

기관지염으로 고생하다 1970 22, 마지막 부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98세의 삶을 마감한다.

 

주요 저서

 

<서양 철학사>,<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의미와 진리의 탐구>, <러셀 인생론>,<권위와 개인>, <게으름에 대한 찬양>, <결혼과 도덕>, <나는 이렇게 철학을 하였다>,<행복의 정복> 등 다수.

 

2)    러셀이 남긴 것

 

20세기 철학을 혁신하는 데 중심적 역할을 하였다. ‘인류의 현자이며 교사라고 불리는데 이는 대중에게 삶의 철학을 제시했다.

 

러셀의 문체는 간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자신의 생각을 압축적으로 표현하다. 언어구사력과 논리적인 사고력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그의 글의 행간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정독을 해야 한다. 대충 읽고 건너뛰면 그의 사상의 핵심을 놓치고 마는 우를 범한다. 러셀의 관심사는 인간이었다. 정치, 사회, 경제, 종교, 교육 등의 모든 분야에서 인간이 부당하게 대우를 받지 않고 압제를 받지 않는 그런 세상을 원했다. 그는 인류의 행복이 물질 문명의 발달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지성, 정신의 진보를 중요하게 생각을 했다.

 

러셀은 그의 책 어느 서문에서 나는 근엄하게 굴어야만 진지한 사람으로 대접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라고 말했다. 자신이 보기에 사람들 대부분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근엄함 속에 감춰진 사기와 위장을 자주 발견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 근엄함에 맞서기 위해서는 재치라고 했다.

그는 죽기 1년 전인 97세에  지금 이 세계에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온정과 너그러움이고, 가장 큰 해악을 끼치는 것은 대다수의 인류를 부도덕하다고 규탄하는 가혹하고 독단적인 도덕이다라고 했다.  그가 죽은 지 40년이 넘었지만 지금도 우리에겐 자신과 타인을 위한 따뜻한 마음과 누구든지 품어질 수 있는 그 관대함, 온정과 너그러움이 필요하다. 

 

 

2.     마음에 드는 문구 유 첨

 

 

3.     저자라면

 

책의 주제와 내용

 

책의 서문에서 저자는 간결하고 명확하게 자신의 95세의 삶을 정의한다. 저자는 사랑, 지식, 그리고 인류의 고통에 대한 연민이란 세가지 열정에 삶을 불태웠다.  자서전은 그 세가지 열정을 찾고 성취하고 그리고 몸소 실천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유년기와 청년기의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수학에 열중하며 이 수학에 대한 열정은 자살의 충동도 막아준다. 지식에 대한 열정이 자살까지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유아기 때 부모를 잃은 데서 오는 처절하고 지독한 외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성년이 되자 사랑에 탐닉하게 된다. 동시에 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인류에 대한 고통에 눈을 뜨게 된다. 저자는 인류에 대한 사랑, 즉 인도주의에 입각하여 지배층의 권위, 우상, 고정관념, 구태, 인습, 도덕과 과감하게 맞서 싸우는 것을 보여준다.

 

 

P 415  - 나는 충동을 소유욕의 충동과 창조적인 충동으로 이분하고, 창조적인 충동 위에 세워지는 것을 최선의 삶이라고 보았다. 소유욕의 충동이 구체화된 예로는 국가, 전쟁, 빈곤을 들었고, 창조적인 충동이 구현된 예로는 교육, 결혼, 종교를 꼽았다. 나는 창조성의 해방이 개혁의 원칙이 되어야 한다고 확신했다.

 

저자는 교육, 결혼, 종교에서 해방되는 것이 개혁의 원칙이라고 보았다. 다수가 선택하는 정해진 삶을 가지 않았다. 자신은 획일적인 공교육을 받지 않았으며 자신의 두 자식도 자신이 직접세운 대안학교에 보내는 창조적 모험을 시도했다. 결혼 또한 사랑이 없는 결혼관계 유지는 무의미한 것으로 보아 결별을 하고, 한 배우자만을 향한 사랑은 집착에 불과해 자유 연애를 즐겼다. 종교 또한 행동과 사고를 경직시켜 개인의 자유를 구속한다고 보고 종교에서 자유로워 졌다. 저자처럼 타인의 시선이나 구태와 인습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실행에 옮길 때 자기 개혁을 이룰 수 있다. 물론,저자는 선택에 대한 결과는 자신이 감당할 몫이며 자신의 책임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다.

 

P 547 –나는 점잔 빼는 사람들을 존경하지 않았으며 겉으로만 그런 척했다. …, 나는 위선과 거짓을 증오했다. 나는 삶과 진정한 사람들을 사랑했으며, 우리가 진실로 진정한 사람들을 사랑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사기꾼들을 제거하고 싶었다. 나는 웃음과 자발성을 믿었으며, 일단 진실함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면 천성에 모든 것을 맡기고 사람들 속에서 진실한 선을 이끌어내고자 했다

 

근엄하고 점잔 빼는 사람들의 내면에는 사기와 위선이 자리잡고 있다. 조건과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면 그 마각을 드러낸다. 진실함이 묻어 나오지 않는 사람은 신뢰를 할 수 없으며 그러한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사회와 세상은 메말라 진다. 근엄함과 대항하기 위해서 저자는 재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거기에는 웃음과 위트가 있다.

 

영향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한 그의 지식과 사랑에 대한 열정, 열정으로 머무르지 않고 행동으로 실천한 저자의 모습에서 몸으로 실천하는 것만이 자신의 운명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새삼 실감했다.

 

네 번의 결혼과 연애를 통해 그는 마지막 사랑인 이디스(Edith)로부터 비로소 평화와 안정을 찾는다. 결국은 누구든 자신을 편안하게 감싸주고 이해해 주는 사람한테 심신의 안식처를 찾는 것 같다.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 양심을 저버리지 않고 불의와 인습, 권력, 권위, 도덕에 맞서 싸운 그의 용기에서 참된 지식인의 모습을 본다.

 

사랑을 위한 지칠 줄 모르는 정력적인 삶, 80이 다 된 나이에 무려 30세 가까이 차이 나는 연하의 여자와 결혼을 감행하는 그 무모할 정도의 열정이 부럽다. 타인이 어떻게 보든 자신의 인생을 사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끊임없는 저술과 글쓰기는 그의 삶의 일부였다. 그리고 그의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문체에서 그가 얼마나 진실한 사람인지를 보여준다.

 

책의 장점

 

자서전은 자기 중심으로 기록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다. 그럼으로써 저자를 둘러싼 사실이나 상황들이 왜곡되고 과장되곤 한다. 러셀은 이를 과감히 벗어난다. 자신이 걸어온 인생의 중요한 시기에 겪었던 감정과 상황들을 솔직하게 기술한다.

 

객관성과 사실성을 확보하기 위해 각 시기 별로 당시에 가깝게 지냈던 지인, 연인, 가족, 친척 등과 오고 간 방대한 양의 편지를 자서전에 첨가한다. 사랑을 하면서 자신의 치부와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그의 사생활을 비난하는 어느 독자의 편지도 함께 들어 있다. TS 엘리엇, 비트겐슈타인, 마오쩌뚱,아인 슈타인(하권) 등 역사적 인물들이 등장해 현장감과 생동감을 준다.

 

아쉬운 점

 

방대한 양의 편지가 실려 집중하는 데 장애물이 되는 느낌이다.  사실감과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중간에 삽입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사랑하는 연인한테 보낸 편지가 너무 많고 자신의 삶과 관계하지 않은 편지도 적지 않게 발견된다. 저자가 직접 간단히 기술해도 문제는 없어 보인다.

 

두 번째 부인인 도라와의 결혼생활 부문을 많이 생략한 것 같다. 도라가 정부와, 정부 사이에 낳은 자식, 러셀이 아들 가정교사와 함께 한 집에서 지내는 부문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다. 자유 연애를 주장하고 간통은 이혼의 원인이 될 수 없다는 자신의 주장을 굽힐 수 없기 때문에 도라의 문란한 성생활과 혼외임신을 용인했다고 한다. 비정상적인 사생활까지 자서전에 쓰기에는 저자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 같다.

 

<참고 자료>

 

-<버트런드 러셀의 삶과 철학> 박병철 지음, 서광사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 버트런드 러셀 지음, 이순희 옮김,

- <러셀> A.C 그레일링 지음, 우정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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