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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16일 02시 17분 등록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9기 연구원 15주차(김대수)

러셀 자서전()(버틀런드 러셀, 사회평론) “

 

1. 저자소개

 거짓과 더불어 제정신으로 사느니, 진실과 더불어 미치는 쪽을 택하고 싶다.”

버트런드 러셀(Bertrand Arther William Ruussell,1872.5.18~1970.2.2).

20세기의 지성, 수학은 전공한 철학자이자 논리학자이다. 하지만 그를 단순히 철학자나 논리학자로 한정하는데는 무리가 있다. 보수적인 영국 귀족집안 출신의 자제인 그는 수학자로 순수학문에 열정을 보여주었지만, 철학, 과학, 사회학, 교육, 정치, 예술과 종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저작활동을 하였고, 1950년에는 권위와 개인이라는 책으로 노벨문학상까지 수상하였다. 노벨문학상이라 하면 보통은 소설가와 같은 전문작가들이 수상하는 것 아닌가. 그는 또한 여성해방운동과 평화주의자로서 제1차 세계대전 동안 전쟁을 반대하는 운동을 하기도 했다 결국 그로 인해 1918년에는 6개월간 옥중생활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수리철학 입문 Introduction to Mathematical Philosophy>(1919)를 썼으며 <정신분석>을 쓰기 위한 공부를 시작했다. 그는 진실이 사회적 권위와 제도에 억압을 받는 것을 참지 못하는 성미를 지녔다. 한 예로 그는 가장 강력하게 여성해방 운동의 선두에 선 일화가 있다.  하지만 그 당시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은 여성의 참정권을 단호하게 반대하는 상황이었고, 러셀은 왕실로부터 하사 받은 대저택에서 살고 있었다. 그의 강직함을 보여주는 일화이다.

러셀은 당대의 지성답게 수많은 거물들과 교류하였다. 천재 철학자 비트겐슈타인, ‘황무지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영국의 계관시인 T.S. 엘리엇과 같은 제자들을 비롯하여 스승이자 친구였던 화이트헤드와는 <수학의 원리>를 함께 집필하였다.

보수적인 귀족 사회에서도 사랑에 대한 열정이 누구보다 컸으며, 첫사랑 엘리스를 비롯하여 1919년에 만난 도라 블랙 등과 총 세번의 결혼을 하였고 많은 여인들을 사랑하고 그들과 사랑을 나누었다.

러셀은 영국의 백작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무정부주의자, 좌파, 회의적 무신로자로 자처하면서 학문뿐 아니라 정치적 활동과 대중 계몽, 교육 등에 힘을 쏟았다. 반전운동, 핵무장 반대운동부터 쿠바 위기와 중국-인도 국경분쟁에도 적극 개입하였다. 1927년에는 아내 도라와 함께 피터즈필드  근처 텔리그래프 하우스에 실험학교를 세웠고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때 까지 아내 도라에 의해 운영되기도 했다.

서양철학사로 유명한 러셀을 단순히 논리학자또는 철학자로 한정짖는 것은 그의 생의 일부분만을 보는 것이다. 수학과 철학에 대한 책을 썼고, 행복과 게으름에 대한 책도 썼다. 또한 이론과 책 속에 파묻혀 살아온 학자가 아니라, 자신의 주관을 가지고 세상으로 나와 그에 맞게 사회구성원의 일원으로서 행동하였다. 여성의 지위를 되찾을 수 있도록 앞장섰고, 전쟁과 핵무장운동을 반대하였다. 그 뿐 아니라, 강단에서든 집필을 통해서든 사람들에게 진정한 지식과 지혜를 전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서양철학사의 경우, 펜실베니아에 있는 반즈 재단과 계약을 맺고 5년간 강의를 한 내용으로 집필된 명저이다. 열정적이고 진실되며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인간적이었던 그, 그 열정을 통해 이론과 실제를 넘나들며 많은 영향을 준 그, 그가 20세기의 지성이라 불리는 이유를 알 수 있는 그의 생이다.

<주요 저서>

라이프니츠 철학에 대한 비판적 해설(1900)

자유인의 기도(1902)

수학의 원리(1903)

수리철학 입문(1919)

볼셰비즘의 이론과 실천(1920)

정신분석(1921)

원자의 ABC(1923)

상대성의 ABC(1925)

물질분석(1927)

결혼과 도덕(1929)

과학적 조망(1931)

교육과 사회질서(1932)

의미와 진리의 탐구(1940)

서양철학사(1945)

인간의 지식, 그 범위와 한계(1948)

나의 철학적 성장(1959) .

 

*출처 : 네이버 캐스트,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2. 마음에 무찔러 드는 글귀

1 1872~1914

나는 석양이 대지를 붉게 물들이고 구름을 금빛으로 바꾸는 것을 지켜 보았다. 바람 소리에 귀 기울였고 벗갯불에 좋아 날뛰기도 했다. 유년기를 거치면서 외로움도 커져갔고, 더불어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을 행여 만나려나 기대하다 절망하는 일도 많아졌다. 완전히 실의에 빠진 나를 구해준 것은 자연과 책과(좀더 나중에는) 수학이었다.(11)

프롤로그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나

단순하지만 누를 길 없이 강렬한 세 가지 열정이 내 인생을 지배해 왔으니,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에 대한 탐구욕, 인류의 고통에 대한 참기 힘든 연민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열정들이 마치 거센 바람과도 같이 나를 이리저리 몰고 다니며 깊은 고뇌의 대양위로 절망의 벼랑 끝으로 떠돌게 했다.(13)

나는 사랑을 찾아 헤매었다. 그 첫째 이유는 사랑이 희열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얼마나 대단한지 그 기쁨의 몇 시간을 위해서라면 남은 여생을 모두 바쳐도 좋으리라 생각한다. 두 번째 이유는 사랑이 외로움-이 세상 언저리에서, 저 깊고 깊은 차가운 무생명의 심연을 들여다보며 몸서리치돌록 만드는 그 지독한 외로움-을 덜어주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성인들과 시인들이 그려온 천국의 모습이 사랑의 결합 속에 있음을, 그것도 신비롭게 축소된 형태로 존재함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113)

사랑과 지식은 나름대로의 범위에서 천국으로 가는 길을 이끌어주었다. 그러나 늘 연민이 날 지상으로 되돌아오게 했다. 고통스러운 절규의 메아리들이 내 가슴을 울렸다. 굶주리는 아이들, 압제자에게 핍박받는 희생자들, 자식들에게 미운 짐이 되어버린 의지할 데 없는 노인들, 외로움과  궁핍과 고통 가득한 이 세계  전체가 인간의 삶을 지향해야 할 바를 비웃고 있다. 고통이 덜어지기를 갈망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해 나 역시 고통받고 있다. / 이 것이 내 삶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만일 기회가 주어진다면 기꺼이 다시 살아볼 것이다.(14)

1. 유년기 

내가  생생하게  기억하는 맨 처음 일은 1876 2월에 펨브로크 로지에 도착한 일이다.(15)

훗날 내가 어머니의 일기와 편지들을 보고 알게 된  사실이지만, 어머니는  정력적이고 생기 넘치며 재치 있고 사려깊은 분이셨던 게 분명하다. 아버지는 철학적이고 학문을 좋아하셨으며 속되지 않고 침울한 기질에 고지식한 분이셨다.(16)

나는 넓은 지평선과 거침없이 펼쳐지는 일몰에 익숙해졌다. 그리고 이후  나는 그 두가지 없이는 결코  행복하게 살 수 없었다.(23)

어린 시절에는 외부에서 주어진  일거리 없이 아이 마음대로 보내는 시간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순간적인 듯  보이지만 그 같이 아주 생생한 인상들을 형성하는 시간을 주기 때문이다.(24)

할머니가 볼 때는, 모든 감정이 제각기 권리를 가졌으므로 단순한 논리  따위의 냉정한 것들을 내세워 어느 감정이 다른 감정에 양보를 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부당했다.(26)

할머니께 결혼이란  것은 혼란스러운 제도였다. 남편과 아내는 분명 서로 사랑할 의무가  있지만, 그것은  너무  쉽게 행해서는  안되는 의무였다. 왜냐하면 성적 매력이 두 사람을 끌어당겼을 경우 점잖다고만 볼 수 없는 무엇인가가 있기 때문이다.(27)

할머니는 세속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으며 속된  영예를 생각하는 사람들을 경멸하셨다.(28)

그러나 돌이켜보면, 내 인생관의 형성에서 그 분이 지닌 중요성을 나이가 들수록 더 깊이 깨닫곤 했다. 그분의 두려움 없는 태도, 공공 정신, 인습에 대한 경멸, 다수의  의견에 대한 무관심이 내게는 늘 좋게 보였으며, 따라해 볼 만하다는 인상을 남겼다.(28)

즐거움을 누리는 인간의 능력은 해가  갈수록 줄어든다. 너도 지금은 저무는 하루를 즐기고 있지만, 오늘 같은 여름날의 즐거움은 두 번 다시 맛보지 못할 것이다.”(29)

애거서 아주머니는 펨브로크 로지의 어른들 중 가장 나이가 얼렸다. 실제로 나보다 열아홉 살 연상에 불과하여, 내가 그곳에 갔을 당시 아주머니는 스물두 살이었다.(32)

그러나 형의 개성이 너무도 강해, 형과 함께 얼마간 지내고 나면 숨통이 막힐 듯했다.  일생 동안 나는 형에 대해 애정과 두려움이 뒤섞인 태도를 견지했다.(36)

어린 시절을 통틀어 내게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시간은 정원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었으며 따라서 내 존재의 가장 강렬한 부분은 항시 고독했다. (44)

나는 깊은 생각을 남들에게 잘 말하지 않았고, 간혹 말하더라도 곧 후회하곤 했다.(44)

나는 자주 불려가 외할머니와 함께 점심을 먹곤 했는데, 음식은 맛있었지만 즐거웠던 것 같지는 않다. 외할머니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아무에게나 신랄하게 퍼붓는 혀를 가졌기 때문이다.(47)

스탠리 가문 기질을 물려받은 내 형은 외갓집 사람들을 좋아하고 러셀 집안 사람들을 싫어했다. 나는 러셀 집안을 좋아하고 스탠리 집안을 두려워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감정이 바뀌어갔다. 나는 수줍음과 감수성과 형이상학적 성향은 러셀 가문에서 물려받은 것이고, 정력과 건강과  이성적인  정신은 스탠리 가문에서 받은 것이다.  대체적으로 보자면 후자가 전자보다 나은 유산인 것 같다. (52)

나는 유클리드가 사물을 증명했다고 배웠는데, 그가 공리에서  출발했다는 것이  크게 실망스러웠다.(54)

나는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싫어했다. 아무도 쓰지 않는 말을 배우는 것은 어리석은 짓에 불과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제일 좋아한 것은 수학이었고, 수학 다음으로는 역사를 좋아했다.(55)

내게 지적 능력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부터 나는 할 수만 있다면 지적으로 중요한 일을 성취해 내리라 결심했고, 청년기를 통틀어 내 야망에 방해가 되는 그 어떤 것도 허용하지 않았다.(55)

나 또한 러셀과 같은, 그 외 다른 위인들과 같은 의지와 주관이 있었으면 좋겠다. 기질적으로 주변을 무시하고 살 수 있는 성격이 안되기 때문에, 주변 환경과 주변 사람의 성격과 기분을 맞추는데 필요 이상의 에너지를 쏟기도 한다. 가끔 그 정도가 심해 내가 원하는 것을 포기할 때도 있었다.

2. 청년기

그 시절에 내 감정이 어떠했던가를 기억해 내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지난 일을 아쉬워하는 태도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 진술하고자 최선을 다할 것이다.(59)

자유 연애야말로 유일한 합리적 제도이며, 결혼 제도는 기독교적 미신과 이해를 같이 한다는 생각이 당시의 내게는 명백한 것처럼 보였다.(59)

이런 이유로 러셀은 결혼과 연애에서 누구보다 자유로웠던 것 같다. 

나는 결국 자위 행위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언제나 적당 선을 유지했다. 이런 짓이 너무도 부끄럽게 생각되어 중단해보려고도 했다. 하지만 스무 살이 될 때까지 계속했는데, 어느 날 사랑에 빠지면서 갑자기 안 하게 되었다.(60)

참으로 솔직한 사람이다. 자신의 입으로 자위 행위에 대해 직접 말한 사람은 내가 알기론 두번째 사람이다. 그 첫번째 사람은 영화 원초적 본능의 남자 주인공 마이클 더글라스의 극중 심문장면이었다 ㅡㅡ ;

나는 인류의 행복이 모든 행위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70)

나는 영생을 믿지 않는다는 말을 어른들께 할 용기가 없다…… 따라서 이렇게 적어보는 것이 나로서는 울분을 방출하는 유일한 방법이다.(75)

나는 우리 불쌍한 인간들 개개인에게 다른 무엇보다 큰 관심사라고 생각되는 주제에 이르렀다.  바로 영생의  문제다…… 이 문제를 바라보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첫째는 진화론에 따라 인간을 동물과 비교하는 방법이고, 둘째는 인간을 하느님과 비교하는 방법이다.(77)

영원한 삶이 있음을 나는  진심으로 믿고 싶다.(78)

그러나 인간에게는 영생도 자유 의지도 영혼도 없다. 다시 말해 인간은 의식을 부여받은 정교한 기계의 일종에 불과한 것이다.(79)

나는 매사에 본능이 아닌 이성을 따르기로  맹세했다.  본능이라 함은  내 조상이  자연 도태 과정을 거치면서 서서히 획득한 것을 물려받은 측면과, 내가  받은 교육에  의해  얻게 된 측면을 말한다.(83)

종교의  도움 없이 자기 내면의 안내에만 따르면서 올바로 공부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다. 나도 시도해 보았지만 실패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다른 방편이 없다. 도움이 되는  종교가 없다.(86)

무모한 자살을 시도하지 않는  것도 힘든 일이다. 가족만 없었어도 나는 분명 그렇게 했을 것이다.(92)

3.  케임브리지 시절

1890 10월 초 장학생 시험을 심사한 화이트헤드가 생어와  나를 주목하라고 말했다는 것이다.(94)

1905년 봄, 시어도어는 커크비 론즈데일 근처 연못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의  나이 서른네 살이었다.(97)

크롬프턴은 재치와 열정, 지혜, 냉소, 정다움, 고결함을 모두 갖추고 있었으며 그 점에서는 그를 필적할 사람이 없다.(98)

(크롬프턴)의 견해는 다소 흔들리는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가진 편견이 분방하게 뻗어나가는 것을 오히려  즐기는 편이었다.  그는 전적으로 이성적인 것보다는 반역자들을 더 찬미하는 편이었다. 계산적이다 싶은 것은  무엇이든 끔찍하게 싫어했다.

그는 우유부단한 편이었다. 그래서 주변 상황에 맞춰 행동하거나 주변의 의견에 흔들리는  모습을 종종 보이곤 했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만 했다. 절대적인 상황에 관계없이 상대적으로 자신이 취하기 용이한 것만 취했으며 그로 인해 자신만의 강점을 두텁게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인위적인 것을 끔찍하게 싫어했다. 그는 자연스러운 것이 좋았다.

학생 시절에는  교수들을 대학에서 불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강의를 들어도 내 공부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으므로, 이 다음에 내가 강사가 되면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강의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을 절대 품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리고 그 맹세를 지켜왔다.(114)

나는 1892년 초에 소사이어티회원으로 뽑혔다. 당시 우리 소사이어티  독일의  형이상학을 조롱하는 의미에서 사용했던  몇 가지  문구에 대해 먼저  설명해야겠다. ‘소사이어티는 스스로를 실재의  세계로  가정했다. 따라서 그 밖의 모든 것들은 현상(appearance)이었다. ‘소사이어티회원이 아닌 사람들은 현상들(phenomena)’로 불리었다. 시간과 공간이 실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형이상학자들의 주장이었기 때문에, 우리 소사이어티에 들어온 사람들은 시공의 속박에서 벗어난 사람들로 가정되었다.(117)

4. 약혼

결혼이란 본능을 법적 틀에 일치시키기 위해 고안된 사회제도라는 것이 그들(시드니와 비어트리스웨브 부부)의 생각이었다.(129)

나는 아침 식사 전에 엘리스와 산책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일찌감치 일어나  돌아다녔다. 우리는 언덕의 너도밤나무 숲에 가 앉았다.  사방 어디를 보아도 나무줄기들 사이로 먼 경치가  슬쩍슬쩍 보였다. 이슬이 촉촉히 내려앉은 상쾌한 아침이었다. 나는 문득 인간의 삶에도 행복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침을 먹고 나서야, 그것도 엄청난  망설임과 불안 속에, 비로소 결혼신청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139)

그러나 내가 가장 행복하여 기쁨 자체인 바로 그 순간, 내 주위를 맴도는 상실의  공포로 느닷없이 추락할 것만 같다…… 원래의  나는 어둠 그 자체라 나 스스로 빛에  도달하지 못하고 잔인한 운명에 이끌려 그녀까지 끌고 들어가 버릴 것 같다.(145)

예술가들의 삶이란 게 본래 비극에 가깝거나 아니면 비극의 요소가 넘치는 탓에 내가 이곳 생활에 대해 불쌍하다 아름답다 하는 느낌을 갖게 되는지도 모르지((159)

자네의 친구들은 모두 자네의 능력과 가능성을 최고로 보고 있네. 자네는 자유로운 상태에서 공부에  전념하기만 하면  되네. 사랑은 인생의 주인이 아니라 하인이 되어야 하네.(163)

사랑은 인생의 주인이 아니라 하인이 되어야 하네 라는 말에 나는 반대한다.

내 포부는 전문가가 되는 것인데, 전문가에게는 삶의 일상적인 경험이 그다지 쓸모가 없어.

난 이말 또한 반대한다. 일상적인 경험을 통해 전문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예술을 하는 사람들의 작품에서 일상을 빼놓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될 것인가……

편지의 어조가 이런 식이어서 미안해. 사실 그대가 내게 너무 현실적인 모습을 기대하여 내 앞길을 망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오랫동안 느껴왔는데, 결국 지금 그게 터져 나온 거야.(174)

잠시 잠깐이었지만, 그리고 100% 일치하진 않지만 나도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2013 9월 어느 날 말이다.

내 사랑하는 버티, 시간만 빨리 가기를 빌고 있어선 절대로 안 된다! 사람이 꼭 해야 할 일만 하더라도 시간은 충분치 않단다. (210)

5. 첫 결혼

앨리스와 나는 1894 12 13일 결혼식을 올렸다.(217)

결혼할 당시 우리는 둘 다 전혀 성관계 경험이 없었다…… 그러나 결혼하고 3주쯤 지난 어느 날 성욕 때문에 몹시 피로한 적이 있었는데 갑자기 그녀가 미워지면서 내가 왜 이 여자와 결혼하고 싶어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게 기억난다.(218)

(화이트헤드)의 견해를 선호하는 사람들은, 그가 평범한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 것이 목표였던 반면, 나는 철학자들에게 불편을 주는 것이 목표였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 견해에 호의적인 사람이라면, 그가 철학자들을 기쁘게 해준 반면 나는 평범한 사람들을 재미있게 해주었다고 반박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우리는 끝까지 애정을 유지하면서도 각자 다른 길을 걸었다.(224)

6. 수학원리

(1900 9) 매일 저녁 그(화이트 헤드)와 벌인 토론은  다소 어렵게 끝났으나  아침이면 전날 밤의 어려움이 내가 자는 사리에 저절로 해결되어 있었다. 그 때는  지적 도취의 시기였다. 내가 느끼는  흥분은 안개 속에서 산을 오르며 마침내 정상에 도달해 보니 갑자기 안개가 싹 걷히고 먼 풍경들이 한눈에 들어왔을 때의 기분 같은 것이었다.(257)

집으로 돌아와보니 화이트헤드 부인이 평소보다 더 격심한 통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녀는 고통 때문에 모든 사람과 모든 것으로부터 차단된 듯 보였는데 바로 그때, 인간의 영혼은 모두 고독하다는 느낌이 느닷없이 나를 사로잡았다.(258)

5분의 시간에 나를 스친 생각은 이러했다. ‘인간 영혼의 외로움은 견디기 힘들다. 종교적 스승들이 설파한 것과 같은 지고의 강렬한 사랑 외에는 어떤 것도 그 외로움을 간파할 수 없다, 이 동기에서 나오지 않은 것들은 모두 해로우며 잘해 본들 무용하다, 따라서 전쟁은 잘못된 것이고 사립학교 교육은 옳지 않으며 폭력의 사용에 반대해야 한다. 인간 관계에 있어서는 각 개인이 가진 외로움의 응어리 속으로 파고 들어가 호소해야 한다.’(259)

5분이 흐른 뒤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한동안 신비주의적 깨달음 같은 것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그 동안 제국주의자였던 나는 그 5분 사이에 친보어파로, 평화론자로 변해 버렸다.(259)

1901년 후반기…… 어느 날 오후 자전거를 타러 나갔는데, 전원 도로를 달리다 갑자기 내가 앨리스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 바로 전까지도 그녀에 대한 내  사랑이 식었다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던 나였다. …… 그녀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사랑하는 척하는 짓을 과연 얼마나  더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그녀와 성관계를 하고 싶은 욕구도 사라졌으므로, 내 감정을 숨기려 해본들 그것만으로도 넘기 힘든 장벽이  될 터였다. …… 그리하여 나는 앨리스를 도덕적으로 비난하면서 스스로를 정당화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몇 달 동안 휴양지에 가 있다가 돌아왔을 때 나는  방을 함께 쓰고 싶지 않다고 말했고, 결국에는 내 사랑이 죽어버렸음을  고백했다.  그리고 그녀의  성격을 비난함으로써 내  태도를 그녀와 나 자신에게 정당화시켰다.(262)

자서전의 맹점. 스스로가 기술하기 때문에 그 내용의 진위여부를 검증할 수 없다. 20세기의 지성 러셀이 과연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적어나간 것일까.  의문이다.

저 자신도 오랫동안  쾌락이  유일한  선이며 고통이  유일한 악이라는 설을 자명하게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먼저 고백해야겠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반대임이 자명하게  느껴집니다. (279)

우리의 지식은 지각된 대상에 의해 야기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인정한다고 했을 때, 지각이 경험이라고 한다면 어떤 원인에ㅐ서 기인했든 추론을 통해 다른 지식으로부터 얻어지지 않는 지식의 다른 모든 기원들 역시 경험임이 분명합니다.(279)

제가 처음에 공리주의에 등을 돌리게 된 것은, 경제학과 정치이론을 공부하면 인간의 행복에 보탬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하면서도 나는 철학을 추구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인간 존재가 가질 수 있는 존엄성은 삶의 메커니즘에 전념한다고 해서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영원한 것에 대한 관조가 보존되지 못한다면 인류는 살찐 돼지들과 다를 바 없게 된다는 것이 제 생각이었습니다.(280)

잠 못 드는 밤은 때때로 낮 동안 위안처럼 따라다니는 생각들을 되씹기에 좋은 시간이지요. 어둠은 사물의 본질을 떼어내어 온전히 관심을  집중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285)

차가운 태양 아래 강물이 잘 닦은 청동처럼 반짝이고 거룻배들이 그 화사함을 뚫고 어릴 적 꿈속 기억과도 같이 아련히 떠나갑니다.(285)

저는 따분하고 권태롭고 공허한 기분에 짓눌려 지냈습니다. 아무것도 저를 흥분시키지 못하고, 할 만한 일도 했어야 할 일도 전혀 없는 듯 느껴집니다. 다만,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죽여서 세상에 존재하는 의식의 양을 줄이는 것만이 해볼 만한 일로 느껴집니다. 이 시간들을 철저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손쓰지 못하고 있습니다.(289)

수학의 원리 초고를 작성하고 앨리스와 결혼생활의 파경으로 1903~1904년 러셀은 지적 교착상태 또는 탈진상태에 빠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모든 삶은 꿈결같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반면,  세월에 짓눌리고 형언할 수 없는 지혜로 가득 찬 저 장엄한 과거가 내 앞에 솟아올라 나의 존재를 온통 지배하는 듯했어.(292)

다행히도, 크게 보면 인생이란 것은 우리가 그것을 가지고 무엇을 만들지 선택하는 과정이며, 이상이란 것은 그것이 다른 형태이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들에게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법이지.(293)

진정한 삶이란 것을 다른 사람들과 밀접한 관계 속에 있는 것을 의미해. 달리 보면 진정한 삶이란, 종교와 시의 재료를 만드는 감정들을 본인이 직접 경험한다는 의미도 되지.(294)

인간의 삶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깨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동안은 각자 영혼의 기묘한 외로움을 느끼게 마련이지.(298)

슬픔이 점점 격해질 때 그것을 아주 오래 전에 있었던 일인 양 바라보는 것, 그리고 상상 속에서지금도 계속 돌아가고 있는 저 거대한 기계에 목숨을 잃은 칙칙한 영혼들의 애도 행렬에 동참해 보는 것이 가장 건강한 방법이야. 나는 과거를 화창한 풍경 보듯 바라보지.(300)

시간의 강 강둑 위로 갖가지 세대 인간들의 슬픈 행렬이 무덤을 향해 서서히 행진하고 있어. 그러나 과거라는 고즈넉한 전원에서는 지친 방랑자들이 모든 흐느낌을 멈추고 휴식하고 있지.(300)

수수께끼를 발견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야. 왜냐하면 그것이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한 주제의 밑바닥에 도달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거든. (316)

게다가 불운이란 게 흔히 그러하듯,  그 일로 인해 과거에 이미 매듭지었다고 생각했던 묻혀진  슬픈 기억들까지 모조리 하나둘씩 차례로 무덤을 헤치고 튀어나와 마음속 황량한 빈 터에서 통곡을 했어.(318)

돈이나 명예나 권력을 바라는 사람들을 보노라면 그 삶의 정서적  공허감이 얼마나 크면 그렇게 하찮은 것들까지 들어설 수 있을까 나로선 상상도 하기  어려워(1902.8.2)(330)

틀린 말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행하기 굉장히 어려운 말. 이를 행하는 사람은 비범한 사람들일 것이다. 성자에 가까운 사람들 말이다. 

현재와 미래는 여전히 시간에 종속되어 있지만 과거는 불멸의 세계로 달아나버렸으니 말이다.  결국 시간은 최악의 짓을 하고도 살아 남아 있는 셈이지. (332)

어찌할 수 없는 지난 과거에 슬퍼하며 이 탓을 시간이 죄를 진 것처럼 비유하고 있다.

이제는 밤에 자다가 깨는 일도 없고, 낮에도 내 사랑하는 이에게 축복을 기원할 뿐 달리 그대를 생각하거나 하지 않아요. 나는 늘 그대를 사랑할 것이며, 내 사랑이 이기심을 벗고 더욱더 이타적인 사랑이 되길 빌어요.(343)

첫번째 부인 앨리스는 죽을 때까지 러셀을 사랑했다고 한다.

7. 다시 케임브리지로

남자는 대개 여자의 영향을 받게 될까봐 걱정하는데, 내 경험으로 볼 때 그것은 어리석은 두려움이다. 육체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남자에게는 여자가 필요하고 여자에게는 남자가 필요하다. 나는 사랑했던 여인들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으며, 그들이 없었다면 아마 나는 훨씬 더 편협해졌을 것이다.(367)

1913년에 일어난 일 중에, 내게 중요한 것은 조지프 콘래드(영국소설가)와 우정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369)

(조지프 콘래드) 도덕으로 견뎌내는 개화된 인간의 삶이란 가까스로 식은 용암의 얇은 표면위를  아슬아슬하게 걸어가는 것과도 같아서 자칫 방심했다가는 언제 어느 때 그 표면이 갈라져 불타는 심연으로 떨어지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371)

인간은 충동을 풀어놓거나 통제받지 않고 되는대로 삶으로써 자율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고집 센 충동을 좀더 우위의 목적에 복종시킴으로서 자유로워진다.”(371)

이제 콘래드도 서서히 잊혀져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의 강렬하고 열정적인 고결함은 마치 우물 바닥에서 바라본 벼처럼 내 기억 속에 빛나고 있다. 그의 빛이 나를 밝혀주었듯 다른 사람에게도 환희 비추게 만들고 싶다.(375)

그 작은 책을ㄹ 읽고 선생의 에세이로 들어가길 잘한 것 같소. 전자를 읽을 때는 아주 견고한 땅에서 즐겁게 한 발짝씩 옮기는 느낌이었다면, 후자의 책은 더없이 맑고 순수한 대기 속에 드넓게 펼쳐지는 풍경을 만난 듯한 느낌이었소. 의미심장하게 조립된 선생의 뜻깊은 단어들이 나의 내면의 새로운 능력을 일깨우는 듯했소. 그것은 너무 놀라운 경험이어서 감사의 말조차 나오지 않는, 그저 하느님이 주신 선물인 양 말없이 받아들릴 수밖에 없는 그런 것이었소.(401)

2 1914~1944

항상 회의하는 지성이 내게 의심의 말을 속삭였고(그것이 입을 다물어주기를 간절히 바라는데도), 타인들의 손쉬운 열정에서 나를 떼어내어 황량한 고독으로 옮겨놓았다……. 황무지의 바다와 별 밤바람, 내게는 이런 것들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보다 더 큰 의미로 다가오기 때문에 인간의 애정은 근본적으로, 신을 찾으려는 헛된 소망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도라고 생각한다.(405)

8. 1차 세계대전

1910년부터 1914년까지는 전환의 시기였다. 1910년 이전까지의 내 인생과 1914년 이후의 내 인생이 마치 메피스토펠레스(중세7대 악마 중의 하나)를 만나기 전과 후의 파우스트 인생처럼 뚤렷하게 나누어졌다.(407)

나는 일종의 원기 회복과정을 겪었는데, 그 과정은 오톨라인 모렐에 의해 시작되었고 전쟁에 의해 계속되었다. 전쟁이 사람을 젊어지게 했다는 얘기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으나, 실제로 나는 전쟁을 계기로 나의 편견들을 털어내고 수많은 근본 문제들을 새롭게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전쟁은 내게 새로운 종류의 활동도 가져다 주었는데, 지난날 내가 수리 논리학으로 복귀하려 할때마다 날 괴롭혔던 피로감을 그 활동에서는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리하여 나는 나 자신이 불가사의한 힘을 얻기 전의 파우스트이며, 파우스트를 위해 메피스토펠레스가 제1차 세계대전의 모습으로 등장한 것이라고 습관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407)

전쟁이 발발하고 처음 며칠은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화이트헤드를 비롯한 나의 절친한 친구들도 사나운 호전주의자로 변해 버렸다.(409)

전쟁은, 피는 사람의 어두운 본능 폭력, 집단주의, 익명 또는 미명하에서의 살인- 을 끄집어낸다. 군복만 입어도 난폭해지는 예비군들을 보라.

그 암담한 전망도 끔찍했지만 나를 더욱 두렵게 만든 것은 국민의 거의 90퍼센트가 대학살을 기대하며 즐거워한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시각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른 무엇보다도 돈을 좋아한다고 생각했으나, 돈보다 파괴를 훨씬 더 좋아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411)

아동심리를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내 아이를 보면 제대로 세워져 있는 장난감을 부수고, 움직이는 개미를 밟아죽이기도 한다. 인간의 본성은 파괴본능을 지니고 있을까.

전쟁 기간에는 성탄절을 맞을 때마다 깊은 절망감에 한 차례씩 사로잡혔다. 얼마나 심했던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의자에 멍하니 앉아서 인류가 과연 쓸모 있는 존재들인지  자문하곤 했다.(414)

나는 충동을 소유욕의 충동과 창조적인 충동으로 이분하고, 창조적인 충동 위에 세워지는 것이 최선의 삶이라고 보았다. 소유욕의 충동으로 구체화된 예로는 국가, 전쟁, 빈곤을 들었고, 창조적인 충동이 구현된 예로는 교육, 결혼, 종교를 꼽았다.(415)

그의 책, ‘사회 재건의 원칙들(1915)’에서 제시한 충동의 내용이다.

나는 로렌스(D.H.로렌스, ‘아들과 연인의 소설가)가 가진 불기운이 좋았다. 그의 감정에 깃들인 에너지와 열정이 좋았으며, 세상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뭔가 아주 근본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보는 그 믿음이 마음에 들었다. 정치는 개인의 심리와 절대로 떨어질 수 없다는 그의 생각에도 공감했다.(417)

완전히 쓰레기 같은 소리였기 때문에 나는 단호하게 그의 생각을  거부했다.(419)

러셀이 로렌스를 폄하하는 듯한 뉘앙스가 느껴진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사상에 훌륭한 것이 있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돌이켜보면 그의 생각들은 아무 가치도 없었던 것 같다. 그것은 세상이 즉각 복종해 주지 않아 화가 난, 신경 과민 폭군 지망자의 생각들이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도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고는  그들을 증오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간, 자기가 바라는 만큼 사나운 유령들만 사는 자기만의 고독한 상상의 세계에서 살았다. 그가 섹스를 유난히 강조한 것도, 섹스를 할 때만큼은 자신이 이 우주의 유일한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도 고통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에 그는 성관계를 서로가 상대를 파멸시키려 하는 영원한 싸움이라고 생각했다.(422)

⇒ ??? 러셀은 로렌스를 왜 이토록 경렬의 눈으로 바라봤을까. 

그 순간 콜레트의 사랑은 내게 피난처가 되었다. 잔인한 현실로부터 달아났다기 보다는 인간이 이런것이구나  하는  고통스러운 깨달음을 피해 달아난 것이다.(426)

(왜냐하면) 우리 세대는  진실을  엿보았지만 그것은  공허하고 제정신이 아니며 소름끼치는  진실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것을 많이 볼술록 정신 건강은 더 나빠지지요. 빅토리아 시대(의 고귀한 영혼들이)가 건전하고 성공적이었던  이유는  진실의 근처에도 가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거짓과 더불어 제정신으로 사느니 차라리 진실과 더불어 미치는 쪽을 택하고 싶습니다……(443)

나는 감옥에 있는 내내 질투심으로 고통받았고 무력감에 사로잡혀 미칠 지경이었다. 질투를 혐오스러운 감정으로 생각했던 나는 질투심에 빠진 나 자신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 감정이 나를 소진시켰는데, 어쩌다 그 감정에 한번 빠지기 시작하면 2주 동안 밤마다 잠을 거의 자지 못하여 결국에는 의사가 수면제를 처방해주어야 잘 수 있었다.(445)

콜레트가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진 사실을 알고.

전쟁이 끝나가 내가 해온 모든 일이 나 자신 외에 누구에게도 완전히 무용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단 한 생명도 구하지 못했고 단 1분도 전쟁을 단축시키지 못했다.(450)

이 모든 광기와 분노, 우리의 문명과 희망마저 삼켜버리는 불꽃이 야기된 것은, 호화롭게 살지만 대개가 우둔하고 상상력이나 감정이라고는 없는 공직 신사들 패거리가 조국의 자존심에 조금이라도 상처를 받느니 차라리 참극을 벌이는 것이 낫다고 결정한 데서 기인합니다.(454)

그리고 그 외교관들의 뒤에는 국가적 탐욕과 증오의  막강한 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야만적이고 짐승에 가까운 조상들에게 물려받은 유전적 본능인데, 지금 그것은 인류에게 해악이 되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정부와 언론은 그 본능을 응집하고 조종하고, 상류 계급은 사회 불만의 해소책으로 장려하며, 무기 제조업자들은 음흉한 영향력을 행사해 의도적으로 조장하고, 구역질 나는 영광의 문학이란 것이 그것을 북돋우며, 모든 역사 교과서가 그것으로 아이들의 마음을 오염시킵니다.(454)

죽음이나 금전의 손실에 대해 나는  크게 개의치 않소. 죽은 청년들이 살아 있다 해도 결국에는 늙어서 아무짝에 쓸모가 없을 것이고, 오랜 세월 그렇게 쓸모없이 지내다가 결국에는 염증 때문에, 혹은 신장이 나빠져서, 혹은 밧줄에 목매어, 혹은 늙어서 죽어가 것이니, 그 끔찍함을 어찌 덜하다 할 수 있겠소? (470)

조지 산타야나의 편지.

내가 왜 이렇게 문명을 중시하는지 내가 생각해도 이상하오. 친구들이나 그 어떤 것보다도 소중하게 여겨진다오. 문명이란 인류가 짐승의  단계를 탈출하면서 서서히 쌓아온 업적이니 내가 사는 궁극적인 이유가 그것인 양 생각되오.(471)

나는 로렌스의 철학을 머리도 꼬리도 이해할 수가 없소. 그에게 그런 얘기를 하는 것도 끔찍하오.  나한테는 그의 철학이 와닿지가 않소. (473)

그녀(엘리엇의 부인)는 칼날 위에서 살다가 범죄자 아니면 성인으로 인생을 끝낼 스타일인데, 아직까지는 범죄자가 될지 성인이 될지 판단이 안 서오. 그녀는 두 가지 다 될 수 있는 완벽한 역량을 가졌소.(479)

최근에 무엇이 날 덮쳤는지는 모르겠으나 전쟁이 터진 후로 이따금 경험해 온 무기력 상태에 다시 빠져버렸소. 이렇게 살아선 안 된다는 것을 잘 알지만 의지력을 완전히 상실해 버렸소. 누군가가 날 돌봐주면서 여기서 살아라, 이 일을 해라 하며 이것저것 지시하여 혼자서는 방향을 아예 정하지 못하게 해주었으면 좋겠소. 정신적 피로 때문에 그러리라 생각하지만 이 감정이 얼마나 강렬한지 아무것에도 흥미를 못 느끼고, 한결 나은 정신적 틀로 들어갈 수 있는 기력도 없소. (479)

(비트겐슈타인)의 비판은 내 인생에서 일등급의 중요성을 지닌 사건으로서, 그후로 내가 하는 모든 일에 영향을 주었소. 나는 그가 옳다는 것을 알았으며, 나는 이제 다시는 철학의 기초 작업을 못하리라는 것을 깨달았소. 방파제로 밀려와 부서지는 파도와 같이 나의 충동은 산산조각나버렸소.(482)

나는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말하고 박수 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현실에서 사람들의 생각을 변화시키고 싶어.(486)

지난 10년 동안 이곳 사람들의 일반적인 관점은 매우 급속하게 바뀌었어. 믿음이 붕괴되자 사람들은 새로운 교의를 원하게 됐지. 그러나 미래를 짊어질 청년들은 구시대적 미신과 인습이 담긴 얘기에는 귀기울이려 하지 않을 거야. 구세대와 신세대 사이에 간극이 존재하는데, 나는 점진적인 과정을 거쳐 젊은이들 편에 서게 되었어. 그리고 내가 그들과 한편이기 때문에, 경험에서 우러난 것을 제공하면 그것이 비판에만 머물지 않는 한 젊은이들은 기꺼이 존중해 주지.(487)

로랭 롤랑의 미켈란젤로의 일생읽어봤어? 훌륭한 책이야.(487)

지금은 사나운 시절이오. 그러나 국외에는 새로운 분위기가 있으니 결국에는 거기에서 선의가 움터날 것이오. 당신의 나라는 군국주의의 길로 접어들지 않기를 바라오.(제임스우드교수에게 보낸 편지. (1916.7.30) (499)

나는 내가 인생의 문턱에 서 있을 뿐이라고, 나머지 인생이 준비되어 있다고 생각하오. 일에 관해 말이오….. 전에는 내가 악하거나 수동적이고 체념한 사람이라고 느꼈는데, 지금은 왕성한 의욕을 느끼며 내 활동에 대해서도 만족하니, 이제는 더 이상 내면적 불화란게 없으며 따라서 날 정말로 힘들게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소.(501)

나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 중에서 정말로 정직한 사람은 극소수라고 봅니다. 그러니 양심적 병역 거부자가 되는 길을 어렵게 만들어놓지 않으면 온갖 부류의 기피자들이 그 길로 몰릴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자연히 통제 작업의 많은 부분이 다루기 힘들고 거친 정신의 소유자들 손아귀로 떨어질 것입니다,.(509)

성공의 느낌은 일에도 도움을 주기 때문에 그 느낌이 없을 때는 맥빠지고 생기 없는 글쓰기가 된다오. 행복한 느낌과는 전혀 별도로 성공을 느끼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것은 내가 의지를 어디에 투입하느라에 달려 있소. 그런데 내 의지는 오로지 자극을 찾아, 성공 가능성이 있는 일로 본능적으로 향하게 되오.(513)

내가 항상 원하는 것은 의식이 아닌, 깊은 저변에서 자극이오. 나의 두뇌를 계속해서 움직이도록 기운이 넘쳐나게 만들어주는 그런 자극. 바로 그것이 나를 흡혈귀로 만드는 것 같소. 나는 대체로 본능적인 성공이 욕구에서 자극을 얻는다오.(512)

아주 드물게 신비한 통찰의 순간을 맛보긴 하지만, 그것은 내가 성공하겠다는 의지로부터 벗어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하오. 그 같은 통찰의 순간은 새로운 종류의 성공을 가져오는데, 내가 그것을 눈치채고 원하는 순간 내 의지는 다시 예전 방식으로 돌아가버리오. 결국 나는 그런 유의 의지 없이는 가치 있는 일을 전혀 하지 못할 것 같소. 참으로 얽히고 설킨 문제요.(514)

내가 기묘한 불행감에 젖어 있는 이유는 내 삶의 양식이 복잡하고 내 본성 역시 엄청나게 복잡하기 때문이오. 모순된 충동들의 거대한 덩어리라고나 할까. 그로 인해, 나로선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지만, 당신에게 주는 고통도 점점 커지게 될 것이오. 나란 존재의 한 가운데에는 항상, 영원히 끔찍한 고통이 자리잡고 있소. 그것은 이 세상에 없는 것을 추구하는 데서 오는 기묘하고도 사나운 고통이오. 나는 그것을 찾아내지 못하며 찾을 수 있다고도 보지 않소.

그럼에도 그것에 대한 사랑이 바로 나의 삶이니 결국 유령을 열렬히 사랑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오. 그것은 나를 때로는 분노에, 때로는 깊은 절망에 휩싸이게 만들고, 너그러움, 잔인함,일의 근원을 이루며, 내가 가진 모든 열정을 그것이 가득 채우고 있으니 나의 내면의 삶을 움직이는 사실상의 원동력이오.(516)

비판적 초연함이란 표현을 전쟁에 대한 나의 태도로 보기는 어렵소. 나의 태도는 강력하고 열렬한 항의이며, 나는 전쟁을 공포, 파렴치 행위, 불가항력적이고 완벽한 재난, 삶의 모든 것을 소름끼치게 만들어 놓은 주범이라고 생각하오. (522)

겨울이 끝나가고 있으니 햇볕과 새들의 노래, 야생화, 앵초, 블루벨이 우리에게 올 것이고, 그 다음에는 5월의 향기를 맞게 될 것이오. 우리 속에 언제나 기쁨이 살아 있을 것이오. 당신(콜레트)은 강하고 용감하고 자유로우며 열정과 사랑으로 가득한 사람이니, 나의 모든 꿈이 생명을 얻어 탄생된 실체와 다름없소.(523)

굶주림과 테러와 의심이 쌓여 폭발하는 혁명은 폭력과 증오와 유혈로 넘쳐나기 마련이고, 따라서 서구 문명에서 가치 있는 모든 것들까지 사라지게 만들 것이다.(526)

선생보다 젊은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친구들이 냉소적 무관심이나 학문적 관심사로 빠져버리는 것을 지켜 보아야 하는 우리에게 지성이 기백을 압살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유럽의 지성인이 적어도 한 사람 존재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큰 자극이 됩니다.(530)

하지만 저 늑대 무리들은 자유로운 정신과 용기 있는 영혼을 모조리 살해할 때까지 만족하지 못할 걸세. 바로 그것이 이 전쟁의 숨은 목적이지.(G.로즈 디킨슨의편지. 1918.4.19)(531)

나의 콜레트, 나의 영혼이여, 우리의 사랑을 통해 나를 자극하는 위대한 숨결을느끼오. 나는 대서양의 정신을 말로 표현해 보고 싶소. 반드시, 죽기 전에 꼭,내 속에 있으되 아직 말한 바 없는 본질적인 것을 말하는 방법을 찾아낼 것이오. 그것은 사랑도 아니고 증오도 아니고 연민이나 경멸도 아니며, 바로 생명의 거센 숨결 같은 것, 아득한 곳에서 와서 비인간적 존재의 광대함과 냉정하고 두려운 힘을 인간의 생명에 불어넣어주는 것이라오.(539)

구본형 선생님의 향기가 나는 문장들이다. 나는 거침없이 끊임없이 에너지를 다해 뱉어내는 그런 글을 좋아하는데, 구본형 선생님의 글에서 그런 것을 느낀 적이 있다. 러셀의 편지에서는 그런 거침없음이 느껴진다. 그는 이 편지를 쓸 때 아마도 머리로 쓴게 아니라 가슴으로, 열정으로, 콜레트에 대한 사랑으로 쓴 것이 아닐까 란 생각을 해본다.

아마 나는 당신을 괴롭히는 일에 몰두하여 나 때문에 가슴이 찢어지게 될 것이오. 출소하자마자 당신을 보지 않겠다고 말할 것이오. 당신에 대한 애정을 모두 잃은 척할 것이오. 이런 모든 것이 광기이며, 질투와 초조함이 합쳐진 결과라오.(541)

참으로 이상하지 않소? 나는 이 세상은 물론 그 속에 있는 많은 것들과 사람들을 열렬히 좋아하는 사람이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체 그게 무엇일까? 비록 나는 그 존재를 믿지못하지만 더 중요한 무엇인가가 있는 게 분명한 것 같소. 나는 귀신이 들렸소. 이승의 영역에서 벗어난 어딘가에서 온 유령이 항상 내게 무슨 말을 해주고, 나는 그 참뜻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세상에 대호 되풀이해 말해야 하는 운명인 듯 느껴지오……. 임종의 자리에서, 이해하기엔 너무나 우둔한 사람들 지혜를 찾지 않고 약을 두고 소란을 피우는 에 둘러싸인 채 비로소 그 진실을 발견하게 될 것 같소. 사랑과 상상이 뒤섞여 버렸소. 지금까지는 그것이 주된 것인 듯하오.(546)

루퍼트도 삶과 세상을 사랑했소. 그의 증오는 매우 구체적이었고, 대단히 특이한 허영 혹은질투에서 나온 것이었지만 그는 대체로 세상을 사랑할 만하고 흥미로운 것이라고 생각했소. 그에게는 허풍스러운 면이 전혀 없었소.(546)

나는 위선과 거짓을 증오했다. 나는 삶과 진정한 사람들을 사랑했으며, 우리가 진실로 진정한 사람들을 사랑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사기꾼들을 제거하고 싶었다. 나는 웃음과 자발성을 믿었으며, 일단 진실함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면 천성에 모든 것을 맡기고 사람들 속에서 진실한 선을 이끌어내고자 했다.(547)

, 들판을 가로지르며 지평선을 바라보고 자유로이 얘기하고 친구들과 함께 있을 수 있다면 얼마나 근사하겠소?(550)

온갖 장면을 끌어모으고 싶다면 감옥만한 곳이 없소. 여기서는 하나씩 차례차례 떠오르니까. 알프스의 이른 아침, 향긋한 소나무향과 이슬 반짝이는 고산 지대 목장들, 산에서 내려오다 멀리 산 밑을 훑어보면 맨 처음눈에 들어오는 가르다 호수. 미친 듯 깔깔대는 에스파냐 집시의 눈빛처럼 햇빛 속에 춤추며 반짝이는 물, 짙은 보랏빛 바다 지중해에 몰아치는 천둥 번개, 멀리 햇빛 속에 드러나는 코르시카 섬의 산들, 실물이라곤 믿어지지 않는 시칠리아 섬의 일몰, 너무나 매혹적이어서 이 세상 사는 동안에는 결코 볼 수 없을 듯한 저 천국의 섬들처럼 다가가면 눈앞에서 사라져 버릴 듯한 그 장관, 스카이 섬 습지에 감도는 은매화 향기, 오래전 어린 시절에 보았던 일몰의 기억들, 24년 전 파리의 거리에서 하루 종일 아름다운 녹색 꽃을 외치고 다니던 행상의 목소리가 어제일 처럼 귓가에 쟁쟁하오. 비온 뒤 줄지러 늘어선 낙엽송 가지마다 물방울이 매달려 있던 어린 시절의 풍경이 떠오르고, 여름날 한밤중에 숲 속 나무 꼭대기를 스치던 바람 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자유롭고 아름다운 모든 것들이 휙휙 스쳐 지나가오. (553)

몽골의 이름 아침, 게르에서 나온 밖은 어둑어둑하니 밤을 지배하였던 어둠의 신의 흔적이 채 가시질 않았지만 저 멀리 동쪽의 지평선과 수평선이 맡닿은 곳에서는 태양의 신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자연에도 순리란게 있으니 그 기세에 기죽은 어둠의 신이 조금씩 뒷걸음질을 친다. 수평선은 밝게 빛나고 있지만, 어둠의 신과 태양의 신이 맞닿은 곳은 검푸른 빛이 감도는게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밤이슬로 촉촉해진 땅을 밟고 내려가자 어느 덧 호숫가 앞. 태양과 어둠의 신의 대치를 그대로 반사하는 검푸른 호숫가는 물의 여신이 유유히 다가와 지금 당장에라도 나를 물속으로 삼켜 버릴 듯이, 그렇게 고요히 서슬퍼런 빛을 띄고 있다. 아무도 없는 듯,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 듯한 흡수골의 새벽녘 호숫가는 호수 앞에 놓여져 물결에 조금씩 미동하는 조각배만이 사람이 살고 있음을 증거하고 있었다. 어제 오후 이곳에선 해맑은 몽골의 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나도 어린 시절에는 그 아이들 처럼 그렇게 해맑았다. 저녁 먹을 시간 즈음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소독차(일명 방구차), 그 소리가 들리면 난 반사적으로 마당에서 씻다 말고 쓰레빠에 빤스 바람으로 소독차의 희뿌연 연기를 연거푸 마시며 꽁무니를 졸졸 쫓아다녔다. 몽골의 새벽과 아이들은 내 어린시절의 순수와 맞물어 그렇게 내 기억 속에 자리하게 되었다.

좀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도 있었을 사람들을 주게 만든다는 것은 참으로 끔찍한 일이오. (554)

9. 러시아

그녀(콜레트)의 기분은 세 가지로 뚜렷하게 구분되었다. 적극 헌신하는 태도, 체념하고 영원히 헤어지기로 결심한 태도, 가벼운 무관심의태도. 그녀의 기분이 이렇게 바뀔 때마다 내 마음에 나름의 반향을 불러 일으켰는데, 그녀가 동봉해 온 편지들을 보면,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그 반향이 훨씬 컸다. 그녀와 나의 편지들은 감정상의 기억이 믿을 게 못 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558)

그녀(도라)의 진지한 일면이 아버지가 되고 시은 나의 욕망과 사회적 책임감을 자극했다면, 달빝에 젖은 모습, 혹은 이슬 젖은 풀밭을 맨발로 달려가는 모습은 나의 상상력을 사로잡았다고 볼 수 있는데, 두 모습이 다 압도적이었다.(559)

나는 비트겐슈타인을 전쟁이 터지기 전에 케임브리지에서 처음 만났는데, 그는 오스트리아 사람으로, 부친이 굉장한 갑부였다. 처음에 그는 기술자가 될 생각으로 멘체스터로 갔다. 수학 책을 읽다가 수학의 원리에 흥미를 느끼고, 수학 분야에 누가 있는지 멘체스터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다. 누군가가 내 이름을 거론하자 그는 트리니티로 짐을 싸들고 왔다. 그는 정열적이고 심오하고 강렬하고 지배적이라는 점에서 전통적인 의미의 천재의 완벽한 표본이라 할 수 있었다.(561)

미래를 들여다봐도 환멸에 찬 내 눈에는 싸움밖에 보이지 않소. – 더 많은 싸움과 잔인한 횡포, 독재, 테러, 노예 같은 굴종. 내가 꿈꾸는 인류, 꼿꼿하게 서서 두려움 없이 나아가는 관대한 사람들이 지구에 살게 될 날이 과연 올 것인가? 인류는 시간이 다할 때까지, 지구가 식고 태양마저 죽어 무모한 광란에 더 이상 활기를 제공하지 못하는 그날까지, 싸우고 죽이고 괴롭히는 짓을 계속할 것인가? 나도 알 수 없소. 하지만 내가 가슴 깊이 절망하고 있다는 것은 아오. 유령처럼 세상을 떠돌며 남들 귀에 들리지 않는 말을 지껄이고, 다른 별에서 떨어진 존재인 듯 방황할 때, 그 엄청난 외로움을 나는 잘 아오.(572)

미지의 신비한 땅을 헤치며 우리가탄 배는 연일 나아가고 있소. 우리 일행은 떠들썩하고 쾌활하며 다투기도 하며 지내고 있소. ….. 우리 중 한 사람(클리퍼드 앨런)은 죽음의 문전에서 나약함과 공포와 강한 자들의 무관심에 맞서 준엄한 투쟁을 하고 있는데, 요란한 구애의 목소리와 하찮은 일에 깔깔대는 웃음소리에 밤낮으로 시달리고 있소. 배 주위는 온통 거대한 침묵이오. 죽음처럼 강하고 하늘처럼 깊이를 헤아릴 길 없는 침묵, 아무도 그 침묵에 귀 기울일 여유가 없어 보이건만 내 귀에만 끈덕지게 아우성치니, 선전가들의 장광설도, 아는 것 많은 사람들의 끝없는 정보도 내 귀에는 들어오지가 않소.(577)

적막 속에 강기슭에 오르니, 모래사장에 기묘하게 떼지어 있는 사람들이 보였소. …… 나풀대는 불꽃 속에 텁수룩한 수염의 사나이들과, 강하고 끈기 있는 원시적인 아낙들, 부모들처럼 진지하고 동작이 느린 아이들이 드러났소. 그들도 분명 사람인데, 나는 왠지 그들보다는 개나 고양이나 말과 친해지기가 훨씬 더 쉬울 것 같았소.(577)

(비트겐슈타인)는 그것(자신의 원고)이 인쇄된 것을 꼭 보고 싶으며, ‘지금은 더더욱 그런 심정입니다. 포로의 몸으로 다 끝낸 저작을 질질 끌고 다니며 바깥 세상에서 허튼소리가 활개치는 것을 보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 비통할 뿐입니다. 그리고 인쇄된다 한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면 마찬가지로 비통해집니다! 처음에 엽서 두 장 보내신 후로 혹시 또 편지하셨는지요? 저는 아무것도 받지 못했습니다. 부디 잘 지내시고, 선생님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모두 어리석은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말아주십시오!(594)

10. 중국

상하이에서는 끝없이 사람 만나는 데 시간을 썼다. 중국인들은 물론이고 유럽인, 미국인, 일본인, 한국인들까지. 우리를 만나러 온 가지 각색의 사람들은 대체로 서로 잘 알지 못하는 사이였다. 에를 들어, 폭탄 투척 사건으로 추방된 한국의 기독교인들과 일본인들 상에 사교적 관계란 있을 수 없었다. (당시 한국에서는 기독교인과 폭탄 투척자가 동의어로 통하는 실정이었다.) (607)

내가 강의를 나간 베이징 국립 대학은 대단히 주목할 만한 학교였다. 총장과 부총장은 중국의 근대화에 열성적으로 매달리는 사람들이었다. 부총장은 내가 아는 누구보다도 진지한 이상주의자였다.(611)

당시 중국은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었음에도 유럽과 비교할 때 철학적 평온으로 충만한 나라였다.(613)

죽지 않으리라는 확신 속에 병석에 누워 있는 것은 놀랍도록 즐거운 경험이었다. 그 전까지는 내가 근본적으로 비관주의자여서 산다는 것에 큰 가치를 두지 않는다고 늘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완전히 착각이었으며, 내게 삶은 한없이 달콤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616)

우리(러셀과 도라)는 국왕 대소인을 재촉하여 9 27일에 혼례를 올렸다.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 나는 채링크로스의 연단에 올라가, 도라가 그 동안 나의 공식적 간통 상대였다는 것을 하느님 앞에 맹세하는 절차를 거쳐야만 했다. 11 16일에 아들 존이 태어났고, 이때부터 오랫동안 내 삶의 주요 관심사는 아이들이었다.(623)

(중국) 학생들의 지식에 대한 욕구가 참으로 대단하오. 내가 말을 하기 시작하면 그들은 마치 굷주린 사람이 음식을 대할 때와 같은 눈빛으로 변하오. 어디를 가나 내게 당황스러울 만큼 경의를 표하오.(626)

(*허튼 소리도 국제적인 현상인가 보다) (631)

⇒ s. 야마모토가 쓴 편지를 보고 러셀이 달아놓은 말……

 

 

3. 내가 저자라면

이디스 Edith 에게

오랜 세월을 두고
나는 평온을 찾아 애썼노라
,
환희를 맛보았고, 고뇌도 겪었노라
,
광기와 마주쳤고
,
외로움에 떨었노라
,
심장을 갉아먹는 고독의 아픔도 알았노라
,
그러나 끝내 평온은 찾지 못하였노라
.

이제 늙어 종말에 가까워서야

비로소 그대를 알게 되었노라
,
그대를 알게 되면서

나는 희열과 평온을 모두 찾았고,
안식도 알게 되었노라
,
그토록 오랜 외로움의 세월 끝에
,
나는 인생과 사랑이 어떤 것인지 아노라
,
이제 잠들게 된다면
,
아무 미련 없이 편히 자련다.

 

*  1952년 결혼한 네번째 와이프 이디스 핀치에게 그가 쓴 시이다. 그는 이 시에서 그의 인생을 이야기했다. 자신의 지적쾌락을 위해 몸부림쳤고 그 안에서 환희와 고뇌를 맛보았다. 20세기의 지성이라 불리는 그이지만 비트겐슈타인에게 자신의 이론을 비판받을 수 밖에 없었고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패배의 쓴잔을 마시기도 했다. 전쟁 앞에서 인간의 광기를 마주했고 반전운동과 사회운동에 앞장섰다. 자신의 기질로 인해 동료들로부터 외면을 받기도 했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또한 상처를 받으며, 인간적인 고독을 느끼기도 했다. 그는 사람안에서, 사랑안에서 평온을 찾으려 했다.

러셀의 자서전이 이런 그의 인생을 부족함없이 담고 있는 듯 하다. 그는 자신의 인생의 순간순간을 담으로 그 안에 있는 사람과 사회적 환경을 함께 이야기 하였다. 이는 니체의 자서전과 비슷하지만, 사회적 상황이 조금 더 자세하고 비중있게 다뤄진 듯 하다. 이는 러셀이 단순히 이론을 추구하는 학자로 멈춘게 아니라 여성의 참정권, 성해방운동을 비롯하여 평화주의자로서 반전운동을 한 것, 그리고 이론과 실제를 통해 얻은 지식으로 책을 쓰고 강연하는 등, 생 전반에 걸쳐 안과 밖으로 폭넓게 활동하였으니 그의 생을 이야기 하기 위해서는 그 사회와 시대적 배경을 이야기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사랑과 사회와 자신의 철학을 이야기하는데 거침이 없다. 다양한 여성에 대한 사랑과 관심을 드러내는 대목도 그러하거니와 비트겐슈타인 앞에 초라해진 자신의 모습을 묘사한 장면, D.H. 로렌스에 대한 냉담한 감정 등을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으니 참으로 거침없고 진솔한 모습 아닌가 싶다. 그는 이를 반증이라도 하듯 자신이 주고 받은 상당량의 편지를 (아마도 책의 절반이상 정도 되지 않을까) 첨부하여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 편지가 의사소통의 주요 수단 중 하나였던 점을 감안하면 말 그대로 자신의 인생을 숨김없이 책속에 녹여내려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방대한 양의 편지, 그리고 그 편지의 출처가 참으로 다양한 사람임을 감안하면, 책을 읽어나가는데 있어 다소 집중력을 흐트리는 부분 없지 않다. 물론 객관적이고 다각적이고 입체적인 효과를 준 것은 인정하지만, 이렇게 많은 양의 편지를 자신의 언어가 아닌 그들의 언어 그대로 담았어야 하는지는 조금 의문이 든다.

내가 저자라면, 내가 나의 자서전을 쓴다면 과연 어떤 식으로 쓸 수 있을까. 버트런드 러셀의 방식을 따르자면, 내 자서전에는 아마도 어느 시기를 이야기 하는데 영화가 러셀의 편지역할을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 시기에 본 영화가 될 수도 있을 것이고, 그 시기를 상기했을 때 연관지을 수 있는 영화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구본형 선생님에 대한 회고가 있을 때는, 내가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선생님 상인 죽은 시인의 사회의 키딩 선생이 언급될 것이다. 나의 기행적 사고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는 박찬욱이나 김기덕의 영화가 언급될지도 모르겠다. 물론 현역연구원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체 게바라의 젊은 시절을 담은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나 융과 프로이트의 경쟁적 이야기를 담은 데인저러스 메소드그리고 얼마 전 정재형교수의 수업에서 들은 카이로의 붉은 장미등에 대한 영화가 언급되지 않을까. 다만, 러셀처럼 얼핏 보면 주객이 전도된 느낌으로 배치할 생각은 없다. 글을 흐름에 맞춰 영화를 언급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형식의 책들 또한 시중에 많이 나온 편이니 나만의 차별화로 무엇을 가져갈 수 있을 지는 조금 더 고민해봐야 할 숙제이다.

 

 

 

 

 

*** 워드파일을 카피하니 줄간격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워드파일 첨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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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16 02:34:03 *.58.97.140

너도 고생했다, 대수야...

함께 올렸네...

 

이 야밤에, 눈알 빠진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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