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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16일 02시 54분 등록

.저자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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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트런드 러셀 (Bertrand Russel, 1872.05.18 ~ 1970.02.02)

할아버지는 영국의 총리를 지낸 존 러셀 백작이며, 그의 부모는 보수적인 영국 사회의 지식인층에서 상당히 진보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피를 이어받았던 러셀은 항상 거침없고 열정적이며 자신의 생각을 가감없이 드러낼 수 있었다.

 

그의 유년기는 외롭고 고독했다. 그의 부모는 일찍 죽었으며 할아버지 역시 아버지가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세상을 떠난지 2년후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대부분 할머니 손에서 자랐는데, 할머니는 종교적으로는 보수적이였지만 그 외의 부분은 진보적인 입장을 취했다. 러셀은 러셀 백작 부인 밑에서 자연스럽게 진보적인 사상을 받아들이게 된다. 또한 사춘기 시절 고독하게 자랐다. 그당시 종교와 수학에 관심을 가졌는데,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다는 것 외에는 다른 것들에 흥미를 가지지 못했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을 통해 그는 사고의 깊이와 내면의 소리를 진실되게 듣게 된다.

 

러셀은 1890년 켐브리지 대학의 트리니티 칼리지에 장학생으로 입학하게 된다. 이 기간동안 수학과 철학에 두각을 보내고 최우등생으로 좁업하게 된다. 특히 엘리스 페어살 스미스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된다. 그의 할머니의 심한 반대가 있었지만 고집을 꺽지 않았는데, 결국 둘은 별거하며 형식적으로 부부로 남는 사이로 지내게 된다. 이 기간동안 오톨린 모렐과 배우 콘스턴스 말레슨등과 열애를 하게 되고 엘리스와는 이별하게 된다.

 

러셀은 생애 2차례의 세계대전을 모두 경험하게 된다. 그것이 불행인지 행운인지는 알 수 없지만 강렬한 사회 분위기 안에서 그는 반전 운동가로 명성을 얻게 된다. 그는 감옥에 갇히기도 하는데 감옥에서 <수리학 개론> <정신의 분석>등을 집필하게 된다. 참고로 그의 첫번째 책은 난해하고 어렵다는 <수학의 원리>였다. 그는 98세까지 장수하면서 <서양철학사>를 비롯하여 40여 권이 넘는 책을 남기기도 하였다.

 

러셀의 두번째 결혼은 애인이였던 도라 블랙이였다. 그녀와 같이 러시아를 방문하고 베이징을 방문하기도 하였으며 슬하에 두자식을 두었다. 특히 이 시기에 러셀은 물리, 윤리, 교육등을 설명하고 대중서를 쓰는데 열성적이였으며 도라와 1927년 실험학교인 비콘힐 학교를 설립하기도 한다. 하지만 러셀의 여성편력 때문인지 결혼 생활은 점점 파경으로 치닫는데, 도라는 미국의 저널리스트 그리핀 베리와의 아이를 가지게 된다. 그들은 결국 이혼하게 되고 러셀은 가정교사였던 패트리샤와 세번째 결혼을 하게된다.

 

러셀은 2차 세계대전후 대학에서 수많은 강의를 한다. 또한 <서양철학서>라는 베스트 셀러를 집필하여 고정적인 수입을 확보하였으며, BBC TV 매체를 통해 이름과 얼굴을 알리기도 한다. 1949년 러셀은 그의 자취와 그의 학문적 업적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된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고 얼마 지난 1952년 러셀은 패트리샤와 이혼하고 이디스 핀치와 네번째 결혼을 하게 된다. 이것이 마지막 러셀의 결혼이였다. 이디스는 러셀의 마지막까지 곁에 있었고, 그들의 결혼 생활은 행복했다.

 

중년에 러셀은 정치적 사건에 참여하였다. 반전운동을 하였고, 거기에 멈추지 않고 실직적인 활동들을 많이 하였다. 그는 전쟁을 막기 위해 수많은 세계 지도자들에게 편지를 썼으며 반전영화 감독인 로고신 감독과 접촉하기도 한다. 러셀은 미국의 전쟁관련 여러 정책에 반대의 목소리를 내었고, 평화주의자, 좌파의 영웅이 되었다.

 

말년의 러셀은 자서전을 출간하였고, 88세에는 대중집회를 하다 구류형을 선고받기도 하였다. 평화를 사랑하고 끊임없이 반전운동에 앞장섰던 러셀은 70 2 2일 자신의 자택에서 독감으로 사망하게 되었다. 그의 유언에 따라 어떤 종교 의식도 치러지지 않았다. 그는 어렸을 적부터 기독교의 교리가 합당한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으며 18세에 완전한 무신론자가 되기로 결심하였다. 과연 마지막까지 그는 그답게 떠났다.

 

 

 

 

.내 마음을 무찔러드는 글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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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단순하지만 누를 길 없이 강렬한 세 가지 열정이 내 인생을 지배해 왔으니,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에 대한 탐구, 인류의 고통에 대한 참기 힘든 연민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열정들이 마치 거센 바람과도 같이 나를 이리저리 제멋대로 몰고 다니며 깊은 고뇌의 대양 위로, 절망의 벼랑 끝으로 떠돌게 했다. 나는 사랑을 찾아 헤매었다. 그 첫째 이유는 사랑이 희열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얼마나 대단한지 그 기쁨의 몇 시간을 위해서라면 남은 여생을 모두 바쳐도 좋으리라 종종 생각한다. 두 번 째 이유는 사랑이 외로움이 세상 언저리에서, 저 깊고 깊은 차가운 무생명의 심연을 들여다보며 몸서리치도록 만드는 그 지독한 외로움을 덜어주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성인들과 시인들이 그려온 천국의 모습이 사랑의 결합 속에 있음을, 그것도 신비롭게 축소된 형태로 존재함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똑 같은 열정으로 추구한 또 하나는 지식이었다. 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아보고 싶었다. 하늘의 별이 왜 반짝이는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삼라만상의 유전 너머에서 수들이 힘을 발휘한다고 설파한 피타고라스를 이해해 보고자 했다. 그리하여 나는 많지는 않으나 약간의 지식을 얻게 되었다. 사랑과 지식은 나름대로의 범위에서 천국으로 가는 길로 이끌어 주었다. 그러나 늘 연민이 날 지상으로 되돌아오게 했다. 고통스러운 절규의 메아리들이 내 가슴을 울렸다. 굶주리는 아이들, 압제자에게 핍박 받는 희생자들, 자식들에게 미운 짐이 되어버린 의지할 데 없는 노인들, 외로움과 궁핍과 고통 가득한 이 세계 전체가 인간의 삶이 지향해야 할 바를 비웃고 있다. 고통이 덜어지기를 갈망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해 나 역시 고통 받고 있다. 이것이 내 삶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만일 기회가 주어진다면 기꺼이 다시 살아볼 것이다.

 

20, 그러나 당신 아들의 서류를 정리하시던 조부모님이 내 어머니와 관련된 사건들을 발견 , 빅토리아조 시대의 사고방식에 젖어 있는 그분들에겐 극도로 혐오스러운 일이었다.

 

23, 펨브로크 로지에는 약 25제곱 킬로미터나 되는 정원이 있었으나 대부분 방치되어 황폐해져 있었다. 이 정원은 내가 열여덟 살이 될 때까지 내 인생에서 아주 크나큰 역할을 했다.

 

24, 어린 시절에는 외부에서 주어진 일거리 없이 아이 마음대로 보내는 시간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불과 여섯 살이었다.

 

26, 어린 시절에는 외부에서 주어진 일거리 없이 아이 마음대로 보내는 시간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불과 여섯 살이었다.

 

27, 착한 사람은 언제나 선한 동기에서 행동한다고 생각하셨고, 나쁜 사람에 대해서는 아무리 악인이라도 전적으로 나쁘다고 할 수 없는 순간들이 있다고 보셨다. 할머니께 결혼이란 것은 혼란스러운 제도였다.

 

29, 착한 사람은 언제나 선한 동기에서 행동한다고 생각하셨고, 나쁜 사람에 대해서는 아무리 악인이라도 전적으로 나쁘다고 할 수 없는 순간들이 있다고 보셨다. 할머니께 결혼이란 것은 혼란스러운 제도였다.

 

30, 내가 접촉한 어른들은 아이들의 강렬한 감정을 헤아리는 능력이 놀라우리만큼 부족했다.

 

36, 네기 설탕보다도 좋아했던 소금덩어리를 상자에서 훔쳐내오기도 했다.

 

37, “자 이제 숫자 배우기만 남았어요.” 그런데 숫자는 독일어나 영어나 똑같다는 사실을 알고 놀라는 한편 마음이 놓였다.

 

39, 당시에는 아이들에게 과일이 나쁘다고 철석같이 믿었기 때문에 나는 오렌지를 먹을 수가 없었다.

 

44, 유년기를 거치면서 외로움도 커져갔고, 더불어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을 행여 만나려나 기대하다가 절망하는 일도 많아졌다. ......나를 구해 준 것은 자연과 책(좀더 나중에는) 수학이었다.

 

45, 그럼에도, 유년기 초반 시절에는 행복했다. 정작 외로움을 참기 힘들게 된 것은 사춘기가 닥치면서였다.여섯 살 때 한 번, 이러한 느낌(부모 사망, 불행 느낌)을 할머니께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그러자 할머니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것이 내게는 아주 행운이라고 계속해서 말씀하셨다. 빅토리아 시대의 관점으로 보면 할머니의 견해를 받쳐줄 근거가 풍부하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나는 물론 알지 못했다.

 

47,가정교사가 호통을 치고 있는 장면이다. 나는 구구단을 외우려고 애를 썼지만 눈물 때문에 계속 막혀버리곤 했다.

 

47,외할머니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아무에게나 신랄하게 퍼붓는 혀를 가졌기 때문이다.

 

53, 열 한살이 되자 형을 선생 삼아 유클리드 기하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내 인생의 큰 사건 중에 하나였고, 마치 첫 사랑처럼 현혹적이었다. 세상에 그처럼 감미로운 것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 그 순간부터 내 나이 서른 여덟에 화이트헤드와 <수학원리>를 완성하기까지 수학은 나의 주요 관심사이자 행복의 원천이었다.

 

58, 이런바잠복기에 도달하면서 아주 뚜렷한 변화가 왔던 것으로 기억된다. 나는 속어를 쓰고, 감정이 없는 척하고, 전반적으로남자다워보이는 척하는 데서 즐거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집안 어른들도 무시하기 시작했다. 내게는 금지된 것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속이는 습관이 생겨났고 스물한 살이 될 때까지 그 습관을 고집했다. 무슨 일을 하든 혼자 알고 있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버릇이 제2의 천성이 되어벼렸으며, 이렇게 해서 생겨난 은폐 충동을 아직까지 한번도 완벽하게 정복해 보지 못했다. 어리석은 금지 사항들 속에서 내 길을 찾아야 했던 시절로 인해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

 

61, 성과 육체에 이처럼 몰두함과 동시에 엄청나게 강렬한 이상주의적 감정에 사로잡히곤 했다. 하지만 그것 역시 성에 원천을 둔 감정이라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62, 시와 더불어 내 관심을 크게 끈 것은 종교와 철학이었다.

 

66, 나도 예전엔 남모르게 성에 몰두했지만 이처럼 무지막지한 형태(매춘 등등)를 접하게 되니 충격이 매우 컸다. 나는 대단히 청교도적인 관점으로 변하게 되었고, 깇은 사랑이 없는 섹스는 짐승과도 같다고 단정했다.

 

67, 들판을 가로질러 뉴사우스게이트로 이어지는 좁다란 길이 있었는데 혼자 거기에 가서 일몰을 바라보며 자살을 생각하곤 했다. 그러나 수학을 더 알고 싶었기 때문에 자살을 감행하지는 못했다

 

72, 형과의 대화를 통해 밀교란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 정도 이해한 바로는 내게 아무 도움이 되지 못했다.

 

77, 바로 영생이 문제다. 내가 사색을 통해 가장 실망하고 번민해 온 것이 바로 이 문제다. 이 문제를 바라보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첫째는 진화론에 따라 인간을 동물과 비교하는 방법이고, 둘째는 인간을 하느님과 비교하는 방법이다.

 

89, 사색이 내게 많은 고통을 준 건 사실이다. 하지만 사색을 통해 나는 내가 머무를 곳을 발견하고, 고민이 닥쳤을 때는 나를 지원하는 강력한 존재를 만난다. 잘못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날 짓궂게 다루고 못살게 구는 모든 아이들에 대한 경멸감으로 버티고 있다.

 

107, 집에서 사교육을 받았다는 사실이 장애로 느껴진 적은 한번도 없었다. 마음 맞는 사람들 속에서 영향을 받다 보니 점잔 빼는 일도 점점 줄어들었다. 상대가 혐오하거나 조롱하리라 걱정할 필요 없이 자유로이 내 생각을 말하고 대답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는, 그야말로 황홀한 지경이었다.

 

123, 내가 켐브리지에서 배운 사고방식 중 정말로 귀중한 것이 하나 있다면 지적 정직뿐이다. 이 덕목은 내 친구들뿐 아니라 교수들 사이에도 확실하게 존재했다. 가르치는 학생이 잘못을 지적한다고 해서 화를 내는 교수는 한 명도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210, 시간만 빨리 가기를 빌고 있어선 절대로 안 된다! 사람이 꼭 해야 할 일만 하더라도 시간은 충분치 않단다. 네가 이렇게 잠시 떨어져 지내는 것조차 섭섭해한다는 것, 물론 나도 잘 안다. 하지만 만일 네가 영국에 남아 계속 그런 식으로 살았다면 이러니저러니 말 많은 사람들 속에서 얼마나 고통을 겪을지 너는 잘 모를 것이다.

 

214, 네 아버지와 어머니가 한창 젊고 건강하던 시절에 내게 와서는 혹시 자신들이 죽거든 너을 내 자식처럼 돌봐달라고 부탁했었지. 그때 내가 그들에게 한 약속을 지키도록 부름받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그 날이 와버렸고 네 집은 텅 비어버렸지. 천진난만한 아이였던 너는 캄캄한 우리 집에서 어느 새 우리의 작은 위안이 되었고 우리 세 사람의 친자식이나 다름없었다. 너는 우리의 존재 그 자체와 얽혀버렸고 너의 행복을 위해 우리 삶의 모양과 질서까지 변화되었지. 그리고 마음과 생각이 커가면서 너는 우리의 자식일 뿐 아니라 동반자 역할까지 해주었어.

 

215, 성년기가 다가오고 그와 동시에 네가 흠잡을 데 없이 영예로운 대학에 입학해 줌으로써 하느님께 감사 드려야 할 또 하나의 명분을 만들어 주었지. 그러나 성년기는 단절과 변화도 동반하는 법이란다. 너는 이제 새로운 삶과 새로운 가정, 새로운 만남과 애정을 위해 우리를 떠나려 하고 있다. 그러나 너의 행복과 안녕은 여전히 우리의 것이며 우리의 하느님은 변함없이 너의 하느님으로 남을 것이야. 부디 좋았던 것만 가지고 떠나길,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지난날에 저질렀던 잘못들을 하느님이 용서해 주기를 간절히 빈다. (1894 12 10, 할머니의 편지)

 

217, 당시 미국 여성들이 대부분 그러했듯 앨리스도 자라면서 받아온 교육 때문에, 성은 추잡하다고, 여자들은 모두 성을 싫어하며 남자들의 짐승 같은 욕정이야말로 행복한 결혼 생활이 주요 장애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녀는 아이를 원할 때만 성관계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234, 당시의 나는 편협한 섬나라 근성의 브리튼족답게 우월감으로 미국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학계의 미국인들, 특히 수학자들과 만나본 결과, 거의 모든 학문에 있어서 영국보다 독일이 앞서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하여 알 가치가 있는 것은 케임브리지가 다 안다는 믿음이 여행 과정에서, 내 의지와 상관없이 서서히 무너졌다.

 

236, 1898년이 되자 앨리스와 나는 해마다 일정 기간을 케임브리지에서 보내기로 하고 1902년까지 그대로 지켰다. 그 무렵 나는 맥태거트와 스타우드에 이끌려 뛰어들었던 독일 관념주의라는 욕조에서 서서히 빠져나오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내게 큰 도움을 준 사람은 당시 내가 대단하게 보았던 무어였다. 감각의 세계는 실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다가, 식탁이나 의자 따위가 현실로 존재함을 다시 믿을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내가 가장 흥미를 끄는 것은 역시 논리적 측면이다. 관계들이 실재한다고 생각하면 즐거웠고, 모든 명제는 주어-술어의 형태를 취한다는 믿음이 형이상학에 미칠 그 엄청난 영향을 밝혀보고 싶었다. 내가 라이프니츠를 읽게 된 것은 우연히 그에 관한 강의를 맡게 되면서였다.

 

258, 인간의 영혼은 모두 고독하다는 느낌이 느닷없이 나를 사로잡았다. 결혼한 후로 나는 정서상으로는 조용하고 피상적인 생활을 영위해 왔고, 좀더 깊은 문제들을 모두 잊은 채 가벼운 지식인으로 만족해 왔다. 그런데 갑자기 발 밑에서 땅이 무너지는가 싶더니 완전히 다른 영역에 들어서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인간 영혼의 외로움은 견디기 힘들다. 종교적 스승들이 설파한 것과 같은 지고의 강렬한 사랑 외에는 어떤 것도 그 외로움을 간파할 수 없다. ‘

 

259, 5분이 흐른 뒤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한동안 신비주의적 깨달음 같은 것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깊은 내면이 다 보이는 것 같았다. 물론 그것은 망상이었지만 그럼에도 현실에서 모든 친구들과 수많은 지인들과의 관계가 전보다 훨씬 더 친밀해져 있었다.

 

259, 야릇한 흥분감이 날 사로 잡았는데, 거기에는 강렬한 아픔도 담겨 있었지만 승리감도 약간 베어 있었다. 내가 고통을 지배하고 내 생각대로 주물러 지혜로 가는 통로를 만들 수도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승리감이었다. 그 당시에는 내가 신비한 통찰력을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했으나 곧 그것이 대부분 사라지면서 분석하는 습관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그 순간에 내가 보았다고 생각한 것의 일부가 늘 나와 함께하면서, 1차 세계대전에 대한 나의 태도를 형성시키고,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하고, 사소한 불행에 신경 쓰지 않게 하고, 나의 모든 인간 관계에서 정서적인 부분을 일정하게 유지하도록 만들었다.

 

261, 어느 날 오후 자전거를 타러 나갔는데, 전원 도로를 따라 달리다 갑자기 내가 엘리스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 바로 전까지도 그녀에 대한 내 사랑이 식었다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던 나였다. 어쨌거나 이 발견으로 제기된 문제는 매우 심각했다.

 

262, 이 같은 위기의 순간에 아버지의 까다로운 성격이 내게서 불쑥 튀어나왔다. 그리하여 나는 엘리스를 도덕적으로 비난하면서 스스로를 정당화하기 시작했다. 내가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고 금방 털어놓지 않아도 뭔가 빗나가고 있음을 그녀가 감지했음은 물론이다. (….) 결국에는 내 사랑이 죽어버렸음을 고백했다. 그리고 그녀의 성격을 비난함으로써 내 태도를 그녀와 나 자신에게 정당화시켰다.

 

263, 앨리스에 대한 내 감정이 변하게 된 데에는, 그녀의 어머니와 오빠의 일면 중에 내가 싫어하는 특성들이 그녀에게도 어느 정도 있음을 간파한 것도 한 이유가 되었다.

 

264, 장모는 가족들에게 남자는 짐승이고 바보이며 여자는 성인이어서 섹스를 싫어한다고 가르쳤다. 나는 자기 어머니를 지지하는 앨리스를 견디기 힘들었다.

 

267, 엘리스와 한 집에 사는 동안에는 그녀가 이따금 잠옷 차림으로 내려와 함께 자자고 간청하기도 했다. 나는 가끔 응해 주었으나 결과는 완전히 불만족이었다. 이런 식의 생활이

 

269, 1902년부터 1910년까지는 행복하지 않은 사생활에서 오는 부담과 지적으로 매우 고된 작업이 함께 이어진 세월이었다. 그 시절에는 내가 어떤 터널 속에 있는 듯했고 과연 터널 저편 끝으로 빠져나갈 수 있을까 종종 회의가 들었다. 나는 옥스퍼드 근처 캐닝턴의 육교 위에 서서 지나가는 열차들을 바라보며, 내일은 꼭 저 열차 밑에 드러누우리라 다짐하곤 했다. 그러나 다음 날이면 늘, 언젠가는 <수학원리>가 마무리되리라는 희망에 젖어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280, 제가 처음에 공리주의에 등을 돌리게 된 것은 , 경제학과 정치이론을 공부하면 인간의 행복에 보탬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하면서도 나는 철학을 추구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인간 존재가 가질 수 있는 존엄성은 삶의 메커니즘에 전념한다고 해서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영원한 것에 대한 관조가 보존되지 못한다면 인류는 살찐 돼지들과 다를 바 없게 된다는 것이 제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관조가 모두 행복에 이바지 한다고 믿지는 않습니다. 그것이 기쁨의 순간들을 주기는 하지만 그러한 시간보다는 노력과 부진의 세월들이 더 중요합니다.

 

281, 일반적인 차원에서 제가 생각하는 가장 훌륭한 삶은 진실하게 생각하고 ,인간적인 것들 것 많이 느끼고, 덧붙여, 미와 추상적 진실의 세계를 관조하는 삶입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 조건이 어쩌면 제가 가진 가장 반공리주의적 견해가 되겠지요. 실제로 존재하는 것들에 관련된 모든 지식- 흔히 과학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 , 철학이나 수학처럼 이상적이고 영원한 대상들에 관련되, 따라서 하느님이 만드신 이 비참한 세계로부터 벗어나 있는 지식을 비교할 때 저는 전자자 아주 하찮은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90, 혹시 글을 쓰고 싶다면, 작금의 경험론에 무슨 진리가 담겨 있다고는 절대로 생각하지마. 기쁨보다는 고통 속에 천 배나 많은 경험이 들어 있으니까. 예술가들에게는 강렬한 열정이 있지만 자신의 욕망을 탐닉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속이지. 글쓰기는 기술에서 나온다는 주장 역시 크게 잘못된 것이야. 글쓰기란 것은 정복할 수 없는 듯하면서도 결국 정복되고 마는 감정으로 가는 출구니까. 나는 두 가지 점이 키워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데, 첫째는 감정의 고상함, 둘째는 감정을 비롯한 모든 것을 의지로 조절하는 능력이야. 이 중 어느 하나도 미국에서는 역사 깊은 나라들에서 만큼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 사실 감정의 고상함은 본질적으로, 과거와 그것의 가공할 위력에 대한 깊은 자각, 영원하고 위대한 사실들과 개인적 감정에 불과한 일시적 쓰레기의 차이에 대한 깊은 인식에 의해 좌우된다고 생각해.

 

293, 크게 보면 인생이란 것은 우리가 그것을 가지고 무엇을 만들지 선택하는 과정이며, 이상이란 것은 그것이 다른 형태이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들에게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법이지.

 

294, 달리 보면 진정한 삶이란, 종교와 시의 재료를 만드는 감정들을 본인이 직접 경험한다는 의미도 되지. 그러한 삶으로 가는 길은 새로운 종교를 창시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흔히 권장되는 길하고 다를 바 없어. ‘십자가에 못박혀라’, ‘그리고 셋 째 날에 다시 일어나라

 

295, 만일 평범하지 않은 경험을 원한다면, 조금 더 포기하고 조금 더 의무를 수행해봐. 이 세상의 훌륭하고 자유로운 열정을 모두 합친 것보다 훨씬 더 진귀한 감정을 맛보게 될거야. 하지만 책 속의 삶에는 커다란 고요와 평온이 담겨 있지. 뭔가 좀더 진한 것에 대한 갈증이 밀려올 때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람은 자책과 공포와 고통과 해로운 후회에서 벗어나 살 수 있어.

 

296, 결국 사람이란, 인생에 대한 자기 자신의 감정보다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줄 수는 없는 법이지. 사람들이 경험에서 얻는 것은 별로 없다고 한 당신의 얘기는 지극히 사실이야. 하지만 나는경험을 얘기한 것이 아니라 감정에 대한 내면의 지식을 생각하고 한 말이야. 그 같은 지식을 얻고자 할 때, 제대로 된 사람이라면 아주 최소한의 외적 상황만 있어도 계기로 삼을 수 있어. 또한 그것은 인격의 성장과 어느 정도의 글쓰기도 요구되는 작업이지.

 

301, 결혼 생활을 하면서 누가 가해자고 누가 피해자인지를 두고 씨름하는 것을 보면 소름이 끼치지. 그러나 몇 년 지나면 대개는 문제가 정리되기 마련이고 정리가 되고 나면 한 사람은 행복해져 있고 다른 한 사람은 덕을 쌓고 있지. 가해자는 능글맞게 웃으면서 결혼 생활을 축복이라 말하고 희생자는 상황이 더 악화될까 두려워 미소를 띠며 마지 못해 동의하지. 결혼처럼 깊은 관계 속에는 고통의 가능성이 정말 무한히 담겨 있어. 그럼에도 나는 사람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는 것이 좋다고 믿어. 그렇지 하지 않을 경우, 알아두면 좋을 많은 것들을 알지 못한 채 살아가게 되거든. 세상에 고통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또 그것이 인간의 동료 의식을 키워 결국 남들이 다 겪는 고통으로 몰고 간다는 이유만으로 모른 척 살 수는 없는 거야.

 

320, 내가 어떤 사람의 인생에서 제 1 순위가 아닐 경우, 아무리 힘들더라도 그 사람에 대한 감정을 전적으로 수용적이고 수동적인 감동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고 믿어. 다시 말해 그 사람이 하는 일에 대해, 특별히 부탁해 오지 않는 한 관심을 갖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야. 사람들의 분위기를 지켜보고, 본인 스스로는 메아리가 되어 주어지는 정도만큼 애정을 가지고 반응하되 감정과 애정이 더 멀리 나아가는 것을 자제하고, 내게는 권리가 없으니 받은 것만 해도 과분하다고 생각할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해. 예를 들면 결혼한 아들에게 좋은 어머니가 보여주는 태도 같은 거지.

 

334, 훌륭한 삶이 우리가 아는 최선의 것이라면, 종교를 잃음으로써 오히려 용기와 꿋꿋함의 새로운 영역이 나타나기 때문에, 우리가 재난을 맞아 종교에서 해결책을 제시받을 때보다 훨씬 훌륭한 삶을 만들어갈 수도 있지.

 

335, 사람들을 깊이 안다는 것은 결국 그들의 비극을 알게 된다는 얘기지. 흔히 사람들은 그것을 중심으로 삶을 구축하고 있으니까. 그러니 만약 그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덧없는 것들 속에서 살지 않았다면 계속 살아갈 수 조차 없었을 거야

 

361, 스콧 부인 집 문간에서 마차에서 내리다가 돌로 포장된 바닥에 넘어져 성기를 다쳤던 것이다. 사고 이후 나는 매일 두 차례씩 뜨거운 욕조 물에 들어가 앉아 해면으로 조심조심 고추를 문질러야 했다. 그때까지 늘 성기를 무시하도록 교육받아온 탓에 나는 다소 혼란스러웠다.

 

362, 오톨라인은 다소 생경하면서도 아주 절묘한 취향의 소유자여서, 집이 대단히 아름다웠다. 앨리스의 경우에는 퀘이커 교도의 금욕주의와 자기 오빠의 탐미주의 사이에서 갈등하는 면이 있었다. 즉 응접실에 있을 때나 강연에 나갈 때의 옷차림 같은 좀 더 공적인 활동을 할 때는 최고로 예술적인 기준을 따르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기 혼자만 있을 때는 본능적으로 퀘이커 교도의 검소함이 발휘되어, 예를 들자면 항상 플란넬 잠옷 차림으로 돌아다니곤 했다.나는 늘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면서도 스스로 그런 것들을 챙기지는 못하는 사람이었다. 오톨라인의 집안 분위기는 내가 결혼 후 오랫동안 굶주려 왔던 것을 채워주었다. 집에 들어서자 마자 신결 거슬리는 외부 세계의 번거로움에서 해방된 것 같은 편안함이 느껴졌다.

 

409, 전쟁이 발발하고 처음 며칠은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화이트헤드를 비롯한 나의 절친한 친구들도 사나운 호전주의자로 변해 버렸다. 유럽의 전쟁에 끼어들지 말자는 취지의 글을 써온 헤먼드 같은 사람들도 벨기에가 참전하자 휩쓸리고 말았다.

 

410, 나는 감정적으로 극도의 긴장 상태에서 살고 있었다. 비록 전쟁의 참상을 전부 다 예견하지는 못했지만 내가 일반인들보다는 훨씬 알고 있었다. 그 암담한 전망도 끔찍했지만 나를 더욱 두렵게 만든 것은 국민의 거의 90퍼센트가 대학살을 기대하며 즐거워한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시각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411, 그 전까진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을 지극히 당연하게 생각했으나, 전쟁을 겪으면서 그것이 보기 드문 예외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른 무엇보다도 돈을 좋아한다고 생각했으나, 돈보다 파괴를 훨씬 더 좋아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지성인은 으레 진리를 사랑한다고 생각했으나,인기보다 진리를 더 사랑하는 지식인은 10 퍼센트도 안 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412, 나는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참전국들이 벌이는 대국민 선전에 구토증을 느꼈다. 문명의 애호가로서, 야만주

의로의 복귀에 간담이 서늘해졌다.

 

415, 나는 충동을 소유욕의 충동과 창조적인 충동으로 이분하고, 창조적인 충동 위에 세워지는 것을 최선의 삶이라고 보았다. 소유욕의 충동이 구체화된 예로는 국가, 전쟁, 빈곤을 들었고, 창조적인 충동이 구현된 예로는 교육, 결혼, 종교를 꼽았다. 나는 창조성의 해방이 개혁의 원칙이 되어야 한다고 확신했다.

 

421,그는 그녀의 날개 밑에서 큰 안도감을 느꼈다. 마르크스처럼 그에게도 독일 귀족과 결혼했다는 속물 같은 자부심이 있어서 <채털리 부인의 사랑>에서 자기 아내를 근사하게 포장해 놓았다. 그의 사상은 순수 리얼리즘을 가장한 자기 기만의 덩어리였다. 묘사력은 뛰어났으나 그의 생각은 금방 잊어버려도 아무 문제가 없는 것들이었다.

 

422, 양차 대전 사이의 기간, 세계는 광기에 이끌렸다. 그 중에서도 나치즘이 가장 강력한 표현이었다. 로렌스는 이 같은 광기 숭배의 적절한 해설가였다.

 

425, 콜레트는 배우이자 극작가인 마일스 멜리슨의 아내였다.

 

438, 나는징병반대 연대에서 발행하는 <트리뷰널>이란 주간지에 매주 글을 싣곤 했다. 내가 주필 자리에서 물러난 후 새로운 사람이 주필이 되었는데, 한번은 그가 몸이 불편하다면서 그 주의 논설을 좀 써달라고 다급하게 부탁해왔다. 그래서 나는영국의 파업 탄압에 미군들이 고용될 것이다. 그들의 본국에서 그런 일을 많이 해보았다는 요지의 글을 썼다. 의회 보고서를 인용해 한 얘기일 뿐이었다. 그로 인해 나는 6개월 형을 선고 받았으나 그리 불쾌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나 자시의 자존심을 유지할 수 있었고, 도처에서 벌어지는 파괴보다는 덜 고통스러운 것들을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다. 

 

447, 1914년부터 1918년까지 이어진 전쟁은 나의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나는 학구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새로운 종류의 책들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인간 본성에 대한 생각도 완전히 바뀌었다. 청교도주의는 인간의 행복에 이바지 못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깊이 확신하게 되었다. 죽음의 쇼를 보면서 살아있는 것에 대한 새로운 사랑을 알게 되었다.

 

450, 전쟁이 끝나자 내가 해온 모든 일이 나 자신 외에 누구에게도 완전히 무용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단 한 생명도 구하지 못했고, 1 분도 전쟁을 단축시키지 못했다. 그러나 어쨌든 나는 참전국들의 범죄에 공범자는 아니었으며, 개인적으로는 새로운 철학과 새로운 젊음을 얻었다. 나는 교수 자리나 청교도주의에 대한 미련을 떨쳐 버렸다. 전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본능의 작용을 깨치게 되었고, 오랫동안 홀로 서 있는 과정에서 평형 감각 비슷한 것도 얻었다.

 

453, 선전 포고로 치닫던 시기에 런던 밤거리의 군중을 지켜본 이들은 , 지금까지 평화롭고 인정 많던 시민들이 며칠 사이에 원시적 야만의 가파른 언덕으로 굴러 떨어져 순식간에 증오와 유혈의 욕망이란 본능들을 풀어놓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우리의 전 사회 조직이 바로 그런 것들에 맞서고자 세워진 것들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각국의 애국자들은 이러한 잔인하고 떠들썩한 주연을, 권리를 옹호하는 숭고한 결단이라며 갈채를 보냅니다.

 

454, 이 모든 광기와 분노, 우리의 문명과 희망마저 삼켜버리는 불꽃이 야기된 것은, 호화롭게 살지만 대개가 우둔하고 상상력이나 감정이라곤 없는 공직 신사들 패거리가 조국의 자존심에 조금이라도 상처를 받느니 차라리 참극을 벌이는 것이 낫다고 결정한 데고 기인합니다.

 

485, 나의 강연이 지식인들에게 원기회복의 계기가 되어, 전쟁뿐 아니라 일반 정치에 대한 나의 사고방식을 찾아 매일같이 더 많이 지식인들이 몰려들고 있어. 예전에는 정치를 경멸했던 문학이나 예술계 인사들도, 지난 날 드레퓌스 사건 때 프랑스 인사들이 그랬듯, 행동하는 쪽으로 내몰리고 있어.

 

485, 나는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말하고 박수 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현실에서 사람들의 생각을 변화시키고 싶어. 사람들의 정신에 힘을 발휘하고 싶은 것이 내 인생의 주된 개인적 소망이네. 그런 힘은 인기에 영합하는 이야기를 하여 얻어지는 것은 아니야. 젊은 시절에 철학을 할 때도 나의 관점은 가장 인기 없고 낯선 쪽에 속했으나 아주 큰 성공을 거두었어.

 

526, 전쟁이 계속되면 각국의 혁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민주주의자나 사회주의자들 중에는 전쟁이 계속되기를 은근히 바라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나 역시 그러한 결과를 초래하리라고 본다. 하지만 정부가 협상을 거부하기로 결정하면, 각국의 혁명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이유 때문에 우리가 정부의 평화 협상 거부를 묵인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 경우 우리가 직면하게 될 혁명은 너무나 엄청나고 끔찍하여 바람직한 결과를 낳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굶주림과 테러와 의심이 쌓여 폭발하는 혁명은 폭력과 증오와 유혈로 넘쳐나기 마련이고 따라서 서구 문명에서 가치 있는 모든 것들까지 사라지게 만들 것이다.

 

534, 만일 러셀이 평화론자 및 철학자 입장에서 전쟁에 관해 쓴 글 때문에 그의 사회적, 학문적 지위에도 불구하고 야만적인 처벌을 받게 된다면 영국은 독일이나 오스트리아가 경험해 본 바 없는 강도 높은 언론의 위험에 직면하게 될 것이란 점이오. 그것이 진정한 자유 국가의 이점이라면 무론 독일에도 건너가겠지요.

 

544, 우리의 현 제도는 타인들을 희생시켜야만 자기 보존이 가능하게끔 되어있소. 제도가 잘못된 것이긴 하지만, 자기 보존을 목표로 삼는다고 해서 사람들에 대해 혐오를 느끼는 것은 나약함의 소치라 할 수 있소. 인간의 동물적인 측면을 잊어버리거나 부인하려 해본들 소용이 없소. 인간 내면의 신성은 눈에 잘 띄지 않고 동물적인 면은 방해를 받고 있소. 금욕주의 철학을 탄생시킨 사람들로 모두 잘 먹고 마셨소. 결국 중요한 것은 나의 이상주의가 강건해지는 동시에 자연의 현실에 맞추어져야 한다는 것, 현실세계의 끔찍한 면은 주로 나쁜 제도에서 기인한다는 것이오.

 

554, 좀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도 있었을 사람들을 죽게 만든다는 것은 참으로 끔찍한 일이오. 내 경우로 말하자면확실하고 견고한 성정이 있었다고 믿소. 성장에는 크게 다른 두 종류가 존재하오. 하나는 4월이면 뻐꾸기가 날아오듯 단순히 때가 되었기 때문에 오는 아주 기술적인 의미고, 또 하나는 삶과 세상을 향한 감정의 성장이오. 나는 특히 전쟁이 터진 후에 후자적 의미의 성장을 모색해왔으나, 브로턴 부근의 한 교회에서 당신과 얘기했던 어는 순간도 큰 계기가 되었소. 그때 당신은 나의 도덕성에 야생이 들어갈 공간을 만들라고 했소.

나의 본능적 도덕성은 철저한 자기 억제에 기초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은 매우 힘든 작업이었소. 예전에는 나 자신도 두렵고 내 본능의 어두운 측면도 두려웠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소. 당신이 그 작업을 시작하게 해주었다면 전쟁이 완결시켜 주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오.

 

571, 자신이 믿는 바를 항상 확신하는 사람들, 자기 삶의 틀을 이루는 모든 것이 죽어버린 듯 초연하게 느껴져 괴로워하는 일이 없는 사람들이 얼마나 부러운지 모르겠소. 세상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뚜렷한 업적을 이루고, 인류에게 새 희망을 주는 것이 그 동안 나의 포부였소. 그런데 막상 기회가 가까이 오니 모든 것이 먼지나 재로밖에 보이지 않는구려. 미래를 들여다봐도 환멸에 찬 내 눈에는 싸움밖에 보이지 않소.

 

572, 더 많은 싸움과 잔인한 횡포, 독재, 테러, 노예 같은 굴종, 내가 꿈꾸는 인류, 꼿꼿하게 서서 두려움 없이 나아가는 관대한 사람들이 지구에 살게 될 날이 과연 올 것인가? 인류는 시간이 다할 때까지, 지구가 살게 될 날이 과연 올 것인가? 인류는 시간이 다할 때까지, 지구가 식고 태양마저 죽어 무모한 광란에 더 이상 활기를 제공하지 못하는 그 날까지, 싸우고 죽이는 괴롭히는 짓을 계속할 것인가? 나도 할 수 없소. 하지만 내가 가슴 깊이 절망하고 있다는 것은 아오.

 

581,러시아에서 받은 충격이 상당히 컸기 때문이다. 얼마 후 러시아에서 돌아온 친구들 편에 도라의 편지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가 러시아를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게다가 호감의 정도가 내가 러시아를 싫어하는 것 못지 않았다. 우리가 과연 이 차이를 극복할 수 있을지 걱정되기 시작했다. 영국에 돌아왔을 때 나를 기다리고 있던 편지들 중에 중국 강연 협회에서 1년간 강연을 맡아달라는 초청장이었다.

 

582,그녀는 내가 부르조아적이고 노쇠하고 감상적이어서 볼셰비키를 반대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볼세비키를 향한 그녀의 사랑을 당혹감과 두려움 속에 지켜 보았다. 그녀는 러시아에서 만난 남자들의태도가 어느 모로 보나 나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전쟁 중에 내가 콜레트에게서 찾으려 했던 것도 바로 그런 유의 위안이었다.

 

616, 죽지 않으리라는 확신 속에 병석에 누워 있는 것은 놀랍도록 즐거운 경험이었다. 그 전까지는 내가 근본적으로 비관주의자여서 산다는 것에 큰 가치를 두지 않는다고 늘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완전한 착각이었으며, 내게 삶은 한없이 달콤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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