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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16일 11시 20분 등록

No20                        나 자신을 유혹한 건 바로 나 자신이야        오미경 2013.09.16

 

 

창밖에 비가 내린다. 토요일 아침 늦게 나왔다. 잠을 충분히 자고 싶었다. 이번주는 매일 12시 넘게 집에 들어왔다. 9시에 겨우 일어났다. 10시에 도서관 디지털실에 앉았는데 마침 그 자리가 창문을 열어놓아서 약간의 스치는 비와 함께 바람이 불어왔다. 팔이 약간 쌀쌀하면서도 머리는 맑았다. 솔솔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는 잡념을 씻어내고 있었다. 책을 읽고, 과제를 하기 위해 자판을 두드려본다. 점심을 먹은 후, 집중하려 하지만, 가을 바람이 유혹을 하기 시작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가을 바람은 핑계이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날이다. 단풍이 막 물들어가기 시작하고 마음은 싱숭생숭, 러셀은 하루에 10시간 이상씩을 책을 쓰는데 투자했다. 시간이 허락되는 한 여행을 많이 다녔다. 영국의 시골로, 이탈리아로, 프랑스로 독일로 대륙이 붙어 있으니. 문득 바람이 스치고 지나가면서 말을 건다. ‘여행은 또 다른 자아를 끄집어 내거든. 그래서 많이 걸어본 자나 다녀본 자는 자신을 더 잘 알게 되는 법이야.’

 

 

오후 5시를 넘기자 우와~~ 정말이지 머리를 쥐어짠다. 책을 읽어도 읽은 자리를 또 읽고, 와 이런 때 친구라도 불러서 한잔 하면서 정답게 얘기하고 싶은 충동이 나의 엉덩이를 들썩이게 만든다. 그래 친구 불러내서 마시게 되면 취하게 되고, 취하다 보면, 오늘 안에 모두 책을 못 읽을 것이고, 못읽으면 내일은 취한 아침을 어떻게 일어난단 말인가. 내가 인내해야 함을 내 속의 유혹은 솔솔 부는 가을 바람이 아니라. 내 기분이 아니라. 내 자신이 나를 유혹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날씨탓에 친구탓에 모임탓에 못했다고 나를 속이는 거였다.

 

마음을 겨~우 겨~우 진정하고 전화기를 가방에 넣고 절대 꺼내지 않고 6시 넘어 집에 왔다. 도서관 주말 디지털실은 6시에 문을 닫는다. 하루종일 앉아서 책읽고 자판 두드리다보니 피곤하다. 아무생각 없이 잤다. 9시 반이 넘어서야 딸아이가 왔다고 깨운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책을 집어든다. 이번주는 학교일이 바빠서 토요일에 처음으로 책을 들었다. 바쁘기도 바빴지만, 현기증과 몸살이 번갈아 가면서 책을 볼 여력이 없었다.

 

학생들에게 내가 하지 않는 것은 가르치지 않는다. 내가 가보지 않은 길은 그런 길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줄 수 있지만, 어쩌랴. 내가 가보지 않은 길을.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본다. 가르치는 사람이 짓는 죄중에 가장 큰 죄는 구업(口業)이라는 것을. 가르치는 사람이 청중에게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닌가. 나는 학생들에게 물어본다. 공부는 무엇으로 하는 것인가? 그들은 대답한다. 머리로 하는 거라고. 나의 생각을 말한다. 공부는 몸으로 하는 거야. 머리도 몸의 일부잖아. 손으로 쓰고 입으로 말하고 엉덩이를 한 자리에 진득하게 앉아 있어야 한단다 -아이들은 한자리에 오래 앉아있지 못하는 습관 때문에 엉덩이를 들썩들썩이고- 결코 그 자리에서 자신을 지탱하고 있는 것은 몸의 의지가 아니던가. 공부가 아니더라도 앞으로 무슨 일을 하든지 즐기라고 말한다. 즐기면 그 일이 재미있어지고 재미있다 보면 몰입하게 되니까. 그러다 보면 무언가 자신이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길것이 아니겠는가.

 

옆에 있는 20대 후반의 젊은 선생님이 말한다. “선생님은 정말 몰입과 집중이 강하세요. 어떠한 외부적 환경에도 꿋꿋이 하시는거 보면.” 나는 학교일을 절대 집으로 싸가는 일이 없다. 엄밀히 말하면 따로 할 시간이 없기에 지금 이 순간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다. 수업시간 외 틈틈이 한다. 이번주 시험문제 출제 기간이라 빈시간 틈틈히 출제하고 문제풀이, 이원목적 분류표와 서답형 문제풀이 답안지 등. 틈틈이 한다. 졸리면 틈틈히 자고, 틈틈이 할일을 하고, 수업을 위한 학습지 만들기, 나는 매 시간마다 학생들에게 5분간 미니테스트를 치른다, 전 시간에 배운 내용 과제를 하게 하고 그 배운 내용을 본수업 전에 시험을 치르게 한다. 공부는 아이들이 하는 거다. 내가 해 줄수 있는 거라곤 그들이 배운 내용을 소화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방법을 써서 하도록 한다. 매 시간마다 미니 테스트로 수행평가를 하고, 수업 후 채점과 점수기록을 한다. 그런 일은 틈틈이 수업없는 시간에 학습지 만들고 복사하고 평가하고 평가한 것을 바로 그 다음시간에 돌려주면서 틀린 내용 점검하게 한다. 자리를 옮겨 다른 장소에 가면 그 장소에서 할 일을 그냥 한다. 다른 생각할 여념이 없다. 저녁 8시 넘어 회사에 한번 들러 할 일을 하고 나고 집에 오면 거의 12시가 넘을 때도 있다. 씻고 아무생각 없이 배개가 머리에 닿자마자 잠이 든다. 우울증 걸릴 여유가 없다. ‘농부가 우울증 걸린 것을 보았는가’라는 질문을 읽은 적이 있다.

 

 

일상이 연습이다. 연습이 모이다보면 무언가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것이 아니던가.

연습이 완벽을 만든다. 그래서 몸이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던가. 1학기때 가르쳤던 아이들이 도약을 해서 그 윗반으로 많이 올라갔다. 삶이 자신과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결국은 자신을 성장시킨다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사부님의 말씀을 되새겨 본다. 그 밥이 입으로 들어가 똥이 될 때까지 한 일이 그 사람의 정체성이라 했다. 나에 대한 투자와 시간을 공들이는 것. 공부를 하다 보면 그게 보인다.

연구원 1년 동안 일주일에 한권의 책을 읽고 북리뷰하고 칼럼을 쓰는 것도 책을 쓰기 위한 기초를 쌓고 연습을 하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번 북리뷰 올리는 것이 아쉽고 시간에 쫒겨 쓰는 칼럼은 두 번 세 번 교정을 못볼 때도 많다. 부끄럽지만 제 시간안에 제출하느라 늘 허겁지겁이다. 제시간안에 제출하기 위한 것도 하나의 약속이라면서.....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시간과 시간 사이에 나는 어디쯤에 있을까’ 라는 생각으로 창밖에 노오랗게 물드는 단풍을 바라본다. 내 마음도 올가을에는 아름다운 단풍으로 물들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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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50.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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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16 21:41:21 *.108.69.102

러셀의 10시간,  입으로 들어 간 밥이 똥이 될 때까지!

너무나 널널하게 살고 있는 내가 부끄러워지는데, 미경씨의 치열함은 날로 성숙한 모습을 보여 주네요.

 

이처럼 매순간 살아있고자 하는 그대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일지, 문득 궁금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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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17 09:50:44 *.50.65.2

저도 제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나이다.


샘을 파다 보면 알게 될 날이 올지도... ^__^


한~~~ '한가위날 만 같아라' 고 했지요

명~~~명절 잘 지내시옵소서

석~~~저녁(夕)에 보름달 보시면서 우리 소원 빌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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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17 07:50:31 *.122.139.253

요즘 날로 무기력해져가는 나에 대해 다시한번 각성을 하도록 만들어 주는 글이네!

고마우이 미경씨! 덕분에 다시한번 마음을 다듬게 해줘서...

 

힘들지?

하지만 연구원 누구든 느낄거야.

치열한 1년 간의 투쟁이 자신의 인생의 자양분이 되고 있음을 말이지.

스스로의 유혹에 넘어가면 안돼. 이 방식이 연구원이 현재를 살아가는 방법이니까.

현재를 즐겨. 물론 말이 쉽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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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17 09:54:06 *.50.65.2

양~~ 양껏 힘들게 즐겨볼까요. 이왕 하는거

재~~재주있는 양선배에게 벤치마킹도 하면서

우~~우리 함께 기쁨을 나누어보아요. 양재우 선배 첫책 출판을 기념하면서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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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20 15:29:40 *.58.97.140

미경.

늘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미경 모습은 정말 닮고 싶은 부분.

대학교 때 달리 장학생이 아니었어, 미경은...

 

서울에서 고갱전이 열리고 있는데...

미술 전시회만 보면 자기 생각이 자동으로 나네..

예술 경영의 꿈, 꼭 이루길..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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