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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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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17일 09시 46분 등록

대문을 보고 있으면 궁금해진다. 이 집 주인은 어떤 사람일까?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일까? 꽃을 좋아하는 사람?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 대문은 구획된 영역의 안과 밖을 연결하기 위하여 출입하는 위치에 세운 시설물이다. 출입을 통제하는 물리적인 시설물로서의 기능을 갖지만, 영역의 위상과 성격을 표현하는 상징적인 의미도 갖는다. 규모와 형식에 따라 여러 가지 유형이 있다. 성곽을 둘러친 성문에서부터 궁궐의 정문, 사찰의 일주문과 사천왕문, 사대부가의 소슬 대문, 평 대문, 사립문, 집주인의 소재를 알려주는 제주의 정낭도 있다. 지금은 타인의 집 앞에서 초인종을 누르지만 예전 사람들은 "이리오너라~" “계십니까?”를 외쳤다. 똑같이 집주인을 찾는 소리지만 느낌은 사뭇 다르다.

 

물리적인 경계인 대문을 보며 시설물이 설치되어 있지는 않지만 대문보다 더 견고한 마음의 문을 생각한다. 고택의 잘 생긴 대문을 볼 때면 유독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해 멀어진 사람들이 생각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을 기억하지는 못한다. 아예 마음의 문을 연 적이 없는 경우는 기억조차 없다. 빼꼼히 문을 열다가 닫아버린 경우 잊혀지지 않고 마음에 남는다. 문을 여는 의미를 말해주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선승 조주와 스승 남전의 일화이다. 노두( 때고 밥 짓는 일)였던 조주가 느닷없이 부엌에 연기를 잔뜩 지피고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근 채 소리를 질렀다. "불이야, ! 사람 살려!" 조주의 고함에 절이 발칵 뒤집혀 다들 부엌문으로 몰려들자  "그대들이 바른 말을 하지 않는다면 이 문을 열지 않겠다."고 소리쳤다. 사람들이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몰라 하자 그때 스승 남전이 문틈으로 열쇠를 던져 넣었다. 조주는 문을 열고 빠져 나왔다.] 부엌문을 여는데 열쇠는 필요 없다. 자신이 잠갔으니 스스로 열고 나오면 되는 일이다. 남전의 행위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문을 안에서 열어야 하듯 모든 배움과 깨달음은 안으로부터 일어난다는 가르침을 열쇠를 던져주는 걸로 대신한 듯 하다.

 

닫힌 문을 보면 물리적인 경계보다 마음의 경계가 생각난다. 함께 떠오르는 두가지 일화.

 

하나.

 

마음의 경계를 넓히는 놀이를 한 적이 있다. 금광을 찾아 나섰다가 폐인이 된 사람을 연기하는 역할극이었는데 배우의 시범을 보면서내가 저걸 어떻게…하는 마음이 일었다.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은데, 한 사람 한 사람 앞에 앉았던 동료들이 연기를 해간다. 차례가 다가올수록 가슴은 두 방망이 질을 해댔다. 드디어 나의 차례가 되고 선택의 여지가 없는 순간이 왔다. 축 늘어진 어깨에 아무렇게나 걸친 저고리. 폐인의 모습으로 터벅터벅 고향마을을 찾아 드는 남자. 그 남자의 눈에는 왠만한 돌무더기는 모두 금광으로 보인다. 급기야 길에 굴러다니던 돌을 보며 "금이다! 금이야. 금. 금 !"을 외치는 미치광이를 연기했다. 번뜩이는 눈빛연기로 나는 그날 대상을 받는다. 비록 이십 여명이 함께하는 수업 중에 한 역할극이었지만 남 앞에 나서기를 꺼리는 특히 가무에 능한 사람들을 보면 부러움의 시선을 놓지 못하던 사람이 해낸 역할극이었기에 나 자신이 대견했다.

 

다른 하나는

 

지난해 여름의 기억이다. 동고동락을 함께 하기로 했던 동기생과 여행지를 끝으로 함께 공부하지 못하게 된 일이다. 40도를 웃도는 날씨 탓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하다. 떠나기 전 우리들에게 일어났던 다른 일들이 이유라고 하기에도 마음이 편치 않다. 무엇이 나를 그날의 여행을 포기하게 만들었던 것일까? 한 두 가지의 행동으로 나머지를 유추해 내는 나의 탁월한 능력은 늘 이런 식이다. 첫인상과 몇 번의 대면으로 사람을 파악하기 시작한다. 눈에 띄지 않는 다른 것들은 직감이라는 것으로 대체해 버리고는 빠른 결론에 다다른다. 이 사람은 나와 맞지 않아. 더 이상 이 사람과 무엇을 함께 한다는 것은 무모한 짓이야. 그렇게 자기합리화를 하곤 한다. 지중해의 아름다운 섬에 들어간 두 번째 날 나는 사고를 쳤다. 무언의 행동으로 무리에 합류하지 않는 오만함을 나타낸다. 스승께서는 10명의 제자를 부르시고, 우리는 저마다 자신의 감정을 자제하면서도 하고 싶었던 말들을 한다. 여행지를 마지막으로 그와 함께하는 공부는 끝이 났다.

 

지금은 가끔 전화를 하고 만나기도 하지만 그날 이후 일어난 일들에 대하여는 늘 마음 한 켠이 편치 않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려오는 마음이 나아지지 않는다.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을 텐데...이유들을 아직은 다 모르겠다. 답답했을 스승의 마음이 걸리고 소슬 대문보다 더 높은 내 마음의 경계가 걸린다. 누군가 나의 문 앞에서 "이리 오너라~"를 외치면 맨발로 툇마루를 내려서 마당을 가로지르던 나의 할머니같이 반갑게 맞이 하리라. 처음 해보던 역할극을 잘 해내었듯이 그렇게.

IP *.175.25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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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18 09:48:19 *.153.23.18

행님 글을 읽고 한동안 마음이 그 섬에 가 있었어요.

행님 추석 잘 보내십시오.^^ 화창하니 며칠 달을 보며 즐거울 수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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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20 05:18:31 *.39.134.221

어제 차례지내러 가면서 우리와 함께하지 못한 그녀에게 메세지를 넣었다.

예상대로 어설픈며느리노릇 잘하고 있다고 하더라..

그 섬을 생각하면 이런 기분은 늘 들것 같아. 스승이 계시지 않으니 진전도 없을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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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18 19:40:51 *.201.99.195

길수 행님,

사람이 멋있는 건지, 글이 멋있는 건지  여하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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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20 05:17:10 *.39.134.221

선생님...감사^^

 

어제는 보름달이 크고 좋더이다.

이런 밤에는 말없이 쏘다닐수 있는 사람이 좋은데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간에 친정에서 돌아온 저는

달을 바라보는 걸로 달랬습니다.

명절은 잘 보내고 계시지요.

 

지난번에 못다한 산책 날잡아 하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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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23 09:15:41 *.122.139.253

예전 코미디가 하나 생각나네요.

 

지나가던 나그네가 큰 대궐의 대문 앞에 서서 큰 목소리로,

"이리오너라~!!"  외치자,

 

안에 있던 돌쇠란 놈이 나그네의 형편없는 행색을 보고 대답하기를,

 

"니가 오너라~!!"

 

 

행님, 추석은 잘 쇠셨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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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23 19:31:00 *.39.134.221

그럼요...평범한 아줌마의 추석이었습니다.

명절전일에 음식하고 추석에는 차례지내는것 도우미하고 설겆이하고

친정가고 다음날 영화보고 그 다음날 산에가고 그 다음날 집안청소하고...ㅋ

5일을 그렇게 지나고 나니 회사가고 싶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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