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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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바라는 것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그는 화가다. 화가가 되는 것 외에 다른 것을 원한 적이 없다. 그러나 그림만 그려서 먹고 살 수 없다. 아직 그의 그림 속에는 그가 없기 때문이다. 많은 습작이 필요한 화가다. 동시에 먹고 살 것을 걱정하는 화가다. 그는 고민한다. 왜냐하면 하고 싶은 것은 그림이고, 먹고 살기 위해 해야할 일은 친구 회사에서 근무하거나 수험생들을 위해 미술 학원을 여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나는 그가 되어 생각한다. 무슨 그림을 그리고 싶은가 ? 사람의 얼굴을 그리고 싶다. 왜냐하면 얼굴은 표정을 가지고 있고, 그것은 수많은 순간의 감정을 포착하는 감정의 바다이기 때문이다. 작은 물결로 부터 험악한 파도로 수시로 움직이는 감정의 바다, 그리하여 얼굴은 인생의 가지가지 순간들을 담고 있다. 만일 내가 일천 점의 얼굴 그림을 그려낸다면, 사람들은 나를 '얼굴의 화가'라고 부를 것이다.
또한 꽃을 그리고 싶다. 꽃은 나무의 꿈이기 때문이다. 매년 반복되듯 찾아 오는 꿈, 그것이 바로 꽃이다. 그 나무의 가장 아름다운 며칠, 나는 그것을 그려내고 싶다. 그리하여 내가 만일 일천 점의 꽃 그림을 그려낸다면, 사람들은 나를 '꽃의 화가'라고 부를 것이다.
오늘 나는 생각한다. 이 세상을 떠나기 전 다음과 같이 외치고 싶다.
"나는 여기 이 분야에 전부의 삶을 바쳤다. 그리하여 이 분야를 의미있게 바꾸었다. "
'이 분야', 그것이 무엇이든, 그것이 바로 우리가 머물렀던 공간과 시간이다. 바로 그것이 우리의 삶의 이야기, 우리의 정체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