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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22일 00시 58분 등록

 

범해 좋은 사람들 4.

당신의 마지막 소원은 무엇입니까?

 

 

   달려라 작가팀과 함께 탕춘대 능선을 다녀왔다. 추석 명절의 긴 휴가를 보내던 사람들이 모두 다 산으로 올라왔나 보다. 늘 호젓하게 생각에 잠겨 걷던 길이 왁자지껄하다. 서둘러 내려와 장독대에서 숨을 돌렸다. 한 잔의 술을 마시니 귓전에 방울 소리가 철렁인다.

 

당신의 마지막 소원은 무엇입니까?

내 생애 단 한 번뿐인 여행

 

  시한부 삶을 선고받는다면 당신은 지금부터 무엇을 하겠습니까?”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천천히 걸어 희망으로>란 책을 쓴 쿠르트 파이페씨는 평생 소원이자 마지막 소원이 유럽 장거리 걷기 여행이라고 망설임 없이 말한다. 하지만 그 소원은 위험천만한 모험이다.

 

쿠르트 파이페 씨는 대장암 말기 환자다. 겨우 6개월, 시한부 삶을 선고받고 수술을 받은 지 3주 만에 그는 여행을 시작했다. 배에는 인공항문을 매단 채 앞뒤로 배낭을 짊어지고 혼자 길을 나섰다. 앉아서 죽음을 기다리기 보다는 평생의 소원이던 여행을 하기로 했다. 길 위에서 죽는 것도 운명이라 생각했다. 의사들도 반대하고 가족과 친구들도 반대했지만 죽음을 앞둔 사람의 장엄한 선택을 그 누구도 말릴 수 없었다.

 

그의 직업은 정원사였다. 14살부터 시작했던 그 일을 이제 더는 하기 싫었다. 경제적으로 넉넉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환자가 되어 그냥 누워있기는 싫었다. 그리고 집안일도 더 이상은 하기 싫었다. 그냥 떠나고 싶었다. 뭔가 새로운 일, 아직 한번도 해보지 않은 일을 하고 싶었다. 그는 지금 64. 그가 아내에게 말했다.

 

    “당신이 100% 반대한다면 나도 포기하리이다.”

    "내가 100% 반대라고는 말하지 않았어요.“

    “내 마지막 소원이라오.”

    “그렇다면 신의 뜻에 맡겨야지요.”

 

아내가 마침내 축복의 말을 해주었다. 아내의 찬성이 없었다면 그는 여행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아내의 찬성에 그는 의기충천했다. 세 딸들은 처음부터 아버지의 계획을 지지했다. 그래도 일말의 불안함이 남았다. “떠나세요. 파이페씨! 그게 모두를 위해 좋은 길입니다.” 여성 심리학자가 조언했다.

 

 그가 계획한 길은 덴마크-독일 국경에서부터 출발해 이탈리아 로마까지 자그만치 3,350킬로미터였다. 166일간 매일 20여 킬로미터를 걸어야 했다. “과연 내가 그렇게 멀리까지 갈 수 있을까?” 그러나 실제 목표는 로마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떠난다는 것 그 자체였다. 걷다가 날이 저물면 외양간이든 헛간이든 차고에서든 묵었다. 때로는 남의 집 정원에 텐트를 치기도 했고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들판에 텐트를 치고 별이 빛나는 하늘을 지붕삼아 지친 하루를 쉬어갔다. 암으로 인해 육체가 극도로 약해진 상황에서 쿠르트씨는 통증으로 고통스러워하고, 넘어지고 구르고 쓰러지지만 절망하지 않고 묵묵히 한 걸음 한 걸음, 자신과의 싸움을 계속하는 동안 그는 순례자가 되어갔다. 그리고 166일째 되던 날, 목적지에 도착해 참아왔던 눈물을 쏟아냈다.

 

 결국 그는 로마까지 왔다.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따라 두려움과 절망을 뒤에 두고 마지막 기회를 힘껏 붙잡았다. 그는 그 길에서 내면에 있는 놀라운 힘을 발견했고 그 힘을 한껏 활용했다. 여행의 끝에 그는 일생동안 스스로 만들었던 일상의 강요와 속박에서 눈 먼 삶을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꿈을 이루기 위해 죽음과 맞섰던 용기는 그에게 더 더욱 생생한 삶을 가져다 주었다. 그는 아직 살아있다. 그가 우리에게 전하는 말이다.

 

 “당신에게 기쁨과 충만함을 가져다주는 일에 첫 발걸음을 떼라.”   우리에게 익숙한 메시지다.

 

 그리고 덤으로 얻은 깨달음이다. 홀로 떠나는 걷기 여행의 최대 장점은 길 위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걷기 여행자가 되면, 자연히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구하게 되기 마련이다. 길을 물어야 하고, 하룻밤을 의탁하기도 하며, 위급한 상황에서 구원을 받기도 한다. 쿠르트는 낯선 사람들의 친절은 되갚을 수 없다는 이유로 받지 않을 만큼 고지식한 사람이었다.

 

***나는 이때도 여전히 모르고 있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버스 정류장에서 여성과 만난 후에야 비로소 타인의 진심 어린 도움을 거절하는 행위는 뺨을 때리는 짓과 다름없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 사실을 깨닫는 데 도대체 나이가 몇이나 되어서야 가능했는가! 이제 같은 실수를 두 번 다시는 저지르지 않으리라. 선물을 받는다는 자체가 바로 보답이라는 것도 모르고, 몇 푼 안 되는 돈푼으로 보답이 가능하다고 믿었던 나의 보잘것없는 결벽증을 완전히 버리겠다.   (본문 100쪽)

 

****여행을 하는 동안에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들의 크나큰 도움과 애정을 경험하면서, 나는 아주 빠른 시간 내에 지금까지 내가 가졌던 인간상을 의심해보고 완전히 새로운 인간상을 얻었다. 이 압도적이고 긍정적인 경험을 젊은 사람들에게도 알려주고픈 충동을 느꼈다. 보라, 사람들이 으레 생각하듯 세상은 그렇게 나쁘고 이기적이지 않았다.  (본문 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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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26 12:56:35 *.108.69.102

산티아고에도 그렇게, 침대에 누워 죽음을 기다리느니 품에 유서를 넣어 가지고 다니는 노령의 여행자가 많다고요.

저도 때가 오면 그러고 싶네요.

 

이렇게 좋은 책들로 매일 샤워를 해서 그런가

너무 예뻐지셨더라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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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29 13:06:55 *.201.99.195

명석쌤,

예쁘다는 말에 항상 가슴 뛰는 그 무엇이 있다는건......... 좋은데요.

비오고 흐린 하늘도 산책하기에 좋구요.  칭찬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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