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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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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22일 22시 03분 등록

큰집 대청 마루 벽에는 할아버지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전, 환갑 전에 돌아가셨다. 할아버지 얼굴은 어딘지 모르게 우울하고 슬픈 표정을 하고 있었다. 생전의 아버지는 술에 취하면 간혹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원망하곤 했다. 이유인 즉, 소학교를 다니던 아버지가 어느 날, 잠 들기 전 이불 속에서 할아버지가 할머니한테 둘째 저 녀석은 평생 땅이나 파게 해야지, 큰 아들은 면서기 시키고.“하는 말을 들었는데 아버지는 이 말이 평생 가슴에 못이 박혔다고 했다. 가뜩이나 온갖 굳은 일은 형 대신 다 했는데 배움의 기회마저 없어져 서러웠다고 했다. 어린 나이에 쓰라린 좌절감을 느꼈던 것이다. 팔 남매 중 둘째 아들인 아버지는 총명하고 재능이 많았다. 큰 고모에 따르면 한번은 일본인 소학교 선생이 가정 방문하여 할머니께 아들이 똑똑하니 지속적인 격려와 관심을 부탁했다고 한다. 하지만 가난과 장자 우선에 밀려 아버지는 중학교를 도중에 그만 두어야 했다. 그 후로 농사를 짓다 어머니와 결혼 후, 자식 교육을 위해 도시로 이주하였다. 아버지가 배움에 대한 열정이 좀 더 절실했다면 누군가 도움의 손길을 주지 않았을까 생각해보지만 당시 어린 나이와 형편 상 좀 무리였으리라.  

 

한 사람이 태어나 성장하고 죽기까지 가정, 학교, 사회에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그들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그 만남이 우호적이냐 적대적이냐 따라 그의 삶이 바뀌기도 한다. 부모, 친구, 스승, 그리고 인생의 동반자는 자신의 가치관, 사상, 지적 성장 등 잠재능력 개발에 영향을 준다. 자식에게 격려와 용기를 북돋아 주는 부모가 있는가 하면 경제적 궁핍이나 무관심에 자식을 방치하는 부모도 있다.

 

배움에 한이 많았던 아버지는 자식 교육이 최우선이었다. 당신 부모로부터 받지 못한 격려와 용기를 내게 아낌없이 주셨다. ‘항상 기죽지 말고 자신감을 가져라고 말씀하셨다. 내게 성실과 근면을 남겨주신 아버지는 내게 단 한번도 회초리를 들지 않았던 자상한 분이셨다. 만약 아버지가 고향을 떠나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도 배움의 기쁨과 세상의 넓음을 알지 못한 채, 몽매한 상태에서 하루하루 생각 없이 기계적이고 노예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내게 있어 부모는 세상에 눈을 뜨게 해준 내 성장의 밑거름이었다.

 

자신의 운명을 바꾸고 성장과 잠재력 발견에 도움을 주는 데에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은 없다고 한다. 유감스럽게도 내가 어리석어 지금껏 인생의 안내자인 스승을 만나질 못했다. 국민학교 때는 시골학교라 겨울을 제외하고 수업 후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삽질, 호미 질, 낫질 작업을 다반사로 했고, 중학교 때는 한문과 국어를 좋아해 담당 선생님의 관심을 받았지만 앞으로의 인생 진로에 대해 논할 정도의 그런 관계나 그럴 나이도 아니었다. 고등학교 때는 선생님들이 입시학원처럼 얕고 단편적인 지식을 전달하기 바빠 한가롭게 가치관이나 인생관을 논할 상황도 아니었다. 또한 담임이 내가 싫어하는 수학과 영어를 담당해 담임의 관심도 받지 못했다. 대학 때는 전공과목 대신에 사회과학 서적을 읽거나 취직 공부하느라 스승님과 친해질 시간도 갖질 못했다.

 

생각해보니,이제 건강 수명이 20 여 년 남은 것 같다. 아직 내적으로, 지적으로 성장하고 싶고 배우고 행할 일들이 많은데 시간이 많지 않아 보인다. 이 순간, 김구 자서전인 <백범일지>에서 선생이 이봉창 의사를 만나고 작별하는 장면이 생각난다. 일본에서 철공소 직원으로 일한 31세의 이봉창 의사가 상해 임시정부를 찾아와 자신의 포부를 털어 놓는다. ”내 나이 31세입니다. 인생의 목적이 쾌락이라면 31년 동안 인생의 대강 쾌락을 맛 보았습니다. 이제는 영원한 쾌락을 얻기 위해 독립사업에 헌신하고자 상해에 왔습니다.” 그의 결의는 타인, 사회, 그리고 국가가 어떻게 되든 말든 상관없이 자신의 세속적 성공을 좇는 대다수 현대인들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 아니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한가지 답을 보여준다. 일본 천황을 살해하기 위해 동경으로 떠나기 직전, 김구 선생과 함께 사진을 찍는데 김구 선생의 얼굴에 처연한 기색을 보이니 선생한테 저는 영원한 쾌락을 향유하기 위해 이 길을 떠나니 기쁜 얼굴로 사진을 찍읍시다라고 말한다. 실제로 그가 남긴 사진을 보면 활짝 웃는 모습이다. 그 모습에 거사를 앞둔 긴장이나 공포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죽음을 앞두고 찍는 사진에서 삶의 회한이나 미련 없이 티없이 맑게 웃는 표정을 지으며 찍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지나온 삶이 나와 내 가족만을 위한 삶이었다면 앞으로 남은 인생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의미 있는 인생을 살고 싶다. 끊임없이 배우고 그 배운 것을 행하고 쉼 없이 성장하면서 그 과실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다. 그 동안 격에 맞지 않게 과분한 대우를 받으며 살았다. 이제는 문지기가 되어 우직한 마음으로 문안으로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멋진 경례를 하며 살아가고 싶다.

IP *.50.96.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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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22 22:10:40 *.252.224.29

앞서서 멋진 경례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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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23 16:44:39 *.122.139.253

네 그러실 겁니다, 형님은. 아무렴요! ^^;

'문지기'가 되어 모든 사람에게 멋진 경례를 부치실 겁니다. 그럼요! ^^;

 

저도 <백범일지>를 읽으며 이봉창 의사와 김구선생이 활짝 웃는 얼굴로 사진을 찍는 장면에서 콧등이 쨘 해졌었는데요,

동감이란게 이런거겠지요? ^^;;

 

형님의 사고와 생각이 지금처럼 계속 발전하고 심화되어 성장한다면,

앞으로 형님의 삶은 분명 달라질거에요.

그럼요. 아무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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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25 18:08:24 *.18.255.253

양선배는 나하고 느끼는 바가 비슷한 것 같아. 이걸 공감이라고 하나. 하긴 그 장면에서 감동이 없으면 안되겠지. 갈길이 멀지만  천천히 쉬지않고 가야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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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24 18:48:40 *.91.142.58

형님동지!

 

매번 진심이 담긴 글 넘 잘 읽고 있습니다.

저도 형님이 서 계신 문에 경례 받으며 들어갈 수 있기를...

그보다 먼저 형님 가시는 길에 큰 박수 쳐드릴 수 있기를 앙망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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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25 18:17:00 *.18.255.253

지니, 내가 자주 감싸주지 못해 미안해. 어서 오시게. 항상 환영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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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25 10:14:26 *.108.69.102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스승다운 스승을 만나질 못하다가 오랜 시간 걸려 변경까지 왔는데

본 과정이 시작되기 전에 그런 일이 생겼으니 재용씨도 많이 서운했겠어요!

 

진솔함에 이봉창의사의 예가 어우러져 기품있는 글이 되었네요. 잘 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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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25 18:14:27 *.18.255.253

오랜만에 댓글을 달아 미안합니다. 매번 올린 글이 마음에 안들어 다시 보기 민망하고 부끄러워서요.

하지만 선후배님의 진솔한 댓글도 나의 발전및 성장에 참고로 삼고 응원에 감사를 드려야 겠다는 생각에 이렇게 들어왔습니다. 매번 격려와 응원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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