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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23일 01시 39분 등록

범수씨가 눈을 떴다. 어슴푸레보이는 스마트폰의 시간은 새벽 6시 30분. 정신이 번쩍 든다. 부모님 댁을 방문해야하는 날이라 분주한 아침이 될게 뻔하다. 일단 아이가 깨기 전에 개인 채비를 다 하고 아이가 일어나면 잠에서 덜 깬 녀석을 데리고 움직여야 하니 여간 고달픈게 아닐듯 싶었다. 범수씨는  씻고 옷을 입었다. 그러는 와중에 아이가 깨어났다. 아이엄마는 자기 단장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아이를 안아주고 오줌을 뉘운 뒤 세수를 시켰다. 엄마가 미리 준비해 놓은 옷을 챙겨 입히는 범수씨. 가끔이긴 하지만 옷 하나 입히는 것도 보통일이 아니다. 그렇게 바쁘게 준비를 하고 드디어 부모님 댁으로 출발했다.

 

기차를 탔다. 사람들이 꽤나 많다. 근교에 놀러가는 사람도 있는 듯 보이고 집으로 가는 사람들도 보인다. 기차를 탔으니 한동안은 조금 한가할까 싶었지만 큰 오산이었다. 아이는 쉴 새 없이 떠들었다. 창밖을 바라보며 '우아~ 우아~' 감탄사를 연신 내뱉고,  무슨 그리도 궁금한게 많은지 쉴새없이 쫑알쫑알대고 질문한다. 범수씨는 되도록 성심성의껏 답해준다. 하지만 쉽지가 않다. 부모님 댁에 도착해서도 아이의 신체적 정신적 움직임은 계속 되었다.

 

오후가 되자 피곤한 아이는 낮잠을 잤다. '자유다!!!'  짧은 휴식을 가지게 된 범수씨는 책을 폈다. 주어진 과제를 위해 별 생각 없이 편 책, '백범일지'였다. 독립운동가 김구가 쓴 백범일지는 그의 삶이 녹아들어가 있었다. 책을 읽다보니 김구선생의 삶은 보통 사람의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그는 가난한 양민의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강직하고 감정에 충실한 삶을 살았다. 가족을 포함한 당신의 안위보다는 더 넓은 세계-민족,국가,세상-를 위해 살았다. 그는 힘없는 국가와 민족의 처지에 분개하여, 스스로 일본인을 처단하기도 했고, 일제치하에서는 국가의 독립을 위해 수십년간 독립운동을 하였다. 그런 그의 삶이니, 자신의 안위와 가족은 언제나 맨 뒤에 자리하고 있었다.

 

범수씨는 김구의 삶을 엿보다 자연스레 자신의 삶과 비교해보았다.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데 익숙해져 있는 범수씨. 어떤 사안이나 행동에 대해서도 가족의 눈치를 보아야 하고, 자상한 아빠가 되기위해 아이와 함께 놀아주어야 하고, 아이나 아내와의 대화가 부족하면 왠지 아빠와 남편으로서의 본분을 다하지 못하는 듯해 언제나 미안한 마음을 가지는 그였다. 밥벌이를 위해 직장상사의 눈치를 보며 살았고, 한달 꼬박 일한 뒤 받는 월급, 입금된 지 채 하루도 안되어 바닥을 보이는 잔고를 보며 한숨짓는다. 작은 것 하나에도 안절부절하는 그. 이토록 좁디 좋은 공간에서 움직이고 있는 자신씨의 삶을 나라와 세상을 향해 움직이는 김구선생의 삶과 비교해보니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범수씨는 순간 왠지 처량하고 작아지는듯 했다. 

 

'내 인생은 왜 이러지? 인생이란 무엇인가?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할까?'

 

범수씨는 뜬금없는 질문을 던져보았다. 한참(?!)을 생각한 그는 이런 답을 내렸다. 

 

'생긴대로 살자. 그렇다고, 이게 그냥 멈춰 있으란 말은 아니다.'

 

범수씨와 김구선생은 기질적으로 다르다. 범수씨는 평범하고 소박한 기질(凡) 가졌지만, 김구선생은 강직하고 넓은 기질을 지녔다. 범수씨가 하룻강아지라면 김구선생은  호랑이( )이다.  하룻강아지가 원한다고 해서 호랑이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결국 범수씨는 김구선생과 같은 삶을 살 수도 없을 것이다. 대신, 범수씨는 자신만의 삶을 살 수 있다. 그가 여기에 한가지 더추가한 것은 그 삶에 사회에 대한 고민, 이것만 추가한다면 김구 선생처럼 위대한 삶은 아닐지 모르겠지만, 수천만이 우러러보는 그런 삶은 아니겠지만,  범수씨가 살고 있는 이 사회와 사람들에게 보탬이 되는 삶을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 다운 삶'을 산다면 말이다.

 

부스럭부스럭, 아이가 뒤척인다. 곧 아이가 깨어날 것 같다.  아이가 깨어나면 범수씨는 다시금 한 아이의 아빠로서 분주한 일상을 보내야 할 것이다.

 

'에효, 이게 나 다운 삶인가' 

 

범수씨는 알듯 말듯한 표정의 웃음을 지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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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23 17:03:25 *.122.139.253

차칸양은 땟수나무의 '범수씨의 삶' 칼럼을 읽은 뒤,

알듯 모를듯한 표정을 지으며 잘 알아듣기 어려운 혼잣말을 한다.

 

'에효, 차카게만 사는게 과연 나다운 삶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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