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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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에게 :
J. 나 명절에 집에 다녀왔어. 고향에도 다녀왔어. 친가 어른들께 인사하고, 밥 같이 먹고, 외가가서 또 밥먹고 딩가딩가 놀다가, 익산집에와서 동생네 가족이랑 또 밥 먹고. 그렇게 먹고, 쉬다 먹고 쉬다하고 돌아왔어. 불편할 것 같았는데, 역시 불편하더라.
큰집에서 밥 먹을 때는 언니(큰집 셋째사촌오빠 부인)이 앉을 자리 없다고 묵을 맛나게 먹고 있는 딸네미를 다른 그릇에 묵을 담아서 그릇 들고 일어나게 하고 날 그자리에 앉히더라. 난 많이 불편하더라. 어찌피 사람 많아서 한자리에서 못 먹어. 남자 어른들은 큰방에 큰 상 하나 놓았고, 부엌방에 아이들 먼저 먹이려고 했어. 부엌방 둥근 상 한쪽 자리에 다이어트로 묵만 먹겠다는 5촌조카 여자 아이 언니가 불러서 일으켜세우고는 날 먼저 앉혔거든. 큰어머니와 언니들, 우리 엄마는 음식 준비하느라 2차에 드시려고, 아이들 먹고 일어나면 드시려고 음식만 챙기셨지. 아주 불편하더라고. 나도 한씨 성 가졌다고 언니가 날 먼저 챙기나 했지.
그런데 더 불편하게 했던 것은 5촌 조카 막내아이 유주 밥 먹는 거였어. 아니, 실은 유주가 아니라 유주를 먹이는 5촌 다른 조카들이었어. 유주는 내년이면 학교들어가도 될만큼 큰 아이야. 그런데 막내값 하더라구. 유주 밥 먹이려고 아주 시끄러웠지. 큰 소리로 유주 이름 부르고, 음식 집어 먹어보까하고 관심끌고, 먹었다고 칭찬하고를 계속 반복하면서 '잘한다, 잘한다!'를 밥을 다 먹을 때까지 반복했거든. '어이구 잘 먹네. 우리 유주 깍두기 먹을까? 아휴, 잘 먹네. 다 먹었네. 어휴 잘한다! 우리 유주 다 컸네.' 아, 난 그 애가 밥 먹는 거 안보고 그냥 밥만 먹었어. 나라도 얼른 먹어야 할 것 같더라고. 아, 역시 애구나 하고 생각했지. 애들은 '잘한다, 잘한다!' 해줘야 뭘 하잖아. 어른들이 애들보고 컸다고 할 때는 '혼자서도 잘해요~'가 돼서 자기를 좀 편하게 해줘야 컸다고 하던데, 그런 걸로 치자면 유주 밥 먹이려고 애쓴 조카가 큰 애지.
그렇게 밥 먹고, 어머니와 큰어머니와 언니들이 밥 먹을 때, 큰방에 남자들이 밥을 다 먹어서 상을 치워야했는데, 그게 또 복잡하더라. 방안에서 상은 내와야 하는데, 부엌방은 이제 반 먹고 있고, 그릇을 가져와도 씽그대로 놓기도 그렇고, 상을 내오기도 그렇고. 아직 밥 덜 먹어서 좀있다 치운다 그랬어. 그렇게 먹고 치우는 데, 5촌 조카아이 둘이 설겆이를 했어. 큰 언니가 시키더라구. 그 사이에 언니는 음식 남은 것을 정리하고, 비워서 싱크대로 넣었지. 그 사이에 또 다른 조카아이는 커피를 탔어. 큰아버지(아이에게는 할아버지) 커피는 설탕을 두 숟갈 더 넣고, 나머지 일곱 개는 그냥 봉지 커피 그대로.
저녁은 외가에서 먹었어. 큰외삼촌 집에서. 아버지 만큼이나 어머니도 형제간이 많아서 이쪽도 사람이 다글다글했지. 물론 밥상 2개 놓고, 그리고도 몇은 2차로 먹어야했고. 거실이 넓어서 거기에 2개 펴고. 5촌 외조카들 밥 먹이는 게 일이었지. 엄마 아빠들이 알아서 국에 밥 말아서 한쪽으로 끼고 앉아서 조기살 떼어 숟가락에 놔주며 밥을 먹였어. 서후는 그냥 잘 먹고, 은성이는 조용한 아이라 눈 이리저리 굴려가며 아빠가 해주는 대로 잘 먹더라구.
또 아이와 밥을 먹은 것은 익산집에 돌아와서 동생내외가 저녁을 먹으로 와서야. 어머닌 그래도 사위 밥 한끼 해줘야지 하며 동생에게 전화를 했지. 동생은 밖에 나가 놀고 싶었는지 남편과 아이들을 보내겠다고 해서 어머니가 잠시 삐지셨어. 문 열고 들어올 때는 모두 같이 오더라구. 놀이터에서 놀다가 왔대. 아이들이 있어서 식탁에 차렸던 밥상을 큰 상을 하나 펴고 거실에 둘러 앉았지. 첫째 조카놈이 밥 안먹겠다고 띵깡을 부리더라구. 이 녀석은 원래 잘 안먹어. 어르고 달래고 윽박 지르고 해서 먹이지. 둘째 녀석은 먹성이 너무 좋아서 고깃국에 밥 말아주고 숟가락 쥐어주면 잘 먹어. 고기 찾아가며 숟가락으로 손가락으로 집어 먹어. 그래서 첫째가 안 먹는다고 하면 더 피해가 있는 것 같아. 둘째 놈과 비교돼서. 밥 먹는 중에도 밥은 안 먹고 자꾸 테레비 틀어달라고 칭얼대서 큰 소리로 뭐라하며 밥상에서 어머니가 테레비 켜준다, 안된다하며 또 한바탕 하더라구. 동생이 그러더라. 저녁에 자기전에 씻길 때, 물 받아 놓고 첫째 놈을 부르면 안오고 해서 소리지르고 때린대. 그렇게 고집 꺽어 씼긴대. 그런 모습 보고 놀래서 둘째 놈은 부를 때 바로 안오면 저도 맞을까봐 얼른 와서 씼는다나. 첫째 놈이 동생 없을 때나, 동생이 누워지낼 때는 지 엄마도 밥 한 숟갈이라도 먹이려고 박수치고, 노래부르고, 칭찬하고 난리였는대, 동생이 생기니 그냥 바로 큰소리와 매네. 뭐든 소리 크고 힘센 엄마 뜻대로야.
나 어려서 동생이랑 밥 먹을 때 많이 싸웠거든. 밥 먹다가 화나서, '너! 나중에 우리집에 오지마!'라고 했어. 밥 먹는 게 영 마음에 안들었거든. 나보다 어린 녀석 사정을 생각해 줘야하는게 화가 많이 났어. 아이들 저만 아는 이기적인 놈 옆에 있으면 아주 괴로워. 동생이 미워서... 그리고 그게 커서도 똑 같을 거라 여겼어. 그리고 자식 낳으면 동생과 똑같이 못돼 처먹었을거라고 생각했지. 아 참, 밥 먹는데 왜 이렇게 시끄러운지. 이놈의 새끼들은 저 밖에 몰라.
동생이 조카들 이쁜 짓을 보여주고 싶어했어. 밥 먹기 전에 아들내미 노래 배운 거 해보라고 시켰는데, 아들내미가 아직 잠이 덜 깼나 힘이 없나 노래를 안하더라구. 나랑 어머니랑은 밥을 챙기려고 부엌을 왔다갔다하는 데, 동생은 아들내미를 이쁨 받게 하려고 노래해보라고 하는데, 잘 안하고 해서 밥 먹고 부르자하고 달래놓았었어. 밥 다 먹고 상 치우고 설겆이를 하는데, 동생이 조카 노래 하는 거 보라고 하더라구. 난 '퉁명스럽게 설겆이하고.'라고 했지. 어머니께서 자기가 나중에 한다고 놔두라고 하시는데, 그말에 난 열받아서 동생이 말하는 걸 쳐다도 안보고 생깠어. 다시 부엌으로 가서 설겆이를 했지. 동생이 서운 했겠더라. 자랑도 하고 싶고, 미안하기도 해서 그랬겠지만 뭐. 나중에 어머니가 하는 건 싫으니까. 동생이 지가 나서서 설겆이를 할 놈이 아니거든. 설겆이하며 동생이 미운데, 조카까지 이뻐라하지 않아서 좀 껄적지근하고 그러더라. 그깟 설겆이가 뭐라고. 내가 설겆이를 마쳤을 때는 동생 내외가 아이들을 데리고 자기 집으로 가더라구. 내가 쌩~하니, 노래하는 귀여운 아들네미를 보여줄 마음이 사라졌나봐. 동생 내외가 가고 나니 어머니도 안방에 들어가서 쉬셨지. 딸년이 뭐라고. 이제는 뒤통수가 이쁜 손님이네.
난 집에서 일찍 왔어. 부모님께는 미안하지만 내가 집에서 편치 않아서. 어머니 옆에 있으면 내가 찬밥이라서 싫어. 동생이 지 할일을 어머니에게 은근히 밀어놓고 자기는 안하고 어머니를 시키고, 난 어머니가 못한 거 뒤치닥거리하고 해서 어머니에 옆에 있으면 어머니도 밉고, 동생도 미워. 아휴, 몸만 컸지 자라지 않은 아이들이 왜 이리 미운지. 커서도 저만 아는 애같은 사람이 어찌나 귀찮은지.
그런데 이런 날 보면 나도 마구 싫어지는 거 있지. 왜 누군 옆에 있으면 내가 막 누구를 미워하고, 쪼매한 나 자신을 보며 나 자신을 싫어하고 해서, 그 사람이 더 싫어. 아이고, 그냥 좀 편하게 맞춰주거나, '아~ 그럴 수도 있겠다' 하며 자연스레 원하는 것을 해주며 같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잘 안돼네. 내가 많이 강팍한가봐. 힘도 없고. 내가 피곤해서 그냥 지들이 알아서 잘 했으면 하는 때가 많아. 봐줄 눈에 보이는 대로, 느끼는 대로, 자연스럽게 뭔가를 하기엔 힘이 딸려.
누구는 그 힘이 사랑이라고 하더라. 사랑할 때는 중심이 내게 있는게 아니라서 자연스럽게 된다고 하더라구. 그 이쁜 것을 먹이고 싶고, 웃는 모습 보고 싶어서 내가 움직인다고. 그 사랑은 어디서 생기는 건지 모르겠다. 눈으로 들어와서 생기는 건지, 만져서 생기는 건지, 머리로 이해할려고 해서 그런건지, 가슴으로 들어와서 그런 건지 그걸 안다고 더 생기게 한다거나 안생기게 한다거나 할 수도 없겠지만 그래도 그게 뭔지 궁금히다. 조카들 가끔 이쁘지. 동생도 어렸을 적에는 가끔 예뻤어. 어머니도 가끔은 좋지. 어머니는 좋은 것보다는 측은하다고 해야하나. 어린 것, 약한 것, 그래서 이쁜 것. 어리고 약해서 이쁜 것. 이런 건 참, '애'와 '증'을 부르네. 아이씨, 강하고 이쁜 건 안되나? 그건 나를 죽여야하는 '증'이 안 딸려와서....그래서 이쁘긴 한데 '증'이 없어서 '애'가 안 딸려올까?
자기를 편히 먹게하려고 부엌방에서 밥 먹는지 신경 쓰지도 않는 놈, 지 먹이려고 2-3시간 내내 부엌에 서서 뭔가 했다는 걸 모르는 놈, 설겆이 하느라 손에 습진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그 놈을 먹이려고 애를 썼기 때문에 그놈이 이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