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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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름의 한 낮, 가장 뜨거운 시각에 그는 델피에 도착했다. 근엄한 파르나소스산의 중턱에 자리잡은 아폴론의 신전은 까마득한 옛날 영험한 신탁이 내려지는 신비한 곳이었다. 아폴론이 천 개의 화살을 쏘아 커다란 뱀 피톤을 죽이고 자리 잡은 후, 사람들은 멀리 내려다 보이는 이테아 항구에 배를 정박시킨 후 신에게 바치는 제물을 들고 이곳을 찾았었다. 아폴론의 여사제들은 삼각의자 위에서 접신(接神)의 몽환적 기분으로 신탁을 내리고, 사람들은 그 신탁의 빛으로 인생을 살아갔다. 때때로 맞았고 때때로 틀렸지만 모두 운명이라 생각했다. '등이 넓은 사람' 플라톤은 이곳을 우주의 배꼽 옴빠로스라고 불렀다. 2500년 전, 한때 그곳은 보물을 담아두는 보고와 기념석상으로 번성하는 도시였다. 그러나 지금은 과거의 영광의 빛 속에 돌기둥 몇 개, 원형이 보존된 아담한 극장, 그리고 엉성한 달리기터 하나로 남아 있다.
그는 태양을 피해 커다란 올리브 나무 밑으로 들어갔다. 그리스의 여름은 40도가 넘는 불볕이었다. 그러나 그늘 속으로 들어가면 시원했다. 바람이 불었다. 옆에 있는 산뽕나무가 흔들렸다. 올리브 나무에는 아직 익지 않은 푸른 올리브가 달려 있었지만 산뽕나무에는 검게 익은 오디가 가득했다. 그는 손을 뻗어 오디를 땄다. 뜨거운 팔월 햇살이 마음껏 스며든 오디는 달고 맛있었다. 손은 금방 핏빛으로 변했다. 그는 핏빛 손바닥을 들여다보았다. 그는 계속 오디를 따먹었고, 그의 손에서는 이제 뚝뚝 오디의 즙이 흐르기 시작했다. 땅은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비도 내리지 않는 건기의 열혈의 태양은 무자비하게 타 올랐다. 이 척박한 곳에서 가장 인간적인 문명이 시작되었다.
그는 자신에게 왜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를 물었다.
'나는 진짜 내 이름을 찾아 여기에 이른 것이다' 그는 스스로 대답했다. 그는 두 손 가득 오디를 따 돌기둥으로 남은 신전을 향해 쳐들었다. 오디의 즙이 그의 손을 타고 팔뚝으로 뚝뚝 떨어져 흐른다. 문득 그는 자신에게 어떤 신탁이 내려진 것은 아닌지 궁금했다. 그리하여 조용히 그러나 확고한 소리로 물었다.
'그 옛날의 영험함으로 내가 누구인지 알려 주시오. 기괴한 자연의 모습에서 인간의 모습으로 가장 아름다운 신의 자태로 서 있는 그대여. 그대 속에 내가 있나니, 내가 누구인지 나의 진정한 이름을 알려 주시오'
그의 내면은 간절함으로 가득 찼다. 그러자 그의 마음 속으로 알 수 없는 목소리들이 마치 연기처럼 뭉글뭉글 크게 살아나 퍼져 나왔다.
"뭍이 끝나고 바다에 이르거든 물로 들어가 물고기가 되라. 절벽에 이르거든 뛰어 내려 새가 되라. 그러면 그대는 알게 될 것이다. 나의 모습은 이 신전에서 사라졌으나 나의 목소리는 이 땅에 남겨질 운명이니, 사람들은 내 목소리를 듣고 나 인줄 알 것이다"
그것이 누구의 목소리인줄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는 내면의 목소리에 넋을 잃고 천천히 산을 내려왔다. 그리고 박물관으로 향했다. 그 작은 박물관은 원시적 시간 속에 만들어진 경이로운 작품들로 가득했다. 원시는 원시가 아니며 태고는 야만이 아니다. 인간의 어린 시절이 창조성으로 가득하듯, 인류의 고대도 경이로움으로 가득했다. 박물관은 살아 있다. 그는 그곳에서 알 수 없는 고도의 고양을 느꼈다. 무엇을 깊이 관통하고 싶다는 열정에 사로잡혔다. 배우려는 자는 무지에 통곡하게 마련이다. 그는 자신에게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2010년 8월 7일 델피에서
델피 신탁 메시지 : 뭍이 끝나고 바다에 이르거든 물로 들어가 물고기가 되라! 절벽에 이르거든 뛰어 내려 새가 되라! 그러면 그대가 누군지 알게 될 것이다! - 인류최고 변화경영 사상가 구본형
영원한 동심의 꿈 : 철조망 가시면류관을 쓰고 용광로에 뛰어 들어가 통일탑이 될지언정 어릴 적부터 간직한 통일대통령 꿈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리라! - 통일임시정부 초대 통일대통령 김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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