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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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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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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24일 10시 48분 등록

지금 살고 있는 동네에서 10년간 살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날씨 좋은 밤에 수십 개의 별을 볼 수 있고, 집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나무가 많은 숲 같은 산이 있으며, 산 옆으로는 적당한 너비에 총 길이가 15km에 이르는 냇물이 흐릅니다. ! 이유 하나를 추가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옥상 위에 있는 나만의 비밀 공간. 옥상 가운데에 오뚝한 지붕 위의 작은 공간, 나는 여기 누워 별을 보고, 앉아서 동네 집들의 올망졸망한 지붕들과 그 너머 산을 보고 구름을 봅니다. 맥주나 와인을 한잔 할 때도 있습니다. 교통편이 안 좋다고 투덜대면서도 이 동네를 제2의 고향으로 여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작년 9월에 다녀온 스위스 테신 주() 루가노 근처의 작은 마을 몬타뇰라가 떠오릅니다. 소설가 헤르만 헤세가 반평생을 살면서 제2의 고향으로 자처한 곳입니다. 그곳에서 나는 헤르만 헤세를 보다 깊이 느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도 물이 흐르고 숲이 있으며, 헤세의 비밀 장소도 있었습니다. 몬타뇰라 근처에는 루가노 호수가 있고 지금도 나무가 많지만 헤세가 살 때는 훨씬 더 많았다고 합니다. 헤세의 비밀공간은 그가 몬타뇰라 시기의 첫 12년을 보낸 집 카사 카무치(Casa Camuzzi)’에 있는 서재와 이어진 발코니입니다. 너비 한 걸음 깊이 반걸음에 불과한 이 작은 공간에 대해 헤세는 이 발코니는, 내가 가장 아끼는 자리이다. 이 발코니 때문에 나는 수년 전 이곳에 정착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습니다. 발코니 아래로는 정원이 있었고 그 앞은 숲이 펼쳐졌습니다. 이곳에서 헤세는 사색하고 관찰하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습니다.

 

헤세는 몬타뇰라에서 43년을 살면서 <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 <싯다르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유리알 유희> 등 자신의 대표작을 집필했습니다. 또 화가로 변신해 동네를 산책하며 수천 점의 그림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헤세가 마지막 숨을 거두고 묻힌 곳도 몬타뇰라입니다. 이 마을의 풍경은 헤세에게만 영향을 미친 게 아니라 내 마음에도 파문을 만들었습니다. 부드러운 바람과 함께 헤세가 걷던 산책로를 걸을 때 마치 그가 내 곁에 있는 듯했습니다. 읽었지만 잊어버렸던 그의 책속 문장들이 되살아났으며, 미래에 되고 싶은 나의 모습 하나를 그렸습니다. 내가 짧았던 하루 반의 몬타뇰라 체류를 잊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몬타뇰라에서의 경험처럼 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나에게 말을 거는 풍경이 있습니다. 그런 풍경에는 기억과 관찰, 그리고 상상을 깨우는 힘이 있습니다. 기억력은 과거에 대한 상기이고, 관찰력은 현재에의 몰입이며 상상력은 미래를 비추는 빛입니다.

 

몸에 활기를 주고 영감을 점화시키며 영혼을 고양시키는 장소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공간에서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간접적인 영향이나 심리적인 효과만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공간의 질은 심신의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정신의학자 에스더 M. 스턴버그가 쓴 <공간이 마음을 살린다>를 읽고 이런 생각이 타당함을 알았습니다.

 

이 책에서 스턴버그는 신생 학문인 신경건축학(Neuroarchitecture)’을 다룹니다. 신경건축학은 공간과 건축이 인간의 사고와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더 나은 건축을 탐색하는 학문입니다. 조금 다르게 말하면 공간과 자연을 포함한 물리적 환경과 뇌와 마음의 상호작용이 심신 건강과 치유 그리고 삶의 질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내고자 합니다.

 

우리는 늘 어떤 공간 속에 있습니다. 그 공간은 인공적 건축물이거나 자연 혹은 이 둘이 한데 어울려 있는 장소입니다. 어떤 장소이든 그 속에 있는 사람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스턴버그는 주변 공간에 신경 쓰지 않고 하루하루를 바쁘고 정신없이 보내기보다는, 시간을 조금씩 내서 이 세상에서 우리가 있는 장소와 그 장소가 우리 내면에서 차지하는 자리를 인식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나는 치유와 영감의 에너지장을 가진 공간을 발견할 수 있는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고 싶습니다. 그 에너지와 공명할 수 있는 감수성을 키우고 싶습니다. 내가 자주 거하는 장소를 그런 공간으로 만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공간이 마음을 살린다>는 내게 그것이 가능한 일임을 알려주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이 세상의 일부다. 우리를 둘러싼 공간에서 우리는 그 공간을 형성할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을 형성하기도 한다. 우리는 환경을 집어삼키고 파괴하며, 결과적으로 우리 스스로를 파괴하는 장소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 정반대로 가능하다. 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살게 하고 건강을 지키는 데 도움을 주는 장소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

- 에스더 M. 스턴버그, <공간이 마음을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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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더 M. 스턴버그 저, 서영조 역, 공간이 마음을 살린다, 더퀘스트,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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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경영연구소의 오프라인 까페 크리에이티브 살롱 9인문학 아카데미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10월 강좌는 보르헤스의 문학사상 : 존재와 시간을 주제로 <보르헤스 문학 전기>의 저자 · 문학평론가 김홍근 선생이 진행합니다. 보르헤스는 파울로 코엘료, 자크 데리다, 움베르토 에코 등 우리 시대 지성들의 정신적 아버지로 평가 받는 소설가이자 사상가입니다. 커리큘럼과 장소 등 자세한 내용은 아래 주소를 클릭하세요.

- 강좌 소개 : http://www.bhgoo.com/2011/556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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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25 05:46:32 *.69.226.4

칼럼 참 좋다.~ 내게도 마음과 정신이 공명되는 나만의 공간 하나 만들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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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25 12:33:56 *.5.147.55

별이 보이는 집이라..참 부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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