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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24일 13시 42분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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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책에서 길을 묻다

 

살다 보면 잊을 수 없는 만남이 있다. 그중에는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만남도 있다. 만남을 통해 마음이 바뀌고, 생활이 바뀌고, 운명이 바뀌는 경우다. 그 마음가짐을 오래 간직하고 꾸준히 실천하는 이는 많지 않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우리나라 역사에 분명 존재한다.

 

다산은 강진 유배 시절 많은 제자를 키웠다. 그 기간이 18년이었고, 키운 제자도 수십명에 달했지만, 문하는 흩어져 사라져 버렸다. 조선 최고 학자인 다산의 문하가 남아 있지 않다니! 다산 연구가 정민 교수의 분석을 보면, 다산은 무척 깐깐한 스승이어서 웬만한 제자들은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한다. 또 제자 중에는 다산이 출세를 위한 뒷배를 봐주지 않는 것에 실망해 떠난 이도 많았다고 한다. 창을 들고 방으로 뛰어들어와 욕하고 헐뜯으며 등을 돌린 제자도 있었다니 놀랍다. 하지만 열다섯에 다산을 만나 스승의 가르침을 평생 마음에 품고 행하며 산 제자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황상이다.

 

황상은 어떻게 평생 스승의 가르침을 마음에 품고 살 수 있었을까? 스승과 제자의 첫 만남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황상은 다산이 주막집 봉놋방에 작은 서당을 열었을 때 만났다. 황상은 아전의 아들이었는데, 주머니 속에 넣은 송곳같이 두각을 나타내는 아이였다. 어느 날 다산은 황상을 불러 공부를 권했다. 그리고 서로간의 문답을 글로 써주며 벽에 붙여 놓고 마음을 다잡으라 당부했다. 황상은 이를 ‘삼근계’라 부르며 평생 마음에 품고 살았다. 그 글을 읽어 보자.

 

내가 산석(황상의 어릴 적 이름)에게 문사 공부할 것을 권했다. 산석은 머뭇머뭇하더니 부끄러운 빛으로 사양하며 이렇게 말했다. ‘제게 세 가지 병통이 있습니다. 첫째는 둔한 것이요, 둘째는 막힌 것이며, 셋째는 답답한 것입니다.’ 내가 말했다. ‘배우는 사람에게 큰 병통이 세 가지 있는데, 네게는 그것이 없구나. 첫째, 외우는 데 민첩하면 그 폐단이 소홀한 데 있다. 둘째, 글짓기에 날래면 그 폐단이 들뜨는 데 있지. 셋째, 깨달음이 재빠르면 그 폐단은 거친 데 있다. 대저 둔한데도 들이파는 사람은 그 구멍이 넓어진다. 막혔다가 터지면 그 흐름이 성대해지지. 답답한데도 연마하는 사람은 그 빛이 반짝반짝 빛나게 된다. 뚫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할까? 부지런히 해야 한다. 틔우는 것은 어찌 하나? 부지런히 해야 한다. 연마하는 것은 어떻게 할까? 부지런히 해야 한다. 네가 어떻게 부지런히 해야 할까? 마음을 확고하게 다잡아야 한다.’

 

정민 교수는 <삶을 바꾼 만남>에서 다산이 황상과 같은 제자를 만난 것은 오히려 스승의 행운이라고 말한다. 황상은 다산이 가장 아낀 단 한사람의 제자였다. 다산은 그가 잘하면 한없이 칭찬하고, 못하면 가혹하게 나무랐다. 다시는 안 볼 것처럼 불벼락을 내렸지만, 제자는 그것이 속깊은 사랑인 줄 알아 더욱 분발하고 노력했다. 그 결과 황상은 장안의 명류들과 교류하며 글 솜씨를 인정받기에 이르렀고, 특히 추사 김정희는 그의 시를 흠모하였다.

 

올가을에는 지나간 만남을 다시 한번 들여다봐야겠다. 혹시 아는가? 무심코 흘려보낸 만남 중에 인생 도약의 힌트가 들어 있을지. 열쇠는 부지런한 실천에 있을 것이다. 다산의 당부대로 마음에 아로새기고 부지런히 행한다면 못할 일이 무엇이겠는가?

 

유재경 구본형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jackieyou@naver.com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이름으로 한겨레 신문에 연재하고 있는 여덟번째 칼럼이 9월 24일자에 실렸습니다.

아래 링크 참고하시고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 드립니다.

http://www.hani.co.kr/arti/economy/working/604279.html

IP *.252.144.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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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07 10:39:30 *.50.21.20

주말에 다산 초당을 다녀와서 보니 칼럼에 눈이 갑니다.

삼근계는 돌직구면서도 용기를 주네요. 

다산에서 시작해 좀더 넓혀가도록 해야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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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08 10:55:42 *.252.144.139

나도 이 책 읽으며 '다산초당에 꼭 가봐지'했네.

어때, 좋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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