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콩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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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칠까 말까?
최근에 나도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칠 지 말지를 선택하라는 아울리스 곶의 뱃머리에 선 적이 있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 보고 싶다. 먼저 이피게네이아 신화를 살펴보고 그 다음에 나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자식을 제물로 바친 아버지들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은 트로이로 진격하기 위해 규합된 범아테네연합의 사령관이었다. 그는 1000척의 배를 띄우고 10만 명의 병사를 동원할 수 있는 아름다움을 지닌 헬레네의 남편 메넬라오스의 형이다. 남편의 손님이었던 준수한 젊은 남자를 따라 아테네에서 트로이로 도망간 여자는 그의 제수씨다. 지극히 개인적인, 연애하는 유부녀와 총각 커플의 도주사건을 10년 전쟁의 계기 전부로 볼 수 있을까? 트로이전쟁은 황량하고 척박한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바다로 나가 식민지를 건설했던 이 시대의 영토확장 전쟁 중 제일 규모가 컸다. 군대는 모였는데 그리스 함대는 아울리스에서 출항하지 못하고 있었다. 바람이 불지 않아서다. 60km만 가면 어디든 육지에 닿는 에게해의 여기저기 섬에서 어렵사리 불러모은 사람들은 마음을 잡지 못하고 들뜨고 흔들리고 있었다. 신전에 사람을 보냈다. 예언자는 아가멤논의 어린 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치면 바람이 불거라는 신탁을 들고 왔다. 사령관은 딸을 바치고 그리스인 전체의 리더가 되기로 선택했다. 순순히 딸을 내어줄 턱이 없는 아내에게 아킬레우스와 혼인시키려 하니아이를 보내라는 전갈을 뛰운다. 펠레우스왕과 바다의 여신 테튀스의 아들인 아킬레우스는 영웅 중의 영웅, 사내 중의 사내였다. 아내 클뤼타임네스트라는 맏딸을 곱게 새신부 단장을 해서 보냈다.
트로이전쟁은 10년을 끌었다. 트로이의 목마, 아킬레우스의 죽음, 그리스 최고의 훈남 헥토르와 훈녀 안드로마케 등 구전되다 호메로스에 의해 채록된 별 같은 이야기를 남기고 아테네의 승리로 끝났다. 아가멤논이 전리품들을 싣고 전쟁터에서 돌아온 첫날, 원한에 찬 아내 클뤼타임네스트라는 정부와 작당해서 그를 살해한다. 그 죽임은 남아있던 딸 엘렉트라와 아들 오레스테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들은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어머니를 죽인다. 아테네 법정과 아폴론에 의해서는 사면이 되었지만 평생 살모의 죄책감에 시달리며 아들은 복수의 여신 에리니에스에게 추격당했다. 10년 트로이전쟁에서 죽은 수많은 사람들, 전쟁에서 손에 피를 묻힌 사람들의 어려움, 아내가 남편을 죽이고, 그 여자는 자신의 아들과 딸에게 죽임을 당하고, 아들이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이 가정의 비극이 이피게네이아의 죽음을 계기로 일어났다. 이피게네이아는 거대한 폭탄의 도화선 버튼이었다.
이 여자아이 주변의 이야기는 여러 사람의 관심을 끌었던 모양이다. 그리스비극작가인 소포클레스는 <엘렉트라>를, 아이스킬로스는 <오레스테이아> 3부작을, 에우리피데스는 <타우리스의 이피게네이아>를 썼다. 후대에도 많은 영화와 소설이 이 신화에 탯줄을 대고 만들어졌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오페라를 만들었다. 가는 곳마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다 타원형 계단식 극장을 만들었던 그리스사람들은 봄축제 때 이 비극들을 상연했다. 에우리피데스는 클뤼타임네스트라가 남편에게 복수를 하긴 했지만 딸에 대한 모성애 때문이라기 보담은 자신의 소유물에 대한 저촉에 분노한 걸로, 아가멤논은 우유부단하고 눈물많은 왕으로 그린다. 이피게네이아가 진짜로 죽임을 당했냐에 대해 두 가지 본의 신화가 존재한다. 소녀가 희생제물로 바쳐졌다는 것하고, 또 하나는 아르테미스여신이 소녀를 안아다 멀리 타우리스로 보내 자기 신전의 여사제가 되게 하고, 대신 사슴을 보내주었다는 거다. 나중 본에서 남동생 오레스테스가 구원을 얻는 이야기가 파생된다. 그게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오래고 오랜 세월을 살모의 죄책감으로 떠돌던 오레스테스는 아르테미스 신전에서 일하고 있는 누이 이피게네이아를 다시 만나고서야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
아버지에 의해 희생제물로 바쳐진 자식은 이피게네이아 뿐일까? 아니다. 공교롭게도 그런 이야기가 제법 된다. 어린 딸만이 아니라 아들도 대상이 된다. 그리스신화로 대유되는 헬레니즘 문명과 함께 서구 문명의 양대 줄기의 뿌리가 되는 헤브라이즘의 대표주자 구약성서에서 아브라함은 사랑하는 아들 이사악을 번제제물로 바치라는 시험을 당한다. 번제는 짐승을 태워 신에게 바치는 제사의식이다. 그 아들은 늦게 얻은 은총, 기적같은 자식이었다. 길을 떠날 때 이삭의 어머니는 물론 아들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사흘길에 도착한 지정된 장소에서 이삭은 번제단을 쌓는 아버지를 도와 나뭇가지를 주웠다. “아버지, 불씨도 있고 장작도 있는데 번제물로 드릴 어린 양은 어디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아버지는 “얘야, 번제물로 드릴 양은 하느님께서 손수 마련하신단다”라고 대답하며 칼을 갈 뿐이었다. 그때 신이 그를 불러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라. 머리털 하나라도 상하게 하지 말라. 나는네가 얼마나 나를 공경하는지를 알았다. 너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마저도 서슴지 않고 나에게 바쳤다” 그의 믿음은 보증받고, 나무에 뿔이 걸린 숫양이 나왔다. 아브라함은 승리자가 되었고 많은 민족이 그에게서 비롯되리라 약속받았다.
자식을 바친 이야기가 신화 속에 더 있다.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에 신들의 만찬에 초대된 것이 너무나 감개무량한 나머지 그 감사표시로 아들을 죽여 요리해 신들에게 바친 아버지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의 이름은 탄탈로스다. 바로 자식 자랑을 하다가 아르테미스와 아폴론 이란성쌍둥이 남매신에게 잔혹한 복수를 당한 니오베의 아버지다. 아들의 이름은 펠로프스다. 다른 신들은 이것을 눈치채고 먹지 않았으나 당시 딸을 유괴당하고 혼이 나가 반미치광이 상태였던 데메테르만은 어깨 부분 고기를 뜯어 씹어 삼켰다. 나중에 신들은 펠로프스의 고기를 모두 모았으나 어깨 살은 구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 어깨만은 상아로 깎아 만들어 붙인 뒤 생명을 불어넣어 펠로프스를 되살아나게 했다. 신들의 성격 탓인지 반응이 오락가락하는 점이 흥미롭다. 이삭을 바치려는 아브라함은 칭찬을 받고, 아들을 실제로 요리한 아버지는 보상을 받지 못한다.
신화 속에서가 아니라 역사 속에서도 제 자식을 바친 이야기가 있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관자는 제나라의 지혜로운 재상이었다. 관자와 포숙아의 우정에서 유래된 관포지교(管鮑之交)의 주인공이다. 그는 자신이 늙어 더 이상 왕을 도울 수 없을 때 조언을 구하는 왕에게 4사람을 경계해야 한다고 충언한다. “신이 원하건대, 역아와 수조와 당무와 위공자 개방을 멀리하십시오. 역아는 요리로 공을 모셨습니다. 공이 ‘아기 삶은 것은 먹어보지 못했다’고 하니, 그는 제 자식을 죽여 삶아서 공에게 바쳤습니다. 사람의 정은 자기 자식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데, 자식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공을 진정으로 아끼겠습니까? 공께서 여색을 좋아하시고 다른 남자를 꺼리니, 수조는 스스로 환관이 되어 공을 위해 궁녀를 다스렸습니다. 사람의 몸은 자기 몸을 아끼지 않음이 없는데, 자기 몸도 아끼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공을 진정으로 아끼겠습니까? 공자 개방은 공을 섬기느라 15년이나 자기 부모를 보지 못했는데 제나라와 위나라는 며칠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입니다. 자기 어버이를 사랑하지 않는데 어찌 공을 섬길 수 있겠습니까? 신은 꾸밈은 오래 가지 못하고 은폐된 거짓은 오래가지 못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들은 평생 착한 일을 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 죽음 또한 반드시 좋지 않을 것입니다” 관자가 죽고 장례를 마치자 제나라 환공은 충고대로 제 사람을 미워하여 관직을 폐했다. 그러나 환공은 당무를 내쫒고 나서 정신착란 증세를 보이고, 역아를 내쫒고 입맛을 잃고, 수조를 내쫒고 궁중이 어지러워지고, 공자 개방을 내쫒고 조정이 다스려지지 않았다. 그들을 다시 복직시켰다. 그리고 1년이 지나지 않아 네 사람이 반란을 일으켰다. 환공은 홀로 죽은 지 열하루가 지나 시체에서 구더기가 나오도록 염습할 수 없었다.
중국만이 아니라 그리스의 역사 속에도 있다. 자유를 위한 숭고한 전쟁으로 일컬어지는 살라미스 해전은 강력한 전제주의 국가인 페르시아에 대항한 그리스 민족의 독립전쟁이었다. 그 해전이 벌어지던 날 아테네의 총사령관 테미스토클레스는 인간의 생살을 뜯어먹는 신 디오니소스에게 세 사람을 제물로 바쳤다. 금빛 보석으로 치장한, 잘 생긴 이들은 아테네 최고 집정관의 친조카들이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군사들이 보는 앞에서 세 사람의 목을 졸랐다. 그들은 세 사람을 제물로 바치고 전쟁길에 올랐다. 청문회에서 병역의 문제가 우리나라는 첨예하다. 군대에 아들을 보내는 어머니와 아버지들은 수많은 죽음을 부르는 전쟁의 시작에서 지휘관 아들의 피의 보증을 요구했는지도 모른다. 내 아들도 당신 아들처럼 고귀하다, 그 피를 흘릴만한 가치가 있는 전쟁이거나 그럴 각오가 되어 있는 전쟁이라는 웅변인 걸까?
자식을 희생시킨 이야기를 가부장제의 관점에서 읽는 사람들이 있다. 정신과의사인 진시노다 볼린은 남성의 입장에서 가부장제를 비판한다. 진 시노다 볼린은 가부장제에서 성공하고 성취를 이루기 위해 남성들이 첫번째로 희생하는 건 어린 딸로 상징되는 자기 심성의 보드라운 부분이라는 거다. 아가멤논, 아브라함, 다쓰 베이더 같은 아버지들이다. 아가멤논과 아브라함은 아내를 속이고서 자식들을 데리고 나간다. 아내는 한 사람 안에 있는 여성성의 부분이다. 아버지가 아이를 죽이러 가는데 어머니는 모르고 있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상태다. 이것은 자기 안 여성성과의 단절을 가져온다고 본다. 다쓰 베이더는 상처가 너무 심해서 철가면이 없으면 살 수 없다. 남자들이 이 가부장제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입는 내상은 프로크로크루스테스의 침대 이야기로 잘 비유된다. 프로크루스테스는 아테네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여행객들을 털던 도둑이었다. 이 놈은 쇠침대에 사람을 묶어놓고 긴 사람은 자르고 짧은 사람은 늘여서 죽였다. 가부장제가 선호하는 표준남성상에 맞추기 위해 남성들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자신의 중요한 정체성을 희생시킨다는 거다. 성공하기 위해 남성들은 어린 딸 이피게네이아와 아내로 상징되는 여성적인 부드러운 부분을 제물로 바치고, 가부장제가 좋아하는 표준남성상과는 맞지않지만 자기 정체성과 기쁨의 핵심을 스스로 절단한다.
직장에서 필살기를 가지려 할 때는 재능, 강점을 따라가라
나는 지금 하는 일을 16년 째 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선생님이 되는 것이 꿈이었지만 특수교사가 될 줄은 몰랐다. 그저그런 그냥저냥 평범한 교사였고, 일보다는 퇴근 시간 이후가 재미있었다. 근무시간 밖에 재미난 것을 만들어 견딜 힘을 만들어내는 쪽이었다. 힘듬을 제법 겪으면서 나는 마흔 고개를 넘는 갈림길에서 서성이며 재정비의 시간을 가졌다. 그건 직업 영역에 국한된 게 아니었다. 삶의 여러 영역에 대한 감찰과 재평가가 이루어졌다. 직업에서 참고할 만한 책은 <구본형의 필살기>였다. 거기서 제안하는 건 자신의 현직 직무를 분석해서 근무시간의 60%를 좋아하고 잘하는 강점 업무에 투자함으로써 주특기를 연마하면서 30%는 중요성은 높되 나의 적성과는 달라 스트레스를 주는 업무를 관리하라는 거다. 이와 병행하여 미래의 내 직업을 준비하기 위해 필요한 필살기 후보를 근무시간 밖에서 창조해 매일 2시간 정도 훈련하라고 한다. 이걸 변화가 가능한 1만시간동안 유지하라는 거다. 기조는 매우 간단하다.
10년 후 오십 살 즈음이 되었을 때 내 직업 안에서 내 꽃으로 피어나고 싶어졌다. 나도 시퍼렇게 날이 선 죽여주는 주특기를 갖고 싶다. 지금까지처럼 그저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성과보다도 근무시간 안에 행복하게 지내는 게 목적이다. 어떤 씨앗을 육종할까?
교본을 들고 공립학교 초등특수교사의 일을 20개여의 태스크로 쪼갠 후 그걸 나의 적성과 비교했다. 중요도를 분석할 때는 직속상사의 조언을 얻었다. 나의 적성을 알아보기 위해 MBTI 성격유형검사, 에니어그램검사, 다중지능검사, 갤럽에서 만든 강점 체크리스트를 했다. INFP, 나의 재능은 언어지능, 자연친화지능, 사회지능에 있었다. 자연친화는 동물보다는 식물에 관련된 듯 하다. 그리고 최상주의자, 개인화, 신념, 연결성, 학습자 테마를 가지고 있다. 학생 개인보다는 둘러싼 동심원들에 관심이 간다. 근무시간 안에서 육성할 나의 필살기를 브랜드화된 학급 운영, 실험연구보다 사례연구 위주의 현장연구, 교육복지로 잡았다. 근무시간 밖에서 창조할 필살기는 글쓰기였다. 답답한 일이 아주 많은데 들어줄 사람과 사람을 붙잡고 이야기하는 습관이 없었던 나는 할 이야기가 많았다. 그래서 종이에 살고 있는 이를 상상하며 그이에게 재잘대기 시작했다. 한결 숨쉬기가 수월해졌다. 나에겐 일종의 인공호흡이며 기도였다. 더 훈련하기 위해서 2012년에 연구원에 갔다. 연구원에서 읽고 쓰기의 첫 1천시간을 예입했다. 한 주에 30시간씩 1년을 했으니까
현직 직무 중 학급 운영은 맑은 마음, 좋은 벗, 깨끗한 땅이라는 정토회의 이념 중 맑은 마음에 중점을 두기로 했다. 개인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부분이다. 나는 우리교실의 이름을 ‘무지개교실’, 모토를 ‘날마다 웃는 교실’로 했다. 여러 장애를 가진 학생들 중 나는 정서적인 어려움을 가진 학생들에 대해 특히 관심이 있었다. 그건 나 스스로를 치유하고 맑고 밝고 가벼운 상태를 유지하는 것과 맥락이 같다. 나는 겉절이나 하루살이처럼 매일 일정 분량을 예입해주어야 하는 얕고 불안정한 기질을 가진 사람이다. 애착 형성이 이루어지는 초기에 어떤 어려움이 있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아닐 지도 모른다. 이전에는 원인을 아는 것에 주력했는데 지금은 그걸 밝히는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과 싸우지 않으며 잘 살고 싶을 뿐이다. 그건 나의 타고난 토양이며 받은 패다. 담요를 들고 다니는 아이들처럼 안정감과 편안함을 주는 장치가 나는 필요하다. 고혈압이나 당뇨환자가 아침마다 알약을 삼키고 협압과 혈당을 정상으로 유지하듯이 심리적 보장구 관리를 필요로 한다는 의미이며 내가 식물로 비유하자면 땅에 심겨져 따로 돌볼 필요가 없는 노지 월동이 되는 나무가 아니라, 겨울이 되면 실내로 들여야 하고 물을 말리면 당장 죽어버리는 화분에 담긴 율마같다는 의미다. 율마는 키우기가 까다롭고 지랄맞지만 사랑스럽긴 마찬가지다. 나는 새벽에 모닝페이지를 하고 108배를 하는 일정에 강박적으로 집착하고, 꽃나무를 집과 교실에서 기르고, 사랑을 주는 노래든 뭐든 보드랍고 안온하고 든든한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반복되는 시스템을 가지려 노력한다. 나는 그래서 그런 아이들이 눈에 잘 뜨이고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이 간다. 아마 인간관계 법칙이 유유상종, 동병상련이기 때문이리라. 아이들에게는 나처럼 날마다 빈 독에 물을 길어붓는 사람보다는 타고나길 푸근하고 둥그스럼하고 샘물같은 선생님이 더 좋을 것이다.
근무시간 중에 현장연구와 교육복지를 실험하고 싶어했는데 기회가 왔다. 마음을 먹고 간절히 바라니 주변에서 돕는 인연들이 쏟아져들어와 연결되었다. 특수교사의 현장연구는 일반교사와 특수교사의 협력연구를 요구한다. 왜냐면 장애를 가진 학생들이 양 쪽 교실 모두에 적을 두고 있고, 두 사람의 담임교사를 갖기 때문이다. 엉터리 연구를 시작했던 다음해 현장연구를 해본 경험이 있는 협력자를 만나 공동연구라기 보담은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 두 마디 대사만 가진 프리라이더로 참여관찰할 수 있었다. 이렇게 세 번의 공동연구를 했다. 또 근무하던 학교가 교육복지우선투자사업의 대상학교로 지정이 된 거다. 마침 교장님은 특수교사도 학교 업무 중 일부를 맡아야 전체적인 흐름을 알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나는 교육복지 보를 신청했다. 학교안 1인 복지관인 담당 사회복지사와 담당 교사의 초창기 좌충우돌 과정을 옆에서 참여관찰할 수 있었다. 학교로 새로운 직종이 들어오는 과정은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이었다. 특수교육이 처음으로 들어오던 때와 비슷했다. 파이오니아와 선교사, 또는 선발 게릴라가 겪는 일들이 일어난다. 집성촌에서 타성붙이가 들어와 적응해 사는 만큼의 시간과 과정이 필요하다. 특수학교로 옮긴 올해는 우연히 방과후학교 업무가 주어졌다. 교육복지와 방과후학교 업무 둘 다 학교에서 교사들이 기피하는 대표적인 3D업무다. 교육지원부의 일은 종일반, 방과후학교, 공연, 갤러리, 토요방과후학교를 포괄하는데 내가 보기에 그건 사회복지사, 또는 복지부의 일이 학교로 들어와 있는 것이었다. 과도기적이다.
교육복지를 지켜본 1년차 때 실무는 하지 않았다. 다만 사회복지사 샘의 수다상대가 되었을 뿐이다. 사회복지사 샘과 같이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그리고 어떻게 이 사업을 전체 학교 교육과정과 연결시킬 건지, 그리고 누구와 같이 의논을 할 건지 아이디어를 내는 것만 했다. 내가 10년 이상 그 조직체 안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었지만 나는 부장이 아니고, 실무에서 힘이 영향력이 없었고, 방계 향촌 주민인 특수교사로 오래 소수자로 살았기 때문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했다. 내가 흥미롭게 반겼던 건 교사와 일부 고정적인 인력으로 구성된 학교사회에 다양한 전문가들이 들어오는 것이었다. 교사가 다룰 수 없는 영역의 일을 사회복지사가 건드리는 걸 재미있어했다. 가정방문을 다녀온 사회복지사와 이야기를 나눌 때, 법적으로 혜태을 받을 수 없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바로 발견되어 지원되는 것도 좋았고 지역사회의 여러 자원을 연결시켜 주는 게 재미있었다. 우리학교 교육복지 안착을 위해 잘하고 있는 곳의 책임자를 컨설턴트로 초빙한 적이 있었다. 온 분은 학교사회사업 실무 복지사로 일하다가 지금은 자신의 센터를 운영하는 사회복지사와 교육복지 우선 투자사업을 운영하는 교장샘이었다. 그 학교의 교육복지가 단단해진 것은 담당교사와 복지사가 교체없이 6년간 왔기 때문이란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냐고 물으니 담당교사는 그 학교 안에 설치되어 있는 직장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기 위해 거길 지원한 여교사였다. 그녀는 아이에게 안정된 환경을 제공하는 걸 우선했나 보다. 그리고 교육복지 일이 적성에 맞았나 보다. 4년간 한 학교에 있을 수 있었는데 그 4년에 더해 2년을 유예시키며 있었다. 그 바람에 그 학교의 교육복지는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담당자가 안정되니 가능했고, 또한 교장샘의 지원도 많았다. 나는 그 교사의 모습을 나의 미래로 그려보았다. 늦은 결혼을 할 예정이었고, 늦은 출산을 해서 3년 육아휴직을 한 후에는 직장어린이집이 있는 학교로 전근을 가고 거기서 아이가 자랄 동안 학교에서 필요로 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일, 그게 비록 학교에서 꼽는 대표적인 3D업종이라고 하더라도 그걸 하면 어떨까 우유 항아리를 머리에 이고 장에 가듯 상상했다. 그런데 특수교사도 매우 일이 많고, 학교 안에서 작은 특수학교를 운영하듯 1~2명이 전담하기 때문에 특수교육 담당을 하면서 교육복지 업무를 병행하는 건 업무 분장의 효율성도 떨어지고, 적합하지도 않다는 게 결론이다. 일반 초등학교의 교육과정에 녹아들게 하려면 일반교사이면서 부장급인 교사가 붙어야 그 일이 잘 이식될 수 있다.
2년째의 참여관찰 시기인 올해는 구체적인 실무가 주어졌다. 저녁에 남아서 이 일을 하는데 들인 시간에 비해 성과가 너무 적었다. 이 일의 어떤 부분이 힘들었을까? 강좌를 기획해서 계약서를 쓰고 난 후에는 출석부를 관리하고 그리고 월급을 주어야 한다. 연간계획서를 받아야 하고, 그리고 강사가 제 시간에 잘 출근을 하는 지 보고 또 잘 진행이 되지 않으면 독려를 하는 관리를 해야한다. 그런데 나는 세부적인 일에 약했다. 긴 시간 집중을 하지만 학생들의 명단을 제 강좌에 넣는 작업에 시간이 많이 걸렸다. 회계와 물품 신청에 약했다. 나는 매번 기안문을 수정당하고, 매번 숫자가 틀려서 전화를 받았다. 미안하면서도 좌절스런 경험이었다. 나는 구체적인 성과를 내는 것, 예를 들면 행사를 만들고 학생들을 데리고 어딘 가로 가는 것에는 커다란 관심이 없었다. 나는 두루뭉수리한 대략적인 것에 끌린다. 사실 자체보다는 그것이 의미하는 뒤의 이야기를 상상하고 다루길 좋아한다. 세밀한 작품전을 하는 것에도 성취감도 느낄 수 없었다. 방과후학교의 작품전보다 기존 교육과정의 학습결과물 전시회가 더 우선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이것은 교사의 일이 아닌데 학교가 떠 안았고 그 일에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기 때문에 교사 본연의 업무를 소홀히 하고 있다는 의문이 계속 들었다. 내향적 감정형인 나는 나의 결정이든 전체의 결정을 다른 이에게 강제하는 걸 매우 버거워했다. 강사들에게 무언가를 달라고 하고, 그걸 집행하는 것도 어려워했고, 낯을 많이 가리는 사람이 40여명의 강사에게 인사하고 관계를 맺어가는 데 대단히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어 아주 기진맥진해서 퇴근했다. 나의 사회적 자아는 아이들과의 수업만으로도, 동네 슈퍼 주인과 야채가게 주인과의 인간관계만으로도 풀로 채워졌다. 더 많은 사람을 만나는 건 에너지 가불이었다. 더 중요한 건 교사의 일과 그 일이 양립이 불가능한 때가 있다. 내 반 수업중이어서 강사를 관리하러 나가지 못한다.
필살기 책에 사분면이 나온다. 중요도와 적성이 모두 높은 영역은 선발되고 싶은 필살기 후보들이 반짝거리는 프로젝트 영역, 중요도는 높은데 적성이 낮은 영역은 스트레스 영역, 중요도도 낮고 적성도 낮은 영역은 후딱 제거하고 간소화시켜 버려야 할 쓰레기 영역, 중요도는 낮지만 적성은 높은 영역은 장차 미래 직업의 씨앗일 수도 있는 취미영역이었다. 내가 경험하는 방과후학교 업무는 모두 스트레스 영역에 있었다. 글쓰기와 원예관련 관심은 취미영역이다. 오히려 특수교사 본연의 업무인 행동지원, 개인별교육계획, 수업 설계 등은 프로젝트 영역에 있었다. 나는 이게 좀 놀라웠다. 그동안 나는 특수교사의 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왔다. 전부를 좋아하지 않는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내가 정년인 61세까지 평교사로 일한다고 치고, 교사가 해야 할 일을 크게 나누면 수업과 업무다. 나는 한 번도 중간에 교사를 퇴직한다는 가정은 해보지 못했다. 그래서 현재 이 안에서 길을 찾고자 한다. 아이들과의 수업이 재미있고,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업무를 맡는다면 직장에서의 근무시간은 매우 즐겁고 보람차고 또한 생산적일 거다. 교육복지 관련 업무는 필살기 후보가 맞는 일일까? 만약 이 업무를 평생, 또는 근무시간 내내 해야 한다면 출근하기가 즐거울까? 내가 만약 향후 10년 안에 단 하나의 대학원을 다닐 수 있고 그게 사회복지 전공이라면 나는 배우러 가는 학교가 즐거울까? 나에게 질문을 했다.
그날 새벽 나는 그리스신화를 읽고 있었다. 현관 수호장 무성한 스파티필름 뒤에다 지인이 두고가신 5년 기른 오렌지쟈스민을 발견한 새벽이었다. 그 꽃나무를 손바닥에 모셔들고 울컥했던 그 날 새벽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칠까 말까는 선택은 아가멤논에게만 주어지는 선택이 아님을 알았다. 만약 사령관 아가멤논이 이피게네이아를 희생시키지 않기로 했다면 트로이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는 것도 알았다. 그 전쟁이 없었더라도 도전과 모험은 생겨났을 거고 다른 영웅서사시가 씌어졌을 거다.
나에게 이피게네이아의 특징은 어떤 의미가 있지? 나는 마음 편한 사람, 놀아도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상대 앞에서만 찧고 까분다. 햇빛 찬란한 들판에서 꽃을 따는 소녀들처럼 까불락까불락 폴짝폴짝 재잘재잘 거리는 건 대단한 의미가 있다. 나의 몸과 마음, 영혼의 상태가 가장 고양된 모습이다. 떼로 나와서 노는 콩새들의 시간이며, 꽃비나 영롱한 무지개다. 그런데 만약 교육복지가 나의 그런 면을 목졸라, 번제제물로 죽여 바치고서야 떠날 수 있는 길이라면 그러니까 나의 적성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면 나는 이걸 굳이 택해서 자신을 고행시킬 필요가 없을 것 같다. 2년간 실험했는데 이게 아니면 버려도 될 것 같다. 그 2년 덕분에 그게 나와 맞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큰 소득이다.
아울리스의 배 위에서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치면 바람이 분다'는 신탁을 전해 듣고 내 인생 함대의 사령관인 나는 생각한다. 나는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치지 않겠다. 그리고 일리아드와는 다른 서사시의 주인공이 되겠다. 전쟁이 없으면 뽀대나는 영웅이 없다고? 괜찮다. 공포영화를 무서워하듯 나는 전쟁영웅보다 날마다 새벽에 기도해서 집안의 흐름을 바꾼 호호 할머니 같은 평범한 생활형 영웅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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