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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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위인들과 가상 인터뷰
(하기는 백범 김구, 칼 융, 버트란드 러셀, 그리고 괴테 4명과의 가상 인터뷰이다. 각 질문에 대한 대부분 답변은 그들의 자서전 및 그들의 다른 저서를 참고했으며 질문자의 답변도 포함시켰다. 단, 일부는 그들의 성격이나 기질을 감안하여 질문자가 유추한 점도 있음을 밝혀둔다.)
Q
1. 사람은
저마다 잠재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잠재력을 발견 못
하거나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합니다. 하지만 여기 나오신 네 분께서는 그 능력을 최대한 끌어 올려 각 분야의 일가(一家)를 이루신 분들입니다. 자신의 성장을 가능케 한 동인(動因)은
무엇이었는지요?
백범: 저는, 구한말, 일제에 의해 국권이 침탈 되고 국운이 기울어 가는 시기에 태어났습니다. 가난한 평민출신에, 비범한 재능도 없고, 외모도 보잘것없고, 게다가 교육도 많이 받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부모님의 따뜻한 격려, 참 스승과의 만남, 그리고 좋은 동지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부모님은 제가 글을 배울 때나, 감옥에 있을 때나, 그리고 머나먼 상해 임시 정부에 있을 때나, 헌신적인 뒷바라지를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오응선과 고능선, 두 분의 스승은 만민의 평등과 편협한 사고의 틀을 벗어나 다양한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습니다. 또한 안창호, 김규식, 이시영, 윤봉길, 이봉창 등의 동지들의 도움은 임시정부의 위상을 정립하고 제가 더욱 독립을 위해 헌신할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여기에 저의 타고난 건강한 신체와 의협심, 그리고 여러 사람과 잘 어울리는 성격도 내가 성장하는 데 밑거름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러셀: 제 성장의 원동력은 사랑에 대한 열정, 자유, 그리고 인간을 향한 연민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네 살이 되기 전에 부모와 누이를 잃고 형과 저는 할머니의 손에 자랐습니다. 성장하면서 외로움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할머니도 사랑해 주셨지만 어디 부모님의 사랑만큼이나 했겠어요. 그 사랑의 결핍을 보상 받기 위해 80이 넘어서까지 여성과의 사랑에 탐닉을 한 것 같습니다. 어릴 때부터 틀에 얽매인 공교육 대신에 사교육을 받아서 그런지 자유분방한 사고를 기를 수 있었어요. 이러한 열린 사고로 불의, 권위, 그리고 인습에 저항하게 되었죠. 더 나아가 교육, 결혼, 종교로부터 해방이 되는 것이 진정한 자기 개혁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죠. 그래서 주입식 교육, 사랑 없는 결혼과 부부관계는 아무 소용이 없으며, 인간의 행동과 정신을 통제하는 종교로부터 자유롭고 싶었습니다. 국가가 휘두르는 무소불의의 권력, 권위, 위선자, 불의, 인습에 저항하는 현실 참여에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괴테 : 제 생애는 시와 여성이 함께한 시간이었으며 이 것이 저를 성장시켰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저는 일찍이 관찰력과 상상력의 타고난 재능을 시를 포함한 문학에 쏟았습니다. 여성은 제 정신과 육체에 활력을 주었으며 제 삶을 지탱해준 에너지였습니다. 사랑으로 희열, 실연으로 절망을 느꼈습니다. 그 희열과 절망을 시와 소설로 담아내었습니다. 여성은 장미이며 사과였습니다. 장미의 아름다움을 보면서 사과의 달콤함을 음미했습니다. 실연은 또 다른 사랑을 찾는 열정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제 아내인 크리스티아네는 28년간 함께 살면서 변덕스럽고 신경질적인 저를 보살펴주고 편안하게 해주었습니다. 내가 평생 이룬 모든 공적을 허물어도 아내를 잃은 상실감에 비할 정도는 아니었을 정도로 마음이 아팠습니다.
융: 철학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인생에 새로운 눈을 뜨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고통, 혼돈, 열정, 그리고 악의 문제를 논한 쇼펜하우어에 끌리었습니다. 그는 인간의 추악한 부분을 감추려 하지 않고 인생을 자신이 본 그대로 표현했습니다.
제게 영향을 많이 준 사람은 프로이트였습니다. 6년 가까이 그와 뜻을 같이 하면서 그의 정신분석이론을 강의했습니다. 나중에 사고와 견해의 차이로 같은 길을 갈 수 없었지만요.
그리고 가정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꿈, 신비한 경험 등, 내면 생활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 정상적인 가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 했습니다. 가정과 전문가로서의 일은 언제나 내가 돌아가야 할 터전이었으며 내가 꿈속에, 과거에
사는 것이 아닌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정상인 임을 보증해 주었습니다. 내 성장을 이끌어 한 요인이라고
생각해요.
최 : 배움의 한이 많은 부모님의 자식 교육에 대한 열의가 대단했습니다. 그 덕분에 대학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운이 좋아 기질에 맞는 회사에 들어가 허물없이 직장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고교 때 소중한 친구를 만난 것도 행운이었습니다. 함께 공부하고 운동하고 교회활동도 열심히 했죠.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히는 것을 좋아해요. 꾸준히 쉼 없이 배우는 과정 그 자체에 즐거움을 느낍니다. 아마도 평생 배우고 익히면서 시간을 보낼 듯 합니다 그리고 사색하고 명상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앞서 살다 간 수많은 사람들, 지금의 나의 삶을 보면서 ‘나’라는 육신에 얽매여 살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Q 2. 요즘 글쓰기가 대세인 것 같습니다. 사 오 십대 중년의 나이에 글쓰기를 시작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하지만 막상 무엇에 대해서, 그리고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한 경우가 있습니다. 글쓰기관련 자기만의 원칙이 있으실 것 같은데 한 말씀 부탁 드리겠습니다.
러셀 : 제가 본격적인 글쓰기를 한 것은 나이 50세 이후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그 전에는 논리학과 수학에 관한 저술이 대부분이었죠. 일반 대중이 읽기 어려운 전문 지식을 갖춘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었죠. 아마도 49세 늦은 나이에 첫 아이가 태어나면서 돈 벌기 위한 수단으로 글쓰기를 한 부분도 있습니다. 50세 이후에 반핵 운동에 참여하고 종교, 윤리, 성, 교육, 정치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어 그 분야에 대중적 에세이를 쓰게 되었습니다. 글을 쓰면서 대중이 이해하기 쉽게 그러면서 인간의 본성인 허영심, 권력욕, 성취욕을 폭로, 비판하고 풍자했습니다. 금기 시 하는 주제 또는 불의에 침묵하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거침없이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괴테 : 시나 소설을 쓰기 위한 전문 작가의 길을 가느냐, 가지 않느냐에 따라 대답을 달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전자의 경우, 자신이 판단하기에 예리한 관찰력과 상상력의 타고난 재능이 없으면 작가의 길을 가는 것을 다시 한번 고려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상상력은 후천적인 노력으로 습득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글쓰기 목적이 후자라면, 글쎄요. 취미로 한번 시도를 하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저 또한 식물학, 광학, 동물학, 지질학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갖고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특히,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해 한때 화가를 꿈꾸었던 적이 있었죠. 화가의 길을 갈 것 인가하는 문제를 놓고 강에 나이프를 던져 결정을 한 적이 있습니다. 결국에 그 꿈을 접었지만요. 먼저 자신감이 없었습니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사람의 온화한 마음을 감동시키는 것인 훨씬 멋있는 일이 아닐까? “ 라고요. 저는 그림보다 시가 더 감동을 준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쨌든 자신이 쓴 글이 사람에게 공명을 주고 감동을 줄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최: 고민 중입니다. 한 중년 남자의 은퇴후의 인생 2막의 삶을 체험을 중심으로 기술하려고 하는데 너무 진부한 내용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독자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듭니다. 한편으론 독자의 평가나 판매와 상관없이 인생에 내 이름이 새겨진 한 권의 책을 남기는 것에 의미를 두고도 싶기도 합니다.
Q
3. 작가로서 살아가는 방식이나 살아가면서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는지요? 어네스트
헤밍웨이는 작가에게 있어 술, 돈, 여자, 야망, 정치는 필요악이라고 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개인마다 의견이 다를 수도 있을 것 같네요. 특히, 괴테 선생님은 한 책에서 “ 더 이상 사랑하지도 않고 고민도 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무덤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고 표현할 정도로 사랑을 찬미했는데 먼저 한 말씀 부탁 드릴까요?
괴테 : 저는 어머니의 밝고 쾌활한 성격과 상상력의 재능을 물려받았죠. 어머니는 이미 알고 있는 진부한 이야기에 생기와 신선미를 불어넣어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내곤 했습니다. 그것을 얼마나 재미있고 힘차게 표현하는 지 놀랄 정도였죠.
젊었을 때, 저는 성격이 제멋대로고 고집이 세고, 변덕스럽고 신경질 적이고 과격한 기질이 있습니다. 이러한 성격이 연애할 때도 나타나곤 하는데 괜히 연인을 괴롭히고 야박하게 대하곤 했죠. 그래서 아픔을 많이 주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젊은 두 남녀간에 서로 무엇인가 끌어 당기는 힘이 느껴지는 순간 사랑이 싹트는 것 같습니다. 한 여성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면 나의 나쁜 성격이 온화해지고 다정해지고 주위의 모든 사람들까지 사랑스럽게 보이더군요. 솔직히 여성은 제 창작의 원동력이었습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친화력>,<서동시집>이 그렇고, <파우스트>도 프리데리커를 버린 죄책감이 원동력이 되었죠.
융: 저술가의 한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작가는 단순하게 살고 고독과 친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술이 일회성의 그친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으면 끊임없이 새로운 작품을 내기 위해서는 돈, 여자, 술, 야망 등의 쾌락과 욕심에서 벗어나 내면 속의 진정한 ‘나’를 발견하기 위한 노력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러셀: 저는 작가란 불의, 권력, 권위, 낡은 인습 등에 얽매이지 않고 그것에 저항하는 행동하는 지식인의 삶을 살았으면 합니다. 물론 대중의 인기에 영합해서도 안되죠. 그러기 위해서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어떤 경우는 구속이나 통제를 받는 일신상의 불이익을 감수하여야 합니다.
인간의 행동이나 사고의 자유를 가로막는 타인의 시선, 고정관념, 그리고 관습 등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글과 행동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삶의 진정한 작가의 삶이 아닐까 합니다.
술, 돈, 여자 등은 개인의 사생활 관련한 문제로 남한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어느 누구로부터 침해 받아선 안 됩니다. 단, 자신의 결정한 행위의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합니다.
최 : 작가로서 술,여자, 돈, 정치에 맛들이면 그 맛의 달콤함에 길들여져 헤어나기 힘들지 않나 생각합니다. 창작은 정신이 명징할 때 해야 하는데 쾌락과 탐욕에 젖어 쓴 글에 작가의 진정성을 기대하기 힘들 듯 하네요.
Q 4. 다소 민감한 질문입니다. 역사를 통해보면 종교의 인류에게 끼친 폐해가 많습니다. “신께서 원하신다”라는 한마디에 십자군 전쟁이 촉발되어 수많은 사람이 죽었고, 중세 교회의 마녀 사냥으로 죄 없는 사람들이 처형 되었습니다. 21세기의 현대의 종교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한 말씀 부탁 드립니다. 먼저, 러셀 선생님이 할 말씀이 많으실 것 같은데요.
러셀 :저는 무신론자로서 모든 종교는 거짓되고 해롭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날 종교는 종교의 필요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인간은 불안, 전쟁의 공포, 증오, 탐욕 등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외쳐대고 있습니다. 고통스럽고 예측 불가능한 인생에 맞서기 위해 신앙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겁이 많은 사람입니다. 이러한 나약한 태도는 종교의 영역에 들어가면 환영을 받습니다. 기도를 하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고 합니다. 사람들을 불행과 공포로 몰아넣는 전쟁의 위협과 압제는 사람들이 신앙을 갖게 만듭니다. 종교가 사라질 수 없는 이유죠.
하지만 태평성세가 이어져 사람들이 공포와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될 때, 사람들은 신의 존재를 믿지 않을 것입니다. 인간 사회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면 종교는 사라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종교는 일종의 질병입니다. 종교는 인간의 지성이 미숙한 시대에 어울리는 것이며, 인간의 지성이 발전한 오늘 날 우리는 이 질병에서 벗어날 만큼 성숙한 상태입니다.
성직자 대부분이 평화 시에는 평화를 지지하다가, 전쟁이 일어나면, 전쟁 지지자로 돌변합니다. 그들은 신이 자신들 편이라는 확신하면서 전쟁을 지지하고 대량 학살을 무모한 짓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을 탄압하는 행동에 종교적 근거를 제공합니다.
괴테 : 전 다음과 같은 글로 종교에 대한 제 생각을 전할까 합니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이해하려 하지 않으며
그저 기도만으로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이 종교라면
종교는 노인에게나 적합하다
반면, 생각하려 하고 이해하려 애쓰는 젊은이에게 종교는
종교가 아닌 문학의 역할을 한다.
처음부터 무작정 믿는 것이 아니라
알아가는 과정 속에서 생의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다
전 모든 종교 나름대로 우수한 점을 인정합니다. 우주 만물에 신이 깃들어 있음도 부인하지 않습니다. 저는 어떤 특정 한 종교에 구속되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믿는 것은 인간이 구원받으려면 오직 노력하는 것뿐입니다. 신의 은총은 그 다음이죠.
최: 인간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한 인간의 탐욕으로 야기되는 전쟁, 반목, 공포, 두려움은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종교는 그것을 최대한 이용하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위대한 잠재력이 있는지를 발견할 생각을 하지 않고 신과 종교를 찾아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일부 사람들 또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오만과 겸손을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각 개개인 내면에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한 노력을 해 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입니다. 맹목적으로 모태신앙이라 하여 경험을 해보지 않고 의무감처럼 교회나 성당을 찾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또한 자신이 믿는 종교 외에 타 종교는 배척하는 사람들 또한 참 종교를 믿는 사람이라고 볼 수 어려운 것 같네요.
Q 5. 성과 결혼에 대해 예기해 보고 싶군요. 지금은 성이 더 이상 금기시 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거론이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희롱 성추행이나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결혼 전 동거도 큰 부담없이 젊은 남녀사이에 예기되고 있습니다. 이점에 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요?
러셀 : 단순히 종족보존의 기능의 성이 아니라 부부간의 사랑과 행복한 결혼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사랑 없는 결혼이나 부부관계를 지속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러므로 어려서부터 성에 대해 솔직하고 개방적으로 교육해야 합니다. 특히 교회에서 성을 외설스럽고 추잡한 것으로 보고 성을 죄악시 하고 성적충동을 억압했는데 이는 성에 대한 올바른 생각을 갖게 하는데 방해 요소가 되고 있습니다. 성은 남녀간의 자유로운 의사에 의해 결정되는 지극히 사적인 문제이며 둘이 서로 좋아하면 결혼 전이라도 성관계를 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 누구에 의해서도 사생활이 침해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괴테: 결혼은 신중히 해야 할 필요가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도 한때 성급한 결정으로 약혼을 하고 곧 후회를 하여 파혼을 한 적이 있습니다. 상대방한테 아픔을 주었죠.
Q
6. 페르소나라는 말이 있습니다. 개인이 대중에게 보여주는 가면으로 사회의 인정을 받기
위해 좋은 인상을 주려는 의도를 담고 있습니다. 사회생활을 위해 또는 생존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페르소나의
지배를 받고 또 한편으로 정신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이중생활을 하고 있는데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요? 먼저, 융 박사님이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융: 오래 전부터 사람들은 조직이나 사회생활에 순응하며 살았습니다. 그렇지 못하면 소외를 당하거나 불이익을 당하게 되죠. 이 것은 어느 나라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나타나는 집단 원형의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페르소나가 지나치면 그것에 자신을 동일시 하게 되어 자신의 본성으로부터 멀어지게 됩니다. 이것을 ‘팽창’이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에게 기대했던 만큼 삶을 영위하지 못할 경우 열등감이나 자책감을 느끼며 사회와 가족으로부터 따돌림을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페르소나에 집착한 제 환자 중에는 직장에서 업적을 거둔 사람도 있었는데, 이들은 나중에 인생의 무의미함을 느끼고 자신이 오랫동안 스스로를 기만하고 위선적이었으며, 아무 흥미 없는 일에 흥미가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적절한 페르소나를 갖는 것이 생활의 윤활유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백범: 저는 전사, 투사, 지도자로서의 페르소나가 너무 강한 것 같습니다. 가족과 함께할 시간을 거의 갖지 못해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자상한 가정적 이미지로서의 가면을 쓰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좀 아쉽고 아내와 두 아들한테 항상 미안한 부분이죠. 한편, 독립운동가, 민족의 지도자로서의 페르소나에 맞추기 위해 때로는 신경이 쓰입니다. 언행, 옷차림 등이 외부에 그대로 노출되어 본의 아니게 실수하지 않을 까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그 실수가 혹여 국가의 독립을 위해 함께 일했던 동료들에게 누가 되지 않을 까 염려가 됩니다.
최: 20년 넘게 일이 많건 적건 간에 윗사람 눈치 보며 거의 매일 12 시간 이상을 회사에서 보냈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더군요. 또한 거래처 만나 억지로 웃음을 짓고 ,분위기 맞추기 위해 폭탄주 마시고, 상대방 기분을 살펴 골프를 칠 일이 없어졌고요. 20년 넘게 쓴 회사의 가면을 벗어 던져 원래의 나로 돌아와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어 기쁩니다. (2013. 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