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오늘의

마음을

마음을

  • 승완
  • 조회 수 3123
  • 댓글 수 1
  • 추천 수 0
2013년 10월 1일 10시 03분 등록

1950년대 초 면역학자이자 바이러스 학자인 조너선 솔크는 미국 피츠버그에 있는 연구실에서 소아마비 백신을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여러 물질로 많은 실험을 진행했지만 백신을 개발하지 못했습니다. 낙담한 솔크는 휴식을 취하기 위해 유럽으로 여행을 떠나 이탈리아 움브리아주에 위치한 아시시(Assis)에 머물렀습니다. 아시시는 큰 병원이나 의학 연구소가 없는, 그러니까 의학이나 백신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작은 마을입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불현 듯 백신 개발의 난제를 풀 수 있는 해결책이 떠올랐습니다. 그는 서둘러 연구실로 돌아와 소아마비 백신을 만들었고, 그 덕분에 수백만 명의 목숨을 구했습니다.

 

솔크는 아시시의 무언가가 자신의 영감에 불을 붙였다고 믿었고, 이 체험이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시시처럼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경으로 둘러싸인 곳에 연구센터를 만들면 과학자들의 연구에 도움이 되리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는 자금과 토지를 지원 받아 건축가 루이스 칸과 함께 미국 캘리포니아 남부 샌디에고 근처에 위치한 라호야에 솔크 연구소(Salk Institute)를 설립했습니다. 조너선 솔크는 1992년 미국 건축재단에서 오랜 세월을 견뎌낸 건물에게 주는 상을 받는 자리에서 아시시에서 한 정신적 체험을 이야기하며 그 경험이 자신의 직관을 자극하여 연구에서 돌파구를 찾을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아시시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곳과 같은 분위기를 가진 연구소를 만들게 되었다고 밝혔습니다.

 

나는 정신의학자 에스더 M. 스턴버그가 쓴 <공간이 마음을 살린다>에서 조너선 솔크와 솔크 연구소의 이야기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나도 아시시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2011년 여름 아시시에 갔습니다. 아시시는 내게 충격이었습니다. 그곳이 성 프란체스코와 성 클라라의 고향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푸른 하늘과 뭉게구름, 따뜻한 햇살이 드리워진 중세 도시의 낡은 골목길, 높지 않은 언덕에 위치한 마을에서 바라본 너른 들판, 무엇보다 해 질 녘의 부드러운 햇살과 바람과 그와 똑같은 느낌으로 흘러가는 구름을 잊을 수 없습니다. 내게 아시시는 사랑 그 자체였습니다. 그때의 느낌을 나는 다음과 같이 메모해 두었습니다.

 

“아시시의 바람은 부드럽다. 햇빛도 부드럽고 구름도 부드럽다. 사랑의 바람, 사랑의 햇빛, 사랑의 구름이다.”

 

Assisi1.jpg

푸른 하늘과 뭉게구름 아래 펼쳐진 아시시의 전경

Assisi2.jpg

해 질 녘 아시시의 언덕 아래 도심에서 바라본 하늘

 

아시시에는 아름다운 풍광과 독특한 정신적 기운이 흘렀습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아시시의 영혼이 나의 영혼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었고, 아시시와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는 열망이 샘솟았습니다. 10년쯤 후에 아시시를 다시 가고 싶습니다. 그곳에서 내 열망이 얼마나 실현됐는지 확인하고 싶습니다.

 

1965년 설립된 솔크 연구소는 기초과학과 분자생물학, 그리고 신경과학 연구로 유명합니다. 현재까지 노벨상 수상자를 5명이나 배출하여 생명과학의 메카로 성장했습니다. 또 이 연구소는 20세기 가장 위대한 건축물로 꼽힙니다. 세계 곳곳에서 찾아오는 건축학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20세기 건축의 순례지입니다. 건축가 승효상 선생은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에서 솔크 연구소를 ‘불후의 명작’으로 소개하며, 이 건축물이 자신의 건축 철학을 정립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솔크 연구소와 같은 건축물을 ‘진실의 건축’이라 부르며, “그 건축에 거주함으로써 우리의 영적 성숙은 이루어진다”고 말합니다.

 

“건축 속에 영혼이 거주하게 되면 그 건축은 장소를 떠나고 시대를 떠나서 우리에게 감동으로 다가오게 된다. 그리고 그 건축으로 인해 우리의 기점을 다시 확인하게 되며 언제든지 다시 출발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영감에 불을 지피고 영혼에게 말을 거는 공간이 있습니다. 아시시는 솔크에게 소아마비 백신 개발에 필요한 영감을 점화시키고, 내 영혼을 정화시켜주었습니다. 솔크는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영감을 깨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고, 승효상 선생은 그 공간에서 자신의 건축적 정체성을 재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에스더 M. 스턴버그의 <공간이 마음을 살린다>는 내게 공간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과학적으로 설명해주었습니다.

 

space-20130924.jpg

에스더 M. 스턴버그 저, 서영조 역, 공간이 마음을 살린다, 더퀘스트, 2013년

 

* 안내1 : 구본형 선생님 유고집 <나는 이렇게 될 것이다> 출간

구본형 선생님의 유고집 <나는 이렇게 될 것이다 : 구본형의 자기경영 1954-2013>이 출간되었습니다. 이 책은 구본형 선생님이 2002년부터 2013년까지 쓴 ‘구본형 칼럼’ 604편 가운데 저자의 생애와 사유의 정수를 보여주는 60편을 골라 묶은 것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 혹은 아래 이미지를 클릭하세요.

 

201309010-1.jpg

 

* 안내2 : 크리에이티브 살롱 9 ‘인문학 아카데미’ 10월 강좌

변화경영연구소의 오프라인 까페 ‘크리에이티브 살롱 9의 ‘인문학 아카데미’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10월 강좌는 ‘보르헤스의 문학사상 : 존재와 시간’을 주제로 <보르헤스 문학 전기>의 저자 · 문학평론가 김홍근 선생이 진행합니다. 보르헤스는 파울로 코엘료, 자크 데리다, 움베르토 에코 등 우리 시대 지성들의 ‘정신적 아버지’로 평가 받는 소설가이자 사상가입니다. 커리큘럼과 장소 등 자세한 내용은 여기 혹은 아래 이미지를 클릭하세요.

 

Borges-20130924.jpg

 

 

IP *.34.180.245

프로필 이미지
2013.10.02 05:04:08 *.179.252.52

이 글을 읽고 '아시시'에 가보고 싶어졌습니다.

저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리 공부 하던 중 <성 프란치스코>란 책을 읽고 있었는데

남편이 수녀님께 부탁해서 지어온 우리 부부의 세례명이

 '프란치스코와 글라라'였답니다.

우연인지, 동시성인지...

어쨌든 저는 우리의 세례명이 마음에 들었고,

우리 부부도 혼인생활을 통해 영적으로 더욱 성장하리라는 예감이 들었답니다.^^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