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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마음을

  • 콩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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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5일 07시 52분 등록

 

한 달이 희번덕 돌아왔습니다. 잘 지내셨지요? 저는 시댁친정에서의 첫 명절을 보냈고, 공개수업을 하느라 분주했습니다. 그리고 토요일에 받으실 이 편지를 어떻게 쓸까 조금 무거웠습니다. 지난번에 발송하면서 편지를 받아보는 분들이 1만 명이 넘는 걸 알았거든요. 놀랬습니다. 겁을 집어먹었고, 괜히 한다고 했나 물러서는 마음이 들었어요. 이왕이면 힘들고 쳐지는 이야기가 아니라 생기 있고 기운 나는 편지가 되었으면 좋겠는데 주중 퇴근 즈음에 저는 마음까지 고단해져서 징징거리거나 사나워질 때가 많거든요. 편지에 그런 게 묻어가게 될까봐, 아님 스마일스티커처럼 가짜로 웃는 척 해얄까봐서요. 제가 피어나는 상태에 있을 때나 싱그러워지는 장소에 머문 후에 쓰면 괜찮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토요마음편지를 쓰는 동안에는 초안을 쓰게 될 수,,금 중 하루는 퇴근길에 놀러 가기로 작정했습니다. 2시간 자신과 데이트를 하면서 나에게 휴식과 영양을 공급하는 시간을 가지기로요. 이렇게 잘 살고 싶어지니 문득 편지를 읽으시는 당신에게, 이 편지에게, 이 일을 시켜준 인연에게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뭘까, 뭘 하면 기운이 날까 생각해봅니다. 그런 질문이 너무 오랜만이라 퍼뜩 떠오르지가 않습니다. 병문안이나 여름 옷 정리 같은 의무가 욕망을 가장하고 먼저 떠오릅니다. 이럴 땐 나를 놀도록 불을 싸지르는 선동구가 유용합니다.

 

샘을 채울 때는 마법을 생각하고 기쁨과 즐거움을 생각해야 한다. 의무는 절대 생각해서는 안된다. 억지로 읽어야 하는 지루한 비평서는 멀리 치우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것, 흥미 있는 것을 한다. (줄리아 카메론 <아티스트 웨이> 49)

 

휴식은 자신에게 선사한 따뜻한 시간이다. 자신에게 시간을 주지 않고 어떻게 더 나아질 수 있는가? 왜 우리는 늘 바쁘고 또 다른 사람을 바쁘게 하는가? 바쁜 사람은 바보다. 휴식이 게으름이나 소비로 느껴지지 않을 때, 한 사회가 이에 진심으로 공감할 때, 우리는 훨씬 나아진 사회에 살게 된다. 우리가 좀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 이것이 바로 긍정적인 변화인 것이다. (구본형 <떠남과 만남> 322)

 

아름다워지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의 내면적인 성찰이 요구된다. “체제에 충실하게 복무하는 평범한 인간들의 무관심에 의해 사회적 죄악이 방조되고 만들어진다는 것을 자각하는 사회야말로 위대한 사회다. 이런 사회는 나아질 수 있다. 올바른 변화의 여정을 시작할 수 있다. 이때 휴식과 성찰은 소비가 아니라 창조로 인식될 것이다. 지식은 데이터베이스가 아니다. 지식은 곧 사람을 의미한다. 전문적 지식뿐 아니라 그 지식을 오직 공동체의 행복을 위해서만 사용하려는 가치관과 의지를 가진 사람 그 자체를 의미한다. 사람은 쉬고 있을 때와 자신의 내면과 만날 때, 가장 자유로운 정신력을 가지게 된다. 그때 비로소 작은 이해와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다. (<떠남과 만남> 319)

 

천천히 걷는다는 것은 가난한 사람도 느림의 혜택을 즐길 수 있게 하는 거의 유일한 현실적 방법이다. 거리를 걸을 때는 아무 할 일 없이 건달처럼 걸어라. 느긋한 마음으로 걷다 보면 보이지 않던 여러 가지를 보고 느낄 수 있다. 걷는 것에 익숙해지면 걷기를 즐기게 된다. 일주일에 한 번은 산에 가라, 그렇게 못하면 2주일에 한 번은 가라. 그렇게도 못하면 한 달에 한 번은 반드시 가라. 한국은 산이 아름다운 나라이다. 어디에 살든 한 시간 안에 아름다운 산 어귀에 닿을 수 있다. 자연 속으로 들어가 신의 창문을 통해 그 경이로움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몸도 마음도 싱싱해진다. 한국에 살면서 산에 가지 못한다면 가장 아름다운 것을 놓치고 사는 것이다. 나는 10년째 북한산에 다닌다. 일주일에 한번씩 이 아름다운 산 속으로 들었더니 이제 500번 이상을 다녀오게 되었다. (구본형, <오늘 눈부신 하루를 위하여> 122~126)

 

그제야 놀 궁리 2개가 나섭니다. 하나는 화분 파는 오프라인 가게에 가서 토분을 실컷 구경하고 몇 개 안아오면 좋겠어요. 분갈이 할 식물이 몇 개 있어요. 저는 토분이 좋아요. 토분은 물을 주고 나면 흙냄새가 나요. 비가 내릴 때 올라오는 냄새 있잖아요. 물이 말랐는 지를 색깔이 연해지면서 알 수 있어요. 또 지평선이 보이는 너른 데로 나를 데려가 종일 햇빛을 쬐면서 걷고 싶습니다. 바람 부는 강가, 하늘이 열리는 날 천제를 올리는 강화 마니산, 밥 먹고 산책 삼아 갈 수 있는 남산, 파주의 납골당에 다녀오는 길에 본 북한산 봉우리를 떠올립니다. 어디를 가든 돌아오는 길에는 좋은 사람과 잔치국수와 부침개를 놓고 술을 한 잔 해야겠네요.

 

실제로 한 것은 걸어서 5분 걸리는 집 앞 단골 꽃집카페에서 화분을 사다가 분갈이 한 거하고, 영화를 한 편 본 것입니다. 혼자서 과천 금성토기화분, 강화도와 북한산으로 나설 만큼의 용기와 실행력이 없었어요. 저녁 지을 때쯤 옹기에다가 풍로초를, 요강처럼 배가 부른 흰 화분에 오렌지쟈스민을, 사각 테라분에 분홍 꽃기린을 옮겨심었어요. 뿌듯했습니다. 그가 야근을 하는 날이라 식사준비는 생략, 사과 1개로 저녁을 가볍게 먹었어요. 전철을 타고 극장에 갔어요. 아프카니스탄 배경의 영화 <어떤 여인의 고백>을 봤습니다. 내가 자리에 막 앉았을 때 양복을 입고 후줄근히 지친 표정의 한 남자가 들어와 저쪽에 앉습니다. 그도 쉬러 왔나 봅니다. 지금은 어제 분갈이 한 화분들을 주변에 죽 늘어 놓고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눈을 뜨기 힘든 저 하늘이 아름다워를 부르며 하늘을 종종 올려다 보고, ‘노란 은행잎이 떨어진 가을우체국 앞에서 그대에게편지를 쓰고 싶고,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뜻 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우리는 헤어졌어요를 흥얼거리며 마무리하게 되는 10월입니다. 소풍 가기 좋은 날이 계속 됩니다. 맛난 과일 많이 드시고요. 풍요로운 10월 되시길 바랍니다.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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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05 22:16:50 *.160.136.35

10월. 아름다운 계절 어여쁜 새색시가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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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05 16:46:32 *.43.131.14

어여쁜 새색시라고 보아주시니 진짜로 어여뻐지고 싶습니다.^^ 10월이 가니까 저는 참 좋습니다.

가을, 겨울 강녕하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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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05 23:42:31 *.131.89.83

즐거움 유쾌함을 나누고 싶어 놀 궁리로 눈을 빙글빙글 돌리는 콩두님이 생각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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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05 16:47:06 *.43.131.14

정화님, 눈을 빙글빙글 돌리는 저의 표정을 알고 계시군요. 하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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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06 13:11:40 *.108.69.102

가만가만 펼쳐놓는 마음이 꼭 내 것처럼 생생하게 만져지네요.

콩두의 조근조근 문체 참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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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05 16:48:48 *.43.131.14

조근조근체...그런게 저에게 남게 된다면 알아보고 이름 불러주시는 분들 덕분입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매번 새벽에 다시는 댓글에 힘을 얻곤 합니다.

제가 선배님 다음이라서 선배님 글을 읽고 난 다음에 힘을 내서 마음편지를 쓰러 갈 때가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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