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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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을 공부하는 길
인문학은 무엇인가? 인간에 대해 묻고 답하는 거다. 태어나 살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인생에 답답한게 없으면 질문도 없을 게다. 답답하니 묻고 또 답을 찾을 때 새로운 방향을 찾을 수 있다. 속시원히 답해주는 게 없어도 답을 찾다 보면 한 발 나아간 자신을 마주 대한다.
인문학은 왜 공부하는가? 나에게 주어진 인생에 대해 묻고 답하는 연습을 하는 거다. 나보다 먼저 태어났던 사람들이 동일한 과정속에 축적해온 질문과 답변을 글로, 그림으로, 음악으로, 영화로 남겨 놓았다. 그걸 하나하나 풀어 보는 거다. 공부해 본 사람은 안다. 그들이 남긴 흔적 속에서 용솟음치는 패기와 가슴 부풀게 만드는 열정, 세상을 얻은 듯한 통찰의 희열을 공부해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다.
인문학을 공부하고 싶은가? 이름만 들어도 어지러운 문사철을 공부해야 하는가? 대체 어디서 부터 시작해야 하는가 난감하다. 책를 읽어본지도, 연극공연이나 미술관을 찾아본지 기억도 가물가물한게 우리네 팍팍한 현실이다. 나만의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미하엘 엔데가 소설 모모를 통해 말하는 것처럼, 나만의 시간을 저당 잡혀야 돈을 통장에 넣어주는 거대한 시스템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내 주변의 환경을 받아들여라. 거기서 시작이다. 철학한다는 것은 시작점을 정하는 것이다. 나에게 주어진 것 중에서 무엇을 시작점으로 정할 것인가? 단연코 제안한다. 받아들임으로 시작하자. 꽉막힌 현실의 벽을 받아들여라. 미로속에 갇힌 나의 위치를 인정하라.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는 힘을 기르는 게 삶을 배우는 시작이고 인문학의 시작이다. 받아들이되 거기서 내가 갈 길을 찾아내는 게 공부의 시작이다.
둘째, 끝까지 공부해 보자. 마음에 드는 분야나 저자 (미술가일 수도 있고 음악가 일수도 있다)를 만나면 구경하지 말고 진실로 끝까지 공부해 보라. 인터넷으로 배우는 것은 끝까지 공부하는 게 아니다. 거기는 시각이 없다. 시각은 인터넷에서 배우는 게 아니다. 나의 시각은 나만의 경험으로 얻어진다. 끝까지 밀어 부친 학습의 경험속에서 우주는 나에게 원대한 비밀을 보여준다. 러셀은 자서전에서 <수학의 원리>라는 방대한 저작을 쓰면서 '수학'이라는 학문을 끝까지 밀어부치고 나니, 인간의 고통과 고독이라는 근원적 성찰이 불연듯 일어났다고 밝혔다. 끝까지 밀어부칠 때, 대나무에 마디가 생기듯, 새로운 영역으로 성장하는 법이다.
셋째, 자신의 희열에 솔직하라. 무엇이 자신에게 희열을 주는가? 그 희열에 기뻐하는 자신의 모습에 뿌듯해 하라. 나의 경우 책을 좋아했다. 그것도 철학책을 좋아했다. 아무도 관심없지만 나만이 기뻐하는 분야였다. 1993년 고등학교를 2월에 졸업하고 재수 종합반이 개강하는 3월까지 한 달의 자유로운 시간 동안, 나는 도서관에서 청소년을 위한 철학책에 넋을 놓았었다. 지금, 두 딸과 아내를 부양하는 가장이자 마흔이 넘어가는 이 시간에, 나는 스스로를 일상에서 해방시킬 꿈을 꾸면서 나의 기쁨에 솔직해 지는 연습을 했다. 울고 또 웃는 연습부터 했다. 그러면서 나를 가장 기쁘게 했던 철학책부터 다시 잡았다. 그 기쁨에 솔찍해졌다. 그랬더니 행복하더라. 내가 행복하니 가족도 행복해하더라.
네째, 성장시켜라. 새롭게 발견한 자신의 분야를 사랑하고 키워주어라. 정말 잘 키워보자. 대가들을 공부하자. 고전을 공부하자. 그래서 나를 성장시키자. 그것으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자. 가장 이기적으로 공부를 시작하는 게, 가장 이타적으로 나의 삶을 뽑아낼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인문학은 그렇게 공부하는 거다.
세상은 함께 뒤엉켜 있지만 분명 영역 속에서 성장한다. 뒷산만 올라가도 배우지 않던가? 이름 모를 잡초도, 아름드리 나무도 저마다 영역을 가지고 성장하고 있다. 나만의 희열로 나의 영역을 찾아가다 보면 내가 뿌리내릴 곳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는 성장시키자. 꽃을 피워내자. 그러다 보면 열매도 맺을 게다. 크던 작던 나의 잎이요 나의 꽃이 아니 겠는가? 그 길이 우주가 내게 준 에너지를 잘 사용하고 가는 길 일 것이다. 내 '꼴' 대로 잘 성장하는 게 함께 잘 사는 길이다. 그게 인문학을 공부하는 길이다.
2013-10-07
坡州 雲井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