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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14일 07시 22분 등록

No 24

2013.10.14

글쓴이: 오미경

How to Live 갈림길에서 삶을 묻다. 윌리엄 브리지스 지음, 이명원 옮김. 이끌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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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첫째 요건은 익숙했던 방식을 버리는 과정이다.

나아가 자신의 예전 모습까지 버려야 한다.

포기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개인적인 취향만이 아니다.

과거에 성공적으로 해왔던 업무방식까지도 버리라는 말이다.

경험한 전체 세상, 정체성, 심지어는 현실 자체를

몽땅 버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 윌리엄 브리지스 (William Bridges)

Ⅰ. 저자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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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리엄 브리지스(William Bridges)는 『월스트리트 저널』이 선정한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컨설턴트 10인 중 한 명이며, ‘변환관리’의 창시자로서 조직의 변화 및 변화 관리 분야에서 탁월한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인물이다.

첫번째 직업은 Mills College 미국 문학을 가르치는 일이었다. 1980년대 가졌던 두 번째 직업은 인생의 전환에 관한 책을 쓰면서 시작되었다. 이를 계기로 기업 및 조직과 관련된 일을 하게 되었다. 조직에서 일어나는 합병이나 조직개편론, 기술 혁신 같은 것들이 사람들을 인생의 전환점으로 내몰기 때문이다.

 

그는 1981년 윌리엄 브리지스 & 어소시에이트(William Bridges & Associates)를 창립하고, 조직과 개인의 변환 관리를 돕고 있다. 그는 퍼시픽 벨, 박스터 헬스케어, 인텔, 카이저 퍼머넨테, 프록터 앤 갬블, 휴렛 팩커드, 미 산림청, 세브런 코퍼레이션, 사우디 아람코, 스탠퍼드대학, USA 투데이, 쉘 패트롤륨(런던), 오스트레일리아 국방부, 아스트라-제네카 제약회사, 트라이벤트 파이낸셜 등을 비롯하여 여러 기업에서 조직 합병, 구조조정, 지도부 교체, 문화 변혁 등과 관련된 일을 지원해왔다.

1994년에 <직업의 전환>을 출간하고 난 후, 1년후인 1995년에 유방암 진단을 받은 그의 아내는 1997년 투병끝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아내의 죽음이 나에게 마음의 바닥을 비워 새로운 정신을 받아들이기 위한 기반을 제공했다”고 말한다. ‘아내의 죽음’이라는 변화의 상황은 그를 내적ㆍ내면적 변화, 즉 전환의 과정으로 유도했다. 아내의 암투병과 죽음으로 보다 개인적인 성격의 전환에 대해서 다루었다.

 

‘How to live,갈림길에서 삶을 묻다’는 아내의 죽음의 계기로 변화와 전환을 재발견한다. 기존의 변환이 이론을 바탕으로 책을 썼고 강연을 했다. 그러나 이 책은 저자 스스로를 대상으로 진행된 아내의 죽음으로 변화와 전환의 임상치료 보고서이다.

서로 너무나도 다른 성격으로 그들의 결혼생활에는 상당한 어려움과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그들은 저자가 스물여섯 살, 아내가 열아홉 살때 결혼하여 37년 간 결혼생활을 하면서 세 딸을 낳고 길렀다. 영문학 교수직을 그만두고 서부에서의 공동체 생활을 하기도 했던 그는 결혼 생활을 통해, 그리고 아내와의 때로는 좋았고 또한 때로는 힘들었던 관계를 통해 자신이 성장했음을 고백하고 있다. 그리고 아내의 암 발병 직전, 아내의 불륜으로 얼마나 상처받았는지 또 그 상처를 통해 자신이 용서하는 법을 배웠음을 담담히 이야기한다.

브리지스는 아내가 암이 발병하고 이년 정도의 투병생활 후 사망하자, 큰 상실감을 겪지만 곧 열여덟 살 연하의 수잔 미첼을 만나 다시 사랑에 빠지고 일 년 반 만에 재혼한다. 그의 나이 63세의 일이다. 그는 또 다른 변환을 통해 새로운 여행을 시작한 것이다.

 

Ⅱ. 마음을 무찔르는 글귀

 

prologue. 전환은 당신을 성장시키는 최고의 수업

 

[6]

시간이 흐름에 따라 문학 작품은 변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문학 작품이 아니라

이를 읽는 독자들의 이해와 감상이 변한다.

- 조지 엘리엇 George Eliot

인생을 살다보면 영영 떠났다고 생각하는 곳으로 되돌아가게 되는 경우가 있다.

 

[7]

일이 주었던 가치와 목표의식이 그리워졌고 일을 하면서 만났던 사람들, 그리고 일이 주었던 창조적인 느낌들이 그리워졌다.

 

[8]

어떤 말이나 글도 만들 수 없었다. 일을 중단했다는 것은 생계 수단을 포기했다는 것뿐 아니라 인생에서 중요한 계속성을 지니는 것 하나를 잃었다는 의미이다.

 

[9]

시간이 지나면서, 오래된 현실이 사라질 때 마다 그 대답은 오래된 현실과 관련된 것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현실을 탐험하고 발견해 내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전환이란 깨닫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전환은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주는 동시에 정체성 역시 깨뜨렸다.

 

[10]

실제로 방향 감각을 잃고 상실감을 겪고 나서야 그것이 어떠한 것인지 알게 되었다.

=> 책으로 배운 것은 반복하지 않으면 잊어버린다. 남에게서 들은 이야기는 몇 시간 후면 사라진다. 생활에서 몸소 겪은 체험은 자신의 것으로 흡수되어 잊혀지지 않는다. “모든 진리는 신발속에 있다”는 말처럼 체험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고 깨닫지 않은 것은 휘발성인 것으로 시간이 지나면 연기처럼 사라진다.

 

[10]

그때 누군가가 벌떡 일어나서 나를 가리켜 진정한 의미의 전환에 대해 알지도 못하고 떠도는 사기꾼이라고 비난하기를 바라는 순간을 맞기도 했다.

하지만 낯설고 이색적인 풍경 속에서 자신을 새롭게 경험했고, 개인적인 전환이 어떻게 ‘영적인’ 전망을 할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 매너리즘에 빠지고 일상이 권태로울때, 여행을 떠나라고 한다. 낯선 곳에서 새로운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재충전이 되고 전에 봐왔던 세상도 달리 보인다.

 

[11]

아내의 죽음은 나에게 마음의 바닥을 비워 새로운 정신을 받아들이기 위한 기반을 제공했다.

=> 강한자가 살아있는게 아니고, 살아남은 자가 강한자인가. 가장 가까운 이의 죽음은 지금까지 봐오던 세상이 이전의 세상이 아니다. 외적인 변화가 내면의 새로운 깨달음으로 전환을 맞이한다. 대학교 4학년때 부모님의 죽음과 더불어 혼란스런 시기를 가졌었다. 덧없는 삶이었다가, 그래도 먹고 살아야 하는 동안은 등등 ‘삶을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 ‘삶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변화고 전환인가?

 

[11]

윌리엄 워즈워스는 “예술이란 평정 속에서 샘솟는 열정”이라고 했다.

 

[11-12]

이 책을 쓰면서 나는 현실을 제대로 보려고 노력했다. 개념적으로나 경험적으로 공정한 관점에서 판단하려 노력했다. 책이 끝날 무렵 각 장마다 나의 생각과 개인적인 경험들을 서술했다. 이 두 관점에서 전환을 이야기하느라 움직이고 있었다.

이 책은 내가 60대에 접어들고 21세기가 시작된, 인생의 중대한 갈림길에 있는, 시작이면서 동시에 끝에 서 있는 나에게 전환이 어떤 모습으로 다가오며 어떻게 생각되는지에 관한 책이다. 이 이상한 텅 빈 상태를 나는 중간지대라, 곧 림보Limbo라고 부른다. 바로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시간이다.

 

 

01. 인생의 전환점에서 길을 묻다.

-변화와 전화의 차이

 

[14]

변화에 저항하는 것은 가장 용서할 수 없는 죄이다 .-앤 머르 린드버그

 

[14]

무엇인가를 지속시키기 위해서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면 모순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변하는 것’만이 존재하는 모든 것을 보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무엇이든 끊임없이 재조장하지 않고서는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

=> 아이가 자라고,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 오듯이... 자연에서 우리는 변화를 배운다. 변하지 않는 자연은 없다. 사람도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끊임없이 먹고 배설하고 자라고 아프면서 또 자란다. 흐르지 않는 물은 고인물이 될 수도 있다.

 

[15]

우리가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어주기를 바라는 모든 것은 사실은 변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변화가 한창 진행될 때에는 매우 위협적으로 느껴지지만 아무리 견고하고 편안하고 필수적인 것처럼 느껴지는 일들도 한때는 새롭고 시도해 본 적이 없는 거북한 느낌을 주는 일들이었다.

변화란 앞으로만 진행되지는 않는다. 앞으로 가기도 하고 뒤로 물러서기도 하면서, 우리가 지키고 싶어 하는 일들과 함께 간다.

하지만 이런 변화가 필요한데도 사람들은 대부분 변화란 ‘마땅히’ 저항해야 하는 대상이라고 말한다. 왜 저항하냐고 묻는다면 사람들은 ‘모르는 것에 대한 공포 때문이며, 익숙하지 않은 영토를 탐험하기보다는 불편한 상황일지라도 현재에 집착하게 된다’고 대답한다. 또는 선천적인 이기심이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을 포기할 수 없게 만들거나 고정관념으로 인해 다른 가능성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나는 25년간 개인과 집단을 대상으로 전환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 연구해 오면서, 사실 사람들은 변화에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거부하는 것은 변화가 아니라 전환이었다.

=> ‘어색한 행복보다는 익숙한 불행이 낫다’ 라는 말이 떠오른다. 익숙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불안 때문에 사람들은 차라리 익숙한 불행을 선택한단다. 익숙하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새로운 탐험이라든가, 혹은 삶이 변화되기를 바라면서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관성의 법칙을 따른다.

 

[16]

변화란 상황을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전환이란 원래 있었던 일들을 진전시키고 그 결과를 경험하는 일을 의미한다. 무엇인가를 놓아버리고 다시 잡게 되는 그 중간에 이전의 방식도, 그리고 새로운 방식도 통하지 않는 창조의 ‘중간지대’가 있다.

전환은 변화에 이르렀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환이 없다면 변화란 기계적이고 피상적이고 공허한 것에 불과하다. 전환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또는 전환이 일어났다 해도 도중에 실패했다면,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감정적으로 처음 시작했던 시기로 되돌아가는 것으로 끝은 내게 된다. 그렇게 되면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 변화란 물리적이거나 외부적이다. 전환은 변화에 따른 심리적이다.

 

[17]

우리는 변화를 받아들일 수 없어서 전환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이 변했을 때 포기해야 하는 부분을 놓아버릴 수가 없어서 전환을 거부한다.

때로는 변화보다 오래 걸리기 때문에 전환을 거부하기도 한다, 그래서 림보limbo 상태에 남겨지기도 하는데, 사실을 대체하고 새로운 자신을 대체한다는 것은 점차 형태를 갖추어가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중간지대’라고 부른다. 오래된 것에서 새로운 것으로 곧장 진행되는 것을 변화라고 한다면, 전환은 중간지대라는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들이 전환을 거부하는 또 다른 이유는 현재와 과거의 고통스러운 경험속에서 일종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 있었던 상실의 고통스러운 경험이 ‘파장을 일으키고’ 다른 것, 더 오래된 것에 대해 동정심을 느끼며 같은 상태의 파장을 만들어낸다.

=> 어린 코끼리였을 때, 말뚝에 줄을 매달아 코끼리 목에 걸어놓고 어느 일정거리를 가게 되면 목이 조여서 더 이상 가지 못하게 한다. 어린 코끼리가 자라 큰 코끼리가 되었을 때 목에 걸어둔 줄을 놓아두어도 일정 거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이 예화와 같이 길들여진다는 것, 익숙해진다는 것이 과거와의 경험이 현재를 지배하고 있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다.

 

[18]

전환은 현재의 상태를 제거하면서 오래된 상처를 건드릴 뿐만 아니라, 현재가 이루어지기 전의 상태로 되돌아가라고 협박하기도 한다.

인생의 모습을 결정짓는 것은,

자서전 소제목으로 흔히 볼 수 있는 의식적인변화,

즉 아직 생소한 곳으로의 이주, 이혼 등이 아니라,

천천히 지속적으로 일어나면서도

드러나지 않게 두루 영향을 미치는 감정상의 변화들이다.

- 니딘 고디머

 

[19]

엄밀히 말하자면 변화가 일어나고 그 다음에 전환이 일어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종류의 전환을 ‘반작용의 전환’이라고 부르기로 하겠다. 아내가 죽은 후에 내가 겪었던 전환이 바로 반작용적인 전환이었다.

전환은 변화에 대한 반작용이고 그것은 변화를 통해 내가 도달한 길이었다.

그러나 다른 종류의 전환도 있다. 그것을 ‘발전적인 전환’이라고 부른다.

‘발전적인 전환’이란 외적인 변화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서 성장하는 과정에서 깃든 자연적이고 내재적인 요소에 의해 만들어진다. 청소년기에 겪는 전환은 발전적인 전환이다. 중년의 전환도 그렇고, 세상을 새롭게 경험하는 심오한 변화도 역시 발전적인 전환이다. 이러한 깨달음은 점진적으로 깨닫든 아니면 갑작스레 깨닫든, 인생의 어떤 지점에서라도 만날 수 있다.

 

[20]

살면서 어떻게 이지점에 도달하게 되었는지, 또 인생에서 진실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당황스러워 한다.

전환은 종결, 중간지대, 새로운 시작이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 종결의 단계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오래된 견해, 진실, 태도와 가치 자아상 등을 놓아버리게 된다. 이 단계에서는 잠시 저항이 있을 수도 있다. 또 자신을 설득하여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을 덮으려 할 수도 있고 포기하고 항복해야 할 때가 오면 슬픔과 분노의 감정이 일어나기도 할 것이다.

 

* 다음으로 우리는 새로운 것과 오래된 것의 중간지대에 놓이게 된다. 이 혼란스러운 상태는 우리의 삶이 마치 산산조각이 나거나 가망이 없다고 느껴지는 순간이다. 오래된 존재 방식에서 나오는 신호들이 뒤섞여 다가오고, 믿을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된다. 모든 것은 대혼란 상태에 있다. 하지만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느껴지는 때도 바로 이 상태이다. 그러므로 중간지대에 머무는 시간은 아주 창조적인 시간이라고 할 수도 있다.

 

* 마지막으로 새로운 태도와 자아상과 같은 새로운 견해와 현실을 파악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이렇게 했을 때 마침내 인생의 새로운 장이 시작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미래를 상상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일지 모르지만, 삶이 예전의 궤도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이제는 삶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새로운 감각을 갖게 되고 새로운 견해와 목적과 가능성에 대한 새로운 감정을 갖게 된다.

 

[21]

이때 삶에 변화를 주어야겠다고 마음먹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발전적인 전환이 실제로 외적인 변화로 이어지든 그렇지 않든 내부에서 뭔가 다른 것을 느끼게 만든다

사람들이 변화에 노출될 때 질병은 어김없이 사람을 공격한다. - 헤로도토스

전환의 과정은 존재론 같은 관념적인 형태가 아니라 경험에 의해 진행된다.

 

[22]

그 고통은 가르치는 일을 그만둘 무렵 종교의식처럼 책을 읽으며 내 삶의 한 부분을 종결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그 당시 나는 문학작품은 거의 읽지 않고 인류학과 심리학에 대한 책을 더 많이 읽고 있었다.

 

[23]

떨어져 나갔다가 재조직되는 그 사이에서 전환기에 놓인 사람들은 황무지로 내몰리게 되고 정신적으로도 황량한 상태에 놓이게 되는데, 반 게네프는 이것을 ‘중간지대’라고 불렀다.

=> 황량함, 황무지면 정신적인 혼란의 시기다. 반 게네프의 중간지대, 윌리엄 브리지스의 림보상태, 내가 이해한 바로는 창조를 위한 혼란의 시기이다.

아놀드 반 게네프는 종교의식을 ‘통과의례’라는 말로 나타냈고, 이런 모든 의식들은 오래된 정체성으로부터 개인이 자유로워지는 방법과 새로운 정체성을 찾는 방법들을 알려준다. 이런 상징적인 경험들은 자신이 속했던 이전의 세계와 그곳에서의 정체성에서 떨어져 나오는 의식인 종결과 함께 시작된다.

 

[24]

성년식을 젊은 사람이 막 들어서려고 하는 성인의 삶을 소개하는 의식 정도로 생각하지만 반 게네프는 이런 발전적인 전환은 그들이 떠나려고 하는 청소년기를 완전히 버려야만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음을 지적했다.당신은 아무것도 갖고 갈수 없다’는 말은 죽음만이 아니라 모든 인생의 전환점에 대해 비유적은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전환의 시점에서 종결을 짓기 위해서는 먼저 가지고 있는 것을 버려야 한다. 새로운 것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오래된 것을 포기해야 한다.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학습을 방해한다.”

-프랑스의 위대한 과학자 클라우드 베르나르

=>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이 학습을 방해할 수도,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기초지식과 지혜를 불어넣어 줄 수도 있다. 어떻게 적용하는냐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다.

마흔살의 나이로 가르치는 일을 그만 두었을때 나는 소위 중년의 전환이라고 하는 인생의 ‘틈’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부족들이 의식을 지내는 종결, 중간지대, 새로운 시작이라는 세 단계를 통과하고 있었다

=>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는 전단계를 마무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새로운 시작을 할 때 발걸음도 가볍다.

 

[25]

교육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지식을 습득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지식을 버리는 데 있다.

– G.K.체스터든

 

우리는 하나를 마치면서 또 다른 하나를 시작한다.

가르치는 일을 그만두길 원하는 마음이 강할수록 오래된 일상과 교실에서 이루어졌던 익숙한 주고 받기가 그리워졌다. 동료들과 수업에 대해 이야기하고 학생들과 이야기를 주고 받는 것도 그리웠다. 내가 누구인가를 분명히 느낄 수 있게 해주었던 직업이 그리웠던 것이다

 

[26]

“나에게서 직업을 빼놓고 이야기한다면 내가 누군지 도대체 모르겠어요.”

 

[27]

의식의 생각은 새로운 정체성을 창조하는 것이고, 끝과 상실의 느낌들은 단지 새로운 정체성의 공간을 창조하는 바닥다지기 작업과도 같은 것이었다.

1974년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소로의 <월든>과 자연과 밀착해 사는 삶의 방식에 완전히 빠진 것도 이사를 결정하게 된 이유 중 하나였다. ‘단순하게, 단순하게, 될 수 있는 한 단순하게’라고 그는 말했다. 장작난로로 난방을 하기 시작했다. 나무를 쪼개서 연료로 사용하고, 식구들이 먹을 야채는 직접 길렀으며, 모든 것을 재활용하고 또 재활용했다. 나의 삶은 단순해지기는커녕 점점 더 복잡해졌다.

이전의 것을 마치고 바로 새롭게 시작할 수 있으려면, 새로운 시작 전에 이전의 것을 마쳐야 한다.

 

[28]

부족의 의식에서 보면 황무지는 개인의 내부와 주변 모두에 존재하고 있다. 즉 젊은이들은 외적인 황무지에서 시간을 보낸다. ‘삶’과 ‘정체성’에 의해 이루어졌던 질서가 사라질 때 내적으로 형태가 없고 혼란스러워지기 때문이다.

 

[29]

나는 ‘통로Passage-Ways’라는 1인 교육기업을 만들고, ‘인생의 전환점에서’라는 이름으로 주말 세미나를 열기 시작했다.

 

[30]

아, 시든 잎이 나무에서 떨어지듯 나의 죽은 생각들도 내게서 떨어져 나가기를.

- 앙드레 지드

 

[31]

겉으로는 평상시의 생활을 계속하고 있었다. 하지만 전환기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불과 몇 년 전까지 가르치는 일과 교외에서의 생활을 사랑하던 그 사람은 아니었다.

나는 그동안 완전히 혼자였고 혼란스럽다고 느꼈던 감정들을 견뎌냈다. 무엇을 해야 할지 혼란스러워하면서, 2년동안 ‘아무 곳에도 속하지 않고’ 살아갔다.

 

[32]

그러나 동시에 이따금씩 비추는 어렴풋한 등불에만 의지한 채 내 삶의 어두운 통로를 더듬어 내려가고 있었다. 여전히 왜,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그리고 내가 가려고 하는 곳은 어디인지 알지 못해서 낙담하고 있었다. 심지어 전환이 내적으로 신뢰할 수 없는 것, 또는 변하는 것에 대한 신호임에도 불구하고 이 변화를 겪는 것에 대한 죄의식까지 느끼고 있었다.

 

[32-33]

그러나 사실 그 시절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다. 전환기에 뛰어들기 이전에 내가 느꼈던 상대적인 안락함이나 안전함을 되찾는 방법을 연구하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다.

 

[33] 지금 전환기에 있는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하는 일들이 실제로 새로운 것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라고 해도, 그들은 시계를 돌리고 싶어 하며 그런 상상을 한다는 것 또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것이다

갈 곳이 정해져 있지 않다 하더라도 이별의 시간은 다가온다.

- 테네시 윌리엄즈

 

[33-34]

전환기에 놓인 사람들이 공통점은 종결의 단계에 와 있다고 생각하는 동시에 당황스러움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이다. 종결은 다음의 경험들을 겪으면서 신호를 보내기 시작한다.

* 배우자의 죽음과 같은 갑작스럽고 예상하지 못했던 사건이 기분 좋게 살았던 지난 삶을 파괴해 버릴 때

* 한 때는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것 같은 상황이나 관계가 말라붙어 바닥이 드러났을 때

* 잘 진행되던 일이 예상외로 악화되어 버릴 때

* 변함없이 믿음을 주던 사람이나 단체가 사실은 믿음직하지 못한 존재였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현실 감각이 산산이 부서져버릴 때

* 일어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상황에서 평범한 삶의 기능을 할 수 없을 만큼 혼란스럽고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노출되었을 때

 

[34-35]

반드시 이루어야 할 내적인 포기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최선의 이해이다.

놓아버려야 할 것은 직업이나 인간관계 같은 것이 아니라 집착하는 희망, 두려움, 꿈과 믿음 같은 것이다. 직업이나 인간관계 같은 것들만 놓아버린다면 즉시 다른 대상을 찾게 되고, 그 대상에 대해 여전히 똑같은 희망, 두려움, 꿈과 믿음을 갖고 연연해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외부의 상황을 완전히 끝내지 않고도 내적으로 놓아버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35]

상실은 내적인 것을 놓아버려야 할 시간이라는 것을 알리는 가장 적합한 신호이므로, 전환기에 놓인 사람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내가 무엇을 놓아버릴 때란 말인가’ 하는 의문을 갖는 것이다. 내부로부터 오는 메시지를 놓쳐버린다거나 외적인 변화가 전부인 양 생각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36]

초라한 행색을 한 나룻배 주인은 나루터에서 만난 싯다르타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건네주었소. 사람들은 강물을 단지 방해물로만 여겼소. 그들은 돈을 벌기 위해, 사업을 하거나 결혼 또는 성지순례를 하기 위해 여행하는 중이었는데, 가는 도중에 강물을 만났고, 빨리 건네주기 위해 뱃사공이 있었지요. 그 많은 사람들 중 극소수의 사람들은 강물을 장애물로만 생각하지 않았소. 그들은 강물의 목소리를 들었고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소. 강은 그들에게도, 나에게도 소중한 것이었소.”

변화는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지만, 전환인생이라는 무대에서 한 막이 끝날 때마다 일어나며, 동시에 다른 무엇인가가 무대 옆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37] 전환이란 이전의 생활을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여기거나 그 소중함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 생활을 놓아버리는 것뿐이다.

당신의 옛날은 끝이 났다. 그것을 지속하고 이전의 삶을 재건축하거나 회복하고 싶어도 지금은 놓아버릴 때이다.

많은 사람들이 ‘끝났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은 인생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혼을 하든, 사표를 내고 직장을 떠나든, 배움을 포기하든, 고국을 등지든 이러한 모든 행동은 관계를 끊는 것이다. 끝이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단념의 가장 중요한 개념은 그 사람 자체가 아니라 그 사람과 나누었던 ‘삶’을 끝내는 것이다.

 

[37] 변화와 전환의 관계가 복잡해지는 이유는 사람들이 주관적인 현실과 정체성을 놓아야 하는 일을 하기 위해 외부의 변화를 이용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전환을 겪고 싶지 않기 때문에 변화를 만든다.

 

[38]

결혼은 포기하지만 결혼을 깨뜨린 파트너에 대한 행동은 그대로 유지한다. 또는 직장상사가 돌봐주는 역할에 관심이 없다는 이유로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을 돌봐줄 누군가를 찾아 헤맨다. 또는 ’흥미로운 사람들‘이 없다는 이류로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하지만 이사 간 마을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알게 될 뿐이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은 항상 전환기에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사실 그들은 전환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변화에 빠져 있는 것이다. 이는 다른 중독 증세와 마찬가지로, 살면서 일어나는 실제적인 문젯거리로부터 도망치는 것이다.

놓아버리기 가장 힘든 것은 내적인 진실이다.

톨스토이는 사람들이 놓아버리기를 거부하는 것은 그들의 ‘진실’과 ‘결론’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또 이것을 ‘견해’ 또는 ‘가정’ 또는 ‘현실’이라고 생각했다.

 

[39]

믿음을 회복하고 열정을 재창조하려고 할 때

사람들은 삶의 완성된 순환고리에서 떨어져 나와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믿음과 사랑도 놓아버려야 한다.

-아나이스 닌

 

[40]

정말로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한 동안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하다가 마침내 문제는 바로 ‘배운다’는 개념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가장 흔한 방법인 말은 정보의 취득과 관계가 있다. 한 번 정보를 습득하면 그것으로 끝난다. 이해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삶을 안다는 것은 다를 수 있다. ‘진실’ 혹은 다른 무엇이라고 부르든 간에 배우는 것은 ‘다르지만 비슷한 내용 속에서 그들을 다시 발견하는 것’을 포함한다. 그럴 때 본질적인 유형은 의식 속에 강한 인상을 남긴다.

인생은 관대하고 우리에게 다른 시각을 가져다준다, 그 각도는 항상 다르다. 때때로 그 광경의 각도가 우리의 마음을 깨뜨린다.

 

 

02. 전환에 대해 다시 생각하다

-전환점의 재발견

 

[41]

삶과 죽음이라는 불멸의 존재 사이를

인간은 얼마나 오가는가.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41]

2년이 넘게 매일매일 홀로 투병하면서, 단순히 아픈 사람의 차원을 넘어 질병이 전해 주는 커다란 계획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 발견으로 인해 자신의 내부에 숨어 있던 깊은 곳을 발견하게 되었다.

 

[43]

육체를 떠나는 기분은 어떤 것일까? 나는 56년간 그 안에서 살아왔고 육체는 나에게 너무나 잘해 줬는데. 설사 내가 여전히 나인 채로 존재하고 활동한다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다 해도 이 몸이 없는 나는 도대체 누구일지 알 수가 없어.

 

[45]

아내는 치명적인 질병이 ‘죽음’이라고 부르는 커다란 전환점으로 곧장 밀고 가는 것이 아님을 깨닫고 있었다. 그것은 시작과 끝이 항상 함께하는 길이었다. 그 길을 가는 동안 우리는 끊임없이 스스로 생각했던 자신의 모습과 예상했던 삶을 놓아버려야 한다. 이전의 삶을 되돌릴 수도 없고, 마찬가지로 새로운 삶을 편안하게 받아들이지도 못하는 중간지대에 놓이게 된다. 변화 이전의 자신을 놓아버리고 중간지대에서의 경험을 존중하게 된다면 좀 더 풍부하고 놀라운 삶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57-58]

세 시간 후 내가 일어났을 때 밖은 아직도 어두웠지만 동트기 전의 새소리가 들려왔다. 곧 아내의 거친 숨소리가 들리지 않는 사실을 알았다. 그녀의 가슴에 손을 얹어보았다. 아내의 몸은 따뜻했다. 숨을 거둔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렇게 그녀는 가버렸다. 아주 멀리 떨어진 그곳에서 다른 중요한 일을 시작하기 위해서.

 

[58]

모든 사물은 변화에 의해 생겨난다는 사실에 주목하라.

그리고 우주는 그 무엇보다 변화를 사랑하는 본성을 지니고 있다.

당신은 이에 적응해야 한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61]

아내가 ‘중간지대’라고 부른 그곳은 두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한편에서 보면 혼란스럽고 이해할 수 없고 끔찍하기까지 했다. 다른 편에서 보면 빙빙 돌아가고 있는 커다란 원 모양 놀이기구의 중심처럼 고요했다.

중간지대에 머물렀던 시간은 아내가 이전에는 갖지 못했던 통찰력을 갖게 해주었다. 이전에는 전혀 쓰지 않았던 말과 글을 사용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아내에게 공포를 주기도 했다.

중간지대는 이미 경험했던 어느 것보다도 큰 친밀함과 기쁨을 보장해준다.

 

 

03. 방향은 우리에게 무엇을 주는가

-전환점의 경험

 

[62] 누구나 훌륭한 인물이 되길 원한다.

그러면서도 성장의 수고는 하려들지 않는다.

- 괴테

전환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은 우리가 변화에 익숙해지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전환은 이전 상황에 맞게 행동했던 방식들이 어떤 것이었든 간에 새로운 상황을 성공적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에 맞게 살아갈 수 있도록 온 힘을 기울이게끔 새로운 방침을 알려준다.

 

[63] 새로운 나라나 도시로 이사를 가거나 새로운 이웃을 맞는 것도 전환이고, 오래된 습관과 기대를 바리고 새로운 상황에 맞는 새로운 방법을 개발하는 것 또한 전환에 포함된다.

 

[64]

중요한 것은 어떤 순간에도 우리가 이룰 수 있는 것을 위해

우리 자신을 희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찰스 듀보-

새로운 방향을 설정하는 것 만큼이나 그 세계를 이해하고 실질적으로 참여하며 전환에 전적으로 초점을 맞추는 일이 중요하다.

 

[65] 상황이 변하면 사람들은 그것을 따라잡기 위해 전환을 시도한다.

뒤처지다가 전력질주로 따라잡는 판에 박힌 상황에서 전환은 느린 행동에 가속도가 붙게 만든다.

성경에 이르기를, 우리가 아이였을 때는 아이처럼 이해하고 생각하고 보았지만, 어른이 되었을 때는 ‘어린애 같은 방법들을 무시했다’고 말한다. 사실 많은 사람이 아이와 같은 생각과 느낌의 패턴들을 갖고 있는데도, 시간이 흐르면서 자동적으로 그런 것들을 잊는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것들을 버렸거나 전환의 경험으로 인해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왜 우리는 매일, 매분마다 조금씩 변화할 수는 없는 것일까? 변화가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 왜 우리는 변하지 않는 것일까? 그 대답은, 우리가 물질적인 존재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외부적 변화에 따라 우리의 모습을 조금씩 매번 수정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67] 끊임없이 업데이트되는 프로세스에 발맞춰 생애의 모든 요소들에 끊임없이 질문을 한다면 에너지가 소모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흔한 표현이지만 매일 매일이 남은 생애의 첫 번째 날이라 하더라도 매일 아침 침대에 누워 처음부터 다시 현실을 해석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매시간 삶을 지워버리고 다시 시작하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는다. 무엇인가 잘못된 점이 입증되기 전까지는 세계와 우리에 관한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살아간다. 다행히 우리는 그것들을 포기하거나 다른 것으로 대체해야 할만큼 외적인 현실을 인식하기전까지는 잘 지낼 수 있다.

대부분 어떤 변화가 오기 전까지, 그리고 내부세계가 삐걱거리기 전까지 오래된 현실을 고수하고 있다가 그 이후부터는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내가 시골로 이사한 것이 그러한 것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내면의 삶을 실현시킬 수 있는 ‘시기적절한’ 혼란이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나는 그 당시 하고 있는 일에서 더 이상 의미를 찾지 못하고 몇 년간 새로운 것을 찾으려고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하고 있었다. 나는 ‘전환의 부족’ 상태였고, 따라서 좀 더 심오하고 절실한 전환을 원하고 있었다.

 

[68]

창조성의 원천에 접근하도록 해주는 전환의 기능이 없다면 자기계발이나 확신은 없을 것이다. 부족 중 젊은 구성원이 단식하고 성가를 부르며 기도하는 등의 혼란 상태에 빠졌을 때, 사람들은 그가 신의 부름이나 조상의 영혼, 혹은 토테이즘의 대상인 동물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전환의 경험을 한다는 것, 특히 전환의 단계 중에서 중간지대에 놓이게 되는 것은 깊은 창조적 에너지와 추진력을 이끌어내는 계기가 된다고 할 수 있다.

비전 퀘스트(영계와의 교류를 구하는 의식, 북미 인디언 부족에서 행해진 남자의 의례) 같은 의식을 실행하지 않는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는, 창조적인 ‘음성’에 가까이 간다는 개념에 대해 우리의 세계나 전통과 거리가 있다고 느낄 것이다. 하지만 신약과 구약에는 전환기에 놓이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야곱은 삶의 전환점에서 우연히 천사와 씨름을 하고 상처를 입게 되었다. 그리고 내적인 창조적 매개체의 역할이 그러듯이 이 일은 야곱을 변화시켰다.

 

[69] 어떤 일이 마무리되고 난 후 삶의 방향을 변화시키는 많은 결정들은 중간지대에서 이루어지다, 단 이것은 삶이 새로운 형태를 지니기 전에 이루어진다.

중간지대에서 우리는 모든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영역에 들어서게 된다. 전환을 일으킨 변화의 요인에 상관없이 무엇인가를 생산해 낸다는 것을 의미하며, 중간지대는 절대적인 가능성의 세계를 열어준다. 많은 사람들이 계획을 뒤엎어 혼란스러운 상태에 빠지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과를 예상할 수 없는 변화 속에서 가능성은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할 때, 삶의 다음 단계에 들어서고 발전의 새로운 장을 여는 발단을 만드는 기회를 갖게 된다. 새로운 방향제시, 개인 성장, 자기 확신과 창조성, 이 네 가지 요소들은 모두 우리가 일을 수행했던 방식과 그동안의 경험들을 버리도록 한다. 그렇게 되면 잠시 방황하기도 하지만 내부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듣고 통찰력과 추진력의 문으로 들어서게 된다. 그때 기회의 양식들과 주변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사건들 속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게 된다.

통과의례를 행하는 동안 많은 부족들이 취하는 방식들은 때맞춰 일어난 우연한 사건들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고 비중을 두는 식으로 진행된다. 새로운 방향 제시, 개인 성장, 자기 확신, 창조성을 통해 새로운 주제나 생각으로 삶이 분석되고 개조된다.

 

[70]

어떤 정신을 갖고 살아가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다.

자신만을 위한 삶은 그 자신뿐 아니라

관찰자까지도 지루하게 만든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칼 구스타프 융

 

[71]

종교 역사학자 엘리아데는 순례의식이 ‘신성’이라고 부르는 세계에서 일어난, 시간을 초월한 상태의 참가자들과 관련이 있다고 부족들이 믿는다고 설명했다. 중간지대에서는 쉽게 신성과 만날 수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은 종교에는 정신적인 것과 신성한 것이 함께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세습을 옹호하고 유지하는 제도상의 전통과 믿음의 유기적 조직체로 일컬어진다. 그러나 엘리아데가 말하는 신성의 영역은 종교적 형태에 속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연적이지만, 그 자체로 살아 있는 특질을 갖고 있다고 생각된다. 자연 안에 특별한 통관점, 시간의 순환 혹은 일생의 단계로 들어가 볼 수 있는 것으로, 세계를 경험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이런 접근 방법은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전혀 다른 방법으로 세계를 이해하고 바라보는 시점으로 넘어가는 영적인 출입문과 같다.

 

[73]

전환의 다섯 가지 기능 외에 이 모든 것을 통합하는 여섯 번째 기능이 존재한다. 전환은 우리를 새롭게 태어나게 한다. 그것은 마치 오래된 현실이 무너지면서 삶의 형식

속에 갇혀있던 에너지를 방출하게 하여 순수한 본래의 상태로 전환하게 하는 것이다.

 

[74]

모든 시작은 하나의 결말이다. 모든 시작은 어떤 것으로 귀결된다.

-폴 발레리

고대의 전통은 많은 방법으로 우리가 잊고 지내온 진실을 담고 있다. 그 진실은, 새롭게 태어난다는 것이 휴식을 취하거나 배경을 바꾸는 것, 삶에 어떤 새로운 것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결과가 무엇이든 간에 아무나 모든 것을 차지할 수 있고 모든 것이 가능해졌을 때 혼돈의 임시 상태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75]

새롭게 하는 것은 전환을 통해서만 가능하며, 전환은 항상 얻게 되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가진 만큼 놓아버리게 한다.

우리가 놓아버려야 할 시간이 되었다는 것 외에 다른 것을 발견하기도 전에 삶이 정해 놓은 종결의 단계로 들어서게 된다.

그렇다면 새롭게 태어나는 전환의 과정을 통해 얻는 것 중 놓아버려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만일 내가 겪은 것처럼 그 결과가 정신적인 상실을 동반한다면 특별한 관계를 버려야 한다. 그러나 내가 깨달은 것처럼 우리가 놓아버려야 할 시간이 되었다는 것 외에 다른 것을 발견하기도 전에 삶이 정해 놓은 종결의 단계로 들어서게 된다.

개인의 전 생애는 오로지 태어남의 과정이다.

실제로 사람들이 태어나기 전에 죽는 비극적 운명을 가졌을지라도

우리를 죽을 때 비로소 완전하게 태어나는 것이다.

- 에리히 프롬

 

[75-76]

변화 그 자체는 전환이 일어날 것을 경고한다. 변화는 일상적인 삶을 살면서 ‘장애물을 제거’하는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발전적인 전환이라고 부르는 내적인 절차 속에서도 전환의 여섯 가지 기능이 일어나다.

내 경우에는 30대 후반, 그토록 헌신적으로 일해 왔던 교수라는 직업을 그만두게 되면서 서서히 이런 종류의 전환기에 처해있음을 알게 되었다.

 

[77] 현실과 전환이 진행되는 ‘그 세계’는 처음에는 딱 들어맞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를 제한하고 속박하기 시작한다. 이런 방법들이 점점 구식이 된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면서 그것을 고정시키는 방법을 찾고 그들을 있던 곳으로 되돌려놓으려고 애쓴다. 또 뭔가를 더할 수 있거나 다르게 만들 방법을 상상해 보기도 한다, 많은 시간과 에너지, 돈을 들여 그런 시도를 해보지만 결국 왕의 말과 신하를 전부 모은다 하더라도 깨진 험프티를 다시 돌려놓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이런 경우에 사람들은 삶을 대비하는 일과 현실의 구체성에 싫증을 내고 스스로 끝을 내기도 한다.

 

[78]

변화는 그만의 이유로 일어난다. 하지만 변화로 인해 중대한 전환이 일어나는 것은 새로운 방향제시나 개발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줄곧 전환과 싸우면서 자신의 운명을 탄식하기도 한다. 또 어떤 이들은 놓아버리는 것이 결코 패배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하기도 한다.

전환의 중심에 자리한 신비함과 마주쳤을 때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전환 속에 있을 때 삶이 우리에게 잡고 있던 것을 놓을 때가 되었다’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이는 중간지대에 들어서서 ‘혼돈’이라고 부르는 순수한 에너지 상태에서 나오는 시간, 새로운 정체성, 새로운 존재방식을 창조하거나 발견할 때가 되었다는 의미이다.

 

[80]

삶은 순탄하게 편의를 제공하지 않는다.

씨앗은 외벽을 파괴하고 나오지 않으면 자라나 열매를 맺지 못한다.

-플로리다 스콧 맥스웰

비록 전환이 어떤 특별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희망에서 이루어진 변화의 결과라 할지라도, 전환은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우리를 바꾸어 놓기도 한다. 전환은 그 자체가 의지를 갖고 있고 우리는 미리 알지 못한 채 전환을 겪게 된다. 이것은 모두 바람직한 변화이며, 마음속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하며 행동한다. 하지만 이것들은 또한 지금까지의 삶을 놓아버리도록 강요하기도 한다. 상실감은 전환의 당연한 결과이다

 

[81] 전환이 지금 있는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주는 것 이상임을 알게 된다면, 그 다른 곳은 전환의 여정이 가진 창조적이고 발전적인 기능에 의해 이루어진다.

 

[83]

각 인간의 삶은 그 자신에게 부여된 길이다.

아무도 완전하고 완벽할 수 없다.

미숙한 사람도, 지적인 사람도

각각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헤르만 헤세

 

[84]

전환에 접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내 인생에서 놓아버려야 할 시기가 언제인가?’하는 의문을 갖는 것이다.

성장, 개선, 변화 속에서만 진실한 안정을 찾을 수 있다.

- 앤 머로 린드머그

 

[85]

통과의례와 비전 퀘스트를 수행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고, 고대 신전의 의사가 탐구자들을 돕듯이 그들을 도울 수 있을 것이다.

 

[86]

그러나 기다리던 연락은 오지 않았다. 며칠 뒤 나는 그 위원장으로부터 다른 사람을 뽑았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 소식은 모든 희망과 자존심을 철저히 뭉개버렸다

하지만 어느 날 나는 깨어났고, 비어 있는 일정표로부터 손을 떼지 못할 것임을 알아차렸다. 나는 전환 그룹들을 바탕으로 한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해서 <전환>이라는 책을 썼다.

그 책은 24만부가 팔렸다. 나의 생각은 분야에서 인정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계획의 좌절로 기인한 결과였다. 꿈이 좌절되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나를 후원하는 단체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을 것이다. 계획이 제대로 이루어졌더라면, 나는 생활비의 필요성과 작지만 무난한 봉급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내 안의 악마와 계속해서 싸우지 않았을 것이다.

 

[87]

내가 1974년에 겪은 삶의 큰 변화는 두 가지 의문점을 남겨주었다. ‘왜 전환은 그렇게 어려운가?’ 하는 것이고, ‘일정한 직업 없이 어떻게 생활해 나갈 수 있을까?’

모든 사람의 상태는 사람이 만들어낸 질문에 상형문자로 된 해결책이다. 사람들은 그것이 진실이라는 것을 인지하기 전에 그것을 삶이라고 여기고 살아간다,

경험은 부서지기 위한 거친 상형문자다.

 

 

04. 포기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단념의 미학

 

[89]

끝을 맺는 것은 시작하는 것과 같다.

끝나는 곳에서 우리는 시작한다.

- T.S.엘리엇

 

[90]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심정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 경험이 매우 특별한 일이라는 사실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아내가 죽은 이후로 하루하루는 완전히 텅 빈, 그러나 완전히 꽉 차 있는 시간들이었다. 삶은 공허했지만, 할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많은 시간 동안 나는 처리해야 할 일들 사이에서 몽유병환자처럼 아무 생각 없이 지냈다. 생각이 너무 마비된 나머지 가끔은 주변에서 무슨 일들이 일어나는지 까맣게 잊고 지내기도 했다. 마치 피노키오가 되어 거대한 고래에게 삼켜진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 어둠 속에서 나는 ‘내 인생’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과 단절한 채 지냈다.

 

[95]

길고 까만색의 아름다운 까마귀 깃털을 발견했다. 한 번도 깃털이 떨어진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그것은 나를 위해 남겨놓은 검정색 메모지처럼 보였다. .. 나는 깃털을 주워 뺨에 대 보았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야구모자 뒤에 깃털을 꽂고 산책을 하기 시작했다. . 그곳에 또 다른 까마귀 깃털이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걸음을 멈추고 그 깃털을 집어 들었다.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에서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 그 깃털을 먼저 주웠던 깃털 옆에 꽂고는 걸음을 재촉해 걸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궁금해졌다. 깃털들은 날아가는 새가 막 떨어뜨린 것처럼 커다랗고 먼지 하난 없이 반짝거렸다. 이전에 산책할 때는 이런 일을 한 번도 겪은 적이 없었다.

‘혹시 그들이... ’

이런 바보 같은 생각은 그만두는 것이 나았다. 그 깃털을 아내가 남긴 메시지라고 생각하면 정말 절망스러울 것이다.

 

[96]

사별의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이상한 행동을 한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내가 이런저런 파멸의 징후들을 무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중요한 것은 이미 깨어진 관계를 다시 회복하기 위해 애쓰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해 보려는 나의 마음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의식의 저 깊은 곳에서 나는 온전하게 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놓아버린다는 것은 잡고 있던 것을 놓는 행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깨어진 관계를 다시 회회할 수 있느냐 없느냐와는 상관 없이 길고 긴 탐험의 과정이다.

당신은 간단해 보이는 선택을 한다.

남자를 고르거나 직업 또는 이웃을 고르는 것이 그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선택한 것은 남자나 직업, 이웃이 아닌 당신의 인생이다.

- 제서민 웨스트

 

시간이 흐르면서 끊어진 것은 단지 관계가 아니라 관계를 연결해 주는 희망, 공포, 꿈과 믿음이라는 것이 분명해졌다.

 

[97]

사람이나 관계 그 자체만을 놓아버리고 그것에 포함되어 있는 내적인 결합 등은 그대로 놓아둔다면, 결국은 다른 사람이나 관계를 찾아 똑같은 희망과 공포, 꿈, 믿음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그것은 변화를 겪는 것이지 전환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사람들은 시작한 곳으로 돌아가서 끝맺기를 기대하기 때문에 전환을 경험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98]

그때까지 그녀의 존재가 나를 얼마나 성장시켰고 돌아보게 했으며, 좀 더 믿을 수 있게 만들었는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의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아내의 죽음으로 인해 알게 된 두 번째 사실은, 아내와 처음 만났을 때는 외롭고 고립된 청년이었던 내가 결혼을 통해 성장했다는 것이다. 아내의 죽음으로 오랫동안 알고 있던 단 하나의 친밀한 관계를 맺는 방법을 잃었다. 아내는 천성적으로 세상에 ‘무심하게’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불평하기도 했다. 많은 부분을 아내와 감정적으로 공유하지 않았기 때문에 항상 우리 주위에는 긴장감이 맴돌았다.

 

[99]

나에게는 그녀의 죽음이 곧 현실의 시간으로 다가온 것처럼 여겨졌다. 나 자신을 반만 믿게 된 상실감은 사랑하는 사람을 갖게 된 유일한 경험이었다. 따라서 아내의 죽음은 우리의 관계뿐 아니라 다른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는 능력까지도 없애는 일이었다. 아내의 사랑뿐 아니라 사랑할 수 있는 능력까지 없애는 일이었다.

아내가 떠나면서 내가 경험한 외로움과 영원히 나를 사랑해 줄 수 있는 단 한 사람(나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이 죽었다고 느꼈을 때 느낀 치명적인 외로움을 구별하는 데에도 마찬가지로 시간이 필요했다. 아내는 나와 인간을 연결하고 나와 내 자신을 연결해 주는 그 자체였기 때문에 아내를 잃은 것은 처음에는 넓고 무서운 세상에 버려진 채 홀로 모든 것을 막아내야 하는 어린 시절의 환상같이 생각되었다... ‘마치 추방당한 기분이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

 

[100]

아내가 죽자, 일상적인 현실에서 느끼고 흥분할 수 있는 연결고리와 단단한 기반을 잃은 것 같았다.

 

[101]

우리가 잃은 것은 현재의 자신의 모습이 되어야 했던 이유이다.

과거에 충실한 우리의 마음은 내일의 즐거움이

오로지 오늘 무엇을 이루느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를 거부한다.

파도의 아름다운 물결선은

앞서간 파도가 물러나 사라질 때 드러난다.

- 앙드레지드

 

[103] 상실의 주요한 네가지 측면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 이탈 : 우리가 잃은 것으로부터의 분리

* 비 동일화 : 상실로 인해 오래된 정체성이 파괴되는 것

* 각성: 생각 없이 받아들인 현실이 상실로 인해 박탈되는 것

* 방향감각상실 : 우리가 가진 정체성과 함께 나눈 현실을 모두 잃은 결과

느끼는 당황스러움과 상실감

심지어 언제가 중간지대로 옮겨가 다섯 번째 단계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다섯 번째 단계인 ‘발견’은 새로운 인생, 새로운 정체성과 견해를 맞이하는 단계이다.

 

[104]

또 다른 단계를 거쳐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당신은 배신이라는 문제와 부딪치게 될 거 같군요. 부인의 죽음 후에 겪을 수 있는 새롭고 의미심장한 일로 인해 당신은 혹시라도 아내를 배신하는 것은 아닌지 혼란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나는 그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했지만, 그의 사무실을 나서면서 느꼈던 불편함 때문에 그의 말이 옳았다는 것을 알았다.

 

[104-105]

그런 힘든 작업을 애도하게 만든 부분은 우리와 죽은 이들 사이의 끈이었다. 그 끈은 밝은 면과 함께 어두운 면도 함께 짜여 있다. 오래된 분노와 상처는 상대방을 애도하는 일을 두 배는 힘들게 만든다.

상실감은 이렇게 복잡한 경험이었다. 의미가 겹치고 겹쳐 있었다. 꿈과 기억 속에서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것이 다시 기본으로 돌려보낸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일이다. 애도하는 일을 끝내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 또한 의심의 여지가 없는 일이다. 과거의 상실에 대해 애도하지 않고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나중에 그 상실감과 다시 만나게 된다는 것 또한 그렇다. 매장하는 것보다 애도하는 시간이 더 걸린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 창세기 3장 19절

 

[106]

유해를 안치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유해는 반드시 집 밖에 두어야 하고 또 아름다운 곳에 두어야 한다.

 

[107]

숲 속에는 작은 언덕이 숨어 있었는데 언덕 꼭대기에는 테두리가 깨진 바위가 있었다. 나는 이유도 모른 채 이곳이 바로 내가 찾던 곳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죽음은 남아 있는 자의 몫이 더 많아지는 일이다.

-토마스 만

 

[108]

다섯 살 된 손녀 타일러는 나무 밑에 앉아서 어른들이 하는 일을 쳐다보고 있었다.

타일러가 위로 손을 올려서 손가락을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옆에 앉으며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할머니한테 손을 흔들었어요. 할머니는 저 위, 나무 위에 계세요. 할아버지도 알고 계시나요?”

 

[109]

슬퍼할 시간이 부족한 자는 슬픔을 풀어버릴 시간도 부족하다.

- 세익스피어

 

[111]

연대감이 해결해 줄 수 없는 외로움이었고, 동반자가 낯설게 다가오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혼란이라는 말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낸 말이다.

- 헨리 밀러

 

[113]

인생의 한 부분이 끝났을 때 자동적으로 전환의 한가운데 서게 된다. 미리 예정된 결과는 일을 좀 더 쉽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것에 관계없이 전환을 맞게 된다. 결과가 없다면 스스로 결과를 만들어내야 한다. 이것은 중간지대에서 해야 할 일의 하나이고 전환과 창조 사이에 연결이 왜 그토록 중요한가 하는 이유이다.

사람들은 가끔 일이 잘되어 가는지 알 수 없을 때 불평을 늘어놓는다.

사람들이 동의한 한 가지는 앞으로 다가올 일이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자신의 것을 놓아버리는 것은 특별히 힘든 일이라는 것이었다.

 

[113]

‘병과 죽음은 잘못이 아니다.

이것들도 이수 과정의 하나일 뿐이다‘

-람다스

 

[114]

편지를 끝내기 전에 융 전문가 엘리자베스 하우즈가 했던 이야기를 해볼게. 이 말은 내게 희망과 위안과 불편함을 주었지.

신은 상처를 만들었다.

신은 상처이다.

신은 상처를 입었다.

신은 상처를 치료했다.

 

[114-115]

비관주의는 모든 가치를 과거에 두고 ‘앞으로 좋은 일은 하나도 일어나지 않을 거야 모든 가치는 예전의 방식에 있었어’ 라면서 불확실한 모든 것 들로부터 반동적 도피를 하려는 것이다.

반면 낙관주의는 모든 가치를 미래에 두고 불확실한 모든 것들로부터 진보적 도피를 할 것을 주장하며 ‘현재를 넘어서는 즉시 모든 것이 좋아질것야 이것은 내가 끊임 없이 나에게 말했던, 더 나은 운명을 맞이하는 일이야’ 라고 속삭이는 것이다.

 

[115] 하지만 비관주의든 낙관주의든 이것은 모두 현재를 부정하고 도피하는 행동이다. 어쩌면 이들은 우리가 심하게 상처를 입었을때 필요한 의지처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어울릴 것 같다.

“희망이란 우리가 가는 길에 아주 좋은 동반자이지만

동시에 우리를 서서히 잘못된 방향으로 인도하기도 한다”

-헨리팩스 경

 

[115]

시작의 기술은 위대하다. 하지만 마침의 기술은 더 위대하다.

-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

 

[116] 죽음은 인생의 전환점에 해당하는 경험이다. 엘리엇의 비명에 써있는 것처럼 죽음은 때로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의 삶에서 죽음이 의미하는 끝은 오래된 것을 마감하고 인생의 새로운 한 장을 시작하게 한다.

 

 

05. 우리는 인생의 여러 단계를 거친다.

- 전환점을 통과하는 방법

 

[117]

나이는 여유롭게 다가오지도, 빠르게 다가오지도 않는다.

그보다는 황급히 이어진다.

-진 리스

그리고는 “1945년에 책이 나왔으니까, 이 사람이 스물네 살 때 처음으로 책을 썼군” 하는 식으로 추정해 본다. 내가 젊었을 때 이런 식으로 추정해 보는 것은 상대적으로 내가 어디쯤 와 있는지 되돌아보는데 도움이 되었다.

 

[120]

변화는 지리적인 이동이나 고등학교 졸업 또는 부모의 이혼들을 가리킨다. 전환은 학생들의 삶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돌아서는 것을 말한다. 돌아보면 그들은 변화를 전환을 유발하고 표시하는 것으로만 생각했던 것이다. 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그 일이 생겼을 때 왜 전환이 일어났을까? 어떻게 작은 변화에서 커다란 전환이 유발되는 것일까? 왜 전환은 삶의 중요한 순간에 금세 눈덩이처럼 커져가는 것일까?

 

[121]

어떤 책에서는 중년이라고 불리는 시기를 지나 한 단계 더 나아가 ‘성인발전’ 이라는 단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열다섯 살에 배움에 뜻을 두고

서른 살에 자신을 세우고,

마흔 살에 더 이상 흔들리지 않고

쉰 살에 하늘의 이치를 알고

예순 살에 모든 것이 편안하게 들리고

일흔 살에 무슨 행동을 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

-공자

당시 나는 마흔 살이었고 매우 혼란스러운 상태에 있었으므로, ‘흔들리지 않는다’는 구절을 읽으면서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122]

전환은 그들이 어떤 길을 가더라도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힘이고, 삶의 원동력 그 자체였다.

비록 변화 자체가 그들을 난처하게 했을지라도 모든 변화가 중요한 전환들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몇몇 학생들은 개인적으로 시기를 놓치지 않고 삶을 크게 상승시켰다.

대부분 사람들이 크게 생각하지 않는 변화들은 내적으로 거대한 방향조정과 재배치를 유발하여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하게 만든다. 이 전환들은 변화가 계기가 되었지만, 결과는 자신이 삶에 대한 내적 발전의 힘에 의해 발생한 것이다.

 

[123]

사물은 성숙기를 넘으면 스스로 부패한다.

-노자

전환은 사람들에게 그들이 어떤 면에 있어서 예전과 다르다는 것만을 깨닫게 하지 않는다.

전환을 겪은 사람들은 세상을 의미심장한 다른 것으로 바로 보게 된다. 부모가 이혼한 후에 가족의 단단한 결속에 대한 환상이 사라지거나, 첫 경험 이후 사람들을 성과 관련지어 보게 되는 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다. 현실을 재정의하게 되었다는 의미인 것이다.

 

[124]

부족 사회에서는 인생의 한 장과 그 다음 장 사이의 거리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통과의례라는 것이 있었다. 이 의식은 부족의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정체성을 가져다 줄 뿐 아니라, 세상을 새롭고 어른스러운 관점으로 바라보도록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

 

[125]

“우리가 도달했다고 생각하는 진실을

허구로 만들어버리는 또 다른 진실은 항상 존재한다”

-크리스토퍼 프라이-

 

[126]

인생은 유일한 진짜 상담가이다

-에디스 워톤-

우리와 연관된 활동이 우리의 역할에 의해 이루어진 정체성과 위치에 너무 의존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 인생을 보호하기 위한 방법을 찾으려는 유혹은 특히 중년의 나이가 되었을 때 심해진다. 그 시기는 트로이 전쟁에서 돌아오는 여정에서 역경을 겪으며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하는 신화 속의 오디세우스와 같다.

 

[127]

마법사 키르케는 그들이 처해 있는 위험에 대항하는 행동을 하지 않아야만 바위와 바위 사이의 좁은 공간을 빠져나갈 수 있다고 말해 주었다. 하지만 그가 마침내 좁은 공간에 도착했을 때 그는 익숙했던 자신의 오래된 현실과 행동에 다시 의존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키르케의 어려운 명령을 잊었다.

그녀가 나에게 전투 준비를 하지 말 것을 명령했을 때

나는 훌륭한 갑옷을 입고 손엔 두 개의 긴 창을 들었다.

그리고 갑판으로 걸아가 뱃머리에 섰다.

우리들 대부분이 그렇듯이, 위기에 처했을때 오디세우스는 자신을 그곳까지 데려온 이전의 자신으로 물러났고, 문제를 이해하고 푸는데 실패했다, 위기는 극복해야 할 어려움이라기 보다는 삶이 가져다준 선물이고 신호였다, 결국 그의 배는 파괴되었다.

 

[127-128]

서구는 발전을 이미 있었던 것을 배우고 추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래된 지혜는 ‘발전’이 배움에 의해서가 아니고 우리가 가졌던 것을 던져버려야만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128]

<전도서>에서 전해지는 고대의 지혜는 삶과 죽음의 때가 있는 것은 피와 공기와 날씨를 조종하는 우주의 기본적인 교류가 있다는 것을 확인해 준다.

동양과 서양은 전통적으로 이 순환의 변화에 대해 반대의 입장을 갖고 있다. 동양의 종교는 전통적으로 순환의 끝 쪽인 놓아버림의 특색을 갖고 있다. 사람들이 경험하고 있는 특별한 현실 안에서 만들어낸 정체성을 부숴버리는 데 도움을 주는 복잡하고 세련된 방법이 발달되어 있다.

반대로 서양은 새로운 사이클을 다시 시작하기 위한 전환의 단계(구체화, 구현, 현실화)를 이러한 순환 고리의 반대 측면에서 구하고 있다. 물론 문제는 동서양의 어떤 전통도 이 두 관점이 사이클을 완성하는 진실의 반쪽 요소라고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130]

동양도 편향성을 지니기는 마찬가지이다. 시작에 의해 만들어진 모든 것들은 환상으로 치부되어 버린다. 여기에서 ‘놓아버림’은 더 이상 역동적인 과정이 아니라 최대한 오래 지속되도록 규정된 분리의 상태이며, 이 분리의 지속적인 흐름이 끊겼을 때에는 스스로 흐름이 살아나 계속 유지된다.

 

[131]

자만은 몰락의 원인이 아니다. 단지 시간상 몰락이 이루어졌을 뿐이다.

우리가 전환기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계획을 세우는 것이 좀 더 낫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목표를 설정하고 해야 할 일의 목록을 작성한다. 그리고 욕실 거울에 써 붙여 놓는다. 그리고 일이 개선되기 시작할 때 기술이 작용했다고 말한다,

나는 내가 예상했던 목적에 맞추기 위해 업적의 완성을 늦추기보다는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을 점차 발견하고 목적을 키우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 조애나 필드

전환은 오래된 것이 끝나고 새로운 것이 시작되는 과정이다. 끝과 시작의 사이에는 중간지대의 틈이 있어서 새로운 삶으로부터 오는 모든 혼돈이 흘러간다. 중간지대가 없으면 다시 태어나는 것도 없다. 물론 전환은 단지 순환의 반쪽이고 존재하는 세상의 순환의 또 다른 반쪽이다.

[131-132] 하나의 전환이 끝나는 시작과 그 다음 순환이 시작되는 종결 사이에 존재하는 ‘중간’ 지점이 이 세상이다. 존재의 흐름이 교류하는 것은 세상과 현실의 연속 속으로 들어갔다 나갔다를 반복하는 것이다.

[132]

‘발전development'은 ’드러내다‘ 또는 ’접다‘라는 뜻을 가진 어근에서 유래된 흥미로운 단어이다.

’봉투envelope'는 종이를 접은 것이고

‘전개하다develop'는 이제까지 꼭꼭 싸여 있어서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던 것을 ’푸는unroll' 것이다.

발전의 길은 이전의 우리를 놓아버리고 앞으로 이루어질 새로운 것을 찾았을때 따르는 피시테일링 코스이다. 제시간에 놓아버려야만 새로운 것이 된다. 이것이 전환의 방법이고 인생의 길 또는 방법이며 구체화되고 해방되고 축소하고 감소하는 흐름의 교류이다.

[133]

'특별한 기술은 없습니다. 단지 우리가 하는 방법만이 있을 분이에요. 이제 무게를 달아볼까요? 아니면 요리를 시작할까요? 하고 말했다. 라고 적고 있다.

서점에 나와 있는 수많은 자기 계발서에서 제공하는 정교한 프로그램에 대해 이렇게 물어보고 싶다. 삶의 기술을 익히고 싶은가, 아니면 삶은 살아가기를 원하는가? 삶이란 기술을 모아놓을 수 있도록 축약되지 않기 때문이다.

[134]

무엇인가가 아니라 누군가가 되기로 결정했을 때

얼마나 많은 것을 잃어야 하는지.

- 코코 샤넬

우리가 가장 완벽하게 살아 있을 때는 전환기에 있을 때이다.

[135]

그 다음 각자에게 얼마간의 시간을 주고 나서 이번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에서 변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만 다시 소개해 보라고 주문한다. 자신이 경험했던 잃은 것과 얻은 것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삶에 있어서 변하지 않는 것들로 자신을 규정한다.

[137]

나는 세 가지를 제안했다.

1) 표제 만들기 연습

2) 당신이 걸어온 길

3) ‘당신’이라는 이름의 강

[137]

사람들은 의미 있는 것들을 놓아야 할 때 자연스럽게 반성하고 자신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 보게 된다.

놓아버리는 해동을 통해 과거는 그들에게 더욱 의미심장해 진다.

표제를 지을 때는 그 당시 당신의 삶의 정신을 나타낼 수 있는 단어나 문장을 사용해야 한다.

당신의 삶의 이야기에 표제를 지어주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표제를 구분해야 한다면 그 이름도 지어야 한다. 표제를 지을 때는 그 당시 당신의 삶의 정신을 나타낼 수 있는 단어나 문장을 사용해야 한다,

[137-138] 표제를 지을 때 고려해야 할 일반적인 질문들이 있다. 한가지는 당신의 인생에 얼마나 표제를 붙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 답은 당신이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열아홉 살짜리가 많은 표제를 가질 수도 있고, 일흔 살 노인이라도 평생 동안 너 댓 가지의 큰일들 밖에 없을 수도 있다.

[141]

시간을 투자하고 강물 그 자체를 그려보아라. 이것은 보고서가 아니라 발견의 과정이다.

[143]

두 가지 질문을 하면서 그것을 보충하고자 한다.

첫째, 당신의 과거에서 중요한 전환을 겪었던 시점을 아무 때나 골라본다. 하나 혹은 그 이상이 될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과거에 당신이 진정으로 전환을 겪었던 때가 언제인가’

둘째, 이 순간 당신의 인생이 당신에게 준 것은 무엇인가? 시작하기 전, 잠시 시간을 가지고 현실에 대해 생각하라.

[144]

나의 삶의 어떤 영역에서, 나는 내가 항상 전환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 '전환관리' 세미나에 참석한 한 참가자로부터

[145]

발을 헛디디지 않고 상황을 바꿀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많은 전환들의 범위가 한정되어 있다는 사실은 행운이다. 바위를 타는 사람들이 나머지 한 손과 두 발을 바위에 단단히 고정한 채 한 번에 한 손만 사용하여 움직이는 것처럼, 전환기에 있는 사람들은 다른 곳에서 전환이 일어나는 동안 자신의 삶의 나머지 부분들을 계속 잡고 있으면 언제나 잘 버틸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가능하지 않을 때 당신은 ‘결정을 내리지 못하겠어’라고 느끼며 혼돈이 당신의 인생을 지배한다고 생각한다.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인가? 당신의 삶의 주제는 무엇인가?

06. 결혼은 또 하나의 전환점이다

-전환점에서 사랑을 심화하는 방법

[146]

너희들은 나의 장미와 조금도 닮지 않았어.

너희들은 아직은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도 너희들을 길들이지 않았고,

너희들도 아무도 길들이지 않았어.

- 어린왕자 중에서, 생텍쥐페리 The Little Prince, Antoine de Saint-Exupery

[147]

뉴잉글랜드 출신인 나와 캘리포니아 출신인 아내는 시작부터 하나가 되기 어려웠다.

나는 뻣뻣했고 합리주의자였으며, 내성적이고 부끄러움을 많이 탔다. 그리고 논쟁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외향적이었고 에너지가 넘치고 카리스마가 있는, 그러나 왠지 모를 그늘이 있는 여자였다. 사람들은 아내가 권력 있는 사람과 결혼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정말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다른 부류의 사람이었다.

[148]

결혼은 우리가 성장하기 위한 마지막 단계이자 최고의 기회이다.

-조셉 바스

헨젤과 그레텔이었다. 특히 나는 결국 오븐 속에 갇혀버리는 헨젤의 신세와 같아서 지혜가 풍부한 그레텔이 없었더라면 아직껏 그 속에서 헤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149]

나는 그녀에게 1분 동안 그 책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했지만(결국 아내는 10분에 걸쳐 열심히 설명했다), 설명을 듣고 난 뒤에 관심을 갖는 분야의 책이 아니라고 말했다. 아마도 아내는 내가 그런 식으로 대답하리라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야말로 관계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날 이후로 우리는 왜 우리가 좀 더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151]

사람들은 항상 그녀를 강한 사람으로 여기고 그렇게 대했다. 하지만 그녀는 항상 자신을 연약하게 생각했다. 그녀에 대한 사람들의 오해가 그녀에게는 끊임없는 고통과 착잡함의 근원이었다.

“왜 그 사람들은 내가 상처받는다고 생각하지 않는 거야?”

우리만의 공간인 침대 위에서 그녀는 이렇게 항변했다.

“당신이 그렇게 행동하지 않으니까 그렇지”

“당신은 내가 강하길 바라잖아요. 그래서 당신은 진정한 내 모습을 보는 걸 자신한테 허락할 수 없는 거라구!”

그녀는 소리쳤고, 곧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152]

결혼은 잘 풀리지 않았지만, 별거는 탁월하게 작용했다.

- 캘리포니아의 한 부부에 대한 보고서 중에서, 리즈 스미스

당시에는 부부생활을 유지하면서 자유로이 다른 성관계를 갖는 개방형 결혼이 사리에 맞는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우리는 한 명의 파트너만으로 충분했기에 일부일처로 남기로 했다

[153]

미래의 필연적 패턴으로 ‘연속적 결혼’이 더 흔해질 것이라고 했던 앨빈 토플러는 <미래 충격>에서 ‘우리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현재 결혼 상태가 아니라, 그들의 결혼 이력이나 패턴에 관해 특성을 부여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결혼제도가 변화할 것이라는 몇몇 관점들을 암시했다.

[154]

물론 그는 즉석에서 “운이 좋고 높은 지능을 가진 누군가는 결혼생활에서 오랫동안 일부일처를 유지할 방법을 찾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156]

우리 사이의 알력은 아내가 쓴 글을 내가 몰래 고치면서 표면으로 불거졌다. 심지어 나는 책이 출판되고 난 뒤 아내가 책을 보고 당황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고 뻔뻔스레 주장했다. 사실은 내 성격상 누군가와 협력하는 게 불가능했다. 글쓰기에 관해 내가 자기 주장이너무 강했던 것이 우리 사이에 도움이 되지 않았고, 문제에 관해 아내와 감정적으로 솔직하게 이야기 나누는 것도 두려웠다.

[157]

내가 새로운 방향을 찾기 시작한 이래로 아내의 바람은 나를 두렵게 만들었다. 자포자기 속에서 나는 떠난 자는 그녀를 멈출 수 없었지만, 내가 찾던 삶이었기에 나는 그곳에 머무르고자 했다. 나는 이렇게 글을 쓰면서 우리의 갈등에 대해 과장되게 말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158]

그것은 내가 치료사들의 눈을 속인 것이라는 사실을 그녀에게 입증한다.

“당신은 당신에게 도전하지 않을 치료사들을 선택했어, 빌.”

[160]

내가 봤을 때 결혼의 한 가지 이득은

당신이 파트너와 사랑에 빠졌을 때,

다시 사랑에 빠지기 전까지 그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주디스 바이어스트

아내는 그녀의 매력이 남자들에게 성적으로 느껴질까 봐 두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두려움에 눌리는 것에 지쳤고, 그것을 극복하길 원했다. 아내는 그녀를 이해하기에 충분히 예민하며, 견디기에 충분히 강한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조지는 그런 점에서 충분한 사람처럼 보였다. 그녀도 그 점을 알고 있었다.

[161]

한 남자가 환자와 분석가 사이의 성적 관계에 관한 문제에 있어 ‘악마의 대변자(논의를 촉진시키기 위해 일부러 어떤 의견에 대한 반대의견을 제시하는 사람)’로서 말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옳지 않은 상황일까, 아니면 유용한 상황일까? 만일 그런 성적 관계가 실제로 치료가 끝나기 전까지는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래도 그게 잘못된 것일까?”

아내는 그가 말한 것에 대해 매우 당황스러워했다. 나는 그녀가 말했던 것을 기억할 수는 없지만, 그녀는 그 대화를 매우 고통스러워했다.

“말할 게 있어. 나 조지랑 잤어요. 지금은 끝난 일이지만, 잠시 동안 성관계를 가졌어요.”

[163]

대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에 아내는 동의하지 않았다. 10년간 대화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나는 말할 방법을 찾았다. 그녀에 의해 상처받은 사람으로 보여야 할 필요를 느꼈고, 그녀가 위급한 상황에 처해 도움을 요청할 때 그녀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았다.

[166]

나는 용서하는 방법을 발견했다. 용서의 대인 관계적 측면은 삶에 극히 중요하다. 용서는 우리의 결혼에 있어 거대한 변화를 가져왔다. 여느 변화와 마찬가지로, 그것은 우리가 발견했을 때보다 우리가 서로 다른 사람임을 알려주었다.

사랑이 있다면, 상처받은 신뢰마저도 다시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사랑은 믿음보다 강하다.

그녀는 대부분 침묵했고, 내 손을 좀 더 꽉 잡았다. 아니면 그녀는 거의 피가 날 때까지 무심코 손가락을 깨물었다. 그녀는 겨울 하늘 아래 내놓은 작고 벌거벗은 신생아처럼 스스로를 생각했다. 그녀는 노트에 이것저것 적어놓았지만 나는 절대 볼 수 없었다. 그녀가 죽은 뒤 나는 그것을 태웠다.

한 인간이 다른 이를 사랑하는 것, 그것은 모든 임무 중

가장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최후의 시험이자 증거인 것으로,

다른 일들을 위한 준비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167]

아내가 자신과 조지 사이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 처음 이야기했을 때 내가 느꼈던 환멸감을 극복했고, 각성이라는 더 깊은 경험을 하게 되었다.

나는 묶여 있던 마법에서 깨어났다. 나는 처음으로 그렇게 오랜 시간 함께 살아온 사람을 진실로 바라보았고, 그녀의 아픔과 자기 거부 그리고 그녀가 갈망하는 것을 보았다. 그렇게 하면서 나는 전에는 결코 할 수 없었던 방법으로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결국 사랑은 그 사람의 실체를 좀 더 선명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07. 여행을 끝내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

- 낯선 곳에서 적응하기

[168]

원형은 하천의 바닥과 같다.

물이 없어지면 말라버리고 말지만

어느 때라도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다.

원형은 오래된 물줄기와 같아서

삶의 물이 이곳을 따라 흐르며 땅을 파고 수로를 만든다.

물줄기가 오래될수록 수로는 깊어지며,

물은 잠시 없어졌다가도 조만간 다시 돌아온다.

-칼 구스타프 융

[168-169]

나는 결혼을 ‘여행’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것이 두 가지 이유로 인간의 의식에 깊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심오한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인류가 지구에 출현한 뒤로 수많은 여행을 했기 때문에 그 이미지가 정신 속에서 깊이 각인되어 있다. 둘째,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이미지가 깊이 각인되면서 여행은 우리가 표현하고자 하는 전환의 모습을 뚜렷하게 포착한다.

[170]

여행은 마침내 하얀 고래와 마주치거나 오디세우스가 이타카로 돌아갈 때와 같은 상황에서 끝난다, 그 결말은 목표가 이루어지는 지점이다, 목표는 내부의 어떤 곳을 향한 외부의 표현이며, 여행을 하는 사람은 그 목표를 성취해야 한다. 변화가 내가 인용한 여행담이라는 것은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사실 변화는 여행에 관한 설명들보다 이런 이야기를 만드는 역동적인 요소이며 그것은 신화 속에서도 나타난다.

신화에 관한 현대의 오해 중 하나는 신화 세계의 상상이 지금의 세상에서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편견이다.

[171]

짐 가방을 잃어버리는 순간 소풍은 ‘여행’이 되고 만다. -미상

[172]

황무지는 죽음의 세계, 한계에 이른 생명을 비유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든 아니든 간에 이제는 놓아버릴 시간이고 쥐고 있던 것을 뒤로하고 떠날 시간임을 나타내는 말이다.

[172]

당신의 삶이 잘못된 길로 가고 있을지라도 당신의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보호의 목소리는 당신의 삶을 완전히 알 수 없는 방향으로 이끌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유지하려고 한다.

이제 막 대피소 가까이 왔다. 만일 대피소에 무사히 들어가고 태풍이 지나갔다면 이야기는 성립되지 않을 것이다. 불행한 사태가 일어났을 때 당신은 가야만 했을 ‘행운의 길’을 놓쳐버리고 그 대신 ‘불운의 길’에 들어섰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불행’이 바로 구원의 손길이었음을 알게 된다.

[174]

우리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라고 말한다. 어떤 일을 끝내고, 상실감을 느끼고, 놓아버린 후에 우리는 항상 낯선 곳에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중간지대는 결코 지도상에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거울 안 혹은 토끼 굴이나 옷장 뒤편에 존재한다.

[175]

도전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지혜가 가치 있는 것이고, 그것을 얻기 위해 싸움을 할만한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모든 사람들이 지혜로울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지혜가 그렇게 가치있는 것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176] 일이 잘 풀리기 전에는 역경이 절정에 달하기 마련이다. 어느날 당신이 마녀의 부엌에서 물걸레질을 하고 있는데, 그녀가 당신을 약간 밀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랬는지 알 수가 없지만 당신은 물통을 들어 마녀에게 부어버렸다. 그러자 마녀는 흔적도 없이 녹아버렸다. 당신은 이런 방법을 어떻게 알았는가? 대답은 하지 못한다. 그냥 그렇게 행동했기 때문이다. 눈부신 발전은 계획된 것이 아니었다. 그저 ‘떠오른 것’이다.

[180]

이 모든 모험이 끝난 후 당신 안에 그 힘이 있었던 것을 알게 되었다. 마법사가 힘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힘을 갖고 있는 사람은 정작 당신이었다. 당신의 외부에서 일어나는 과업을 완수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해답은 발뒤꿈치에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잠깐! 그렇다면 이제까지의 여정은 모두 불필요한 것이었단 말인가

[181]

그때로 돌아가 보면 당신은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당신은 ‘전환적 경험’이라고 하는 것을 아직 겪지 않은 상태였다. 처음 도착했을 때 바로 집으로 돌아갔다면 그 모든 일들을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여정이 끝났을 때에야 비로소 당신은 캔자스로 돌아가서 초록색 들판을 다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낡은 회색 집을 수리하고 흰색 페인트로 산뜻하게 칠도 했다. 아저씨와 아주머니도 더 이상 늙고 쓸모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메마른 땅에 비가 내려 모든 것이 새롭게 태어났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에게서 새로운 생명력이 흘러나왔다. 새로운 시작이었다.

신화 속 영웅의 여정은,

지리적으로는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것이지만,

근본적으로 보면 내면으로의 여행이다.

내면 깊은 곳에서 보이지 않는 저항을 극복하고

오랫동안 잊혀진 세상을

변모시킬 수 있는 힘을 다시 살아나게 하는 여행이다.

- 조셉 캠벨

[ 182]

도로시는 걸어왔던 길을 외면함으로써 지혜를 얻게 되었다. 도로시는 전혀 의도하지 않은 상태에서 의지와는 상관없이 중간지대의 가능성이 풍부한 볼모지로 뛰어들게 되었다. 그곳에서 도로시는 발전을 위해 다음단계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일상생활의 지혜는 항상 순례자에게 똑바로 길을 갈 수 있게 해주고 의도한 방향으로 가도록 도와준다, 하지만 전환의 길은 이와 반대이다,

[183]

여정의 행로에 희망이 없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사실 단테의 희망은 고향 플로렌스로 돌아가거나 캔자스로 돌아가 살 수 있다는 환상과 비슷한 것이다. 하나의 삶의 양상과 그 다음 약상 사이에서 짐까지 들고 이 어려운 난관을 헤쳐 나갈 방법을 구한다는 환상이 바로 희망이라고 할 수 있다.

변화는 신화속에서 이루어지든, 혹은 개인의 일상적인 삶속에서 이루어지든 간에 전환이 진정으로 가야할 목적지이다. 전환이 어떻게 이루어지는 가는 미스터리한 일이다. 하지만 하나의 상태와 또 다른 상태 사이 혹은 하나의 삶의 양상과 그 다음 삶의 양상 사이의 경계 근처인 변방과 같은 상태와 어느 정도 관계가 있다.

반드시 가야할 길이 어떤 길인지 말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184]

우리가 길(가는 길로서의 길)을 따라 간다고 해도 여정을 알길(방법으로서의 길)이 없다. 우리는 같은 곳을 행해 가고 있다. 우리 모두 변화의 길, 삶을 새롭게 만드는 길을 가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는 각각 고유하고 반복할 수 없는 길을 가고 있다.

위대한 역사학자 아놀드 J. 토인비는 위대한 문명의 발상 역시 도전과 응전의 결과라고 말하며. “이들 영웅적인 개척자들은 사람들에 의해 침투당하기 전에 계곡 바닥의 늪지대로 뛰어들었다”라고 말했다.

[187]

전환의 방법과 삶의 여행 기술이 별개의 것이라면, 그래서 과정은 무시하고 결과만을 모방하려 한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하게 될 것이다, 모방은 언제나 죽은 것을 창조해 낸다. 모방은 본래의 뜻을 단순화시키고 실제로 중간지대에 놓인 바로 그 사람들이 진짜 창조성을 보여주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188]

개인적인 위기를 갖고 있던 것들을 놓아버리는 중대한 위기로 생각하면서 잠재력을 깨달아야 하며, 여정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돌려야 한다.

전환을 일으키는 여행은 언제나 목적지를 갖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목적지가 따라가고 싶을 만큼 흥미로운 곳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그들은 당신이 시작한 바로 그곳에서 출발하려고 한다. 그 점이 그들에게 활력을 주기 때문이다.

[189]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여행 자체이다. 그리고 그것은 당신의 여행이지 그들의 여행은 아니다.

[189-190] 나에게 도움되었던 여정에 관한 세 가지 생각을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 각 여정은 상상했던 곳에 도착했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얻은 것을 갖고 돌아와서 찾고 있던 것을 이곳에서 변형하여 보여줄 때 끝나는 왕복여행이다.

둘째. 여정은 삶의 모든 단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삶의 전체에서부터 전환을 이루는 매 순간이 모두 여정을 경험하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그것은 목적을 따라 걸어가는 길이 아니라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길이다.

08. 나의 천직을 찾아내다

- 평생 먹고 살일

[191]

꼭 해야 할 중요한 임무는 일을 찾아내고 그것을 하는 것이다.

- 샤롯 퍼킨스 길먼

[193]

그러나 결국 구불 구불하고 전환점이 많은, 가는 길로서의 길을 가는 동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때로는 생각없이 살아가는 와중에 삶의 목표를 성취하거나 이익을 얻게 된다.

식물을 기르는 것처럼 삶을 대해야 한다.

인생 또한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조언한 논리적인 방법으로 재연할 수 없는, 부패한 꿈과 무익한 노력의 거름으로부터 자라고 있다.

[196]

경력을 개발하는 것은 인생의 일부분이지 인생자체는 아니다. 기회를 찾고 자신을 선전하고 능력을 키우는 노력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단지 회상을 통해 당신의 직업으로 확인된 길을 찾기 위해 이것도 시도해보고 저기로도 한번 가보라는 내면의 소리에 부응하라는 것이다, 또 그렇게 하면 기회를 잡게 된다.

[199]

사람이 직업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직업이 사람을 옭아매는 것이다.

-존 도스 파소

[201]

주도적으로 움직이고 있을 때에는 계속 움직여야 한다.

우리는 간단해 보이는 선택을 한다.

사람을 선택하고, 직업을 선택하고, 이웃을 선택하는 것.

그러나 우리가 선택한 것은 사람도 직업도 이웃도 아닌 인생이다.

- 제서민 웨스트

[201]

우리는 길을 정확하게 따라갈 수 없다. 정확하게 말하면 길이 없다. 그저 땅의 윤곽을 따라 걷는 것이다. 땅이 생긴 것에 따라 왼쪽으로 돌고 다른 곳에서는 강을 건너 오른쪽으로 돌아왔다. 우리가 가는 길에는 논리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길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진다.

[203]

인생으로 들어가는 문은 대개 우리 뒤에서 열리고

우리를 뒤로 잡아끄는 손은 우리의 앞쪽에 있다. -조지 맥도널드

[204]

나를 돌아보았다. 자신을 지탱할 수단을 창조해 낸다는 깨달음으로 인해 내가 정말 괜찮은 일을 포기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나름대로의 계획이 있는데 나만 혼자서 여전히 공동체의 일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마흔 살로 퇴직하기에는 너무 이른 무직자인 내가 있었다.

[207]

내경험상, 명확하지 않더라도 모든 성공적인 변화는 일이 익숙하게 진행되었던 대로 잔행되게 하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것과 대부분 실패한 변화는 끝을 잘 마무리 하지 못한데서 시작된다는 것이 불변의 법칙이라는 것을 재빨리 알아챘다. 변화를 원할 때 결과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변화가 일어나길 바라는 전환기에 있는 사람은 연이은 변화에서 무언가를 상실한 사람에 대한 진실한 동정을 느끼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변화를 헤쳐 나가지 못하고 좌절한 사람이 변화 체를 어떻게 망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208]

작은 계획은 세우지 마라.

작은 계획은 사람의 피를 끓게 할 수 없다.

-다니엘 H 번햄

[211]

타고난 일을 갖지 않고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없다,

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을 위한 일과 도구는 항상 존재한다.

-제임스 러셀 로웰

[212]

인텔에서 일하는 동안 그곳 직원들은 내가 전에 근무했던 회사 직원들처럼 일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일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과제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러나 차츰 인텔에서는 정규적인 업무가 없다는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한 명이 2~3개의 프로젝트를 동시에 수행한다. 아무도 새로운 과제가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거부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의 일을 방어하기 위해 조직을 개편하려고 싸우지 않는다.

인텔은 상당히 유연하기 때문에 새로운 문제나 부각된 사안 처리를 위해 매우 신속히 그룹을 재련할 수 있다. 1990년이 되어서야 그것이 다른 조직과 사람들을 독립적으로 단기간 배정하여 수행하는 업무 프로세서임을 깨달았다.

모든 곳에서 빠른 스피드, 유연성, 신속한 혁신이란 동일한 결과를 낳았다.

[216]

시간이 걸리더라도 진정으로 당신의 모든 것을 소유할 때

당신은 냉혹한 현실에 직면하게 된다.

-플로리다 스콧 맥스웰

[217] 나는 의미 있는 일을 찾고 일에서 삶을 지탱해 가기까지 멀고 험난한 길을 걸었다. 물러서고 패배한 시간은 보다 높은 곳으로 이동하기 위한 울퉁불퉁한 길과 같았다. 내가 뒤에 남겨놓고 왔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내 앞에 다시 나타났다. 진퇴양난에 빠지거나 길을 잃었던 순간이 여정의 다음 부분을 향해 방향을 잡기 위해 찾아야 했던 중간지대였음을 알았다, 성공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요소들이 인생의 다음 장으로 가기 위해서는 버리고 가야 할 짐이었다.

에머슨은 인생은 상형문자라고 이야기했다. 인생의 암호를 해석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라.

09. 새로운 전환점에 서다

- 중간지대에서의 시간

[218]

우리는 변화를 아주 두려워하거나 과거의 방법만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두려움과 두려워하지 않음의 중간 정도에 서 있는 것 같다. 그것은 공중 그네를 타고 있는 것과 같고 건조기에서 담요를 말리고 있는 라이너스(만화 ‘스누피’에 나오는 캐릭터로, 몸에 담요를 지니고 다닌다)의 심정과 같다. 잡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218-219]

중간지대는 변화의 3단계중 두 번째 단계이다. 과거의 인생이 사라진 후 새로운 인생을 발견하고 적응하기까지의 중간 시간이다. 끝과 시작은 놓아두고 새로운 것을 시작한다는 등 무엇을 한다는 것으로 규정하지만, 중간지대에서는 아무것도 발생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나머지 두 변화의 상태는 사건들이 발생하지만, 중간지대는 인생에 있어 아무런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 시간과 같다, 중간지대는 더러운 것을 지우개로 지우고 나서 남게 되는 회색의 희미한 자국처럼 인생에 넓게 펼쳐진 무색의 공허한 띠와 같은 것이다.

[219]

옥수수는 밤에 자란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219]

은유적으로 표현하지 않고는 중간지대를 설명하기 힘들다. 중간지대는 그 시기가 끝나기 전에는 인생의 따스함과 의미를 주지 않는 길고 추운 계절을 준비하기 위해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동면하는 계절이다. 또한 한 세계와 다른 세계 사이를 잇는 색다른 무인지대이다.

[220]

중간지대는 과거와 미래로부터 발산되는 혼란스런 신호를 받는 시기다.

중간지대에서는 시간이 엄청나게 늘어진다, 하루가 마흔 시간 같다, 그와 동시에 어느 몇 주간은 몇 가지 기억만을 남기고 무미건조하게 지나갔다.

거의 40년을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하고 싶은 것을 모두 할 수 있을 것 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고 느꼈다. 그러나 하고 싶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224]

겁쟁이도 어려움은 이겨낼 수 있지만,

용감한 자만이 긴장감을 견뎌낸다.

- 미그논 맥러린

[227]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은 몇 주가 지나면서 뜻밖에도 예기치 못했던 의미 있는 자질들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불확실과 근심을 느끼게 될 때, 내면이 나를 진정시키기 위해 위조된 현실을 만들어내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지금은 스스로 상상의 미래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내가 만들어낸 미래는 적당히 편안함을 느끼게 만들어주기는 하지만 어떻게 가야 하는지 길을 알려주지 않기 때문에 나를 항상 낙담케 했다. 내 머리에서 만들어진 미래는 고정된 벽에 그려진 파노라마와 같은 것이었다.

[228]

소극적 수용력이란 원인과 사실에 민감해하지 않고 ‘불확실성, 미스터리, 의구심’ 등과 함께 살아갈 수 있음을 의미한다.

[229]

삶에 죄가 있다면, 그 죄목은 다른 삶을 갈구하고

냉혹하게 큰 삶을 피하고자 했던 만큼 절망하지 않은 것이다.

- 알베르 까뮈

[233]

나이가 든다는 사실은 내 마음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아내가 살아 있을 때 느꼈던 것보다 더 많이 늙었다는 것을 느꼈다. 아내와 함께 있을 때,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234]

나는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에 그다지 자신감을 되찾지는 않았다. 나는 그들과 같은 류는 아니었다. 그들은 내가 모르는 무언가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나보다 진취적이었다 나는 생각만 하지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았다.

[234]

많은 사람들은 혼자서도 잘살고 가치있는 삶을 산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말이다.

[240-241]

작은 등산로를 지나치면서, 아내의 재를 뿌렸던 곳에서 우리가 불과 몇 km 이내의 가까운 거리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런 우연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내가 보고 있는 것일까? 내가 다른 여자와 있는 것, 그리고 이리도 서툴게 행동하는 것을 보고 그녀는 어떻게 생각할까?

세상은 그 어느 것보다도 새로운 경험을 두려워한다.

왜냐하면 새로운 경험은

너무나 많은 오랜 경험을 대체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새로운 생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새로운 생각은 그 어떤 오래된 생각과도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로운 생각은 진짜 새로운 경험과는 함께할 수 없다.

-D. H. 로렌스-

[246]

바다에는 안내 표지판이 없다.

-비타 색빌 웨스트

[247]

결정은 증거와 논리의 기초 위에서 만들어진다. 그러나 선택은 언제나 의지의 결과이다.

그러나 선택은 특별하고 독특하다. 선택이 인간을 인간답게 한다. 우리가 누구인가로 선택은 시작된다. 결정은 많은 형식을 가지고 있지만, 선택은 단지 ‘예’ 또는 ‘아니오’ 두 개뿐이었다. 결정을 한 후, 결정한 것을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서는 동기가 있어야 한다.러나 선택의 경우 선택 자체가 시작이다. 결정은 우리를 주변인으로 만든다. 선택은 선택한 이를 그림의 중심에 둔다. 즉, 스스로 동기를 부여하고 자연적으로 실행한다.

[247-248]

선택으로는 선택하지 않았던 부분을 평가할 수 없다. 동전의 반대면이 몇 번이나 나오는지 세기 위해 몇 백 번이나 동전을 던질 수 없기 때문에 반대 면이란 것은 없다. 단지 하나의 인생이 있을 뿐이고 한 번의 기회만 있을 뿐이다.

두 번째 시도라는 것도 있을 수 없다. 옳다는 것은 이미 옳은 것과 틀린 것을 내포하기 때문에 인생이란 자체가 이미 옳고 그른 인생 두 가지 모두를 의미한다. 또한 인생은 되돌아갈 수 없고 다른 인생이 좋은지 알아보기 위해 다시 살수 없으므로 옳은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말을 할 수가 없다. 선택한 갈과 선택에 의해 창조된 인생이 있을 뿐이다.

스카이 점퍼로 맞바람을 느끼며 팔을 넓게 쫙 펴고 앞으로 기울인 채 높은 절벽의 가장자리에 서서, 바람 속으로 몸을 던져 땅에 닿을 때까지 하늘을 날아올라 수평선을 향해 비행하는 나를 상상했다. 밀물처럼 밀려오는 자유를 만끽했다. 이것이 마음에서 우러나는 삶이다. 이것이 나의 선택이었고 인생이었다.

[249]

미리 인식한 목적에 맞는 성공을 서서히 만들어갈 때가 아니라

알지 못했던 목적을 차츰 발견하고 키워 나갈 때

인생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조안나 필드

[250]

상상력을 올바로 사용하면 대단히 혼란스럽고,

이상한 언어들에 둘러싸여 있는 현실의 비밀을 밝혀낼 수 있다.

미래에 대해 내가 할 일은 예상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진정한 창조는 미래를 예단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 유산의 산물이 현재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래서 마치 나무의 가지가 하나하나 앞으로 늘어뜨려지듯

미래가 활짝 펼쳐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미래가 가까워지면 삶은 멈춘다. 그러나 근심하지 마라

- 생떽쥐베리

[252]

일본인들은 자신의 문제로 명상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근본에 자신이 순응함으로써 인생의 유연함으로 문제의 복잡성을 완화시키고 완전한 자유 상태에서 자신의 힘을 사용한다.

인생은 어떤 일이

다음에 어떻게 일어날 것인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그것을 알게 되는 순간 죽음이 조금씩 다가온다.

- 아그네스 드 밀

[253]

나는 이렇게 느리게 깨우쳐 나간다. 아흔 살이 된다 해도 변화라는 것은 자신의 길을 따라 되는대로 흘러가다가 중간지대를 열고 들어가 현재의 그늘에서 변화가 나타날 때 새로운 형태를 준비하고 있는 것임을 처음으로 알게 될 것이다.

10. 나이를 먹으면 삶의 무대도 넓어진다.

- 나이 듦의 미덕

[254]

나는 나이가 들고 나서야 내 젊음을 온전히 즐겼다.

젊음을 유지하는 것은 영혼뿐이다.

젊음의 영혼은 모험을 즐기며 혼돈 속에 사는 젊은이보다

평온하게 사는 나이 든 사람에게 잘 깃들 수 있다.

- 조지 산타야나

[258]

변화에 집중하는 것은 세상을 새로 만들 힘을 주었지만, 이것은 또한 우리 사회가 변화의 인간적 측면을 다루는데 있어 비교적 효율적인 방법을 개발하지 못했다는 반증이다,

우리는 주기적으로 삶을 재충전하는 방법을 개발하여 예전 사람들처럼 삶을 소진해 버리지 않아야 한다. 사회가 변화되고 있는 상황을 볼 때 삶의 전환점에서 인도와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연장자가 부족하다.

연장자들의 가치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을 연장자들이 가지고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 전환은 개인적, 사회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전환이라는 역동적인 과정을 거치며 스스로를 계발하여 존경받는 세상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259]

세상에 대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배운 방법은 수동적으로 쌓이는 것이 아니다. 처음 알게 되었다가 차츰 예전의 실제를 실제가 아닌 것처럼 생각하게 되면서 알았던 것이나, 알게 된 것을 버리는 과정에서 지식이 축적되는 것이다.

그래서 중간지대에서는 더더욱 현실을 혼란스럽고 이상한 것으로 느끼게 된다. 그러나 그 단계를 지나면 다시 자신의 삶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이후 스스로의 삶은 과거와 같지 않고 새로운 삶으로 변화된다. 내가 맞긴 한데 과거의 내가 아닌 것이다.

단순히 습득한 지식과 구별하기 위해 지혜라고 부르는 지식을 습득하는 유일한 방법은 깊이 있는 삶의 변화를 한번이라도 경험하거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여러번 경험하는 길밖에 없다. 지혜를 습득하고 난 후에야 과거의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고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다.

[261]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종결만이 아니다. 흔히 중간지대에서 느끼는 외로움과 공허감은 종결만큼이나 두려움을 주는데 이는 중간 지대가 어린 시절 홀로 버려졌을 때 느꼈던 공포를 일깨우기 때문이다.

무엇인가 일어나고 있는 것을 인지하지 못할 때는 언제나 중간지대에서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다고 느끼듯이, 무엇인가가 진짜로 진행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261-262]

우리는 새로운 질서에 생명을 불어넣는 새로운 시작이 혼란스러운 중간지대에서 나타난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 대신 자신이나 세계를 변화시킬 행동의 전체적인 순서를 계획하여 새롭게 시작하려고 노력하면서 의지에 따라 행동하여 새로운 시작을 만들고자 한다. 우리의 계획이 의도한 대로 되지 않으면 비통하게 머리를 흔들며, 계획 자체에 문제가 있거나 계획을 수행하는 법에 문제가 있다고 결론을 내린다. 변화가 아닌 전환을 하지 못해 실패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262]

대부분은 진정한 변화는 과거의 방식을 조심스럽게 청산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그들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과거청산보다 지극히 미심쩍은 새로운 시작에 대해 칭찬하고 보상하는 것에만 치중하고 있다.

흔히 변화가 어렵다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진정한 변화는 어렵다. 사실 존재를 완전히 변화시키는 전환을 피하기 위해 개인이나 조직 모두 변화를 이용한다.

[264]

연장자들이 전환의 방법에 대해 무지하지만 않았다면 젊은이들에 비해 확실히 이점이 많다. 연장자들은 변화의 삶을 통해 얻게 된 지혜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다. 우리는 그들의 경험으로부터 학습하는 선택된 자들이며, 모든 세대가 그들의 지혜를 배웠다.

지혜를 터득하는 것은 지혜를 전달해 주는 사람과 그 사회 모두에 도움이 된다.

나이가 나를 혼란에 빠지게 했다.

나는 노년이 조용한 시간이라고 생각했었지만 …

나이를 먹어가면서 더욱 열정적으로 변했다.

-플로리다 스콧 맥스웰

책을 쓰면서 회상해 보니, 직업을 갖고 가족을 이루었던 때 상당히 어린 나이였다는 것에 새삼 놀랐다. 아내보다 나이가 많아 내가 더 성숙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그 이후에도 계속 성숙해져야 했다.

[265]

나쁜 요정을 초대하지 않은 것은 이해되지만,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진의는 나쁜 것을 배제하고 선한 것을 증대시킬수록 배제된 사악한 존재의 파괴적 힘만 증대시키게 된다는 것이다.

[266]

일반적인 상식으로 보면 놀랍게도, 부당하게 배제된 되서가 더 많이 화내지 않고 화해를 위해 찾아왔다. 이 이야기는 시인 릴케가 젊은 시인들에게 쓴 편지에 있는 시와 동일한 관점을 지니고 있다

"우리를 겁먹게 하는 모든 것은,

가장 깊은 내면에서,

우리의 사랑을 원하는 무기력한 어떤 것이다."

-릴케

[267]

나이가 들어가면서 좋아지거나 나빠지는 것이 아니라,

더욱 우리 자신 같아진다.

-로버트 앤서니

[268]

그러나 나를 포함해 인류의 정신적 보배를 창조해 낸 다른 문화에서는 또 다른 움직임이 있었다. 여기서 저기로 갔다가, 저기에서 여기로 돌아왔다. 자연적 형태는 원이다. 도덕경에 ‘가는 것은 멀리 가는 것이고 멀리 가는 것은 돌아오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269]

이 책은 내 삶의 몇 가지 면에서부터 선형적으로 나누는 형태를 따랐다. 특히 원인과 영향에 대해 많은 것을 보여주는 시대순의 사건 정리 방법은 경력과 결혼에 대해 말하는 데 유용한 방법이다.

나는 감정이 없는 나무토막 같았고 아내는 나의 마법사였다. 나는 이전에는 한 번도 심각하게 사랑에 빠져본 적이 없었으므로 아내를 마술이라 믿었다. 그녀는 나의 심장에 숨겨진 문을 어떻게 발견하는지 가르쳐주었다. 그녀는 나를 변화시킨 것이다.

[272]

그녀는 나를 지도해 주는 스승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도록 만드는 스승이 되었다.

[273]

그 마지막 가르침은 죽음이었다. 그녀는 삶을 경험하면서 오랫동안 갈망했던 죽음을 오랜 친구처럼 맞이했다.

[275]

내 결혼 이야기는 물러남과 귀환의 동화이다. 고독의 세계를 벗어나 새로운 인간관계로 변화하는 단계를 거쳐, 결국은 다시 돌아왔다.

‘나는 조수석에 앉아 몇 분 동안 그녀를 기다리다가, 그녀가 돌아오지 않아 운전석 쪽으로 옮겨 차의 시동을 걸었다.’ 전에도 말했듯이 그녀는 나를 내 자신으로 돌아가게 했다.

[276]

인간의 계발이 인간의 어두운 면과 구불구불하면서도 유일한 특성을 모두 아울러야 한다는 생각은 새로운 시대의 인생관이 되기에 손색이 없다. 약 2,000년 전 예수가 제자들에게 말했다. “그래서 너희는 완전해야 한다.”

[278]

여행의 은유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알려준다. 이것은 인생의 매 순간마다 짐을 꾸리고, 우리의 시도는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무엇인가가 되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실제로 켄터베리나 메카로 갈 수도 있지만, 사실 모든 여행은 순례이다.

출장이 될 수도 있지만, 어떤 업종에 종사하든 모든 여행은 또한 출장이다.

그리고 모든 여행은 궁극적으로 귀향이다.

우리는 언제나 새로운 여행을 찾아 항해한다. 어디에서 여행을 시작했든지, 어디가 종착지이든지 여행의 진짜 방향은 깊이 있는 현실을 향한다. 핵심에 가까워질수록 방향은 혼란스러워진다.

[279]

그러나 움직인다는 것은 하나의 움직임이 끝나 새로운 움직임이 됨으로써 최종 종착지에 이르게 되므로 중요한 것이다,

‘자연적인 진행은 하나가 죽음으로써 새로운 삶이 진행되는 과정이다.’라는 말로 전환에 대해 정의하는 것이 좋겠다.

11. 인생의 새 장을 열다

- 끝은 새로운 시작

[280]

삶은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다,

다음 순간에 무엇이 올지,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것이다.

그것을 알게 되는 때는 조금씩 죽음이 시작되는 때이다.

-아그네스 드 밀

이 책은 하나의 끝에서 시작해 하나의 시작으로 끝이 날 것이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전환의 모습이 그러하기에 적절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무생물은 시작하고 나서 멈추어버리지만, 자라고 성장하는 역동적인 과정을 거치는 생물에게는 끝이 먼저 오고 시작이 다음에 온다.

이는 우리가 보금자리를 떠나 세계로 들어가는 생명 탄생의 형태이고 세상 밖으로 나가 죽음 너머로 들어가는 죽음이 형태이다. 이는 전환을 거쳐 다시 새로워지는 형태로 변화와 재생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신화속 여행의 형태이기도 하다.

[281]

전환을 거쳐 다음에 오는 것은 전에 있었던 것에 대해 큰 영향력을 갖는다, 전환을 통해 다음에 오는 것이 앞에 있는 것을 자동적으로 이기는 모습이 마치 거대한 가위바위보 게임과 같다. 새로운 봄이 겨울을 대체하고, 새해가 지난 해를 대체하는 것과 마찬가지 이다. 여기에 적대감은 없다. 단지 계승만이 있을뿐이다, 전환이 지속되는 한 우리의 계승은 졔속된다.

내가 피하고자 노력했던 이 특별한 변화는 새로운 땅으로 나를 이끌었다. 나는 인생이 각 영역과 인생의 각 영역 사이에 존재하는 전환기를 지배하는 규칙은 다르다는 사실을 확실히 체험하고 있다.

[282]

나는 미래와 갈등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미래가 내 삶이 되어가는 변화의 과정과 갈등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변화의 시간은 내부적으로 그 모든 문제와 씨름하며 큰 선택을 했기 때문에 놀랍도록 풍성했다. 내가 선택한 것은 결혼한 사람만이 아니라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었고, 새로운 인생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방식이었다

[283]

시간은 수선을 전문으로 하는 재봉사이다.

-페이스 볼드윈

[283-284]

나는 우연히 인도의 철학자 타고르의 글을 읽게 되었다.

오래된 말이 혀 위에서 사라질 때, 새로운 노래가 가슴으로부터 튀어나온다.

그리고 과거의 길이 없어진 곳에 새로운 경이로움으로 새나라가 나타난.”

그 글은 다시 한번 확신을 주었다, 과거의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방식을 채택해야 하는 것이다.

[289]

‘마음을 따르라’는 것이 ‘생각을 멈춰라’는 것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실제는 매우 다르다. 마음을 멈추는 것은 올바른 해답이 어딘가에 존재한다고 여기고 이를 갈구하는 것이다.

해답은 행동하기 위한 올바른 방법을 찾는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갈길을 발견하는 데서 온다.

마지막 기회의 순간에 방향을 찾는 메커니즘을 켜두면 전환점을 놓치게 된다. 마지막 순간이 되면 시간이 없다. 그 대신 앞서 종결의 시기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291]

가치 있는 인간의 삶은 끊임없는 풍자이다.

경전에 나와 있는 상징적인 삶의 모습처럼.

-존 키츠

[295]

미래는 희미하게 감지되는 움직임의 형태로 또는 우리가 곁눈질로 볼 수 있는 양상의 형태로 우리 앞에 놓여있다. 미래를 보고 이해하기 위해, 또 예언의 기회를 잡기 위해 삶에서 우리를 이 지점까지 데리고 온 오랜 방식을 놓아버려야 한다. 결국 우리는 새로운 이해와 새로운 현실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긴 시간동안 새로운 삶으로 들어가는 문을 초조하게 찾아 헤매기 전까지 그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295] 미래는 또한 과거를 포함하고 있다. 과거에는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한 예시가 담겨있고 미래는 그 예시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296]

노르웨이의 동화에서 영웅은 세 가지 신호가 교차하는 곳에 나타난다.

“이 길을 따라 여행한 그는 무사히 귀환할 것이다.”

“이 길을 여행한 그는 돌아오거나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이 길을 따라 여행한 그는 되돌아오지 못했다.”

물론 그는 세 번째를 선택했다.

-로라 심스

Epilogue. 전환의 의미를 새롭게 깨달은 시간

[298]

당신 자신의 생각을 믿는 것,

즉 당신의 마음속에서 당신에게 진리인 것이

모든 사람에게도 진리임을 믿는 것, 그것이 천재성이다.

당신의 보이지 않는 확신을 말하라 그것이 우주의 감각이 될 것이다.

-랄프 왈도 에머슨

[298-299]

이 책은 내가 저술한 10권의 책 중에서 가장 어려운 책이었다. 나는 처음 경험했던 때만큼이나 기억하기도 힘든 개인적인 경험을 모두 드러내야만 했다. 또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어떻게 받아들여질까에 대한 걱정도 많았다. .. 나의 경험에 일반화라는 옷을 입혀 대부분의 이야기를 감추어두었다.

[299]

소로가 자서전에서 말했듯이, 내 이야기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알고 있다면 나는 다른 누군가를 이용했을 것이다. 처음 책을 쓰기 시작했을 때 나는 개인적인 이야기와 나의 생각을 각각 다른 장에 실어서 서로 대비되는 방식으로 써나가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주제를 깊이 파고들수록 일은 더 어려워졌다.

첫 번째는 내가 아는 것에 대해 말할 수 있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나 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얼마나 오랫동안 오해받고 있다는 느낌에 우울한 날들을 보냈던가 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들은 하나가 반으로 나뉜 것이었다.

[300]

게다가 이 책을 시작하기 전까지 글쓰기를 통해 내 자신에 대해서 얼마나 알게 될지 미처 깨닫지 못했다. 나는 사랑이나 예술에 있어서 대기만성형 이었다. 나는 평생 이 두 가지를 통해 마음을 신뢰하는 법을 배웠다.

[300-301]

아내의 입장에서는 이런 점들 때문에 나의 저술 활동이 의심스러웠고 그것을 방종이라고 보게 되었다. 특히 내가 출판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고 글을 쓸 때는 이런 질문을 던졌다.

“왜 아직도 그 글에 매달려 있는 거예요?”

이 질문 속에는 가족의 행복과 안녕에 좀 더 도움이 되는 다른 일을 할 수도 있지 않느냐는 의미가 들어있었다. 아내는 나의 책들을 자랑스러워하기도 했지만 글을 쓰는 것 자체가 나에게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것은 글쓰기 자체를 이해하지도 못하고 믿지도 않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301]

내가 심리치료사와 상담할 때 개인적인 어려움보다는 글쓰기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을 듣고 아내는 내가 일을 해야만 한다는 문제를 피하려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302]

나는 아내가 절대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나의 삶에 있어서 글쓰기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내 관점에서 이해하고 감사해야 했다. 따라서 너무나 쉽게 자신을 저술가라고 인식하게 되었고, 글쓰기가 노동이라거나 출판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자기 회의의 감정을 극복하기 위해 정체성을 찾는 행동이라 믿었다. 이것을 극복하면서 아내로부터 작은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은 글쓰기가 자기발견을 위한 수단일 뿐 아니라, 자기확신을 찾아가는 수단도 된다는 것을 말한다.

내가 다시 개인적인 전환에 관한 문제로 돌아왔을 때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나를 감동시키는 것인지 다시금 발견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을 쓰는 것은 계속해서 글을 쓰는 것이 내 일생에서 얼마나 중요한 실마리였던가를 기억하게 만들어주었다. 중요한 전환점마다 나의 길을 비춰볼 글을 쓰곤 했다.

[302]

마침내 전환은 내가 원했던 주제로 글쓰기를 하는 수단이 되었다. 그것은 삶 그 자체였고 자연스럽게 여정을 굴곡지게 만드는 것이었다.

[307]

우리가 일생을 통해 이루는 것은 서로 부딪치면서 ‘세상’이라고 알고 있는 또 다른 안전한 존재를 상실하는 것, 그러면서 새로운 시작에 한발을 내딛는 것이다.

3. 내가 저자라면

3-1. 제목에 대하여

책의 원제목은 “The way of Transition”(전환의 방법)이다. 한국에서 번역하면서 “How to live, 갈림길에서 삶을 묻다”이다. 저자는 변화와 전환의 차이점을 이야기한다. 외적인 변화를 겪으면서 중간지대, 림보limbo 지대인 정체기이면서 회색지대인 심리적 변화와 전환을 거쳐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어쩌면 원제인 “전환의 방법”이라고 했다면, 한국 독자들의 눈을 끌어을까 라는 의문을 제기해본다.

편집 과정에서 독자들의 눈을 바로 끌 수 있는 제목의 창의성이 눈에 띈다. 저자 자신에게 삶의 근본적인 질문을 하면서 붙여졌을 거라 추측된다.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질문을 수없이 해본다. ‘ 어떻게 사는 것보다 주어진 삶에 방향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 라는 구체적 질문을 하는 기회를 가져보았다.

3-2. 이 책의 구성에 대해 논하라.

이 책의 특이점은 중간중간에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뒷받침하는 격언이나 유명작가나 인사들의 글귀를 적었다는 것이다. 책의 구성이 이제는 눈에 들어온다. 이 책의 편집은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 프롤로그에서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나 책을 쓰게 되면서 겪었던 심정을 고백한다.

둘째, 목차를 구성하고 11개의 꼭지글로 되어있다. 대제목과 소제목을 적는다.

셋째, 하나의 꼭지글에는 타이틀이나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지지하거나 함축을 담고 있는 격언이나 좋은 글귀를 쓴다. 일어났던 일들을 열거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부분 부분 적고 있다.

넷째, 에필로그에서 이 책을 쓰면서 느꼈던 점이나, 저자의 변화와 전환에 대한 생각, 글쓰기를 통해 자기자신을 재발견하게 된다. 글쓰기가 자기발견을 위한 수단일 뿐 아니라, 자기확신을 찾아가는 수단도 된다.

저자는 강조한다.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저자 자신을 감동시키고 인생 고비고비마다 중요한 실마리를 기억나게 만들어 주었다고.

< 목 차 >

prologue. 전화는 당신을 성장시키는 최고의 수업

01. 인생의 전환점에서 길을 묻다.

-변화와 전화의 차이

02. 전환에 대해 다시 생각하다

-전환점의 재발견

03. 방향은 우리에게 무엇을 주는가

-전환점의 경험

04. 포기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단념의 미학

05. 우리는 인생의 여러 단계를 거친다.

- 전환점을 통과하는 방법

06. 결혼은 또 하나의 전환점이다

-전환점에서 사랑을 심화하는 방법

07. 여행을 끝내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

- 낯선 곳에서 적응하기

08. 나의 천직을 찾아내다

- 평생 먹고 살일

09. 새로운 전환점에 서다

- 중간지대에서의 시간

10. 나이를 먹으면 삶의 무대도 넓어진다.

- 나이 듦의 미덕

11. 인생의 새 장을 열다

- 끝은 새로운 시작

Epilogue. 전환의 의미를 새롭게 깨달은 시간

 

3-3. 인상적이고 탁월한 착안점

문단 중간 중간에 인용문을 적었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뒷받침하는 격언이나 유명작가나 인사들의 글귀 즉 인용문을 적어 독자가 저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추측하고 예측하게 했다. 인용문을 글의 타이틀에 맞게 적재적소에 배치를 탁월하게 잘했다. 나도 다음에 책을 쓸 때 참고할 만한 사항이었다.

 

3-4. 보완점

목차에는 분명 대제목과 소제목( 예를 들면, 01. 인생의 전환점에서 길을 묻다. -변화와 전화의 차이)이 있었는데, 본문에는 대제목만 나와 있고 소제목이 생략되어 있다. 일관성있는 편집이 요구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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