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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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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17일 12시 33분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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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가방 속에는 뭐가 들어있나요. 생생하게 무엇이 어디 들어있는지 한순간에 확 떠오르시나요, 아니면 하나하나 천천히 떠올려봐야하나요? 저는 제 가방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떠오르질 않습니다. 작두를 탄 사람, 접신을 한 사람은 그냥 그게 눈에 보이겠지만 저는 그렇지가 않네요.


보르헤스의 소설을 읽다가 '여행가방'을 뜻한다는 '알레프'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크리에이티브 살롱9에서 목요일마다 인문학 아카데미를 하는 데 이번달의 주제는 문학이고, 강사님께서는 그 중에서도 보르헤스의 세계를 다루십니다. 강좌에 앞서 보르헤스의 소설을 읽고 있습니다. 보르헤스는 소설 속에서 어렸을 적의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듯 합니다. 책을 읽다가 책을 덮어두고 잘 때, 밤사이에 글자들이 뒤섞이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는 것에 놀랐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이상하지요. 글자들이 서로 드러붙지도 않고 모든 형체가 사라지는 밤 중에도 사라지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알레프'는 이와는 반대의 경우를 이야기합니다. 작은 것 속에 우주가 모든 시간이, 모든 존재가 가득한 것을 이야기합니다. 세상을 모든 것을 모든 시점에서 보게 되고, 또한 모든 시각의 것을 봅니다. 사랑했지만 죽은지 몇 년이나 지난 여인을 보았고, 그녀의 유해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몸속을 보았습니다. 또한 세계를 비추는 거울을 봅니다. 그 거울 속을 보고 있지만 그 거울은 자신을 비추고 있지 않습니다. 


알레프와 비슷한 것으로 영화 '맨 인 블랙' 1탄이 있습니다. 은하계를 강탈해 가려는 외계인으로 은하계를 지킨다는 스토리인데, 이때의 은하계는 고양이 목에 달린 목걸이의 구슬 안에서 회전하고 있습니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 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서는 자포드에게 우주를 보여주겠다고 그의 머리와 케이크 한조각을 연결해서 보여줍니다. SF 영화 '콘텍트'에서는 이지러진 공간 웜홀을 통과하는 24시간동안 외계인을 만나는 여인이 나옵니다. 그녀의 우주비행을 지켜보던 이들은 그녀가 탄 우주선이 몇초 사이에 자유낙하하는 것을 지켜보았을 뿐이죠. 심청은 인당수에 빠졌는데, 용궁에서 태어나서 삼칠일만에 죽은 자신의 어머니를 만나게 됩니다. 알랜 B. 치넨이 쓴 세계 각국의 중년과 노년을 다룬  이야기 「인생으로의 두 번째 여행」에서는 '생명의 나무'를 찾아나선 사람이 나오는 데, 그는 끓는 황금샘물이 솟는 곳에서 끊임없이 소멸하고 끊임없이 새로 만들어져 자기 동일성이 유지되는 황금나무를 만나게 됩니다. 


보르헤스의 세계를 전해주실 김홍근 선생님께서는 충청도의 어느 깊은 산방에서 칠흑같은 어둠이 있던 밤에 벽이 없어지면서 경계가 없어져 자신이 무한히 확장되는 것을 느꼈다고 하십니다. 그 순간에 영혼은 어느 곳이라도가고 어느 시간대라도 다녀올 수 있었을 거라 짐작해봅니다. 


저도 그 '알레프,' '생명나무', '케이크'를 보고 싶습니다. 그것은 작지만 많은, 즉 모든 인간의 이야기기도 하며, 인간이 아닌 것들의 이야기까지도 모두 담고 있는 것입니다. 보르헤스는 소설 속에서 '알레프'를 보고 나서 이제는 그 어떤 것에도 호기심이 일 것 같지 않아 걱정이 되었다고 하던데, 그래도 그것을 한번 보고 싶습니다. 그것은 작가에게는 글의 원천이고, 삶을 살아가는 모든 생명에게는 에너지의 근원인 듯 합니다. 그 '여행가방', '생명나무'는 어디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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